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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21∼26일을 ‘2025 한복문화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해마다 ‘한복의 날’(10월 21일)을 즈음해 열리는 한복문화주간은 올해가 8회째. 올해는 ‘현대 한복판(Modern Hanbokpan, the Center of K-Culture)’을 주제로 한복의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이 만나 새롭게 확장되는 오늘날 한복문화를 조명한다. 21일 경기 의정부 역사유적광장에서 열리는 한복 분야 유공자 시상식과 한복 패션쇼, 축하 공연을 비롯해 전국 360여 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세부 프로그램은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753년 조선 영조는 친모 숙빈 최씨의 제사에 종묘와 마찬가지로 술항아리를 배치해 ‘작(爵·발이 세 개 달린 제사용 술잔)’을 사용하고 폐백을 추가하도록 했다. 2년 뒤엔 숙빈의 호칭을 ‘선비(先妣)’로 고쳤다. 사망한 어머니를 가리키는 ‘비(妣)’는 원래 사망한 아버지인 ‘고(考)’와 짝을 이루어 적통을 뜻하는 표현으로, 후궁인 생모에게는 쓸 수 없었다. 영조는 출신이 미천했던 어머니의 격을 높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결정은 의례 규정집 ‘궁원식례(宮園式例)’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 성남시 분당구)이 최근 장서각 기획전 ‘칠궁(七宮),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을 개막했다. 칠궁은 조선 왕들의 생모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사당으로, 현재 청와대 영빈관 서쪽에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왕통과 관련해 미묘한 정치가 계속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영조는 숙빈을 위해 국왕 사친(私親)의 사당과 무덤을 묘묘(廟墓)에서 궁원(宮園)으로 높인 궁원제를 선포하고 숙빈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을 설치했다. 정조에겐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장조(사도세자)를 높이는 과제가 있었다. 정조는 영조의 유훈과 달리 추숭왕 진종(효장세자)의 친모인 정빈 이씨의 의례의 격을 육상궁보다 낮췄다. 사도세자의 사친 영빈 이씨에게는 궁원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영빈은 임오화변 당시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했던 인물. 영조가 영빈에게 내린 ‘의열(義烈)’이라는 시호가 불편했던 정조는 사당과 묘소의 칭호를 ‘선희(宣禧)’로 바꿨는데, 당시 ‘선희’에 낙점한 ‘선희궁 궁묘호 망단자(望單子)’를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고종이 1899년 사도세자를 장종으로 추숭하며, 영빈은 결국 황제의 생모가 됐다. 전시는 이 밖에 칠궁과 관련한 다양한 문헌자료 60점을 선보인다. 내년 6월 26일까지(주말 휴무).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의 선구자인 우사(于史)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1932∼2017·사진)를 기리는 학술대회가 16일 개최된다. 조 교수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과 한국국학진흥원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체계적 독립운동사 연구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꼽힌다. 우사조동걸선생추모집간행위원회가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이날 여는 학술대회에서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우사 조동걸의 한국근대사 인식과 서술’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발표문에서 “우사는 한국 근대사를 처음으로 개화운동과 개혁운동, 계몽운동으로 정리하며, 역사적 사실과 시대의 사상을 연결지어 체계적으로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에선 장석흥 국민대 명예교수가 ‘인간주의의 길을 지킨 조동걸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도면회 대전대 명예교수가 ‘우사 조동걸의 근현대 사학사 연구’를 발표할 예정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서유럽 각국은 당황했다. 페르시아만에서 서유럽으로 오는 석유의 70% 이상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중동의 석유가 끊기자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이 석유 비축량을 풀기를 기대했지만 미국은 수수방관했다. 바로 이 ‘수에즈 위기’를 계기로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소련의 석유를 수입해선 안 된다’는 합의가 깨졌다. 이 일은 오늘날의 국제정치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독일이 소련, 오늘날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게 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엔 구조적 분열이 생겼고, 그 갈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분출하게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경제학과 교수가 지정학(에너지)과 경제(금융), 민주정치 등 세 가지 틀로 오늘날의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조감도처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유로화의 탄생, 중국의 세계 경제로의 통합, 다시 찾아온 석유 수급의 불안정성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꿴다. 이어 지정학적·경제적 위기 속에서 민주정치엔 금권귀족정(plutocracy)의 경향성이 커졌고, 개혁은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기저에 있던 에너지는 앞으로의 세계에서 정치적 격동과 무질서를 주되게 실어나르는 핵심 매개가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뜬게린 락얏 아빠 수사냐(그냥 사과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졌던 가운데 정부 당국이 소셜미디어의 비판 게시물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자, 젊은이들이 이처럼 인도네시아어 문장을 한글로 쓰며 검열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문화의 인기 정도와 더불어 한글이 얼마나 익히고 쓰기 쉬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국어학사를 연구해 온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가 한글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한글은 언제부터 ‘한글’이 됐을까. 원래 ‘언문(諺文)’이라고도 불리던 한글은 근대 들어 ‘국문(國文)’이 됐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국문이 ‘일문(日文)’을 뜻하게 되자 대신할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쓰게 된 이름이 ‘한글’이다. 