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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삼각지역 일대. 인도 쪽 외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1층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에선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와인 가게로 짐작은 되지만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벽인 통유리에 붙어있는 건 ‘@hariseoul’이라는 글귀가 전부. 이마저도 하얀색인 데다 출입문 손잡이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의 정체는 올해 1월 문을 연 내추럴 와인바 ‘하리’. 하리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1)는 “캄캄한 거리를 밝히는 가게 내부 불빛 자체가 간판이라고 생각해 외벽을 통유리로 만드는 대신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간판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더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일자리 잃은 영업사원 ‘간판’ 지금까지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자 ‘무언의 영업사원’으로 불렸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가게의 정체를 알리고 이들을 가게로 이끄는 판촉물이었던 것. 간판 활용은 장사의 기본이었다. 몇 년 사이 ‘간판 없는 가게’가 늘고 있다. ‘K간판’으로 불리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원흉으로 꼽히던 평면 간판이 줄고 가게명만 표시하는 입체 글자 간판이 늘더니 이마저도 달지 않게 된 것. 이 같은 추세는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가게 주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각지역 일대 또 다른 내추럴 와인바 ‘음(Mmm)’의 경우 간판이 없는 것에 더해 꽃가게 위 2층에 정체를 숨기고 있다. 1층 출입문에도 안내문이 전혀 없다. ‘음’을 운영하는 권은지 씨(34·여)는 “우리 가게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와 와인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손님들에게 ‘나만 아는 공간’의 매력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MZ세대 “간판 없어도 괜찮아” 이들이 간판을 달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은둔에 가까운 기이한 모습을 하고도 장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간판 없는 가게의 전성시대를 여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하리’의 경우 예약의 95% 이상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받고 있다. 손님도 대부분 SNS를 잘 활용하는 MZ세대다. ‘음’ 주인 권 씨는 “개업 초기 출입문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잠깐 붙여 놨다 뗐는데 이때 홍보가 되면서 소문이 났다”며 “간판이 없어도 장사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숨은 맛집을 SNS 검색을 통해 어렵게 발견한 뒤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의 확산을 부추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디지털문화심리학자)는 “MZ세대 고객들과 SNS를 영업에 활용하는 MZ세대 주인들이 결합하면서 간판을 달지 않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맛 자신감-워라밸 중시도 한몫 간판 없이도 맛과 분위기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MZ세대의 자신감도 간판을 떼게 하는 원인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는 간판이 없는 데다 가게 이름까지 ‘간판 없는 가게’다. 호텔 셰프 출신 등 1988년생 친구 3명이 뜻을 모아 2017년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익선동 대표 맛집으로 소문 나 늘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이 가게 주인 정종욱 씨는 “음식이 맛있으면 그 가게가 산골짜기에 있어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며 “음식과 맛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어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했다. ‘대박’이 나 큰돈을 벌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를 확산시키는 배경이다. 대구 중구에서 ‘코러스커피’를 운영하는 최진영 씨(29)가 그렇다. 그의 가게는 1층에 구제품 가게와 보청기 가게가 있는 건물의 2층에 간판 없이 숨겨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인 것. 최 씨는 “내 가게와 취향이 맞다고 생각해 애써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다”며 “대박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 주인 권 씨는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 퇴사한 뒤 내추럴 와인바를 열었다. 그는 “가게가 너무 잘되는 건 싫다”며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내추럴 와인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은용 경희사이버대 호텔·레스토랑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 주인들도 간판이 없으면 개업 초창기 고객 확보가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간판을 걸지 않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면서 워라밸을 지키겠다는 MZ세대의 명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8일 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삼각지역 일대. 인도 쪽 외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1층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에선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와인 가게로 짐작은 되지만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벽인 통유리에 붙어있는 건 ‘@hariseoul’이라는 글귀가 전부. 이마저도 하얀색인데다 출입문 손잡이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의 정체는 올해 1월 문을 연 내추럴와인바 ‘하리’. 하리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1)는 “캄캄한 거리를 밝히는 가게 내부 불빛 자체가 간판이라고 생각해 외벽을 통유리로 만드는 대신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간판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더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일자리 잃은 영업사원 ‘간판’ 지금까지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자 ‘무언의 영업사원’으로 불렸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가게의 정체를 알리고 이들을 가게로 이끄는 판촉물이었던 것. 간판 활용은 장사의 기본이었다. 몇 년 사이 ‘간판 없는 가게’가 늘고 있다. ‘K간판’으로 불리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원흉으로 꼽히던 평면 간판이 줄고 가게명만 표시하는 입체 글자 간판이 늘더니 이마저도 달지 않게 된 것. 이 같은 추세는 특히 MZ세대 가게 주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각지역 일대 또 다른 내추럴와인바 ‘음(Mmm)’의 경우 간판이 없는 것에 더해 꽃가게 위 2층에 정체를 숨기고 있다. 1층 출입문에도 안내문이 전혀 없다. 가게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애쓴 듯한 모습. ‘음’을 운영하는 권은지 씨(34·여)는 “우리 가게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와 와인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손님들에게 ‘나만 아는 공간’의 매력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MZ세대 “간판 없어도 괜찮아”이들이 간판을 달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은둔에 가까운 기이한 모습을 하고도 장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간판 없는 가게의 전성시대를 여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하리’의 경우 예약의 95% 이상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받고 있다. 