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김상운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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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국보를 캐는 사람들’(글항아리)을 냈고,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을 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sukim@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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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스물다섯 李箱,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첫 발견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중략)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이상의 러브레터 중 일부)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이상의 소설 ‘종생기’)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러브레터가 처음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그의 소설 ‘종생기’에 등장하는 ‘정희’가 연서(戀書)의 주인공인 최정희 작가(1912∼1990)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의 친필 편지는 동료 작가 김기림과 안회남, 동생들에게 쓴 편지 10편만 알려져 있을 뿐 러브레터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이상 연구의 권위자로 편지를 직접 분석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편지의 글씨체가 영인문학관에 보관된 이상의 친필 유고와 일치하고 △편지 끝 부분에 ‘李箱(이상)’이라는 한자로 사인이 돼 있는 데다 △최정희가 생전에 “이상에게서 편지를 여러 통 받았지만 모두 찢어버렸다”고 말한 점을 들어 이상의 편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편지 본문에 시골생활 등이 언급된 걸 감안할 때 이상이 25세이던 1935년 12월에 편지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최정희는 23세의 젊은 이혼녀로 잡지사 삼천리에서 만난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1901∼?)과 사귀고 있었다. 그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 섰고, 이후 귀국해 조선일보와 삼천리 기자로 활동했다. 이미 시인 백석에게도 러브레터를 받는 등 젊은 시절 빼어난 외모와 지성으로 청년 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최정희가 이상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이상은 이 편지를 쓰고 2년 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러브레터는 열정적이면서도 애잔하다. 최정희가 끝내 자신의 구애를 외면하자 이상은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하게 있을 줄을 안다”며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라고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상은 편지에서 최정희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차마 전달하지 못한 이전의 편지글을 소개한다면서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는 솔직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편지를 건넬 당시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한 직후로 문단에서 한창 이름을 알릴 때였다. 그러나 직접 운영한 제비다방이 경영난 끝에 문을 닫고, 연인 금홍과도 이별하는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오랜 정신적 좌절에서 벗어나 ‘당신(최정희)을 위해’ 다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 권 교수는 “이상이 사실상 폐인 생활을 접고 잠시나마 글쓰기에 다시 나설 수 있었던 건 최정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상의 단편소설 ‘종생기’가 최정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정희(貞姬)가 최정희와 이름이 같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직장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소설에선 현실과 정반대로 정희가 주인공 ‘이상 선생’을 사랑하고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 정희는 다른 남성과 동시에 사귀는 등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권 교수는 “이번 연서의 발견으로 ‘종생기’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돼 문학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24일 이상 관련 문학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갖고 이상의 러브레터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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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펴낸 최원석 교수

    고시생과 스님, 무당이 공통적으로 즐겨 찾는 곳은? 바로 산이다. 이른바 ‘고시촌’이 생기기 전까지 법전을 들고 산사(山寺)를 찾는 고시 준비생들이 적지 않았다. 평지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곳을 찾을 순 있겠지만, 힘들게 능선을 오른 건 예사롭지 않은 산의 정기(精氣) 때문이리라. 이 책은 방대한 고문헌과 실제 답사를 바탕으로 산의 의미를 풍수지리 등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지리학을 전공하고 풍수지리로 학위논문을 쓴 최원석 경상대 교수(51)는 20여 년간 줄곧 산만 연구했다. 현재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지리산권 문화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 전 설악산과 베트남의 오행산을 다녀왔다는 최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산을 인문학으로 풀어낸다는 게 생경하다. “산을 자연생태학이 아닌 인문학적 시각으로 연구한 건 흔치 않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산에 대한 인문학 전통은 대단하다. 서양과 달리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합일(合一)의 정신이 있어 사람과 산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산을 탐구하면 인간의 삶이 보이고, 그게 바로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풍수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우리만의 차별성이 있는가. “예컨대 각 고을에서 경관이나 취락의 중심이 되는 큰 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는데 우리와 중국의 진산 개념이 매우 달랐다. 중국에선 명·청대까지 산세가 웅장하고 기이해 유명한 몇 개의 산만 진산으로 봤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중기에 전국 331개 고을 중 255개에 진산이 있었을 정도로 흔했고 마을과도 5리 이내로 가까웠다. 또 형태나 높이도 평범했다. 그만큼 인간의 삶과 밀착된 친근한 개념으로 산을 바라본 것이다.” ―책에 시간이 흐를수록 산이 인간화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에선 산의 개념이 ‘천산(天山)→용산(龍山)→조산(造山)’의 순서로 진화했다. 유사 시대 이전에는 단군 신화에서 보듯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천산이 중심이었다. 세월이 흘러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치수(治水)가 중요해지자 산과 하천이 만나는 용산이 대두된다. 배산임수의 주거를 꾸리면서 산의 부족한 형세를 메우려고 흙을 옮기고 나무를 심은 것이 조산이다.” ―부족한 형세를 채운다는 게 무슨 뜻인가. “경남 김해시에 가면 임호산(林虎山) 중턱에 사찰 하나가 있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가 흥미로운데 주민들은 임호산을 험상궂은 호랑이가 고을을 보고 걸터앉은 형상으로 봤다. 그래서 이 산의 흉한 모습을 누르기 위해 호랑이의 아가리 부위에 사찰을 지었다는 얘기다. 마치 병이 들었을 때 혈맥을 찾아 침을 놓는 이치와 비슷하다.” ―다른 문명권에는 조산이란 개념이 아예 없나. “그렇지 않다. 조산 문화의 본보기는 다른 지역에도 있다. 가장 오래된 건 기원전 22세기 고대 메소포타미아가 만든 ‘지구라트’다. 이 지역은 평지였기 때문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길 바란다는 염원으로 일종의 인공 산인 지구라트를 쌓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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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실용서]007이 삼성전자에 입사한다면…

