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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 중계 때 다른 국가들을 비하해 비판을 받은 MBC가 마지막 날 마라톤 중계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8일 육상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 오주한 선수가 부상으로 경기 도중 기권하자 MBC 윤여춘 해설위원이 오 선수를 힐책하는 발언을 한 것. 케냐에서 우리나라로 귀화해 올림픽에 출전한 오 선수는 이날 초반 선두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13km 지점을 넘어가면서 다리를 절뚝거렸고 15km 지점에서 결국 경기를 포기했다. 그러자 윤 해설위원은 한숨을 쉬며 “완전히 찬물을 끼얹네요, 찬물을 끼얹어”라고 말했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MBC가 올림픽 참가 선수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선수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해설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했다’, ‘mbc 중계는 개회식부터 마지막까지 최악이다’ 등의 비판 글이 이어졌다. MBC노동조합(3노조)은 ‘마지막까지 막말 쏟아낸 올림픽 중계, 박성제 사장 사퇴하라’는 성명을 냈다. 앞서 MBC는 지난달 23일 개회식 중계 때 우크라이나 선수단 소개 장면에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진을 쓰는 등 여러 국가에 모욕적인 내용을 내보내는 ‘중계 참사’를 빚었다. 25일에는 한국과 루마니아의 남자 축구경기를 중계하면서 상대 팀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에 해외 주요 언론사들이 MBC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고, 해당 국가 관계자들이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비판이 커지자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이후에도 인터뷰 자의적 편집, 자막 실수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축구팬이라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잠에서 깬 적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순위 싸움은 응원하는 구단의 경기를 놓칠 수 없게 한다. 짜릿한 골 장면은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럽 스포츠 담당 기자와 편집자인 저자들은 10년간의 EPL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EPL이 어떻게 212개 나라에서 방영될 만큼 성공한 산업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EPL 출범 전까지 영국에서 축구는 사양산업으로 여겨졌고, 구단들은 입장료라는 주 수입원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TV 중계를 반대했다. 성공의 발단은 모순적이게도 구단들의 재정난이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1989년 4월 힐스버러 스타디움의 입석 구역에 수용 인원을 초과하는 관중이 입장하며 96명이 압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부는 관중이 많은 영국 리그 상위 구단에 전석 좌석제 경기장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경기장 개조 비용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 상위 22개 구단은 영국 리그에서 탈퇴한 후 TV 중계료, 광고 수익, 기업 후원 등의 이익을 위해 1991년 EPL을 출범시켰다. 이후 EPL의 각 구단은 그들만의 경영 전략을 세워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구단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공모해 자금을 모았다. 아스널은 시즌권 평생 갱신권을 일시불로 판매하는 제도를 도입해 재정을 늘려갔다. 토트넘 홋스퍼는 유망한 어린 선수를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재정을 불렸다. 새로운 구단주를 등에 업고 성장한 구단도 있다. 선수들의 월급도 못 줄 위기에 처했던 맨체스터 시티는 졸부 산유국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했던 아부다비의 왕자 셰이크 만수르가 2008년 구단을 매입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첼시 역시 2003년 정유 회사 시브네프트를 운영하던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구단주로 만나 세계적인 팀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세계화와 EPL의 성공이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구단과 연고지와의 유대는 그저 구단이 지역 사회에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그쳤고, EPL 상위 구단들은 작은 구단들과 수익을 분배해야 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PL의 시작과 현재를 들여다보며 위기가 부른 성공, 성공 너머 도사리고 있는 위기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방탄소년단(BTS·사진)의 ‘버터(Butter)’가 올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에서 최장 기간(9주) 1위를 차지한 곡이 됐다. 빌보드는 2일(현지 시간) BTS의 버터가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총 9주간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앞서 8주간 1위를 유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드라이버스 라이선스’를 뛰어넘은 기록이다. 올 5월 21일 발매된 버터는 지난달 발표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에 한 주만 1위를 내준 뒤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 퍼미션 투 댄스까지 포함하면 BTS는 10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는 셈. 현재 퍼미션 투 댄스는 핫100 9위에 올라 있다. 버터 신기록의 원동력은 높은 음원 판매량이다. BTS 리더 RM은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늘 과분한 무언가를 씌워주셔서 참 황송하면서도, 우리 것이지만 절대로 여러분 것이라고 마음 깊이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동시 시청자 수 12만8000여 명. 유명 인플루언서가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진행된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 장인(53)의 라이브 커머스에 몰린 사람들의 수다. 김 장인은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금박장을 만드는 과정과 그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조선시대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신부가 착용하던 ‘도투락댕기’를 소개할 때는 당시 왕실과 관계된 이들만 금박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0만 원대인 금박 명함함, 금박 카드지갑은 판매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MZ세대가 즐겨 찾는 라이브 커머스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네이버와 함께 올해 6월부터 매달 한 명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출연하는 라이브 커머스를 열고 있다. MZ세대에게 전통을 알리기 위해서다. MC를 맡은 방송인 박경림 씨(42)가 장인의 공방으로 찾아가는 토크쇼 방식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한다. 시청자는 영상으로 공방을 둘러보고, 작품 제작 과정도 볼 수 있다. 장인들이 라이브 커머스에 도전하게 된 건 전통 문화를 알리는 기존의 방식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기호 장인은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강연과 작품 제작 시연에는 많아야 50여 명이 참석했다”며 “대학생 아들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방식의 홍보가 젊은 세대에게 전통공예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건 생소한 경험이긴 하다. 6월 라이브 커머스에 나선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 박명배 장인(71)은 시청자들의 “귀엽다”는 반응에 당황하며 수줍게 웃음 지었다. 