대한제국의 글 또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한문(韓文)’을 풀어쓴 것이었는데, 나중에 ‘큰’ ‘위대한’과 같은 의미가 덧붙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해 백성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한글은 그 이상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창제 뒤 불과 6년이 지난 시점에 정승을 비판하는 벽보가 한글로 나붙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공론장을 한글이 열어젖힌 셈이다. 17세기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한글 소설은 조선이 근대적 민족 공동체에 한 발 다가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한글이 담는 지식과 사상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져 오늘날 민주 사회에 이르렀다. 책은 이 밖에도 한문은 어떻게 해체됐는지, 한글 신문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았는지, 국어사전은 어떻게 편찬됐는지 등을 꼼꼼히 살폈다. 한글 세계화와 기계화, 한글날 제정의 역사도 조명했다.“한글이라는 문자가 한국어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고 그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가를 그려 낸 장대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전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의 추천사가 과하지 않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죽는 순간까지 그 차를 몰 수 있다면, 난 그 삶을 천 번이라도 다시 살고 싶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영화 ‘F1 더 무비’에서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의 대사다. 다소 오글거리긴 해도 ‘내연기관 시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사로 봐도 꽤 잘 어울린다. 헤이스처럼 자동차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길 만한 책이다.“람보르기니의 탄생은 믿기 어려울 만큼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1960년대 초… 페라리는 람보르기니를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모욕했다. ‘페라리 말고 트랙터나 몰 줄 알지!’ ‘트랙터나 만들어라, 이 촌놈아’… 그날 람보르기니는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고, (…) 바로 스포츠카 제조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람보르기니’에서) 책은 이처럼 ‘F1’ ‘디트로이트’ ‘롤스로이스’ ‘번호판’ ‘수소차’ ‘차 고장 수리법’ 등 자동차와 관련된 95개 키워드를 골라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동차와 관련한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압축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담겼다. 독일과 일본, 중국 등 국가의 정체성과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소개했다. 한국의 ‘현대’와 ‘기아’도 키워드로 등장한다. 이탈리아 출신인 저자는 이력이 화려하다. 도요타 유럽과 피아트 그룹, 폭스바겐 그룹 등을 거쳤고,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르노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아우디 A1’과 ‘피아트 500’ 등의 성공을 이끌었다고도 한다. CEO로서 갖게 된 넓은 시야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다는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엔 지금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바꾸는 내용도 포함됐다. ‘심의 기능의 민주성과 책임성 강화’가 목적이라는데, 진보 성향의 언론단체들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방심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봉급도 나라에서 받지만 신분은 민간인인 자리다. 방심위가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방심위를 둔다”는 방통위 설치법에 근거한 민간기구이기 때문이다. 방통위-방심위 구도를 이렇게 짠 건 2008년이다. 민간기구 방송위원회 대신 행정기구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도, 심의 기능은 굳이 민간에 그대로 둬서 방심위를 만들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권력과는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심의하라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과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우리 국민들이다. 국가의 직접 심의는 검열이나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방심위는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방심위는 지상파 라디오가 편파적으로 허위사실을 방송하는데도 ‘우리 편 봐주기 심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 방심위는 비판 언론에 대한 편파, 표적 심의 논란을 넘어 ‘민원 사주’ 의혹까지 일면서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실정이니 방심위의 개혁은 독립성을 확보하고, 위원 구성이나 안건 의결에 중도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상식적이다. 한데 반대로 심의위원장을 공무원으로 만들려 하니, 방심위가 사실상 정부 기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걱정되는 건 또 있다. 최근 민주당은 방송법에서 ‘공정성’ 문구를 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공정성 심의가 비판 언론 탄압 도구로 악용돼 왔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폐지하자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방심위가 공정성 심의를 안 하던 때가 있었다. 5공 시절 방심위는 ‘방송 뉴스가 왜 각하 찬양 일색이냐’고 따지지 못했다. 공정성 심의의 정파적 악용이 문제라면 이제 칼자루를 쥔 정부 여당이 악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심의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만들면서 공정성 심의까지 폐지하려 한다니, 따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산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11월까지 이사진이 교체되는 KBS 등 지상파가 마음 놓고 정권에 편파적인 보도를 하라고 판을 깔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작금의 방송심의 거버넌스가 실패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공당(公黨)들이 소수의 강경파에게 휘둘리고, 국회의원들이 유튜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도 방심위가 저널리즘 기준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지상파 방송 진행자 등을 방치했던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혁한다며 개악을 해서는 안 된다. 