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서영아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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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100세 시대를 생각합니다.

sya@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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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자 배제한 성장은 없다”… 건강하고 부유해진 ‘욜드세대’ 성큼[서영아의 100세 카페]

    고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미국 통계국은 2015년 전체인구의 8.5%인 6억1700만 명에 달하던 고령자(65세이상)가 2050년경에는 전체인구의 17%인 16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에이지랩의 창시자 조지프 F 코글린 박사는 이를 “마치 대륙 하나가 바닷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장수경제학 2017, 한국판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부키) 인구구조 변화로 소비자 요구도 하루아침에 변해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소비가 급격하게 나타나게 된다. 세계 최고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전국 최대 안경체인점에서 판매 1위 상품은 돋보기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성인용 기저귀가 아기용보다 많이 팔린다.○“노인은 무능하며 궁핍하며 이기적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다. 나이가 들면 무능하고 쇠약해지며 궁핍하고 이기적이 된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코글린 박사는 연령 차별로 이어지는 이런 편견에 찬 시각을 ‘노령담론(Narrative of aging)’이라고 부른다. 노인학계에서는 노령담론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구를 지배해왔다고 본다. 거대 식품기업 하인즈의 노인 영양식은 노인에 대한 편견이 부른 실패 사례로 유명하다. ‘거버 유아식을 자신이 먹기 위해 사가는 틀니 노인이 늘고 있다.’ 하인즈사는 1955년 이런 보고가 이어지자 노인을 위해 미리 으깨어놓은 영양식을 개발하기로 했다. 당시 타임지 기사는 “미국에는 60세 이상이 2300만 명에 이른다”며 “아기는 대략 2년 동안 이유식을 먹지만 노인은 15년 이상 이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하인즈는 신상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지만 판매대에 쌓인 통조림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버의 유아식을 사는 노인들은 “손주 먹일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슈퍼마켓에서 이 통조림을 바구니에 담는 순간 “나는 가난하고 이빨도 성치 않은 불쌍한 노인네”라고 주변에 외치는 것과 같다. 결국 실패의 원인은 고령자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자신이 노인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시장에서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기는 하다. 어찌 보면 모순된 이들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을 들인 상품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왔다”시대는 바뀌었다. 세계의 석학과 언론이 나서 시니어세대를 주목하라고 외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대 노화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턴(1916∼2001)은 197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55세부터 70대 중반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으로 구분했다. 저서 ‘나이 듦의 의미’(The Meanings of Age·1996년)에서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이 젊은 노인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때 영 올드를 줄여 ‘욜드(YOLD)세대’라 불렀고 이는 곧 세계적인 용어가 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며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시니어세대가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휘두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와튼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20년 저서 ‘2030 축의 전환’에서 “60세 이상이 전 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세계의 중심축이 고령자와 여성,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경제학에서 코글린 박사도 노령담론이 지배하는 기업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며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수많은 기업과 언론이 젊고 역동적인 MZ세대를 공략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돈이 있고 소비력이 크며 인구가 많고 보유자산도 많은 세대는 욜드세대라는 것이다.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책 ‘2022 대한민국이 열광할 시니어 트렌드’(비즈니스북스)에서 ‘에이지 프렌들리(Age Friendly)’를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에이지 프렌들리란 고령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과 사회의 철학을 말한다. 이동우 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앞으로 에이지 프렌들리 기업이나 브랜드, 도시와 지자체만이 성장하는 시니어 시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이제 고령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기업과 사회가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5070세대를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보고 이들의 취향과 욕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 책은 시니어 세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환경, 문화생활, 자산 관리와 재테크, 건강과 취미,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융합 학문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빨리 늙어가는 한국, 급속도로 달라진 시니어들‘젊은 노인 전성시대’는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중이고 은퇴세대의 상대적 빈곤율도 세계 1위(43.4%)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2021년 3월 말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253만 원으로 전년 대비 12.8% 증가했다. 이 중 부채 8801만 원을 제하면 순자산은 4억1452만 원이 된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5억6741만 원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40대(5억5370만 원), 60대 이상(4억8914만 원) 순이다. 복지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도 희망적이다. 조사 첫해인 2008년과 2020년의 고령자는 확연히 달랐다. 소득이 700만 원에서 1558만 원으로 늘었는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산소득 비중이 늘어난 반면 가족의 보조를 뜻하는 ‘사적이전소득’은 46.5%에서 13.9%로 줄었다. 스스로 돈을 번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건강하다는 답변이 늘었고 학력 수준도 높아졌다. 정보화기기 사용능력을 가늠케 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2011년 0.4%에서 56.4%로 급증했다(그래픽 참조). 시니어의 영향력이 가장 실감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7080 가요붐에서 트로트 열풍까지 이들의 존재감이 확인된다. 유튜브 이용자도 50대 이상이 가장 많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은 5060세대의 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는 현재 167만 명인 고령자 1인 가구가 2047년 40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주거와 식재료, 각종 서비스 등에서 관련 시장이 커질 것이다. 인터넷 쇼핑과 검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버 서퍼’가 늘고 로봇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정보화 기술의 최우선 수혜자도 고령층이 될 것이다. 다만 소비자로서의 고령자만 논하다 보면 다른 걱정들도 떠오른다. 2025년이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어떤 생태계를 조성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고령화는 시장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사철, 너도나도 ‘젊은 조직’을 강조하며 사람을 잘라내는 풍조가 만연하는 현실이다. 인적자원이 한정된 나라에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인구의 5분의 1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사회에서 과연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령자들의 역량과 에너지를 조화롭게 살리며 공존할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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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에 연연 않고 내려놓는 삶 모색… 인생의 의미 찾는 노력 계속[서영아의 100세 카페]

    《‘100세 카페’는 1월 24일 동아닷컴의 온라인 기사로 시작됐다. 100세 시대라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시니어세대, 이들이 조명받는 코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매주 일요일 아침 기사를 올렸다. 시니어 문제는 인구 문제나 사회복지, 실생활과 연결돼 있고 결국에는 정치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8월 21일자부터 동아일보 토요일자 지면에 기사가 실리면서 일요일 온라인에는 같은 소재를 좀 더 길고 상세하게 쓴다. 원고지 18장, 사진 2컷으로 한정된 종이신문 분량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근 1년간 많은 분이 100세 카페의 내용을 풍요롭게 해주셨다. 2021년을 마감하며 그분들의 근황을 전해본다.》 ○2막에도 멈추지 않는 ‘인생의 의미 찾기’ 8월 1일 100세 카페에 ‘이런 인생2막’ 코너를 시작했는데 그 첫 회는 온라인판에만 나갔다. 공교롭게도 기사가 나간 후에 100세 카페의 지면 게재 방침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JW중외제약, 한국콜마 대표이사를 거친 뒤 예순 넘어 바이오벤처기업을 창업한 최학배 하플사이언스 대표가 주인공이었다. 평생 제약맨이던 그가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 들으며 창업에 나선 이유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인터뷰 뒤에도 간간이 이 회사가 개발한 피부노화개선제가 미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는 소식(9월)이나 유명 제약회사에서 최고의료책임자를 영입했다는 소식(11월)이 들려온다. 최 대표는 100세 카페 애독자로 카톡으로 의견도 보내온다. 직원 출신으로 조직의 최상부에까지 올라갔던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평생 몸 바쳐 일했던 회사 일이 현역에서 물러난 순간 내 것이 아니더라는 자각에서 오는 허망함이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은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임종전문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사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왜 몰랐느냐’ 말하면 그뿐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정년 소설’이 하나의 장르가 되다시피 했다. 1980년대에 나온 ‘겨울의 불꽃’이나 2016년 나온 ‘끝난 사람’은 모두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어디선가 삐끗해 나락으로 떨어진 엘리트 샐러리맨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끝까지 업무에서의 실적과 성과에 집착하고, 실적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잘려버린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큰 그림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큰 조직은 리더 한두 사람의 성과로 이뤄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가도 유사한 성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비슷한 얘기를 한진해운 임원에서 퇴직해 몇 년간의 방황 끝에 택배회사에 취업한 강찬영 씨(60), 롯데마트 임원 퇴임 후 충격에 빠졌지만 서둘러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정선용 씨(54)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임원이란 게 ‘임시직원’의 준말이라지만 이처럼 본의 아니게 그만둔 케이스는 훨씬 많고, 이런 분들은 마음에 맺힌 얘기를 어디에 내놓기도 어렵고 이해해줄 사람도 많지 않아 더욱 외로울 것이다. 기억할 것은 높이 올라갔을수록 추락의 충격은 크다는 점이다. 경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의 하산을 미리미리 시작하라고 충고해준다. 반면 기업 오너인 한 지인은 기사가 나간 뒤 “그래도 수십 년간 함께 성장하며 가정을 일궈낸 것에 대해서는 회사에 고마운 마음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런 관점을 포함해 새해에는 고용주의 인생 2막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소개해보고 싶다.○저마다의, 작지만 씩씩한 인생2막 전직 고위공무원 박수천 시니어서포터 회장(71)은 여전히 과천에서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마침 11일 그간 제작해온 유튜브 방송 ‘손잘(손주 잘 키우자)TV’ 시리즈 25회분을 책으로 묶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른의 일생을 스토리텔링하며 삶 자체를 양육의 관점에서 녹여낸 테마형 자서전이 됐다고 한다. 대기업 임원에서 택배회사 노동자가 된 남편을 지켜보며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를 써낸 작가 박경옥 씨(57)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박 씨는 지역 도서관이나 평생교육관에서 요청이 있으면 은퇴교육이나 동의보감에 대한 강의를 하고 프리랜서 마켓 ‘크몽’ 판매대에 자신이 쓴 전자책을 올리기도 한다. 두 아들이 결혼과 취업으로 집을 떠난 뒤 둘만 남은 부부는, 서로에게 친구이자 엄마이자 교사 역할을 해주며 행복하다고 한다.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만의 세금이 아니다’라며 50대부터 절세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해 큰 반향을 얻은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는 유튜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금과 인생’이라는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임에도 구독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5년간 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한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세법률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 세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열심이다. 법이란 민에 대해 ‘규제’가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 은퇴 및 투자교육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는 유튜브와 강연을 오가며 100세 시대를 맞이한 시니어들의 노후설계를 돕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20년 정계은퇴한 뒤 웰다잉문화운동에 전념해온 원혜영 전 의원(70)은 11월 중순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여당 외연 확장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위례에서 새로 인생학교를 연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69)은 학교의 기초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7년간 키워온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는 다른 분에게 넘겼다. 한국에 인생학교가 100개쯤 생겼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거리 위의 의사’라 불리는 최영아 서울시립 서북병원 진료과장(51)은 지난달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받았다. 20여 년 동안 노숙인들의 질병 치료에 힘쓰고 주거와 재활 지원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공로다. 상금 2억 원으로 취약계층의 재활과 회복을 돕는 활동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또 하나, 기사에도 소개한 ‘빼빼유니짜장’의 스마트스토어 사업이 5일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취약계층 직원을 직고용해 운영하는 스마일박스에서 만든 짜장소스를 즉석 냉동해 판매하는데, 많이 팔리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성공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퇴직 1년도 안 돼 작가로 변신한 정선용 씨는 저술활동과 강연, 유튜브 방송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인생 2막 1년 차로 모든 게 낯설지만 트라우마를 빠르게 극복하는 중이다. 그의 기사가 나간 뒤 하도 부정적인 댓글이 많아 걱정스러웠다. 공연히 기사를 써서 열심히 살려는 분 상처만 받게 한 건 아닌가…. 다행히도 정 씨는 “댓글들을 모두 읽었다”며 “상처보다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채찍이 됐다”고, 무관심보다는 악플이라도 관심이 더 좋다는 ‘쿨’한 생각을 보내왔다.○“낙엽, 떨어진 게 아니라 내려놓은 거예요” 평균연령 62.3세. 100세 카페를 통해 만나온 시니어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많이 내려놓은 가운데서도 작은 역할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온 분야도, 앞으로 갈 길도 제각각이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겸손하게 발 딛고 서서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떨어진 게 아니라 내려놓은 거예요. 그게 인생이에요. 낙엽이 씀.’ 얼마 전 서울시청에 붙어있던 시구를 되새겨보며, 새해에는 더 다채로운 인생 2막 주인공들을 소개하고자 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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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작스러운 퇴직은 사회적 죽음 같았다, 하지만…”[서영아의 100세 카페]

    대기업 임원이던 정선용 씨(54)에게 인생 2막은 느닷없이 닥쳐왔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요일,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을 통보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다시피 한 회사였지만,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 드는 퇴직이었다. “임원 퇴직 통보는 금요일에 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 짐을 빼도록 해주는 일종의 배려죠. 주말에 짐을 챙겨 나오는데 종이박스 3개 분량이 전부더군요. 25년 세월이 이게 다구나.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주가 추석이었다. 부인에게 ‘올해는 본가도 처가도 가지 말자. 회사 그만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당당한 나훈아, 문화자본가였다”그를 나락에서 구해준 것은 추석전날 TV에서 방영된 나훈아 쇼였다. “근 3시간의 콘서트를 쥐락펴락하는 나훈아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지요. 출연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올까. 아하…. 그에겐 자본소득이 있구나.” 나훈아가 저작권료만으로 연간 6억원의 수입이 있고 출연료 같은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로소득이 끊어지게 된 자신이 왜 힘들고 불안한지 실마리가 잡혔다. 경제구조를 좀더 공부해야겠다, 하루 한편씩 경제에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마침 오랜 기간 자신의 블로그(정스토리)에 시간날 때마다 글을 써왔던 차였다. 이번에는 이렇게 쓴 글을 150만 회원을 거느린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아들아 경제 공부해야 한다’ 시리즈로 연재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나훈아를 자본소득, 남진을 근로 소득에 비유해 그 차이를 밝힌 ‘소득편’은 댓글이 600개가 넘을 정도였다. 직접 만든 곡이 많아 저작권 수입이 큰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인 셈이니 직접 노래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반면 동년배인 남진은 저작권 수입이 없으니 공연과 CF촬영 등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소득의 세가지 유형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삶에 빗대 설명했다. 이주노는 춤이라는 육체노동에 의존해 근로소득을 얻고 양현석은 연예기획사를 차려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서태지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니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는 식이다. 소득유형을 경제용어로만 생각했던 독자에게 명쾌하게 다가가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20편쯤 썼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편쯤을 모아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RHK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지요. 교정작업을 하면서 ‘아, 잘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월에 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6만권 이상 팔렸습니다.” 인세로 9000여 만 원, 책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강연수입도 생겼다. 1년만에 자신의 콘텐츠로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확보한 것. 인생 1막을 닫고 2막을 연 순간, 월급받는 근로자였던 그가 자본가, 그것도 문화자본을 밑천삼아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살지 마라’정선용 씨를 인터뷰하기로 한 지난달 25일, 아침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늘 만남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약속 장소를 안내하는 내용이다. 그 이틀 전에는 인터뷰에 대비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내주기도 했다. 천상 ‘일 잘하는 직원’의 빠릿빠릿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런 그는 글쓰기를 통해 퇴직 이후 흔들리던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는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는다. “직장인들은 퇴직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경험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시작되죠. 모든 인연을 끊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나에 대한 원망을 걷어낸 건 글을 쓴 덕분입니다. 제 상황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잘못이 아니다. 이건 과정이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게임이었다. 내년이건 내후년이건 지금 끝나건, 언젠가는 끝날 일이었다. 왜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나’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런 상황에 빠진 거다. 경제구조를 공부하자.”. 책을 낸 뒤 큰아들(24세)과의 대화가 늘었다는 점도 그가 꼽는 소득이다. ‘응’ ‘아니’ 식의 단답형 대화에서 경제와 사회에 대한 제법 진지한 대화까지 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이 근로소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사업소득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지를 물어왔다. 