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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내 취식 제한이 13개월 만에 해제되면서 영화관에 활기가 돌고 있다. 관객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 취식 허용 첫날인 25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 매점 키오스크 앞에는 영화를 보며 먹을 간식을 사려는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취식 제한이 풀리면서 국내 대형 배급사들도 길게는 2년 넘게 개봉을 미뤄온 한국 영화 대작 개봉을 줄줄이 확정해 발표하고 있다. 영화업계에서는 영화관의 마지막 장애물로 여겨진 취식 제한이 풀리고 나면 정부가 방역수칙을 다시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언제 어떻게 방역수칙이 바뀔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개봉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던 배급사들이 하나둘 묵혀둔 대작 보따리를 풀고 있다. 전통적인 성수기였던 7, 8월 여름 극장가에는 예년처럼 한국 영화 대작들이 대거 개봉해 정면대결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첫 테이프를 끊는 작품은 한국 거장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 ‘브로커’. 두 작품은 다음 달 17일 개막하는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CJ ENM은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을 각각 6월 초, 6월 말에 개봉할 예정이다. CJ ENM은 두 영화로 분위기를 띄운 뒤 이르면 7월에 영화 ‘도둑들’과 ‘암살’로 각각 1000만 명 넘게 관람한 기록을 세운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을 개봉할 계획이다. 윤제균 감독의 ‘영웅’, 김용화 감독의 ‘더 문’ 등 스타 감독들의 대작도 올해 안에 개봉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용 CJ ENM 영화 콘텐츠 사업국장은 “취식 허용으로 영화관이 팬데믹 이전의 문화공간으로 돌아감에 따라 관객들이 더 많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선 여름 시장을 겨냥해 블록버스터 개봉 예정작에 대한 마케팅 준비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개봉하려다 방역수칙 강화로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던 쇼박스의 ‘비상선언’도 이르면 7월 개봉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선언’은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데다 마케팅비를 제외한 순제작비만 260억 원에 달하는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인 만큼 극장가 분위기를 팬데믹 이전으로 돌려놓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역대 최다인 176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차기작 ‘한산: 용의 출현’을 7월 말 개봉하기로 했다. ‘한산’의 흥행 추이와 방역 관련 상황을 지켜본 뒤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친 후속작 ‘노량: 죽음의 바다’와 2020년 초 촬영을 끝낸 배우 소지섭의 스크린 복귀작 ‘자백’의 개봉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묵혀둔 대작들이 일시에 풀리면 관객들은 오랜만에 영화를 골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배급사나 제작사는 한정된 관객을 나눠 가져야 해 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극장가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개봉일을 놓고 벌이는 눈치 싸움은 팬데믹 국면에서보다 오히려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전쟁영화 명작으로 꼽히는 ‘1917’ ‘덩케르크’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배경이 전투 현장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영화 ‘민스미트 작전’은 결이 다르다. 속고 속이는 첩보전을 정면으로 다룬다. 총탄과 포탄이 오가는 전장 이면에 전쟁 판도를 바꾸고자 조용하고 치밀하게 진행된 기만작전이 소재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 런던. 영국군 중심의 연합군은 히틀러의 독일군에 맞서 전세를 역전시킬 방안을 강구한다. 이에 기획된 작전이 ‘민스미트 작전’. 부랑자 시신에 전투복을 입혀 ‘윌리엄 마틴’이란 이름의 영국군 해병대 소령으로 위장한다. 작전을 기획한 영국군 장교 몬태규(콜린 퍼스)와 첨리(매슈 맥퍼딘)는 윌리엄에게 팸이라는 이름의 약혼녀가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그들이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등 ‘윌리엄 스토리’를 세세하게 창조하며 그를 실존 인물처럼 꾸민다. 이 가짜 소령의 임무는 잠수함에서 바다로 던져진 뒤 스페인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것. 그는 연합군이 곧 그리스에 상륙할 것이란 내용이 포함된 연합군 수뇌부의 가짜 극비문서와 팸의 연애편지가 담긴 가방을 매달고 있다. 이 문서가 스페인에 있는 독일 첩보원을 거쳐 히틀러에게 전달되고, 히틀러가 전략적 요충지인 시칠리아의 병력을 그리스로 분산 배치하면 연합군이 그 틈에 시칠리아를 점령한다는 것이 작전 목표다. ‘윌리엄 소령’은 인간 미끼였던 셈이다. 영화는 남성 시신을 수배하는 과정부터 가상의 약혼녀 ‘팸’의 편지를 쓰고 이를 윌리엄이 소지하도록 하는 장면 등 작전 기획 단계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기만작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 작전을 실행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변수가 튀어나오는 장면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며 관객을 초조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1999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휩쓴 존 매든 감독의 신작이다. 알려진 대로 ‘민스미트 작전’은 2차 대전 판도를 연합군 우위로 바꿔 종전(終戰)으로 이끄는 데 기여한 성공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작전 성공에 환호하기보다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몬태규와 첨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시칠리아 해안에 상륙해 진격하다 산화한 연합군 병사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만작전으로 꼽히는 작전도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거둔 결과일 뿐임을 강조한다. 비장함을 배제한 감독의 담백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전쟁은 누가 승리하든 결국 비극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전쟁과 승리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명작 전쟁영화다. 다음 달 12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태초의 모습 그대로인 듯한 도미니카공화국의 정글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스크린에 펼쳐진 초록의 풍광은 관객들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장대한 자연을 무대로 담아낸 내용은 ‘병맛 코드’로 가득한 B급 감성 코미디. 배경과 이야기의 부조화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영화 ‘로스트 시티’ 얘기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로레타(샌드라 불럭)는 북콘서트가 끝난 뒤 호텔을 나서다 언론 재벌 아들 페어팩스(대니얼 래드클리프)에게 납치된다. 페어팩스는 자신이 찾는 전설의 고대 보물이 있는 화산섬이 어딘지를 로레타의 책을 보고 알아낸 인물. 그는 보물의 구체적 위치가 담긴 양피지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이가 로레타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로레타를 섬으로 데려가 해독을 강요한다. 로레타의 책 표지 모델로 납치 직전 로레타에게 막말을 했던 앨런(채닝 테이텀)은 죄책감을 씻기 위해 로레타를 구하러 화산섬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 이야기는 로레타와 앨런의 섬 탈출기로 단순하다. 