손님도 대부분 SNS를 잘 활용하는 MZ세대다. ‘음’ 주인 권 씨는 “개업 초기 출입문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잠깐 붙여 놨다 뗐는데 이때 홍보가 되면서 소문이 났다”며 “간판이 없어도 장사하는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숨은 맛집을 SNS 검색을 통해 어렵게 발견한 뒤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의 확산을 부추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디지털 심리학자)는 “MZ세대 고객들과 SNS를 영업에 활용하는 MZ세대 주인들이 결합하면서 간판을 달지 않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맛 자신감-워라밸 중시도 한몫간판 없이도 맛과 분위기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MZ세대의 자신감도 간판을 떼게 하는 원인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는 간판이 없는데다 가게 이름까지 ‘간판 없는 가게’다. 호텔 셰프 출신 등 1988년생 친구 3명이 뜻을 모아 2017년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익선동 대표 맛집으로 소문 나 늘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이 가게 주인 정종욱 씨는 “음식이 맛있으면 그 가게가 산골짜기에 있어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며 “음식과 맛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어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했다. ‘대박’이 나 큰돈을 벌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를 확산시키는 배경이다. 대구 중구에서 코러스커피를 운영하는 최진영 씨(29)가 그렇다. 그의 가게는 1층에 구제품 가게와 보청기 가게가 있는 건물의 2층에 간판 없이 숨겨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인 것. 최 씨는 “내 가게와 취향이 맞다고 생각해 애써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다”며 “대박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 주인 권 씨는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 퇴사한 뒤 내추럴와인바를 열었다. 그는 “가게가 너무 잘되는 건 싫다”며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내추럴와인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은용 경희사이버대 호텔·레스토랑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 주인들도 간판이 없으면 개업 초창기 고객 확보가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간판을 걸지 않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면서도 워라밸을 지키겠다는 MZ세대의 명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숨겨둔 보석 같은 해변이 있다. ‘사람 반 물 반’인 휴가철 여느 해변과 달리 인적이 드물다. 천혜의 자연 경관까지 더해지니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근심이 있는 듯하지만 해변에 도착한 순간만큼은 최고의 휴가를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 그런데 이 낙원은 순식간에 지옥이 된다. 30분에 1년씩 시간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흐른다. 6세 남자아이 트렌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성인이 된다. 탁 트인 해변 어디에도 탈출할 곳이 없다. 18일 개봉한 스릴러 영화 ‘올드(OLD)’ 이야기다. ‘올드’는 독창적인 스토리와 반전의 대가인 M 나이트 시아말란 감독의 신작. 시간이 초고속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아름답기만 했던 기암절벽과 바다는 그들을 고립시키는 ‘자연 감옥’으로 바뀐다.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친 이는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리는 등 죽음을 맞는다. 2011년 출간된 그래픽 노블 ‘샌드 캐슬’이 원작인 이 영화는 ‘관객의 시간’ 역시 빨리 가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 넘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해변에 가뒀을까. 리조트 직원은 왜 하필 이들에게만 이 해변을 소개했을까.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작곡가 트레버 거레키스가 만든 영화 음악은 의도된 불협화음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면서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공포지만 정반대로 ‘시간이 약’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노인이 돼버린 인물들은 젊은 시절의 갈등이 사실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화로 눈이 침침해지면서 아내를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귀가 어두워지면서 남편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스릴러물이지만 인생과 시간에 대한 고찰도 곳곳에 담겨 있다. 영화 속 해변은 도미니카공화국의 ‘플라야 엘 바예’. 공포의 해변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국내에 갇힌 관객들에게 멋진 해변에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영화 후반부 악역을 맡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뱉는 대사가 너무 직접적인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삼켜버린 현재 상황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지난달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12세 이상 관람가.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떤 시는 시라기보다 신세 한탄에 가깝다.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리는 한 문장짜리 시도 있다. 집안일을 시키면서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투정을 다루기도 한다. 최근 발간된 어린이 시집 ‘내 마음에 들어온 시’(그루) 이야기다. 김현희 교사(38·여·사진)가 엮은 이 시집은 경북 칠곡군 약목초등학교 전교생 166명 중 143명의 시를 모아 발간됐다. “내 이름을 단 시가 외부로 공개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의견을 내비친 고학년 몇 명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교생의 시가 담긴 것. 김 교사는 이 학교에 부임한 2018년부터 시 동아리 지도를 해왔다. 그러다 올해 1학기엔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 수업을 했다. 그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가 약목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여서 모두에게 시를 가르친 뒤 ‘전교생 시집’을 내고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1학기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3편 이상 시를 써오라”며 숙제를 내줬다. “시 쓸 내용이 없다” “시가 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겐 일상의 모든 일이 시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다투면 화해시키며 “싸운 내용으로 시 써 온나. 니가 경험하고 느낀 게 다 시다”라고 가르치는 식. 한 학생은 이 같은 가르침에 ‘시 쓰기 싫은 심정’을 소재로 시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시를 10편 이상 쓰라고/협박하셨다.//정말 자퇴하고 싶다.’(6학년 최태영 ‘시’) 한 달 뒤 이 학생의 심정은 좀 달라졌다. ‘(전략) 아무래도 김현희 선생님 때문에/시에 중독된 것 같다’(‘주말’) “학생들에게 ‘좋은 시 나쁜 시는 없지만 진짜 시 가짜 시는 있다’고 늘 강조해요. 감정이 묻어나지 않거나 어설픈 말재주를 부리는 시는 ‘가짜 시’라고요. 시를 써오면 무조건 칭찬해줬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시를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집은 숙제 중 학생 각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며 선택한 시로 구성했다. 자유롭고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가 개성 넘치는 일상과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시의성을 반영한 ‘삼행시’(6학년 박현준)라는 시도 있다. ‘집으로 가는 길/우리 가족은 삼행시 삼매경.//“개미집으로 삼행시 해볼게.”/개 미들이 단체로/미 쳤나보다 이 시국에/집 단생활이라니 (중략) 그 말을 들은 막내는/자기도 하겠다며/‘소름’으로 이행시를 한단다.