그는 “회사는 돈 받고 다니면서 사회를 배우는 학교”라며 “시궁창이건 어디건 일단 발을 담가보라”고 권했다. ○ 월급과 명함, 인맥은 본래 회사 거였다그의 책 띠지에는 ‘직원으로 시작하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쓰여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저는 월급의 달콤함에 젖어 계속 일만 했지 자본소득을 확보할 생각을 못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근로소득으로 시작하되, 늦지 않게 자본가,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가와 기업은 여러분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살기만 원하지요.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돈과 경제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그는 직장인들이 월급과 명함, 인맥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월급이 언제까지나 나올 것이고 명함이 내 사회적 지위라고 생각하며 회사 인맥이 내 사회적 네트워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모든 것은 퇴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월급이 아닌 고정 소득을 만들고 회사 명함이 아닌 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인맥이 아닌 자기만의 좁고 깊은 인적 네트워크를 다시 구축해야 하죠.” ○ 퇴직임원 70여 명, 40%는 갈 길 못 찾아그가 다니던 회사는 퇴직임원들을 위해 송파구 문정동에 공동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임원 출신들의 퇴직 이후 새 삶이란 녹록치 않다고 그는 전한다. 대부분 50대인 퇴직자가 70여 명인데 자리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40%는 된다는 것. “30% 정도는 창업이나 취업 등 완전 다른 길을 갔고 30% 정도는 회사와 연결된 일을 합니다. 납품업체를 창업해 회사에 납품하거나 회사 일을 대행하는 일을 하거나. 나머지 40%는 뚜렷한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돈이 없어 불안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죠. 100세 시대에 퇴직 이후 40년이 더 남아있는데 뭔가 할 일이 없다는 점,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죠. 퇴직해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아요.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긴 합니다. “맞아요. 회사 있을 때는 우리가 하는 게 엄청 훌륭한 일이고 사회 어디가서도 써먹을 일 이라고 생각했죠.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는 게 얼마나 쓸모있는 일인가. 그런데 명색이 회사에서 수 조 단위를 움직이던 사람들인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풀빵장수보다 못하다는 말을 저희들끼리 해요. 회사에서의 일은 분야가 나뉘어 있고 분절적입니다. 풀빵장사 하나 하려 해도 완전체적인 일을 익혀야 하지요. 축구선수가 야구하면 몸살난다고 하잖아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회사하고 밖에서 쓰는 근육이 너무 달라요. 저는 그 근육 쓰는 법 배우는 게 돈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의 규칙은 경제와 돈이 기본 뼈대다. 이걸 배워놓으면 어디서나 쓰인다고. 스스로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어요.” ○ 온실밖에 내쳐진 충격그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 등을 거쳤다.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산 소고기 최초 판매나 숱한 화제를 모은 ‘통큰치킨’의 현장 판매, 가정간편식 ‘요리하다’ 브랜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내 사회적 가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건 모두 회사 것이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자기 존재가치를 찾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끝까지 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경제, 즉 돈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자산상황을 점검해 보니 제 경우는 운이 좋았어요. 아내가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순자산이 50억은 되더라구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퇴직을 하고 나서도 집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입니다.”-직장생활 당시 사진을 요청했더니 ‘다 지워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직장은 온실과 같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합니다. 저도 지금 맞고 있어요. 즐겁게 맞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온실 밖으로 내쳐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직장 때로 다시 돌아가서 그 절박했던 심정, 힘든 것을 되풀이하는 거죠.” -언제 다 벗어날까요.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날 것같아요. 짊어져야 할 짐은 그냥 지고 가야죠. 지금 제가 편안해진 건 굳이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아서예요. 제가 직장시절 사진들 다 지웠다고 했잖아요. 끊으면 끊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굳이 끝내려 하지 말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년엔 3권 출간할 계획”-너무 밝은 표정이셔서 이런 얘기 의외인데요. “끊임없이 두려움을 향해 부딪히는 중인 거예요. 다른 분 얘기 들으면서도 상처받아요. 함께 퇴직한 동료가 와서 중소기업에 원서 냈는데 안됐다고 하더군요. 연봉을 절반으로 깎아서 지원했는데 거절당하면 얼마나 참담하겠어요. 아마 집에는 얘기도 안했을 거예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을 못 알아보면 그 회사 손해지 뭐’ 이렇게 말하는 가족에게 나 취직하려 했는데 떨어졌다고 말 못하죠. 책을 안 썼으면 저야말로 은둔했을 것 같아요.” 그는 내년에 책을 3권 더 내려 한다. 이미 출판사들과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부인과 함께 부동산 투자 스토리를 정리한 책(아들아, 부동산 공부해야 한다)을 낼 예정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돈공부 책도 만들 생각이다. 12월부터는 유튜브도 시작할 계획인데 여기서 다룬 콘텐츠를 엮어 ‘부자의 경제공부법’을 출판할 계획이기도 하다. “무명 연극배우들이 거친 마룻바닥에서 자고 포스터 붙여가며 막막한 가운데 열심히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5시에 일어나서 4시간은 글을 써요. 잘 안 써져도 무조건 씁니다.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자고 스스로와 약속했어요. 이제는 작가로서 제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야, 정선용. 너 잘 하고 있어’라고 말이죠.”아래는 정선용 씨가 보내온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퇴직 후 100세 인생 생활 설계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퇴직 이후에 정리했던 내용들입니다. 퇴직 후 꼭 챙겨야할 다섯 가지는 돈, 건강, 사람, 시간, 즐거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입니다. 돈은 개인의 재무설계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는 기업과 가계의 재무적 차이를 발견하는 것에서 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개인 재무설계의 핵심의 소득과 소비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소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득은 세 가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자본 소득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퇴직자는 근로소득으로 생활해왔던 소득자입니다. 그러나 퇴직 후엔 근로소득이 사라지고, 다른 소득을 찾아야 합니다. 즉 사업소득을 버는 사업가 또는 자본소득을 버는 자본가로 환골탈태하셔야 합니다. 돈 관리에선 소득보다 소비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퇴직 후엔 소득 계획보다 소비 설계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득은 퇴직 후엔 종속 변수로서 개인이 어찌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비는 독립 변수로서, 개인이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서 크게 변동되는 영역입니다. 소비도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투자 소비, 필요 소비, 욕망 소비입니다. 투자 소비는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 돈을 쓰는 것으로, 자본소득 계획과 연결해서 돈의 지출 계획을 수립하시면 됩니다. 필요 소비는 의식주에 관련된 소비로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마지막 ‘욕망 소비’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퇴직자에게 고정수입이 있던 시기를 기준으로 짜인 ‘욕망 소비’는 과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회적 품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현실적인 잣대로 잘라낼 건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건강입니다. 건강은 몸과 마음의 건강입니다. 몸의 건강은 주로 생활의 규칙성에 달려있으니 하루의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퇴직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마음의 건강은 첫째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과거 속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의도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꾸 과거 속에 있다 보면, 현재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생깁니다. 고위직에 있었을수록 빨리 과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셋째, 사람, 대인관계입니다. 대인관계는 앞으론 ‘넓게’가 아니라 ‘깊게’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되도록 술자리나 소모성 만남은 줄이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과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늘여야 합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집니다. 저는 요리를 배워 가족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식사하면서 가족과 대화를 가지면서 가족과의 친밀도가 높아졌습니다. 넷째, 퇴직 후엔 혼자 지내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등 예술적 활동을 권장합니다. 다섯째는 즐거움입니다. 그동안 퇴직자는 직장에서 거의 일 중독 수준으로 오직 직장에서만 즐거움을 찾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대개 퇴직 후엔 피로감, 세상에 대한 냉소, 매사에 무기력에 빠져듭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과 서운함이 자리잡고 있지요. 섭섭함과 서운함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유발하면서, 자신이 그렇게까지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자괴감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이때 사회적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커지고, 이 사회에서 자신이 무용지물의 존재라는 허탈감에 짓눌려 지내게 됩니다. 점차 세상과 동떨어진 집과 방에 은둔하는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죽음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했습니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를 주었고, 점차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지요. 글쓰기는 의외로 존재감을 키워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또한, 삶의 지식을 나누어주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저는 강연 등으로 지식을 나누는 일이 너무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강연하는 즐거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제가 퇴직 후엔 경험했던 생활수칙 다섯 가지를 두서없이 적었습니다.돈, 건강, 사람, 시간, 즐거움이라는 다섯 항목으로, 퇴직 이후 삶을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도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불쾌하고 우울하고 때로는 섭섭하기도 했던 퇴직이라는 절망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니, 퇴직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근로자로서 인생 1막은 끝내고,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인생2막을 시작했습니다. 인생 2막엔, ‘명함이라는 허상’이 아니라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제가 가득 담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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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급만 믿고 살면 나락… “직장인도 사업-자본가로 거듭날 준비를”[서영아의 100세 카페]

    대기업 임원이던 정선용 씨(54)에게 인생 2막은 느닷없이 닥쳐왔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요일,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을 통고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다시피 한 회사였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임원 퇴직 통보는 금요일에 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 짐을 빼도록, 일종의 배려죠. 주말에 짐을 챙겨 나오는데 종이박스 3개 분량이 전부더군요. 25년 세월이 이게 다구나.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 주가 추석이었다. 부인에게 ‘올해는 본가도 처가도 가지 말자. 회사 그만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나훈아는 문화자본가였다” 그를 나락에서 구해 준 건 추석 전날 TV에서 방영된 나훈아쇼였다. “근 3시간 콘서트를 쥐락펴락하는 나훈아를 보며 생각했죠. 출연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올까. 아하…. 그에겐 자본소득이 있구나.” 나훈아의 저작권 수입이 연간 6억 원대로 출연료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로소득이 끊어지게 된 자신이 왜 힘들고 불안한지 실마리가 잡혔다. 경제구조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한 편씩 경제와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이렇게 쓰던 글을 150만 회원의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연재하자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나훈아를 자본소득, 남진을 근로소득에 비유해 그 차이를 밝힌 ‘소득편’은 댓글이 600개가 넘었다. 직접 만든 곡이 많아 저작권 수입이 큰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인 셈이니 노래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반면 남진은 저작권 수입이 없으니 공연과 CF 촬영 등 근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소득의 세 가지 유형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삶에 빗대 설명했다. 이주노는 춤이라는 육체노동에 의존해 근로소득을 얻고 양현석은 연예기획사를 차려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서태지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니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는 식이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20편쯤 썼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편쯤을 모아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RHK코리아)라는 책으로 묶었죠. 3월에 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6만 권 이상 팔렸습니다.” 인세로 9000여만 원, 책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수입도 따라왔다. 1년 만에 자신의 콘텐츠로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확보한 것. 인생 1막을 닫고 2막을 연 순간, 월급 받는 근로자였던 그는 자본가, 그것도 문화자본을 밑천 삼아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살지 마라’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직장인들은 퇴직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경험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시작되죠. 모든 인연을 끊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그런 원망을 걷어낸 건 글을 쓴 덕분입니다. 제 상황을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잘못이 아니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게임이었다. 왜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책을 낸 뒤 큰아들(24세)과의 대화가 늘었다. 며칠 전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이 근로소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사업소득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지를 물어왔다. 그는 “회사는 돈 받으면서 다니는 학교”라며 “시궁창이건 어디건 일단 발을 담가 보라”고 권했다. 그의 책 띠지에는 ‘직원으로 시작하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쓰여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저는 월급의 달콤함에 젖어 계속 일만 했지 자본소득을 확보할 생각을 못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근로소득으로 시작하되, 늦지 않게 자본가,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가와 기업은 여러분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살기만 원하지요.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돈과 경제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명함, 인맥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모든 건 퇴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 “월급이 아닌 고정 소득을 만들고 회사 명함이 아닌 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인맥이 아닌 나만의 좁고 깊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죠.”○동료 퇴직 임원 70여 명, 40%는 갈 길 못 찾아 회사는 퇴직 임원들을 위해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공동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임원 출신들의 퇴직 이후 새 삶이란 녹록지 않다고 그는 전한다. 대부분 50대인 퇴직자가 70여 명인데 자리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30% 정도는 창업 등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다른 30%는 회사와 연결된 일을 합니다. 나머지 40%는 뚜렷한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돈이 없어 불안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죠. 100세 시대에 앞으로도 40여 년이 남았는데 할 일이 없다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죠.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나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명색이 몇 조 단위 장사하던 사람들인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동네 풀빵가게보다 못하다는 말을 저희끼리 해요. 회사 일은 분야가 나뉘어 있어 분절된 지식만을 갖게 되는데 현실에서는 풀빵가게 하나 하려 해도 전체를 다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축구선수가 야구 하면 몸살 난다고 하잖아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저는 그 근육 쓰는 법을 배우는 게 돈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의 규칙은 경제와 돈이 기본 뼈대이고, 이걸 배워놓으면 어디서나 쓰인다고.” 그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 등을 거쳤다.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산 쇠고기 최초 판매나 숱한 화제를 모은 ‘통큰치킨’의 현장 판매, 가정간편식 ‘요리하다’ 브랜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내 사회적 가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건 모두 회사 것이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자기 존재가치를 찾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끝까지 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경제, 즉 돈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자산 상황을 점검해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내가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순자산이 50억 원은 되더라고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책 쓰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온실 밖으로 내쳐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내년에는 책을 3권 더 내기로 했다. 부인과 함께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돈공부 책도 쓸 생각이다. 12월부터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여기서 다룬 콘텐츠를 엮어 책으로 만들 계획이기도 하다. “무명 연극배우들이 거친 마룻바닥에서 자고 포스터 붙여 가며 막막한 가운데 열심히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퇴직 이후 반드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시간은 글을 씁니다.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자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이제는 작가로서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야, 정선용.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이죠.”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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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과 유대 맺는 ‘관계인구’ 창출… ‘고향납세’로 재정파탄 예방[서영아의 100세 카페]