단순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만드는 건 불럭과 테이텀이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주고받는 유머를 녹인 스몰토크. 구시렁거림에 가까운 이들의 대화는 관객들을 킥킥거리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불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화하는 코미디 연기는 30년이 넘는 연기 내공을 실감케 한다. 불럭과 테이텀은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을 때 가장 웃긴다는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앨런의 부탁으로 화산섬에 들어가는 잭 트레이너 역의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관람 포인트다. 그는 긴박한 상황에도 차분한 액션 연기를 펼치며 짧은 출연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래드클리프의 악당 변신도 눈길을 끈다. 신사적으로 보이려 애쓰는 악당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아무리 영화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일부 과도한 설정은 아쉬운 대목. 뻔한 로맨스를 빼고 끝까지 코미디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20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 마을에서 18∼40세의 건강한 남성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100위안을 드리죠.” 저자가 과거 중국 농촌지역에 데려간 미국 학생이나 연구자에게 농담처럼 이 말을 했을 때 해당하는 남성을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상황은 변했다. 농촌 곳곳에서 젊은 남성들이 발견됐다. 대부분 도시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고 반강제로 귀향한 이들이다. 중국은 1991∼2018년 27년간 경제성장률이 연 6%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2019년 경제성장률은 6.1%. 1990년 3.9% 이후 최저치였다. 2020년엔 팬데믹 여파로 2.3%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엔 8.1%였지만 분기별로 보면 1분기(1∼3월) 18.3%에서 4분기(10∼12월) 4%로 곤두박질치는 양상이다. 저자는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 급격한 부상 뒤에 숨겨진 엄청난 약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가난한 농촌 출신의 저학력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을 내세워 해외 기업을 유치했고 이들에게 의존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이 오르자 기업들은 또 다른 저임금 시장인 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옮겼다. 여기에 자동화 기술까지 더해져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저자는 중국이 한국 같은 고소득 국가가 되려면 ‘보이지 않는 중국’인 농촌지역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진국형 단순 제조업에서 탈피해 고생산성, 혁신 기반 경제로 전환하려면 중국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농촌 인구를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 농촌 어린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도시 어린이들과의 교육 격차를 줄이고 고급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주저자는 40년 넘게 중국을 연구해온 미국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 중국을 잘 아는 비중국인인 만큼 그의 제언은 깊이 있고 냉철하다. “중국이 잘돼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은 반중 정서를 지닌 이들에게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흘려들을 수만도 없는 얘기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허허벌판에 커다란 구(球)가 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이미지에 맞는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니 공상과학(SF) 장르가 됐어요.” 21일 개봉하는 영화 ‘헝거’를 연출한 강다연 감독(28)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각적인 이미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영화는 보는 것인 만큼 매력적인 이미지를 구현해 관객들이 보고 빠져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헝거’는 20대 강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제작비 4000만 원이 채 안 들어간 저예산 영화지만 감각적인 비주얼을 중시하는 MZ세대 감독답게 시각적인 것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주인공인 중학생 유지(김유나)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자신이 살던 부촌 ‘빌딩도시’가 파괴되고 남동생을 제외한 가족들 생사도 알 수 없게 되자 생존자 집결지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검은색 초대형 구는 관객 눈을 사로잡는다. 유지가 구로 들어가자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사는 또 다른 자신이 있다. 강 감독은 “유지는 4남매 중 장녀로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짓눌려 산다”며 “해석은 관객 몫이지만 다른 차원의 유지는 마침내 억눌린 현실에서 벗어난 유지 자신으로도 해석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부촌에 사는 유지가 인근 판자촌을 동경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강 감독은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헝거(Hunger), 즉 굶주림이라는 제목도 늘 무언가 결핍돼 있는 소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은 규정된 틀에서 벗어난 만큼 관객들이 낯설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낯섦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 영화 2편이 진출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14일(현지 시간) 다음 달 17일 개막하는 제75회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18편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첫 한국 영화 ‘브로커’가 포함됐다. 박 감독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은 2016년 영화 ‘아가씨’ 이후 6년 만이다. 신작 장편영화 ‘헤어질 결심’은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이 출연한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서래’(탕웨이)와 그에게 관심을 품는 형사 ‘해준’(박해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앞서 박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 2004년 심사위원 대상을,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각각 수상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는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 국내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로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렸다. 외국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가 해외 주요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오른 건 처음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2018년 일본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박 감독과 더불어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이번 영화제에서 두 작품 중 하나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는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이 영화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공동 주연을 맡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무슨 얘기가 그래?” 