그의 라이브에는 7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모였다. 박 장인은 “나무의 무늬를 담는 표현 기법 등을 설명해 예술품으로서 우리 전통 목가구의 조형성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조명과 카메라가 있는 생방송 환경과 실시간 소통은 처음이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토크쇼도 장인들에게는 낯선 방식이다. 김기호 장인이 아내에게 금박댕기를 생일선물로 준 것에 대해 박 씨가 묻자 김 장인은 당황했다. 시청자들은 댓글로 “너무 로맨틱하다”, “댕기 주는 사람 있으면 결혼해야죠 ㅎㅎ”,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와∼ 멋져요!”라는 반응을 남겼다. 김 장인은 “기존 방송에서는 작품에 대해서만 말했기에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답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달 19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장인(77)의 쇼핑 라이브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MBC ‘놀면 뭐하니’의 MSG워너비 편에서 유재석이 착용한 머리 장식을 만들었다. 김 장인은 “섬유라는 소재 특성상 매듭은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서 제 작품을 통해 매듭의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시도에 나선 장인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게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의 사명감이다. 박명배 장인은 “무형문화재는 방치해 두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전통을 계승하고 보급할 수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도 기꺼이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라이브 커머스를 기획한 한국문화재재단의 김희정 상품기획팀장은 “수공예 작품이라 종류가 아주 다양하지 않고 가격이 비싼 작품도 일부 있어 아직 매출이 많지는 않았다”면서도 “대중이 무형문화재에 친숙해지도록 이를 널리 알릴 방법을 연구해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동시 시청자 수 12만8000여 명. 유명 인플루언서가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진행된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 장인(53)의 라이브 커머스에 몰린 사람들의 수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MZ세대가 즐겨 찾는 라이브 커머스에 도전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네이버와 함께 올해 6월부터 매달 한 명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와 함께 하는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고 있다. MZ세대에게 전통을 알리기 위해서다. MC를 맡은 방송인 박경림 씨(42)가 장인의 공방으로 찾아가는 토크쇼 방식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한다. 시청자는 영상을 통해 공방을 둘러보고, 작품 제작 과정도 지켜볼 수 있다. 장인들이 낯선 라이브 커머스에 도전하게 된 건 전통 문화를 알리는 기존의 방식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기호 장인은 7월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강연과 작품 제작 시연에는 많아야 5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며 “대학생 아들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방식의 홍보가 젊은 세대에게 전통공예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MZ세대가 접근하기 좋은 방식으로 바꾼 결과 그는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12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에게 전통 문화를 알릴 수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건 생소한 경험이긴 하다. 6월 라이브 커머스에서 나선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 박명배 장인(71)은 시청자들의 “귀엽다”는 반응에 당황하며 수줍게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의 라이브에는 7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모였다. 박 장인은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는데, 조명과 카메라가 있는 생방송 환경과 실시간 소통은 처음이라 정작 준비한 것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토크쇼도 장인들에게는 낯선 방식이다. 김기호 장인이 아내에게 금박댕기를 생일선물로 준 것에 대해 박 씨가 묻자 김 장인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들은 댓글로 “너무 로맨틱하다”는 반응을 남겼다. 김 장인은 “방송에서는 작품에 대해서만 말했기에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달 19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장인(77)의 쇼핑 라이브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 장인은 MBC ‘놀면 뭐하니’의 MSG워너비 편에서 유재석이 착용한 머리장식을 만들었다. 김 장인은 “실시간 소통하는 이런 라이브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장이들이 M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낯선 방식에 도전하면서도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의 사명감이다. 김혜순 장인은 “한국 전통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고 말했다. 박명배 장인 역시 “무형문화재는 그냥 방치해두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전통을 계승하고 보급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이라도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전통 문화와 MZ세대 문화의 결합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번 라이브 커머스를 기획한 한국문화재재단 김희정 상품기획팀장은 “전통 공예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느끼고, 장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통문화를 알리려 했다”며 “무형문화재를 친숙하게 여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조선 18세기 후반 제작된 신윤복(1758∼?)의 ‘연소답청(年少踏靑)’은 봄을 맞이한 젊은이들이 교외에 나가 푸른 풀을 밟는 답청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천민인 기생들이 말에 타고, 나이 어린 양반 집안 자제들은 담뱃대 시중을 든다. 신분제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남녀가 어울리는 시간을 갖고자 했던 청춘들의 설렘이 그림에서 새어나오는 듯하다. ‘사랑에 밑줄친 한국사’는 역사 속 사랑이야기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건 중심인 역사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개인들의 사연이다. 특히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의 로맨스, 스캔들을 소개해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율곡 이이(1536∼1584)는 기생을 향한 ‘플라토닉 사랑’을 펼쳤다.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이이는 기생 유지에게 흠뻑 빠진다. 이이는 기생의 딸로 태어난 유지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수청을 들게 하는 대신 학문을 전수해준다. 그것도 잠시. 이이가 떠나고, 그들은 9년이 지나 다시 만난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이이는 유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완곡한 거절과 내세의 인연을 약속하는 연서를 남기고 4개월 뒤 세상을 떠난다. 파격적인 밀애도 있다. 1417년 태종 때 환관 정사징은 왕의 형님의 첩, 상왕 정종의 시녀와 간통했다. 1425년 세종 때는 시녀 내은이가 왕이 쓰던 푸른 옥관자(망건에 다는 작은 고리)를 훔쳐 환관 손생에게 준 일도 있었다. 