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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골동품 수집가 로라 영 씨가 2018년 단돈 34.99달러(4만 4000원)에 사들인 대리석 흉상이 20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대 로마시대의 유물임이 밝혀져 화제다. 영 씨는 소정의 수수료만 받고 원래 주인인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정부에게 흉상을 돌려주기로 했다. 6일(현지 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남부 텍사스주 오스틴에 거주하는 그는 4년 전 주내 한 기부물품 매장에서 이 흉상을 발견하고 구매했다. 골동품을 본 순간부터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던 그는 매입 직후부터 경매업체 소더비 등에 연락해 이 조각상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에 나섰다. 4년의 시간이 흐른 결과, 이 흉상이 기원전 1세기 말~기원후 1세기 초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의 진품 유물이고 19세기 바이에른 왕가의 수집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흉상의 모델은 카이사르 시저와 권력 투쟁을 벌였던 고대 로마의 정치이 폼페이우스의 아들 혹은 게르만 지역을 점령했던 로마군 사령관으로 추정된다. 이 흉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주둔했던 미군 병사가 미국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에른 주정부는 “세계대전 중 사라진 이 흉상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며 영 씨에게 반환을 요청했고 그 또한 동의했다.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4일(현지 시간) 기준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big step)’을 단행했다. 0.5%포인트 인상은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연준은 다음 달부터 보유 채권을 매각하는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에도 착수해 시중 유동성을 조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후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이로 인한 고통을 이해하고 있다. 물가를 낮추기 위해 신속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향후 두어 번의 회의에서 0.50%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더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FOMC 회의는 6, 7, 9, 11, 12월 등 5차례 남아있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6, 7월에도 연속으로 0.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미 소비자물가가 1981년 이후 최고치인 8.5%까지 오른 데다 산유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유가 급등,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봉쇄 여파로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해 앞으로도 공격적인 긴축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이 미 경기 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경기 하강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우려하던 월가는 이 발언에 안도했다. 4일 미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전일 대비 2.81%, 3.19%씩 큰 폭으로 올랐다. 연준의 행보가 한국 등 주요국의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하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의 4월 소비자물가도 4.8% 올라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이후 1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상태다.美, 연속 빅스텝땐 내년 금리 3%대…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시화美 6, 7월 또 0.5%P씩 올릴수도…내년 2분기 금리 3~3.25% 예측현재 1.5%인 한국과 역전 가능성韓, 자본 유출-물가 상승 먹구름…엔저까지 겹쳐 수출 경쟁력 흔들美, 9조 달러 양적긴축도 스타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일(현지 시간) 2000년 이후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big step)’, 즉 공격적인 통화 긴축정책을 단행해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이 금리를 빠르게 높이면 기축 통화인 미 달러 가치 또한 상승해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현지 통화 약세, 이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과 해외 투자금 이탈 등이 불가피하다. 4월 소비자물가가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은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던 0.7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4일 미 뉴욕증시는 급등했지만 연준의 급격한 긴축이 미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 회복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금리역전 가시화… 각국 속속 금리인상이날 빅스텝으로 미 기준금리는 기존 0.25∼0.5%에서 0.75∼1%로 올랐다. 이에 따라 현재 1.5%인 한국 기준금리와 역전이 가시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이 빅스텝을 몇 차례 추가로 단행하면 올가을과 내년 미 기준금리는 각각 2%대, 3%대까지 오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6,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를 0.5%포인트씩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내년 2분기(4∼6월) 미 기준금리가 3∼3.25%에 이를 것으로 봤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은 통화가치 하락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를 의식한 듯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5일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중남미 브라질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각국도 4일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에 더해 최근 일본 엔화의 급격한 하락도 예상된다. 최근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속도보다 엔화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가팔라 양국이 수출을 경합하는 분야에서는 일본의 비교우위가 예상된다. 