//소 가 운다./름 매.’ 한 문장짜리 시 ‘구구단 외우기’(2학년 이시우)의 내용은 이렇다. ‘2단에서 7단까지는 외울 수 있는데/8단에서 끊긴다.’ ‘치킨의 수명’(4학년 심형준)을 보면 치킨을 진지하게 관찰한 뒤 ‘치킨의 수명은 하루’라는 결론에 도달한 초등학생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진다. 일상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평소와 다른 느낌’(6학년 조율)이란 작품도 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온 날./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들.//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빛을 즐기는 식물들./그리고 차분한 분위기.//같은 집이지만/평소와는 다른 느낌.’ 조율 군(12)은 “시를 배우며 사소한 것도 자세히 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엄마와 전망대에 놀러간 경험을 녹여 ‘전망대’라는 시를 쓴 전예닮 양(9)은 “시를 쓰면 좋았던 일이 생각나서 행복하다”고 했다. 경북도교육청과 칠곡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발간된 시집은 약목초등학교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김 교사는 남은 한 학기도 전교생 대상 시 지도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함, 불만 등 내면의 감정을 시를 통해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계화를 향해 질주하던 인류가 장애물을 만났다. 정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코로나19가 초고속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원인으로 세계화가 지목됐다. 국가 간 장벽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 세계화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거시경제·국제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세계화는 구석기시대부터 크게 7개 시대에 걸쳐 진행된 역행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인류는 코로나19 외에도 빈곤, 전쟁, 환경오염 등 각종 장애물을 숱하게 만나 왔다. 그렇다고 세계화를 끝내지 않았다. 저자는 “세계화를 멈출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댄 것도 이 같은 노력의 하나였다. 저자는 전 세계가 연구개발 분야에서 협력하고 결과물을 전 세계로 신속하게 보급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역내 협력 기구를 만들고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유럽 국가들이 적용 중인 보편적 의료 혜택 제공 등 ‘사회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아쉬운 점은 제시된 해법들이 “지역적·국제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등의 교과서적 제언 수준에 그친다는 것. 인류가 걸어온 ‘세계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사진 속 주인공은 사라지려는 찰나에 포착된 듯 반투명하다. 뒷배경인 벽이나 의자는 이런 인물에 투영돼 훤히 보인다. 김동우 사진가(43·사진)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사진을 찍으며 의도한 공통된 특징이다. “독립운동가나 후손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아예 지워졌죠. 역설적으로 흐릿해져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10일 만난 김 사진가는 2017∼2019년 멕시코, 쿠바, 미국 등 10개국을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과 최근까지 국내에서 담아낸 후손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사진가의 직전 직업은 여행작가였다.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다 2012년 퇴사한 뒤 꿈꾸던 세계일주를 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책도 냈다. 여행에 맞춰져 있던 렌즈 초점이 독립운동으로 옮겨간 건 2017년 봄. 당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보자’는 큰 그림만 그린 채 출국했다. “인도 여행 중에 문득 과거 지인에게서 ‘카자흐스탄에 홍범도 장군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델리에도 뭔가 있는지 찾아봤죠. 있더라고요. 충격이었죠.” 그를 놀라게 한 건 1943년 한국광복군 9인이 영국군 요청으로 ‘인면전구공작대’를 조직해 인도로 건너간 뒤 훈련했던 델리 레드포트였다. 역사적 장소였지만 표지판 하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여행 주제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로 정해졌다. 그는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자취가 있다는 것도, 이것이 방치돼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2018년 멕시코로 간 그는 대사관과 한인회 등을 수소문한 끝에 김익주 선생(1873∼1955)의 묘소와 손자의 사진을 찍었다. 김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멕시코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낸 한인 중 한 명. 그는 “저도 그때 김 선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이처럼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현재를 담아 미래에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사명감으로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작업 비용은 개인 경비로 충당했다. 김 사진가는 그간 국외 독립운동에 대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을 묶어 지난달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다. 3일부터는 부산 사상구에 있는 부산도서관에서 ‘관심없는 풍경, 뭉우리돌을 찾아서 부산경남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해 1∼7월 부산 경남 일대를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 및 사적 사진 80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마지막 사진으로는 안중근 의사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성녀 선생의 묘 사진이 걸렸다.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공원묘지 내에 있는 묘다. 김 사진가는 “안 선생의 묘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풍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한 건 과거를 제대로 봐야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역사는 미래로 나가는 열쇠라는 것, 그러니 기억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난달 26일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자 문화재계에선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올해 5월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등재 반려’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통상 자문기구의 반려 권고를 받으면 해당국은 세계유산위원회 총회 전 등재 신청을 철회한 후 다음 기회를 노린다. 우리 정부는 2015년 1월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서를 냈지만 반려 권고를 받고 중간에 신청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당시 미비점을 보완한 뒤 재신청을 거쳐 2019년 7월 등재에 성공했다. 정부가 이번에 신청을 철회하지 않고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할 수 있었던 건 짧은 기간 속도전으로 진행한 외교전에 힘입은 바가 컸다. IUCN이 반려를 권고한 이유 중 하나는 등재 신청 구역이 좁다는 것. 정부는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갯벌 등 5개 지방자치단체에 걸친 4개 갯벌에 한해 등재를 신청했다. 이에 정부는 올 5월 말부터 갯벌이 있는 전국 지자체를 돌며 유산 구역 확대에 나섰다. 일부 지자체는 “세계자연유산 구역으로 묶이면 지역개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참여를 주저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관광객 유치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협조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인천 영종도 갯벌, 무안 갯벌 등 9개 갯벌을 관리하는 8개 지자체로부터 받은 협조 공문을 앞세워 세계유산위원회의 21개 위원국 설득에 나섰다. 