신분상 왕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온갖 욕망을 참고 살아야만 했던 이들의 일탈인 셈이다. 걸출한 예술가이자 학자가 아내에게는 온갖 어리광과 투정을 부린 귀여운(?) 이야기도 있다. 1840년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해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한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아내에게 쓴 편지를 온갖 반찬 투정과 힘들다는 어리광으로 도배한다. 떨어져 있어도 추사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던 부인 예안 이씨는 끝내 추사의 마지막 편지를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추사는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부인의 부고를 접했다. 이런 사랑 이야기 속에는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의 가부장적 이념이 녹아있다. 여성은 기생으로서 수청을 들어야 했고, 부인으로서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했으며, 왕의 소유물인 궁녀는 밀애를 나눴다는 이유로 참형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인 저자는 조선시대의 각종 서신과 일기 등 기록을 통해 외조하는 남자들을 그린다. 정치적 가부장제가 모든 가정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살림꾼으로는 퇴계 이황(1501∼1570)이 있다. 퇴계는 음식과 의복 같은 안살림부터 농사와 노비 관리까지 집안 살림을 모두 주관했다. 심지어 자신이 한양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대신 살림을 관리하도록 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부인을 잃고 홀로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그는 직접 반찬거리를 만들어서 두 아들에게 보냈고, 편지로 반찬이 맛있는지를 묻는다. 살림과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되던 그 시대 남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와 외조하는 남자들이라는 당대 남녀 관계의 이모저모는 흥미로운 미시사에 빠져들게 한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20cm가 채 안 되는 목간(木簡·나무 막대로 제작한 고대 문서)에 낙서 같은 한자가 적혀 있다. ‘지치삼년(至治三年)’. 지치는 원나라 황제 영종(1303∼1323)의 연호로, 지치삼년은 1323년을 말한다. 이 목간은 1976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발견된 중국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에서 나왔다. 신안선 목간에는 배의 항해 시기와 목적지, 화물 종류 등의 핵심 정보들이 담겨 있다. ‘수중유물, 고려바다의 흔적’ 특별전이 27일부터 인천 연수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선 등 각종 침몰선에서 출토된 유물 4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신안선 발굴 이후 45년간 이어온 국내 수중 발굴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안선 목간을 지나면 옛 선원들의 선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나온다. 특히 2010년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에서 발굴된 13세기 고려선박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돼지 머리뼈’가 눈길을 끈다. 마도 2호선은 전북 고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조운선으로 추정된다. 조운(漕運)은 국가가 세금으로 거둔 물품을 강이나 바다 등의 물길로 운송하던 제도다. 해일과 풍랑에 맞선 선원들은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는데, 돼지 머리뼈는 당시 동물들이 제물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2011년 발굴된 13세기 고려선박 마도 3호선과 신안선에서는 돌로 만든 장기 알과 주사위가 각각 발견됐다. 최소 한 달은 걸리는 항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원들이 다양한 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주인에게 닿지 못한 난파선의 유물도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수중 발굴된 유물 대다수는 고려청자와 백자 등의 도자기다. 고려 선박에서 나온 유물의 경우 최소 800년 넘은 것들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침몰 과정에서 바닷물이 완충 역할을 했고, 오랜 시간 갯벌에 파묻혀 조류 등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이 중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청자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 꽃무늬 매병’(보물 제1783호)을 주목할 만하다. 13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청자 매병은 중앙정부에 보낼 참기름을 담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S자 곡선의 몸체가 조화를 이룬 고려 상감매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특히 매병을 둘러싼 6개의 마름꽃 무늬 안에 황촉규(닥풀), 갈대, 버드나무, 대나무, 모란, 국화를 흑백 상감으로 표현했다. 전시에는 2010년 인천 옹진군 섬업벌 해역에서 발굴된 8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교역선 영흥도선을 위한 6.6m² 크기의 별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영흥도선은 지금까지 발굴된 우리나라 고선박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배다. 이곳에서는 영상과 더불어 바닥에 그려진 실측도를 통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이번 전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중 발굴과 옛 선원들의 선상 생활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20㎝가 채 안되는 나무 조각에 낙서 같은 한자가 적혀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엔 유리 진열장 한가운데 이것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한자들을 다시 읽어본다. ‘지치삼년(至治三年)’. 지치는 원나라의 황제 영종(1303~1323)의 연호다. 지치삼년은 1323년을 뜻한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돼 우리나라 수중 발굴의 시작을 알린 중국 무역선 신안선의 출항 시기를 알려주는 목간(木簡)이다.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에 배의 항해 시기와 목적지, 화물 종류 등을 적은 목간은 수중 유적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다. ‘수중유물, 고려바다의 흔적’ 특별전이 27일부터 인천 연수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선 발굴 이후 45년간 이어온 국내 수중 발굴 성과를 신안선과 고려 선박에서 인양된 수중유물 450여점을 통해 선보인다. 신안선의 목간을 지나면 선원들의 선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등장한다. 특히 2010년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에서 발굴된 13세기 고려선박 마도2호선에서 발견된 ‘돼지 머리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도2호선은 전북 고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조운선으로 추정된다. 조운(漕運)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물품들을 물길로 운송하던 제도다. 해일과 풍랑에 맞섰던 선원들은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는데, 돼지 머리뼈는 당시 동물들이 제물로 쓰였음을 알려준다. 또 2011년 발굴된 13세기 고려시대의 마도3호선과 신안선에서 발견된 돌로 만든 장기알과 주사위를 통해 최소 한 달 이상인 항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원들이 다양한 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주인에게 닿지 못한 난파선 속 유물도 볼 수 있다. 수중 발굴된 유물의 대부분은 고려청자와 백자 등의 도자기다. 