다만 5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서 양국 경쟁 강도가 약화됐다며 최근의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 ‘연착륙 가능’ vs ‘침체 우려’강도 높은 긴축 정책이 미 경제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란도 고조되고 있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경제 경착륙을 야기할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부인하며 “미 경제는 강하고 더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미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나스닥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 또한 각각 2.81%, 3.19%, 2.99%씩 올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이 ―1.4%(연율)를 기록해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또한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 성장세가 저조하면 각국 중앙은행 또한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연준은 이날 금리 인상과 별개로 약 9조 달러(약 1경1340조 원)에 달하는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도 시작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공급했던 유동성을 다시 흡수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내다 판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연준은 다음 달 1일부터 국채 3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175억 달러를 각각 매각해 매월 보유 자산을 475억 달러씩 줄인다. 3개월 뒤에는 이 규모를 950억 달러까지 늘린다. 2017∼2019년 양적 긴축의 규모가 월 최대 500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 많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이건혁 기자 gun@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디에고 마라도나가 36년 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신의 손’ 골을 넣었을 때 입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상의(사진)가 710만 파운드(약 112억5000만 원)에 팔렸다. 역대 단일 스포츠 기념품 판매가 중 최고액이다. 4일(현지 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소더비 경매에 나온 마라도나 유니폼은 예상 낙찰가인 400만∼600만 파운드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전까지 스포츠 기념품 판매가 최고 기록은 1982년에 팔린 근대 올림픽 선언문 원본으로 약 111억5000만 원이었다. 이 유니폼이 누구에게 팔렸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소더비 측은 “신의 손 유니폼은 세계 축구 팬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영국 국민에게 문화적 의미가 깊다”며 “새 주인이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유니폼을 소유하게 돼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신의 손 유니폼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을 마치고 잉글랜드 미드필더 스티브 호지가 자신의 유니폼과 교환해 갖고 있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놨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넣은 두 골 가운데 첫 번째 헤더 골이 그의 손에 맞고 들어갔다. 경기 후 ‘핸드볼 반칙이었느냐’는 질문에 마라도나는 “반은 내 머리, 반은 신의 손에 맞았다”고 답해 신의 손 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미국 컨트리 음악계 최고의 모녀 듀엣 가수로 불리던 ‘더 저드스(The Judds)’의 나오미 저드가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은 듀엣 가수 중 어머니인 나오미 저드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외곽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1일 나오미의 작은딸이자 영화배우인 애슐리 저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모친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애슐리는 “우리 자매는 정신 질환을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우리는 깊은 슬픔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했다. 싱글맘이었던 나오미가 컨트리 가수가 되기까지의 성공담은 잘 알려져 있다. 전남편의 상습적인 폭력과 마약 중독으로 이혼을 한 나오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켄터키주 시골로 옮겨 두 딸을 혼자 키웠다. 기타 연주에 흥미를 보였던 큰딸 와이노나 저드와 화음을 맞춘 것이 듀엣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간호사로 일하던 나오미는 1983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나오미는 한 음반 프로듀서의 딸을 치료했다가 그의 도움으로 레코드 회사와 계약에 성공했다. 나오미는 와이노나와 ‘더 저드스’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더 저드스가 음악에서 다룬 가족생활의 고독, 현대 사회의 공동체 붕괴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모녀는 2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고, 5번의 그래미상과 9번의 컨트리 뮤직상을 수상했다. 나오미의 사망 소식에 소셜미디어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컨트리 음악 가수인 캐리 언더우드는 “컨트리 음악계는 진정한 전설을 잃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가수 빌 앤더슨도 “국내 컨트리 음악계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고 했다. 더 저드스는 미국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나오미가 사망한 다음 날인 1일 진행된 명예의 전당 행사에서 딸 애슐리는 나오미를 대신해 메달을 받았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인종차별이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지금, 학교는 그 뿌리를 교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고등학생 윤성주 군(18·사진)은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앵무새 죽이기’를 이야기해 봅시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윤 군이 다니는 캘리포니아주 버뱅크고교가 주인공이 흑인 노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이유 등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책 5종을 금서(禁書)로 지정한 뒤였다. 