    ‘2040년이면 일본 지방자치단체 절반이 사라진다’는 2014년 마스다 보고서 이후, 일본에서는 인구감소와 관련한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2017년 출간된 ‘미래연표’(가와이 마사시·河合雅司 저)는 책표지에 적힌 내용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현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일본에서 벌어질 일을 연도별로 특정해 예측했는데, 이런 식이다. ‘2020년, 일본 여성의 절반이 50세를 넘는다/2024년, 전 국민의 3분의 1이 65세 이상이 된다/2027년, 수혈할 혈액이 부족해진다/2033년, 세 집 중 한 집이 빈 집이 된다/2039년, 화장시설이 부족해진다/2040년, 지방자치단체 절반이 소멸한다/2042년, 고령자 인구가 정점을 찍는다….’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인구는 불어나고 경제는 성장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당연했던 전제가 흔들리면서 펼쳐질 ‘디스토피아’ 앞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무기력해진다. 문제는 아무리 ‘강 건너 불’처럼 여기고 싶어도, 인구구조가 가져다줄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일본 지방소멸의 상징 홋카이도 유바리시 이런 때 일본 ‘지방소멸’의 상징이 돼 버린 유바리(夕張)시 사례를 들여다보면 도움이 된다. 홋카이도 중부에 위치한 유바리시는 2006년 파산선언 이후 지방소멸 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바리시는 한때 일본 굴지의 탄광도시였고 이후 관광도시로 변모를 도모했지만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남아 있다. 넓은 도시(763km²) 곳곳엔 녹슨 대형 놀이시설, 버려진 상가와 주택, 문 닫은 학교들이 널브러져 있다. 관광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적자가 누적되자 일본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파산을 신청했고, 재정재생계획이 실시되면서 2027년까지 부채 353억 엔(약 3675억 원)을 갚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지자체 파산은 주민 삶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줬다. 행정 서비스는 줄었는데 세금은 급등했다. 학교, 병원, 시립도서관, 미술관, 공중화장실 등 공공시설이 폐쇄됐고 철도 노선 등 공공 인프라가 축소됐다. 주민세 고정자산세 자동차세가 무섭게 올랐고 상하수도 요금은 전국에서 가장 비싸졌다. 공무원은 4분의 1로 줄었고 그들의 임금도 40% 삭감됐다. 생활이 불편해지자 많은 시민이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산 직전 1만4000명이던 인구는 7120명(10월 31일 현재)으로 쪼그라들었다. 한창 때인 1960년대 11만여 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남은 주민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말 그대로 재정파탄이 인구감소를, 인구감소가 다시 재정파탄을 부르는 악순환이다. 현재 유바리시 홈페이지에는 부채 상황을 알리는 ‘부채시계’ 코너가 있다. 2027년 3월까지 남은 부채와 지금까지 상환한 액수가 시시각각 표시된다. 11월 말 현재 부채는 130억6000만 엔, 갚은 액수는 222억7000만 엔 정도 된다.○지역과 유대하는 제3의 인구 만들기 인구감소가 진행되는 지역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일본 정부가 2015년 시작한 지방창생전략에서는 관광 진흥에 의한 ‘교류인구’ 확대로 경기를 활성화하고, 생활환경 정비로 지역에 정착하는 이주자들을 획득한다는 개념이 중심이 됐다. 일본 언론에는 U턴(지방→대도시→지방), I턴(도시 토박이의 농촌 이주), J턴(지방→대도시→중소 지방도시에 취직)에 이어 ‘손주턴’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젊은 인구가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움직임이 적극 소개됐다. 손주턴은 도시에서 태어난 손주가 조부모가 사는 고향으로 귀향하는 경우를 말한다. 지역마다 인구유치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펼쳐졌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자기 지역으로 인구를 더 유치한다면 그만큼 다른 지역 인구는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아닌가. 지역끼리의 인구 빼앗기 전쟁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 주목받는 것이 ‘관계인구’라는 개념이다. 타지에서 이주해온 ‘정착인구’도 아니고 관광 등 ‘교류인구’도 아닌, 단기 체류나 자원봉사 활동, 정기적인 방문 등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특정 지역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인구를 말한다. 이들의 힘을 빌려 지속가능한 지역 만들기의 외연을 넓히고 고향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제2기 지방창생전략(2020∼2024년)의 하나로 ‘관계인구의 창조와 확대를 추진한다’는 새 인구정책을 2019년 도입했고 이후 지자체마다 관계인구 창출 사업에 나서고 있다. 2008년 도입된 ‘후루사토(고향)납세’도 관계인구 확대에 도움을 준다. 고향납세는 납세자가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지자체(꼭 고향이 아니어도 된다)에 기부하면 2000엔을 뺀 나머지 액수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지역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보내준다. 2008년 81억 엔이었던 고향납세액은 2019년에는 4875억 엔으로, 60배나 증가했다. 고향납세는 재난이나 소멸위기 지역들에 큰 힘이 된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에 2개월 만에 기부금 400억 엔이 몰려 복구 작업에 도움을 줬다. 유바리시도 고향납세로 재원을 마련해 유바리고교 매력화 프로젝트라는 교육 프로그램과 노인복지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있다. 유바리시는 고향납세를 해준 사람들에게 특산품인 유바리 멜론을 답례품으로 보내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고향납세자와 전직 근무자, 유바리 연구자 등을 ‘유바리 라이커스’로 등록해 지역유대형 제3의 인구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관계인구는 때가 되면 귀향해올 수 있는 이주 예비군이기도 하다. 관계인구를 중시하는 움직임은 도시민 입장에서도 매력이 있다. 추억이 있고 언제라도 가볼 수 있으며 언젠가 돌아갈 곳이 되기도 하는 ‘제2의 고향’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나 친지가 있는 고향은 물론이고, 한때의 근무지, 한 달 살기를 했던 고장, 주말농장 등 다양한 형태로 응원할 지역을 만들 수 있다.○ 텃세와 규제 여전한 한국의 지역사회 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일본 지역사회의 사투를 보다가 한국사회로 눈을 돌리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달 20일자로 지방소멸上 기사가 나간 뒤 독자 몇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일껏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겼거나 욺기려 했는데 지역의 텃세나 규제에 묶여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자기 고장에 살기 위해 오는 외지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아직 지역사회가 실감을 못 하는 듯하다. 예컨대 지방에서 민박업을 하려던 독자는 약 2년 전 개정된 농어촌민박업법에 부닥쳤다. 외지인이 지방으로 옮겨 민박업을 하려면 주택 구입 시에는 6개월, 임대일 경우 3년간 현지에서 살아야 사업자등록이 나오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것. 그는 이런 법은 지방에 젊은이 유입을 차단해 농어촌 및 지방도시 소멸을 가속화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0월 행정안전부가 전국 89곳을 인구감소 지역으로 선정하고 각 지자체에 인구감소를 막을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 보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자체들 쪽에서는 한국의 지자체 실정상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해,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의 빈집을 도시민들의 거점으로 활용케 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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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는 폭발, 지방은 소멸…당신의 고향이 사라진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18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 228곳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애써 ‘인구감소지역’이라 완화해 표현했지만 신문방송들은 ‘지방소멸’에 방점을 찍어 보도했다. 자기 고장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지역 미디어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 소식을 전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이 줄어 학교가 문을 닫고 노인들만이 남아 적막강산이 된 지방의 모습은 ‘지속가능성’이란 면에서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2014년 일본열도 강타한 ‘지방소멸론’‘지방소멸’이란 말은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이 2014년 5월 일명 ‘마스다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고서는 ‘이대로라면 2040년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1727곳 중 절반인 896곳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방의 쇠락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소멸’이란 단어가 주는 섬뜩함이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마스다 보고서는 지방소멸 가능성을 추정하는 잣대로 가임연령인 20~39세 여성인구에 주목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장래인구추계에서 2010년~2040년의 30년간 이 연령대 여성인구가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지자체를 소멸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의 도쿄 집중을 막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 2808만 명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로 전환했다. 인구문제로 인한 쇠퇴와 소멸 공포가 본격 공론화됐다.○지방창생을 정책기조로 삼은 아베 정권 이같은 흐름에 올라탄 아베 신조 당시 정권은 같은 해 ‘지방창생(創生)’을 최우선과제로 내걸고 대대적인 지역활성화에 나섰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을-사람-일자리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에게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수립을 독려했다. 지방창생을 담당하는 부처를 신설하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에게 장관을 맡겼다.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마을 사람 일자리’를 앞세운 지방창생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아베 정부는 이듬해부터는 ‘1억 총활약사회’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 인구는 2060년 8600만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1억 명 선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희망출산율’로 1.8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워크 라이프 밸런스 보장, 임금인상, 보육서비스 확충 등을 정부가 나서 주창했다. 아베 총리가 나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니 ‘더이상 일본에 맹렬사원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2015년 출산율은 1.45로 반짝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산율은 1.37이다. ○ ‘미래는 지방으로부터 온다’지방창생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내 고향, 내 고장을 지키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몇군데 직접 다녀온 지방을 중심으로 소개해보자. 도쿠시마(德島)현 가미카쓰(上勝)정은 인구 53%가 고령자인 작은 산간마을.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사회공동체 유지가 곤란해진 마을의 전형이라 할 곳이다.하지만 직접 가본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정보화기기를 활용한 ‘잎사귀 비즈니스’의 성공으로 고령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었다. 억대수입을 올리는 농가도 있었다.잎사귀 비즈니스란 일본 요리를 장식하는 제철 잎사귀, 꽃 등 ‘장식용 야채’를 고령자들이 재배부터 출하, 판매까지 맡아서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에 쓰이는 잎사귀 종류는 320종 이상으로 사시사철 다양한 잎사귀를 출하한다. 마을에서 약 150가구, 300여 명이 이 일에 종사한다. 일손의 중심은 70대 고령자로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일하느라 바빠진 덕분에 공공 요양시설은 이용자가 없어 폐쇄했다고 했다. 지난 3월 1일 현재 이 마을의 인구구성을 보면 1511명 중 797명(52.7%)이 고령자, 이중 에서도 406명이 80대 이상이다. 과거에는 타지로 빠져나가는 전출자가 늘면서 인구가 줄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사망자가 많아 인구가 줄고 있다.가미카쓰 정의 제 2기(2020~2024) 지역창생계획을 살펴보면 외지인 유치가 어렵다면 탐방, 연구, 관광 등으로 마을을 찾는 인구라도 늘리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그득했다. 젊은 외지인이 들어오면 온 마을이 나서 생활을 보살펴주고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농사를 가르친다. 출산과 양육 지원을 위해 아이들의 보육지원 학원지원은 물론이고 단기 해외유학지원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몇 명 안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해 세세하고 꼼꼼하게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마치 두부 한모로 12가지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을의 인구전략은 2040년 인구 1000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창조적’ 인구감소 추구인접한 산간마을 가미야마(神山)정은 인구 5400여 명 규모에 고령화율 50%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비영리법인(NPO) ‘그린밸리’가 주도한 이주자 유치 사업이 성공하면서 낡은 민가가 속속 사무실이나 점포로 변신 중이었다. ‘공공사업의 실수’라는 빠른 와이파이 속도가 위성사무실로 도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데 힘을 발휘한다. NPO는 마을의 장래에 필요한 각종 인재들을 핀포인트식으로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해왔다.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을 활용하는데 예컨대 마을에 빵집이 필요하다면 “이 빈집은 빵집을 낼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최근 연평균 24명 정도의 신규입주자가 유입되고 있다. 가미야마 정이 추구하는 것은 2060년을 내다보는 ‘창조적 인구감소’다. 인구를 늘린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 대신 인구구성의 질을 좋게 해서 마을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2060년 마을 인구는 1100명으로 줄어들지만 지금처럼 연 24명 선의 신규입주가 지속된다면 1900명대가 된다. 이들의 목표는 2060년까지 마을인구 3000명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년 44명 정도로 신규입주자를 늘려야 한다.○외지인의 눈으로 해법찾기일본 서남단 규슈와 쓰시마 사이에 자리한 인구 2만 7000명의 이키(壹岐)섬에서는 30대 여성 후지모토 아야코 씨가 해녀수업을 받는다. 섬 연안에는 성게 전복 소라 등이 풍부하지만 고령의 해녀들을 이을 후계자가 없자 이키시가 2014년부터 전국에 해녀 후계자 모집에 나섰다. 대도시 요코하마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색다른 삶을 동경해’ 손을 들었다. 당장은 어부지망생에게 나오는 보조금 월 13만 엔이 주수입이지만 매일 60대 선배들과 나서는 물질이 즐겁고 주거도 생활도 이웃들이 돌봐줘 걱정이 없다고.다른 한편으로는 외지인의 눈으로 지역살리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폐쇄적인 섬에서는 발전을 위한 자극도 없고 자신들의 장점도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키시는 섬 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전국 단위로 공모했다. 시장 월급보다 많은 ‘월 100만 엔’을 조건으로 내걸자 MBA 보유자, 상징기업 임원, 경영자, 공인회계사 등 391명이 지원했다. 경쟁을 뚫고 낙점된 사람은 도쿄에서 벤처창업가로 화제를 모은 33세 사업가 모리 슌스케 씨였다. 섬으로 이사온 그는 현지 기업인들의 상담에 응하며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판로와 마케팅 전략을 짜주고 있다.예컨대 그에게 지역업자가 들고온 동백기름의 경우. 품질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데 포장이나 가격은 수십년 간 그대로이고 판로도 섬 일대와 규슈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모리 센터장은 이 경우는 패키지 디자인을 개선하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홍보방법을 연구하겠다고 했다. 타인의 평가는 자신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는 지름길이다.일본의 지방창생을 논할 때 흔히 “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가 쥐고 있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지역의 미래를 그려내는 에너지원이 되고, 외지인은 지역민과 다른 발상법을 제공해 주며, 무모한 자는 용감하게 일을 실천에 옮긴다. 이키섬에서 바로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인구가 줄고 쇠락해가는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세다. ○한국,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폭발인구구조는 많은 것을 바꾼다. 한국의 인구구성에서 변곡점이라 할 일들이 2020년에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처음 나타났다. 합계특수출산율은 충격적인 0.84를 기록했다. 지방소멸의 원인인 저출산과 인구의 대도시 유출이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산율을 지역별로 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광역자치단체는 세종시(1.28), 낮은 곳은 서울(0.64)이다. 시군구별 상위 10개소는 모두 군 단위였다. 전남 영광군의 2.46이 1위였고 10개중 8곳을 전남북이 차지했다.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 동구(0.45)였고 하위 10개소는 서울(6곳), 대구(2곳), 부산(2곳) 등 모두 도시권이다. 인구, 특히 청년인구는 대도시로 쏠린다. 그런데 대도시에서는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탓에 아이를 가질 엄두를 못 낸다. 현실에서는 말그대로 수도권 인구는 폭발하고 지방은 소멸하고 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걸까.※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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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유학 지원” “빈집을 빵집으로 대여”… 젊은이-외지인 유치 손짓[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18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 228곳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애써 ‘인구감소지역’이라 완화해 표현했지만 신문 방송들은 ‘지방소멸’에 방점을 찍어 보도했다. ○2014년 일본 강타한 ‘지방소멸론’ ‘지방소멸’이란 말은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이 2014년 5월 일명 ‘마스다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보고서는 ‘이대로라면 2040년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1727곳 중 절반인 896곳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마스다보고서는 지방소멸 가능성을 추정하는 잣대로 가임연령인 20∼39세 여성 인구에 주목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장래인구추계에서 2010∼2040년의 30년간 이 연령대 여성 인구가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지자체를 소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의 도쿄 집중을 막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로 전환했다. ○지방창생을 정책기조로 삼은 아베 정권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탄 아베 신조 당시 정권은 같은 해 ‘지방 창생(創生)’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대대적인 지역활성화에 나섰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을-사람-일자리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에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 수립을 독려했다.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마을 사람 일자리’를 앞세운 지방창생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아베 정부는 이듬해부터는 ‘1억 총활약사회’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 인구는 2060년 8600만 명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1억 명 선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희망출산율’로 1.8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워크 라이프 밸런스 보장, 임금 인상, 보육서비스 확충 등을 정부가 나서 주창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수년간 1.3∼1.4를 오르내리던 출산율은 2015년 1.45로 반짝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산율은 1.37이다. ○‘미래는 지방으로부터 온다’ 내 고향, 내 고장을 지키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시작돼 있었다. 몇 군데 직접 다녀온 지방의 사례들을 보자. 도쿠시마(德島)현 가미카쓰(上勝)정은 인구 1511명 중 53%가 고령자인 산간마을(2021년 3월 1일 기준).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사회공동체 유지가 곤란해진 마을이다. 하지만 직접 가본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정보화 기기를 활용한 ‘잎사귀 비즈니스’의 성공으로 고령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었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가도 있었다. 잎사귀 비즈니스란 일본 요리를 장식하는 제철 잎사귀, 꽃 등 ‘장식용 야채’를 고령자들이 재배부터 출하, 판매까지 맡아서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에 쓰이는 잎사귀 종류는 320종 이상이다. 300여 명이 종사하는데 일손의 중심은 70대 이상이고,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가미카쓰정의 제2기(2020∼2024년) 지역창생계획을 살펴보면 외지인 유치가 어렵다면 탐방, 연구, 관광 등으로 마을을 찾는 인구라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그득했다. 출산 양육 지원을 위해 자녀들의 보육지원 학습지원은 물론이고 단기 해외유학 지원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해 세세하고 꼼꼼하게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마치 두부 한 모로 12가지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마을의 인구전략은 2040년 인구 1000명을 유지하는 것이다.○‘창조적’ 인구감소 추구 인접한 산간마을 가미야마(神山)정은 인구 5400여 명 규모에 고령화율이 50%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비영리법인(NPO) ‘그린밸리’가 주도한 이주자 유치 사업이 성공하면서 낡은 민가가 속속 사무실이나 점포로 변신 중이었다. NPO는 마을의 장래에 필요한 인재들을 핀포인트식으로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해왔다.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마을에 빵집이 필요하다면 “이 빈집은 빵집을 낼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최근 연평균 24명 정도의 신규 입주자가 유입되고 있다. 가미야마정이 추구하는 것은 2060년을 내다보는 ‘창조적 인구감소’다. 인구를 늘린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 그 대신 인구 구성의 질을 좋게 해서 마을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2060년 마을 인구는 1100명으로 줄어들지만 지금처럼 연 24명 선의 신규 입주가 지속된다면 1900명대가 된다. 이들의 목표는 2060년까지 마을 인구 3000명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년 44명 정도로 신규 입주자를 늘려야 한다.○“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 일본 서남단 규슈와 쓰시마 사이에 자리한 인구 2만7000명의 이키(壹岐)섬에서는 30대 여성 후지모토 아야코 씨가 해녀 수업을 받고 있다. 연안에는 성게 전복 소라 등이 풍부하지만 해녀들도 고령화돼 후계자가 없자 이키시가 나서 전국에 해녀 후계자 모집공고를 냈다. 요코하마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다른 삶을 동경해’ 손을 들었다. 당장은 어부 지망생에게 나오는 보조금 월 13만 엔이 주 수입이지만 매일 60대 선배들과 나서는 물질이 즐겁고 주거도 생활도 이웃들이 돌봐줘 걱정이 없다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지인의 눈으로 지역 살리기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폐쇄적인 섬에서는 발전을 위한 자극도 없고 자신들의 장점도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키시는 섬 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전국 단위로 공모했다. 시장 월급보다 많은 ‘월 100만 엔’을 조건으로 내걸자 MBA 보유자, 상장기업 임원, 경영자, 공인회계사 등 391명이 지원했다. 경쟁을 뚫고 낙점된 사람은 도쿄에서 벤처창업가로 화제를 모은 33세 사업가. 섬으로 이사 온 그는 현지 기업인들의 상담에 응하며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판로와 마케팅 전략을 짜주고 있다. 일본의 지방창생에 대해 흔히 “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가 쥐고 있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지역의 미래를 그려내는 에너지원이 되고, 외지인은 지역민과 다른 발상법을 제공해 주며, 무모한 자는 용감하게 일을 실천에 옮긴다. 이키섬에서 바로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한국,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폭발 2020년, 한국의 인구구조에서 변곡점이라 할 일들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합계특수출산율은 0.84를 기록했다. 지방소멸의 원인인 저출산과 인구의 대도시 유출이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산율을 지역별로 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광역자치단체는 세종시(1.28), 낮은 곳은 서울(0.64)이다. 시군구별 상위 10곳은 모두 군 단위였다. 전남 영광군의 2.46이 1위였고 10곳 중 8곳을 전남북이 차지했다.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 동구(0.45)였고 하위 10곳은 서울(6곳), 대구(2곳), 부산(2곳) 등 모두 도시권이다. 대도시권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인구는 갈수록 대도시로 쏠리는 현실이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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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홈리스는 ‘집’ 아닌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길 위의 의사’와 단짝들의 동행 [서영아의 100세 카페]

