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올 5월 말과 6월 초에 걸쳐 중국암웨이사(社)에 소속된 직원과 사업자 1만5000여 명이 단체관광으로 한국을 찾았다. 3000여 명씩 5차례로 나눠 방한한 이들은 제주도 부산 서남해안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여수 엑스포장에서 공연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면서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감했다. 식사 메뉴로는 갈비구이와 삼계탕이 나왔고 반주(飯酒)로 소주, 맥주, 복분자주가 제공됐다. 여기서 퀴즈. Q. 이들이 일정 마지막 날 한 끼 저녁의 반주로 곁들인 순(純) 술값은 얼마일까? 정답은 2억4040만 원이다. 메인 메뉴를 포함한 총 식비는 40억 원, 개인 지출을 빼고도 회사 측이 단체관광에 쓴 직접경비만 238억 원에 이른다. 이어지는 퀴즈. Q. 국제선과 국내선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여객 수가 가장 많은 항공노선은 어디일까? 정답은 김포∼제주 구간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모든 수학여행이 중단되고, 전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에 따라 국내 여행 수요가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김포∼제주 구간이 여전히 북적거리는 데는 유커(游客), 즉 중국인 관광객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유커가 놀랍다. 먼저 ‘대수(大數) 효과’의 위력이 놀랍고, 씀씀이에 다시 한 번 입이 벌어진다. 관광업계에서는 “50대 중국 남성이 고가의 핸드백 가게에서 진열대 한 줄을 몽땅 쓸어 갔다” 등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유커의 통 큰 씀씀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관광하면서 평균적으로 쓰는 돈은 일본인들보다 2.3배나 많다. 명나라 때 문학자 능몽초가 엮은 소설집 초각박안경기에는 ‘청산(靑山)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금 유커와 한국 경제의 관계가 딱 청산과 땔감이다. 유커 효과를 잘 활용한다면 ‘내수(內需) 불황’과 ‘일자리 기근’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는 이야기다. 통계를 보면 연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는 2007년 100만 시대를 연 이후 4년 뒤인 2011년에는 200만 시대에 진입했고, 이어 2년 만에 400만 시대로 점프했다. 이런 기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6년 뒤인 2020년에는 방한 중국인 수가 1500만 명에 근접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 432만 명이 만들어낸 일자리는 모두 24만 개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산술로 유커 1500만 시대인 2020년에는 83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계산이지만 이보다 훨씬 빨리 100만 개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방한 중국인 수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이들의 씀씀이가 커지는 속도가 2배나 빠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다. 한국의 관광 인프라는 지금의 유커 400만 시대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저가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호텔 대신 찜질방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몰아넣는 악덕 여행사까지 나온다. 다양한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무시되기 일쑤다. 의자 대신 방바닥에 앉혀놓고 삼계탕 한 그릇 내주는 것으로 끝이다. 중국인들은 익히지 않은 채소는 잘 먹지 않는데 유커들에게 상추나 깻잎을 내놓는 식당이 대다수다. 중국의 해외여행 붐이 아무리 거세고 한중 간 거리가 가까워도, 잠자리 불편하고 먹을 것 없는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유커는 없을 것이다. 400만 명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마이너스 구전(口傳)’의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청산을 옆에 두고 땔감 걱정을 하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서둘러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 ‘한국은 유커들이 다시 오고 싶은 나라일까.’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초점을 내수를 살리고 가계소득을 늘리는 데 맞추면서 최근 ‘소득주도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수출을 늘려 고용을 창출하고, 가계를 먹여 살리는 경제운용모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용어다. 아직 선진국에서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최 부총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도에도 없는 길”이다. 최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의외다.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보수가 아닌 진보의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소득주도성장론은 한마디로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해 국내 수요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분배우선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분배라는 용어 대신 소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대립 개념인 성장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당의(糖衣)를 입힌 분배우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수시장이 빈약하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소득주도성장론이 들어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임금을 올리면 내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우리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제조업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가계소득이 기업소득을 쫓아가지 못하는 원인으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적게 줘서 그렇다는 ‘대기업 원죄론’을 펴지만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프라이드치킨 버블’로 상징되는 자영업의 영세성과 지나친 비대화가 진짜 원인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호프집과 통닭집 수는 9만3945개로 10년 전보다 3배나 늘었다. 어떤 동네에서는 두세 집 건너 한 집이 치킨집이다 보니 절반 이상이 개업 후 3년 내에 문을 닫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내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런 와중에 영세자영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비정상적으로 높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과 일본은 각각 6.8%와 11.9%에 불과한데 한국은 무려 28.2%에 이른다. 반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료·교육·금융 등 고부가가치형 서비스업은 규제와 집단이기주의의 벽에 가로막혀 질식하기 직전이다.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소득주도성장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13억5000만 중국시장을 바로 이웃에 두고 5000만도 안 되는 좁은 내수시장에 ‘올인’하자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물론 경제이론과 실무에 모두 밝은 최 부총리가 이런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경제계와의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최 부총리가 말하는 소득주도성장은 기업주도성장론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일부 보완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정책조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용 없는 성장,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괴리 등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큰 틀에서 보면 정부가 12일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한 대책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정치권은 무능하고, 정부는 이해집단의 눈치를 살피느라 십여 년째 입으로만 떠들고 있어서 문제이지, 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곧게 뻗은 대로(大路)가 눈앞에 있는데, 지도에도 없는 길에서 헤맬 이유가 없다. 더구나 옛 사람은 이렇게 경고한다. ‘눈 덮인 들길을 걸을 때 아무렇게나 걷지 마라. 오늘의 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1994년 9월 2일 오전 청와대. 창밖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착 가라앉은 바깥 공기와는 대조적으로 조찬장 안은 밝고 활기 찬 분위기였다. 이날 조찬은 김영삼 대통령(YS)이 세계 최초로 256M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삼성전자 연구진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였다. 삼성전자가 1MD램(1986년)과 4MD램(1988년)을 개발할 때만 해도 일본과는 2∼4년이라는 넘기 힘든 기술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맹렬한 추격전을 벌인 끝에 16MD램 개발(1990년)에서는 그 격차를 다시 수개월로 좁혔고, 64MD램 개발(1992년)에서는 일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에 올라섰다. 그리고 조찬이 있기 이틀 전 256MD램을 개발해 일본 업체들을 완전히 따돌린 터였다. 조찬 행사는 물 흐르듯 진행됐다. 그런데 끝날 무렵 예기치 않은 ‘작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256MD램 개발실무 작업을 총괄한 황창규 이사(현 KT 회장)가 무심코 만년필을 떨어뜨린 것이 조찬장을 나가려던 YS의 주의를 잡아끈 것. 배석했던 박재윤 경제수석이 황급히 달려왔지만, 먼저 허리를 굽혀 만년필을 주워든 이가 있었다. YS였다. YS는 황 이사의 양복 윗주머니에 손수 만년필을 꽂아주면서 마치 다짐을 받듯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말그래이.” YS의 묵직한 격려가 삼성전자 연구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후 삼성전자의 성공담은 알려진 그대로다. 그것이 얼마나 극적인지는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잔혹사(殘酷史)’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998년 2월 미쓰비시전기와 오키전기가 D램 사업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9월에는 히타치가 도쿄(東京)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듬해 1월에는 후지쓰가, 3월에는 마쓰시타전기가 D램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했으며, 12월에는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분리해 엘피다라는 합작회사를 세운다. 