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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공격받은 우방을 대신해 반격할 권리) 행사 과정에서 한국의 주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내의 우려에 대해 ‘정부가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자위권 행사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을 지켜본 뒤 그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개정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인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그러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한국의 우려가 충분히 미일 안보협력지침 개정에 반영되도록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자위대법 개정, 일본 내각의 조치를 모두 기다린 뒤 움직이면 너무 늦다”고 우려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25일 미국에 가서 한국의 우려를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해한다”고 했을 뿐 확답하지 않았다. 주용식 중앙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 미국과 조율은 하겠지만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결국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이런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방위성 계열의 싱크탱크인 일본 전략연구센터는 1994년 3월 발표한 ‘안보지침서’에서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미 어느 쪽의 요청이 있으면 주저 없이 자위대 전투부대를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동의가 굳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 연구소는 전직 자위대 간부들로 구성돼 있다. 미국 역시 예산 절감과 중국 대응 역할 분담 등을 위해 자위대 역할의 확대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이런 움직임은 한중 관계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종필 경희대 교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이 미국의 아시아 세력 재편(re-balancing)과 같은 것으로 해석될 경우 중국은 맞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고 한국은 그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 문제(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입장을 일본과 관련국에 다양한 경로로 표명해 오고 있다”며 “언론에서 ‘사실상 자위권 용인’이라고 보도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이 말한 입장이란 육해공 자위대의 한반도 진주를 반대하고 한국과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기본 원칙을 뜻한다. 2007년 아베 신조 1기 내각에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4가지 유형을 밝혔을 때 한국 국방부가 밝혔던 내용이다. 조 대변인은 ‘한국의 구체적 입장을 밝혀 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일본에서 아직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철중 기자}
정홍원 국무총리는 28일 “정부는 국가정보원 댓글을 포함한 일련의 의혹에 대해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밝힐 것이며,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결코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경제와 현안에 대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정부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과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총리의 대국민 담화는 새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정 총리는 “대통령은 처음부터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과 수사가 진행 중인 이 문제로 혼란이 계속된다면 결코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그러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치권이 뜻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최근 두 분기 연속 1%대의 분기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실물경제가 회복되는 추세를 언급하며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 활성화와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이 하루라도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치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를 살리고 국가 미래를 견인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국회가 이번 회기 안에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노사에 대해서는 “기업들은 필요한 투자 실행에 주저하지 말고, 노동계는 일부 기업의 파업 조짐 등으로 모처럼의 경제 회복 기미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24일(현지 시간)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1086 한민족학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음악은 ‘아리랑’이었다. 학생들은 교실을 뛰쳐나와 간식이 준비돼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바쁜 발걸음에도 선생님을 마주칠 때면 하나같이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한러 수교(1990년) 2년 뒤인 1992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한민족학교 중 러시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유일한 정규 교육기관이다. 러시아에서는 지역별로 학교에 번호를 매기는데 한민족학교는 ‘1086번 학교’인 셈이다. 초중고교 통합과정(1∼11학년)으로 현재 약 700명이 재학 중이다. 고려인(러시아와 주변국에 거주해온 한국인 교포)이 65% 정도이며 나머지는 알바니아인 등 53개 러시아 내 소수민족 출신이다. 