최소 8세기 이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침몰과정에서 바닷물이 완충 역할을 했고 오랜 기간 갯벌에 파묻혀 부식과 바다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그 중 마도2호선에서 발견된 ‘청자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 꽃무늬 매병’(보물 제1783호)이 시선을 끈다. 13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청자 매병은 관리에게 보낼 참기름을 담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S자 곡선의 몸체가 조화를 이룬 고려 상감매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매병을 둘러싼 6개의 마름꽃 무늬 안에 각각 황촉규(닥풀), 갈대, 버드나무, 대나무, 모란, 국화를 흑백 상감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0년 인천 옹진군 섬업벌 해역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의 교역선 영흥도선을 위한 약 6.6㎡ 크기의 별도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영흥도선은 지금까지 발굴된 우리나라 고선박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배다. 이 곳에서는 영상과 바닥에 그려진 실측도를 통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이번 전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중 발굴과 당시 선원들의 선상생활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조선시대 ‘대신마누라도’는 머리에 가채를 올린 푸근한 인상의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대신마누라는 이 시대 최악의 역병이던 호구마마(천연두)를 물리치는 신으로 여겨졌다. 병과 고통에서 중생을 구원하는 약사여래를 묘사한 ‘석조약사여래좌상’도 백성들이 감염병의 공포를 이기는 수단이 됐다. 두 유물은 팬데믹 와중이던 지난해 5월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 역병에 맞서다’ 전시에서 공개됐다. 이 전시에는 1774년 무과 합격자 18명의 초상화를 모은 등준시무과도상첩(登俊試武科圖像帖)도 나왔다. 18명 중 3명의 초상화에서 천연두를 앓은 얼굴 흉터가 확인될 만큼 천연두는 조선 사회를 휩쓸었다. 조선시대 역병에 대한 두려움은 괴담으로도 발전했다. 괴담에는 역병에 대한 인식과 대처 등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조선 광해군 때 문신 유몽인(1559∼1623)이 17세기 초에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譚)에는 유생 박엽의 역병에 얽힌 괴담이 실려 있다. 1594년 4월 박엽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지방으로 피란을 떠났다가 한양으로 돌아왔다. 옛집은 쑥대밭이 돼 있었고, 거리는 굶거나 역병에 걸려 죽은 시신들로 가득했다. 정처 없이 떠돌던 박엽은 밤거리에서 선비 집안의 미녀를 만났고, 그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박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옆에 어젯밤 만난 미녀의 시신이 누워 있었던 것. 집안 곳곳엔 미녀 가족들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정신을 차린 박엽은 관을 갖춰 시신을 수습한 후 제사를 지낸다. 박엽 괴담에는 전란 후 역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백성들의 참혹한 현실이 그려져 있다. 실제로 선조실록에는 1594년 흉년으로 일부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권혁래 용인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올 3월 발표한 논문 ‘17세기 재난문학 어우야담을 통해 보는 재난상황과 인간존중 정신’에서 “어우야담의 괴담은 흉년으로 인한 참상을 기술하고 위정자들이 하늘의 뜻을 살펴 재해를 대비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세기 중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청구야담(靑丘野談)에도 역병을 다룬 괴담이 전한다. 비가 내리던 밤 영의정을 지낸 이유(1645∼1721)는 종묘 근처에서 비릿한 냄새에 발길을 멈췄다. 이윽고 불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방립(비를 피하기 위한 갓)을 쓰고 도롱이(짚을 엮어 만든 비옷)를 입은 채 외다리로 뛰는 사람이 한 가마를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 외다리치곤 믿기지 않는 빠른 속도에 느낌이 이상했던 이유는 뒤를 쫓았다. 가마에 탄 이는 괴질에 걸린 이유의 친척 며느리였다. 이유는 이윽고 외다리 귀신이 며느리 옆에 있는 걸 발견했다. 이유가 귀신의 눈을 노려보자 귀신은 방에서 뛰쳐나갔고 며느리는 건강을 되찾았다. 이유의 괴담에서는 역병이 귀신으로 형상화됐다. 박수진 성결대 강사는 논문 ‘조선후기 야담집에 나타난 역병의 형상화 양상과 그 의미’에서 “역병을 귀신 이야기로 그려 인간이 귀신을 쫓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역병 같은 문제를 개인들이 직접 해결한다는 것이다. 현혜경 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기근, 질병처럼 국가가 해결해야 할 대규모의 사회 문제가 괴담을 통해 개인적 차원에서 비현실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모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기계발서가 꾸준히 오른다. 솔깃한 이야기들이 표지에 적혀 있다. 삶을 변화시켜 보기 위해 자기계발서 하나를 고른다. 하지만 책에 나온 조언이 내게 적합한지 쉽게 알 수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 해설가 졸렌타 그린버그와 오디오 프로듀서이자 진행자인 크리스틴 마인저가 만나 50권의 자기계발서대로 살아본 이야기를 담았다. 자기계발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 온 마인저와 자기계발서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린버그는 각종 조언들을 해볼 만한 것과 별로였던 것으로 나눠 소개한다. 이들은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숀다 라임스)에 나온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는 제안을 따랐더니 괜찮았다고 말한다. 꺼리던 것들을 ‘좋다’고 여기면서 행동에 옮기는 시도가 용감한 선택이 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며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속옷 차림으로 술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을 권하는 ‘팬츠 드렁크’(미스카 란타넨)의 조언도 해볼 만한 것으로 추천한다. 쉬는 날 계획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의미해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크릿’(론다 번)의 ‘생각대로 된다’는 법칙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흑인의 예를 들며 흑인이 차별받고 싶다고 생각을 해서 미국 사회에서 상처를 받아온 것이냐고 되묻는다. 이 법칙은 대물림되는 차별을 가리고,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도 단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그치는 주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여러분을 제일 잘 아는 전문가는 여러분 자신”이라며 자기계발서의 조언을 일단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해당 조언을 따르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문화재계에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로 통하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의 디지털 콘텐츠 판매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의 얼’에 해당하는 상징성 큰 문화재를 상업화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 일각에선 문화재 대중화에 기여하고 우리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2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00개 한정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로 발행하고자 한다”며 “디지털 자산으로 영구 보존하는 한편 미술관 운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다음 달 중순에 발행 예정인 훈민정음 해례본 NFT의 개당 가격은 1억 원으로 총 100억 원 규모다. 