위원장이 국회의 인사청문과 탄핵소추 대상에 포함된다고 방심위의 정치권 종속이 갑자기 더 심해지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로부터의 심의 독립이라는 이상이 형해(形骸)만 남았다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건 곤란하다. 그랬다간 ‘5공 시절 방심위’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도 순식간이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국내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발해사 분야의 신진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고구려발해학회가 20일 개최한 ‘발해 고고학과 역사 연구의 현 단계’ 학술회의에서 안재성 씨(고려대 사학과 대학원 박사 수료)는 ‘8세기 발해와 일본의 국서 교환과 상호 인식’을 발표하고 당시 외교가 어떤 국내적 배경 속에서 이뤄졌는지 살폈다. 발해는 727년 일본과 국교를 개시하면서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었다”며 고구려 계승을 표방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발해 문왕은 759년 양승경을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하면서 ‘고려국왕’ 칭호를 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 씨는 이 배경으로 말갈에 대한 발해의 통제력 강화를 꼽았다. 안 씨에 따르면 8세기 기준 여러 말갈족의 당나라 조공 활동이 752년 이후 끊어지는데, 이는 발해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중국은 ‘안사의 난’이 벌어지는 등 혼란한 상황이었다. 안 씨는 “이러한 상황에서 발해는 ‘고려국왕’ 칭호를 사용하면서 강대한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상징성을 통해 최근 복속된 말갈 세력에 대한 통합을 강화하려 했다”고 해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어느 과학이라고 양면성이 없겠느냐만 엇나간 유전학만큼 세계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없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일으키는 사상적 근거가 된 게 바로 우생학이 아닌가. 분자생물학자인 덕성여대 교수가 유전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오래전부터 온갖 차별과 갈등의 원인이 돼 왔고, 오늘날에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운동이 필요할 만큼 영향이 큰 인종은 어떨까. 인류라는 같은 종(種) 내에 하위집단인 아종(亞種) 같은 걸까. 저자에 따르면 ‘전혀 아니다’. 4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현생인류는 원래 피부색이 짙었다. 어두운 피부색은 강한 태양광을 잘 막아줬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진출한 고위도 지방에선 태양광을 더 잘 흡수하는 밝은 피부가 생존에 유리했다. 그래서 멜라닌 색소를 덜 만드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이들이 강한 생존력을 가진 후손을 남겼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인과 상당수 아시아인에게서 이 변이가 발견된다. 피부색의 의미는 딱 그 정도다. 사람들은 피부색이나 눈동자, 입술 등 눈에 잘 띄는 것을 가지고 인종을 구분하려 하지만 생물학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인류는 사실상 ‘클론’에 가깝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모든 유전체에 걸쳐 염기 서열이 99.9% 똑같다. 이렇게 동일한 종은 포유류 중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인종은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책은 범죄와 폭력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나쁜 유전자의 실체,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바꾼 유전적 변화 등을 조명했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그것을 억제하는 유전자 사이의 힘겨루기도 살폈다. 이 같은 서술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유전자는 우월함이나 열등함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함의 원천”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특히 요즘 확산하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인간의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우리의 삶에 우연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수록 삶은 활기가 넘친다. 내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도전의식과 각오가 생긴다. 타인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격리되었던 환자들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알몸으로 도망 나와 밤거리를 달려서는 시체들이 묻힌 구덩이를 찾아 주저 없이 뛰어드는 장면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음을 향한 한밤의 질주인 셈인데, … 산 채로 던져진 환자들이 구덩이 안에서 이미 죽은 시신이나 아직 죽지 않은 다른 환자들과 뒤엉킨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1722년 발표한 ‘전염병 연대기’의 일부다. 중심인물도, 극적인 플롯도 없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실상 ‘페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17세기 페스트 대유행의 처참함이 오롯이 전해진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감염병에 관해 쓴 책이다. 한센병 콜레라 매독 성홍열 발진티푸스 말라리아 등 감염병 14개를 다룬다. 병의 증상과 환자의 고통, 병이 남긴 문화적 흔적 등을 여느 논문보다 생생하게 다루는 여러 소설을 살폈다. 19세기 많았던 감염병으론 결핵을 빼놓을 수 없다. ‘제인 에어’ ‘레미제라블’ ‘크눌프’ 등 여러 소설에서 결핵이 등장한다. 결핵과 결핵으로 인한 죽음은 아름답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태준(1904∼1978)은 단편 ‘가마귀’에서 “폣병! … 그렇게 예모 있고 상냥스러운 대화를 직거릴 수 있는 아름다운 입술이 악마 같은 병균을 발산하리라는 사실은 상상만 하기에도 우울하다”고 썼다. 저자는 문학을 감염병의 사회적 의미를 살피는 도구로 활용한다. 우리가 함께 가까스로 통과해 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은 어떤 시대였을까. 