엄 넬리 교장은 “한때 89개에 달했던 소수민족 학교가 러시아 내 민족차별 문제가 심화하고 재정난 등을 겪으면서 최근 5개까지 줄었지만 이곳은 21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곳곳에서 한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학교 현관에는 한복을 비롯해 한국 전통 물품들이, 복도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들이 진열돼 있었다. 복도 벽면에는 한 학생이 그린 박근혜 대통령의 초상화도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학년에 따라 일주일에 4∼6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단어와 어법을 배우는 것 이외에 애국가 한국동요 등도 함께 따라 부른다. 최근에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한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 한국어 수업을 담당하는 이미화 교사는 “아이들이 케이팝(K-pop) 가사를 가져와 그 뜻을 해석해 달라는 통에 쉬는 시간까지 한국어 수업이 이어질 정도”라며 “오늘 숙제도 최신 한국드라마를 보고 10문장 이상 받아써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명성이 유지되는 데에는 고려인인 엄 넬리 교장의 열정이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엄 교장은 일반 러시아학교장을 맡고 있던 중 차별받는 고려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접하고 직접 한민족학교를 세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교재가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워 학년별 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고 매일 아침 현관에서 등교하는 모든 학생들을 맞이한다. 엄 교장은 “예전에는 고려인들조차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 가슴 아픈 적이 많았다”며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러시아인 학부모들도 자녀의 장래를 위해 한민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걸 보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Initiative·계획 또는 발의)’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의 접점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입니다. 한-러 협력은 북핵 문제와 동북아 발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사진)은 27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 수석부의장은 23∼27일 모스크바 방문 기간에 민주평통이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한-러 평화통일포럼’과 고려인 초청 간담회 행사 등을 숨 가쁘게 소화했다. 박 대통령의 핵심 원로그룹 ‘7인회’ 멤버이기도 한 그는 “해외 동포들에게 정부의 통일 정책을 알리고 이들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의 역할을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서 그동안 미국과 중국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 있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항력을 지녔다. 한-러의 경제 협력이 탄력을 받을수록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 수석부의장은 최근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태 해결 과정을 언급하며 “미국과 유럽의 무력제재 방침에 반대하며 외교적으로 풀어낸 러시아의 중재가 주효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러시아가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취소 이후 냉각되는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 조바심 낼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할 안보태세를 확실히 갖추고 있다면 (남북관계의 경색에) 답답한 쪽은 북한”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이제는 ‘미국 한국 일본’ 대 ‘중국 러시아 북한’의 대립에서 벗어나 중국 러시아의 의견을 존중하고 공동의 이익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엄구호 한양대 러시아학과 교수) “한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 문제뿐 아니라 동북아 안정을 위해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알렉산드르 페도롭스키 국제관계연구소·IMEMO 센터장) 25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러 평화통일포럼’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한-러 협력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이 쏟아졌다. 이날 포럼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한국의 전성훈 통일연구원장,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수슬리나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 교수 등 양국의 한반도 전문가 12명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에서 양국 전문가들은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잇는 철도 연결 등 과거부터 논의돼온 양국의 숙원 사업들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가 해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장은 “남북러 3국의 경제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려는 한국과 극동 및 시베리아 개발에 의욕을 보이는 러시아의 생각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말했다. 