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윤 군은 이 칼럼에서 “단순히 책이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적인 언어를 담고 있다고 해서 금서로 지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학교와 도서관에서는 묘사나 언어가 인종차별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며 특정 도서를 학생이 읽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빈번하다. 문제는 고전이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작품이 목록에 든다는 것. 하퍼 리의 명작 ‘앵무새 죽이기’를 인종차별 언어가 쓰였다며 금서로 지정하는가 하면,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도 주인공이 인종차별적 욕설을 한다며 교육 도서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에 윤 군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 ‘금서 지정을 철회하라’란 청원을 올렸고 2일까지 약 5000명이 동의했다. NYT가 ‘학생도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윤 군의 온라인 시위를 본 뒤 글을 요청해 이번 칼럼을 썼다고 윤 군은 말했다. 윤 군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 부모님과 나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그렇다고 책을 (독서 목록에서) 없애는 대신 읽고 논의하며 공론의 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군은 최근 아시아계가 미국에서 ‘증오 범죄(hate crime)’ 피해를 입는 일에 대해 “내 어머니, 할머니 나이의 아시아계가 희생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인종차별이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지금, 학교는 그 뿌리를 교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고등학생 윤성주 군(17·사진)은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앵무새 죽이기’를 이야기해 봅시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윤 군이 다니는 캘리포니아주 버뱅크고교가 주인공이 흑인 노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이유 등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책 5종을 금서(禁書)로 지정한 뒤였다. 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윤 군은 이 칼럼에서 “단순히 책이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적인 언어를 담고 있다고 해서 금서로 지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학교와 도서관에서는 묘사나 언어가 인종차별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며 특정 도서를 학생이 읽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빈번하다. 문제는 고전이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작품이 목록에 든다는 것. 하퍼 리 명작 ‘앵무새 죽이기’를 인종차별 언어가 쓰였다며 금서로 지정하는가 하면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도 주인공이 인종차별적 욕설을 한다며 교육 도서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에 윤 군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 ‘금서 지정을 철회하라’ 청원을 올렸고 2일까지 약 5000명이 동의했다. NYT가 ‘학생도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윤 군의 온라인 시위를 본 뒤 글을 요청해 이번 칼럼을 썼다고 윤 군은 말했다. 윤 군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민 1세대인 부모님과 나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그렇다고 책을 (독서 목록에서) 없애는 대신 읽고 논의하며 공론 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군은 최근 아시아계가 미국에서 ‘증오 범죄(hate crime)’ 피해를 입는 일에 대해 “일부의 무지와 인종차별적 발언을 제외하면 내가 조직적인 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면서도 “내 어머니, 할머니 나이의 아시아계가 희생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내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해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윤 군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우리 문화가 미국사회에 완전히 포함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며 “정치인이 되서 불평등, 소득격차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그들의 존재를 크렘린궁은 부인한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에서 암약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옹위하는 활동을 펼친다. 용병 전투, 허위조작정보 유포, 이권 개입, 자원 탈취, 민간인 살해…. ‘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이다.》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마을 부차의 모습은 세계를 분노케 했다. 살해된 민간인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성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손이 뒤로 결박되거나 고문 흔적이 남은 시신도 적지 않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원(BND)이 부차 지역 러시아군 교신을 도청한 결과 매일 어떤 잔혹행위를 할지 의논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BND는 ‘바그너그룹(Wagner Group)’으로 알려진 러시아 용병들이 부차에서 민간인 대상 잔혹행위를 주도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명목상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으로 분류되는 바그너그룹은 주로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파견돼 러시아군 배후에서, 또는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러시아군 소속이 아니어서 국제법이 금지한 민간인 학살이나 인권 유린을 자행해도 크렘린궁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바그너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러시아 헌법은 민간군사업체를 금지한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바그너그룹을 알려면 ‘바그너그룹이라는 존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존재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바그너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그림자부대’로 통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푸틴-프리고진-웃킨 삼각 고리바그너그룹은 2013년까지 러시아정보총국(GRU) 특수여단 소속이던 드미트리 웃킨이 2014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그너는 웃킨이 GRU에서 활동할 때 사용한 암호명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으로 ‘탈(脫)나치화’를 들어놓고는 사실상 히틀러를 추종하는 뜻을 지닌 용병 단체를 전장에 투입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GRU가 바그너그룹을 통제한다고 보지만 크렘린궁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16년 크렘린궁 만찬에서 웃킨이 푸틴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크렘린궁 대변인은 웃킨이 다른 군인 300여 명과 함께 표창을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웃킨이 표창을 받은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바그너그룹이 푸틴과 가까운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돈으로 운영된다고 파악한다. 