홍상수 감독의 신작 ‘소설가의 영화’는 영화 속 시인(기주봉)의 대사처럼 ‘무슨 얘기가 이런가’ 싶다. 소설가 준희(이혜영)는 연락이 끊긴 후배가 운영하는 책방을 찾아간다. 후배와 대화를 나누고 홀로 인근 전망대에 갔다가 영화감독 부부를 만난다. 공원으로 내려와서는 영화배우 길수(김민희)를 만나 길수 부부가 주연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출연을 설득한다. 준희와 길수는 함께 후배 책방으로 가고 노시인 등과 어우러져 막걸리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홍 감독 영화들이 그렇듯 ‘이야기 같은 이야기’는 없다. 소설가의 하루를 따라가고 그가 나누는 대화를 담아낼 뿐이다. 시인의 대사는 그의 작품들에 특별한 서사가 없는 것을 두고 “무슨 영화가 이러냐”고 비판하는 일각의 목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나는 그냥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만들되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란 준희의 대사는 홍 감독의 해명처럼 들린다. 준희가 말하는 “좋아하는 배우를 가장 편한 상태에 놓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온전히 기록하지만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것”은 그의 영화 스타일을 정의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연기는 대화 중간에 흐르는 침묵까지 현실감이 넘친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영화로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평온한 듯하다가 갑자기 직설적인 말을 쏟아내며 화를 내는 이혜영의 정색 연기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홍 감독의 기존 영화들과 다를 게 없는 ‘자기복제작’이란 혹평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그만의 스타일로 또 한 번 섬세하게 변주한 작품이라는 호평도 예상된다. 영화는 올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제 측은 홍 감독의 27번째 ‘섬세한 변주’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21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영화가 이달 국내에서 잇달아 개봉한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가수의 공연이나 작가의 전시를 취소하는 등 러시아 예술 보이콧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러시아 영화 개봉이 바람직하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첫 스타트를 끊는 건 13일 개봉하는 ‘행복을 전하는 편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여성 집배원 3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편지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옛날이야기처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참전한 뒤 오랜 세월 우정을 쌓아온 전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집배원에게서 전해 들은 노인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영화에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장르가 드라마인 만큼 회상 장면에서 일부 나오는 것에 그친다. 21일에는 ‘팔마’가 개봉한다. 엄마와 이별한 뒤 아빠와 살게 된 9세 소년 콜리아와 공항 활주로를 맴도는 떠돌이견 팔마의 우정을 담았다. 1974년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서 주인이 타고 떠난 비행기를 2년 동안 기다린 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했다. ‘팔마’ 배급사인 라이크콘텐츠 관계자는 “3월에 개봉하기로 하고 올 초 마케팅 계획을 잡아놨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개봉을 연기했다”며 “더는 연기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드라마 장르라 러시아라는 나라가 강조되지 않기에 개봉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두 작품과 달리 13일 개봉하는 ‘파일럿: 배틀 포 서바이벌’은 전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때문에 하필 이 시점에 러시아군(당시 소련군)을 다룬 영화를 개봉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독일군 점령지에 추락한 소련 공군 조종사의 생존기를 다룬다. 독일군에 맞선 소련 공군의 활약을 그리는 한편 부상으로 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전투기를 타고 출격한 실제 전쟁영웅들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와 반대로 침공당했을 당시 소련군의 활약과 군인정신을 강조한 영화여서 지금 러시아군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희석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화를 수입·배급한 박수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오래전 수입 계약을 체결한 영화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며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살기 위한 사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 만큼 어느 나라 군에든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영화가 이달 국내에서 잇달아 개봉한다. 러시아 가수 공연이나 작가의 전시를 취소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러시아 예술 보이콧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러시아 영화 개봉이 옳은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13일 러시아 영화 ‘행복을 전하는 편지’가 개봉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여성 집배원 3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편지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옛날이야기처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참전한 뒤 오랜 세월 우정을 쌓아온 전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집배원에게서 전해들은 노인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영화에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장르가 드라마인 만큼 회상 장면에서 일부 나오는 것에 그친다. 21일에는 또 다른 러시아 영화 ‘팔마’가 개봉한다. 엄마와 이별한 뒤 아빠와 살게 된 9세 소년 ‘콜리아’와 주인과 헤어진 뒤 공항 활주로를 맴도는 떠돌이견 ‘팔마’의 우정 이야기를 담았다. 1974년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서 주인이 타고 떠난 비행기를 2년 동안 기다린 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팔마’ 배급사인 라이크콘텐츠 관계자는 “3월에 개봉키로 하고 올 초 마케팅 계획을 잡아놨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개봉을 연기했던 영화”라며 “더는 연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장르도 드라마로 러시아라는 나라가 강조되거나 하지 않아 개봉을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두 작품과 달리 13일 개봉하는 ‘파일럿: 배틀 포 서바이벌’은 전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때문에 하필 이 시점에 러시아군(당시 소련군)을 다룬 영화를 개봉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독일군 점령지에 추락한 소련 공군 조종사의 생존기를 다룬다. 