    제임스 본드가 어느 날 MI6(영국의 정보기관)를 관두고 삼성전자에 입사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전직 CIA 요원인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내는 첩보원의 능력이 기업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첩보 현장을 누빈 저자답게 CIA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생생히 보여주고, 이를 비즈니스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 공장으로 의심되는 시설을 급습했지만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금 공장으로 확인됐다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도청과 정황 정보로 99% 확신을 가져도 현장의 인적 정보(휴민트·HUMINT) 하나에 모든 것이 뒤집힐 수 있다는 교훈이다.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첨단 정보기술(IT) 시대가 왔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고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첩보 혹은 비즈니스 세계 모두 결국에는 누가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그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원을 포섭하기 위해 대상자가 필요로 하는 ‘미끼’를 찾아내고, 심지어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사례가 흥미롭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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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워드 슐츠 교수 “급변 동북아 정세… 고려의 현실주의 외교서 길 찾아야”

    “한국에서 먹은 감자샐러드가 미국 오리지널보다 훨씬 맛있더군요. 고려시대가 딱 이랬어요.” 16일 서강대에서 만난 에드워드 슐츠 하와이대 명예교수(70·한국학)는 48년 전 부산에서 맛본 감자샐러드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1966년 당시 22세의 앳된 청년이었던 슐츠 교수는 평화봉사 단원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다. 부산 경남고에서 1년간 영어를 가르쳤는데, 하숙집에선 미국인 선생님에게 대접할 음식으로 종종 샐러드를 상에 올렸다. 거의 반세기 동안 한국과 연을 맺은 그는 해외 한국학 권위자로 손꼽힌다. 주로 조선을 연구하는 다른 해외 한국학 연구자와 달리 그의 전공은 고려시대. 슐츠 교수는 “고려는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 뒤 토착적인 요소와 잘 버무려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유교와 불교를 함께 수용하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전통을 한데 융합한 고려 특유의 문화 다원주의라는 것이다. 슐츠 교수는 그동안 최충헌 무신정권을 집중 연구했다. 한국을 처음 찾았던 그해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무신정권과 뭔가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궁리해 본 게 시작이었다. 슐츠 교수는 “박정희와 최충헌의 쿠데타 이후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성장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암흑시대로만 규정지을 순 없다”며 “두 사람 모두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결국 문치(文治)를 우선시한 것도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으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선 한국이 고려시대의 ‘현실주의 외교’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슐츠 교수는 17, 18일 연세대에서 열리는 ‘한국학과 세계 포럼’ 국제 학술회의에 발표한 논문 ‘고려와 현재’에서도 이를 지적했다. 논문에선 1127년 송나라가 금나라의 공격을 받고 황제가 납치되자 고려에 협공을 요청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당시 송은 오랜 우방이었지만, 고려는 철저한 정세 분석을 거쳐 협공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송나라는 이로부터 50여 년 뒤 결국 원나라에 무너졌다. 만약 고려가 도덕적 명분론을 앞세워 송나라를 도왔다면 실속 없이 국력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슐츠 교수는 “현실주의 외교로 국익을 지킨 김부식을 고려시대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당시 패권국인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국제 감각을 키웠고, 삼국사기를 지어 문화 융성에도 기여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다. 지금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는 그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고려시대가 잊혀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고려를 알아야 조선은 물론이고 현재의 대한민국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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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창희 교수 “집단적 자위권 냉정히 대응” 학술지 발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과연 우리나라에 독(毒)이기만 할까? 한미일 3각 동맹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최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지인 ‘국제정치 논총’에 발표한 ‘일본의 해석개헌, 위협인가 자산인가?’ 논문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한미일 동맹의 틀 안에서 잘 활용하면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는 동시에 북한 핵 위험에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3개국이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과도한 군국주의화를 제어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해 현 상황을 방치하면 일본 내 우파들이 헌법 개정까지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남 교수는 “(헌법 개정까지 한다면) 일본이 선제공격도 할 수 있어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처럼 될 수도 있다”며 “한미일 3국이 상호 보완해 안보를 분담하면 일본 단독의 군사행동을 막을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아베 신조 총리 등 일각의 국수주의적 우경화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냉정히 구분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한중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3국 간 협력만 강조하기는 부담스럽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3국 간 안보협력의 정도를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남 교수는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 수준을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맞춰 10단계의 로드맵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절차에 맞춰 3국의 군사협력 수준을 점차 낮추면 중국의 안보 우려를 던다는 논리다.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도 최근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학술지(국방연구)에 게재한 논문(‘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개념, 해석 그리고 헌법개정’)에서 “일본에 우리의 우려를 최대한 전달하고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우리 안보에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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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일전쟁을 ‘義戰’으로 본 대한제국, 동해-독도 탐사하고 海圖 만든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의 전제 군주국으로 정치가 부패했으며 남의 토지를 탐하는 성질은 대대로 변치 않았다. 이제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니 누구도 러시아의 패배를 불행히 여기지 않으며 … 일본의 이 전쟁은 가히 세계 초유의 의전(義戰)이라 일컬을 만하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지낸 김윤식(1835∼1922)의 일기 ‘음청사(陰晴史)’에 나오는 대목이다. 러시아를 영토 야욕에 물든 패권국으로, 일본을 이에 맞서 의로운 전쟁을 벌이는 나라로 묘사했다. 러일전쟁 직후 외교권과 독도 영유권을 잇달아 일본에 빼앗긴 점을 감안하면 당시 외교 수장의 국제관계 인식과 현실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느껴진다. 올해는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담론 형성’)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러시아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김윤식의 일기를 집중 분석했다. 그는 1865년 12월부터 50년 넘게 일기를 썼는데, 지금은 중국에 파견된 사신인 영선사(領選使)로 뽑힌 1881년 이후의 일기만 남아 있다. 김윤식의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청나라 관리 당경성(唐景星)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일찍이 듣건대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러시아 이외에는 남의 땅을 탐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 또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김) “대개 땅을 탐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 건 돈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당) 서구 열강들도 제국주의 침략에 나서고 있다는 당경성의 견해와 비교하면 김윤식의 국제 정세 분석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황 교수는 “김윤식이 1896년 초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집권한 친러파에 의해 관직을 잃고 제주도로 종신 유배를 떠난 경험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는 체계적인 편이었다. 최근 첫 한국어 번역본이 발간된 러시아 문학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의 ‘전함 팔라다’(동북아역사재단)는 1850년대 러시아와 조선의 첫 조우(遭遇)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러시아 군함 ‘팔라다’를 타고 유럽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일본을 거쳐 1854년 4월 거문도에 도착한 곤차로프 일행은 주민들과 한문으로 필담을 나눴다. 이들은 조선의 중국에 대한 조공 외교는 물론이고 지방 행정구역이 8도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동해안 곳곳을 탐사해 해도를 제작하는 등 한반도 지리를 파악하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독도를 발견하고, 동도와 서도의 정확한 위·경도를 파악한 뒤 러시아식 이름까지 지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이 담장을 쌓는 솜씨가 형편없는 것으로 보아 게으른 민족일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등 서양인 특유의 편견도 보였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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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일본 사법부의 드러난 민낯… 어쩜, 한국과 똑같네