소설가 윤고은이 ‘도서관 런웨이’(2021년)에서 묘사한 구절을 읽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누군가의 숨이 위협이 되는 시대, … 안경을 쓰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 위험이 적어진다는 통계가 읽히는 시대, 생일 촛불을 입김으로 불어서 끄는 것도 모험이 되는 시대, 거리두기의 시대에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유예하지 못하고 의심하지도 못하고 그 위로 미끄러졌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먼저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알아야 한다. 1851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 트웨인의 작품은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도망친 잭슨섬에서 또 다른 도망자인 흑인 노예 ‘짐’을 만나 남쪽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짐’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모험을 떠났을까?1884년 발간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허클베리가 아닌 짐의 시점으로 다시 쓴 작품이다. 흑인 노예의 삶과 고뇌를 풍부하게 다루면서 당시 사회가 외면한 목소리를 생생히 되살렸다. 지난해 발표 이후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등 문학상 5개를 잇달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을 총괄하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소설의 주인공은 ‘제임스’. 바로 짐의 본명이다. 제임스에게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고, 이들은 전부 왓슨 부인의 노예다. 제임스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하지만 겉으론 백인이 강요한 흑인 방언을 흉내내곤 했다. 백인들이 똑똑한 흑인을 싫어하기 때문. 그렇게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제임스는 자신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되고 미시시피강의 잭슨섬으로 도망친다.책은 곳곳에서 ‘허클베리…’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제임스의 생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잭슨섬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도 그렇다. ‘허클베리…’는 이렇게 묘사한다.“가까이 갔더니 한 사나이가 땅에 누워 있었다. 나는 초조해서 죽을 뻔했다. …잠시 후 그 사나이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담요를 젖혀버렸다. 그런데 그건 미스 왓슨의 노예 짐이었다. 정말, 이건 어찌나 반가운지 나는 말했다. ‘야! 짐!’”하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제임스의 심경은 극명하게 다르다. 낯선 곳에서 아는 이를 만나 기쁜 허클베리와 달리, 그는 걱정이 앞선다. 허클베리는 도망치기 전 집 안에 돼지 피를 뿌려 자신이 살해당한 것처럼 꾸몄는데, 그 죄를 자신이 뒤집어쓸까 봐 아득해졌다.“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헉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일 테고 나는 막 도망쳤다. 그렇다면 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으로 그들은 누구를 의심할까? … 나는 헉의 눈을 바라보았다. ‘헉은 돌아가야 해여.’”소설 후반부는 제임스가 흑인 동료들과 함께 북쪽으로 도망치는 것을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마지막 부분은 특히 인상 깊다. ‘허클베리…’ 속 짐은 합법적 자유를 얻고도 끝내 ‘짐’으로 남지만, 이 소설에선 다르다. “이 중에 깜둥이 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나?”라고 묻는 거리의 보안관들 앞에서, 그는 스스로를 노예 짐이 아닌 ‘제임스’라고 선언한다.“넌 누구지?”“저는 제임스예요.”“제임스 뭐?”“그냥 제임스요.”140년 만에 재해석된 제임스의 이야기에서 자유의 무게와 한 인간이 지닌 감정의 힘을 느낄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04년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에 있는 발해 왕실 고분군에서 발견된 효의황후와 순목황후 묘지(墓誌)에 ‘동국(東國)’ ‘발해국(渤海國)’ 등의 표현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발해인들이 중국과 자신을 뚜렷이 구분하는 인식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한편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정권에 불과하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위원은 5일 재단이 개최한 ‘발해 용두산 왕실고분 발굴 보고서의 주요 내용’ 보고회에서 “동국은 ‘해동(海東)’ ‘아방(我邦)’ 등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중국과는 지역적으로 구분된다는 인식의 표현으로 사용됐다”며 “발해도 이 표현을 썼다는 게 효의황후 묘지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효의황후는 발해 제3대 왕인 문왕의 비로, 묘지엔 “덕은 동국에서 높고, 용모는 서시(西施)와 견준다”는 구절이 담겼다. 중국 측은 중국 정사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을 ‘동이열전(東夷列傳)’ 등에 편찬한 데 반해 발해는 ‘북적(北狄)’으로 분류했다며 발해사를 말갈의 역사로 본다. 하지만 이는 사서를 편찬한 중원의 인식일 뿐이라는 점이 이번 묘지를 통해 드러났다고 권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예컨대, 발해 제9대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 묘지는 아예 제목이 ‘발해국 순목황후 묘지명’이다. 권 연구위원은 “발해가 스스로를 중국 천하질서의 일원으로 인식했다면 ‘유당(有唐·당나라의) 발해’ ‘대당(大唐) 발해’ 등으로 썼어야 한다”며 “중국 측의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는 배치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발해가 황제국 체제를 지녔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더 있다. ‘황후’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순목황후의 죽음은 황제와 황후에만 쓰는 ‘붕(崩)’으로 표현됐다. 효의황후 묘지엔 “성조(聖朝)에 충성을 다했다”는 구절이 있다. ‘성조’는 통상 황제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묘지를 통해 효의황후가 울(欎)씨, 순목황후가 태(泰)씨라는 점도 밝혀졌다. 발굴 보고서가 발간되자 효의황후가 중원계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권 연구위원은 “희성(稀姓)인 울 씨는 북방계가 주로 사용하던 성 씨”라며 “효의황후는 선비나 말갈계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1997∼1998년, 2000∼2005년, 2008년 룽터우산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보고서를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뒤늦게 간행했다. 