독일군에 맞선 소련 공군의 활약을 그리는 한편 당시 부상으로 다리를 절단하고도 다시 전투기를 타고 출격했던 실제 전쟁영웅들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와 정반대로 침공 당했을 당시 소련군의 활약과 군인정신을 강조한 영화인만큼 현재의 러시아군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희석시키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화를 수입·배급한 박수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오래 전 수입 계약을 체결한 영화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라며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살기 위한 사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만큼 어느 나라 군에든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영화가 더 발전하려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는 다양성을 더하는 작품이죠.” 영화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하 쓰리)를 연출한 박루슬란 감독(41)은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쓰리’는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했고, 주연배우들은 카자흐스탄인과 러시아인이 섞여 있다. 박 감독은 물론이고 주요 스태프는 모두 한국인인 특이한 영화다. 고려인 4세인 박 감독은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 ‘쓰리’는 지난달 말 카자흐스탄에 이어 이달 21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그는 “내 영화를 한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쓰리’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의 재능 있는 신인감독에게 수여하는 ‘뉴커런츠상’을 그에게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는 1970년대 소련에서 실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당시 담당 형사는 8명을 살해한 뒤 인육까지 먹은 살인마를 끈질기게 쫓아 검거했지만, 당국에 의해 해임됐다. 소련 당국은 이 살인마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1980년 개최된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끔찍한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박 감독은 “내가 어렸을 때 문제의 살인마가 내가 살던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도망친 일이 있어 늘 기억하던 사건”이라며 “어른이 돼 사건 담당 형사를 만났는데 살인마가 지금도 병원에서 잘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2012년 첫 장편 데뷔작인 ‘하나안’에서 자신과 같은 고려인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선 고려인을 출연시키지도, 고려인 이야기를 다루지도 않았다. “한 선배가 얘기했어요.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으면 고려인 얘기밖에 안 나온다고요. 그 틀에서 벗어나야 성장할 수 있다고요. 생각해 보니 제가 고려인 이야기만 하려고 감독이 된 건 아니었어요.” 박 감독은 다만 고려인을 상징하는 인물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 이야기는 꼭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 홍범도 일대기를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홍 장군 영화를 만든 이후엔 제게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준 공상과학(SF) 장르도 해보고 싶어요. 10명이 보면 10명 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영화라는 게 결국 사람들 재밌으라고 만드는 거니까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개발 중이라고 밝혀 긴장을 고조시킨 핵추진잠수함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개발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던 와중에 미 해군 하이먼 G 리코버 제독은 핵추진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잠수함에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개발된 것이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USS노틸러스’. 1958년 노틸러스가 북극점 빙하 아래를 통과하는 데 성공하면서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한 핵잠수함 시대가 열렸다. 저자는 1200t급 잠수함인 이억기함 부장과 2007년 실전 배치된 1800t급(214급) 잠수함 중 1번함인 손원일함 초대 함장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령. 잠수함 부대 작전참모, 잠수함 전대장으로 근무했고 전역한 뒤론 독일 잠수함 건조 회사에서 5년간 이사로 근무한 잠수함 전문가다. 그는 최초의 핵잠수함 이야기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발명가 드레벨이 영국 해군에 고용돼 1620년 최초로 항해가 가능한 잠수함을 제작한 이야기, 1775년 최초로 공격용 잠수함 터틀이 만들어진 이야기 등 잠수함의 역사를 풀어낸다. 6·25전쟁 당시엔 잠수함이 한 척도 없던 한국 해군을 대신해 미군이 잠수함을 이끌고 한반도 해역에서 감시 작전을 했다. 1950년 10월 1일 USS펄치함은 영국 해병 특수부대원들을 북한으로 침투시키는 작전에 동원되며 실제 전투 임무에도 참가했다. 저자는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소나와 리튬 배터리를 포함해 잠수함 관련 전문 기술 이야기도 풀어낸다. 이 외에도 북한이 시험발사를 진행 중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북한이 개발 중인 3000t급 신형 잠수함의 실체 등 잠수함과 관련한 최신 시사 이슈도 분석했다. 2017년 침몰한 아르헨티나 잠수함 산후안함 승조원 44명이 인양 경비 문제로 지금도 907m 수심에서 잠수함에 갇혀 있는 사연 등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했지만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이들의 슬픈 이야기도 담겼다. 일반인도 잠수함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솜씨가 돋보인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난달 21일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마블 히어로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5월 4일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팬데믹으로 방역지침이 자주 바뀌는 탓에 막판까지 개봉일을 저울질하던 과거와 달리 일찌감치 개봉일을 못 박는 자신감을 보인 것. 지난달 30일에는 파라마운트픽처스가 36년 만에 나오는 ‘탑건’(1986년) 후속편 ‘탑건: 매버릭’을 5월 25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고 밝혔다. 영화사는 개봉 두 달 전에 선제적으로 개봉일을 알린 뒤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며 한국 관객들을 잡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봄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마블의 안티히어로물 ‘모비우스’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거장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앰뷸런스’가 6일 개봉했다. ‘앰뷸런스’는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선을 끊으며 할리우드의 저력을 과시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 롤링이 각본을 쓴 ‘신비한 동물사전’ 3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도 13일 국내 개봉해 가족 단위 관객 공략에 나선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제작비가 2500억 원 가까이 들어간 대작 중의 대작이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비교적 적은 돈이 투입된 ‘앰뷸런스’도 제작비가 500억 원 가까이 되는 등 막대한 자금력으로 만든 화려한 작품들이 봄 극장가를 잠식할 태세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속속 개봉하는 데 반해 제작비가 100억 원 이상 들어간 한국 영화 대작들은 여전히 “최적의 시기가 오지 않았다”며 개봉을 미루고 있다. 이런 탓에 봄 극장가에서 할리우드 대작에 맞서는 한국 영화는 중·저예산 영화들뿐이다. 한국 영화 ‘다윗’들이 밀려오는 할리우드 ‘골리앗’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달 개봉을 확정한 한국 영화는 ‘말임씨를 부탁해’(13일), ‘앵커’(20일), ‘소설가의 영화’(21일), ‘공기살인’(22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7일) 등으로 각각 제작비가 100억 원에 못 미친다. 