간송미술관은 보물급의 통일신라시대 불상 2점을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 내놓는 등 재정난을 겪고 있다. NFT는 이미지 등 디지털 파일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고유 값을 부여한 것이다. 진품 여부와 더불어 소유권을 보증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를 NFT로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문화재가 자칫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려하고 있다. 황선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화재 소유자가 자신의 의지로 하는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행적이 묘연한 상주본을 제외하고 사실상 유일한 훈민정음 인쇄본인 간송본이 이렇게 이용되는 건 국어 연구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반론도 있다. 문화재 원본의 가치를 독점하기보다 대중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콘텐츠 판매가 필요하다는 것.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디지털 기술 발달로 디지털화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오히려 실물에 가까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며 “개인이 소장해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재일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엄격한 문화재 관리 여건상 해외 반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NFT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국내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는 데 제약이 많다 보니 국내의 우수한 문화재를 해외에 알리는 게 쉽지 않다”며 “NFT를 통해 문화재를 소개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은 NFT 발행을 위한 디지털 촬영 과정에서 훼손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탁본, 영인하거나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할 때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NFT 사진 촬영으로 문화재가 훼손될 가능성은 낮아 허가 대상이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관련 법률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지학계 일각에서는 고서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해체가 불가피해 훼손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란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원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고유한 값을 부여해 소유자와 생성일, 거래 내역, 불법 복제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77점 전시인왕제색도-금동불 ‘일광삼존상’ 등국보-보물 선보여… 특별 영상도 제작 98인치 대형 모니터에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를 촬영한 영상이 흐르고, ‘인왕산을 거닐다’라는 문구가 천천히 뜬다. 치마바위 등 인왕산 곳곳을 찍은 영상 위로 인왕제색도에 담긴 치마바위가 겹친다. 약 270년 전 그림 속 인왕산과 2021년 현실 속 인왕산이 만나는 순간. 국립중앙박물관(국박)이 특별 제작해 서울 용산구 전시실에서 선보이는 5분 20초 분량의 영상이다. 21일 막을 여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기획한 이수경 국박 학예연구관은 “명품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높이가 8.8cm에 불과한 금동불 ‘일광삼존상’(국보 134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살상 뒤 광배(光背·부처나 보살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에 그려진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는 성스럽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삼존불 중앙에 부처 대신 보살이 있는 형태는 당시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아름답고 섬세한 삼국시대의 미(美)를 잘 나타내는 불상”이라고 평가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려시대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화엄경·국보 235호)이 있다.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로 불경을 옮겨 적었다. 섬세한 글자와 화려함이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을 보여준다. 화엄경 맞은편에는 조선시대 서화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단원(檀園)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와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다. 먹을 듬뿍 묻혀 여름철 비가 갠 직후의 느낌을 살린 인왕제색도와 마른 먹을 이용해 가을의 메마른 느낌을 날카롭게 담아낸 추성부도는 한눈에도 확연히 대비된다. 넘쳐나는 그림 주문으로 자신감 넘쳤던 겸재의 노년과 건강 악화로 죽음과 마주했던 단원의 쓸쓸한 노년이 담겼다. 고려시대 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졌다고 해서 천수관음보살이지만, 전부 그릴 수 없어 11면의 얼굴과 44개의 손으로 표현했다.국립현대미술관, 근현대작 58점 전시 이중섭의 ‘황소’-‘흰소’ 나란히 걸려박수근-유영국-장욱진 등 대표작 포함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포스터에 담긴 작품은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상을 바탕으로 인물과 동물, 사물을 정면 혹은 측면으로 그려 고답미를 물씬 풍긴다. 1950년대 삼호그룹 정재호 회장이 주문 제작한 대작으로, 1960년대 말 미술시장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1973년)은 그가 1960년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후 완성 단계에 이른 점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흰 사각형 안 동심원들이 세 방향으로 퍼져 나가며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는 당시 점, 선, 면만으로 이뤄진 추상화 실험을 이어갔다. 김환기 작품의 대각선 방향 건너편으로 이중섭(1916∼1956)의 ‘황소’(1950년대)와 ‘흰 소’(1950년대)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인내를 상징하는 소는 이중섭에게 한국의 상징이자 자화상이었다. 이 중 붉은 황소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새로운 출발의 시점에 그려졌다. 붉은 황소를 그린 이중섭의 현존 작품 4점 중 하나다. ‘황소’가 소의 머리를 부각했다면 ‘흰 소’는 걷고 있는 소의 전신을 역동성 있게 묘사했다. 흰 소는 백의민족을 상징해 일제강점기 당시 작품 소재로 사용하는 게 금기시됐다. 박수근(1914∼1965)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은 화강암의 거친 질감이 소박한 정취를 자아낸다. 아이를 업은 채 절구질하는 여인의 고단한 모습을 포착했다. ‘서민 화가’로 불린 박수근은 농가의 일하는 여인들을 평생 그렸다. 유영국(1916∼2002)의 ‘작품’(1972년)은 산을 모티브로 했다. 그는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통해 산의 형태에 변주를 준 연작들을 남겼다. 1972년작은 차가운 색채를 썼지만 나란히 진열된 1974년작 ‘작품’은 따뜻한 주홍빛으로 그려 대비된다. 장욱진(1918∼1990)의 ‘나룻배’(1951년)는 6·25전쟁 기간에 그려진 것으로 어릴 적 고향에서 본 강나루의 풍경을 정감 있게 표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의 ‘사기장의 공방’. 창가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사발 160여 점이 진열된 나무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모양새의 투박한 사발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오른쪽 벽 모니터에서는 사기장이 도자기를 만드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흙 반죽 전 바가지에 물을 담아 뿌리는 소리와 가마 속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불타는 가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의 초점이 풀린다.