이에 국내 학계 일각에선 ‘중국 당국의 기조와 맞지 않는 발굴 내용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해석은 우리와 다르지만 발굴 내용은 비교적 충실히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김은옥 한국전통문화대 강사는 이날 보고회에서 “발굴 보고서는 발해 문화의 독창성과 함께 ‘당(唐)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석축묘, 횡혈식 석실묘, 천장의 구조 등 묘제(墓制)와 연화문 와당, 토기, 관식(冠飾) 등 유물은 고구려 문화와의 유사성이 확인돼 추후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부가 ‘내수 진작을 통한 민생 회복과 영화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최근 ‘영화 관람료 6000원 할인권’ 450만 장을 배포하자 멀티플렉스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될 정도였다. 262만 장(58.2%)은 사용됐고, 188만 장은 쓰이지 않아서 8일 재배포한다. 관객은 얼마나 늘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1차 배포 기간(7월 25일∼9월 2일)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가 하루 평균 약 43만5000명으로, 이전까지의 올해 일일 평균 관객 수보다 약 1.8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할인권이 배포된 기간은 전통적 극장 성수기인 여름 방학 기간과 겹친다. 3, 4월을 비롯해 관객 수가 원래 적은 시기와 비교해서야 효과 여부를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적어도 최근 한 5년 정도의 같은 기간 관객 수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팬데믹 기간이 포함된다. 아쉬운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관객 수가 약 14% 늘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해 114명 중 100명은 원래도 극장에 갔던 사람들이고, 14명만 새로 발걸음을 했다는 얘기다. 그럼 이 14명은 정부의 기대대로 할인권이 소진된 뒤에도 영화관에 가는 버릇이 생길까. 그러면야 좋겠지만 할인권의 반짝 효과엔 ‘안 쓰면 손해’라는 심리도 한몫한다. 이런 관객은 할인권이 소진되면 어차피 극장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영화판엔 돈줄이 말랐고,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실정에서 예산을 관람료 할인에 지원하는 게 옳았을까. 올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영화가 20편도 채 안 된다고 한다. 할인권 배포엔 추가경정예산 271억 원이 들어갔다. 이 예산을 제작비에 투입했다면 제작비 30억 원짜리 시나리오 9편이 크랭크인 할 수 있었다. 정부 출자 펀드가 절반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민간 자본이 대도록 한다면 18편이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제작되는 영화 수가 당장 2배로 증가한다. 관람료 할인으로 한국 영화만 혜택을 본 것도 아니다. 할인권 효과를 가장 크게 본 작품은 우리 영화 ‘좀비딸’이었지만 다음이 할리우드 영화 ‘F1 더 무비’였다. 할인권이 배포된 뒤 취임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4일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지금 영화 산업은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태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지원할 계제가 아니다”라면서도 “그 돈을 거기에, 이 시기에 지원하는 게 맞는지, 국산 영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등에 관해 질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영화관도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창출하도록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내년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예산을 올해보다 100억 원 많은 200억 원으로 증액하는 등 영화 분야 예산안을 올해보다 669억 원(80.8%) 늘어난 1498억 원으로 최근 확정했다. ‘마중물’은 펌프 내부의 공기를 제거해 압력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펌프의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할인권 배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의 이동과 관람료의 급속한 인상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 등 극장 산업의 근본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어차피 땜질 식으로 쿠폰을 계속 발행할 수도 없지 않나”라고 한다. 산업구조 개혁이 시급한데 허공에 현금만 살포하는 게 꼭 영화 관람료 할인권만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고문헌 연구가 석한남 씨가 이달 30일부터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에서 문화교양 강좌 ‘박물관 뒷골목 산책(고서화 감상과 이해)’을 진행한다.이 강좌는 고서화 감상, 전각(篆刻) 실습, 조선 지식인의 편지(간찰) 해석 등 서화와 옛 문헌 예술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인문예술 강의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유배 시절을 중심으로 시·서·화를 통해 인문학과 그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또 조선 후기 예술가와 학자들의 편지, 도장, 그림과 글씨 등을 통해 당시의 예술적 세계와 지식인의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석 씨는 “붓글씨 한 장에도 철학이 깃들어 있다. 고문헌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수강생은 실물 간찰과 도장을 감상하고, 낙관을 날인하는 실습에도 참여할 수 있다. 강의는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총 10주 과정으로 운영된다.‘동네 훈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석 씨는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명문가의 문장’, ‘전각, 세상을 담다’, ‘간찰, 붓길 따라 인연 따라’ 등의 저서를 집필한 고미술 전문가로 약 30년 동안 고문헌을 독학으로 연구해왔다. 2018년에는 평생 수집한 고문헌과 옛 글씨 등 168점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탁했고, 기획 전시 ‘동혼재의 고문헌 사랑, 기탁으로 빛나다’를 통해 조선 명필들의 글씨와 조선시대 학자들의 장서인이 찍힌 고문헌 등을 소개한 바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중삼중의 압박에 눌리어 신음하던 자매들! 어서 빨리 일어나서 이 민족해방운동의 뜨거운 용로(鎔爐) 속으로 뛰어오라.” 여성 독립운동가 지복영 선생(1920∼2007)이 한국광복군의 기관지 ‘광복(光復)’에 쓴 글 ‘대시대(大時代)는 왔다, 한국 여동지들아 활약하자!’