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가짜 석유의 ‘코브라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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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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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논설위원
박용 논설위원
과거 베트남을 지배하던 프랑스 총독부는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꼬리에 보상금도 걸었다. 그러자 쥐는 줄지 않고 꼬리 없는 쥐가 돌아다녔다. 쥐가 번식을 해야 돈을 번다는 것을 간파한 베트남 농민들이 꼬리만 자르고 쥐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인도인들은 영국 총독부가 인도에서 맹독성 코브라에 보상금을 걸자 집집마다 코브라를 사육하는 ‘코브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베트남과 인도 농민이 특별히 부도덕한가. 포상금만 제대로 쳐준다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돈과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 무시한 정책은 헛심만 쓰고 실패할 소지가 크다. 사람을 탓하기 전에 부당이득의 유혹부터 제거해야 한다.

세계 석유 정제 능력 6위의 한국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막대한 가짜 석유 시장도 정책이 만든 대표적인 ‘코브라 비즈니스’다. 가짜 석유로 인한 탈세 규모는 연간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무자료 거래와 유가보조금 부정 환급까지 합하면 3조7000억 원의 세금이 줄줄 샌다는 분석이 있다. 가짜 석유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기름값 상승을 부추긴다. 김형건 대구대 교수는 “가짜 석유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정유 4사의 독점을 깨는 독립 폴 주유소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처럼 인도(人道) 밑에 탱크를 설치한 무인주유소를 가짜 석유 천국인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가짜 석유는 세금이 만든 괴물이다. 19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가 유류세를 대폭 인상하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가짜 휘발유는 메탄올, 톨루엔, 용제를, 가짜 경유는 값이 싼 등유나 용제를 섞어 만든다. 휘발유값이 L당 1884원이라고 가정할 때 가짜 휘발유 원가가 진품보다 53원 비싸다. 그런데도 가짜 석유를 만드는 이유는 휘발유에는 917원, 가짜 원료인 용제에는 102원의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가짜를 판매하면 L당 762원의 세금이 이윤으로 떨어진다. 엄청 남는 장사다. 한국석유관리원이 지난해 용제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였더니 용제 소비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가짜 석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알 만하다. 가짜 경유도 똑같이 세금 차이(175원)를 노린다.

박근혜 차기 정부가 지하경제의 암 덩어리인 가짜 석유에 칼을 빼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막대한 대선 공약 재정(5년간 약 134조5000억 원)을 장만하자면 가짜 석유 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더 세금을 걷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식경제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주유소의 석유 수급 현황을 매일 들여다보는 석유 수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주유소를 전 방위로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단속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주유소들이 영업시간을 최대한 줄여 신고하고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영업외 시간에 가짜 석유를 판매한다면 속수무책이다.

30여 년간 가짜 석유를 근절하지 못한 이유는 처벌과 단속만 강화하고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송용이나 난방용 등으로 쓰이는 서로 다른 에너지원 간의 세금 차이는 가짜 석유 유통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력 같은 에너지원의 과소비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2005년 2차 개편 이후 누더기처럼 변한 에너지 세제를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탄소세 도입도 3차 에너지 세제 개편의 틀에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연간 20조 원이 넘는 유류세를 걷으면서도 가짜 석유에 대한 관심이 낮다. 가짜 휘발유를 막기 위해 용제에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을 붙이고 나중에 환급해 주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은 이런저런 현안에 치이고 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짜 석유는 이제 품질이 아니라 세금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베트남#코브라 비즈니스#가짜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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