    판사들의 막말 파동에 정치적 편향성, 전관예우, 향판 논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법부는 최근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우리나라 초기 법체계의 모델인 일본 사법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이 책을 쓴 저자의 견해다. 30여 년간 판사로 일하다 메이지대 법학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긴 지은이의 사법부 비판은 리얼하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그만큼 경청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 책에선 일본 재판관들이 어느 때부턴가 법과 양심에 따르는 법관이 아닌 ‘판결을 내리는 공무원’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상명하복의 관료제 조직문화에 젖어 눈치만 보는 법관이 다수라는 얘기다. 우리로 치면 법원행정처에 해당하는 사무총국의 방침에 군말 없이 복종하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한직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 저자는 한 최고재판소장(우리의 대법원장)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분류 불가능한 괴물 유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상부의 눈치만 보는 법관들이 늘면 자연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사건 당사자들의 이름 따위는 소송기록이나 수첩의 한 귀퉁이에 적힌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재판관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처리한 사건의 숫자와 속도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타성에 젖어 자정을 기대하기 힘든 사법부를 일신하려면 채용 제도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임용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법관들은 재판 당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 판결을 내놓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일본 사법제도와 비슷한 우리나라 사법부에도 좋은 쓴소리가 될 것 같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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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펴낸 박훈 교수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일본의 근대화만큼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도 흔치 않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시아 역사 전반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48)가 펴낸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민음사)는 이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박 교수는 20여 년 동안 메이지 유신 연구에 천착했다. 오랜 기간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지난해 1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역사학연구회의 정기학술지에 메이지 유신 관련 논문을 싣기도 했다. 안식년을 맞아 지난해 9월부터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에 체류 중인 박 교수와 9일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요즘 메이지 유신 사료를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메이지 유신에 열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공부를 시작한 1993년부터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특히 메이지 유신은 외부의 도전에 맞서 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일본처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건가. “지식인들 스스로 서양에 대해 강한 위기의식을 가졌던 일본과 달리 조선 지식인들은 청나라 중심의 국제질서가 설마 변하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일본에선 이미 1825년 아이자와 야스시가 신론(新論)에서 러시아의 팽창과 만주 진출을 점치는 글을 썼다. 또 고종과 대원군, 명성황후 사이에 권력 분열이 오래 지속된 것도 결정적이었다. 강력한 정치 리더십은 위기 대응에서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 막부가 내전을 일으키지 않고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 순조롭게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혼란 없이 짧은 기간에 정치 리더십을 다시 구축한 일종의 ‘질서 있는 변혁’이었던 셈이다.” ―책에 보면 당시 막부 정권이 군사력 경제력 등에서 건재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왜 천황에게 순순히 권력을 내준 건가. “서양 열강이 곧 침입할 거라는 극단적인 위기감과 당시 유포된 유학의 존왕(尊王)사상이 막부가 내전을 자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에선 서양이 쳐들어오면 중국이 개입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관념 자체가 없었다. 한마디로 중국의 ‘안보 우산’을 기대할 수 없었다.” ―최근 집단적 자위권 논란 등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일본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주변 정세의 전환, 국내 불안과 자신감 저하, 위기를 모험주의로 해결하려는 정치세력 집권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생겼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후 70년간 민주주의를 유지한 데다 막대한 국방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돼 노골적인 군사국가로 가긴 힘들다고 본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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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우지 않고 이긴 장수왕은 ‘셔틀외교’의 달인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끈 장수왕(394∼491)이 주변국과의 외교에서 힘을 과시하기보단 조공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외교의 달인’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대 외교로 치면 ‘왕복 외교(shuttle diplomacy)’와 같은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구대열 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와 신라사학회의 공동 학술회의에 발표한 논문 ‘삼국통일과 국제정치’에서 장수왕을 “한국사가 낳은 최고의 외교 군주”라고 평가했다. 한반도(백제, 신라)와 중국이라는 2개의 전선에 끼여 전략적으로 취약할 수 있었던 고구려의 안보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특히 장수왕이 79년 동안 집권하면서 중국 북연(北燕)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백제 한성을 무너뜨리는 등 남북으로 크게 위세를 떨쳤는데도 중국 북부 지방의 강자였던 북위(北魏)에 수시로 조공을 바친 점에 주목했다. ‘조공’은 흔히 약한 나라가 힘센 나라에 어쩔 수 없이 각종 공물을 건네야 하는 굴욕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장수왕은 주체성을 지키면서도 때로는 상대의 예봉을 피하는 고도의 정책으로 적절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기 436년경 북위는 북연과 전쟁에 들어가기 직전 고구려에 군사적 행동 금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장수왕은 이를 무시하고 북위와의 전쟁에 대비하던 북연을 약탈해 전리품을 획득했다. 이에 북위 측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수왕은 이듬해인 437년 북위의 숙적이자 고구려로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馮弘)을 사형에 처한 데 이어 조공 사절을 두 달 연속으로 보냈다. 구 교수는 “장수왕은 조공 사절을 양국 간 현안을 해결하고 관계를 복원하는 데 활용했다”며 “이는 오늘날의 ‘왕복 외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반면 백제는 조공 외교에 실패해 고립을 자초했다.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 잡아 고구려처럼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동시에 협공을 당할 위험이 적었다. 게다가 고구려는 전성기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조차 중국 측 공격을 막아내느라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백제를 크게 위협하지 못했다. 백제 개로왕은 472년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에 “딸을 보내 후궁에서 비질을 하도록 하고 아들들을 보내 마구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겠다”는 표현까지 쓰며 고구려를 함께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위가 고구려의 강한 군사력에 부담을 느껴 이를 거절하자 개로왕은 조공을 즉각 중단했다. 강대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중요한 동맹의 한 축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이후 고립된 백제는 3년 뒤 장수왕의 침략을 받아 한성을 빼앗기는 참화를 당했고 이때 개로왕도 목숨을 잃었다. 구 교수는 “백제의 단교는 결국 대(對)고구려 관계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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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말 조어도-독도 영토편입 주저했던 日, 청일-러일전쟁 승리후 태도 바꿔 강제편입”