의 일부다.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범김구기념관과 김구재단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학술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 독립운동’을 지난달 29일 열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김형목 선인역사문화원 연구소장은 ‘한국광복군 여성대원의 활동’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여성대원들은 초모(모집), 선전, 구호 임무에서 활약했다”고 밝혔다. 김 소장에 따르면 광복군 여성대원들은 일본군 점령 지역에 들어가 공작 거점을 마련해 활동하며 한인 청년들을 포섭했다. 1942년 2월 구성된 징모제6분처에선 여성 광복군 지복영, 오희영(1924∼1969), 오광심(1910∼1976) 선생 등이 활약했다. 이들은 중국 안후이성 푸양(阜陽)에서 광복군의 활동을 선전하고 일본군으로 끌려 나온 학병을 탈출시키거나 첩보 상황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44년엔 학병들이 대거 탈출하면서 광복군 제3지대가 성립하는 바탕이 됐다. 여성 광복군은 입대 당시 1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이 대부분이었다. 독립운동가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며 광복군에 투신한 경우가 많았다. 지청천 장군(1888∼1957)의 딸인 지복영은 1940년 9월 광복군 창설 당시 입대했다. 임시정부 선전부 자료과와 선전과에 복무하면서 대적 선전방송을 했다. 남편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이들도 있었다. 조선혁명군 참모장 김학규(1900∼1967)와 부부의 연을 맺은 오광심은 만주와 임시정부가 있던 난징을 오가며 검문에 발각되지 않도록 2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암기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이날 발표한 ‘애국부인회를 통한 한국 여성 독립운동의 성격’을 통해 1919년 이후 국내와 중국, 미주, 러시아 등지에서 결성된 항일 애국부인회의 활동을 조명했다. 이 소장은 “애국부인회는 적십자회 조직과 보조를 맞춰 활동했다”며 “동포를 대상으로 한 구제 사업을 목표로 했으나 임시정부의 군사정책, 즉 독립전쟁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회의에선 윤정란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교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모 곽낙원 지사와 조마리아 지사’를, 강영심 전 이화여대 사학과 연구교수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여성의원들’을 발표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여행을 다녀오면서 기념품을 사오는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 책에 따르면 기원전 2200년에도 기념품이 존재했다. 이집트의 하르쿠프 왕자는 수단으로 여행을 갔다가 파라오에게 바칠 선물을 수집했다. 왕자가 모은 표범 가죽, 코끼리 상아, 흑단 등은 ‘역사에 기록된 가장 이른 시기의 여행 기념품’ 중 하나로 꼽힌다.주변 사람과 자기 자신을 위해 기념품을 사모은 인류의 역사와 그 의미를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세계 70여개 국을 다녔고, 여행기를 쓰는 작가다.영어로 기념품을 뜻하는 ‘souvenir’는 프랑스에선 흔히 동사로 쓰인다고 한다. ‘나 자신에게 돌아가다’ 또는 ‘기억하다’라는 뜻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면서 모은 기념품들을 두고 “그 자체로 무작위적인 박물관을 이뤄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주변을 이해하는 방식을 전시한다”며 “기억과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일깨워주는 물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그렇다고 기념품에 대한 감상을 추상적으로 늘어놓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영국의 골동품 전문가 호러스 월풀 등 관련 연구자들의 책, 논문을 소개하면서 분석에 깊이를 더했다.과거엔 여행의 기념품이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저자는 미국 사회학자 딘 맥커넬의 책 ‘관광객: 신유한계급론’을 인용해 기념품이 대중화한 과정을 짚는다. “한때 기념품이 장거리 여행을 가능케 하는 부와 특권의 상징이었다면, 철도와 증기선이 발달한 후로는 중산층 대중의 감성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기념품의 용도와 목적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짚는 대목도 흥미롭다. 예컨대 미 뉴욕에 있는 국립 9·11테러 사건 추모관은 기념품 매장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냉장고 자석이나 우산 등을 판매하는 게 유가족에게 충격을 줬던 탓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부대가 적군으로부터 빼앗은 물건이나 이라크의 역사나 종교와 관련 깊은 물건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 일 등은 ‘기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문화산업고위급대화’ 본회의가 27일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개최됐다.‘문화창조산업, 번영을 위한 새로운 지평(CCIs: New Horizons for Prosperity)’을 주제로 열린 이번 고위급대화는 1989년 창설된 APEC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산업을 주요 의제로 논의한 자리였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주재로 일본의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상, 칠레의 카롤리나 아레돈도 문화예술유산부 장관, 인도네시아의 파들리 존 문화부 장관, 말레이시아의 티옹 킹 싱 관광예술문화부 장관, 페루의 파브리시오 발렌시아 히바하 문화부 장관 등 20개국 고위급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했다.이날 회의에선 올해 APEC의 주요 의제인 ‘연결(Connect)’, ‘혁신(Innovate)’, ‘번영(Prosper)’이라는 3개 분과를 통해 문화산업의 미래를 조망했다. 문화산업이 APEC 핵심 성장 동력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통한 지역 성장 기회를 논의하는 한편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이 문화산업 전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또 모범사례 공유, 교육 훈련 교류 등 문화산업 분야의 실질적 협력 방안에 대한 회원경제체의 논의를 이어갔다.본회의를 마무리하며 APEC 회원경제체 참석자들은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문화창조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공동 인식 ▲디지털·AI 기술을 활용한 창작과 유통의 혁신 촉진 등이 담겼다.전날 우양미술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선 ‘까치호랑이 배지’ 등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기념품인 ‘뮷즈’ 40여 종이 전시돼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정구호 총감독이 이끈 만찬 공연도 펼쳐졌다.