바그너그룹의 실질적 관리자이자 바그너그룹과 푸틴 사이의 중개인인 셈이다. 프리고진은 2016년 미 대통령선거, 2018년 미 하원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여론 조작을 벌인 여론조사업체 인터넷조사국(IRA)과 콩코드경영컨설팅 소유주다. 두 업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프리고진은 선거 개입 혐의로 미 재무부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푸틴의 셰프’ 프리고진프리고진은 소시지 도매업자 출신이다.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과 인연을 맺었다. 푸틴이 시장에 이어 러시아 대통령이 되면서 푸틴이 즐겨 찾던 그의 레스토랑도 같이 흥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고위 인사도 푸틴을 따라 그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프리고진은 푸틴을 뒷배 삼아 케이터링(출장 요리)으로 발을 넓혔다. 푸틴의 크렘린궁 연회를 독차지하면서 ‘푸틴의 셰프’라는 별명을 얻은 뒤 광산업을 비롯해 문어발처럼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군 관련 경험이 없는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 군사작전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나 중동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를 돕는 대가로 광물자원 채굴을 비롯해 각종 사업권을 따낼 때 자신 소유 기업을 계약업체로 넣어 수익을 얻는다. 여기서 나오는 돈이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 자금으로 조달된다고 알려졌다. 바그너그룹은 수단의 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정치·군사 지원을 하고 그 대가로 금광 채굴권을 얻었다. 이 계약을 프리고진 소유의 광산기업 M-인베스트가 획득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바그너그룹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업체 콩코드경영컨설팅 내부 자료에는 총괄이사로 ‘드미트리 웃킨’이 올라 있다. 푸틴-웃킨-프리고진의 삼각관계가 바그너그룹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푸틴은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그너그룹에 대해 “러시아에서 법을 어기면 처벌받겠지만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사업할 권리가 있다”며 바그너그룹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서 활동 시작, 30개국 확산바그너그룹은 러시아가 해외에서 불법적인 군사작전을 벌일 때마다 활용하는 PMC로 받아들여진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전쟁터에서 활동한 미국 PMC와 개념은 비슷하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서 인명 피해가 커 반전 여론이 강해지자 이후 PMC와 계약을 맺고 인명 피해가 큰 작전이나 임무를 맡기곤 했다. 하지만 바그너그룹은 명목상 PMC일 뿐 사실상 러시아 GRU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또 PMC의 주요 역할인 용병 및 경호 일만 하지는 않는다. 천연자원 개발권 획득, 러시아를 위한 허위·조작정보 제작 및 유포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푸틴의 ‘그림자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그룹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도울 때다. 이후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말리 모잠비크 등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분쟁 지역에 나타났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 8년간 4개 대륙 30개국에서 바그너그룹의 활동이 포착됐다. 바그너그룹은 특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친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을 도와 극단주의 세력 혹은 반군을 탄압하고 있다. 그 대가로 자원 채굴 같은 이권을 챙기면서 반(反)민주주의, 반미(反美)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러시아의 국제무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말리가 바그너그룹의 주요 활동지였다. 프랑스는 2013년부터 ‘파리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억제하기 위해 옛 식민지 말리에 병력을 주둔시켜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말리 군정(軍政)이 바그너그룹 용병을 고용하자 올 2월 이에 반발해 주둔군 철수를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말리 군부는 테러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키려는 포식동물 같은 의도로 바그너그룹을 최고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는 곳마다 인권 유린-잔혹행위22일 AFP통신은 바그너그룹 용병들이 말리 민간인 시신 10여 구를 집단 매장하는 모습이 담긴 위성 영상을 공개했다. 프랑스군이 제공한 이 영상은 당시 퍼지던 ‘프랑스군이 민간인을 학살, 집단 매장했다’는 트윗을 반박하는 증거였다. 이 트윗은 바그너그룹에서 만든 여러 가짜 트위터 계정에서 뿌린 것이었다. 유엔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트워치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말리에는 바그너그룹 용병 약 1000명이 도착했다. 이들은 말리 군인 약 30명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IS 대원으로 의심된다며 민간인 3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올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출몰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동안 바그너그룹 용병 1000여 명이 그동안 활동하던 리비아 시리아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띠고 키이우에 잠입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숀 맥페이트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바그너그룹 같은 용병을 활용한 군사작전이 증가한 것은 “잔인한 전쟁을 최소한의 정치적 비용으로 치르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장에서 용병의 잔혹행위는 잠재적 고객에게 일종의 광고 역할을 한다. 