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 따로 없다. 폭염을 피해 휴가를 떠나고 싶지만 팬데믹 탓에 불안하다. 박물관은 방역지침에 따라 회당 관람 인원이 제한돼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휴식이 가능하다. 이른바 ‘혼박’(혼자 박물관 구경하기)을 만끽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내 주요 공간을 알아봤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분청사기·백자실은 ‘달멍’(달을 보며 멍하니 있기) 명당으로 꼽힌다. ‘백자 달항아리’(보물 제1437호)가 있기 때문이다. 9.9m² 크기의 유리 진열장 한가운데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오래 들여다보면 곡선이 주는 안정감과 백색이 주는 순수함에 빨려든다. 달항아리 뒤로는 두 죽마고우가 항아리를 감상하는 전통 수묵화가 겹친다. 이제 잠시 멍해질 시간. 달이 항아리인지, 항아리가 달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중국실에서는 남송 화가 마원(馬遠)의 그림을 비롯해 명청대 산수화 6점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전시공간과 구분돼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은은한 황색 조명과 나무 바닥, 녹색 벽이 어우러져 편안함을 선사한다. 바로 옆 일본실에는 일본 국보로 선정된 다실(茶室) 다이안(待庵)이 자갈정원과 함께 재현돼 있다. 다이안은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를 위해 만든 다실로 솥과 다도용품 외에 어떠한 실내 장식도 없는 검박함을 보여준다. 정원 뒤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덴류지(天龍寺) 정원의 동영상이 재생된다. 다실 모형 앞에 앉아 일본 정원의 사계절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일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불상들에 둘러싸여 묘한 신비로움도 경험할 수 있다. 불교조각실에 들어서면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을 포함한 철불(鐵佛) 2점과 ‘감산사 미륵보살상’(국보 제81호) 등 석불(石佛) 4점이 소파 하나를 빙 두르고 있다. 관람객 이모 씨(30)는 “불자는 아니지만 사방에서 불상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세상과 분리돼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물 감상 중간에 잠시 쉬어가고 싶다면 같은 층 이집트실의 창가 휴식공간을 이용해보자. 파란 하늘과 우거진 숲, 거울못 연못 등 박물관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안쪽 전시관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인물로 이 박물관에 소장된 유일한 사람 미라인 토티르데스 시신과 목관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야외공간도 힐링 포인트다. 박물관 경내 곳곳에 마련된 오솔길에서는 배롱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들의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다. 하늘이 어둑해진 후에는 박물관에서 용산가족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통해 석조물정원을 들러보자. 어둠 속에서 야간조명을 받은 석탑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살면서 수없이 들어본 제목이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고전’ 소설이다. 꼭 읽어야지 결심하고 책을 넘겨보지만 결말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앞쪽에 손때만 늘어간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 ‘동물농장’ 등을 번역한 저자는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서구 문학 배경의 양대 산맥인 이성주의와 감성주의를 다루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두 사상적 흐름은 화합과 대립을 반복하며 문학 발전을 이끌었다. 저자는 고전을 집필 당시 삶의 모습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토머스 모어(1478∼1535)의 ‘유토피아’를 다루기에 앞서 양모 가격 급등으로 인클로저 운동이 발생한 16세기 영국 상황을 보여주는 식이다. 유토피아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팽배한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베르테르 효과를 낳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성과 합리성에 맞서 감정과 개성을 주창한 문학운동인 18세기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주인공 베르테르는 감정과 욕망이 살아있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지금까지 다섯 번 영화화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1920년대 미국의 재즈 시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억눌려 있던 대중의 욕망은 종전 후 재즈음악과 함께 폭발했다. 이 시기 미국의 키워드는 돈과 쾌락이었으며, 소비가 미덕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주인공 개츠비가 여는 사치스러운 파티를 통해 이를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는 “대다수의 책이 단명하는 것과 달리 세월의 시련을 겪어 내며 당당히 서가에 꽂혀 있는 것 자체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고전을 읽고 싶었지만 그 무게에 눌려 쉽게 다가서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다시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경북 경주시의 5, 6세기 신라시대 고분에서 키가 약 180cm에 이르는 장신 인골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인골 중 가장 키가 크다. 1500여 년 만에 발견된 인골은 이례적으로 유실된 부분 없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다. 한국문화재재단은 15일 경주시 탑동 유적 내 2호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 발굴 과정에서 신장 180cm의 남성 인골이 나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골반 뼈의 해부학적 구조가 남성의 것이라고 판정했다. 앞서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남성 인골의 키는 165∼167cm였다. 인골은 발견 당시 턱이 가슴 쪽으로 당겨져 있었고 쇄골은 V자 형태로 척추가 휘어져 있었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신라시대 매장 당시 평균 신장에 맞춰 제작된 관에 시신을 구부려 넣는 과정에서 쇄골, 척추 등에 변형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는 척추 변형의 원인으로 노화나 직업 특성, 시신 보관 과정 등 여러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 인골은 낮은 지대의 습지에 묻혀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런 지형은 물기를 머금은 진흙이 시신을 일시에 덮어 외부 공기를 차단한다. 발굴조사를 담당한 한국문화재재단의 우하영 부팀장은 “인골 발견 당시 주변 땅이 축축했다”고 설명했다. 발굴단은 인골 주변에 무기류나 값진 장식품이 매장돼 있지 않은 점으로 미뤄 장신 인골이 하위 계층의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왕따와 폭력이 교문 안에 국한된 문제라는 한국 사회 인식에 의문을 가졌다. 왕따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뉴질랜드 출신의 트렌트 백스 이화여대 사회학과 부교수는 9일 펴낸 ‘외국인 사회학자가 본 한국의 집단 따돌림: K폭력’(한울엠플러스)에서 학교폭력의 원인을 집단주의 문화에서 찾는다. 그는 2012년 한국에 온 뒤 ‘한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그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오기 직전 해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 심각한 사건이 여러 건 이어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의 학교폭력을 분석한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홍콩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중국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를 연구했다. 