유일하게 남은 일본의 D램 업체인 엘피다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09년 300억 엔(약 3000억 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수혈 받고도, 2012년 2월 경영파탄 상태에 이른다. 달도 차면 기운다던가. 잘나가던 반도체도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주는 처지가 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와 애플 아이폰 간의 ‘빅2 대혈전’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반도체의 영화(榮華)는 더욱 빨리 빛이 바래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삼성 안팎에서 반도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결단으로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당시 이 회장은 동양방송 이사였으며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가 아니다. 중국 시장에서 저가 제품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2분기(4∼6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실적이 기대를 밑돌면서 ‘구원투수’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사업부문별 영업이익 규모를 보면 반도체는 2조 원 수준으로 4조 원대 후반인 무선사업 부문에 못 미친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시장의 성장세가 꺾인 반면 반도체 부문은 시장이 팽창하고 있어서 충분히 기대를 걸 만하다. 삼성전자가 하반기(7∼12월) 실적을 끌어올리는 주역으로 반도체를 맨 먼저 꼽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선, 철강, 정유, 화학, 건설, 해운, 통신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들이 어렵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요즘이다. 반도체가 이런 우울한 뉴스들을 날려 버리는 청량제가 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지지 말그래이, 반도체.”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소프트웨어 강국 인도에 가보니 세계의 글로벌 기업들이 다 와서 인도 인재들을 활용하려고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고 일하고 있습디다. 한국도 연구실에 머무르고 있는 기술들을 산업으로 키워서 꼭 창조경제를 이뤄내야 합니다.” 최근 정부과천청사에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63)을 만났다. 4월 취임 1년을 앞두고 있는 최 장관은 새해에 가장 역점을 둬 추진할 정책 과제로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또 ‘미래부의 존재감이 없다’는 최근의 비판을 의식한 듯 “올해부터는 창조경제의 가시적 성과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인도를 다녀왔는데…. “15∼18일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이름난 인도를 돌아봤다. 업체에도 가보고 학계 사람들도 만났는데 배울 점이 많았다. 우리는 하드웨어가 강하고 인도는 소프트웨어가 강하니까 협업할 부분이 많이 보였다. 한국의 대덕연구단지처럼 인도 벵갈루루 지역에 R&D 단지가 크게 구축돼 있었는데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인도는 진출이 쉽지 않은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 진출한 지 20년 됐고 5000명 규모의 연구소를 운영하는 삼성전자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삼성전자가 인도 연구소 안에 ‘소프트웨어 상생협력센터’를 만들고 전담인력도 2명을 배치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현지에서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센터를 활용해서 사람도 구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발굴하면 좋을 것이다.” ―인도 인재를 수혈받는 것도 좋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인재가 고갈되고 있는 건 문제 아닌가. “지금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졌다.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기존 산업의 효율을 올리고 융합하는 데도 제일 좋은 기술이고 없어선 안 되는 산업이다. 창조경제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프트웨어인데 이쪽 분야가 학교나 산업이나 다 무너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공대에서는 전산학과, 컴퓨터공학과가 제일 커트라인이 높고 인기도 좋았는데 회사에 취직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돈도 많이 안 주니 이젠 이런 학과가 다 미달이다. 이런 풍토를 바꾸기 위해 미래부가 작년에 ‘소프트웨어 혁신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정책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려운 분야인 건 맞다. 하지만 분명히 변화는 있다. 나도 교사를 해봤지만 한국에서 제일 의식과 동작이 빠른 사람들은 학부모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가 소프트웨어 혁신 전략을 내놓으면서 산업을 키운다고 하니 벌써 올해 소프트웨어학과에 학생들이 많이 몰리기 시작한다. 앞으로 정부부터 국산 소프트웨어를 많이 구매하고 유지보수 비용도 제값을 주면 풍토가 많이 바뀌고 분위기도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라 생기고 처음으로 정부에 소프트웨어정책국도 만들지 않았나.”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연계 산업 경쟁력을 키울 방안은…. “연구실에 잠자는 기술을 ‘산업’으로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도는 우주산업의 경쟁력이 아주 높다. 산업체 수도 500개나 되고 국가 R&D 비용의 절반을 이쪽에 투자할 정도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정부는 20%밖에 기여 안 했다고 하더라. 정부는 규격을 만들고 최종 테스트만 하지 나머지 R&D나 제품 생산은 민간이 80%를 하고 있다는 거다. 우리도 나로호 후속으로 국산 로켓을 쏘아 올리고 달 탐사선도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우주기술을 과학기술에서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게 꼭 필요하다. 인도 우주청과 정례 협의체를 만들어서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을 생각이다.” ―최근 카드 정보 유출 때문에 온 나라가 패닉 상태다. 미래부도 개인 정보보호 유관 부처인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정보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부분이다. 정부도 개인 정보보호와 관련해 모든 걸 새롭게 정비해 나가야 한다. 미래부는 정보보호 관련 기술정책을 맡고 있는 부처인 만큼 정보보호를 하나의 산업으로 일으켜 수출도 하고 한국이 이 분야의 세계적 강국이 되게 하는 게 목표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중국의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유일한 수단이 뭔 줄 아세요?” “15억 인구의 폐입니다.” 필자가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가 던졌던 농담이다.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로 대기오염이 극심해지고 있는데, 방지대책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발(發) 미세먼지의 반나절 영향권에 들어 있다. 중국의 대기가 나빠지는 속도를 보면, 지난주 겪었던 중국발 미세먼지 공습은 ‘맛보기 예고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대책은, 그제 발표된 대로 예보를 강화하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사실상 5000만 국민의 폐로 오염된 공기를 정화해야 하는 셈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미세먼지의 공습 뒤에는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중국에서 대기오염이 심해진 원인으로는 난방 및 공업용 에너지 사용량의 급증과 자동차 수 증가 등이 꼽힌다. 이른바 ‘바오바(保八·연간 경제성장률을 8%로 유지하는 정책)’로 상징되는 중국의 고속성장이 근본 원인이다. 중국 정부가 환경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성장에만 ‘다걸기(올인)’해 온 결과 대기의 자정기능이 고장 나 버린 것이다. 비록 ‘바오바’는 폐기했다고 하더라도 중국 경제는 지난해 7.8% 성장에 이어 올해도 7%대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이후로도 7%대 성장률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15억 인구에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별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종신교수를 지낸 바 있는 류징(劉勁) 청쿵상학원 부학장(재무학 전공)은 “중국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률을 4∼5% 수준까지 떨어뜨려야 한다”고 단언한다. 만약 중국의 성장률이 반 토막 난다면,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성장률이 0.4%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단순계산으로 중국의 성장률이 8%에서 4%로 내려가면 한국의 성장률은 1.6%포인트 떨어지게 된다. 한국 경제가 2011년 2분기부터 2013년 1분기까지 8개 분기 연속 0%대 성장의 늪에서 헤맸던 점을 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나 겪었던 마이너스 성장의 쓴맛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물론 중국의 성장률이 4% 선까지 추락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극단적이다. 그러나 중국 대기의 급속한 악화 속도로 볼 때 중국 경제에 대한 ‘감속(減速) 압력’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이 내년 경제정책운용 키워드로 ‘담화증장(淡化增長·성장을 약하게 한다는 뜻)’을 제시할 것이라는 중국 언론들의 보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중국 경제의 고성장을 위협하는 것은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빈부격차 확대나 부실채권 문제도 심각하다. 이로 인한 중국발 경제쇼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하고 서비스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으로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칼자루를 쥔 우리 국회는 경제효과가 수십조 원에 이르는 법안을 깔고 앉은 채, 정치 게임에만 여념이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선 울화통이 치밀 따름이다. 한방(韓方) 상식에 따르면, 울화는 심장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폐를 혹사시키고 여의도발 스트레스에 심장이 상하다 보면, 우리 국민의 심폐 건강이 어찌될지 걱정이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박력 있는’ 경제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베네수엘라 최대의 전자제품 판매체인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5개 매장의 관리자와 직원 500명을 체포했다. 