이런 경향이 커질수록 부차에서 목격한 학살, 고문 등을 현대 전쟁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그너그룹 추적자들 줄줄이 의문사 소차 매클라우드 유엔 ‘용병 사용 실무그룹’ 위원장은 “바그너그룹의 모든 활동에는 투명성이라고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이 러시아가 세계 곳곳 분쟁지역에서 자국 개입을 부인하며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활용된다는 얘기다. 미 CNN에 따르면 2018년 시리아에서 미군 공습으로 바그너그룹 용병 20∼30명이 숨지자 그 유가족들은 “왜 이들이 시리아에 가게 됐느냐”며 크렘린궁에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도 정보가 없다”며 해당 사건 보도가 사실인지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사망자 역시 5명이라고 축소 발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에 속해 근무한 러시아인은 약 1만 명이다. 대부분은 전직 군인이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 한 달에 4000달러(약 50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파견 지역 자원 개발에 따른 부수입도 챙긴다. 이코노미스트는 말리에서 근무하는 바그너그룹은 한 달에 1000만 달러(약 126억 원)가량을 착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온 러시아 기자들은 줄줄이 의문사를 당했다. 2018년 러시아 독립 언론 기자 세 명이 바그너그룹의 해외 활동과 푸틴의 연관성을 취재하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갔지만 사흘째에 강도 총격으로 숨졌다. 이들이 탄 차량을 노린 매복 공격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유일한 생존자인 아프리카인 운전사의 입을 막았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무장강도 공격으로 사망했지만 러시아 외교부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푸틴과 외교부는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도 피해자들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취재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자 자격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 사건은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심을 더욱 키웠다. 같은 해 시리아에서 사망한 바그너그룹 용병들에 대해 탐사보도를 했던 기자 막심 보로딘은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사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6·25전쟁 중 전사한 미군의 유해가 7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28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는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로이 들라우터 병장(사진)의 유해가 22일 고향인 미 메릴랜드주 헤이커스타운에 안장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1948년 미 육군에 입대했고 한국전쟁 발발 후 곧 전장에 투입됐다. 1950년 11월 그가 속한 미 제7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는 중공군의 습격을 받았고 그 또한 숨졌다. 그의 유해는 2018년 제1차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에 넘긴 55개의 유해 상자에 포함됐다. 3세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봤다는 딸 샬린 씨(74)는 “항상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었다. 학창 시절 전쟁 영화를 보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누나 에벌린 씨(93) 역시 “죽기 전 동생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미국의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1.4%를 기록했다고 상무부가 28일 밝혔다.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월가 예상치(1.1%)보다 낮고 지난해 4분기(6.9%)와 비교하면 큰 폭 하락했다. 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예상 밖 ‘경제 역주행’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41년 최고치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우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등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 와중에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 경제는 코로나19가 처음 발발한 2020년 1분기에 ―5.1% 성장했고 같은 해 2분기에는 ―31.2%라는 역대급 저성장을 기록했다. 이후 공격적인 부양책 집행과 금리 인하 등으로 반등에 성공해 2020년 3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왔다. 미 경제의 향후 전망은 엇갈린다. 긍정론자들은 이날 성장률 쇼크에도 불구하고 미 기업과 소비자 지출이 여전히 늘고 있는 데다 3월 실업률이 3.8%를 기록하는 등 고용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1분기 개인 소비와 국내 투자는 각각 5.4%, 12.5%씩 증가했다. 비관론자들은 3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연준이 다음 달에는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고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성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최근 세계은행은 “전 세계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도이체방크 또한 “인플레 위협 등으로 미국에 대규모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한국전쟁 중 전사한 미군의 유해가 7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28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는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로이 드로이터 병장의 유해가 22일 고향인 미 메릴랜드주 헤이커스타운에 안장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1948년 미 육군에 입대했고 한국전쟁 발발 후 곧 전장에 투입됐다. 1950년 11월 그가 속한 미 제7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는 중공군의 습격을 받았고 그 또한 숨졌다. 그의 유해는 2018년 제1차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에 넘긴 55개의 유해 상자에 포함됐다. 3세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봤다는 딸 샤를린 씨(74)는 “항상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었다. 