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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을 준비하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는 지난해 대선 때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댓글 의혹 및 최근 민주통합당이 제기한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지시 의혹 등과 관련해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을 당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21일 퇴임한 원 전 원장은 24일 미국으로 떠나 스탠퍼드대에 머물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관료들이 임기를 마친 뒤 연구와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해외에 머무르는 관행으로 볼 때 그가 이번에 출국했을 경우 당분간 국내에 돌아오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4년간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일한 그가 고소 고발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 것은 도피성 출국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퇴임 후 납치 등을 우려해 일정 기간 경호원이 따라붙는 전직 국정원장의 신분에도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처신이다. 원 전 원장의 정치 개입 의혹은 국정원의 정상적인 업무 범위에 해당하느냐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다.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댓글 의혹은 국회의 국정조사까지 예정되어 있다. 의혹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그가 해외로 훌쩍 떠나 버린다면 수사는 표류하고 이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될 것이 뻔하다. 본인이 떳떳하다면 국내에 머무르며 검찰 수사와 국정 조사에 당당히 대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원 전 원장의 정치 개입 의혹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내부 통신망에 오른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일도 벌어졌다. 정권 교체기를 틈타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권 줄 대기 같은 구태를 혁파하는 차원에서도 원 전 원장은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지난 주말 언론 보도를 통해 원 전 원장의 미국행 소식이 알려지자 야권은 “원 전 원장이 퇴임 사흘 만에 국외로 떠나는 것은 도피성 출국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에 대한 출국금지를 촉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야당이 요구하기 이전에 이미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국정원장이 퇴임하자마자 출국금지 조치를 한 속사정이 궁금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다른 사유가 있어 그의 출국을 막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수사의 전개 상황에 따라서는 이명박 정권 인사에 대한 사정의 신호탄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군 입대 후 신병들은 ‘56번 훈련병’처럼 번호로 불린다. 20년 넘게 쓰던 이름을 잃어버리니 사회와 이어주는 끈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 국민의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인에게 무명(無名)과 무관(無冠)은 더 큰 고통이다. 그들이 인사나 선거철이 되면 “본인 부고(訃告)만 빼고 신문에 이름이 실리면 무조건 좋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간다. 이름과 호칭은 정치인에겐 존재의 의미다. ▷1960년대까지 정치인들은 아호(雅號)로 불렸다. 우남 이승만, 백범 김구,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죽산 조봉암…. ‘이 박사’ ‘조 박사’처럼 당시 흔치 않은 박사 학력을 붙여 무게감을 더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HR’(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처럼 공화당 실세들이 영문 약자로 불리며 위세를 과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과 청와대 안팎에서 ‘프레지던트 박’을 뜻하는 ‘PP’로 불렸다. ‘3김 시대’ 이후엔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대통령 호칭으로 굳어졌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을 ‘JFK’(존 F 케네디)처럼 약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우리처럼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정직한 에이브’(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이름이나 성격, 재직 중 업적 등에 대한 평가가 녹아 있는 애칭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이니셜 애칭이 생겼다는 것은 힘이 세졌다는 신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MB가 대권에 도전한 뒤 ‘SD’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권을 노리는 일부 중진 의원은 대놓고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니셜을 불러주며 애용해 달라고 주문한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경쟁자인 YS나 DJ처럼 자신을 ‘CY’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호칭을 영문 이니셜을 딴 ‘GH’나 ‘PP’ 대신 ‘박 대통령’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어떤 사람이 GH를 ‘그레이트 하모니(Great Harmony)’로 붙여줬다”고 소개한 적도 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갑자기 영어 이니셜이 싫다고 하니 국민은 의아스럽다. 애칭이나 약칭은 국민과 언론이 지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문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뀔 일이 아니다. DJ는 후광(後廣), YS는 거산(巨山)이라는 아호가 있었지만 언론이 영어 이니셜을 선호하는 바람에 요즘은 들어보기 어렵다. 국민과 소통하려면 ‘이니셜 호칭’이라도 있는 대통령이 없는 대통령보다는 낫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 친해질 기회를 스스로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2013 세계피겨선수권대회 경기 마지막 날인 17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 시의 버드와이저가든스 경기장.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 경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캐나다 여성들이 있었다. 이날 시상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의 국가(國歌)를 합창하기로 한 런던 시의 ‘아마빌레 여성합창단(Amabile Women's Choir)’ 단원들이었다. 김 선수가 20점 차 이상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확정짓자 이들은 우리 애국가가 적힌 악보를 들고 무대에 섰다. ▷캐나다 런던은 영국 런던과 동명이시(同名異市)다. 인구 47만 명으로 캐나다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다. 200여 개의 공원이 있을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나 ‘숲의 도시’로 불리며 세계 수준의 극장을 보유한 예술도시이기도 하다. 아마빌레 합창단은 이곳에서 1985년 결성됐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는 런던 주민 300명이 오디션을 거쳐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성화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환영 공연을 했으며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아마빌레는 음악용어로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세계로 생중계되는 시상식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다른 나라 국가를 그 나라 말로 부르기도 어렵거니와 50개국 200명의 참가 선수 중 누가 시상대에 오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1월부터 맹훈련에 돌입한 아마빌레 합창단은 한국 일본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 우승 후보국으로 대상을 좁혀가며 대회를 준비했다. 