특히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러시아에는 중국과 일본처럼 영토 분쟁 소지가 없는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슬리나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 교수는 “한-러가 좀 더 확대된 상황에서 전략적인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고 지적하고 “한국이 중국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논의 중인데 러시아도 이 과정에서 밀려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은 러시아 사회에 한반도의 정세를 알리고 한국의 통일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전성훈 원장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인도적 지원, 교류 증진, 경제공동체 건설 등으로 나누어지지만 이것이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드레이 이바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선임연구원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데 대해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양날의 칼’ 같은 성격이 있어 북한 체제를 압박하는 것보다는 평화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다음 달 방한을 앞두고 열린 이날 포럼에는 모스크바대 등 주요 7개 대학의 한국학과 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과 이타르타스통신 등 러시아 주요 언론들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모스크바=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외교부가 재외공관에 ‘독도 표기와 관련해 주재국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빚어졌다. 21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외교부가 (지침에서) 독도와 다케시마를 함께 표기하는 것을 무리하게 독도 단독 표기로 바꾸도록 요구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감장에 나온 주러시아 대사관 직원은 “우리가 무리하게 요청할 경우 일본이 우리보다 몇 배 더 심각하게 대응을 할 수 있어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의원들은 “결국 독도를 다케시마(竹島)와 함께 표기해도 문제가 없다는 건가. 소극적인 대처다”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외교부는 22일 해명자료를 내며 진화에 나섰다. 외교부 측은 “국감에서 지적한 본부 지침은 독도의 영유권과 명칭 표기가 함께 문제될 때 영유권 표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는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있는 경우 우리 측이 무리하게 명칭 변경을 요청하다가 자칫 영유권 표기마저 바뀌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정부는 21일 주노르웨이 대사에 이병화 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를 임명하는 등 일부 공관장 인사를 단행했다. 주레바논 대사에는 최종일 전 국방정보본부장, 주미얀마 대사는 이백순 전 북미국장, 주온두라스 대사에는 김래혁 전 주스페인 참사관, 주파라과이 대사는 한명재 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국제국장, 주파푸아뉴기니 대사에는 김성춘 전 주인도 공사참사관, 주피지 대사에는 김성인 전 다자경제외교국장이 각각 임명됐다. 또 주나고야 총영사에는 박환선 전 주센다이 부총영사, 주두바이 총영사에는 안성두 전 주아프가니스탄 대사, 주상파울루 총영사에는 홍영종 전 주두바이 총영사가 각각 임명됐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국민권익위원회는 범죄 피해자의 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법무부와 경찰청, 기초자치단체에 권고했다고 20일 밝혔다. 권익위는 강력범죄 피해자에게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와 각종 지원 및 보호제도를 반드시 알리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피의자를 체포할 때 체포 이유와 묵비권 행사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피의자 권리를 위한 규정은 있는데 정작 피해자의 권리를 담은 규정은 없다. 이 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권익위는 범죄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수사 결과, 공판 기일, 재판 결과, 형 집행 상황 등 형사 관련 정보가 실질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절차를 법규화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법무부가 업무 매뉴얼을 제공하고, 범죄 피해자 지원 사업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에 보조금을 적기에 지급하라는 내용도 개선안에 포함됐다. 친족 사이의 흉악범죄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관계일지라도 구조금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가해자가 될 우려가 없을 때는 구조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의 지침 등을 보완하라고 권익위는 권고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한국과 일본 정부가 지역 내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약 4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일본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재개해야 한다는 데 양국이 공감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이나 논의할 의제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60년 동안 이어온 한미동맹도 양국민의 소통과 이해가 없다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KF·Korea Foundation) 이사장(사진)은 1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사이의 정책적 협력도 필요하지만 국민이 상대국을 이해하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KF가 역대 한미 양국 주재 대사들을 초청한 이벤트에 대해 “지금까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행사가 북핵, 안보, 동북아정세 등 전문성 있는 주제로 이뤄졌다면 이번 행사는 대사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일반인들도 한미동맹의 의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취임 5개월을 맞는 유 이사장은 KF의 기존 사업을 ‘한류(韓流) 열풍’ 등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온라인으로 다른 나라 학생들에게 한국학 강의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KF 글로벌 e스쿨’이다. 