이어 전자제품 의류 신발 자동차 등의 소매 마진에 대해 상한제를 실시하겠다고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감시에 들어갔다. 수도 카라카스의 가전제품 소매점 등에서는 군인들이 질서 유지를 하는 가운데, 이 기회에 싼값에 물건을 장만해두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취임 이후 잇단 정책 실패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그 책임을 ‘장사꾼들의 탐욕’으로 돌려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적 꼼수이다. 어찌 됐든 일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이번 조치 덕분에 고가의 전자제품을 싼값에 사들고 나오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의 웃는 얼굴이 앞으로도 죽 계속될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한 물가통제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경제전문가는 거의 없다. 소매점에 재고가 있는 동안에는 반짝 효과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투자가 위축돼서 극심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암시장이 독버섯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는 이번 소동을 보고 있으면, 국내의 전월세상한제 도입 논의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민주당은 앞으로 국회에서 민생법안 등을 논의할 때 전월세상한제 도입에 최우선순위를 두겠다고 이달 발표했다. 여당과 정부 일각은 공식적으로 전월세상한제 도입에 반대하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물밑에서는 부동산시장 정상화 관련 법안 통과와 맞바꾸는 ‘빅딜’을 깊이 있게 검토하고 있다. 군대를 동원하느냐, 않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전월세상한제는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소매 마진 상한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집세상한제는 좋은 정책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1990년 아메리칸이코노믹리뷰가 미국의 경제학자 4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3%가 “집세상한제는 공급을 줄이고 주거의 질을 악화시킨다”고 응답했다. 캐나다의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조사에서도 95%가 같은 의견을 냈다. 이런 견해에는 좌우의 구분도 없다. 스웨덴의 좌파 경제학자인 아사르 린드베크는 “집세상한제는 도시를 파괴하는 데 있어서 폭격 다음으로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주장하는 동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전셋값이 고삐 풀린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월세상한제는 가격 상승을 진정시키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연스러운 시장가격보다 낮은 수준에 집세를 묶어두면 집주인들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려 할 것이다. 반면 수요는 더 늘어나 공급 부족이 만성화한다. 이미 셋집을 구해서 살고 있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혜택을 받지만, 신혼부부나 전근자 등 새로 셋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은 집 구하기가 지금보다 몇 곱절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들은 기존 임대주택이 낡아도 다시 짓거나 수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도시의 슬럼화가 진행된다. 이는 집세상한제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민주당이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정말 추진할 생각이라면, 이런 부작용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 먼저 충분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개인적으로 세계경제가 건강한지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생체신호를 확인하는 곳은 런던도, 프랑크푸르트도, 도쿄도, 뭄바이도 아니다. 바로 서울이다. …한국은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산업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항상 최첨단의 위치를 고수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한국을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한국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금메달리스트 후보로 우뚝 설 수 있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신흥시장부문 사장은 ‘2022 세계경제의 운명을 바꿀 국가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저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에서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 초판이 국내에서 발행된 지난해 8월만 해도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뉴스가 적지 않게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출구전략을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나라로 캐나다, 호주와 더불어 한국을 꼽았다. 외국인들이 9월 한 달 동안 한국 주식시장에서 월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인 8조3000억 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을 보면 IMF와 비슷한 견해가 국제금융계에 널리 확산돼 있는 듯하다. 주요 경제지표의 움직임에서도 희망의 싹을 읽을 수 있다. 올해 경상수지흑자는 사상 최고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되고 물가는 안정돼 있다. 실물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던 대표 업종 중 하나였던 조선업은 호전되는 징후가 완연하다.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직전 분기 대비 1.1% 성장해 9분기 만에 0%대 성장의 늪에서 벗어났다.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을 보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에 앞서 잠시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인디언 서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 경제 각 분야에 온기가 돈다는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청년들의 일자리 시장이다. 매년 내리막 곡선을 그려 온 청년고용률은 올해 40%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경제학에는 ‘히스테리시스’라는 용어가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고용이 줄어들다가도 다시 경기가 호전되면 고용이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불경기 터널이 길면 경기가 다시 살아나도 고용이 예전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다. 일손을 놓고 있는 동안 숙련도가 떨어지고, 승진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도 예전처럼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히스테리시스는 기존 직장인들에게도 큰 위협이지만, 직장에 첫발을 내디딜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길 처지인 청년실업자들에게는 훨씬 더 피부에 가까이 와 닿는 문제다. 우리 청년들이 히스테리시스의 포로가 되느냐, 아니면 세계경제의 금메달리스트로 도약하는 데 동참할 기회를 갖느냐를 결정할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은 국회다. 행정부는 입법수단이 아니면 청년고용률을 끌어올릴 대책이 없다며 사실상 두 손을 든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서비스 규제 완화 관련 법안과 부동산시장 정상화 법안 등 고용창출효과가 큰 법안들을 통과시킨다면 60%의 청년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이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감증언대에 세워 ‘정치게임’을 벌일 궁리에만 바쁘다. 투자와 생산의 현장에 있어야 할 기업인들이 여의도로 불려 다니다 보면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비용을 아무 죄 없는 청년들이 일자리 시장에서 영구 격리되는 것으로 대신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의 명문 코넬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어디 내놔도 꿀릴 게 없는 학력이지만 박근혜 정부 경제팀 내에서는 ‘최저 학력’이다. 경제부총리,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한국은행 총재, 공정거래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미래창조과학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장관 등 나머지 경제팀 멤버들은 전원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학위가 전부는 아니지만 전문성 하나만 따지면 현 경제팀이 역대 최고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일견, 일도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정부 출범 35일 만에 4·1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내놓은 기민함을 발휘했다. 5월 초에는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서 한 푼도 깎이지 않고 통과시키는 정치력을 보여줬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금융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부채탕감 정책도 큰 잡음 없이 해치우는 정교함도 보여줬다. 그런데도 인기가 없다. 평가점수는 낙제점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다. 동아일보가 경제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100점 만점에 61점을 받는 데 그쳤다. 사실 평점이 낮은 것보다 더 뼈아픈 대목은 많은 국민이 “경제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는 점이다. 현 경제팀의 존재감이 없는 이유는 욕먹는 것을 너무 의식하고 기피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뻔히 나와 있고, 야당이나 특정 단체 등 목소리 큰 집단의 비판을 피해서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한다. 정작 한국이 세계 경제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 즉 서비스업과 수도권 투자에 대한 규제를 풀고 포퓰리즘의 외풍(外風)을 차단하는 일에는 심하게 몸을 사린다. 핵심은 제쳐두고 변죽만 울리고 있으니 존재감이 있을 리 없다. 7월 초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들이 합동으로 내놓은 서비스업대책을 봐도 현 경제팀이 욕을 먹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규제를 시급히 풀어야 하는데도 정부는 소소한 잔챙이 규제만 몇 개 없애고 서비스업의 숨통을 죄고 있는 ‘대못’ 규제는 건드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아서…”라는 것이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변이었다. 