    ‘길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 내과전문의 최영아(51) 씨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들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홈리스는 인간관계 회복돼야 사회 복귀 가능 -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최씨는 요즘 평생 최고의 급여를 받고 있다. 다일천사병원이나 요셉의원에서는 월 100만 원이 고작이었고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에서의 월급도 선교단체에서 의사들끼리 후원금 모아 지급해주는 돈이니 많을 수가 없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매일 진료소에 놀러다니던 아들은 노숙인 아저씨들에게서 귀여움을 받았다. 8년 터울인 딸은 마더하우스에 데리고 다녀 ‘아는 언니, 아는 이모’가 무척 많다. 그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먹는 사람들을 본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 분들은 병이 많을 것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는 저 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가족까진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우선은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진다. “그런데 집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 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있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이런 가까운 친구 2명.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50) 사무국장은 대학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온 ‘영혼의 단짝’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왔다고 한다. 10년지기인 김지영(50)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노숙인이 어설픈 가정을 만들면서 그 자녀들까지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부 다문화 가정도 비슷하지요. 그런 10대 아이들이 밖을 떠도는 거죠.” ○함께 고민하고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본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로 쓰던 장소를 지난해 10월 배달음식 전문식당으로 만들었다.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전문 식당을 택했다고 한다. 화제는 담박에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로 쏠렸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된 소녀의 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처음에 경찰이 엄마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이들에게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 얘기, 친구의 친구 얘기도 줄줄이 따라나왔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되는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폭력 성폭력 근친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내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이 다 있는 거죠.”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내가 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하는 거죠.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제대로 된 어른과의 관계를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미래가 있잖아요.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무작정 아무 일이나 시킬 수 없고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정작 제 자식은 저랑 그렇게 얘기 안 해요. 며칠 전 대학생 아들이 제가 열심히 카톡하는 거 보더니 ’엄마 이제 중학생이랑 카톡도 해?‘라며 기가 막혀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너한테나 인기 없지. 밖에 나가면 인기 많아‘라고 쏘아줬죠(웃음).” 그는 얘기를 이어간다.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oo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식당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상처받은 사람의 회복을 위해 비즈니스라는 명분을 이용하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그래도 우린 사업으로 자력갱생 해야 해요. 직원들에게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열심히 하려는 일은 스마일박스에서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급속냉동해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11월 중에 온라인 스토어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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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은 인간관계 회복돼야 일상 복귀… 가출 청소년에겐 공감의 울타리 절실”[서영아의 100세 카페]

    《‘길 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내과전문의 최영아 씨(51)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 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 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갈 가족이 없어 거리로 나와―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 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 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그가 노숙인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 먹는 사람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병이 많을 것 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저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 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 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 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 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노숙인들은 우선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져요. 그런데 집 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 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 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 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그는 또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함께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 사무국장(50)은 대학 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 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 왔다고 한다. 10년 지기인 김지영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50)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화제는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부터 시작됐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 된 아이의 친구의 친구라 했다. 경찰이 엄마 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 친구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 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 폭력, 성폭력, 근친 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처치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어른과의 관계 제대로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그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 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 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 식당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 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 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 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몰두하는 것은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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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에서 셀프 부양의 시대로[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설계의 발목을 잡는 세가지 착각이 뭔지 아십니까. 첫째 자신에게 80세 이후 삶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 둘째 죽음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온다는 착각, 셋째 자녀가 내 노후를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가 요즘 많이 하고 다니는 얘기다. 좀더 설명을 들어보자. “우선 자신에게 80세 이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누구나 10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절약하고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 해요. 둘째로 죽음까지의 마지막 몇 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힘듭니다. 이때 돈과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게 되지요. 셋째 자녀는 당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세대처럼 자식에게 마구 쏟아부으면 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을 버려야 하지요.” 조금은 안이하게 노후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가차없는 ‘팩트 폭격’이 아닐 수 없다. 14일 찾은 그의 개인사무실은 수십년간 모아놓은 은퇴 관련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책상 아래에는 필요한 기사를 오려낸 뒤 버려진 신문더미가 수북하다.○자산운용사 대표에서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재취업’ 그는 말 그대로 한국의 은퇴 및 투자교육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의 대표를 2차례 역임한 뒤인 2002년, 갑작스레 ‘금융교육’ 분야로의 전업을 선언하고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종의 ‘재취업’이죠. 자산운용이 성공하려면 운용만 잘 해서는 소용이 없겠더라구요. 투자자들이 단기시항에 이끌려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장기분산투자를 하라고 설득하려면 교육이 필요했어요.” 금융투자는 ‘재테크’로만 인식되던 당시 상황에서 그가 생애설계를 위한 자산운용과 장기투자, 적립식 투자, 분산투자 등을 설파하면서 자산운용업계 전반에 투자자 교육 열풍이 일어났다. 마침 저금리와 고령화시대가 오고 있었다. 전국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그때 시작한 이 일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그는 은퇴와 생애설계 관련한 현실을 강연과 저서, 방송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젊어서부터 준비하라’는 그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 구실을 한다. “제가 처음 ‘오래 사는 위험’이라는 말을 본 것은 한 자산운용사의 CEO를 맡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그 회사 고문으로 있던 티모시 메카시라는 미국인이 ‘일본인이여 돈에 눈을 떠라’는 제목의 책을 줬는데 목차에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나서 일찍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드는 것처럼 너무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일리가 있었어요. 80세까지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렸는데 100세까지 산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겠지요.” 그가 일찌감치 장수 고령화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었던 비결은 일본의 고령사회를 미리 볼 수 있었던 데 있다. 그는 45년 전 일본에서 연수할 때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젊은이들은 안 할 것같은 허드렛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많이 봤다고 한다. 대기업 중역이나 관료로 한자리씩 했던 노인들이 체면을 버리고 자기 할 일 하는 모습을 보며 높은 자리, 많은 수입보다 오래 일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이게 우리의 미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대책”그는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대책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몸소 실천해보이고 있다. 74세인 요즘도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사무실과 여의도 자택 근처의 개인법인 사무실을 오가며 강연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다만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를 상대로 캐묻다 보니 이런 일들이 거의 재능기부 차원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았다.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누군가가 제 얘기를 들으려 하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덤입니다.” 그가 꼽는 노후를 괴롭히는 세가지 난적(難敵)은 돈 건강 외로움인데, 여기서 벗어나는 특효약이 바로 일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노후에는 멋진 일, 폼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허름한 일이라도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권한다. 최근에 낸 저서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 북스)는 젊은 세대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책 표지에 적혀있듯 노후 준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아주 장밋빛은 아니지만 준비만 잘 한다면 마냥 잿빛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그가 권하는 노후설계와 자산운용에 대한 논의는 이미 고전이 돼 버렸을 정도로 이 분야 사람들에게는 침투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직전까지 연간 최대 400회 강연을 뛰었다.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인 뒤, 유튜브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유튜브 경제방송인 삼프로TV에 지난해 강 대표가 출연한 ‘노후파산’ 관련 동영상은 조회수 247만을 기록했다. 여기서 그는 위에 소개한 ‘노후를 망치는 3가지 착각’에 대해 얘기했다. 이밖에도 그는 ‘젊은 세대는 재테크보다는 당장 자신의 직업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남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저금리시대에 자신이 받는 노동소득을 월 100만원 올리는 것은 자산 10억을 갖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 은퇴를 위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중 연금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라고 강조한다. “직장인은 특히 퇴직연금 관리에 따라 노후가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백만장자 퇴직자’가 늘고 있어요. 미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인 ‘401K’와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 덕분인데, 퇴직연금을 적립식으로 20~30년 투자하면 복리로 불어나 퇴직할 때쯤 100만 달러, 우리돈 약 10억 원 정도는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 ○라이프워크 만들어 ‘창직’ 그로서는 금융교육에 매진해온 지난 20년간은 ‘창직(創職· 기존에 없던 직업 직종을 만들어내는 것)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우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증권사와 투신사를 오가며 일해온 그는 55세이던 2002년 굿모닝투자신탁운용(현 PCA투자신탁운용)에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고 소장으로 취임했다. 사회공헌이란 단어가 생소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2004년부터는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겨 부회장 겸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이 또한 그가 사측에 제안해 이뤄진 일이었다. 그로부터 9년간, 그의 소속은 퇴직연금연구소, 은퇴연구소 등으로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꾸준했다. 2012년 12월 말 65세로 미래에셋에서 은퇴했다. ’미래와 금융연구포럼‘ 대표로 취임한 그에게 2014년 ’사회공헌‘ 사업을 찾던 자산운용회사가 연락을 해왔다. 현재까지 7년째 일하고 있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직이 주어졌다. 근 20년을 금융교육에 종사했지만 당장 돈버는 일과는 늘 거리가 있었다. “당장의 매출을 요구하지 않는 좋은 경영진과 함께 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죠.” 대신 그가 속한 조직의 명예와 영향력이 커졌고 대중이 느끼는 친숙도가 커졌을 것이다.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여라이런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자녀리스크‘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노후를 생각지 않고 자녀에게 올인 했다가 비참한 노후를 맞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교육비, 결혼비용에 사업비용까지 대주고는 쪽방에서 노후를 맞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이 취업도 못하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걸 그는 ’자녀 리스크‘라 부른다. “생활비는 자녀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고령자가 10년 전만 해도 40%였지만 최근엔 23%로 줄었습니다. 이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겁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노후 수입 대부분이 연금에서 나오고 자녀에게서 오는 수입은 0.4~1% 선에 그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무원 교사 군인을 제외한다면 공적연금 만으로 노후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월 100만 원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가 6.6%에 불과한 현실이다. 국민연금 외에도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를 마련해 노후 고정수입을 최대한 확보해놓아야 하는 이유다. ○자녀에게 자립과 결핍을 가르쳐라강대표가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저성장과 결핍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경제도 성장한다. 한국의 인구구조를 보면 1950년대부터 28년간 매년 100만명 안팎의 인구가 태어났다. 이들이 성장해 현역으로 일하던 시기는 인구보너스를 누리는 행복한 시대였다. 하지만 고령화와 0대로 내려간 초저출산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인구오너스의 시대다.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매년 100만 명씩 늘어나는 노인세대를 먹여 살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죠. 여기에 저성장 시대를 맞은 세계적 추세도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는 점입니다.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살아남는 길은 절약. 우선 본인들부터 낭비요인을 줄이고 자녀들에게도 결핍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100세는 확실히 넘게 삽니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데 무지막지한 장수가 보장된 세대예요. 부모가 100세에 타계하면 자녀들은 70~80세. 그때 재산을 물려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을 달리 살아갈 지혜를 물려주는 게 맞죠.” 같은 이유로 자녀에게 의지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노후를 뒷전에 두고 자녀에게 ’올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80~90세가 되어 자신도 살기 힘든 환갑넘은 자식에게 ’너 해외유학 보내주고 결혼 때 집 해줬잖아. 그거 갚아라‘고 할 겁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수명은 늘어나는데 정년은 빨라지는 게 요즘 세태.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은 51.7세다. 대개의 경우 한번 직장을 그만둔 뒤 다음번 직장에서는 전 직장 급여의 절반 정도 받으면 성공적이라고 한다. ○노후 준비, 한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준비하라그의 요즘 가장 큰 바람은 이런 자신의 얘기를 젊은 사람들이, 그것도 부부가 함께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은퇴준비 노후준비라는 게 사실은 생애 주기를 기획하는 거예요. 