유 이사장은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공공외교에 대한 생각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한국을 광고하는 건 공공외교의 1.0버전이고, 이를 통해 국익을 추구하는 게 2.0이다”라며 “앞으로는 우리 국민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글로벌 시민이 되도록 돕는 ‘공공외교 3.0’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이런 맥락에서 “KF는 지금까지 외국어 능통자에게만 해외 인턴 기회를 줬는데 앞으로는 어학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국내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역대 한국 대통령 중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을 최고로 꼽고 싶어요.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한국이 한 단계씩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내가 본 박근혜 대통령도 강하고 유능한 여성 지도자였기 때문에 3명의 뒤를 잊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989∼1993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는 1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 대사와의 대화’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한 미대사관이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해 역대 한미 양국 주재 대사를 초청해 이뤄졌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축하 영상을 통해 “한미동맹은 안보를 넘어 무역과 다양한 글로벌 사안에 대해 나란히 서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객석에 있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생각이 굳어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르다. 앞으로 한미관계에서 어떤 일이 중요할지는 여러분이 결정하고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한국의 보수론자들이 미 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자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한국이 내릴 만한 가장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레그 전 대사 이외에도 역대 주한 미대사 중에 토머스 허버드, 알렉산더 버시바우,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가 참석했다. 주미 한국대사 중에는 현홍주 이홍구 한승주 최영진 전 대사가 함께했다. 허버드 대사는 “쇼트트랙 선수인 ‘안톤 오노’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노가 한국 선수를 밀어 문제가 됐던 경기 다음 날 국방대 연설에서도, 재계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모두 오노 얘기만 묻더라”면서 “처음에는 한국인들의 반응이 의아했지만 이런 일들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사들은 과거 자신들이 부임했을 당시의 경험 이외에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2005∼2008년 재임한 버시바우 전 대사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현 상황에서 논리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하며, 중국을 설득해 북한이 움직이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미 간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가 처음 이뤄질 당시 부임했던 허버드 전 대사는 “아쉬운 점은 이 이슈가 한미관계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로 흘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5·16군사정변으로 물러난 장면 총리는 미국과 유엔의 6·25전쟁 파병을 이끌어낸 초대 주미 대사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찾아가 “계엄을 선포할 경우 한미동맹을 훼손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이는 14대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릴리였다. 한국의 주미 대사와 미국의 주한 대사는 이처럼 한미 외교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동아일보 정치부는 한미동맹 60년을 맞아 역대 주미 대사 23명, 주한 대사 22명 등 총 45명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조사 분석했다. 》 ‘1987년 6월 나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를 방문했다. 그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며 “계엄을 선포하면 한미동맹을 훼손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최광수 외무장관은 내게 전화로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줬다.’ 1986∼1989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 전 대사의 회고록 중 ‘6월 민주화 항쟁’과 관련된 내용이다. 릴리 대사 이외에도 많은 미국의 주한대사는 서울에서, 한국의 주미대사는 워싱턴에서 양국의 외교 최전방을 지켜왔다. 양국 대사는 한미 외교의 야전사령관이다. 둘은 닮은 듯 달랐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Korea Foundation)과 동아일보 정치부가 최근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역대 주미대사 23명, 주한대사 22명 총 45명의 프로필을 처음으로 심층 분석한 결과가 그랬다. 이들 45명의 면모를 살펴보면 한미동맹 60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치적 주미대사, 전문적 주한대사 1948년 유엔이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 이후로 주미대사 24대 23명(정일권 대사는 3·5대), 주한대사 22명이 워싱턴과 서울 외교가를 누볐다. 주미대사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가 8명(34.8%), 주한대사의 최대 동문은 예일대(6명·27.2%)였다. 대사로 부임할 당시 평균 나이는 주미대사(56.0세)가 주한대사(53.7세)보다 2.3세 더 많았으나 50대 중반이 대사의 적령기임을 알 수 있다. 재임기간도 주미대사가 2년 8개월, 주한대사가 2년 10개월로 비슷했다. 그러나 임기 2년도 채우지 못한 경우는 주미대사가 8명으로 주한대사(4명)의 2배였다. 