한국에 온 그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1∼2013년 서울소년원에 위탁된 학교폭력 가해 중고교생 20명을 분석해 이 중 16명이 폭력적인 가정환경에 노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이 부모의 폭력적인 훈육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가출뿐이었다. 그는 “부모의 학대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그 부모들도 상당수가 아동기에 학대당하고 방치된 경험이 있었다는 여러 연구 결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신간에서 그는 한국의 따돌림 문화의 원인으로 군사정권 때 본격화된 집단주의 문화를 지목한다.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 과정에서 개인은 위계적인 사회질서에 순응하며 이를 체화했다. 한국 사회의 수직적 집단주의 성향이 직장 선후배 관계나 부모와 자녀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산업구조의 변화로 촉발된 개인주의가 기존의 집단주의 문화와 충돌하며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주의 사회의 특징은 소외다. 집단주의가 잔존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따돌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학교에서 일진이 약한 학생들을 이른바 ‘셔틀’로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하는 식이다. 그는 “한국의 따돌림은 집단에 의한 사회적 배척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일대일 괴롭힘 위주의 서구 사회와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의 따돌림 문화를 끊기 위해서는 가해 학생들에 대한 다른 차원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다른 이들과 친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들의 부모가 권위주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그는 “가정에서 배운 게 학교와 직장에서 자녀의 행동을 형성한다”며 “비행 청소년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에게 양육 기술을 교육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시각에 더해 촉각까지 가미된 박물관 체험형 전시가 늘고 있다. 레플리카(모조품)나 소수의 유물을 관람객이 직접 만지며 감상하는 방식이다. 전시 교육기업인 ‘만지는박물관’은 전국 학교 등을 찾아가 소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기원후 5∼6세기 신라시대의 목긴토기항아리(장경호·長頸壺)나 조선시대 운현궁 백자, 한성백제시대 세발토기(삼족기·三足器) 등의 유물을 만져볼 수 있다. 이 밖에 청동기시대 한국형 동검과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의 레플리카도 있다. 만지는박물관은 100여 점의 유물 진품과 200여 점의 레플리카를 소장하고 있다. 황자정 만지는박물관 대표(53·여)는 “박물관을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시각장애인이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역사교육에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만지는 전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문화재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2019년 지정됐다. 국공립 박물관에서도 만질 수 있는 전시가 속속 열리고 있다. 거리 두기 4단계에 따른 관람 인원 제한과 소독제 비치 등 방역수칙 준수하에 열린다. 올 5월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호모사피엔스 특별전’에서는 인류 진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1부의 한 코너를 고(古)인골 28종의 표본으로 채웠다. 관람객은 약 700만 년 전 인류 화석으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부터 현재의 호모속까지 다양한 고인골의 두개골 등을 만져볼 수 있다. 특히 표본들의 두개골 크기와 신장을 실제 추정치에 맞춰 제작해 신체 진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호모사피엔스에 초점을 맞춘 2부에서는 선사시대 석기를 체험할 수 있다. 깨진 돌 조각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맞춰보면서 뗀석기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김동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진화라는 주제를 친근하게 전달하고 관람객이 과거를 체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져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인형극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도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박물관의 ‘나무 인형의 비밀-체코 마리오네트’ 기획전에서는 관람객들이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을 만져 보고, 소형 무대에서 인형극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 또 인형극에 쓰이는 음향 기구를 조작해 바람, 말발굽, 비, 천둥소리 등을 연출할 수 있다. 체코의 유랑 인형극단은 라디오나 TV가 없던 18세기 무렵부터 인형극을 통해 도시 곳곳에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체코의 전설이나 동화를 기반으로 한 인형극 공연은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달궈진 불판 위에 마블링이 잘된 소고기 한 점을 올려놓는다.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는 코를 자극한다. 지글지글 소리는 덤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려면 소를 도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소는 고통을 겪는다. 소가 내뿜는 메탄은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를 알게 된 이들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 주변에서 채식만 하는 삶을 선택하거나 육식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제목인 ‘신성한 소’는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생각, 관습, 제도를 말한다. 저자들은 고기가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육식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관습이라는 편견이 ‘신성한 소’라며 이에 대해 반박한다. 지속 가능한 식량 시스템을 위해 육식이 필요하다는 것. 영양사인 다이애나 로저스, 전직 생화학자인 롭 울프는 영양과 환경, 윤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질 좋은 고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우선 채식을 통해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물성 식품은 사람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필수 아미노산이 모두 들어 있는 콩은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날것으로 먹으면 문제가 생기거나 인지력 감퇴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식물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항영양소가 인간이 영양소를 흡수하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다. 채식 식단을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면 동물성 식품을 함께 섭취하는 게 건강에 더 좋다고 주장한다. 소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축이 내뿜는 가스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하며, 이는 운송 부문을 넘어선 규모였다. 하지만 저자들은 해당 수치가 잘못됐고 연구진도 이를 인정했다고 밝힌다. 게다가 사육장에서 키우지 않고 목초지를 옮겨 다니며 소를 키워 토양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경우 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소의 배설물이 토양의 수분 함량과 미생물의 다양성을 높이고, 그 결과 뿌리를 깊이 내린 식물이 더 많은 탄소를 땅 밑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풀을 먹은 소가 떠나면 풀이 다시 자라며 뿌리가 역시 깊어진다.