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광호텔 하나 짓는 데 도장 70개의 규제 사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고용 변호사가 400명이 넘지만 해외에는 사무소가 없다. 세계 5위의 영국 로펌 클리퍼드 챈스는 변호사만 3400명, 세계 25개국에 35개 지사를 두고 있다. 이 로펌은 2011년 한국에 법률시장의 빗장이 풀리자 곧장 달려왔다. 국내에는 미국과 영국 로펌 13곳이 진출해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로펌들이 해외시장 공략은커녕 최근 늘어난 한국 기업의 국제소송에서도 배제되고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법률서비스를 내수 산업으로만 보고 진입 규제의 보호막을 둘러친 결과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가 ‘손톱 밑 가시’라면 교육 의료 법률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의 규제는 서비스업 선진화를 가로막는 ‘사슬’이다. 역대 정부는 서비스업 육성을 강조했으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과 서비스의 공공성만 강조하는 시민단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조기 유학으로 달러와 일자리가 새고, 태국과 싱가포르가 의료 관광객을 쓸어 가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박근혜 차기 정부가 ‘7070 목표(중산층 70% 복원, 고용률 70% 달성)’를 달성하려면 서비스산업의 구조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동아일보가 어제 보도한 ‘서비스 가시 뽑아야 일자리 새살 돋는다’ 기획 시리즈는 규제에 가로막혀 잃어버린 서비스업 일자리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해외 관광객이 한 해 200만 명 늘어나면 호텔 일자리 1만8000개가 창출된다. 서울 시내에 관광호텔 하나 지으려면 70개의 도장과 18단계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할 정도로 복잡한 규제를 간소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늘리면 2020년까지 교육 의료 법률 콘텐츠 등 4개 분야에서 최대 35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다. 미국 텍사스메디컬센터(TMC)처럼 의료 교육 법률 등 서비스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특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은 지난해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고 14년 만에 서비스수지 흑자도 일궈냈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비행기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40개나 있다. 서비스업을 통해 안방에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여건이다.

자녀 교육과 관광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국민부터 붙잡아야 한다. 국내 부유층이 안방에서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질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 해외 부자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골목 상권의 울타리를 높이는 일에만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비스업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고 서비스업을 선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길이 열린다.
#변호사#법률서비스#서비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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