주미대사의 이런 불안정성은 그 출신 성분과도 무관치 않다. 주미대사 23명 중 임명 직전의 직책 기준으로 외교관은 10명(43.5%)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주미대사 부임 전 장관(5명)이나 국무총리(3명)를 지낸 고위 정무직 인사 출신만 8명(34.8%)에 달했다. 주미대사 재임 전후로 총리(내각수반 포함)를 지낸 사람만도 총 7명(30.4%)이다. 반면 주한대사는 22명 중 무려 19명(86.4%)이 정통 외교관 출신. 외교부 당국자는 “주미대사는 미국 정부보다 본국(한국) 정권과 소통이 쉬운 정무직 인사가 많이 기용돼 정치 상황이나 인사 필요에 따라 임기가 들쑥날쑥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대사는 대부분(18명·81.8%) 2년 이상의 임기를 보냈다. 최단명 대사는 3대 윌리엄 레이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거만한 태도 등을 탐탁지 않게 여겨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 ○ 역사의 현장에서 고뇌했던 양국 대사들 주한대사는 한국의 근대사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1980년대 이후 주한대사의 큰 고민 중 하나는 ‘반미정서’였다. 제임스 릴리 대사(1986∼1989년)는 반미시위대로부터 여러 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다. 도널드 그레그 대사(1989∼1993년)는 야밤에 시위대가 관저로 침입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2002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 이후 고조된 반미감정을 직접 목격한 토머스 허버드 대사(2001∼2004년)는 “사건 직후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히 요청해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고비마다 주미대사들도 열심히 뛰었다. 초대 장면 대사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6·25전쟁 소식을 접하고 미 국무부와 유엔본부 등을 찾아다니며 미군과 유엔군의 파병을 호소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주미대사는 김경원 대사였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내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친서’를 백악관에 요청했다. 한국 정부가 친서를 중간에 가로챌 것을 우려한 김 대사는 릴리 주한대사에게 ‘친서를 외무부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로 직접 전달하라’고 미 측에 조언했다. 한 전직 주미대사는 “‘강경한 한국 정부’와 ‘온건한 미국 정부’ 사이에서 ‘낀 신세’가 됐다가, 정권이 바뀌면 반대로 ‘온건한 한국’과 ‘강경한 미국’ 간의 신경전을 조율해야 했다”며 “그것이 주미대사의 숙명”이라고 토로했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양국 대사의 역할 21세기 들어서 한미 사이에서는 안보동맹뿐만 아니라 경제 협상 또는 다자외교 무대에서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경제 관료로 잔뼈가 굵은 한덕수 전 총리는 2009년 주미대사에 부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주한대사의 임명에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한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가 부임한 데 이어 현직 대사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성 김 대사다. 이는 9·11테러 이후 주재국의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공공외교’를 중시하는 미국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에는 정부간 현안을 각국 정상이 직접 챙기거나 다양한 접촉 채널이 있어 대사가 직접 관여하는 일이 줄었다”면서 “대신 본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공공외교나 대민 접촉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감사원 김영호 사무총장은 15일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라는 감사 결과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한 바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4대강 사업을 대운하로 바꾼 것은) 통치행위라고 하지만 결국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보는 데 동의하느냐’라는 민주당 이춘석 의원의 질문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한 물음에 “검토했으나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감장에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 사무총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주영 의원은 “근거가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 바로 대통령한테까지 책임을 지울 수 있느냐. 사무총장이 제정신이냐”며 목청을 높였다. 권성동 의원도 김 사무총장의 발언은 망언이라며 “대통령이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우고 국회의 승인을 받은 사업을 감사원이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을 감시하느냐”며 비판했다. 이날 김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감사원이 모든 국책 사업을 판단할 만한 전지전능한 기관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은 “회계감사와 공무원 직무에 대한 감찰이 주 업무인 감사원이 무슨 근거로 그러한 입장을 내놓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4대강 사업은 기후 변화 시대에 200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적 차원에서 결정한 것으로 사업의 성과는 추후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며 “감사원의 태도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집행 행위에 대해 사법처리를 검토했다면 이는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법 제32조에 따르면 감사원은 법령에 규정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소속 장관 또는 임용권자에게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감사원은 ‘사법처리 검토’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감사원은 오후 자료를 내고 “이 전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4대강 수심이 깊어지게 된 다양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검토를 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당초 모든 4대강 사업 관련자에 대해 통상적인 행정적 형사적 책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도 함께 검토하긴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징계 대상이 될 수 없어 제외했다”고 설명했다.김철중·고성호 기자 tnf@donga.com}

