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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한반도 운명은 기후가 결정했다

입력 2021-11-06 03:00업데이트 2021-1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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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힘/박정재 지음/352쪽·1만8000원·바다출판사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큰엉해안경승지의 산책로. 길 끝 나뭇잎들의 윤곽선이 한반도 지도를 연상시킨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기후변화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구 기온이 3도가량 오르면 세계에서 약 30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하고 동식물의 20∼50%가 멸종위기에 처한다. 지난달 말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현 추세라면 2030년까지 지구 기온이 평균 2.7도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 책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후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학과 지리학을 통합한 ‘빅 히스토리’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후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과거 사례들을 바탕으로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약 700만 년 전 등장한 고인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때부터 기후변화가 지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숲이 줄고 열대초원은 늘었다. 숲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초원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네 발로 걷는 것보다 효율적인 직립 보행을 선택했다.

한반도에 인류가 처음 등장한 때는 약 2만5000년 전. 약 11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는 5만 년 전 만주지방에 도착했다. 이들 중 일부는 2만9000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자 추위를 피해 한반도로 남하했다. 인류 이동에 기후변화가 핵심 변수였던 것. 따뜻한 기후에 힘입어 한반도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농경이 시작됐다.

저자는 한국 고고학계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송국리 문화의 갑작스러운 소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송국리 문화는 3000년 전부터 금강 중하류의 충청권을 중심으로 생성된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으로, 2300년 전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다. 저자는 전남 광양 섬진강 일대의 퇴적물 연구를 바탕으로 2800년 전과 2400년 전에 각각 발생한 극심한 가뭄이 송국리 문화의 소멸을 가져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남 부여군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등 청동기 유물. 3000년 전 생성된 송국리 문화는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이다. 사진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시기에 퇴적된 꽃가루 중 나무에서 만들어진 꽃가루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이는 당시 가뭄으로 나무의 꽃가루 생산성이 크게 줄었음을 뜻한다. 2800년 전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진 송국리 문화 집단은 전라도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때 일부 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에서 야요이 문화를 생성했다. 이어 2400년 전 2차 가뭄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송국리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도 기후와 연관짓는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을 낳은 영·정조 시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저자는 이때 태양 흑점 수가 증가해 지표로 유입되는 태양 복사에너지가 증가하면서 기온이 생활에 알맞게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직전인 현·숙종 때는 봄철 냉해와 여름철 홍수로 인해 1670년 경신 대기근, 1695년 을병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태양의 흑점 수가 영·정조 시기보다 적어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것.

저자는 “기후변화가 필연이라면 새로운 환경을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국리 문화가 국내에서는 사라졌지만 일본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인류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야 하는 현 인류에게 필요한 해법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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