다시 말하면 ‘일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현 부총리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이 조금씩 소리 나지 않게 해나가겠다는 뜻이다. 원래 수적천석은 승거목단(繩鋸木斷·새끼줄로 톱질해도 나무를 자를 수 있다는 뜻)과 짝을 이루는 말로 속세를 떠나서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가리킨다. 과연 현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이 도인(道人)처럼 행동을 하면 비판을 피해 갈 수 있을까.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한 무리의 신도들이 부처의 고명한 제자들을 차례로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가 ‘숲에 머물며 수행을 하는 자 중 으뜸’이라고 평가한 레와타 존자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혜제일’ 사리푸타 존자는 차근차근 이론적으로 가르침을 폈다. ‘다문(多聞)제일’ 아난다 존자는 간단명료하게 요점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신도들은 세 존자의 가르침에 대해 모두 불평을 했다. 부처님 말씀은 이렇다. “사람들은 말없이 앉아 있어도 비난한다. 너무 말을 많이 해도 비난한다. 말을 조금 해도 역시 비난한다. 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제팀은 야당이나 여론의 비판을 받지 않으면서, 일은 일대로 해보겠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당장은 욕을 좀 먹더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숙제들을 뚝심 있게 해나가야 ‘정말 큰 욕’을 안 먹는 경제팀이 될 수 있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1960, 70년대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수출진흥확대회의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애정은 각별했다고 한다. 1965년부터 1977년까지 162번의 회의가 열렸으며, 이 중 160번을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회의 초반에는 상공부와 외무부 차관이 230여 명의 참석자 앞에서 브리핑을 했는데,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박 대통령은 일절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대통령의 관심이 각별하다 보니, 모 차관은 브리핑을 잘하기 위해 아나운서학원에 다니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이 회의를 통해 수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대외여건이 나빠서 수출목표 달성이 위태위태할 때는 “목표 달성을 못하면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각료들이 사표를 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수출을 가로막는 ‘대못’과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1967년 3월 부산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는 중소기업은행 부산지점의 대출을 놓고 “왜 대출이 양조장에 편중됐느냐” “담보가 없다고 유망한 기업에 대출을 안 해줘서 되겠느냐”고 대통령이 조목조목 지적해 지점장은 실신지경이 되고, 은행장은 진땀을 흘렸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수출진흥확대회의의 골격을 그대로 답습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한국경제 구조가 고도화함에 따라 회의의 주제가 ‘수출’에서 ‘무역(=수출+수입)+투자’로 확대됐지만 회의의 성격·시간·형식, 대통령의 회의 주재 스타일까지 판박이에 가깝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이 회의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제 회의는 박근혜노믹스의 향후 이정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박근혜노믹스와 관련한 경제계의 불만은 컬러가 전혀 다른 ‘경제민주화’와 ‘투자활성화’를 동시에 강조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은 그제 언론사 논설실장들과의 오찬에서 “(경제민주화) 중점 법안 7개 중 6개가 이번 국회에 통과가 돼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교통정리’를 했다. 그 하루 뒤에 예정된 투자 관련 회의다 보니 경제계는 박 대통령의 전날 발언이 ‘일회성’인지, 지속적인 의지가 담긴 말인지 촉각을 곤두세운 터였다. 때로 경제계는 정부가 두툼한 보고서에 담아 내놓는 정책패키지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나 작은 몸짓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투자를 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 이분들이 경제를 살리는 거고, 일자리를 만드는 거고, 소비도 활성화하는 거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투자를 당부하기 위해 대통령이 ‘립서비스’를 한 적은 과거 정권에서도 많았지만 “업고 다니겠다”는 파격적인 수사를 한 대통령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날 회의에 빨간색 재킷을 입고 나왔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많은 열정을 불어넣어 경제를 활력 있게 살려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직접 설명하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증권거래소를 방문했을 때도 빨간색 재킷을 입었고, 역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지난달 중국 방문 때도 빨간 재킷을 입은 적이 있다. 양국의 경제인들이 참여한 한중비즈니스포럼에서 연설을 할 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2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앞두고 “한국경제는 외바퀴자전거다. 줄곧 달려야지 멈추면 넘어진다”며 ‘외바퀴자전거론’을 편 적이 있다.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올해 2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0%대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바퀴자전거가 멈춰 넘어지지 않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빨간 재킷을 입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MB 정부에서 고위공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공무원 골프 금지에 얽힌 비화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09년 청와대행정관 향응수수 의혹이 터지고, 그해 3월 말 청와대가 100일 특별감찰에 들어가면서 공직사회에 골프 금지령이 떨어졌다. 당시만 해도 ‘얼마나 가겠느냐’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 100일이 끝나갈 무렵 공직사회는 머지않아 해금령이 내릴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해 8월 초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라운딩을 하는 방안도 실무 차원에서 추진됐다. 헛물을 켰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해 7월 초. 제3차 민관합동회의에서 한 민간 참석자가 MB에게 “경기 활성화를 위해 공무원 골프를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MB가 웃음 띤 표정을 보이자 참석자들은 ‘드디어 공무원 골프 해금령이 내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반대로 MB는 회의 직후 골프 금지령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 MB와 부시 전 대통령과의 골프도 없는 일이 됐고, 전국 골프장에는 공무원들의 예약취소 전화가 줄을 이었다. 요즘 공직사회의 상황과 분위기가 이 무렵과 비슷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넘었고, 현충일도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공무원 골프 해금령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 무성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 골퍼들에게 또 한번 ‘좌절’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년 전 MB가 공무원 골프 금지령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어디로 튈지, 얼마나 오래갈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공직기강의 고삐를 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상황이 그때와는 크게 다르다. 위기의 만성화로 국제교역이 위축되면서 내수 소비를 진작시키지 않고는 경기를 살리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 없는 처지면, 구매력 있는 계층이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게라도 해줘야 한다. 혹자는 공무원이 박봉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잘릴 걱정하지 않고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보다 ‘두툼한 지갑’은 없다. 금리가 뚝 떨어지면서 정액지급방식인 공무원연금의 실질가치도 배 이상 높아졌기 때문에 은퇴 이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공무원 말고는 구매력 있는 계층이 잘 안 보인다. 은퇴한 금리생활자들은 정기예금 금리가 곤두박질치면서 원금을 뭉텅뭉텅 축내지 않고는 생활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자영업자들 중에는 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을 다 까먹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시한부가 상당수다. 평균적인 회사원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서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없는 처지다. 혹시 ‘업자’들의 로비를 막기 위해 공무원 골프 금지가 필요하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유치하도록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구린 만남이라면 구석진 주차장이나 은밀한 술집 같은 데를 놔주고 사방이 탁 트인 골프장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부작용도 있겠지만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소통과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은 치를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대법관 전원에게 골프채를 선물하면서 골프를 권했다고 한다. “골프를 하면서 시야를 넓히라”는 것이 이유였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위해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존재인 대법관이 시야를 넓혀야 하는 이유, 골프를 하면 시야가 넓어지는 이치는 무엇일까. 박 전 대통령의 ‘깊은 뜻’을 많은 사람이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은 잘 알지 않을까.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한비자에는 대형 인사 참사를 소개하는 유명한 글이 하나 실려 있다.