이마저도 개봉일을 더 미룰 수 없어 개봉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앵커’ 제작사인 인사이트필름 신혜연 대표는 “‘앵커’는 이미 2020년 초에 촬영을 마쳤다”며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는 만큼 개봉을 더 미루면 영화 내용이 구작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돼 개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출연 배우에 대해 ‘미투 논란’이 불거진 데다 팬데믹까지 이어지면서 5년 만에 개봉한다. 영화 배급사인 마인드마크는 “학교 폭력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로 할리우드 대작들과의 차별성이 분명한 만큼 경쟁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개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 만든 한국 영화 대작들이 할리우드 대작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극장가가 팬데믹 이전 분위기를 회복하는 시점을 두고 눈치싸움을 하다 한꺼번에 개봉할 경우 경쟁 과열로 흥행에 참패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팬데믹 국면이 끝난 후 한국 영화계가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화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관 내 음료 외 취식 금지 지침을 해제해 영화관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관객이 영화관으로 돌아오고 한국 영화 대작도 안심하고 개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계 각국 정보기관이 첩보수집 전쟁을 벌이는 중국 선양. 이곳에서 활동 중인 국가정보원 비밀공작 전담 블랙팀이 수개월간 한국에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밝혀진다. 재벌 총수를 수사하다 국정원 파견검사로 좌천된 검사 한지훈(박해수)은 그 내막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으로 선양에 파견된다. 그는 일명 ‘야차’로 불리는 블랙팀 팀장 지강인(설경구)과 팀원들이 총격전까지 치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국 요원들과 첩보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야차’가 8일 전 세계에 공개된다. 나현 감독은 5일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선양을 배경으로 한 것에 대해 “선양은 북한과 인접한 대도시로 늘 긴장감이 흐르는 곳인 만큼 첩보액션물 무대로 적격했다”고 말했다. 실제 촬영은 대만과 한국에서 했다. 인도 신화와 불교에 등장하는 야차는 사람을 잡아먹는 추악한 귀신이자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중적인 존재인 ‘야차’ 지강인을 연기한 설경구는 이날 “지강인은 무모하고 폭력적이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지강인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멋있어서 감독에게 ‘멋짐의 수위’를 좀 낮춰 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야차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박해수가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날 스스로를 ‘넷플릭스 공무원’이라 칭한 박해수는 야차에 대해 “눈과 귀가 호강할 수 있는 통쾌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총격전 장면을 비롯해 각종 액션신을 실감나게 연출하고자 감독은 총기 36정, 총알 7700여 발을 사용하며 공을 들였다. 화려한 총격 액션에 이국적인 배경이 더해지면서 한국 영화라기보다 홍콩영화나 할리우드영화에 가까운 느낌을 풍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한지훈을 연기한 박해수는 화려한 액션으로 자칫 비현실적일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현실로 끌어오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 ‘오징어게임’의 진지한 상우와 달리 절제된 코믹 연기도 선보인다. 그는 ‘오징어게임’으로 스타가 된 데 대해 “해외 시청자들이 ‘야차’를 봐주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감사할 듯하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새 영화로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People Club·가제)을 발전시키는 중입니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폭력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황동혁 감독(51·사진)이 ‘오징어게임2’ 이전에 제작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4일(현지 시간)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이날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차기작은 황 감독이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미 25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시놉시스보다 더 구체화된 개요)를 써놓은 상태”라고 했다. 황 감독은 이 외에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이 공개된 뒤에 나는 아마도 노인들을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노인들이 희생자가 되는 내용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 감독이 에코의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노인 죽이기’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폭력성 수위가 높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책에는 에코가 2011년 집필한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포함돼 있다. 에코가 미래를 상상해 쓴 이 글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가보면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버티는 노인들”, “이들 탓에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죽인다. 자신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들이 숨기 시작하면서 ‘노인 사냥’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노인들은 전쟁을 부추겨 젊은이들을 죽이는 방법 등으로 역습에 나선다. 이 같은 내용으로 볼 때 황 감독이 초고령화로 인해 노인층과 젊은층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으로 차기작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황 감독은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오징어게임2’에 대해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오징어게임2’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라며 “2024년 말까지는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가 공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새 작품으로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People Club·가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폭력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황동혁 감독(51)이 ‘오징어게임2’ 이전에 제작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이날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차기작은 황 감독이 움베르트 에코(1932~2016)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미 25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놓은 상태”라고 했다. 