주유네스코 한국대표부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9개 갯벌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 갯벌 보호체계를 갖출 테니 먼저 신청한 5개 갯벌이 우선 등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 위원국 중 하나인 키르기스스탄을 설득해 세계유산위원회에 수정 결정문을 발의하도록 했다. 막바지에는 국무총리 명의의 서한을 위원국들에 보냈다. 한국은 갯벌 이전에 석굴암·불국사 등 14개의 세계유산을 등재시켰지만 총리 서한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결국 한국의 갯벌은 이례적으로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등재됐다. 여성희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원국 관계자들을 만날 수 없어 등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화상회의 등을 통해 설득을 이끌어내 기쁘다”며 “올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가야고분군도 내년에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치솟는 거예요. 20층짜리 아파트인데 100층 넘게 마구 올라가는 거죠.” 인터넷 카페에서 이런 게시글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기자만 그런 꿈을 꾼 게 아니었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백화점’ 시리즈는 온갖 꿈을 판매하는 달러구트 꿈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엘리베이터 꿈이나 하늘을 나는 꿈처럼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 듯한 설정을 보여준다. 렘수면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꿈백화점을 찾아 꿈을 구매한다. 인기 꿈상품은 금방 동난다. 같은 꿈을 매일 사는 사람도 있다. 서른 살이 다 돼 재입대하는 악몽을 구매하는 특이한 이들도 있다. 지난해 7월 출간된 1편은 주인공 페니가 갓 입사한 꿈백화점과 백화점 사람들, 꿈 제작자들, 꿈을 사는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두루 담았다. 지난달 출간된 2편은 1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백화점 단골손님 몇몇의 에피소드에 깊게 파고든다. 그중 한 단골손님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꿈속 일에 관여하는 ‘루시드 드리머’다. 그는 잠에서 깨면 모든 걸 잊는 일반인들과 다른 능력자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꿈속 환상 세계를 좇는 현실 도피자이기도 하다. 현실을 사는 것보다 꿈꾸는 일이 더 행복했던 날을 보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다. 1편은 지난해 7월 출간된 이후 지난달까지 종이책으로만 57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2편도 5일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꿈을 파는 백화점’ 이야기라 하면 아동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펴는 순간 ‘어른들을 위한 힐링 동화’라는 세간의 평가가 와닿는다. 어떤 꿈이든 꿈을 꾸는 이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꿈백화점을 헤매며 ‘오늘의 꿈’을 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화재 분야에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전통건축과 관련된 연구 등을 실시하는 건축문화재연구 분야와 문화재 수리 정책을 총괄하는 수리기술 분야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 이 분야의 책임자 자리는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져 왔다. 이런 불문율을 깨고 금녀의 영역에 들어선 여성들이 있다. 조은경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48)과 이명선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소속) 건축문화재연구실장(50)이 그 주인공. 1일 수리기술과장직에 임명된 조 과장은 4일 전화 인터뷰에서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수리기술과는 기술직 남성 직원 중심인데 저는 연구직인 데다 여자여서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 내 수리기술과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수리 정책을 전문적으로 수립·집행할 부서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09년 신설됐다. 여성이 과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건축학 박사인 조 과장은 2002년 문화재청에 들어온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미륵사 복원고증 연구를 담당하는 등 문화재 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2018년부터는 남북 문화재 교류협력 업무를 맡아 최근까지 비무장지대(DMZ) 내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분야를 확장했다. 조 과장은 “문화재 연구로 쌓은 역량을 문화재 보존의 핵심인 수리 현장에 적용해 그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장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고 있는 문화재 수리기술자들에게 섬세하게 다가가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이명선 실장이 임명됐다. 2003년 신설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여성 실장은 처음이다. 건축문화재연구실은 전국의 전통건축 관련 중요문화재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를 실시하는 곳. 문화재 안전점검과 보수정비 사업 및 복원고증 연구, 수리기술 개발도 한다. 건축공학 박사인 이 실장은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 초빙교수로 있던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다 문화재 현장을 바꿔보고 싶다고 결심했다. 2010년 문화재청에 특채로 들어온 후 안전기준과에서 문화재 재난안전정책 관련 기획 업무를 하며 현장에서 내공을 다졌다. 이 실장은 “현장에서 쌓은 역량을 연구 분야에 접목해 시너지를 내겠다. 첫 여성 실장은 맞지만 여성이어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성별을 떠나 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화재 분야에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전통건축과 관련된 연구 등을 실시하는 건축문화재연구 분야와 문화재 수리 정책을 총괄하는 수리기술 분야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 이 분야의 책임자 자리는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져 왔다. 이런 불문율을 깨고 금녀의 영역에 들어선 여성들이 있다. 조은경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48)과 이명선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소속) 건축문화재연구실장(50)이 그 주인공. 1일 수리기술과장직에 임명된 조 과장은 4일 전화인터뷰에서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수리기술과는 기술직 남성 직원 중심인데 저는 연구직인데다 여자여서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 내 수리기술과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수리 정책을 전문적으로 수립·집행할 부서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09년 신설됐다. 여성이 과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건축학 박사인 조 과장은 2002년 문화재청에 들어온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미륵사 복원고증 연구를 담당하는 등 문화재 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2018년부터는 남북문화재교류 협력 업무를 맡아 최근까지 비무장지대(DMZ) 내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분야를 확장했다. 조 과장은 “문화재 연구로 쌓은 역량을 문화재 보존의 핵심인 수리 현장에 적용해 그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장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고 있는 문화재 수리 기술자들에게 섬세하게 다가가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이명선 실장이 임명됐다. 2003년 신설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여성 실장은 처음이다. 건축문화재연구실은 전국의 전통건축 관련 중요문화재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를 실시하는 곳. 