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건 소 자체가 아니라 소를 관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육식보다 채식이 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물을 기르기 위해 인위적으로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건 물고기를 죽인다. 식물성 기름인 야자유가 인기를 얻자 야자유 생산을 위한 땅을 마련하느라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야자유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임금을 아주 적게 받거나 아예 못 받는다. 인간의 행동으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건 죽음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저자들은 “인간과 지구의 건강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건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식품”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생산을 위해 농약을 사용해 자연의 순환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채식주의에 반대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이 하려는 말은 육식과 채식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식량 생산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구조를 마련하려면 소가 필수적이다. 정확하게는 방목한 소다. 즉, 자연의 순환에 맞춘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식습관이 동식물을 포함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본 이들이라면 빠져들 만한 책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되던 공중 화장실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자취)가 처음 발견됐다. 1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화장실엔 현대식 개별 정화시설이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019년부터 경복궁 동궁(세자의 거처 및 직무공간, 각종 지원 시설이 있던 곳) 남쪽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근정전 동쪽 지역에서 화장실 하부 구조물을 발굴했다고 8일 밝혔다. 이 구조물은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직사각형으로, 석조 구덩이 형태였다. 해당 지역에 있던 각종 전각의 도면을 기록한 경복궁배치도(1888∼1890년)와 북궐도형(北闕圖形·1907년) 등의 문헌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 시설은 당시 궁녀와 하급관리, 군인들이 쓰던 공중 화장실이었다. 토양 분석에서 기생충 알 다량과 오이속, 들깨씨앗 등이 검출된 점도 화장실이었음을 뒷받침했다. 연구소 측은 “터에서 발견된 소뼈 등을 이용해 연대를 측정한 결과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서 20여 년 동안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헌 기록과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이 화장실은 총 4, 5칸으로 구성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화장실이 1칸에 2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던 점을 고려할 때 한 번에 최대 10명이 사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주목할 점은 화장실 하부 구조에 분변의 발효 및 침전 등을 위한 정화수를 유입하는 입수구와 오수를 배출하는 출수구가 있다는 것. 각각 높이를 달리해 설치된 입수구와 출수구 등은 개별 화장실마다 설치된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비슷하다. 바닥과 벽면을 돌로 만들고,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분뇨가 새거나 토양에 스며들지 않도록 한 것 역시 현대식 정화조와 비슷한 부분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현대식 정화조 시설 관련 기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구 터의 토양 분석을 통해 당시 식생활을 분석하는 등 궁궐 사람들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산수화 두 작품이 있다. 산을 그린 기법과 오른쪽에 강을 배치한 구도가 유사하다. 작품 상단에 글씨를 적고 화가의 호와 인장을 찍은 방식도 동일하다. 얼핏 보면 한 사람이 그린 작품 같다. 그러나 하나는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의 산수화이고 다른 하나는 위작(僞作)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봐도 어느 게 진작(眞作)인지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두 그림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진작의 사람과 나무는 각각 다르게 표현돼 있는 반면 위작에서는 대부분 획일적이다. 작품 상단의 글씨 역시 위작에는 진작과 다르게 제작 장소와 시기가 쓰여 있지 않고 인장도 흐릿하다.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 기획전이 내년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서화와 도자의 진작과 위작 등 80여 점을 소개해 관람객이 직접 위작을 구별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진위를 가리는 ‘감식안’을 기르는 데 한발 다가설 수 있다. 변관식의 산수화를 지나면 해공(海公) 신익희(1894∼1956)의 휘호 3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중에도 위작이 한 점 있다. 진작 2점과 비교해 보면 위작은 희(熙)자를 쓰는 방식이 다르고 글씨도 더 굵다. 진작을 따라하느라 붓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위를 구별할 때는 감정의 기준을 제시하는 진품인 ‘기준작’의 존재가 중요하다. 이번 기획전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서화를 수집할 때 감정을 담당한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의 감식안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다. 위창의 서화 수집 및 정리 작업 자체가 감식의 기준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위창이 처음부터 뛰어난 감식안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조선과 중국의 서화 작품을 수집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위창은 아버지가 수집한 작품들을 따라 쓰고(임서·臨書) 따라 그리며(임모·臨摹) 서화와 전각을 익혔다. 일본 망명 기간에는 일본 서화가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넓혔다. 빼어난 작품에 대한 모방과 예술가와의 교류는 전각과 서예에 두루 높은 안목과 예술가로서 독창성을 지닌 위창만의 토대가 됐다. 귀국 이후에도 위창은 예술에 조예가 깊던 당대 문인이나 서화가와 교류하며 감식안을 길렀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걸친 서화가, 문인, 학자들의 인장을 모은 책 ‘근역인수(槿域印藪)’를 엮는다. 인장은 진품을 담보하는 표시로 여겨지는데, 근역인수는 인장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또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근묵(槿墨)’은 고려 말부터 근대까지 600여 년 동안 유명 인물 1136명이 남긴 글씨를 위창이 모아 만든 서첩으로, 서화 진위 판별에 좋은 기준이 된다. 기획전에서는 고려 이후의 도자도 감상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10세기 무렵 중국의 특산물이던 도자기를 모방하면서 시작돼 11세기 후반에는 중국의 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제작하게 된다. 12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고려만의 비취빛 자기를 탄생시킨다. 관람객은 고려청자가 모방의 단계에서 창작물로 변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무료.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