최휘영 장관은 “이번 ‘APEC 문화산업고위급대화’는 APEC 회원경제체 참석자들에게 문화콘텐츠의 무한한 확장성과 한국 문화산업의 역량을 생생히 선보였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라며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APEC 회원경제체들과 문화산업을 통한 지속적 협력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한족대표위원회(全韓族代表委員會)를 조직하여 해당 위원회의 명의로 독립을 선언하고 그리하여 신(新)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작(作)함이로소이다. … 회집(會集) 지점은 상하이가 가장 적당한가 하나이다.” 15일 8·15광복 80주년을 앞두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자 전한족대표위원회를 조직하자며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을 소집한 문건이 처음 확인됐다. 3·1운동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에 임정 구성의 첫 단추가 된 이 문건이 드러나며 독립운동사에서 큰 궁금증 중 하나였던 ‘독립지사들의 상하이 집결’ 이유가 밝혀졌단 평가가 나온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 총재 신규식(1879∼1922)이 1919년 2월 8일 미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도산 안창호(1878∼1938)에게 발송한 통첩(편지)을 대한인국민회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총 7장인 편지는 그해 파리강화회의 개최를 맞아 “신속하고 완전한 전 한족(韓族)의 대동단결”과 함께 “불가불 3월 이내로 전족(全族)위원회가 성립돼야 할 것”이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연구위원은 “신규식은 ‘신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한민족을 대표하는 정치적 통일기관’으로 규정했다”며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신규식은 “국내와 원동(遠東·극동) 각지의 각 단체에도 동지를 파견했다”고도 알렸다. 이 편지를 보낸 신규식은 상하이에 독립운동 터를 닦은 인물로 당대 독립운동가 가운데 도산과 함께 가장 영향력이 컸으며, 2·8독립선언 등의 막후로 꼽힌다.“新국가건설 최고위 만들자” 편지받은 도산 “대동단결 ”상하이行[광복 80주년] 상하이 임시정부 소집 문건 첫 확인1919년 2월 신규식이 안창호에 편지“全한민족 대표 조직해 상하이 모이자”… 安 “임시정부 조직했나” 전보 보내독립지사들 상하이 집결 배경 밝혀… “실제 임정수립 이어져 의미 남달라”새로 확인된 1919년 2월 독립운동 단체 대표 소집 문건은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이 대동단결해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제안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규식은 안창호에게 보낸 통첩(편지) 형식의 문건에서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1920년 6월)에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각자 대표를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의와 실질 모두에서 한민족의 단일한 대표를 파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가 우리 민족 독립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통첩 보낸 신규식, 비밀조직 ‘동제사’ 이끌어 해당 편지는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는 대표의 위상에 대한 제안을 넘어서 임정 수립까지 언급했다. 신규식은 행동의 ‘대강령’으로 “국내의 청년단(일본 유학생 포함)과 기독교 천도교 유림, 국외의 재미대한국민회 러시아고려민족대회 북간도 서간도 한족(韓族)대회 및 베이징 난징 상하이 등지에 있는 각 독립운동 단체가 각각 2, 3인의 대표자를 뽑아 일정한 지점에 회집(會集)하여 전한족대표위원회를 조직해 위원회의 명의로 독립을 선언하고 신(新)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만든다”고 천명했다. 편지를 보낸 신규식은 대한제국 육군 무관학교 출신으로 국내외 독립운동을 연결하며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과 3·1운동의 발발 등을 막후에서 조정한 거물이다. 이 편지에서 “원동 동포가 대표로 김규식 씨를 파견함을 보며 기쁘고 감사하다”고 한 부분은 다소 능청맞다. 동제사의 청년 그룹으로 하여금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하도록 한 것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동제사의 비밀스러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발견된 편지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 보내진 것이지만, 신규식은 같은 편지를 국내와 서간도·북간도·노령의 주요 독립운동단체와 인사 대부분에게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에는 대동단결의 필요성을 알리며, 방침을 문의하기 위해 국내와 원동(遠東·극동) 지방의 각 단체와 뜻있는 개인에게 이미 동지를 파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동단결 선언에 필적하는 가치” 학계에선 이 문건이 1917년의 ‘대동단결 선언’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동단결 선언은 각지의 독립운동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신규식을 필두로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조소앙 등 14명이 발기해 임정 수립을 위한 민족대회를 소집하자고 제의했던 선언이다. 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이번에 확인된 통첩은 실제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아직 3·1운동 발발 이전이었지만, 통첩은 효과를 발했다. 편지에 따르면 “원동의 독립운동 단체 2, 3곳이 이런 방안에 이미 동의했고, 다른 단체들도 향응(響應)”하는 상황이었다. 도산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편지는 1919년 2월 중순경 미주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대한인국민회는 2월 24일 임시위원회를 열어 “영구적 해외 한인의 대동단결을 위해 원동에 전권 대표자를 파견”하기로 의결했다. ‘중앙총기관’이 성립하면 대한인국민회는 중앙총회를 해산하고 그 산하에 들어간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도산은 3월 9일 상하이의 현순 목사로부터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이에 도산은 현 목사에게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세계열강에 선언문을 보냈나?(Do organize provisional Government and send declaration to Powers of world?)”라고 묻는 전보를 보냈다. 도산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산은 3월 14일에 “대동단결을 찬성함”이란 전보를 신규식에게 보낸 뒤 상하이로 출발했다. 