    일본 정부가 19세기 말 조어도(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의 영토 편입을 스스로 보류한 사실이 국내 학자에 의해 새로 밝혀졌다. 이는 조어도와 마찬가지로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을 적용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쟁기념관 주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동국대 한철호 교수의 논문 ‘청일·러일전쟁과 동아시아 영토문제’에 따르면 일본이 조어도와 독도를 영토로 편입할 때 결정적인 변수는 청일·러일전쟁이었다. 당초 일본 정부는 두 섬 모두를 영토로 보지 않았는데, 전쟁이 승세로 기울자 입장을 바꿔 강제 편입에 나섰다는 것이다. 조어도와 가까운 오키나와 현청은 1885년 11월 이 섬에 표지를 세우고 일본 영토로 편입하자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즉각 보류 지시를 내놓았다. 당시 일본 외무성은 △조어도가 중국 국경에 더 가깝고 △중국이 섬 이름을 붙였으며 △중국 정부와 일반인들의 반일(反日)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거절했다. 일본 외무성은 당분간 조어도를 실지 답사해 항만 형태만 파악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또 답사 자료가 언론에 유출돼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한 교수는 일본 외무성의 신중한 태도가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청나라, 일본의 힘겨루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일본이 한반도를 단독 점령할 정도로 국력이 강하지 못한 국면에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갑신정변 직후 중국과 톈진조약을 맺고 한반도에서 공동 철군을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태도를 180도 바꾼다. 1894년 12월 일본 내무성은 갑자기 “조어도는 주인 없는 땅”이라며 조어도의 중국 영유권을 부정하고 영토 편입에 나섰다. 이어 일본은 한반도 강점의 마지막 걸림돌이던 러시아마저 러일전쟁으로 물리치자 1905년 독도 역시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워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성 소속 수로부(水路部)가 1896년 제작한 ‘조선 전안(全岸)’에는 이미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으로 기재돼 있었다. 독도 편입 11년 전 오키나와에서 410km나 떨어진 조어도를 선점한 일본이 오키 섬에서 160km 떨어진 독도를 편입하지 않았다는 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 교수는 “일본은 조어도와 독도가 각각 중국과 한국의 영토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청일·러일전쟁에서 이기자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워 빼앗은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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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학자들 “아베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 성명 내기로