“정말 이 길 따라 계속 가면 개성이랑 평양까지 갈 수 있어요?” 12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2013 통일문화축제’의 ‘DMZ(비무장지대) 자전거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참가자들은 안내 책자를 보며 자전거 코스의 의미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이 남한에서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신1번국도(경의선 도로)인데 여기서 자전거를 타는 건 우리가 처음이란다.” 오전 10시 300여 명의 바이커가 차례대로 임진강 통문을 빠져나왔다. 총 22km 구간의 시작은 통일대교 남단까지 이어진 비포장길 1km. 왼쪽으로 흐르는 임진강의 푸른 물결은 맑은 가을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했다. 그러나 길과 강 사이를 갈라놓은 철조망은 이곳이 남북 간 삼엄한 대치의 상징인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인근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통일대교를 지나 5분여 동안 더 페달을 밟자 판문점과 남북출입사무소로 갈라지는 군내삼거리에 이르렀다. 왼쪽으로 꺾으니 자전거 투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되는 ‘군내 삼거리∼남북출입사무소 구간’(2.5km)이다. 평일에는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차량들이 편도 2차로 도로를 채웠지만 오늘은 양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계를 서는 군인들만 있을 뿐이었다. 파란색 행사 티셔츠를 맞춰 입은 바이커들이 도로를 채우자 잿빛 아스팔트 위에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듯 장관이 만들어졌다. 북쪽을 향해 자전거를 달리는 신기한 경험을 오래 누릴 수는 없었다. 남북출입사무소 앞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남쪽으로 머리를 돌려야 했다. 아빠와 함께 참가한 김한지 양(11)은 “속상해요. 같은 민족이라면서 왜 더이상 북쪽으로 못가는 거죠?”라고 말해 주위 어른들을 머쓱하게 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전 참가자들은 주말이라 불이 꺼진 대형 전광판을 뒤로한 채 기념촬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민화협의 ‘통일문화축제’는 올해로 14회를 맞았다. 자전거투어 이외에도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마련됐다. 자전거투어와 같은 시간에 열린 ‘평화염원 걷기대회’에는 600여 명이 참가했다. 도보견학과 도라산전망대 관람(버스이동)을 병행한 A코스(2km)의 참가자들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인 7km 너머의 개성공단과 그 일대를 바라보며 남북 분단의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경기 파주시 경기영어마을에서 2박 3일간 열린 ‘통일오토캠핑’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토캠핑은 올해 처음 신설된 프로그램. 캠핑장에서는 임진강을 건너 북한 땅인 황해남도 개풍군이 건너다 보였다. 참가 가족들은 텐트를 둘러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가을 정취를 즐겼다. 이건원 씨(38) 가족은 이 씨의 아버지(63)부터 14개월 된 딸 예원 양까지 3대가 함께 캠프장을 찾았다. 이 씨는 “가족 모두가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북녘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철중·조숭호 기자 tnf@donga.com}

2003년 이후 10년간 적발된 간첩 49명 가운데 42.9%인 21명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주된 임무도 탈북자 동향을 감시하고 이들을 납치해 북한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심재권 의원(서울 강동을)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1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공안당국에 검거돼 구속된 간첩은 49명이었다. 시기별로 보면 노무현 정부 때는 14명이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선 31명이나 됐다. 올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9월 말 현재까지 구속자는 4명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권 차원의 간첩 검거 의지가 강했고, 공안 조직과 예산이 증가한 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탈북자 위장 간첩 21명 가운데 노무현 정부에서 구속된 사람은 3명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14명으로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구속된 간첩 4명은 모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었다. 위장 탈북 간첩을 소속 기관별로 보면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가 절반에 가까운 10명(47.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찰총국(대남작전 및 비정규전 담당) 5명, 군 보위사령부(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위부대 격) 3명, 조선노동당 35실(공작활동 및 비자금 조성 담당) 1명, 기타 2명 등으로 조사됐다. 공작원 남파를 담당해온 225국(과거 대외연락부) 소속은 없었다. 이에 대해 1995년 ‘부여 무장간첩 사건’으로 검거됐던 김동식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탈북자 검거 전담기관이 보위부여서 보위부 소속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보위부 소속 간첩의 경우 활동을 탈북자에 집중했다. 