문화재 안전점검과 보수정비 사업 및 복원고증 연구, 수리 기술 개발도 한다. 건축공학박사인 이 실장은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리츠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 초빙교수로 있던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다 문화재 현장을 바꿔보고 싶다고 결심했다. 2010년 문화재청에 특채로 들어온 후 안전기준과에서 문화재 재난 안전 정책 관련 기획 업무를 하며 현장에서 내공을 다졌다. 이 실장은 “현장에서 쌓은 역량을 연구 분야에 접목해 시너지를 내겠다. 첫 여성 실장은 맞지만 여성이어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성별을 떠나 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우리 종(호모사피엔스)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호모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 종’은 멸종했다. 호모사피엔스는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투쟁에서 승리한 비결은 뭘까.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교수와 연구원인 저자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월등했거나 도구 사용에 가장 능한 종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들에겐 타인과 협력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친화력이 있었다. 개가 인간 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도 친화력이었다. 저자의 개는 주인의 손짓을 보고 그 의미를 이해한 뒤 먹이가 숨겨진 컵을 찾아낸다. 사람과 사이가 좋은 개들 사이에서 더 많은 번식이 일어나면서 개는 한층 더 사람과 잘 지내는 동물로 변하게 된다. 친화력이 없는 늑대가 멸종 위기에 놓인 것과 대조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다정하게 행동할수록 생존에 유리해진다. 저자들은 친화력을 상승시킨 호모사피엔스가 더 큰 무리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이룬 다른 종을 이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친화력의 이면에는 공격성이 존재한다. 저자들은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갖춘 자신의 집단과 구성원들에 대한 강한 친화력이 타 집단 및 구성원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타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문자폭탄 테러를 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고.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인종·지역·이성 혐오 등 도처에 혐오가 도사리는 시대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을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해법’이 담겨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 29일. 일본 정부와 출판사 등은 기다렸다는 듯 각종 기념엽서를 발행했다. 그중엔 ‘파노라마 엽서’도 다수 있었다. 여러 장이 세트로 발행돼 나란히 이으면 그림이 완성되는 형태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엽서를 수집해 온 신동규 동아대 일본학과 교수는 파노라마 엽서를 포함해 일제가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 6943장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을 통해 20일부터 공개하고 있다. 40여 년간 모은 엽서 5만여 장 중 학술적 가치가 높고 희귀한 엽서들을 선별한 뒤 데이터베이스화한 결과물이다. 파노라마 엽서 중에서 2장짜리 엽서는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엽서엔 일왕과 일본이 날조한 ‘신라정벌설’의 주인공인 신공황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실제 한반도를 침략했거나, 정벌한 것으로 날조된 주인공의 초상화나 사진이 오른쪽부터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다. 신 교수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일제는 당시 가공의 역사까지 총동원해 한일병합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진행된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며 “한일병합은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선동하기 위해 이완용을 등장시켰다”라고 해석했다. ‘조선인이 원한 지배’라는 프로파간다는 조선총독부가 1910년 10월 1일부터 발행한 시정(始政) 기념엽서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과 일본 아이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일장기를 들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그림을 담은 엽서가 대표적이다. 조선의 아이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 일제를 환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노라마 엽서 하단에는 들판에 닭 두 마리가 있고 어둠이 내려앉은 그림이 배치됐다. 신 교수는 “닭은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제가 병합을 통해 어둡고 미개한 조선을 근대국가로 만들어 놓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공개된 엽서 중에는 중국 하얼빈역 승장강을 배경으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사진이 담긴 것도 있다. 저격 현장은 ‘+’로 표시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진은 오른쪽 상단에 크게 부각시킨 반면 안 의사 사진은 왼쪽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했다. 사진 아래에는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자객’이라고 썼다. 이토 히로부미는 억울하게 희생된 의로운 지도자처럼, 안 의사는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정한 것. 신 교수는 “나라를 빼앗긴 특수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일제는 이를 평화로운 시기에 자객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규정해 대내외에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사진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에 참패한 일본군이 같은 해 10월 간도 등지에서 독립군 토벌 작전을 벌여 생포한 독립군과 찍은 사진이 담긴 엽서도 처음 공개됐다. 사진 양측엔 일본군이, 가운데에는 독립군 4명이 서 있다. 독립군 중 한 명의 다리 부분이 하얗게 흐려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신 교수는 “다른 사진들을 분석해 보면 이 독립군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지 못하는 상태”라며 “부상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작전에 성공했음을 선전하기 위해 사진에 손을 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엽서 일부와 소장한 엽서 가운데 500여 장을 추려 다음 달 13일부터 부산 남구에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뼈아픈 역사적 사료인 엽서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 신 교수는 지난달 이 역사관에 일제강점기 관련 희귀 사진첩 등 자료 343건을 기증했다. 그는 “일제가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들에게까지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행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소장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방탄소년단(BTS)을 누를 자는 방탄소년단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BTS가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자신들의 곡 ‘버터(Butter)’를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위에서 밀어낸 지 일주일 만에 또다시 두 곡이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빌보드는 26일(현지 시간) ‘버터’가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9일 발표된 ‘퍼미션 투 댄스’에 지난주 1위 자리를 내주고 7위로 내려간 ‘버터’가 한 주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퍼미션 투 댄스’는 7위로 ‘버터’와 자리를 맞바꾼 셈이 됐다. 