    한일 양국 학자들이 참가하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반대하는 성명이 채택된다. 최근 일본 내각의 ‘해석 개헌’으로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자 양국 지식인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달 24, 25일 ‘마루야마 마사오와 동아시아 사상: 근대성, 민주주의 그리고 유교’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일본 측에서 마루야마 교수의 제자인 와타나베 히로시 호세이대 교수 등 8명이 한국을 찾는다. 마루야마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 사상가로 학계에서 ‘마루야마 덴노(天皇·천황)’라고 불릴 정도로 학문적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통해 일본이 군국주의로 빠져든 과정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 중심으로 정치적 통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이 확립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양심보다 국가의 행위가 우선시되는 전체주의 폐해가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마루야마 교수의 군국주의 비판은 그의 학맥을 이은 제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마루야마 교수의 직계 제자이자 원로 학자인 히라이시 나오아키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쓰자와 히로아키 홋카이도대 명예교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역사는 침략 확대의 길을 걸었으며 나라 안팎에 큰 참화(慘禍)를 안겼다”며 “일본국 헌법 9조의 평화주의는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전쟁 부정 결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총선에서 우리는 자위대의 해외 무력행사에 대해 정치인들에게 백지 위임을 한 기억이 없다”며 “2차대전 이후 70년 동안 일본이 지켜온 평화원칙을 한 정권이 자의적으로 바꾸는 건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채택될 성명서에는 “두 교수의 용기 있는 발언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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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 데이터 교수 “산업사회 붕괴 대비해 한국의 검소한 유교전통 되살려야”

    “낭비를 일삼는 현대 산업사회는 결국 붕괴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스스로를 낮추고 검소함을 강조한 한국의 전통문화, 유교적 가치를 돌이켜봐야 할 때입니다.”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미래학을 개척한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81)의 입에서 전통과 유교라는 복고적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미래학자가 정작 우리에겐 잊혀지고 있는 옛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데이터 교수는 ‘현대 세계 속의 유교적 가치’를 주제로 경북 안동시에서 6일까지 열린 ‘21세기 인문가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4일 한국을 찾았다. 팔순의 나이에도 수수한 티셔츠와 청바지만 걸친 채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입국장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흡사 검박한 유생(儒生)을 연상케 했다. “뭐든 아끼려고 노력해요. 출퇴근할 때에도 기름을 아끼려고 1981년산 오토바이를 수리해서 지금껏 타고 다닙니다.” 데이터 교수가 일상에서 자원 낭비를 극도로 경계하는 건 그의 학문 철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석유 고갈과 환경 재앙, 금융 시스템 붕괴가 인류 문명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로 산업사회가 붕괴 수준에 이르면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되는 ‘생존사회(survival society)’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이 국면에선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데이터 교수는 “서울을 찾을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조명과 광고들이 범람하는 걸 보면 정말 걱정스럽다”며 “한국이 예전의 검박한 정신문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매년 3, 4차례 방문할 정도로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다. 1989년 황장엽 당시 노동당 비서의 초청을 받고 북한 김일성대에서 미래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일본 릿쿄(立敎)대 교수로 6년간 재직한 지일파이지만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국가가 스스로를 지킬 권리는 있어요. 하지만 이번 결정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아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단계로까지 나아갈 겁니다. 다시 예전의 군국주의 국가로 돌아가고 있어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일각의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은 더이상 1920∼30년대의 약한 나라가 아니에요. 일본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라 강력한 중국을 견제하고 세력균형을 가져올 능력이 없습니다. 일본의 호전적인 태도가 오히려 현재의 안정된 동북아 정세를 깨뜨리고 있어요.”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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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줄 생각]웨이 파인더 外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전 세계인이 같은 언어를 쓰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럼 하이다족이나 요루바족 혹은 이누이트족이나 산족의 언어를 세계 공통어로 삼아볼까요?”―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의 ‘웨이 파인더’ 중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그 목표만큼이나 방법도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만약 나쁜 방법으로 이룩한 것이라면 분명한 진보도 사실은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존 러벅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중}

    • 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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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허락되지 않은 도시의 장막을 벗기는 탐험대