이 합창단의 리사 매크라켄 매니저는 “노래에 깔린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가사를 번역해 공부하고 현지어에 능통한 교수를 찾아가 배웠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가의 선수가 금메달을 딸 경우 녹음한 음악을 트는 대안도 준비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합창단원 50명이 우아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자 담담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섰던 김연아 선수도 이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전광판을 통해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로 직접 부르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18일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갈라쇼에서 캐나다 가수의 노래 ‘올 오브 미’ 공연으로 화답했다. 만국공용어인 음악으로 선수와 관중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준 아마빌레 합창단원은 이번 대회의 숨은 주인공이었다. 합창단 홈페이지에는 감사와 감동을 전하는 한국인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다. 다음에는 어떤 깜짝 스타가 빙판과 경기장에서 관중의 마음을 뜨겁게 해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7년 가까이 끌어온 총사업비 31조 원 규모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이자 52억 원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6월 12일 만기가 돌아오는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파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정도의 자금력과 사업 추진력으로 어떻게 31조 원이나 되는 초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겠다고 덤빈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최대 주주인 코레일과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은 책임 공방에 급급하다. 개발만 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부동산 거품에 현혹돼 2006년부터 무리하게 추진했던 사업이 남긴 후유증은 크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던 용산 개발이 무산되면 30개 출자사들은 1조 원대의 자본금을 날리게 된다. 개발사업으로 부채를 갚으려고 했던 코레일의 손실도 피할 수 없다. 개발 지역에 포함돼 재산권 행사를 못해온 서부이촌동 2300가구 주민의 반발도 예상된다. 책임 공방과 지루한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출자사들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책임을 분담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이처럼 큰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용산 사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사업 규모, 사업 방식, 실행 주체, 자금 조달 방식을 재평가하고 사업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출자사의 고통 분담 없이는 파산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아직은 사업초기 단계다. 감당할 수 없다면 응분의 책임을 지고 사업을 접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출자사들끼리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민자개발 사업에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면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세금으로 뒷돈을 대주는 꼴이 될 것이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주민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카나리워프 개발 사업이나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의 배터리파크도 개발 과정에서 자금 조달과 분양이 어려워 개발 회사가 파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형 도심 재개발에 따르는 위험은 그만큼 크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국민의 자산을 이용해 위험 부담이 따르는 부동산 개발에 직접 뛰어들게 된 경위와 책임 소재를 철저히 가려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 부동산 호황기에 추진했던 민관(民官) 합동 개발 사업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전면적인 실태 조사나 감사가 있어야 제2, 제3의 도심 재개발 파산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 발효 1년을 맞는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대미(對美) 교역을 늘리고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수성했다. 과감하게 빗장을 풀어 세계 1위의 경제대국 미국을 우리 경제 영토로 끌어들이는 ‘경제 고속도로’를 닦아놓은 효과다. 경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정치적 외교적 성과도 거뒀다. 단기적인 평가이긴 해도 한미 FTA 1년의 성적표는 ‘개방만이 살길’이라는 통상 국가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불황 속에서도 한미 FTA 발효 이후 올해 1월까지 자동차 부품, 섬유 등이 호조를 보이며 대미 수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7% 늘었다. 대미 무역흑자는 44% 증가했다. 피해를 염려했던 농업 분야는 수입이 감소한 반면 김 김치 음료 등의 수출은 늘었다. 미국 유럽연합(EU) 아세안과 같은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체결한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수확이다. 그동안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던 한미 FTA 반대론자의 주장은 일단 빗나갔다. 반대론자들이 미국과의 FTA 실패 사례로 거론하던 멕시코가 사상 최대의 대미 흑자를 내고, 대미 교역 2위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애써 시장을 연 뒤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시키지 않으려면 FTA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FTA로 관세 혜택을 보는 수출은 전체의 60%대에 그친다. 1000원어치를 수출하면 587원만 우리 몫일 정도로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미국 일본 중국보다 낮다. 중소기업의 수출 활로를 뚫어주고, 단순 조립가공 형태의 수출을 부품과 소재로 다변화해야 FTA 효과가 커진다. 지난해 미국 농산물 수입 감소는 광우병 여파와 가뭄이 원인이었다. 농축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중 FTA와 같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다. 수입품 값의 인하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시장 감시에도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한미 양국이 경제 위기를 핑계로 보호무역의 담장을 높게 치지 않고 개방을 계속해온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미-EU FTA가 가시화하고 일본까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적극 나서면 한국의 선점 효과는 줄어든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보완,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등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 압력 역시 거세질 것이다. 한미 FTA 1년을 맞아 정치권과 국민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을 찾아내야 할 때다.}