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군주 중 최강자로 키운 명재상 관중과 관련된 이야기다. 관중이 늙고 병들어서 조정에 나올 수 없게 되자 환공은 그의 집으로 찾아가 인사 문제를 상의한다. “후임자로 누가 좋겠는가”라는 환공의 물음에 관중은 “부모보다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고, 군주보다 신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지신막약군·知臣莫若君)”며 대답을 피한다. 관중은 자신이 생각하는 적임자를 추천하는 대신 환공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의 이름을 말하면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겠다고 한다. 환공은 포숙아, 수조, 개방, 역아, 습붕 순으로 후보자를 이야기한다. 관중은 앞의 네 명에 대해서는 각각의 이유를 들어 “불가하다”고 대답한다. 관중이 천거한 인물은 욕심이 적고 신의가 두터운 습붕이었다. 군신 간에 이런 문답이 있은 지 얼마 뒤 관중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환공은 관중이 추천한 습붕 대신 수조에게 정사를 맡겼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뒤 환공은 남쪽 국경지방으로 유람을 간다. 이 틈을 타 수조는 역아, 개방 등과 짜고 반란을 일으킨다. 환공은 작은 방에 감금돼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굶어 죽는다. 환공의 시신은 그가 죽은 뒤 3개월이 지나도록 방치돼, 구더기가 방 밖으로 기어 나왔다고 전해진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의혹 사건으로 마음이 가장 참담한 이는 아마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한미동맹 6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점에 일궈낸 다양한 방미 성과는 조금도 주목을 받지 못했고, 상승세를 타던 지지율 곡선도 급속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독신 여성인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종류의 추문이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게 싫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윤창중 사태의 원인에 대해, 그를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은 부적절한 인물을 부적절한 자리에 앉힌 것이 발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요컨대 충분한 검증과 평판조회를 생략한 ‘나 홀로 인사’가 빚어낸 인사 참사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실수를 한 환공이 당한 수모와 비교해 보면 방미 성과에 먹칠을 당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정도는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일인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나 홀로 인사’를 고집해온 것은 ‘군주보다 신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종류의 생각이 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관중 같은 현인이 환공의 물음에 이렇게 답변을 한 것은, 우선 군주의 체면을 세워준 뒤 자신의 할 말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모든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와 측근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수도 없이 맹세했지만 매번 반복되는 이유가 뭐겠는가. 내 주변 인물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잘못된 믿음이 대통령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필자는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보다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일을 겪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몇 달 전 아들의 반 친구 A 군에 대해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사소하지만 안 좋은 소문이 퍼진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안면이 있는 A 군 부모에게 알려줄지 말지 고민하다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이 소문은 A 군 부모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그때는 동네의 모든 학부모가 다 알고 난 다음이었다. 몇 달 뒤에는 우리 부부가 A 군 부모와 같은 일을 겪었다. 자식은 부모가 가장 모르고, 신하는 군주가 가장 모른다. 그래서 귀를 열어둬야 한다. 필자처럼 평범한 사람도 알게 된 이치를 박 대통령이 빨리 깨쳤으면 하는 바람이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1200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1879년 말 백열전구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1200번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전구가 켜지지 않는 방법을 1200가지나 알아낸 것이다.” 그가 축전지를 발명할 때는 2만5000번이나 실패를 했다.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상품치고 실패나 시행착오의 결과물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페니실린, 전자레인지, 껌 등은 실패가 없었으면 아예 세상에 등장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백열전구 이후 인류의 밤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인 ‘비아그라’ 또한 실패한 심장약 개발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창업의 세계도 비슷하다. 최근 들어 국내 벤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손꼽을 수 있는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카카오의 전신은 2006년 설립된 아이위랩이라는 곳이다. 이 회사는 ‘부루’라는 서비스를 내놨지만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이어 2008년 내놓은 ‘위시아’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부루와 위시아는 비록 연이은 실패작이었지만, 카카오톡이 크게 성공하는 밑거름과 자양분이 됐다. 우리나라처럼 실패자에게 가혹하고,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카카오 같은 성공사례가 생겨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실패에 대해 유독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비교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의 성공한 청년기업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당신 사회에서는 사업 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받아들이는가?’라는 것이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24%에 불과했다. 20개국 중 이탈리아와 더불어 꼴찌였다. 중국은 그 비율이 54%였고, 미국과 브라질도 50%를 웃돌았다. 한국인들이 사업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낙오자’라는 낙인이 평생 물귀신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사업실패가 곧 ‘경제적 사형선고’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실패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심지어 남의 실패까지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일이 많다. 남이 빚을 못 갚으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금융계약, 즉 연대보증 이야기다. 한국에는 저축은행 할부금융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만 무려 200만 명이 연대보증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 일본 등 몇몇 나라에도 연대보증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사람을 ‘빚 지옥’에 몰아넣고 평생 숨통을 조여 가는 정도는 아니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연대보증제도 폐지방안을 추진 중인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융당국은 원칙을 피해갈 수 있는 예외를 일절 허용해선 안 된다. 제2금융권보다 피해가 심각한 대부업계 등의 연대보증도 서둘러 뿌리 뽑아야 한다. 독버섯을 쓸어낼 때는 작은 홀씨 한 알도 남겨둬선 안 된다. 박근혜노믹스의 모토인 ‘창조경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창조는 원래 신의 영역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실패와 시행착오를 염두에 두지 않고 창조에 도전하는 것은 오만이다. 이런 까닭에 ‘창조경제’는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일곱 번 굴러 넘어져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문화에서만 꽃필 수 있다. 우리를 지나친 성공강박증으로 몰아넣는 제도와 관행들이 남아있는 한 창조경제의 여린 싹은 절대 딱딱한 껍질을 뚫지 못할 것이다. 연대보증제도는 그저 하나의 작은 예다. 이런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 일이 바로 주무장관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창조경제의 실체가 아니겠는가.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국세청이 이르면 5월부터 전문직 종사자나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선다. 국세청 관계자는 7일 “현금 거래가 많은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해 올해 세무조사를 크게 확대할 것”이라며 “기초 자료 수집을 거쳐 상반기 중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현금 거래가 많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유흥업소를 운영하거나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고소득 자영업자 외에 △불투명한 현금 거래가 많으면서도 세무조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악기나 미술품 거래상도 포함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고가의 미술품과 악기가 현금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잦아 세금 탈루 개연성이 높다”면서 “조사 직원들을 통해 거래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음대 교수들이 학생들의 악기 구입을 대신해 주고 악기상에게 리베이트를 받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제보를 중심으로 교수가 기타소득을 제대로 신고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한편 국세청은 고소득자나 기업의 역외탈세를 적발하기 위해 조세피난처 3곳(안도라, 지브롤터,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과 지난해 정보교환협정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한 조세피난처는 17곳으로 늘었다. 