    지금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고가도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때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도시경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한 고가도로. 하지만 막상 주변에서 하나씩 철거되자, 폐기물이 된 고가도로의 교각은 예술품으로 승화된다. 왜 그럴까. 이미 사라져 버린 폐허야말로 인간의 유한함을 명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여기 목숨을 걸고 전 세계의 폐허만 골라 탐험하는 별종들이 있다. 이들의 먹잇감은 버려진 군사시설부터 폐쇄된 발전소, 하수도 배수관, 정신병원, 지하벙커, 군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환경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인류학자인 브래들리 개럿도 그중 한 사람. 이른바 ‘도시탐험’의 역사는 179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탐험가 필리베르 아스페르는 잊혀진 와인 저장고를 찾아내기 위해 지하무덤인 ‘파리 카타콤’에 잠입한 뒤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그의 시신은 10년 뒤에야 발견됐다. 고립된 접근금지 구역에 잠입하다 보니 위험한 건 기본이고 현행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힐 각오까지 해야 한다. 저자 역시 런던에서 교통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도대체 왜?”였다. 니체가 말한 ‘과거에 대한 병적인 동경’에 불과한 것 아닌가. 저자는 “안전은 보장되지만 때로는 권태로운 사회에서 우린 살고 있다. 따라서 뭔가 부족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 그 틀을 깨는 건 우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도시탐험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저 별난 취미를 가진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교사와 학자, 공무원,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 낙후지역을 탐험하는 동안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폐공간에 사는 현지 주민과 마주치면 취미활동으로 그곳을 찾는 자신들의 상대적인 부유함이 불편했다는 고백이 마음에 닿는다. 런던, 파리, 브뤼셀, 디트로이트, 체르노빌까지 온갖 폐허를 찾아다니는 도시탐험가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공간일까? 저자는 “한국은 신속한 도시화 때문에 폐허가 들어설 틈이 없다”며 아쉬워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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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 外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마이클 앤드루 포드 지음·김명희 옮김/400쪽·1만5000원·포이에마사람들은 자신의 영웅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들추기를 원치 않는다. 하물며 ‘상처 입은 치유자’로 불리며 국내에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성직자이자 학자 헨리 나우웬의 동성애 성향을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은 나우웬 서거 10주기를 기념한 개정판으로, 초판에서 삭제된 내용을 거의 대부분 복원했다. 저자는 신학을 전공한 영국 BBC 기자로, 나우웬의 지인 100여 명을 집요하게 인터뷰해 인간 나우웬의 상처와 고민, 어려운 이웃을 향한 그의 사랑을 다각도로 그려냈다.       러닝 라이크 어 걸알렉산드라 헤민슬리 지음·노지양 옮김/320쪽·1만3000원·책세상 오래달리기를 하다 보면 일정 순간 ‘러너스 하이(30분 이상 달릴 때 느끼는 쾌감)’라는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방송작가인 저자는 처음 뛰는 마라톤에서 특이하게도 울면서 러너스 하이에 도달했다. 열흘 전 동생의 출산과 제부의 수술을 겪으면서 응어리진 감정을 달리기로 푼 것이다. 그 후 6년간 12켤레의 운동화를 갈아 신으면서 1500km를 뛰고 또 뛰었다. 단순히 다이어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힐링’을 위한 달리기를 꿈꾸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을 만하다.      직업의 지리학엔리코 모레티 지음·송철복 옮김/384쪽·1만6000원·김영사 비슷한 스펙이라도 사는 동네마다 연봉이 달라진다? 노동경제학 실증연구의 대가인 저자에 따르면 금융업이 발달한 미국 보스턴의 고졸 근로자가 전통 제조업 도시인 미시간 주 플린트의 대졸자보다 연봉을 2만 달러 더 받는다. 세계경제의 지도가 바뀌면서 국가 간 소득격차는 이제 한 국가 안에서도 도시 간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 매년 35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미국에서 사라지는 산업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윌리엄 로 지음·기세찬 옮김/568쪽·3만 원·너머북스 흔히 청나라는 열강의 침략으로 사실상 중국이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의 왕조라는 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눈을 돌려 보면 청나라는 중국 왕조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또 몽골족부터 여진족, 티베트족, 위구르족까지 광범위한 민족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는 고도의 정치력을 보여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근대화와 비교해 청을 중국의 쇠퇴기로 규정한 서구의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다.}

    • 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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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北 “개성공단 투자설명회 추후 협의”