평생의 꿈과 성취목표, 생명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사이클을 미리 생각해보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리 시작할수록 선택지가 많고 덜 힘들죠. 인생에는 복리의 마법이 작동하니까요.” -최근 출연하신 유튜브 방송에는 30, 40대 시청자들이 “지금 이걸 보게 돼 다행”이라는 식의 코멘트들이 많던데요. “가장 보람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최소한 40대에는 자신의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보고 50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들도 각자의 단계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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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직으로 평생현역 실천… “돈 없이 오래 살 위험 대비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 설계의 발목을 잡는 세 가지 착각이 뭔지 아세요. 첫째 자신에게 80세 이후 삶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 둘째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온다는 착각, 셋째 자녀가 내 노후를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가 요즘 많이 하고 다니는 얘기다.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우선 자신에게 80세 이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누구나 100세까지 산다고 각오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절약하고,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 해요. 둘째로 죽음까지의 마지막 몇 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힘듭니다. 이때 돈 문제와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게 되지요. 셋째, 자녀는 당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마구 투자하면 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을 버려야 하지요.” 노후를 조금은 안이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팩트 폭격’이 아닐 수 없다. 14일 찾은 그의 개인 사무실은 수십 년간 모아놓은 은퇴 관련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금융교육으로 투자자 교육 열풍 일으켜 강창희 대표는 말 그대로 한국의 은퇴 및 투자 교육의 개척자다. 자산운용사의 대표를 2차례 역임한 뒤인 2002년, 갑작스레 ‘금융 교육’ 분야로 전업을 선언하고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종의 ‘재취업’이죠.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자산운용 전에 투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절감했어요. 투자자들에게 장기 분산 투자를 설득할 길이 없었거든요.” 금융투자는 ‘재테크’로만 인식되던 상황에서, 그가 생애 설계를 위한 자산 운용과 장기 투자, 적립식 투자, 분산 투자를 설파하면서 업계 전반에 투자자 교육 열풍이 일어났다. 마침 저금리와 고령화 시대가 오고 있었다.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젊어서부터 준비하라’는 그의 노후에 대한 충고는 이 분야 사람들에게는 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침투해 있다. “처음 ‘오래 사는 위험’이라는 말을 본 것은 한 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고문으로 있던 티머시 매카시라는 미국인이 ‘일본인이여 돈에 눈을 떠라’는 제목의 책을 제게 줬는데 목차에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고나 질병으로 일찍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드는 것처럼 너무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죠. 8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고 가진 돈을 다 써버렸는데 100세까지 산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겠죠.”○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 대책 그는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 대책’이란 자신의 지론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74세인 요즘도 트러스톤자산운용 사무실과 서울 여의도 개인법인 사무실을 오가며 강연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다만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를 상대로 캐묻다 보니 거의 재능기부 차원으로 이뤄지는 일들이 많았다.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누군가 제 얘기를 들으려 하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그가 꼽는 노후를 괴롭히는 세 가지 난적(難敵)은 돈 건강 외로움인데, 여기서 벗어나는 특효약이 바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노후에는 멋진 일, 폼 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허드렛일이라도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권한다. 최근에 낸 저서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북스)에는 젊은 세대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노후 준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장밋빛은 아니지만 준비만 잘한다면 마냥 잿빛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연간 최대 320회 강연을 뛰었다.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인 뒤에는 유튜브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유튜브 경제방송인 삼프로TV에 지난해 10월 강 대표가 출연한 ‘노후 파산’ 관련 동영상은 조회수 247만 회를 기록했다. 여기서 그는 위에 소개한 ‘노후를 망치는 3가지 착각’에 대해 얘기했다. 이 밖에도 그는 ‘젊은 세대는 재테크보다는 당장 자신의 직업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남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저금리 시대에 자신이 받는 노동소득을 월 100만 원 올리는 것은 자산 10억 원을 갖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 또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중 연금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라고 말한다. “직장인은 특히 퇴직연금 관리에 따라 노후가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백만장자 퇴직자’가 늘고 있어요.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제도인 401K와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 덕분인데, 20∼30년 퇴직연금을 적립식으로 부으면 복리로 불어나 퇴직할 때쯤 100만 달러, 우리 돈 10억 원 정도는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라이프워크 만들어 창직 그로서는 금융 교육에 매진해온 지난 20년간은 ‘창직(創職·기존에 없던 직업 직종을 만들어내는 것)’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우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증권사와 투신사를 오가며 일해 온 그는 55세이던 2002년 굿모닝투자신탁운용(현 PCA투자신탁운용)에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고 소장으로 취임했다. 사회공헌이란 단어가 생소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2004년부터는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겨 부회장 겸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이 또한 그가 사측에 제안해 이뤄진 일이었다. 미래에셋에서 9년간 일한 뒤 2012년 12월 말 65세로 은퇴했다. 2014년부터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금융교육은 눈앞의 성과나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당장의 매출을 요구하지 않는 좋은 경영자와 함께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죠.” 대신 그가 속한 조직의 명예와 영향력, 대중이 느끼는 친숙도가 커졌을 것이다. ○자녀에게 자립과 결핍을 가르쳐라 이런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자녀 리스크’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노후를 생각지 않고 자녀에게 올인했다가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교육비, 결혼 비용에 사업 비용까지 대주고는 쪽방에서 노후를 맞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이 취업도 못 하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걸 그는 ‘자녀 리스크’라 부른다. “자녀의 도움을 받는 고령자는 현재 통계로 23% 정도지만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겁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40%에 육박했지요. 선진국에서는 노후 수입 대부분은 연금에서 나오고 자녀에게서 오는 수입은 0.4∼1% 선에 그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무원 교사 군인을 제외한다면 공적연금만으로 노후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를 마련해 노후 고정수입을 최대한 확보해 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가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저성장과 결핍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매년 100만 명씩 늘어나는 노인세대를 먹여 살릴 수는 없죠. 여기에 저성장을 맞은 세계적 현상으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습니다.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노후 준비,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시작하라 그는 은퇴 준비, 노후 준비에 대해 “생애 주기를 기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생의 꿈과 성취 목표, 생명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사이클을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것이며, 일찍 시작할수록 선택지가 많고 덜 힘들다는 얘기였다. 그는 “최소한 40대에는 자신의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 보고 50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들도 각자의 단계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라고 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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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 17년차, 위례 인생학교 교장 백만기[서영아의 100세 카페]

    “장외투자, 모두 관심 많으시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창업하는 회사의 5년 뒤 살아남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는 거 아세요? 장래성을 따지지 않고 투자한다면 리스크가 무척 크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처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사람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요….”12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스토리박스. 쨍한 노란색을 기조로 한 콘테이너박스 건물군속 한 교실에 두툼한 책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50대인 학생 4명이 발제와 토론을 하면 이를 지켜보던 백만기(69) 교장이 가끔 끼어들어 진행을 돕고 전문적인 설명을 해준다. 교재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자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위례인생학교 ‘금융투자’ 수업현장이다.“수업은 참여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다시 선생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이죠.”실제로 이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 오정선 씨는 앞 시간 생활영어 수업에서는 강사였다. 오랜 해외생활 뒤 귀국해 도서관과 문화센터 등에서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많이 한단다. ○‘어른들을 위한’ 두번째 인생학교가 출범하다백 교장은 사실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평생교육기구인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이 운영하는 자율학교 개념을 도입해 ‘아름다운 인생학교’를 2013년 분당에 열었다. 지난해 8월 개교한 위례학교는 두 번째 인생학교가 된다.“분당 학교는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제 꿈이 인생학교를 100개 만드는 것인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어른들을 위한 학교’인 인생학교가 인생 2막을 맞은 이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월 1만 원 운영회비만 내면 3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가을학기에는 생활영어 금융투자 심리학 포토에세이 우쿨레레 등 10개 강좌가 개설됐고 문화답사 등 야외강좌도 있다. “내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은 내게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받은 것이 많아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를 옆 사람과도 나눠야겠다는 생각인 분들이 인생학교에 찾아오십니다.”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는 퇴직자, 젊은 시절 로망인 악기 배우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60대 등 각자의 사연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자세는 모두가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백 교장은 50대 초반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인생 1막에서 막연하게 꿈꾸던 많은 일에 도전했다.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분당FM방송 진행자로 일했다. 성당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콘서트를 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를 했고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가 인생학교인 듯하다.“은퇴 직후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굉장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자원했다가 단순 역할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무렵 영국 U3A를 알게 됐어요.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시니어들의 대학입니다. 정부 보조 없이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는데, 학교 운영위원과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가 개최한 ‘은퇴 후 8만시간’ 에세이 공모전에 영국 U3A처럼 어른들을 위한 학교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제로 응모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2013년 분당 수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개교했죠.”U3A는 인생주기를 크게 만 24세 이하, 25세~49세, 50세~74세, 75세 이상의 4시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학령기, 제2기는 사회활동기, 제3기는 은퇴 후, 제4기는 임종기인데, U3A는 보다 풍요로운 제 3기를 위한 대학인 셈이다. 가족 친지 모두가 ‘영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사회에 꼭 필요한 커뮤니티였다. 성남아트센터 때 인연을 맺은 봉사자들도 강사로 초빙할 수 있었다. 그 뒤 분당인생학교에서 교장 역할뿐 아니라 우쿨렐레 강사, 웰다잉 강사, 금융교육 강사 등으로도 맹활약했다. 분당학교는 2018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온 한 백화점내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에 인생학교 100개쯤 생긴다면…”그의 요즘 꿈은 한국 전역에 시민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인생학교를 100개쯤 세우는 것이다. 영국의 U3A는 전국에 1000개, 소속 회원만 40만 명이 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오로지 은퇴자들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가르치고 교류하는 지역 대학이 이렇게 많다는 얘기다.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급증하는 시니어들의 인생2막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이 크다. 말 나온 김에, 그는 한국 현실에서 인생학교 등 시민의 자율활동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공간문제를 들었다. 사회에 공간은 남아도는데 지역이기주의나 부처이기주의 탓에 활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일전에 판교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령아동이 줄어 남는 공간에서 인생학교 같은 수업을 진행하면 어떻겠느냐며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뒤 알아보니 정년을 얼마 앞둔 교장이 반대해 못했다고 합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면, 예산 없이도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데 안타깝습니다.”일본에서는 인구감소로 빈 교실을 활용해 보육원이나 지역 문화교실 등을 개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국에 지자체별로 산재한 경로당 공간을 세대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지도 생각해봄직 하다.○‘은퇴는 기획하는 것’-50세 은퇴를 목표로 한 이유는 뭔가요.“제가 197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했는데 40이 됐을 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다, 50에 은퇴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은퇴 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50세 은퇴를 목표로 하니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우선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 둘째 은퇴 후 할 일을 찾자.”-‘준비된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자평하신다면?“제가 좋아하는 19세기 폴란드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있는 일의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은 드라마가 되고 두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요. 먹고사는 일로는 은퇴 무렵 친구 3명과 주식투자클럽을 결성하여 16년째 매달 두 번씩 만나 주식 운용을 협의 중입니다. 재미있는 일로는 동네 이웃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왔고 글쓰기도 짬짬이 하고 있습니다(저서 2권을 냈다). 의미있는 일로는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봉사, 인생학교 설립을 들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런대로 살아왔으나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낍니다.”그는 슬기로운 은퇴생활의 비결은 ‘미리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은퇴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냐고 묻기에 고1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고3 때부터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유리하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은퇴 준비를 일찍 할수록 좋은 이유는 복리의 마술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인생 2막 17년차. 오랜 은퇴생활을 통해 그는 요즘 한국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결여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이다. “모두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할 뿐, 돈을 모으고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금융사에서 20년 이상 자금 운용을 담당했는데 학교를 운영하며 회원들을 보니 금융에 대해 너무 몰라요.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인 분들도 그렇더군요. 전 미연준위원장 앨런 그린스펀은 ‘문자 문맹은 생활이 불편할 따름이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은퇴자가 평생 모은 돈을 금융사 직원 권유로 사모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흔하죠. 그래서 인생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6개월 과정 교육을 6회 정도 진행했죠.”이런 그는 한국인의 금융이해도가 낮은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태인의 비결은 조기금융교육이예요. 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인척들이 금일봉을 선물합니다. 중산층의 경우 4만~5만 달러(4700~59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대신 아이는 친인척들 앞에서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발표해야 합니다. 미리 부모로부터 자금 운용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그 돈이 작은 회사 하나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만약 그 학생이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입사했다고 칩시다. 한국학생도 공부를 잘해 그 회사에 들어갔고요. 누가 자금 운용을 잘하겠습니까.”은퇴자들은 금융을 알면 금융회사의 공포마케팅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노후 필요한 자금으로 7억, 10억 운운하는데 듣지 마세요.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금흐름’입니다. 요즘 직장 은퇴자 대부분은 국민연금 월 100만 원 정도는 확보하고 있죠. 여기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월 200만 원 정도 현금 흐름은 마련할 수 있어요. 자산운운용은 스스로 공부부터 하세요. 또하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돈버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인생2막 ‘죽음’에 대한 공부 필요해 -죽음교육은 무슨 말씀인지요.“2009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했는데, 제가 평생 받은 교육 중 가장 유익했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가치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자연스레 인생관이 변하게 됐어요. 죽음 공부야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선 별로 공감하지 않더군요. 친구들 모임에서 꺼내면 ‘왜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하죠. ‘(죽음이) 닥치면 의사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면서요.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황망하게 떠나는 분이 많습니다. 죽음은 해외여행보다 중요한 일 아닌가요.”-인생학교에 ‘웰다잉’ 교육을 개설했는데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요. 왜일까요.“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견해가 팽배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세익스피어의 연극도 있고 ‘유종의 미’라는 우리 속담도 있듯 삶도 마무리가 중요합니다.”백만기 씨 프로필1952년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대한투자금융 등 금융회사에서 26년간 일하다가 50대 초반 자발적 은퇴. 그 후 분당에서 고전음악카페 운영. 분당FM방송 진행자 활동,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성당교우들과 밴드 결성해 정기 콘서트.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 분당인생학교 교장, 현재 위례인생학교 교장 ※‘100세 시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풍요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할 것, 생각해볼 것, 알아둘 것 등 다양한 메뉴로 찾아뵙겠습니다. 격주로 실리는 ‘이런 인생 2막’ 코너에서는 멋진 인생 2막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독자 사례를 소개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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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준비 미리 해야 행복한 노후… 금융-죽음공부는 필수”[서영아의 100세 카페]