최근 외국 언론이 재산도피자의 명단을 작성해 공개하겠다고 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와는 2011년 조세정보교환협정에 가서명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발효를 위한 절차를 최대한 빨리 밟겠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잘 살아보세’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경제부총리제는 5년 만에 되살아났다. 경제 분야 양대 요직인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자리를 옛 경제기획원(EPB) 라인이 모두 꿰찼다. ‘잘 살아보세’ 구호, 경제부총리, EPB는 모두 박정희노믹스를 이루는 골조였다. 박근혜노믹스가 박정희노믹스의 개정판임이 분명해진 현 시점에서, 경제부총리론을 이야기하려면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3명의 부총리를 다시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장악력, 신임, 소신의 부총리들 #왕초 장기영 EPB 시절 경제 관련 중요한 의사결정은 부총리 집무실에 딸린 작은 회의실에서 비공식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대부분 이뤄졌다. 장기영 부총리는 식전인 오후 6시경 회의를 소집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장관들에게 토론을 하게 한 뒤, 자신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 떡으로 요기를 했다(골치 아픈 현안이 있을 때는 미리 떡을 준비하라고 비서실에 지시를 해놓았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들이 배가 고파 녹초가 됐을 시간에 나타나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정책을 몰고 갔다. 이런 편법도 마다 않으면서 다른 장관들을 한 손에 장악했다. ‘왕초’라는 별명은 이래서 나왔다. #절대 신임 남덕우 뛰어난 경제학자였던 남덕우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재무장관으로 5년, 경제부총리로 4년 3개월 재임했다. 그는 1978년 12월 총선 참패에 대한 ‘총대’를 메고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불과 20일 만에 경제특보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소신파 신현확 신현확 부총리가 취임한 1978년 말 한국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다음은 내무부가 대통령에게 농촌주택개량사업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에 그가 배석했을 때 벌어졌던 일이다. 브리핑 내용이 ‘개량사업 대상 주택 수는 3만 호’라는 대목에 이르자, 박 대통령은 신 부총리에게 “예산을 늘려 사업 대상을 9만 호로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신 부총리는 “노(No)”라고 대답했다.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브리핑이 재개됐다. 박 대통령이 브리핑 중간에 다시 끼어들었다. “신 부총리, 9만 호는 많다 치고, 6만 호로 늘립시다.” 하지만 신 부총리의 대답은 또 한 번 “노”였다. 박 대통령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말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장기영 부총리 등의 사례를 보면 경제부총리의 성공 요건은 장악력, 대통령의 신임, 소신으로 요약된다. 현오석 부총리 후보자의 경우, 장악력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선이 많다. 대통령의 신임도 아직 물음표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 때문에 많은 흠집이 났고,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도 무산됐다.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을 강행하려는 분위기여서 낙마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임명장을 받아도 부총리로서 ‘영(令)’이 설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한 부총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주 막혀버린 것은 아니다.현 후보자, 두번 ‘NO’ 할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 이행을 중시하고,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현 부총리의 장악력이나 추진력이 미흡해도, 대통령이 직접 주요 국정과제를 밀고 나갈 것이다. 복지공약이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서는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오히려 등을 떠밀 것이다. 이런 흐름이 도를 넘어서면 재정과 성장잠재력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현 후보자가 지난해 11월 “대선 후보들이 당선되고 나서 공약을 실천한다고 할까 봐 더 걱정”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 것이다. 두 번 “노” 할 수 있는 소신이 있다면, 훗날 나라곳간을 지켜낸 훌륭한 부총리라는 평가를 받게 될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물론 임명장을 받은 이후의 이야기지만….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인천공항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상(賞)’, ‘대한항공 세계 최고 비즈니스클래스 항공사 선정.’ 필자는 이런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기사를 읽을 때마다 ‘서비스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최고까지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6월 말 에어프랑스 편으로 파리에 갔을 때 동행자 J가 겪은 ‘황당서비스’를 직접 지켜보며 생각을 바꿨다.서비스업 생산성 佛-日의 절반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를 향해 100m쯤 걸었을까. J는 문득 비행기 좌석에 스마트폰을 놓고 온 사실을 떠올렸고, 눈앞에 있는 항공사 서비스카운터에 사정을 설명했다. J는 비행기 문을 나선 지 5분이 채 안 지났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30분 넘게 시간을 끌더니 “입국심사대를 나가서 분실물센터로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J는 분실물센터에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곳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린 J에게 돌아온 대답은 “물건을 못 찾겠으니 돌아가서 공식으로 e메일을 보내고, 1주일 안에 연락이 없으면 잃어버린 줄 알라”는 것이었다. J에게 답장이 온 것은 2개월가량 지난 뒤였다. “물건을 찾았으니 공항에 직접 와서 찾아가라. 만약 올 수 없으면 배송료 15만 원을 입금하라”는 내용이었다. J가 비싼 비용을 치르고 두 달 만에 되찾은 스마트폰은 온통 긁힌 자국투성이로, 형편없는 중고품이 돼 있었다. 요즘은 항공사나 공항뿐 아니라 백화점 호텔 병원, 심지어 관공서조차도 한국만큼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를 하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비단 우리만의 평가일까. 올 초 일본의 톱스타 고유키(小雪)가 둘째아이 출산 후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해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다음은 한 여성잡지가 첫 출산(도쿄의 한 병원)과 두 번째 출산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고유키를 묘사한 기사다. “초산 후 본지가 목격한 고유키는 가드레일에 기대다시피 해서 겨우 걸음을 뗐다. 표정도 시종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몸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발에는 굽 없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를 출산하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날은 굽 있는 부츠를 신고 경쾌한 걸음걸이를 뽐냈다. 몸매는 출산 전의 날씬한 상태를 완전히 회복했다. 경이로운 산후조리를 한 모양이다.” 에어프랑스와 고유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한국은 당장이라도 서비스 강국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프랑스와 일본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내의 제조업과 비교해도 서비스업의 1인당 부가가치창출액은 제조업의 반밖에 안 된다. 1990년만 해도 제조업보다 44%나 높았던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규제 때문이다. 한국에서 서비스업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금융 세금 전기료 임차료 등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천형(天刑)의 낙인이었다. 차세대 핵심산업인 소프트웨어나 영상산업의 경우 산업분류가 서비스업에 속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부 지원을 못 받다 보니 관련업계가 “우리를 제조업으로 분류해 달라”고 읍소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박근혜노믹스, 규제 해제에 달려 이번 대선 때 경제와 관련된 가장 큰 공방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중 누가 더 한국 경제를 망쳐놨느냐 하는 것이었다. 10년간 내상(內傷)이 쌓이다 보니 한국경제는 지금 ‘고용 없는 성장’ ‘온기 없는 성장’ ‘저(低)성장’이라는 심각한 합병증을 앓고 있는 상태다. 3중의 합병증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서비스업을 옥죄고 있는 대못과 가시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비스 규제를 푼다고 요란한 소리는 냈지만, 흉내 내기에 그친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뛰어넘느냐에 박근혜노믹스의 성패가 달려 있다. 최고의 친절과 세심한 돌봄으로 무장한 민간분야는 이미 세계 최강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상태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이명박(MB) 정부 경제팀 수장들의 별명에는 물가와 관련된 것이 많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상을 ‘경제검찰’에서 ‘물가검찰’로 바꿔 놓은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물가동수’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전 세계가 무한 금리 인하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꿋꿋이 금리 동결 노선을 걸어 온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동결중수’, 알뜰주유소 정책을 떠맡아 추진해 온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에게는 ‘알뜰석우’라는 별칭이 붙었다.MB노믹스, 사상최악의 성장 이 점 하나만 봐도 쉬 짐작이 가듯, MB노믹스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물가 안정이었다. 임기 5년 중 거의 4년을 물가와 씨름하는 데 보냈다. 경제학에는 ‘샤워실의 바보’라는 유명한 비유가 있다. 추운 겨울철 샤워실에서 대개 한두 번쯤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얼른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조바심에 밸브를 뜨거운 물 쪽으로 한껏 튼다. 잠깐 찬물이 나오지만, 이내 너무 뜨겁다 싶은 물이 쏟아진다. 그러면 거의 반사적으로 밸브를 찬물 쪽으로 돌리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찬 물이 나와서 밸브를 뜨거운 물 쪽으로 다시 돌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찬물과 뜨거운 물 사이를 반복해서 오가게 된다. 