    정부는 19일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남북 공동 투자설명회를 내년 1월 말 개최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이에 북측은 확답을 하지 않은 채 “추후 협의하자”는 태도를 보였다. 남북은 이날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남북공동위원회 제4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 등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북한이 장성택 처형 당일(12일) 남측에 제의한 것이어서 불확실한 남북관계 속에서 향후 개성공단 및 남북경제협력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어 주목을 받았다. 당초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회의가 행정절차상의 문제로 1시간 늦어진 11시에 열린 것을 제외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 회의에서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협의 지연으로 한 차례 연기됐던 투자설명회(당초 10월 30일 예정)를 내년 1월 말에 다시 열자고 제안했고 북측은 ‘추후 협의하자’고만 답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과거 남북 당국 간 회의와 분위기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며 “(장성택 숙청이) 개성공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번 회의를 제의한 것은 개성공단과 북한 내부 상황을 분리해 진행하며, 북한 체제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콘퍼런스에 참석 중인 국제금융기구 대표단 25명도 이날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개성공단의 재가동(9월 16일) 이후 해외 인사들이 단체로 개성공단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대표단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브라힘 차낙즈 터키 재무차관은 공단을 방문한 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사람들 모두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한편 북측 여성 근로자는 장성택 처형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일 없다(‘문제없다’ ‘괜찮다’의 북한식 표현)”고 답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연락관 채널을 통해 북한의 시설 개보수를 위한 장비지원 계획을 전달했다. 지원 규모는 △통관(X선 검색대, 금속탐지기) 2억7000만 원 △통신(동케이블, 축전지, 이동 지원 차량 및 유류) 1억7000만 원 등 총 4억4000만 원 규모다. 김철중 tnf@donga.com / 김상운 채널A 기자}

    • 20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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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자산을 리디자인 해드립니다

    최근 경기 바닥론이 힘을 얻으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년 코스피가 2,500까지 상승할 것’, ‘부동산 규제완화로 거래가 살아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들도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저성장 저금리 상황에 놓인 만큼 본격적인 상승세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종합편성TV 채널A와 동아일보가 29일 서울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빌딩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재테크 강연회 ‘100세 시대 스마트 에이징-전환기 맞은 투자시장 200% 활용법’은 이런 엇갈린 전망을 둘러싼 투자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자 마련됐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성공적인 투자비법을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줄 예정이다. 기조강연자로 나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늘어난 내 인생 어떻게 디자인할까’라는 주제로 노후설계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보여준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은퇴자 입장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금융상품 투자 노하우를 소개한다. 부동산시장 정상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 부동산을 사고팔아야 할지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이사는 내년 집값 전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투자전략을 제시한다. 이어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내년에 지켜봐야 할 부동산 상품’이라는 주제로 갈수록 양극화되는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투자상품을 추천해 준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과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품마케팅본부장은 내년 주식시장을 집중 해부한다. 증권가에서 장밋빛 예측이 아닌 합리적 경기 전망으로 유명한 이 센터장은 ‘2014년 주가, 어디로 갈까’라는 주제로 내년 주가가 얼마나 오를지, 주목할 만한 투자요인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본격적인 코스피 2000시대를 맞아 증권사들이 다양한 투자상품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문 본부장은 ‘주가 2000시대, 투자할 상품은’이라는 주제로 개별 종목이나 상품에 대한 세세한 투자 가이드를 전할 예정이다. 이번 강연회는 무료이며,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에게는 채널A의 인기 프로그램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 소개된 ‘착한식당’을 소개한 책 ‘착한식당을 찾아서’를 선착순(300명)으로 무료 배포한다. 02-2020-2878김상운 채널A 기자 sukim@donga.com}

    • 20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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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산업銀 민영화 철회로 706억 혈세 날아갈 판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철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최소 706억 원의 혈세가 낭비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또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채용한 일부 고졸 계약직 행원들의 구조조정도 배제할 수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29일 산은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은은 민영화 추진 비용으로 약 706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 가운데 21개 소매금융 지점을 신설·운영하는 데 160억 원, 신규 인력에 대한 인건비에 81억 원이 각각 들어갔다. 또 통합 전산망을 구축하고 인력을 따로 채용하는 등 산은금융지주 설립에도 465억 원이 쓰였다. 산은은 강만수 전 회장이 취임한 직후인 2011년 7월부터 작년 11월까지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등지에 소매금융 지점 21개를 세웠다. 민영화에 성공하려면 예금자를 확보할 수 있는 소매금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산은 민영화를 포기함에 따라 소매금융 기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신용도를 인정받아 낮은 금리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정책 금융기관이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를 놓고 시중은행과 경쟁을 벌일 수 없어서다. 소매금융 기능이 축소된다면 최근 3년간 뽑은 고졸 계약직 행원의 구조조정도 배제할 수 없다. 산은은 최근 3년간 모두 230명의 고졸 행원을 뽑았고, 이 가운데 102명은 소매금융 상품인 ‘KDB 다이렉트 뱅킹’을 전담하는 계약직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산은은 “고졸 채용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강 전 회장의 공언과 달리 올해 고졸 행원을 지난해의 6분의 1 수준에 그친 20명만 뽑았다. 한 고졸 계약직 행원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고졸 직원들끼리 민영화가 물 건너가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주고받는다”며 “대학입시도 포기하고 산은에 입사했는데 심란하다”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자원 낭비는 물론 금융 당국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김상운 채널A 기자 sukim@donga.com}