지난해 탈북자의 재입북을 유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 씨, 올 들어 탈북자를 북한으로 데려간 혐의로 구속된 채모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찰총국 소속 간첩은 고위층 출신 탈북자 암살이 임무였다. 2010년 남파된 정찰총국 소속 간첩 3명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암살을 시도했고, 2011년에 남파된 정찰총국 소속 안모 씨는 탈북해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박상학 씨 살해가 임무였다. 2003년 이후 10년간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2만2076명. 탈북자 위장 간첩의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재입북 탈북자는 13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매체에 등장해 재입북 사실을 공개한 사례만 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에게 남파 간첩이 접근해 재입북을 권유하고 실제 재입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탈북자 사회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공안당국은 탈북자 위장 간첩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다른 형태의 간첩활동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전체 남파 간첩 가운데 검거되는 수가 극소수이고, 자생(自生) 간첩이 늘고 있기 때문에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조숭호·김철중 기자 shcho@donga.com}

‘아이가 낮이든 밤이든 집 안이나 밖에서 하루에 먹은 모든 것에 표시해 주십시오. 죽 빵 밥 국수 등 곡물 식품/감자 및 감자로 된 식품/콩 완두 견과류 또는 씨로 만든 식품/후추 파슬리 간장 마늘 생선가루 같은 양념….’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과 세계식량기구(WFP),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말 북한 영유아 및 임산부를 대상으로 영양실태 합동조사를 하면서 사용한 설문지 내용의 일부다. 22종류로 세분된 식품군이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제시돼 있다. 야채도 황색채소와 녹색채소로, 유제품도 우유와 치즈 등으로 일일이 구분돼 있어 시험을 치듯 꼼꼼하게 적어야 한다.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를 찾아내기 위해 이처럼 세심한 모니터링을 통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외 전문가들은 “영유아 등 취약 계층의 빈곤과 필수영양소 결핍 같은 히든 헝거를 해소하려면 그 대상에 맞는 ‘맞춤형 지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노 액세스 노 푸드’ 원칙 세워나가야 유니세프는 8월 한국 정부가 집행을 의결한 604만 달러의 대북 지원금으로 북한에 영양치료식과 의약품 등을 전달하기 위한 절차에 최근 착수했다. WHO도 정부가 지난달 26일 의결한 680만 달러의 자금 집행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국제기구들은 이 과정에서 엄격한 모니터링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No Access No food(접근할 수 없는 곳에는 지원하지 않는다)’의 원칙을 입버릇처럼 언급한다. 평양에 상주하는 디르크 슈테겐 WFP 북한사무소장은 “7명의 WFP 인원이 1년 내내 북한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니터링을 한다”며 “예전에는 우리 직원들이 북한말을 잘 몰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문제는 한국 교포나 3세를 채용하는 것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WFP가 제공하는 고영양 식량은 보관 박스뿐만 아니라 내용물에도 선명한 로고가 찍혀 있기 때문에 장마당(북한의 시장 격) 등으로 빼돌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WFP는 최근 대북 지원의 명칭을 ‘대규모 식량 지원’에서 ‘푸드 어시스턴트’로 바꿨다.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영양식을 북한 내부의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지원하는 방식이라는 뜻을 앞세워 식량의 전용(轉用)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다. 유니세프의 크리스토퍼 드 보노 아시아지역본부 홍보담당 본부장은 “북한에 들어가 있는 유니세프 팀 전체가 ‘노 액세스 노 푸드’의 원칙에 따라 매우 집중적이고 엄격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는 영양식 지원 대상인 탁아소나 보육원에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어린이들의 키와 몸무게, 팔뚝 굵기를 정기적으로 체크한다. 가정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설문조사하는 방식도 병행한다.○‘히든 헝거’에 맞는 맞춤형 지원 모델 필요 국제기구들은 짧은 기간에 수시로 진행하는 모니터링 외에 정기적으로 북한식량 실태와 영유아 등 취약계층의 영양 상태 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매년 식량실태 보고서를 내온 WFP와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27일부터 2013년도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기후와 작황은 물론이고 곡물 수입량, 환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각종 통계 및 분석, 수치를 동원해 완성하는 보고서는 언뜻 보면 난해한 수학 논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상세하다. 이들이 북한의 산간지역 등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본 뒤 작성하는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대북 식량지원 예산을 배정하는 주요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들도 열독하는 자료다. 그러나 국제기구들이 철저하다고 자부하는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결과조차 때론 정확도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통제가 심한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취약계층별 맞춤형 지원 모델을 만들어서 강화해 나가는 것이 ‘히든 헝거’ 해결의 핵심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통일연구원 이금순 연구원은 “대북 지원에 있어서 타깃을 좁혀야 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어린이도 3세 이하인지, 5세 이하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현실적인 대응 방안도 나오고 그 효과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2년 주기로 지원품목과 수량, 시기를 예고해 집행하되 북한이 협조하지 않으면 중단하는 식의 ‘인도적 대북지원 사전 예고제’도 히든 헝거 해결을 위한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단계별 맞춤형 안보 전략을 짜듯이, 히든 헝거에 대해서도 계층별, 지역별, 수준별 맞춤 정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곡물 같은 탄수화물 섭취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고 해도 뇌를 비롯한 신체발달에 필수적인 미량영양소 공급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이런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챙겨야 통일 후 남북어린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