그래도 서너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대개는 적정 온도를 찾게 된다. 하지만 MB노믹스는 적정 온도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현 정권은 ‘747(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방향은 옳았지만 숫자는 무리였다. 그렇다 보니 대외 환경을 감안하지 않은 채 과도한 고(高)환율 드라이브를 걸었다. 샤워 밸브를 있는 힘을 다해 뜨거운 물 쪽으로 튼 셈이다. 고환율은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물가 상승과 민심 이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샤워 꼭지에서 화들짝 놀랄 만큼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온 것. 이에 대한 반작용이 4년여에 걸친 물가와의 전쟁이었다.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던지 임기 후반 4년은 경제 성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샤워 밸브를 찬물 쪽으로 고정시켜 놓다시피 했다. 그 결과는 최근 경제성적표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까지 일곱 분기 연속 0%대 성장(직전 분기 대비 기준)을 했다. 성장률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처참한 성적표다.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는 성장률이 낮지만 하반기에는 올라간다는 뜻)’를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상저하악(上低下惡)’이라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수준이다. 성장률 저하는 청년실업 증가, 하우스푸어 양산, 중산층 붕괴, 자영업 대란 등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합병증을 낳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임금은 깎이거나 제자리걸음이다. 기업 부문에서 가계 부문으로 넘어가야 할 돈이 고여 있다 보니 내수가 침체되고 경기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깊어진다. 전형적인 ‘저(低)성장병’ 증상이다. 소득 자체가 생기지 않거나 늘지 않는데, 물가가 아무리 안정된다 한들 서민의 삶이 나아질 리가 없다.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한다 한 달 뒤 닻을 올리게 될 박근혜노믹스가 MB노믹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어버린 성장 엔진을 점화시키기 위한 좀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속에는 그런 방안들이 전혀 안 보인다. 박 당선인의 주요 공약사항인 복지 확충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성장과 양 날개를 이뤄야 한다. 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가 순탄하게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면 복지공약 중 상당수는 저절로 불필요해질 수도 있다. 경제적 약자들이 궁핍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게 막아주는 사회안전망(網)이 ‘그물의 경제학’이라면, 성장은 ‘밀물의 경제학’이다. “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만든다(A rising tide lifts all boats)”고 한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치열한 승부였지만 국민의 선택은 끝났다. 불안한 개혁보다 안정감 있는 변화, 계층 간 대립보다 국민대통합이 당면한 민생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국민은 판단했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보수진영만 대표하는 반쪽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보살피는 민생대통령이 되겠다”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줘야 한다.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 등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3%를 밑도는 저성장 속에서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자영업 불황을 겪어 왔다. 양극화가 심화돼 젊은층, 중산층이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 민생 경제의 위기다. 문제는 앞으로도 세계 경제 환경이 쉽사리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 약속한 복지공약들을 실천하기 위한 청사진 만드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경제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마련하는 일부터 착수하기 바란다. 먼저 성급한 경기 부양 카드를 꺼내기보다는 일본처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성장잠재력은 노동력, 자본투자, 생산성이 결정 요소다. 노동력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미취업 청년들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제대로 훈련해야 한다. 기업 투자를 늘리려면 각급 관청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계류된 허가 서류부터 일제 점검하고, 수송·에너지 등 공공인프라 투자를 신속히 해결해 줘야 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고용의 70%를 점하고 있는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 저해 요소를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공급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정부 규제나 진입장벽을 과감히 줄이는 개혁 작업에도 착수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재정건전성의 틀 안에서 추진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은 정부가 빚을 내서 복지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중에 국가부채의 증가 한도를 설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복지프로그램의 착수 시기와 추진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기존 예산의 삭감이나 징세행정 개선으로 도저히 해결되기 어려운 복지재원 규모에 대해서는 증세의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도 지도자의 용기 있는 리더십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각종 정책 공약들은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부터 먼저 따져 보고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 불공정 행위는 철저히 규제해 중소기업이나 서비스 분야 자영업자들도 살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그러면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순환출자 규제와 금산분리 강화를 위한 규제는 글로벌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가계부채의 60%를 점하는 주택담보대출은 1, 2년 후 일시 상환 방식에서 10∼20년 후 분할 상환 방식으로 바꿔 주고 대출 채권의 유동화를 제도적으로 지원해 줄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부동산시장 규제 시스템을 개혁해 1가구 1주택 소유 개념에 얽매여 있는 세제 및 건축규제를 전면 손질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외 개방정책을 후퇴시키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 경제는 수출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내수 주도의 성장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중국시장에서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한다. 끝으로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서민도 살리고 중산층을 육성하는 민생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선거 때 지지하지 않은 국민 계층과의 소통 능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국회에서 ‘여야정 협의기구’를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설득하고 타협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또 헌법기관인 ‘대통령 경제자문회의’를 청와대 내부기구화해서 대통령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국민통합을 통해 민생 경제를 살리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다음과 같은 냉엄한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선거는 ‘정치 논리’로 풀어야 승리할 수 있으나 경제와 일자리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성공할 수 있다.}

조지 워싱턴, 앤드루 잭슨, 마틴 밴 뷰런, 재커리 테일러, 밀러드 필모어, 에이브러햄 링컨, 앤드루 존슨, 그로버 클리블랜드, 해리 트루먼 등 9명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둘째 대학 문턱을 밟지 못했다. 이들이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키고 수성(守城)하는 데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장애가 됐을까. 아니다. 워싱턴이나 링컨을 능가할 만한 대졸 출신 대통령이 서너 명만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은 고사하고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앤드루 존슨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는 “무학(無學)의 존슨을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미국의 수치”라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존슨은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가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멀리 미국의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학 졸업장을 중시한다. 고졸 출신은 임금과 승진 면에서 심한 차별을 받는다. 아니 채용 단계에서부터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고졸이 찬밥 신세인 것은 대선공약에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문재인 두 유력 대선후보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고졸 출신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공약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선후보들은 비싼 등록금, 즉 ‘학비 인플레이션’이 우리 대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훨씬 더 구조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너도나도 대학 졸업장에만 목을 매는 ‘학력 인플레이션’ 문제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20%포인트가량이나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서도 단연 선두권이다. 