    12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스토리박스. 쨍한 노란색을 기조로 한 건물들 속 한 교실에 두툼한 책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50대인 학생 4명이 발제와 토론을 하면 이를 지켜보던 백만기 교장(69)이 가끔 끼어들어 진행을 돕고 설명을 해준다. 교재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위례인생학교 ‘금융투자’ 수업 현장이다. “수업은 참여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다시 선생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이죠.” 실제로 이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 오정선 씨는 앞 시간 생활영어 수업에서는 강사였다. 오랜 해외생활 뒤 귀국해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많이 한단다. ○‘어른들을 위한’ 두 번째 인생학교가 출범하다 사실 그는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평생교육기구인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이 운영하는 자율학교 개념을 도입한 ‘아름다운인생학교’를 2013년 분당에 열었다. 위례학교는 지난해 8월 개교했다. “분당 학교는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제 꿈이 인생학교를 100개 만드는 것인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가을학기에는 생활영어 금융투자 심리학 우쿨렐레 등 10개 강좌가 개설됐고 문화답사 등 야외강좌도 있다. 월 1만 원 운영회비만 내면 3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자신이 정말 하고픈 게 뭔지를 찾는 퇴직자, 젊은 시절 로망인 악기 배우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60대 등 사연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자세는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 백만기 씨는 50대 초반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인생 1막에서 막연하게 꿈꾸던 많은 일에 도전했다.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분당FM방송 진행자로도 일했다. 성당 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콘서트를 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에 참여했다.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가 인생학교였다. “은퇴 직후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굉장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모였다가 단순 역할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무렵 영국 U3A를 알게 됐어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들의 대학입니다.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는데, 운영위원과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개최한 ‘은퇴 후 8만 시간’ 에세이 공모전에 영국 U3A와 같은 학교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제로 응모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2013년 분당 수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개교했죠.” 가족 친지들은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사회에 꼭 필요한 커뮤니티였다. 분당학교는 2018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온 한 백화점 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인생학교 등 시민 자율 활동의 가장 큰 고민으로 공간 문제를 든다. “사회에 공간은 남아도는데 지역이기주의나 부처이기주의 탓에 활용이 쉽지 않아요.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서 공간을 제공해 주면 예산 없이도 시민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어요.”○‘은퇴는 기획하는 것’ ―50세 은퇴를 목표로 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197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하다가 40이 됐을 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다, 50에 은퇴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은퇴 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50세 은퇴를 목표로 하니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우선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 둘째 은퇴 후 할 일을 찾자.” ―‘준비된 은퇴’ 이후 삶에 대해 자평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19세기 폴란드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은 드라마가 되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요. 먹고사는 일로는 은퇴 무렵 친구 3명과 주식투자클럽을 결성해 16년째 매달 두 번씩 만나 주식 운용을 협의 중입니다. 재미있는 일로는 동네 이웃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고 글쓰기도 짬짬이 하고 있습니다(저서 2권을 냈다). 의미 있는 일로는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봉사, 인생학교 설립이 있죠.” 그는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비결은 ‘미리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은퇴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냐고 묻기에 고1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고3 때부터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유리하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은퇴 준비를 일찍 할수록 좋은 이유는 복리의 마술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겐 금융교육과 죽음교육 필요” 인생 2막만 17년 차. 오랜 은퇴 생활을 통해 그는 요즘 한국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결여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이다. “모두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할 뿐, 돈을 모으고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며 회원들을 보니 금융에 대해 너무 몰라요.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인 분들도 그렇더군요.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문자 문맹은 생활이 불편할 따름이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은퇴자가 평생 모은 돈을 금융사 직원 권유로 사모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흔하죠. 그래서 인생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6개월 과정 교육을 6회 정도 진행했죠.” 이런 그는 한국인의 금융 이해도가 낮은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의 비결은 조기 금융교육이에요. 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인척들이 금일봉을 선물합니다. 중산층의 경우 4만∼5만 달러(약 4700만∼59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대신 아이는 친인척들 앞에서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발표해야 합니다. 미리 부모로부터 자금 운용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작은 회사 하나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만약 그 학생이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입사했다고 칩시다. 한국 학생도 공부를 잘해 그 회사에 들어갔고요. 누가 자금 운용을 잘하겠습니까.” 은퇴자들은 금융을 알면 금융회사의 공포 마케팅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노후에 필요한 자금으로 7억, 10억 운운하는데 듣지 마세요.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해 달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입니다. 요즘 직장 은퇴자 대부분은 국민연금 월 100만 원 정도는 확보하고 있죠. 여기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월 200만 원 정도 현금 흐름은 마련할 수 있어요. 자산운용은 스스로 공부부터 하세요. 또 하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돈 버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인생 2막, ‘죽음’에 대한 공부 필요해 ―죽음교육은 무슨 말씀인지요. “2009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전문 과정을 이수했는데, 제가 평생 받은 교육 중 가장 유익했습니다. 죽음 공부야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화제를 꺼내면 ‘왜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하죠. ‘닥치면 의사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황망하게 떠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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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우세요?” ‘고독’ 해결에 영국 일본 정부가 나선 이유는 [서영아의 100세 카페]

    장수는 인류에게 축복이지만 생각지 못한 여러 부작용도 가져다줬다. 그 중 하나가 노후에 길게 이어지는 고독의 시간들 아닐까. 물론 고독은 고령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가족해체와 정보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어느 세대건 고독과 고립을 느끼는 경우는 갈수록 늘고 있다. 육체적이건 경제적이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이같은 질문에 대해 ‘고독은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이며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비명에 숨진 초선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 자신도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의 경험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고독을 절감한 적이 있었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 500억 원), 경제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 8000억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 ○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을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가져다주는 의료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 ○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www.campaigntoendloneliness.org)’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 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가.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쉐어드 라이브즈’,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 하는 ‘멘즈 쉐드’,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이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수는 2만 919명으로 11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상황 등을 사용해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빈도가 ‘2주일에 한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남성이 8.4%였다. 현역세대에서도 독신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으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속도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왈딩거(Robert J. Waldinger)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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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움 인정하는 데서 고독탈출 시작”… 英, 봉사 등 구체 활동 권유[서영아의 100세 카페]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고독이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을 뜻한다면 사회적 대응은 가능한 영역일 수 있다.○ 비명에 숨진 초선 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명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 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 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500억 원), 경제 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8000억 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 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 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를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유발하는 의료 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 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 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 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 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지. 이 외에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 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셰어드 라이브스(Shared Lives)’,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하는 ‘멘스 셰드(Men‘s Shed)’,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HostNation)’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 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 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 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 수는 2만919명으로 1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 상황 등을 사용해 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 빈도가 ‘2주일에 한 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 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 남성이 8.4%였다. 현역 세대에서도 독신 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 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 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 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 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 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월딩어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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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리 경제자문 “45세 정년제로 회사의존 낮춰야”… 日사회 일파만파[서영아의 100세 카페]

    최근 일본은 유력 경영인이 화두를 던진 ‘45세 정년제’ 논란으로 뜨겁다. 지난달 9일 니나미 다케시(新浪剛史·62·사진) 산토리홀딩스 사장은 “45세 정년제 도입으로 직원이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3대 경제단체 중 하나인 경제동우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였다. 그는 “종신고용이나 연공임금제 등 일본의 과거형 고용모델에서 탈각할 필요가 있다”며 “45세 정년제를 도입하면 인재들이 성장산업으로 대거 이동할 수 있고 회사 조직의 신진대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45세면 잘리는 거냐” 여론 거센 반발 거두절미 ‘45세 정년’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여론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젊을 때 부려먹고 45세면 자르겠다는 거냐” “45세에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기업 입장을 대변한 것” 등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이날 관련 뉴스를 다룬 포털사이트 야후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에 놀란 니나미 사장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정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잘못일 수 있다”며 “45세는 직장인 생활에서 한 매듭이 되는 시기로 이때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스타트업 기업으로 옮기는 등 사회가 여러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해고하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고 거듭 해명했다. 일본 정부도 즉각 “국가로서는 70세까지 기업에 고용을 의무화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며 불 끄기에 나섰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경단련(經團連)의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회장은 “노동시장 유동화가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회사가 보장하는 것이 45세까지라고 한다면 젊은이들은 의욕을 잃을 것”이라거나 “스타트업은 무슨 죄냐”는 등 부정적 반향은 여전했다. “인생 플랜이 불투명해지면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부터 기피할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다. ○‘70세까지 고용연장’이 던지는 불안감 이처럼 논란이 일파만파 번진 이유는 우선 니나미 사장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다. 그는 일본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평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쓰비시상사 출신으로 44세 때 일본 편의점 업계 2위인 로손의 사장으로 발탁됐고 이후 산토리홀딩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승승장구한, ‘샐러리맨 신화’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4월부터 시행된 ‘70세 고용 연장’ 정책이 주는 불안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고용형태가 자신들에게 끼칠 부작용은 없는지 의구심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툭 던져진 ‘45세 정년론’은 이들의 막연한 피해의식을 자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니나미 발언의 배경에는 일본 정부가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려고 하는 흐름에 대한 기업 측 위기의식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정부 방침에 침묵하는) 경영자들 들으라고 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온다.○4월부터 모든 기업에 70세까지 취업 확보 ‘노력의무’ 부과 흔히 ‘일본의 정년이 70세로 연장됐다’는 말이 회자되지만 엄밀히 말해 현재 일본의 법적 정년 연령은 60세다.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하면서 60세 미만 정년을 금지하고 65세까지 근로자가 원할 경우 기업 측이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정식으로 정년이 65세가 되는 시기는 2025년으로 정했다. 또 올해 4월부터는 65세 고용 이후로도 근로자가 원한다면 70세까지 취업을 보장할 것을 각 기업에 ‘노력의무’ 형태로 부과했다. 방법은 65세까지 적용해온 3가지 고용연장 조치를 70세까지로 연장하거나 취업 알선, 프리랜서 계약, 재교육 등을 지원하는 형태도 가능하다(표 참조). 이런 조치를 두고 고령자 부양을 국가가 기업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8.7%(지난해 9월 현재)다. 정부 입장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이 일하지 않고 부양받는 입장이 된다면 재정이 버텨낼 수 없다.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는 한번 직원이 되면 본인이 원할 경우 65∼70세까지 보살피라고 강요받는 셈이 된다. 한 이코노미스트는 “직원 노후 보장도 좋지만 회사가 망해버리면 모두 끝” “차라리 정년을 철폐하고 각 회사 사정에 맞는 고용을 보장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9년 전 등장했다가 사라진 ‘40세 정년제’ 정년 단축 논의는 사실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12년 당시 민주당 정권하에서 열린 ‘국가전략회의’ 분과회에서 ‘40세 정년제’가 제안됐다. 기업의 고용의무를 65세로 연장한 현행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1년 앞두고 관련 논의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로손 사장이던 니나미는 이때도 분과회 위원으로서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45세 정도부터 제2의 인생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모든 국민이 7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려면 정년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 60세 정년제는 기업에 인재가 고정돼 신진대사를 저해하고 있다. 정년이 65세로 연장되면 젊은이의 고용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 …평생 2, 3번 정도 이직이 보통인 사회를 지향하려면 오히려 정년 연령을 내려야 한다. …정년 후 새로운 지식을 얻은 뒤 같은 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고 창업 등을 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의 니나미 사장 발언과 그 취지가 유사하다. 이는 린다 그래튼 런던경영대 교수의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저서 ‘100세 인생’에서 한 사람이 평생 여러 개의 직업을 갖게 되고 이를 위한 리커런트(recurrent) 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세 시대에는 60세, 혹은 65세까지 일한 수입(저축 혹은 연금)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 없다”며 “인생은 과거와 같은 교육, 취업, 은퇴의 3단계가 아니라 더 긴 탐색기와 중간 휴식기를 가지며 직업을 바꾸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총리 산하 직속기관으로 ‘인생 100세 시대 구상회의’를 설치하고 그래튼 교수 등을 위원으로 초빙한 바 있다.○해외의 경우, 한국의 경우 미국은 1986년에 정년제를 없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도 2011년 같은 이유로 정년을 폐지했다. 