경북 구미산업단지에서 불산 염소 등 유독가스 누출과 대형 기름탱크 폭발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1700여 개 회사가 입주한 구미산단에는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만 160곳이 넘는다. 주민은 물론이고 단지 내에 입주한 회사 직원들도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사고가 날지 몰라 걱정이다. 한국은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가 11.4명으로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세계 15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 화학물질 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용량은 늘어났는데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와 관리체계는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본격 조성한 산업단지는 공장과 건물이 낡아 사고 위험이 더 크다. ‘안전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이 얼마 전 35년 된 터널을 제때 보수하지 않아 9명이 사망한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구미산단만 해도 1970, 80년대 조성돼 낡은 공장과 건물이 많다. 최근에는 화학물질 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유독물 취급시설을 허술하게 관리한 회사들이 경북도와 구미시의 합동점검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단지 내에 아파트와 상가, 학교시설까지 들어서 있어 화학물질 사고가 일어나면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다. 석유화학업종이 집중된 여수산업단지와 울산석유화학공단처럼 1960, 70년대에 조성한 산업단지는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구미 염소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유 후보자는 곧바로 현장을 둘러봤다. 새 정부는 국민 안전을 국정 핵심과제로 제시한 만큼 유해물질별로 생산 유통 사용 단계를 철저히 추적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유해물질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유해물질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칸막이를 없애고 신속한 대처, 정확한 조사, 완전한 피해 복구를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야 한다. 삼성 LG 같은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까지 불산 누출 사고로 산업안전의 허점을 드러냈다. 기업들이 당장 돈이 되는 사업에만 투자하고 안전같이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소홀히 한 결과다. 국가, 기업, 국민이 하나가 돼 안전불감증부터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마트가 전국 146개 매장에서 상품 진열 등을 하는 하도급 회사 직원 1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가 불법 파견으로 판단하고 직접 고용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도급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정년을 보장받고 임금이 평균 27% 오른다. 학자금과 의료비 등 이마트 정규직에 주는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마트는 연간 600억 원의 인건비를 더 부담하게 됐지만 직원들의 소속감과 생산성이 높아지면 중장기적으로는 득일 것이다. 현행법은 다른 회사에서 직원을 받아 쓰는 파견 근로와 사내 하도급을 정당한 고용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트처럼 일감을 외부에 맡기는 도급 계약을 하고 실제로는 파견 근로자처럼 지휘 감독을 하면 불법 파견이 된다. 파견 근로는 컴퓨터 전문가, 통신기술, 조리 등의 32개 업종에만 가능하다. 나머지 업종에서 직원처럼 쓰려면 직접 채용하는 것이 맞다. 미국에서는 일하기 좋은 직장에 홀푸즈마켓과 같은 유통회사들이 자주 거론된다. 한국도 이마트 사례를 유통업계의 경영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형마트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늘린다면 사회 전체에도 이득이다. 소득 불평등이 줄고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유통 물류 시스템을 현대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법원은 최근 현대자동차와 한국GM의 사내 하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불법 파견을 하던 기업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 내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제조업도 사회적 변화에 맞춰 고용 형태를 양질의 일자리 중심으로 바꾸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일자리 창출을 경영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정치권이 정규직 전환을 강요해선 안 된다. 고용 유연성도 함께 높여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해고도 어려운 경직된 노동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무리하게 고용 안정성만 강조하면 비정규직 비중이 특히 높은 영세 중소기업부터 경영난에 직면하고, 대기업은 자동화나 해외 이전으로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늘어난 비용을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꼼수로 대응할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

용산(龍山)은 한때 서울 부동산 시장의 노른자위 땅이었다. 2007년 코레일 주도로 총사업비만 31조 원에 이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윤곽이 드러나자 시장이 한껏 달아올랐다. 잠실 제2롯데월드(약 3조5000억 원)의 9배, 4대강 사업(약 22조 원)의 1.4배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도심 개발’ 사업이었다. ‘용산 로또’라는 말까지 나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장밋빛 용산 개발의 민낯을 드러낸 ‘진실의 순간’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자 자금 조달 길이 막히고 사업 밑천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업 전망은 2조7000억 원 흑자에서 4조6000억 원 적자로 바뀌었다. 자금 조달을 두고 최대 주주인 코레일과 민간 투자자 간에 갈등도 불거졌다. 최근 부도 위기에 몰리자 양측이 자본금을 늘리는 증자에 합의했으나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용산은 어쩌다 뱀 꼬리로 전락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2006년 고속철도 개발 과정에서 불어난 코레일의 빚 4조5000억 원을 철도정비창 터 개발 이익으로 해결하는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들고 나왔다. 2007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던 서울시는 이 사업에 서부이촌동 개발 사업을 포함시켜 숟가락을 얹었다. 사업 규모가 31조 원으로 불어나고 애꿎은 서부이촌동 주민들까지 사업에 말려들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각본을 쓰고 코레일이 연출을 맡자 민간 사업자도 개발 이익을 보고 뛰어들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내부적 관점의 예측,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 오류, 비합리적 인내가 사업 실패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용산 개발에서도 이런 오류가 보인다. ‘코레일 경영 정상화’라는 내부적 관점의 개발 계획은 ‘36만 명의 고용 창출과 67조 원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기대하는 낙관적 전망만 부풀렸다. 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는 “대형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막대한 투자 유치와 분양 실패에 대한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했다. 코레일은 경제위기 이후 계획 오류가 드러났는데도 사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민간 투자자에게 유리하도록 3차례 계약을 변경해줬다. 