대졸자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자리만 있다면 학력 인플레이션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은 2005∼2009년 60%대에서 2010년 이후에는 50%대로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려왔다. 더구나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어서, 대졸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신규 일자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코미디 같지만 이런 와중에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대학 졸업장이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만 높여 놓은 탓이다. 등록금이 반값으로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대학 진학 희망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경제학 법칙이다. 대졸자 일자리 시장이 좁아지는 가운데 반값등록금으로 인해 대학문이 넓어지면 우리나라 대학은 ‘깔때기’ 모양이 될 것이다. 대접에 바늘구멍 하나 뚫어 놓은 것 같은 깔때기 안에 젊은 세대를 마구 밀어 넣는 것이 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까. 더구나 대학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매년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이번 대선에 쏟아내 놓은 선심성 공약들을 이행하려면 예산 구조조정과 증세(增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재정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가 빚을 내서 재원을 마련하다 보면 결국은 젊은 세대의 부담이 된다. 그런데도 유력한 대선후보들이 반값등록금을 마치 젊은 세대들에게 선심이라도 쓰듯이 공약하는 것은 눈속임이다. 고졸 출신이 LG전자 사장이 돼도 ‘신화(神話)’가 되지 않는 사회, 이력서 작성용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취업스펙을 쌓는 데 대학 4년을 허송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이것이 청년에게 진정으로 꿈을 주는 대한민국상(像)이 아닐까.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패션업계에는 신사복 정장이 가장 경기를 탄다는 속설이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아동복이 가장 먼저 팔리고, 다음에는 여성복, 그 다음에는 애완동물용품, 맨 나중에 신사복 순으로 매출이 오른다고 한다. 경기가 나빠질 때는 반대 순서다. 이 속설이 호사가들의 근거 없는 입방아인지,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인지 한 백화점의 매출을 통해 간단히 검증해 봤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매출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을 보면 아동복이 14.5%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여성복 10.4%, 신사복 6.2% 순이었다. 올해 1∼10월 매출을 보면 소비경기가 내리막에 접어든 와중에도 아동복과 여성복은 6.7%와 2.2%씩 늘었다. 유독 신사복만 매출이 3.0% 줄었다. 신사복 정장이 불황을 심하게 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식님-일식씨-이식군-삼식놈(집에서 하루 한 끼도 안 먹으면 ‘님’, 한 끼 먹으면 ‘씨’, 두 끼 먹으면 ‘군’, 세 끼 먹으면 ‘놈’으로 불린다는 뜻)으로 압축되는 부권(父權) 추락현상이 소비생활에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일까.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아무리 부권이 땅에 떨어졌기로서니 신사복 한 벌 못 얻어 입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 Y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 경우, 정장은 내년에도 입을 일이 있을지(잘리지 않고 회사에 붙어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뒤 ‘예스’라는 답이 나올 때만 사 입는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살얼음 경기에 누가 무슨 배짱으로 정장을 사 입겠나.” 설령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 0순위일지언정, 사실 그대로 가족에게 말할 만큼 무신경한 한국의 가장(家長)은 없을 것이다. 십중팔구는 가족에게 괜한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내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라고 일단 큰소리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부인이나 자식들은 남편 또는 아버지가 얼마나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는지 알 턱이 없고, 지갑 끈은 상대적으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아동복-여성복-신사복의 경기 민감도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됐을 터다. 신사복의 심각한 매출 부진이 시사하듯, 최근 기업 현장의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등 경제 각료들이 “지금이 바닥”이라며 사그라지는 경기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별무신통이다. 기업들은 “지금이 바닥인 것은 맞지만 내년은 바닥 아래 지하실”이라며 ‘경기바닥론’을 일축한다. 구조조정 태풍은 발달 중인 열대성저기압 단계다. SK커뮤니케이션즈 같은 대기업 계열사, 한국씨티은행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까지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마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또 삼성, SK, LG의 주요 계열사들은 올해 예정했던 신규 투자의 규모를 줄이거나 집행시기를 늦추고 있다. 투자 축소는 대개 기업들이 감원에 앞서 하는 조치다. 중견·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대기업들보다 훨씬 절박하다. 그런데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수십조 원이 드는 무상복지 공약과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增稅) 공약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반(反)기업 정서 조장과 기업 때리기에도 열심이다. 빛바랜 양복 안주머니에 사표 꽂고 다니는 아버지의 지갑을 털어 명품 옷과 백을 사겠다는 자식들. 그러면서도 “아버지 인생은 반칙 인생”이라고 삿대질하는 아들딸의 모습이 우리 정치권에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P.S. 남편이나 아버지가 잠재적 구조조정 대상인지 구별하는 방법: 이번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근사한 신사복 한 벌 장만하자고 권해 본다.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국제 외환시장은 정글이고 전쟁터다. 수출업체와 수입업체가 무역을 위해 외환을 사고파는 곳이라는 설명은 현실이 아닌 교과서 속 이야기다. 외환시장에서 무역대금 결제를 위해 거래되는 외환은 3%에도 못 미친다. 외환시장을 활보하는 주역들은 헤지펀드 같은 금융투기 세력들이다. 이들은 웬만한 나라의 중앙은행쯤은 ‘찜 쪄’ 먹을 수 있는 자금 동원력과 초고성능 컴퓨터 시스템으로 무장했으며, 젊은 수학천재들을 직원으로 거느리고 있다.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자금은 하루에 2조 달러를 웃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총수출액의 3.6배,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6.2배에 이르는 규모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는다고 해도 외환시장에서는 ‘안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투기세력의 공세에 덜 흔들리려면 되도록 많은 나라의 외환당국과 끈끈한 동맹관계를 맺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일 통화스와프 570억 달러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은 것은 한국에 큰 손실이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돈줄을 거의 무제한으로 풀고 있어서 오히려 과다한 외화 유입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라 당장 문제가 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지거나 국제 경제 흐름이 바뀌어 외화가 유출되는 상황이 왔을 때 570억 달러는 천당과 지옥을 가를 수도 있는 돈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요청하면 통화스와프를 연장하겠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일본에 머리를 숙이면서 연장을 사정해야 했을까? 일본에는 ‘모리의 빈 벤토(도시락)’라는 고사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死後) 일본의 권력질서를 결정한 세키가하라 대(大)결전이 고사의 무대다. 당시 세키가하라에는 두 패로 갈린 일본 전역의 호족들이 총출동해서 패권을 겨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東軍)과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西軍)의 총병력은 각각 8만 명 안팎. 병력 수에서는 어느 쪽도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지리적 요충을 선점한 서군이 전체적으로 보면 유리한 판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승리는 도쿠가와의 동군에 돌아갔다. 서군이 왜 패했는지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앞서 말한 ‘모리의 빈 벤토’도 서군의 주된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서군의 주력에는 도요토미의 핵심 측근이었던 모리 가문의 병력도 포함돼 있었다. 모리군(軍)은 세키가하라 결전에서 도쿠가와의 배후를 치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전투가 시작된 이후에도 형세를 관망할 뿐 병마를 움직이지 않았다. 애가 탄 서군의 호족들은 거듭 출전을 재촉했지만 모리군의 대장은 “지금은 병사들에게 벤토를 먹이는 중”이라는 궁한 변명을 하면서 서군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고 전해진다. 만약 이번에 한국 정부가 일본에 통사정을 해서 한일 통화스와프를 연장했다면 언젠가 세키가하라의 서군처럼 ‘모리의 빈 벤토’에 뒤통수를 맞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 근거는 이렇다. 우선 일본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의 지원 요청을 싸늘하게 거절한 전례가 있다. 자국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한국 경제의 안정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둘째, 일본의 국수주의 움직임 확산과 함께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매년 고조되고 있다.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을 국내 정치용 포퓰리즘 카드로 쓰고 싶은 일본 정치인들의 유혹도 이에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해가 쨍쨍할 때 우산 뺏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는 식의 위안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다. 한일 통화스와프의 공백을 보완할 대안을 찾지 않으면 비 오는 날 모리의 군문 앞에 다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벤토는 다 드셨나요.”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