독일은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연금 등 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숙련공의 기술 노하우를 더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들 서구권은 고용에 유연성이 있다는 점이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정년 연장은 연금 수급 시기와 맞물려 사회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프랑스는 2010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연금 수령 시기를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려 했지만 반대 여론에 부닥쳐 원점으로 돌아갔다. 러시아도 은퇴와 연금수급 연령을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늦추려다가 반발이 커지자 여성만 상향했다. 한국은 2016년부터 법적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40대 중반만 돼도 떨려나는 양상이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정년 연장이건, 노동시장 유연화건 논의될 법하지만 최고 수준의 청년실업률과 강경한 노조활동 앞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일본식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있는 미국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이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정년제 논의는 개인이 몇 살에 일을 그만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고용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국가전략 차원의 이야기다. 100세 시대의 정년, 정답은 없지만 지금의 형태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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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온 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가 필요하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이런 인생 2막]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7선 정치인에서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70은 새 인생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유언장 쓰기’ 한번 실천해보세요” 원혜영(70) 전 의원의 요즘 직함은 (사)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다. 부천시장과 국회의원을 합해 선출직만 7선을 거친 정치인이지만 지난해 5월부로 정계를 은퇴하고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런 그의 인생2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일까. “정치 얘기는 안한다”는 조건으로 10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대에는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이었고 40대부터 30년간은 정치인으로 사셨습니다. 인생 2막이 아니라 3막이라 하는 게 맞을 것같기도 합니다. “그렇잖아도 어제 만난 강명구 서울대 명예교수와 ‘우린 지금이 3막 아니냐’는 얘길 했어요. 30세까지 성장기, 30~60세 활동기, 그 뒤 은퇴기가 3막, 즉 서드 라이프인 거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수명이 70세였습니다. 60세 가까이에 정년하고 나면 10년쯤 살다 대충 노환으로 가는 거죠. 지금은 장수시대가 돼 버렸으니 한 막 더 늘릴 수 있지요.” -2019년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셨죠. 왜 그때였습니까. “나이 70이면 새 인생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닙니까. 제가 19대 의원에 당선됐을 때(2012년) 쯤이었을 거예요. ‘이번에 4년 일하고 한번 더하면 우리 나이로 70세, 정치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구나. 그때쯤 정리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야 최소 10년은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5선의원이신데, 국회의장을 하실 자리에 아깝게 물러나신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국회의장 하고 나면 다른 것 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겠죠. 그럼 제 인생 3막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통 정치인들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없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져 사라지거나 스캔들로 인해 불명예제대하거나. 제 경우가 얼마나 복받은 건가요.”○정계은퇴도 ‘웰다잉’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은퇴과정을 웰다잉(well-dying) 과정과 동일시했다. “웰다잉의 핵심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인데, 저는 정치인생을 제 뜻과 계획에 따라 그만뒀어요. 자기결정권의 실천 아닙니까. 은퇴자 대부분이 생활 변화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전 미리 준비하던 웰다잉운동이 있었으니 충격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의 변화로는 ‘뚜벅이’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꼽았다. “자동차를 없앴습니다. 어딜 가나 지하철을 탑니다. 오늘도 부천에서 7호선 타고 온수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왔습니다. 이러면 3500보 정도 걷습니다. 보세요. 만보계가 달린 시계도 샀습니다. 살도 좀 빠지고 몸이 가벼워졌어요.” 의원 시절 누적 주행거리 45만 km를 기록한 낡은 차는 더 이상 수리조차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폐차했다. ‘팔 때를 놓치니 수리비 엄청 들이게 됐고 돈 들인 게 아까워서’ 유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 그 뒤로 차는 리스로 빌렸다. -대표님께 웰다잉은 무엇인가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려면 자신이 결정할 일들이 많아요.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서, 막상 닥치면 허둥대며 휩쓸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걸 받아들일 준비, 잘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게 웰다잉입니다. 노인이 무기력하게 쓸려가는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지요. 내 죽음에 대해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들고 가족과 사회의 갈등을 줄여줍니다.”○웰다잉운동에 전념-말그대로 웰다잉 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다고요. “그밖의 어떤 일에도 나서거나 이름을 걸지 않아요. 어제는 유산기부 활성화 관련 자선단체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굿네이버스, 세이브 더 칠드런 등 어린이들을 돕는 단체들인데, 펀딩에 어려움을 겪던 이분들이 착안한 게 유산 기부예요. 재산을 모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좋은 일에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죠.” -영국의 레거시(Legacy) 10 캠페인 같은 건가요 “영국에서는 2011년 이래 억만장자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유언장에 그 뜻을 남기고 있습니다. 기부란 게 오랜 역사적인 전통을 반영합니다. 유산의 ‘10%’라는 액수도 그래요. 교회 십일조가 대표적인데, 그야말로 신과 인간의 오랜 투쟁을 통한 타협의 산물입니다. 종교인들은 20%건 50%건 많이 받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지속가능성이 없죠. 1%~2%로는 교회 유지가 안되고요. 지속가능하면서 내는 사람도 큰 부담이 안 되는 정도가 10%라는 겁니다. 유산도 ‘3분의 1을 기부하라’면 부담이 되겠지만 10분의 일이라면 ‘내가 죽을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하며 기꺼이 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니다.” -상속 기부는 세금 문제가 복잡한 것 같던데요. “공익법인에 기부한 금액은 상속가액에서 빠지니까 상속세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10% 이상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도 10% 감면되지요. 세금공제 관련해서 우린 아직 멀었어요.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국가가 세금 걷어 하며 되지 왜 민간이 나서냐’는 생각이 강합니다. 기부를 감독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기부를 통해 민간의 봉사 영역을 늘리는 게 세금 걷어 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데 말입니다.”○70부터 10년 정도 새 삶을 살고자-정치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천시장 시절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BIS)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 제 자랑거리입니다. 국회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고 필리버스터 전면도입을 주도했습니다. 몸싸움 대신 ‘소수세력이 주장을 국민에게 충분히 호소할 기회를 주자’는 거였죠. 민주주의는 힘 있고 세력 있다고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번에 여당이 선진화법이 무색할 정도로 초과의석을 얻었지만 이런 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고 갈등과 분열이 구조화되는 것같아 걱정입니다. 정치의 역할은 통합인데 반대로 분열조장으로 가는 게 안타까운 일이예요.” -국회에서 웰다잉 관련 일도 많이 하셨더군요. “2015년에 여야 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2016년 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고요. 이 법을 만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자기결정권 문제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자세, 이건 실제 생활문화에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겠다. 은퇴 후 웰다잉운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은 8월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다. ○“유언장 쓰기 확산에 사명감” 말이 쉬워 ‘웰다잉’이지만 요즘은 웰다잉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영역도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 서약, 간소한 장례식, 유언장 작성, 유산 기부 등, 하나하나가 책한권씩 나올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이중 그가 가장 사명감을 느끼는 분야는 ‘유언장 쓰기’다. “내 생명 내가 결정한다는 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면 내 재산처리는 유언장을 통해 결정 하게 됩니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유언장을 쓰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0.5% 정도만 쓰는 걸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차이가 문화의 차이 전통의 차이겠죠. 유언장을 써본다는 것은 내 삶을 한번 정리해본다는 의미입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많이 가져야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요.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어요.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새로 쓰면 됩니다. 유언장이니 연명의료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재산의 5~10% 정도는 좋은 일, 그간 하고 싶던 일에 써보자는 생각도 할 수 있지요.” -유언장을 써두셨나요. “내가 정리하는 차원으로는 쓰고 있습니다. 공자가 일일삼성(一日三省)하라 했지만 일기 쓰기만큼 자신을 성찰해보는 기회도 없지요. 죽음도 나와 아주 먼 일, 상관없는 일이 아니란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달, 혹은 매년 결산 하듯이 한번씩 정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더군요.” ○사회의 품격이란 면에서 웰다잉 중요하다. -간혹 노년에 웰빙도 힘든데 무슨 웰다잉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웰빙은 먹고사는 문제, 건강 문제, 일자리 문제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돈과 직결된 문제들이죠. 그런데 웰빙의 완성이 웰다잉입니다. 세상엔 끝이 있는 거고 드라마에서도 끝이 제일 중요하죠. 삶의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인생 자체가 의미있고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웰다잉은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돈도 일자리도 필요없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당연히 결정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죠.” -안락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용어상 혼란이 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만들 때 가장 큰 장애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임의로 끊겠다는 거냐’며 안락사와 같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안락사는 현대 의약을 동원해 약이나 주사를 통해 생명을 중지시키는 것이지만, 존엄사는 자연의 섭리대로 생명이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같은 인위적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뜻대로 태어나 살아왔는데 하느님의 뜻에 맞서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연명의료를 거절하고 장기기증을 하셨습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삶의 태도 아닐까요.” 다만 전세계적으로 안락사 문제는 덮어둘 일은 아니라는 점에는 그도 동의하는 듯했다.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 여러나라가 이미 조력자살 혹은 자살방조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2개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됐고 검토중인 지역도 14개주에 달한다. -본래 문화운동이란 게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데요.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웰다잉기본법 제정과 도입에 노력했는데 이제 정계를 은퇴했으니 문화적 확산을 하겠다는 쪽으로 제 역할을 설정한 거죠. 이런 문제는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안되고 문화 확산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고 봅니다. 중장년층 이상이 1000만 명이라 치면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신 분이 100만 명, 약 10%입니다. 유언장도 10%를 목표로 설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노인대상으로 한 기관 단체 초청 강연을 많이 다닌다. 웰다잉 홍보를 위해 대한노인회 고문 자리도 맡았다. 그러고보면 그에게서 처음 인터뷰에 응하겠노라는 답을 받은 것도 지난해 7월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이 주최한 ‘존엄사 입법 촉구’ 세미나에서였다. “노인복지관이나 노인단체, 관공서 등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제한적이지만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가서 연명의료 웰다잉운동 등을 소개합니다. 장수시대 1000만 노인들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이중에 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신 분 계시냐’고 물으면 반응이 아주 긍정적입니다. 비슷한 연령대인 제가 얘기하니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웰다잉 전파에 저같은 사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재산 이런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풀무원 정리하면서 만든 장학재단을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은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묶였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꼼짝없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 사는 복을 누리고 있어요.” 이 집에는 원 대표가 부인에게 구애하던 시절 ‘평생 좋은 우물물로 머리 감게 해주겠다’며 자랑했다는 물 좋은 우물도 여전히 있다고 한다. 다만 용도는 마당에 물뿌릴 때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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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삶 내가 마무리해야 품격있는 죽음… 유언장 쓰기 널리 확산되길”[서영아의 100세 카페]

    원혜영 전 의원(70)의 요즘 직함은 (사)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다. 부천시장 2선, 의원 5선 등 선출직만 7선을 거친 정치인이었지만 지난해 5월 정계은퇴와 동시에 ‘웰다잉(well-dying)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런 그의 인생 2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일까. “정치 얘기는 안 한다”는 조건으로 10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대에는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 40대부터 30년간은 정치인으로 사셨습니다. 인생 2막이 아니라 3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잖아도 어제 만난 동료 교수와 ‘우린 지금이 3막 아니냐’는 얘길 했어요. 30세까지 성장기, 30∼60세 활동기, 그 뒤 은퇴기는 3막, 즉 서드 라이프인 거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수명이 70세였습니다. 60세 가까이에 정년하고 나면 10년쯤 살다 대충 노환으로 가는 거였죠. 이제 장수시대가 되다 보니 한 막을 더 늘리게 됐지요.” ―2019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셨죠. 왜 그때였습니까. “나이 70이면 새 인생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닙니까. 19대 의원에 당선됐을 즈음 ‘한 번 더하면 우리 나이로 70세, 정치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구나. 그때쯤엔 정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국회의장을 하실 자리에 아깝게 물러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장 하고 나면 다른 것 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겠죠. 보통 정치인들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없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져 사라지거나 스캔들로 인해 불명예 제대하거나. 제 경우는 얼마나 복 받은 건가요.”○정계은퇴도 ‘웰다잉’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은퇴과정을 웰다잉 과정과 동일시했다. “웰다잉의 핵심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인데, 저는 정치인생을 제 뜻과 계획에 따라 그만뒀어요. 은퇴자들이 생활 변화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전 할 일이 미리 준비돼 있어 충격도 별로 없었습니다.” 일상에서의 변화는 ‘뚜벅이’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없애고 어딜 가나 지하철을 탑니다. 오늘도 부천에서 7호선 타고 온수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왔습니다. 이러면 3500보 정도 걷습니다. 보세요. 만보계가 달린 시계도 샀습니다. 살도 빠지고 몸이 가벼워졌어요.” ―대표님께 웰다잉은 무엇인가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자신이 결정할 게 많아요.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서, 막상 닥치면 허둥대며 휩쓸려가게 됩니다. 사실 죽음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걸 받아들일 준비, 잘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게 웰다잉입니다.”○웰다잉운동에 전념 ―말 그대로 웰다잉 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다고요. “그 밖의 어떤 일에도 나서거나 이름을 걸지 않아요. 어제는 유산 기부 활성화 관련 자선단체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어린이들을 돕는 단체들인데, 펀딩에 어려움을 겪던 이분들이 착안한 게 유산 기부예요. 재산을 모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좋은 일에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죠.” ―영국의 ‘레거시(Legacy) 10’ 캠페인 같은 건가요. “영국에서는 2011년부터 억만장자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죠. 유산의 ‘10%’라는 액수가 재미있습니다. 교회 십일조는 신과 인간의 오랜 투쟁을 통한 타협의 산물입니다. 예컨대 너무 많이 받으면 지속가능성이 없고 1∼2%로는 교회 유지가 어렵습니다. 지속가능하면서 큰 부담이 안 되는 정도가 10%라는 겁니다. 유산도 ‘3분의 1을 기부하라’면 부담 되겠지만 10분의 1이라면 기꺼이 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니다.” ―상속 기부는 세금 문제가 복잡한 것 같던데요. “공익법인에 기부한 금액은 상속가액에서 빠지니까 상속세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10% 이상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도 10% 감면되지요. 세금공제 관련해서 우린 아직 멀었어요.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국가가 세금 걷어 하면 되지 왜 민간이 나서냐’는 생각이 강합니다. 민간을 감독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그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인복지관이나 관공서 등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초청강연에 열심히 다닌다. 웰다잉 홍보를 위해 대한노인회 고문 자리도 맡았다. ○70세부터 10년 정도 새 삶을 살고자 그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부천시장 시절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BIS)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과 국회선진화법, 특히 필리버스터 전면 도입을 주도한 것을 꼽는다. 다른 한편으로 국회에서 웰다잉 관련 법 제도 도입에도 힘썼다. “2015년에 여야 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2016년 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고요. 이 법을 만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자기결정권 문제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자세, 이걸 실제 생활문화에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겠다. 은퇴 후 웰다잉운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8월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다.○“유언장 쓰기 확산에 사명감” 요즘은 웰다잉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영역도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 서약, 간소한 장례식, 유언장 작성, 유산 기부 등, 하나하나가 책 한 권씩 나올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이 중 그가 가장 사명감을 느끼는 분야는 ‘유언장 쓰기’다. “내 생명 내가 결정한다는 게 연명의료의향서라면 내 재산 처리는 유언장을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미국인의 50% 이상이 유언장을 쓰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0.5% 정도만 쓴다고 합니다. 유언장을 써본다는 것은 내 삶을 정리해본다는 뜻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새로 쓰면 됩니다. 저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고 있는데, 이보다 좋은 성찰 기회가 없습니다.” ―간혹 노년에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웰다잉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 하나뿐인 삶을 조명해보는 것은 내가 새롭게 탄생하는 일이 됩니다. 삶의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웰다잉은 웰빙의 완성입니다.”○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 재산 ―안락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용어상 혼란이 있습니다. 