《 “비전만 뚜렷하다면 중간에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결국 목표를 이뤄낼 수 있어요.”(윤유리 영국 로펌 ‘레이톤스’ 변호사·42·여) “불확실한 도전을 이겨내면 확실한 성공의 길이 열려 있죠.”(박지관 뉴질랜드 빅토리아 웰링턴대 정보경영학과장·44) 》 4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2013 세계한인 차세대대회’ 행사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0대 중후반에 외국으로 나가 지금은 현지 주류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1990년대 중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병으로 출발해 어떻게 미래 한국을 이끌 차세대 교포가 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세세한 커리어 플랜보다 확실한 비전이 우선 윤 씨는 1993년 동국대 국제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해외로 다니며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활동무대를 계속 넓혀 갔다. 입사 1년 뒤 미국의 델타항공을 거쳐 1996년에 당시 항공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던 영국의 브리티시에어라인에 들어갔다. 윤 씨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승무원 일을 시작할 때부터 30세 이전에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2001년에 영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들어갔고 졸업 후 로스쿨을 거쳐 2005년부터 현지 로펌인 레이톤스에서 세무 담당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윤 씨는 성공을 위해서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의 비전은 ‘넓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소 막연한 것일지라도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한 단계씩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당시에는 제 비전에 가장 적합한 일이 승무원이었고 후회는 없어요. 물론 지금은 변호사가 제 적성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더 큰 세상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도전할 겁니다.”○ 두려움 이겨내고 적극적인 자세 가져야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리더인 박 씨는 1996년 이민을 가기 전에 지방대 출신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이민을 결심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 학과장, 한글학교 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느 지역이나 이민 1세대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적극성’을 자신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그는 “말이 안 통해도 절대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고,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했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니 주위에서는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저절로 생기더라”라고 말했다. “뉴질랜드 로터리 클럽에서 나라 전체 대표를 뽑는다기에 지원했다가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습니다. 이후 협회에서 피드백을 해준다며 전화, e메일, 대면접촉 3가지 방법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어요. 망설임 없이 직접 찾아갔죠. 로터리 클럽 회장이 ‘탈락자 중 찾아온 사람은 당신뿐’이라며 놀라더군요.” 박 씨는 한국 청년들에게 ‘확실한 길을 쫓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안정된 길을 택하면 그 끝에 성공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이상 발전이 없다. 혼돈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이겨냈을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사진)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8일 “지금처럼 한일 정부가 대립한 적은 유례없는 일로 하루빨리 양국 정상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가 발표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당시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한국인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사죄한다’고 밝혔고 한국은 ‘화해’를 언급하며 화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양국민이나 정치인 중에 공동선언의 의미나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한일관계가 국민들의 감정싸움이 아니라 정부의 대립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 천황에 대해 언급한 점, 아베 신조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수정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우경화 행보를 보인 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당장 회담을 해도 성과물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일단 만나서 문제를 풀어야 하고 일본도 과거사 반성에 진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