사업성 논란이 불거지고 공기업의 자산을 이용한 개발사업이 누더기가 돼가는 동안 감사원의 제대로 된 감사조차 받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코레일은 사업 주도권을 쥐고 공영개발 방식의 단계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확실하다. 용산 개발을 되살리려면 내부의 눈이 아니라 외부의 관점으로 사업 규모, 개발 방식, 수익성을 재검토하고 사업 표류의 책임까지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원점으로 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플랜B’까지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81년 런던 템스 강변의 버려진 부둣가인 카나리워프 재개발에 착수해 ‘시티 오브 런던’과 함께 세계적 금융 허브로 키웠다. 대처는 이 일대를 ‘기업 투자지구’로 정하고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는 과감한 해외 투자 유인책을 내놔 템스 강변을 세계 자본의 젖줄로 바꿨다. 영국을 버리고 세계를 선택해 영국을 살린 것이다. 용산은 명성은 뒤떨어지지만 접근성과 도시 기반시설은 버려진 부둣가였던 카나리워프보다 낫다. 용산도 시장 변화에 맞게 투자자 관점에서 사업을 재설계하고 위험을 분산해야 승산이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교육 법률 콘텐츠 같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 ‘창조경제 특구’로 만들어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수익성과 함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한다면 특혜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산 개발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취임했다. 1978년 12월 27일 아버지인 박정희 9대 대통령 취임식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했던 그는 35년이 지난 어젠 취임식의 히로인이 됐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임기를 시작한 아버지와 같은 61세다. 굴곡 많았던 삶을 대변하듯 그는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레이디로, 대통령으로 취임식에 참석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대통령 취임식 장소는 한국 민주화와 정치사의 궤적이다. 건국의 기틀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1∼3대)은 중앙청을 선호했다. 4·19혁명 이후 취임한 윤보선 4대 대통령은 취임식 장소를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서울 태평로 현 서울시의회)으로, 대통령 취임사는 ‘대통령 인사’로 바꿔 몸을 낮췄다.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5∼9대)은 중앙청 광장으로 되돌아갔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당선된 8대와 9대 취임식은 장충체육관 실내. 전두환 대통령(11, 12대)은 같은 실내지만 잠실체육관으로 바꿨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을 애용하기 시작한 건 1987년 민주화와 직선 대통령 이후다. ▷체육관 밖으로 나온 취임식은 축제의 장으로 진화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선언한 노태우 13대 대통령은 1988년 취임식에 일반인을 처음 초청했다. 21발의 예포도 발사했다. 국가 공식행사에 국악이 쓰인 것도 이때부터. 김영삼 14대 대통령은 임기 개시에 맞춰 보신각종을 33번 울렸다. 이후 ‘신한국 창조-다함께 앞으로’(김영삼), ‘화합과 도약의 새출발’(김대중), ‘새로운 대한민국 하나 된 국민이 만듭니다’(노무현), ‘함께 가요, 국민 성공시대’(이명박), ‘통합과 전진, 국민의 삶 속으로’(박근혜)처럼 주제가 있는 취임식이 관례가 됐다. DJ DOC(김대중), GOD(노무현), 김장훈(이명박), 싸이(박근혜)처럼 연예인들이 식전행사를 달구는 것도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취임식 전 외환위기(김대중), 대구지하철 참사(노무현), 숭례문 화재(이명박), 북한 3차 핵실험(박근혜) 같은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는 징크스가 이어졌다. 시민의 위상도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인 참석자를 단상 위로 올렸고, 박근혜 대통령은 가족석을 단상 밑으로 내렸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은 일궜지만 ‘80년대 복지국가 건설’은 비전만 제시하고 끝난 아버지에 대한 헌사처럼 들린다. 그가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완수하려는 ‘대통령의 딸’을 넘어 ‘대통령 박근혜’로서 직무를 수행하면 좋겠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이 취업난과 생활고, 빚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연간 일자리가 30만 개 늘었지만 대학을 졸업할 나이인 20대 후반 청년들(25∼29세)의 일자리는 오히려 10만 개가 줄었다. 지난해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 수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유독 29세 이하 청년층에서는 늘어났다. 청년 실업은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기인한 단기적,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제의 구조적인 난제다. 국경이 사라진 세계무대에서 기업 사이의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경쟁은 국가 간, 세대 간의 ‘일자리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동, 아프리카, 남유럽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의 분노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김상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대 정부에서 청년 문제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청년들에게 심어주는 일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을 ‘청년 일자리를 끌어들이는 자석’으로 만들어 50%대로 떨어진 청년 고용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박근혜 정부가 세운 ‘고용률 70%’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그러자면 대통령이 직접 청년 문제를 챙겨야 한다. 우리 사회를 청년 일자리에 친화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환골탈태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해외로 떠난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끌어오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성을 보이는 기업이나, 기득권을 내려놓는 대기업 노동조합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사회적 대타협도 이뤄야 한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성과는 맨주먹으로 일어선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청년들도 어려운 환경 탓만 하지 말고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실력을 쌓아 가야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1997년 개봉된 영화 ‘페이스오프(Face off)’에는 안면 이식수술이 등장한다. 경찰(존 트래볼타)이 의식을 잃은 범죄자(니컬러스 케이지)의 얼굴을 이식받고 범죄조직에 잠입한다. 페이스오프는 ‘아이스하키에서 퍽을 가운데 놓고 경기를 시작한다’ 혹은 ‘대결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이 영화가 흥행한 이후에는 안면 이식수술을 통한 ‘얼굴 교환’을 상징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의사들의 대답은 ‘노(No)’이다. 영화처럼 얼굴 조직 전체를 떼어내 옮기면 민감한 얼굴 세포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피부가 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프랑스의 한 병원이 개에 물려 코와 입이 뜯겨나간 여성에게 뇌사자의 얼굴 조직을 이식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들이 광고하는 ‘페이스오프 성형’도 영화와 달리 눈, 코, 얼굴형을 조금씩 뜯어 고쳐 전체 인상을 바꾸는 종합 성형수술을 과대 포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눈 코 입 사이의 거리와 비율, 머리카락 등의 이미지와 표정 정보를 조합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다. 사람의 얼굴 인식 능력은 침팬지보다 떨어진다. 