황 감독은 이 외에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이 공개된 뒤에 나는 아마도 노인들을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노인들이 희생자가 되는 내용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작품이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어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황 감독이 에코의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노인 죽이기 클럽’이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폭력성 수위가 높다고 말한 것을 미뤄볼 때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책에는 에코가 2011년 집필한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가 포함돼 있다. 미래를 예측한 이 글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가보면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버티는 노인들”, “이들 탓에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젊은이들이 자식 없는 노인들을 죽이는 방법이 제시된다. 이를 위해 ‘제거 명단’부터 작성해야 한다는 등 ‘노인 사냥’ 방법도 나와 있다. 이 같은 내용으로 미뤄볼 때 황 감독이 초고령화로 인해 노인층과 젊은층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으로 차기작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황 감독은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오징어게임2’에 대해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오징어게임2’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라며 “2024년 말까지는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가 공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올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 엄마들을 다룬 영화들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관객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 “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고 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 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 놓는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걸핏하면 화를 내고 위악을 부리는 엄마 이야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지만, 모성은 누구보다 깊다. 아들을 기다리다 넘어져 병원에 실려 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는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료를 아끼겠다고 밤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는 모습 등 감독이 살린 ‘생활 디테일’은 평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며 웃음을 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모두의 가슴에 얹혀 있는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뒤틀린 모성애가 주는 공포 이달 개봉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눈길을 끈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장르는 예상 밖의 공포물. 미국 시골 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한국에서 살던 엄마의 유골함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혐오한다. 그는 과거 엄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자신의 딸에게는 더없이 다정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깊은 트라우마로 딸을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맨다. 뒤틀린 모성애의 무서움을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앵커’의 소정(이혜영)은 딸 세라(천우희)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집착한다. 딸의 기상 시간, 의상 등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으로 여기고 조종하려는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표현했다. 현재 상영 중인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딸을 낳은 싱글맘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스)와 아나(밀레나 스미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는 아이를 키우던 중 아이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강한 모성애를 지닌 두 여성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꿈이 최우선이어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의 엄마를 보여준다. 모성의 정도가 각자 다를 수 있고 거기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담담한 연출력이 돋보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과 꿈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있다. 학대로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도,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의 엄마상을 담은 ‘엄마 영화’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극장가에 미약하게나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나는 개안아.”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 종욱(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며 전화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혼자 사는 엄마를 다룬다. 아들을 기다리다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실려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아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겐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오지 말라”고 화내며 위악을 부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다. 영화는 혼자 있을 말임을 위해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내공 꽉 찬 생활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세를 아끼겠다며 한밤 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고 색색의 봉지로 싼 식재료들을 냉동실 가득 저장해놓고 얼리면 평생 가도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 모습까지. 감독이 되살린 ‘엄마 실생활 디테일’은 다소 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편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화 속 이야기는 올해 91세가 된 우리 엄마 이야기”라며 “모두의 가슴에 얹혀있는 엄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공포가 된 뒤틀린 모성애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이달 중 개봉한다. 한국어 발음 그대로 ‘엄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는 “That’s my 엄마”라는 대사 등 ‘엄마’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장르는 예상 밖에 공포물이다. 딸과 단 둘이 고립된 채 살며 미국 시골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어느 날 한국에서부터 엄마의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극도로 혐오한다. 아만다는 과거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반대로 자신의 딸에게 더 없이 다정한 엄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깊은 트라우마로 집에서 일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딸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매며 학대한다. 