    •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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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 금융당국 수장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1월 중순. 국내 금융계는 미국에서 날아온 금융위원장의 발언으로 발칵 뒤집혔다. 국가설명회를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던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금융위기 극복 복안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10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나왔던 위기극복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필요하면 새로운 짝짓기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구조조정을 시사하는 듯한 전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은행권은 크게 술렁였다. 논란이 커지자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경제부처 수장이 조율되지 않은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경고했다. 규제산업의 성격이 강한 금융부문의 특성상 금융당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1600여 개 금융회사의 감독과 검사, 각종 인·허가, 유가증권 발행 등록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에 대한 징계권도 있다. 금감원을 지도·감독하고 금융정책을 수립하는 곳이 금융위원회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장이나 금감원장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요동을 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기도 한다. 3년 임기를 채운 첫 금융감독위원장(지금의 금융위원장) 겸 금감원장이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당국 수장 혼자 힘으로 금융업을 번성하게 하고, 시장을 잘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쓰거나 불필요한 규제로 금융업을 망가뜨리고 시장을 위축시킬 수는 있다”고 말했다. ① 최우선 덕목은 금융 전문성금융 전문가들과 역대 금융당국에서 근무한 고위 공무원들은 금융당국 수장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전문성을 꼽았다. 금융시장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면서 미래에 발생할 위기에도 대처하려면 금융 산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수라는 것이다. 금융계에서 유능한 금융당국 수장으로 기억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윤 전 장관은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반면 단명한 금융당국 수장들은 상대적으로 금융감독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인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은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감독 당국이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전문성을 가진 금융당국 수장이 시장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부조리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정치 외풍에 버티는 ‘강단’ 필요 1998년 11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여권의 한 ‘실세’ 국회의원이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의 손을 슬며시 쥐었다. 손 안에 든 종이쪽지를 펴보니 국장 승진 대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실세 의원은 구체적인 보직까지 언급했다. 이 위원장이 난색을 표하자 국회의원은 표정이 달라지더니 “협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때 쪽지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승진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보니 정치권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윤 전 장관은 “인사 관련 민원이 많지만 어느 기업에 자금 지원이 되도록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요구도 있다”며 “전화도 하고 사람이 직접 오기도 하는데 그걸 못 이기고 들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당국의 ‘영(令)’이 서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③ 시장 통솔의 리더십 중요금융계에서는 윤 전 장관이 금감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를 ‘금융의 태평성대’라고 평가한다. 별다른 위기 상황도, 금융계 인사를 둘러싼 잡음도, 대형 금융 관련 비리사건도 터지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3년 동안 전체 은행장 회의를 2번만 했다. 취임 직후에 한 번, 퇴임하면서 한 번이 전부였다. 그는 물러날 무렵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자 “유능한 심판은 휘슬을 자주 불지 않는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18년 동안 해묵은 숙제였던 생명보험회사 상장 문제를 마무리하는 성과를 냈다. 그가 금감위원장일 때 금감원 수석부원장이었던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강한 리더십을 시장이 신뢰해 큰 잡음 없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④ ‘사심’ 없는 공정한 인사는 기본 2001, 2002년 금감원은 대전고의 전성시대였다. 은행감독국장, 보험감독국장, 총무국장, 공보국장 등 주요 국장이 대전고 출신이었다. 대전고 출신 이근영 원장이 부임한 뒤 자신의 고교 후배들을 대거 주요 보직에 앉혔기 때문이었다. 한창 때는 국장과 수석팀장을 합쳐 대전고 출신이 2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금감원의 인사 파행은 금감원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대전고 출신 팀장들이 ‘연조’에 비해 빨리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50대 초반 국장급 간부들은 갈 자리가 없어졌다. 이들은 여러 금융회사의 감사로 떠밀려 이동해 금융권 전체의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근영 원장 시절, 보직을 못 받은 50대 초반 간부들이 금융회사 감사로 가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이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⑤ 과도한 지역색 피해야2000년 여름 금융권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7월 초 은행노조가 정부의 금융지주회사 도입에 반발해 은행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해 8월에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이 터졌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금감원은 사태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금감원 국장이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감원장을 교체했다. 재임 8개월은 역대 금융당국 수장 중 최단명이었다. 금감원의 한 임원은 “관료생활을 하면서 주요 보직을 맡지 못했던 이 위원장은 김대중(DJ) 정부가 들어서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금융당국 수장이 됐다”며 “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지역적 이유로 자리를 맡다 보니 위기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황진영·김상운 기자 buddy@donga.com}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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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은 고졸 텔러 370명… 내년초 모두 정규직 전환

    KDB산업은행이 계약직인 고졸 텔러(창구직원)들을 대졸 출신과 같은 정규직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30일 산은에 따르면 산은 노사는 최근 임단협을 확정하면서 무기 계약직인 고졸 출신 텔러 370명을 내년 초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 채용할 고졸 행원도 일반 정규직으로 뽑기로 했다. 산은은 한때 고졸 지원자를 6급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를 폐지하고 ‘일반직B’급으로만 뽑았다. 일반직B는 무기 계약직으로 대졸 행원으로 채워지는 일반직A와 달리 텔러 업무만 볼 수 있었다. 다른 업무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혔던 셈이다. 산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고졸 정규직 공채를 부활한 만큼 대졸 행원과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판단 아래 보완 방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 노사는 정규직으로 바뀐 고졸 직원들이 대졸 신입 행원과 같은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조건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우리은행은 은행권에서는 2007년에 처음으로 텔러 및 콜센터 직원 등 비정규직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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