하루 전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마주치면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TV에서 본 유명 인사를 거리에서 만나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범죄를 목격한 사람이 범죄자를 잘못 짚기도 한다. ▷이런 허점을 노리고 뒤가 구린 도망자들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성형을 하는 사례가 일어난다. 20일 경찰에 체포된 47억 원 횡령 용의자인 윤모 씨(34)는 수배 전단과 얼굴이 너무 달라 경찰을 깜짝 놀라게 했다. 코를 높이고 눈을 키우는 성형 수술을 받았다는데 지인이 아니면 몰라볼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경찰이 앞으로 성형외과에 수배 전단을 붙이는 방안까지 고민할까. 홍채 귀 등의 ‘신체 정보’나 손가락 움직임, 걷는 모습과 같은 ‘행동 정보’를 활용하는 보안기술로 ‘페이스오프 범죄자’를 잡아내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녀를 위한 국적 쇼핑, 전관예우, 논문 표절 등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사회지도층의 ‘안면 몰수’를 적발하는 일은 첨단 과학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예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세계적인 스타 벤처기업인이 태평양을 건너 고국에 돌아왔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인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은 미국 이민 1.5세대다. 38세에 미국 400대 부자에 들 정도로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토종 벤처기업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여러모로 겹친다. ▷김 후보자는 1960년 서울, 안 씨는 1962년 부산 출생이다. 김 후보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안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다. 김 후보자는 1992년 큰딸 이름(유리)을 따 미국에서 통신장비 벤처인 유리시스템스를 창업했고, 안 씨는 이보다 3년 뒤인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정보보안 회사인 안철수연구소를 세웠다. 김 후보자가 메릴랜드대 교수, 안 씨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으로 학계에서 활동한 것도 비슷하다. 김 후보자는 스탠퍼드대 한국학 강좌에 2004년 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직원들에게 주식 40%를 나눠 줬다. 둘째딸의 이름을 딴 ‘주리 재단’도 만들었다. 안 씨도 초기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상 배분했다. 지난해 2월 안철수재단을 설립하고 보유 주식의 절반을 내놓았다. ▷출신 배경, 활동 무대와 규모를 놓고 보면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김 후보자가 1975년 이민을 떠나 메릴랜드의 빈민촌에서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죽기 살기로 공부한 자수성가형이라면 안 씨는 ‘엄친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 후보자는 1998년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했다. 안 씨가 1997년 세계 최대 백신회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금액이 1000만 달러였으니 규모 면에서 약 100배의 차이가 있다. 김 후보자는 한국 문화와 언어에 서툴고, 안 씨는 ‘우물 안 벤처기업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씨의 귀국설과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을 비교하는 사이버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논객 변희재 씨는 16일과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종훈 이분, 장관으로선 모르겠으나 민간 시장에서의 경력으로 보면 안철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글로벌 리더”라고 포문을 열었다. ‘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은 트위터에서 “그들의 종미(從美) 근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예측 가능하다”고 맞섰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안 씨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고, 성장동력이 꺼져 가는 한국 경제가 구원투수로 김 후보자를 불러들였다. 김 후보자는 건너온 다리를 진심으로 불사르고 고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함으로써 첫 조각(組閣)을 마무리했다. 1, 2차 인선에서는 정무 감각이 뛰어난 육군사관학교 출신, 법조인, 관료 카드를 꺼냈지만 경제 부처가 중심이 된 이번 3차 인선에서는 전문가 그룹을 중용(重用)했다. 부처 특성에 따라 ‘육·법·공·전(陸·法·公·專)’의 인사를 두루 포진시킨 ‘박근혜 인사 스타일’의 완결판이다. 박 당선인은 5년 만에 부활하는 경제부총리에 행정고시 14회 출신의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내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는 윤상직 지식경제부 1차관을 내부 발탁했다. 과감한 변화와 개혁보다는 안정을 지향한 인사로 보인다. 박 당선인이 강조한 창조경제의 비전을 실행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는 벤처기업인 출신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을 깜짝 발탁했다. 측근인 진영 새누리당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앉혀 복지공약 이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내비쳤다. 농림축산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국책 연구원이나 학계 출신 전문가그룹을 내정했다. 박 당선인은 경제팀 인선에서 능력과 전문성을 공직 경험이나 명성보다 중시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별개다. 전문가형 리더들이 자기 영역에 매몰돼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전문가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장관이 조직을 초기에 장악하지 못하면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부처 간 칸막이 철폐와 융합적 사고’도 물 건너갈 것이다. 능력을 중시하다 보니 출신 지역의 다양성이나 여성 인재의 발탁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현 부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는 실무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한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도 있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할 경제 사령탑으로는 카리스마가 부족한 ‘올드 보이’의 귀환이라는 비판도 들린다. KDI 내부에서는 “너무 정치적이어서 연구원들의 신망을 잃었다”는 부정적인 평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책을 틀어쥐고 경제 부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면 부총리는 있으나 마나다. 박 당선인이 “경제만큼은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믿고 맡겨야 부총리의 영(令)도 서고 관료사회도 한 방향으로 개혁에 매진할 수 있다. 김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1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사정과 관료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 내정 발표 사흘 전에야 한국 국적을 회복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이번 발표에서도 빠졌다. 당선인을 보필하고, 원활하게 국정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보좌진의 인선도 한시가 급하다. 대통령 취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청와대 인선도 서둘러 ‘준비된 대통령’이 맞는지 보여주기 바란다.}