빌보드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버터가 1위로 되돌아왔다”며 “자신의 신곡으로 1위를 탈환한 직후 이전 1위 곡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보낸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버터’는 핫100에서 8주간 1위에 올라 올 들어 최장기간 1위를 유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와 같은 기록을 냈다. 버터와 퍼미션 두 댄스 두 곡을 합치면 BTS는 9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지키고 있다. 핫100 차트는 음원 다운로드와 실물 음반 판매량, 공식 오디오 및 비디오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방송 횟수를 합산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의 순위를 매긴다. ‘버터’가 정상을 재탈환한 데는 음원 발매 9주 차인 16∼22일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이 11만5600건에 이른 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빌보드는 분석했다. 이는 전주(4만9800건)보다 132% 급증한 수치다. 버터의 미국 내 라디오 청취자 수도 3070만 명으로 발매 후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넘겼다. BTS 멤버 슈가는 팬 커뮤니티인 위버스에 남긴 글에서 “이게 말이…”라며 감격했다. 이어 “아미(BTS 팬클럽) 여러분 감사하고 고마워요”라고 덧붙였다. 로드리고의 ‘굿 포 유(Good 4 U)’는 BTS의 신곡 두 곡에 밀려 9주째 2위에 머물러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옥 처마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당은 빗물로 출렁인다. 기세 좋던 빗줄기가 점차 잦아들고, 인왕산은 흰 구름을 드리운 채 자태를 드러낸다. 치마바위, 코끼리바위 등 인왕산 구석구석은 물을 머금었다. 19일부터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국박) 서화실 입구의 초대형 TV에 흐르는 영상이다. 관람객들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인왕산을 거닐다’라는 제목의 이 영상부터 보게 된다. TV 앞 나무 의자에 앉아 해금 연주곡을 배경으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그릴 무렵 겸재 정선(1676∼1759)과 같은 시선으로 조선시대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국박 관계자들은 5분 10초 분량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올 5월 말∼6월 초 나흘에 걸쳐 인왕산을 촬영했다.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린 ‘1751년 윤 5월 하순(음력)’에는 5일 넘게 장맛비가 이어졌다. 그는 비가 그친 직후 물기를 머금은 인왕산 풍경에 자신이 평생 지켜본 산의 느낌을 가미해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이에 따라 국박은 비 오는 날과 비가 갠 직후의 인왕산을 각각 카메라에 담았다. 이재호 국박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방안을 고심한 결과물”이라며 “그림 속 인왕산이 우리 곁의 뒷산이라는 사실을 보여줘 작품에 빠져들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재생되는 TV는 삼성이 대여해 줬다. 당초 국박은 75인치 TV를 구입하려 했지만 영상 제작 소식을 들은 삼성이 흔쾌히 이보다 큰 TV를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한다. 전시 제목인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에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담았다. 앞서 삼성문화재단은 호암미술관과 호암갤러리에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시리즈 전시를 1995∼1998년 세 차례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인왕제색도는 물론이고 고려불화 중 가장 큰 수월관음도를 일본에서 빌려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국박 관계자는 “당시 삼성 측 전시는 우리 문화유산의 위대함을 보여줘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전시였다”며 “이건희 회장이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만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전시명을 거의 그대로 살렸다”고 말했다. 전무후무한 명품 컬렉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전시공간을 바꾸는 작업도 관건이었다. 당초 해당 전시실은 서예나 그림 같은 평면 작품을 벽에 걸어 선보이던 공간이었다. 이를 그림은 물론 목가구, 불상까지 다양한 형태의 유물을 전시하는 데 적합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조명을 바꾸고 받침대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국박이 통상 전시기획 단계에서 타깃 연령대와 성별을 정하는 작업을 이번에는 진행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전시인 만큼 이 같은 절차가 필요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 예매는 하늘의 별따기다. 국박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예약만 가능한데 25일 현재 예약 가능한 26일∼다음 달 24일 한 달 치가 모두 매진됐다. 26일 0시가 되면 다음 달 25일 전시 예매가 가능하지만 보통 5초도 되지 않아 예약이 끝난다. 최근 전시실 입구에선 예매를 못한 채 멀리서 찾아와 “전시를 보게 해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관람객들이 자주 목격된다. 국박 관계자는 “방역지침에 따라야 해 현장에서 사정해도 어떻게 해드릴 방법이 없다. 간혹 예약 취소가 나오는데 이를 노려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골목 양쪽 끝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만든 무대 아닌 무대에서 패션쇼가 시작된다. 보란 듯이 눈을 감은 모델, 다민이 등장한다.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차연은 이를 ‘묘기’라고 표현한다. 차연은 주인공처럼 나타난 다민을 꿈처럼 바라본다. 차연과 다민이 2010년 덴마크 어느 골목에서 처음 만난 순간이다. 2019년 장편소설 ‘최단경로’로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강희영이 두 번째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를 출간했다. 작가는 20대 두 여성의 첫 만남을 연애의 시작처럼 묘사한다. ‘공원 초입에 이르러서야 뒤미처 깨달았지. 너의 머리색을 말이야. 햇살을 받고서야 네 머리카락은 숨겨둔 청록빛을 드러내며…’ 패션쇼 애프터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밤거리 거니는 젊은 두 사람은 매 순간 설렌다. 소설은 첫 만남 이후 포토그래퍼로 성장해가는 차연이 설렘을 잃고 변해가는 다민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하듯 전개된다. 다민은 모델이라는 직업과 패션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패션은 이제 순간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패션을 덧입은 모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사실 동경이 아니라는 허탈함이었다. 다민은 결국 모델 일을 관둔다. “내 옷을 만들 거예요. 모두를 위한 옷을요.” 이후 다민이 연 패션쇼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녹색 장막을 걷고 벗은 몸으로 등장한다. 옷으로 가득 찬 대형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고, 고개를 갸웃거린 뒤 벗기를 반복한다. 20여 분 동안이나. 그게 전부다. 다민은 잠적한다. 차연은 다민을 그리며 말한다. ‘받아들인다. 네 뜻을. 이제 정말 다 이해한다’라고. 소설은 순식간에 들끓었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행의 시대에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패션과 사진, 모델과 포토그래퍼를 소재로 삼았지만 누구나 해봤을 법한 젊은 시절의 고민이 곳곳에 깔려 있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화재계에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로 통하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의 디지털 콘텐츠 판매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의 얼’에 해당하는 상징성 큰 문화재를 상업화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 일각에선 문화재 대중화에 기여하고 우리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2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00개 한정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로 발행하고자 한다”며 “디지털 자산으로 영구 보존하는 한편 미술관 운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다음 달 중순에 발행 예정인 훈민정음 해례본 NFT의 개당 가격은 1억 원으로 총 100억 원 규모다. 