엄마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한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뒤틀린 모성애가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앵커’에도 집착형 엄마가 나온다. 배우 이혜영이 분한 ‘소정’은 딸 세라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세라가 위험천만한 일을 해서라도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바란다. 딸의 기상 시간, 옷차림, 식사, 발음까지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처럼 여기고 딸을 로봇처럼 조종하려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보여준다. ● 뒤바뀐 아이, 절절한 모성애지난달 31일 개봉한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실을 쓰며 각자의 딸을 낳은 두 엄마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밋)는 퇴원한 뒤 열심히 아기를 돌본다. 두 사람은 모두 싱글맘이다. 야니스는 자신도, 아이 아빠도 닮지 않은 아이 외모에 의문을 품고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다. 그 결과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생아 치료실에 있던 두 아이가 뒤바뀐 것.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사실대로 말하고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나이도 직업도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모성애만큼은 똑같이 지극한 두 여성 이야기에 집중한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치는게 최우선으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 엄마도 보여주며 모성의 크기가 다를 수 있음을, 각자의 이유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함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크루즈의 명연기도 관전 포인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에 앞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코다’는 쉬운 영화다. 보이는 게 다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접어뒀던 이유다. 이 영화는 감독이 심연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줄거리 서너 줄만 보면 이야기 전개가 다 보인다. 클리셰까지 갖췄다. 명작의 주적, 클리셰를 곳곳에 배치한 영화가 최고상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한 것이다. 아카데미의 최고상을 타려면 모름지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고급 은유가 어딘가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범인(凡人)들이 지적 능력을 자책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예술 뽕’만 차오른 감독을 힐난하게 하는 그런 유의 영화 말이다. 전문가들은 ‘파워 오브 도그’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 봤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깨부순다. 1925년 미국 몬태나주 초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겉모습은 서부극. 그러나 이는 고도의 위장술이다. 영화엔 총잡이, 결투 등 뻔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 대신 카우보이들의 리더 필과 그의 동생 조지, 남편과 사별한 후 조지와 결혼하는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 등 네 사람의 심리 묘사가 매 장면을 꽉 채운다. 영화 속 대자연은 장엄함의 끝. 심리 묘사는 정교함의 절정이다. 한 모금씩 번갈아가며 나눠 피우는 담배, 눈빛만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빚고 동성애 코드를 은유해내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연출 솜씨는 마법이다. 감독은 영상으로 대작 시를 써내려간다. 그런 만큼 짐작의 영역이 많다. 명쾌한 답은 없다. 이 때문에 소름 돋는 반전마저 반전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관객에겐 ‘내 해석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영화를 다시 보고 되짚어본 뒤에야 ‘뒷북 전율’을 느끼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자백하자면 필자 이야기다. ‘코다’는 해석이 필요 없다. 루비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집 딸. 농아인인 부모, 오빠 등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과 일하며 입과 귀가 되느라 학교생활도 버겁다. 친구들은 장애와 비린내를 조롱한다. 그러다 합창단에 들어가 재능을 발견한다. ‘참스승’은 루비를 음대에 보내려 한다. 얼핏 클리셰 범벅이다. 그러나 클리셰를 활용할 뿐이다. 친숙한 설정으로 긴장을 놓게 하되 “영화 참 편하게 만드네”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디테일로 차별화한다. ‘뻔한데 뻔하지 않게’ 줄타기 한다. 사실 클리셰와의 전면전에 나섰다가 영화가 산으로 가버리고 감독의 나 홀로 공감으로 끝나버린 영화를 여러 번 봐왔다. 클리셰를 배척만 할 수도 없는 이유다. 루비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불만을 곧잘 토로한다. 루비 부모는 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기적인 면모도 보인다. 부모는 사타구니 가려움증 진료에 딸을 수어 통역사로 데려가고 “2주간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진단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손사래 치는 철없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현실적인 디테일을 더해 자애로운 부모, 천사 같은 딸이라는 클리셰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가장 큰 장점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이래도 안 울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압박하는 클리셰 중무장 신파 영화를 많이 봐 왔다. 주인공들은 오열하는데 혼자만 울지 않는 짐승이 돼버린 경험이 숱하다. 반면 이 영화는 주인공들은 울지 않는데 관객은 대놓고 울게 된다. 여기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딸의 콘서트에 가지만 부모에겐 무음의 현장일 뿐. 부모는 조금 당황하다 관객들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뒤늦게 박수를 치고 엄마는 환하게 웃는다. 감독은 이를 담담히 보여주되 음을 소거한다. 눈물의 선택권은 관객에게 던진다. 관객들은 협박당한 것처럼 운다. 한 편은 클리셰를 거부했고, 한 편은 적절히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두 전략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아카데미는 월드컵이 아니기에 ‘코다’가 이겼다고 ‘파워 오브 도그’ 제작진이 잔디를 쥐어뜯으며 울 일도 아니다. 다만 아카데미가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골든글로브에서 ‘코다’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파워 오브 도그’ 대신 ‘코다’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결과라고 하기엔 ‘파워 오브 도그’도 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짐작건대 이번만큼은 ‘해석의 영역’에서 벗어난 장벽 낮은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닐까. 뻔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되 공들인 디테일로 모두를 울리는 보편적인 작품에 보내는 찬사 아니었을까. 완전히 다른 두 걸작이 벌인 대결과 이변은 영화제 이후로도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시상자의 흔한 농담 클리셰를 파괴하겠다는 듯 따귀를 날려버린 윌 스미스 덕(?)에 여운이 금세 휘발해버린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지옥’ ‘부산행’ ‘반도’를 흥행시키며 확장을 거듭해 온 ‘연상호 디스토피아’가 또 한번 영역을 넓혔다.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년)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12부작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2회씩 공개되고 있다. 