지난해 국세(國稅) 수입이 2004년 카드 사태 이후 8년 만에 목표액을 밑돌았다. 소비 부진과 주식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겹쳐 부가가치세, 관세, 농어촌특별세 등이 각각 1조 원 넘게 덜 걷혔다. 이 바람에 국세 징수액이 목표 대비 2조8000억 원 차질이 생기고 지난해 거둔 세금에서 이미 쓴 돈과 올해로 넘겨 지출할 몫을 뺀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도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적자를 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막판의 경기 침체로 후임 정부에 사상 처음 ‘마이너스 통장’을 물려주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적자 장부를 받아 들고 빠듯한 나라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박근혜 차기 정부의 어깨에 놓인 짐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역대 정부는 전임 정부가 넘겨준 조 단위의 세계잉여금을 종잣돈 삼아 세금을 깎아주거나 공약을 이행하는 데 쓸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넘겨받을 장부에는 그럴 여윳돈이 없다. 경기 부양과 복지 공약을 위한 추가경정예산도 적자 국채를 찍어 감당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5년간 135조 원에 이르는 대선 공약 재원까지 마련해야 한다. 경제가 지금처럼 나쁠 때는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거나 고소득자 세제 감면을 축소해도 걷을 수 있는 세금이 그리 많지 않다. 증세(增稅) 없이 기존 예산을 절감해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는 것도 어렵다. 박 당선인의 ‘증세 없는 공약 실천’ 의지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재원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세수 부족과 나랏빚 증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는 경제 살리기에 둬야 한다. 대선 공약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찔끔찔끔 설명을 하거나 이리저리 끼워 맞춰 135조 원을 마련하는 데만 급급해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공약수를 줄이고 우선순위와 속도를 조절해서라도 공약의 실행 가능성을 높일 책임이 차기 정부에 있다. 필요하다면 복지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거나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세금을 어디에서 어떻게 더 걷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과정도 거쳐야 한다. 미적거리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경기 부진에 ‘엔저(低)’ 공세까지 겹쳐 올해는 나라곳간을 채우는 일이 더욱 가시밭길이다. 정부는 올해 4% 성장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하고 세입 예산안을 짰지만 한국은행과 민간기관들은 그 반 토막인 2%대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종합소득세와 법인세가 목표보다 더 걷혀 부족한 세수를 메웠지만 올해는 대기업과 자영업자의 실적 악화로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세수가 약 2조 원 줄기 때문에 적자 나라살림이 두 해 연속 계속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한두 해에 끝날 단기 불황이 아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경제 체질을 바꾸자면 균형감과 통찰력을 갖춘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에 앉히는 일이 중요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어제 제과업 외식업 등 서비스업 14개 업종과 플라스틱 봉투 등 제조업 2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했다. 매출 200억 원 이상, 종사자 200인 이상의 대기업은 앞으로 3년 동안 골목 상권에서 빵집이나 음식점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위치와 점포 수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다.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대기업의 진입을 막는 울타리를 높이 쳐준 셈이다. 하지만 경쟁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이지, 골목 상권을 근본적으로 살리는 치료약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을 무분별하게 늘려 전체 점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소속 점포 사이에 거리 제한을 둘 필요는 있다. 그러나 대기업은 골목 상권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진입 장벽을 둘러치는 것은 지나친 규제다. 시장 경쟁을 차단해 중간에서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 같은 자영업자인 프랜차이즈 빵집 사장과 독립적인 동네 빵집 사장, 기존 점포와 신규 점포 사이의 차별도 논란거리다. 이번 조치로 보호막 안에 자리 잡게 된 기존 점포는 권리금이 높아지는 등 이득을 얻지만 새로 창업에 나서는 점주가 들어갈 틈은 더욱 좁아진다. 역차별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골목 상권이 살아나려면 동네 빵집이나 음식점들이 서로 힘을 합쳐 체계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척해야 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에 전혀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지닌 대전의 성심당이나 서울의 김영모과자점 같은 성공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대기업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관련 노하우를 제공해 상생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 바람직하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고전하는 것은 구조적인 측면이 크다.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빵집 음식점 등 서비스업의 창업에 대거 나서면서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과당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2배에 이른다.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가 급성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정부 차원에서 복지 여가 환경 등과 같이 수요가 늘고 있는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전업(轉業)이나 전직(轉職)을 지원하는 교육 훈련과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골목 상권 대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중견 서비스업으로 커나가려는 사업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서 서비스업 선진화에 역행할 소지가 있다. 작은 빵집에서 시작한 자영업자가 성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길을 터주고, 대기업은 내수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야만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과거 베트남을 지배하던 프랑스 총독부는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꼬리에 보상금도 걸었다. 그러자 쥐는 줄지 않고 꼬리 없는 쥐가 돌아다녔다. 쥐가 번식을 해야 돈을 번다는 것을 간파한 베트남 농민들이 꼬리만 자르고 쥐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인도인들은 영국 총독부가 인도에서 맹독성 코브라에 보상금을 걸자 집집마다 코브라를 사육하는 ‘코브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베트남과 인도 농민이 특별히 부도덕한가. 포상금만 제대로 쳐준다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돈과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 무시한 정책은 헛심만 쓰고 실패할 소지가 크다. 사람을 탓하기 전에 부당이득의 유혹부터 제거해야 한다. 세계 석유 정제 능력 6위의 한국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막대한 가짜 석유 시장도 정책이 만든 대표적인 ‘코브라 비즈니스’다. 가짜 석유로 인한 탈세 규모는 연간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무자료 거래와 유가보조금 부정 환급까지 합하면 3조7000억 원의 세금이 줄줄 샌다는 분석이 있다. 가짜 석유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기름값 상승을 부추긴다. 