간송미술관은 보물급의 통일신라시대 불상 2점을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 내놓는 등 재정난을 겪고 있다. NFT는 이미지 등 디지털 파일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고유 값을 부여한 것이다. 진품 여부와 더불어 소유권을 보증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를 NFT로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문화재가 자칫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려하고 있다. 황선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화재 소유자가 자신의 의지로 하는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행적이 묘연한 상주본을 제외하고 사실상 유일한 훈민정음 인쇄본인 간송본이 이렇게 이용되는 건 국어 연구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반론도 있다. 문화재 원본의 가치를 독점하기보다 대중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콘텐츠 판매가 필요하다는 것.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디지털 기술 발달로 디지털화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오히려 실물에 가까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며 “개인이 소장해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재일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엄격한 문화재 관리 여건상 해외 반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NFT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국내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는 데 제약이 많다 보니 국내의 우수한 문화재를 해외에 알리는 게 쉽지 않다”며 “NFT를 통해 문화재를 소개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은 NFT 발행을 위한 디지털 촬영 과정에서 훼손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탁본, 영인하거나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할 때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NFT 사진 촬영으로 문화재가 훼손될 가능성은 낮아 허가 대상이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관련 법률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지학계 일각에서는 고서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해체가 불가피해 훼손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란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원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고유한 값을 부여해 소유자와 생성일, 거래 내역, 불법 복제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32년 경북 의성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류영봉입니다.”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유엔실.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내년이면 아흔을 맞는 예비역 이등중사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카메라가 어색한지 다른 곳을 쳐다보다 몇 차례 녹화가 중단됐다. 그는 열여덟 고교생이던 1950년 8월에 징집돼 겪은 6·25전쟁과 이후의 삶을 증언했다. 이날 녹화는 전쟁기념관이 6·25전쟁 70주년이던 지난해부터 참전용사의 구술 영상을 녹화해 인터넷에 공개하는 ‘오픈 아카이브’ 사업에 따른 것. 공식 문헌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는, 전쟁으로 파편화된 개인의 삶을 역사에 남기는 작업이다. 류 씨는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1기로 미군 7사단 17연대 소속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징집 한 달 뒤인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거치며 많은 미군과 한국군을 돌봤다. 그해 11월 21일 그의 부대는 38선을 넘어 압록강변 혜산진에 이르렀다. 강의 얼음을 깨 먹으며 통일의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행복은 사흘 만에 산산조각 났다.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중국군이 연합군의 퇴로까지 막아버렸다. 최악의 상황은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였다.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 적군과 싸워야 했다. 중국군의 야간 공격에 부상당한 동료들을 후송할 틈도 없이 후퇴해야 할 정도로 긴박했다. 날이 밝고 다시 찾은 전투 현장에는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앉은 채 얼어 죽어 있었다. 그는 많은 전우의 죽음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게 부끄럽다고 했다. 1954년 8월 전역 후 막일을 전전하다 1958년 대구 미8군 병원에 취업했다. 2004년까지 같은 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살았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친 미군 병사들에게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했다. 아흔에 가까운 지금도 미군 병원 응급실에서 매주 2, 3일씩 봉사를 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그는 기자에게 “국민들이 먼저 간 전우들의 희생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구술을 통해 생전 내가 겪은 일을 최대한 알리는 게 내 마지막 임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류 씨와 같은 6·25 참전용사 생존자는 지난해 8만4000여 명에서 지난달 6만900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으로 대한해협해전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지난해 7월 구술에 참여한 뒤 이달 8일 별세했다. 그는 구술 영상을 통해 “후대가 행복하게 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 달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기념관은 최 대령을 포함해 육해공군 창설 주역이자 참전용사인 3인의 구술 영상을 지난해 10월 인터넷에 공개했다. 올해는 19일까지 류 씨를 포함한 참전용사 4명의 구술을 녹화했다. 각각 10∼15분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될 이 구술 자료는 올 11월 공개된다. 기념관은 구술 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참전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유산으로 남길 계획이다. 참전용사 구술은 6·25 전쟁사의 빈 곳을 메워줄 중요한 자료다. 특히 인생 말년에 남기는 구술은 평생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 참전용사들의 생각을 담은 역사 유산이라는 평가다.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참전용사들의 구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과거 전쟁의 주체였다가 점점 잊혀진 이들을 국가가 예우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유엔실. 휴관일인 월요일이라 고요한 유엔실에서 어르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옛날 이야기처럼 흘러나왔다. 그는 이야기 도중 당시를 떠올리는 듯 자주 눈을 감았다.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에서 부상당한 뒤 영하 35℃의 혹한 속에 얼어 죽은 동료들 이야기를 할 땐 여러 번 침을 삼켰다. 6·25전쟁 당시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1기로 참전한 류영봉 씨(89·예비역 이등중사)는 담담하려 애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1950년 8월 대구에서 등굣길에 징집된 뒤 유엔군 미7사단 17연대 소속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1950년 11월 21일 우리 부대가 압록강 혜산진에 도착했을 때 얼어붙은 압록강 얼음을 깨서 신나게 먹었습니다. ‘이제 남북통일이 되는구나.’ 감격에 겨워 미군들과 얼싸안았습니다. 미군들은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며 기뻐했습니다. 