상하이 임정 구성에 참여한 인물 가운데 상당수가 이 통첩을 받고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연구위원은 “당시 적어도 베이징을 경유해 상하이에 도착한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김동삼 등은 이 통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편지는 2000년대 미 로스앤젤레스(LA)의 대한인국민회총회관 복원공사 중 천장에서 발견된 문건 6300여 점 가운데 하나다. 이 문건 등은 독립기념관이 2011년과 이듬해 현장 조사를 했으며, 2019년 한국으로 대여돼 독립기념관이 소장해 왔다. 분량이 방대한 탓에 자료를 모두 검토한 김 전 연구위원에 의해 최근에야 편지의 중요성이 파악됐다. 편지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에 공개돼 있다. 신규식은 안창호에게 보낸 것과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하와이의 ‘국민보’와 박용만에게도 보냈고, 해당 편지는 미국 우편검열국이 입수해 영문 발췌 번역본으로 남았다. 번역본과 편지를 확인한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15일 출간 예정인 저서 ‘김규식과 그의 시대’에서 “초기 상해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명 학원 문제집과 강의 영상 등 유료 학습 교재 1만6000여 건을 불법으로 유포해 온 국내 최대 학습교재 공유방 ‘유빈아카이브’가 12일 오전 폐쇄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범죄과학수사대는 이날 “텔레그램 공유방 ‘유빈아카이브’를 폐쇄했으며, 지난달 23일 운영자 A 씨를 검거해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공유방 운영에 가담한 공범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대에 따르면 A 씨는 2023년 7월 유빈아카이브를 개설한 뒤 대형 학원 등의 유료 교재와 동영상 강의, 모의고사 자료 등 학습자료를 무단 복제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변호사 시험 등의 수험생 약 33만 명에게 불법 공유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를 받고 있다. 유빈아카이브는 가입자가 22만 명에 이를 만큼 수험생 사이에서는 유명한 텔레그램 채널이다. 교재를 구매한 학생들이 이를 스캔해 관리자에게 넘기면 이를 채널에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에 적지 않은 이들이 자료의 무단 유포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입시학원들에 따르면 유빈아카이브에선 ‘일타 강사’의 자체 교재와 모의고사 자료, 온라인 강의 영상 등도 불법으로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강사들의 강의 파일이 PDF 형태로 무료로 공유돼, 학생들 사이에선 “교재는 유빈이가 구해준다”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 수사대에 따르면 A 씨는 유빈아카이브 운영이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는 의로운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가의 학습자료는 이른바 ‘소수방’이라 부르는 유료 공유방을 따로 만들어 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진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으며, 잇달아 새로운 방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 입시학원 관계자는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 피해 금액을 집계 중”이라며 “이번 검거를 계기로 텔레그램 등을 이용한 불법 행위가 근절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도 “고유 창작물인 모의고사 문제, 강의 내용 등이 불법 유포돼 큰 피해를 보았다”며 “교육 콘텐츠는 보호받아야 할 지식재산권이라는 점이 널리 인식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저작권 침해 행위는 창작자들의 노력을 훼손하고, 건전한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라며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 채널을 악용한 불법 행위는 끝까지 추적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유명 학원 문제집과 강의 영상 등 유료 학습자료 1만6000여 건을 불법으로 유포해 온 국내 최대 학습교재 공유방 ‘유빈아카이브’가 폐쇄됐다.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범죄과학수사대는 12일 “이날 오전 텔레그램 공유방 ‘유빈아카이브’를 폐쇄했으며, 지난달 23일 검거된 운영자 A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공유방 운영에 가담한 공범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수사대에 따르면 A 씨는 2023년 7월 유빈아카이브를 개설한 뒤 대형 학원 등의 유료 교재와 동영상 강의, 모의고사 자료 등 학습자료를 무단 복제해 수학능력시험과 변호사 시험 등의 수험생 약 33만 명에게 불법 공유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를 받고 있다.유빈아카이브는 가입자가 22만 명에 이를 만큼 수험생 사이에서는 유명한 텔레그램 채널이다. 교재를 구매한 학생들이 이를 스캔해 관리자에게 넘기면 이를 채널에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에 적지 않은 이들이 자료의 무단 유포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입시학원들에 따르면 유빈아카이브에선 ‘일타 강사’의 자체 교재와 모의고사 자료, 온라인 강의 영상 등도 불법으로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강사들의 강의 파일이 PDF 형태로 무료로 공유돼, 학생들 사이에선 “교재는 유빈이가 구해준다”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수사대에 따르면 A 씨는 유빈아카이브 운영이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는 의로운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가의 학습자료는 이른바 ‘소수방’이라 부르는 유료 공유방을 따로 만들어 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진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으며, 잇달아 새로운 방을 만들기도 했다.서울의 한 대형 입시학원 관계자는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 피해 금액을 집계 중”이라며 “이번 검거를 계기로 텔레그램 등을 이용한 불법 행위가 근절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도 “고유 창작물인 모의고사 문제, 강의 내용 등이 불법 유포돼 큰 피해를 보았다”며 “교육 콘텐츠는 보호받아야 할 지식재산권이라는 점이 널리 인식되길 희망한다”고 했다.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저작권 침해 행위는 창작자들의 노력을 훼손하고, 건전한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라며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 채널을 악용한 불법 행위는 끝까지 추적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