김형건 대구대 교수는 “가짜 석유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정유 4사의 독점을 깨는 독립 폴 주유소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처럼 인도(人道) 밑에 탱크를 설치한 무인주유소를 가짜 석유 천국인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가짜 석유는 세금이 만든 괴물이다. 19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가 유류세를 대폭 인상하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가짜 휘발유는 메탄올, 톨루엔, 용제를, 가짜 경유는 값이 싼 등유나 용제를 섞어 만든다. 휘발유값이 L당 1884원이라고 가정할 때 가짜 휘발유 원가가 진품보다 53원 비싸다. 그런데도 가짜 석유를 만드는 이유는 휘발유에는 917원, 가짜 원료인 용제에는 102원의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가짜를 판매하면 L당 762원의 세금이 이윤으로 떨어진다. 엄청 남는 장사다. 한국석유관리원이 지난해 용제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였더니 용제 소비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가짜 석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알 만하다. 가짜 경유도 똑같이 세금 차이(175원)를 노린다. 박근혜 차기 정부가 지하경제의 암 덩어리인 가짜 석유에 칼을 빼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막대한 대선 공약 재정(5년간 약 134조5000억 원)을 장만하자면 가짜 석유 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더 세금을 걷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식경제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주유소의 석유 수급 현황을 매일 들여다보는 석유 수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주유소를 전 방위로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단속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주유소들이 영업시간을 최대한 줄여 신고하고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영업외 시간에 가짜 석유를 판매한다면 속수무책이다. 30여 년간 가짜 석유를 근절하지 못한 이유는 처벌과 단속만 강화하고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송용이나 난방용 등으로 쓰이는 서로 다른 에너지원 간의 세금 차이는 가짜 석유 유통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력 같은 에너지원의 과소비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2005년 2차 개편 이후 누더기처럼 변한 에너지 세제를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탄소세 도입도 3차 에너지 세제 개편의 틀에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연간 20조 원이 넘는 유류세를 걷으면서도 가짜 석유에 대한 관심이 낮다. 가짜 휘발유를 막기 위해 용제에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을 붙이고 나중에 환급해 주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은 이런저런 현안에 치이고 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짜 석유는 이제 품질이 아니라 세금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고용 변호사가 400명이 넘지만 해외에는 사무소가 없다. 세계 5위의 영국 로펌 클리퍼드 챈스는 변호사만 3400명, 세계 25개국에 35개 지사를 두고 있다. 이 로펌은 2011년 한국에 법률시장의 빗장이 풀리자 곧장 달려왔다. 국내에는 미국과 영국 로펌 13곳이 진출해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로펌들이 해외시장 공략은커녕 최근 늘어난 한국 기업의 국제소송에서도 배제되고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법률서비스를 내수 산업으로만 보고 진입 규제의 보호막을 둘러친 결과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가 ‘손톱 밑 가시’라면 교육 의료 법률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의 규제는 서비스업 선진화를 가로막는 ‘사슬’이다. 역대 정부는 서비스업 육성을 강조했으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과 서비스의 공공성만 강조하는 시민단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조기 유학으로 달러와 일자리가 새고, 태국과 싱가포르가 의료 관광객을 쓸어 가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박근혜 차기 정부가 ‘7070 목표(중산층 70% 복원, 고용률 70% 달성)’를 달성하려면 서비스산업의 구조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동아일보가 어제 보도한 ‘서비스 가시 뽑아야 일자리 새살 돋는다’ 기획 시리즈는 규제에 가로막혀 잃어버린 서비스업 일자리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해외 관광객이 한 해 200만 명 늘어나면 호텔 일자리 1만8000개가 창출된다. 서울 시내에 관광호텔 하나 지으려면 70개의 도장과 18단계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할 정도로 복잡한 규제를 간소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늘리면 2020년까지 교육 의료 법률 콘텐츠 등 4개 분야에서 최대 35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다. 미국 텍사스메디컬센터(TMC)처럼 의료 교육 법률 등 서비스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특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은 지난해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고 14년 만에 서비스수지 흑자도 일궈냈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비행기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40개나 있다. 서비스업을 통해 안방에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여건이다. 자녀 교육과 관광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국민부터 붙잡아야 한다. 국내 부유층이 안방에서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질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 해외 부자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골목 상권의 울타리를 높이는 일에만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비스업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고 서비스업을 선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길이 열린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려면 서류전형의 높은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일부 기업은 입사지원서에 대학과 대학 성적, 어학 성적, 인턴 경험, 공모전 입상 경험은 물론이고 키, 몸무게, 자격증, 가족사항, 부모 재산 같은 세세한 개인정보까지 쓰도록 요구한다. 그렇다 보니 학벌과 외모 차별 논란이 일고 지원서를 빽빽이 채우기 위한 ‘스펙(취업에 필요한 각종 자격이나 점수) 경쟁’이 치열하다. 고용노동부가 그제 직무 능력 평가 중심의 ‘역량기반 지원서-역량 테스트-역량 면접’ 모델을 공개했다. 스펙 경쟁을 없애고 능력 중심의 채용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뜻이다. 역량기반 지원서에는 학력이나 어학 성적 대신 교내외 활동, 자격사항, 인턴 근무 경험 같은 직무 역량을 자세히 쓰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주민등록번호, 신체 조건, 부모의 재산, 가족사항을 적는 칸도 없다.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보다 직무 능력과 리더십을 쌓기 위해 학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를 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직접 채용 모델을 개발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고용부는 이 방식을 올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권고하고 맞춤형 방식을 개발해 민간기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종과 철학이 천차만별인 기업에 무리하게 정부가 만든 일률적인 채용 잣대를 강요한다면 시장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학력과 어학 성적을 빼면 학벌주의와 스펙 경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안이하다. 