현재 4회까지 공개됐다.》 원작자인 연 감독은 29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은 내가 처음 쓴 장편 시나리오였다”며 “당시 한국 계급사회의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96분 분량의 원작은 중학교에서 일어난 야만적이고 지능적인 폭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중1 교실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 아이들은 물리적 힘과 성적, 집안 형편을 기준으로 계급화돼 있다. 교사는 통제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이를 묵인한다. 세 요소를 모두 가진 최상위 계급은 ‘사냥개’,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약자들은 ‘돼지’로 묘사된다.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돼지의 왕’이 돼 싸울 것인가. ‘돼지’들은 투쟁을 시도하지만 곧 무기력에 빠진다. 작품은 이듬해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충격의 수작”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드라마 역시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학교 폭력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재현, 섬세한 심리 묘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드라마 대본을 쓴 탁재영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도 원작의 엄청난 팬”이라며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드라마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작은 학교 폭력이 일어난 당시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성인이 된 이들의 비중은 작다. 반면 드라마는 20년이 지나 성인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원작과 달리 가장 큰 피해를 당했던 경민(김동욱)은 성인이 된 뒤 가해자들을 연쇄 살인하고, 또 다른 피해자였던 종석(김성규)이 담당 형사가 돼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탁 작가는 “원작의 메시지를 살리면서 재미를 더하려면 스릴러 같은 몰입감 있는 장르와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원작을 만들었을 당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였는데 그 답이 드라마에 있다”고 했다. 원작과 드라마 모두 학교 폭력을 묘사하는 수위가 매우 높다. 드라마는 가해자들에 대한 유혈 낭자한 복수 장면까지 더해져 일부 시청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탁 작가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 하는 행동을 시청자들이 납득하려면 과거 사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과 카타르시스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연 감독은 “(원작도 드라마도) 카타르시스를 통한 대리만족을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정당한가, 피해와 가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다. 원작이 11년 전 나온 만큼 드라마는 현 시점에 맞게 설정과 배경을 많이 바꿨다. 다만 잔인한 학교 폭력과 가해자들, 이로 인해 정신을 갉아 먹힌 나머지 괴물이 된 이들은 그대로다.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의지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지가 있는지 개인적으론 잘 못 느끼고 있습니다. 11년 전 ‘돼지의 왕’이 보여준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폭력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거 아닐까요?”(연 감독)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머니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나 봐요.”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윤여정(75)이 겸연쩍게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그는 “지난해 내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는 이들에 대해 불평했는데 정말 죄송하다”며 “이번엔 내가 후보들 이름을 발음해야 하는데 용서해 달라”고 했다. 지난해 4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당시 그는 “내 이름을 ‘유정’ 등으로 (틀리게) 부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남우조연상 후보들의 각양각색 영어 이름을 호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이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 검정 롱드레스를 입고 백발을 그대로 드러낸 노배우의 솔직한 고백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고 이내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윤여정은 왼쪽 어깨에 ‘#With Refugees’(난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인쇄된 파란 리본을 달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진행하는 우크라이나와 난민 지지 캠페인에 참여한 것. 윤여정은 후보 5명을 소개한 뒤 빨간색 카드를 열어 수상자 이름을 확인하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미나리’는 아니에요”라고 농담한 뒤 수어로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객석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오다 곧 환호가 쏟아졌다. 이후 윤여정은 육성으로 호명했다. “트로이 코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의 ‘코다’에 출연한 농아인 배우 코처가 무대에 올라서자 윤여정은 수어로 축하했다. 코처가 양손을 사용해 수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게 윤여정은 트로피를 대신 받아 들며 배려했다. 윤여정을 포함한 객석 참석자들은 두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농아인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건 두 번째다. 최고상인 작품상도 ‘코다’에 돌아갔다. 대사의 40% 안팎이 수어로 된 ‘코다’는 농아인 부모, 오빠와 살며 이들의 입과 귀가 돼주는 딸 루비가 음악을 하려는 꿈을 품고 집을 떠나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4명 중 루비 아빠 역의 코처를 포함한 3명의 배우가 농아인이다. OTT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높아진 OTT의 위상과 영화계의 판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 것. 지난해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 이어 올해 샨 헤이더 감독의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상이 2년 연속 여성 감독 작품에 돌아갔다. 감독상 역시 OTT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제인 캠피언 감독이 받으며 지난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감독이 수상했다. 여성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국제장편영화상은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던 일본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는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등 한국 배우도 출연했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화이트 오스카’라 비판받았던 아카데미 측이 성별, 인종, 장애 등 다양성의 문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향상 음악상 시각효과상까지 6개 부문 상은 SF영화 ‘듄’에 돌아갔다. 듄은 최근 수익이 4억 달러(약 4900억 원)를 돌파해 듄과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오른 나머지 9개 영화의 수익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익을 거뒀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