안락사는 약이나 주사를 통해 생명을 중지시키는 것이지만, 존엄사는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조치 없이 생명이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뜻에 맞서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연명의료를 거절하고 장기기증을 하셨습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태도 아닐까요.”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등이 이미 조력자살 혹은 자살방조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2개 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됐고 14개 주에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부를 실천하고 있으신데…. “풀무원 정리하면서 만든 장학재단을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은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묶였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꼼짝없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 사는 복을 누리고 있어요. 하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실천과제△육체적 생명의 마무리: 호스피스 완화 의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사회적 관계의 마무리: 엔딩노트, 장례·장묘 문화 개선, 유언장 쓰기△정신적·물질적 유산의 마무리: 성년후견제도, 사회적 기부 및 보존, 유품 사전정리웰다잉문화운동 제공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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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세 시대의 세금, 아는 만큼 보인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내가 상속세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3월 88세의 부친을 여읜 40대 A씨. 평소 근로소득세조차 내 본 적이 없던 그는 상속세로 1억 2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에 따르면 A씨의 부친이 2014년 4억 5000만 원에 산 아파트가 2018년 5억대가 되더니 2020년 8억 대, 2021년 들어 11억 원 대를 넘어서 있었다. 결국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는 그는 아버지와 살던 이 집을 11억 2000만원에 팔기로 했다. 고 변호사는 부친이 1년 전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해 봤다. 당시 실거래가는 8억 원대였고 상속세는 4700만 원만 내면 됐다. 상속세를 계산할 때 아파트는 유사매매사례가액(상속 전후 6개월간 유사한 부동산의 실거래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A씨가 상속세를 낼 여력이 있었다면 부친의 사망시점인 3월 경 거래된 매매사례가액 10억 원으로 상속세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상속세는 8600만 원만 내면 된다. A씨는 세금 낼 돈이 수중에 없었던 탓에 집을 팔아야 했고 그 매매가격이 시가가 되어 세금 4000여 만 원을 더 부담하게 된 셈이다.○ 경제규모 커졌는데 20년 전 과세기준 그대로상속이라 하면 부자들만의 일로 여겨져 왔다. 아직은 맞는 말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사망자 30만5000여 명 중 1만181명에게 상속세가 부과됐다. 사망자 중 3.34%다. 결정세액은 4조 2294억 원이다. 그런데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매매실거래 평균가격을 보면 60-85㎡ 규모 아파트 평균가는 전국이 5억 8400만 원, 서울 13억 2900만 원이다(2021년 6월 현재). 올해 들어서는 매매가 뜸한 가운데 일단 거래되면 신고가를 경신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재산 없이 아파트 한 채만 남기는 중산층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상속세가 신고까지 6개월, 이후 국세청 조사기간까지 더하면 세액결정에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난해와 올해 집값폭등 분은 아직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고성춘 변호사는 부동산가격 등 자산 가격 상승 탓에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세금이 아니게 됐다고 단언한다. 상속세 과세기준이 20년 전 그대로인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그 사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과세기준에는 인플레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변동 심한 매매사례가액으로 상속가액 결정A씨의 사례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 상속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상속가액 계산에 매매사례가액을 적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준다. -상속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정책이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작동된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게 존재의 이유입니다. 다만 갈수록 세수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고 있어요. 징세 과정에서도 납세자를 의심하고 부를 죄악시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세금 내는 국민이 세금이 징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딘가 잘못된 겁니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을 모두 합산해 과세한다. 배우자가 없으면 5억 원, 배우자가 있으면 10억~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된다. 이 액수를 넘기면 상속세가 발생하는데, 누진세율이 적용된다(표 참조). 대부분의 상속은 갑자기 닥친다. 준비해놓지 않으면 유족이 고생하게 된다. “예컨대 상속세는 6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신고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인이 남기는 재산의 70%가 부동산입니다. A씨처럼 유족이 따로 상속세를 낼 돈이 없다면 살던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 쉽지요. 잘 팔리지 않는 부동산은 헐값에 팔거나 경매에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생전 10년간 증여자산 추적해 상속세에 합산더 큰 문제는 사망 전 10년 간 증여한 자산이 상속재산에 합산된다는 점이다. “사망신고가 있으면 직전 10년 치 금융거래내역이 국세청에 통보됩니다. 국세청은 어느 정도 자산규모가 되는 사람 위주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가죠. 10년간 거래내역에서 수상한 돈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추적합니다. 무신고 증여를 찾아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신고 증여가 발견되면 10년 이내 액수는 상속가액에 포함되고 증여세는 15년 전 것까지 부과된다. 사망자의 재산에서 어디에 썼는지 모르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면 상속재산으로 간주한다. 다만 사망 전 1년간 2억 혹은 2년 간 5억 원까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세법에서는 특수관계자 간 재산적 법률행위는 모두 증여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가족 간 계좌이체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증여가 아니라는 걸 본인이 증명해야 하죠. 국세청의 자세는 ‘내 의심을 0으로 만들어보라’는 겁니다. 요즘은 모든 재화의 흐름이 전산화돼 있어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최근에는 법률요건을 모두 갖추어 증여를 했음에도 증여자금의 원천을 따지는 세무조사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사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한 병원장은 20대 직장인 아들의 주택구입자금으로 4억 원을 증여해주고 증여세까지 제대로 납부했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이 세무조사를 당했다. 주택취득자금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는데 결국 소득세 탈루로 7억대 세금을 얻어맞고는 몸져누웠다고 한다. 고변호사는 이런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자산가 노인들 중 밤잠을 못 주무시는 분이 많다고 전한다. “금융실명제 이전을 살아온 지금의 70~80대들은 부부간 ‘네 돈 내 돈’ 구분 없었고 자식들에게 보태주는 걸 당연시했습니다. 전세금이나 사업자금으로 몇 억 주고 증여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가산세까지 더해져 상속세가 어마어마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국가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유산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이 상속세”라고 말한다. 과거 증여나 소득세 등에서 세금 낼 것을 안내고 지나갔더라도 상속세 조사에서 모두 찾아내 가산세까지 물린다는 것이다.○ 미리미리 정리해두고 떠나는 게 어른의 책임-흔히 자녀들에게 끝까지 대접받으려면 재산은 죽을 때까지 놓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걸 충실히 이행한다면 재산을 자녀들 대신 국가에 헌납하는 결과가 되지요. 굳이 그때문이 아니어도 상속은 최소한 50대부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도 미리미리 정리해둬야 합니다.” 아무 대책 없이 상속을 맞게 돼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나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다. 특정 상속인에게 유산이 쏠리면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분)반환청구를 통해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뛰다보니 싸움이 더 늘었습니다. 큰 아들에게 준 집이 3억 원일 때는 조용했는데, 그게 8억, 16억이 되니 형제들이 ‘내 몫을 떼어 달라’고 들고 일어서는 식이죠. 이걸 미리 정리해두는 게 어른의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유언장을 미리 써볼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절세의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주식은 가치가 낮아졌을 때 증여하고 △미래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증여한다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고 △증여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조손에게 바로 증여한다 △기부를 고려한다. “궁극의 절세는 상속할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겁니다. 살아생전 자녀와 배우자에게 골고루 증여하든 사회에 환원하든 자신을 위해 써버리든 말이죠. 세금은 그때그때 제대로 내는 게 가장 낫고요. 국가에 빼앗기느니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해 재단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 조세는 ‘규제’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고성춘 변호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초의 조세 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별 채용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풍토를 도입하려 애썼다. 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저술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사례연구집으로 평가받는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법무과장 시절, 그는 조세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결정을 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 합니다.” 현재는 서울 송파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전공은 ‘조세불복’이다. 유튜브를 통해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구독자들과 만난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국세청 내부 얘기부터 매일 상담을 통해 만나는 민간인들의 속사정들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통찰을 나누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근로자 중 소득세 안내는 사람이 40%에 달하다보니 세금을 남의 나라 얘기처럼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실 미국의 독립도, 프랑스 혁명도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 세금은 나라가 뒤집어지기도 하는 문제인 것이다. 국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자각은 얼마라도 세금을 내야 생겨난다. ○ 10년마다 증여, 자녀 종잣돈 만들어주기세상사 모두 그러하듯 세금도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 일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증여세를 적극 활용해 10년 단위 증여로 자녀의 종잣돈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가 유행하고 있다. 법을 알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증여세는 미성년자녀는 10년간 2000만원, 성인자녀는 10년간 5000만원까지 비과세다. 이를 이용해 자녀가 태어났을 때와 10세 때 각기 2000만원, 20세, 30세때 5000만원씩 증여하면 자녀가 30세가 됐을 때 모두 1억 4000만 원을 세금 한 푼 없이 마련해줄 수 있다. 다만 이때 세금은 내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증여세 신고는 해야 한다. 이를 응용하면 증여세의 누진세율이 10년마다 리셋되는 점을 이용해 최소한의 세금을 내면서 종잣돈을 키우는 방식도 있다. 예컨대 0세와 10세에 각기 5000만원씩을 증여하고 각 300만 원의 증여세를 낸다. 20세와 30세에는 1억씩 증여하고 각 500만원 씩 증여세를 낸다. 30세가 된 아이는 3억의 종잣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때까지 낸 세금은 모두 1600만원이다. 여기서는 물가상승률이나 기회비용은 계산에서 배제했다. 증여된 자금도 자녀명의로 우량 주식에 묻어두거나 장기투자상품에 투자해 증식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주식 계좌를 만들어줘 연습 삼아 증권투자를 시키며 금융교육을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금융교육에 관한한 문맹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현상인 듯도 하다. ※ ‘100세 시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풍요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할 것, 생각해볼 것, 알아둘 것 등 다양한 메뉴로 찾아뵙겠습니다. 격주로 실리는 ‘이런 인생 2막’ 코너에서는 멋진 인생 2막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독자 사례를 소개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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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속세, 이젠 부자만의 세금 아냐… 50代부터 절세대책 세워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상속이라 하면 부자들만의 일로 여겨져 왔다. 아직은 맞는 말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사망자 30만5000여 명 중 1만181명에게 상속세가 부과됐다. 사망자 중 3.34%다. 결정세액은 4조2294억 원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실거래 평균가격을 보면 60∼85m² 규모 아파트가 전국 5억8400만 원, 서울 13억2900만 원이다(2021년 6월 현재). 매매가 뜸한 가운데 일단 거래되면 신고가를 경신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재산 없이 아파트 한 채만 남기는 중산층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 된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는 부동산 가격 등 자산 가격 상승 탓에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세금이 아니게 됐다고 단언한다. 그가 말해준 며칠 전 상담 사례가 이런 경우다.○“내가 상속세를 내게 될 줄이야” 올 3월 88세의 부친을 여읜 A 씨. 평소 근로소득세조차 내 본 적이 없던 그는 상속세로 1억2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기가 막혀 했다. A 씨 부친이 2014년 4억5000만 원에 산 아파트가 2018년 5억 원대가 되더니 2020년 8억 원대, 2021년 들어 11억 원대를 넘어섰다. 결국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는 그는 이 집을 11억2000만 원에 팔기로 했다. 고 변호사는 부친이 1년 전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해 봤다. 당시 실거래가는 8억 원대였고 상속세는 4700만 원만 내면 됐다. 상속세를 계산할 때 아파트는 유사매매사례가액(상속 전후 6개월간 유사한 부동산의 실거래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A 씨가 상속세를 낼 여력이 있었다면 부친의 사망 시점인 3월경 거래된 매매사례가액 10억 원으로 상속세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상속세는 8600만 원만 내면 된다. A 씨는 세금 낼 돈이 수중에 없었던 탓에 집을 팔아야 했고 매매 가격이 시가가 되어 세금 4000여만 원을 더 부담하게 된 셈이다.○변동 심한 매매사례가가 상속가액 결정 A 씨의 사례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 상속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상속가액 계산에 매매사례가액을 적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준다. ―상속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정책이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간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게 존재의 이유입니다. 다만 갈수록 세수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고 징세 과정에서 납세자를 의심하거나 부를 죄악시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세금 내는 국민 입장에서 세금이 징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딘가 잘못된 겁니다.” 상속세 과세기준이 20년 전 그대로인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인플레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을 모두 합산해 과세한다. 배우자가 없으면 5억 원, 배우자가 있으면 10억∼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된다. 이 액수를 넘기면 상속세가 발생하는데, 누진세율이 적용된다(표 참조). ―상속 때문에 유족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상속이 갑자기 닥치니까요. 예컨대 상속세는 6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신고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인이 남기는 재산의 70%가 부동산입니다. A 씨 사례처럼 유족이 따로 상속세를 낼 돈이 없다면 살던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죠.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생전 10년간 증여자산 추적해 상속세에 합산 더 큰 문제는 사망 전 10년간 증여한 자산이 상속재산에 합산된다는 점이다. “사망자의 직전 10년 치 금융거래 내역을 놓고 국세청은 면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10년간 거래 내역에서 수상한 돈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추적합니다. 무신고 증여를 찾아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신고 증여가 발견되면 10년 이내 액수는 상속가액에 포함되고 증여세는 15년 전 것까지 부과된다. “세법에서는 특수관계자 간 재산적 법률 행위는 모두 증여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가족 간 계좌이체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증여가 아니란 걸 본인이 증명해야 하죠. 국세청의 자세는 ‘내 의심을 0으로 만들어보라’는 겁니다. 요즘은 모든 재화의 흐름이 전산화돼 있어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고 변호사는 이런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자산가 노인들 중 밤잠을 못 주무시는 분이 많다고 전한다. “금융실명제 이전을 살아온 지금의 70, 80대들은 부부간에 ‘네 돈 내 돈’ 구분 없고 자식에게 보태주는 걸 당연시했습니다. 전세금이나 사업 자금으로 몇억 원 주고 증여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가산세까지 더해져 상속세가 어마어마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상속세는 국가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유산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증여나 소득세 등에서 세금을 건너뛰었더라도 상속세 조사에서 모두 찾아내 가산세까지 물린다는 것이다.○미리미리 정리해두고 떠나는 게 어른의 책임 ―흔히 자식에게 끝까지 대접받으려면 재산은 죽을 때까지 놓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걸 충실히 이행한다면 재산을 자녀 대신 국가에 헌납하는 결과가 되죠. 굳이 그 때문이 아니어도 상속은 최소한 50대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도 미리미리 정리해 둬야 하죠.” 준비 없이 상속을 맞게 돼 가족 간 다툼이 벌어지는 얘기는 주변에서도 흔하다. 특정 상속인에게 유산이 쏠리면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된 상속분) 반환청구를 통해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뛰다 보니 싸움이 더 늘었습니다. 큰아들에게 준 집이 3억 원일 때는 조용했는데, 그게 8억, 16억 원이 되니 형제들이 ‘내 몫을 떼어 달라’고 들고 일어서는 식이죠. 이걸 미리 정리해 두는 게 어른의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유언장을 미리 써볼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절세의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주식은 가치가 낮아졌을 때 증여하고 △미래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증여한다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고 △증여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조손에게 바로 증여한다 △기부를 고려한다. “궁극의 절세는 상속할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겁니다. 살아생전 자녀와 배우자에게 골고루 증여하든 사회에 환원하든 자신을 위해 써버리든 말이죠. 세금은 그때그때 제대로 내는 게 가장 낫고요. 국가에 빼앗기느니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해 재단을 만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조세는 ‘규제’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 고성춘 변호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초의 조세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별채용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 소송을 지휘했다.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 풍토를 도입하려 애썼다. 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저술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 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사례연구집으로 평가받는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법무과장 시절, 그는 조세 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 결정을 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 합니다.” 현재는 서울 송파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한다. 전공은 ‘조세 불복’.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유튜브를 운영하는데,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국세청 내부 얘기부터 매일 상담에서 만나는 이들의 속사정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통찰을 나누고 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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