학력이야말로 지원자의 잠재력과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변별력이 있는 기준 중의 하나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넘나드는 입사 전형에서 객관적 기준인 학력을 아예 빼는 것은 ‘깜깜이 채용’을 하라는 것과 같다. 선택은 기업에 맡겨야 한다. 어느 나라나 명문대학은 있다.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이 모여 대학의 평판을 만들고, 이런 대학이 배출한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국가 경제와 사회를 진일보시킨다. 실력은 보지 않고 출신 학교만으로 차별하거나 특정 대학 출신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며 자리와 부를 독점하는 학벌주의는 척결해야 한다. 하지만 우수 대학과 부실 대학의 구분까지 무너뜨릴 이유는 없다.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이 지금보다 더 늘어야 일자리도 늘고 청년 취업난도 풀린다. 학력과 학벌을 혼동해서도 안 된다. 기업도 채용 편의를 위해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뽑는 그룹 공채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 기업처럼 부서별로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는 직무 중심의 채용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직업’보다 ‘직장’만 추구하는 청년들의 스펙 경쟁이 사라질 것이다.}
연봉 5000만 원인 근로자가 지난해 종교단체 등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면 올해 초 연말정산에서 전액을 소득공제 받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신용카드나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같은 다른 소득공제 항목의 지출이 크거나 지정 기부금 액수가 너무 많으면 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한다. 정부가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지정 기부금을 포함한 8개 항목의 소득공제 한도를 2500만 원으로 슬그머니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8개 항목을 합친 소득공제 금액이 2500만 원을 넘긴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기부문화는 초기 단계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지만 기부지수는 지난해 45위에 그쳤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도 기부문화를 더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국가가 기부를 장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불리하게 세법을 설계한 것은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개인 지정 기부금 소득공제를 과세대상 소득의 15%(2008년)에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는 30%까지 늘릴 것을 권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공제 비율을 30%로 늘렸지만 1년 만에 한도 설정이라는 꼼수로 시곗바늘을 뒤로 돌렸다. 재정부는 공제 한도를 넘는 지정 기부금은 최대 5년간 나눠서 공제받을 수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학교, 병원에 낸 법정 기부금은 전액 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부금을 많이 낼 형편이 안 되는 중산층과 서민에겐 이번 세법 개정이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수 김장훈 씨 같은 고액 ‘기부 천사’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해 말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재정부가 급하게 법안을 제출하고 국회가 그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두 기관은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복지 공약을 뒷받침하자면 쌀독을 박박 긁어야 할 형편이다. 전국 2만여 개 지정 기부금 단체 가운데 일부 단체가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멋대로 발행해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방조하는 사례는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며 어물쩍 넘어가면서 직장인의 ‘유리 지갑’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기부금 단체를 지정하는 심사와 사후 관리는 강화해 나가되 원칙도 절차도 무시한 조세특례제한법은 원래대로 재개정해야 한다.}

기업인의 신년사도 유행을 탄다. 기업 환경과 경영 트렌드가 바뀌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는 신년 목표에 “○○업계 1등이 되자”는 식의 ‘성과 독려형’ 표현이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일류기업’ ‘글로벌 선도기업’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은 ‘착하게 벌자’가 대세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랑받는 기업’을 화두로 던진 게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회사의 탐욕을 감시하는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외부 압력만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바뀌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라젠드라 시소디아 미국 벤틀리대 교수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랑받는 기업’ 28곳을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떠들썩한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경쟁사의 2배나 되는 수익을 내고 있었다. 마케팅 대가인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한술 더 떠 미래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단언했다. ▷동아일보가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리서치앤리서치(R&R)와 함께 조사했더니 시민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착한 기업’은 매출액이나 사회공헌 지출 비용과는 순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수십 년간 소신을 갖고 꾸준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온 유한킴벌리, 우정사업본부(우체국택배), 한국야쿠르트와 같은 중견기업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일회성 이벤트나 돈만 쏟아 부어서는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지난해 국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327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국내 기업과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지출 비율은 큰 차이가 없었다.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벌고 쓰느냐에 따라 인지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설립자인 이본 슈이나드는 “죽은 별에서는 어떤 비즈니스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본령은 이윤 추구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것이긴 하지만 사회나 협력업체 투자자 종업원 고객과 같은 이해관계자와 상생하지 못하면 기업 자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아무리 많이 해도 경쟁력이 부족해 문을 닫는다면 사회에 더 큰 피해만 줄 뿐이다. 최근 기업들이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빈곤, 물 부족, 건강 등과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도 올리는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모델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