그 꿈은 3일만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후퇴할 길이 모두 막힌 겁니다.” 류 씨는 이날 전쟁기념관이 오픈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하나로 진행 중인 참전용사 구술 영상 녹화에 참여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과 현재의 심정, 후대에 남기는 메시지 등을 1시간 여에 걸쳐 구술했다. 그는 이날 기자에게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참전했다가 아직 시신도 못 찾은 동료들이 많은데 나만 살아남아 부끄럽다”며 울먹였다. 이어 “국민들이 동료들의 희생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생전에 내가 겪은 일을 최대한 알리려 한다”고 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6·25 참전용사 중 생존자는 지난달 현재 6만9000여 명. 1년 전 8만4000여 명이었던 것과 비해 크게 줄었다. 참전용사 평균 연령이 이미 90세를 넘긴 만큼 ‘전쟁 유산’으로써 이들의 구술 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다. 실제로 6·25 70주년이었던 지난해 7월 구술에 참여했던 전쟁 초기 대한해협해전 영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최재형 전 감사원장 부친)은 이달 8일 별세했다. 그는 구술 영상을 통해 “후대들이 행복하게 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 달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참전용사의 구술은 6·25 전쟁사의 빈곳을 촘촘히 메워줄 주요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남기는 구술은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물론 평생 전쟁을 안고 살아간 참전용사들의 변화된 생각을 보여줄 전쟁 유산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기념관 측은 지난해 최영섭 대령을 포함해 육해공군 창설 주역이자 참전용사인 3인의 구술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그해 10월 이를 기념관 오픈 아카이브에 공개했다. 올해는 19일까지 류 씨를 포함한 4인의 영상을 녹화했다. 각각 10~15분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될 이 구술 자료는 올해 11월 공개된다. 기념관 측은 추후에도 구술 영상 녹화 및 아카이브 구축을 계속해 글로는 전할 수 없는 참전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쟁 유산으로 남긴다는 계획이다.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참전용사들이 인생의 종착점에 접어들었을 무렵 구술을 받는 건 전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들이 어떤 존재로 사회에 남아있는지를 기록해 후대에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전쟁유산 확보 작업”이라며 “이들의 구술을 듣는 건 전쟁 당시 전쟁의 주체였다가 점점 잊혀진 이들을 국가가 끝까지 예우하는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기자간담회.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앞에 선 이들이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가로 567cm, 세로 281.5cm의 대작에 단순화된 나무, 백자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라의 여인들, 학 등 김환기가 즐겨 쓴 소재들이 모두 담겼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아우르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문화재 및 미술품 컬렉션 중 135점이 21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올 4월 2만3000여 점 기증이 발표된 후 일부 작품이 전시됐지만 이처럼 대거 전시되는 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국박)과 국현은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20일 언론 설명회를 열고 전시에 선보일 명작들을 공개했다. 국박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서울 용산구 국박 2층 서화실에서 9월 26일까지 연다.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비롯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고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삼국시대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등 45건(국보 12건, 보물 16건 포함) 77점을 선보인다. 국박은 기증된 2만1693점 중 이 작품들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서화, 불화, 도자기, 금동불 등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고 가장 잘 알려진 명품을 추렸다”고 밝혔다. 국현의 전시는 내년 3월 13일까지다. 국현에 기증된 국내외 근현대 작품 1488점 중 58점을 추렸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중섭의 ‘황소’ ‘흰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 한국 근현대 걸작들이 주인공이다. 국현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거장 34명을 선정해 이들의 주요 회화 및 조각 작품을 먼저 선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박물관, 미술관 역사를 통틀어 전례 없는 기증작에 관심이 쏠리면서 두 전시는 시작도 하기 전에 상당 기간이 매진됐다. 관람일 30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 국박은 20일 현재 다음 달 19일까지, 관람일 14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 국현은 다음 달 3일까지 예약이 찼다. 추가 예약은 매일 자정 각 홈페이지에서 시스템이 열린다. 하루 관람 가능 인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기준으로 국박 300∼420명, 국현 240∼330명.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전시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전시의 품격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전까지 국현은 김환기의 전면점화나 이중섭의 ‘황소’ 같은 한국 미술 대표작을 소장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노력으로 한국 문화계가 큰 발전을 이룬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국내외의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 시대적 의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97년 출간한 에세이에서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을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썼다. 그는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 기메박물관 등 해외 주요 박물관에 한국실 설치를 지원하기도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나는 꽤 자주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 남자친구에게 몇 달 동안 (직업을) 말하지 않은 적도 있다.” 자신의 직업을 꽁꽁 숨기고 싶어 하는 이 저자, 누굴까.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 특정될까 봐 이름도 필명 ‘비온뒤’로 대체했으니…. 그의 정체는 툭하면 ‘국민 욕받이’가 되는 기상청 예보관이다. “기상청 체육대회 날 비가 왔다더라.” 예보의 부정확성을 꼬집는 이 얘기는 누구나 아는 농담이다. 9년째 예보관으로 일하는 저자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1994년 체육대회 때 비가 왔다고. 그러나 제아무리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에 각종 수치 모델을 동원해도 하늘이 기습적으로 던져대는 변수가 수두룩한 기상을 두고 100% 정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기상 예보는 ‘정확도 높은 예보’일 뿐임에도 “왜 100% 정확하지 않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비가 쏟아질 때 비행기를 타면 공중에서 뇌전이 치는 적란운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좋다는 천생 기상 예보관이지만 가끔 이 직업을 택하지 말았어야 하나 후회도 한다. 이러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결혼식 날 비가 올까 봐 걱정한다. “아, 정말 예보 맞히고 싶다.” 외쳐본다. 예보 정확도에 매달리며 사는 기상청 예보관의 희로애락 가득한 일상을 담았다. 온갖 비난에도 버티는 건 ‘문득 바라보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라고 저자는 말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