학창 시절 전쟁 영화를 보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누나 에블린 씨(93) 역시 “죽기 전 동생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싱가포르가 지적장애가 있는 마약밀매범을 27일(현지 시간) 사형에 처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사형 집행을 만류했지만 ‘사형은 마약 범죄 단절에 효과적’이라며 강행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당국은 이날 오전 말레이시아인 나가엔트란 다르밀링암 씨(34)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했다. 다르밀링암 씨는 2009년 헤로인 약 44g을 바지 속 허벅지에 묶어 싱가포르로 들어오려다 국경 검문소에서 발각돼 2010년 마약 밀매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12년째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다르밀링암 씨는 당초 지난해 11월 30일 사형 집행이 예정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뤄졌다. 다르밀링암 씨와 변호인은 1심 판결 이후 그에게 지적장애가 있어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인지할 수 없었다면서 감형을 호소하며 항소했다.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에서 그의 어머니는 “다르밀링암은 지능지수(IQ) 69로 추리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가 있다”며 “지적 수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 활동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재판장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 아들은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감형을 바라는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달 초 다르밀링암 씨 어머니는 사형 집행 중단을 요구하는 항소를 다시 제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26일 “다르밀링암이 마약을 밀수할 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지적장애에 의한 심신 미약이라고 판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사형 집행일은 다음날로 확정됐다. 항소가 기각되자 다르밀링암 씨는 유리 칸막이가 있는 법정 피고인석에서 “엄마”를 외치며 오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약 2시간 동안 어머니와 동생들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항소 기각에 국제사회는 들끓었다. 유엔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약물 관련 범죄에 사형을 적용하는 것은 국제인권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사형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국제사면기구 앰네스티도 “이 믿을 수 없는 잔인함에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다”며 사형제 폐지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르밀링암 씨의 고국인 말레이시아에서도 비난 여론이 터져나왔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말레이시아 총리도 싱가포르 정부에 감형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에는 시민 300며 명이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다르밀링암 사형 집행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벌였다. 그의 사면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약 10만 명이 서명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관련 법을 개정해 사형을 종신형으로 감형할 수 있는 재량권을 판사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사형 집행이 마약 범죄 단절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내무부는 2019년 ‘시민 70% 이상이 마약사범 사형 집행을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여파로 사형 집행을 약 2년간 중단하다가 지난달 68세 남성 마약밀매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우크라이나 피란민과 음악가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자유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7월 28일부터 8월 20일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전쟁 중 사망한 이들을 애도하는” 순회공연을 펼친다. 우크라이나 자유 오케스트라는 키이우, 르비우, 하르키우, 오데사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해외로 피신하거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음악가들로 구성됐다. 자유 오케스트라를 조직한 케리린 윌슨 감독 겸 지휘자(사진)는 26일(현지 시간) 영국 BBC에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각각 우크라이나인과 캐나다인인 윌슨 감독은 “이번 투어를 통해 전쟁으로 숨진 분들을 기리고 고통을 겪은 분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밝혔다. 20여 년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윌슨 감독은 지난달 피란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나탈리야 슈메이코와 체코 프라하에서 우크라이나 헌정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자유 오케스트라는 순회공연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곡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달 딸, 손녀와 함께 수도 키이우를 탈출한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우의 교향곡 7번,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와 함께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등을 연주한다. 각 공연 피날레는 인간의 폭력과 잔인함 속에서 인류애와 평화를 호소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가운데 아리아 ‘압쇼일리허(혐오스러운 인간, 어디를 급히 가는가)’가 장식한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다른 나라 대법원과 달리 최종심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모두 담당하는 데다 대법관 9명이 종신직이어서 대체 불가의 막강한 권위를 누리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거센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 1789년 설립 후 233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여성 커탄지 브라운 잭슨 워싱턴 항소법원 판사(52)가 7일(현지 시간)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서 종신직인 대법관 9명 중 약 절반인 4명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역대 대법관 116명 중 108명(93.1%)이 백인 남성일 정도로 소수계가 넘보기 어려웠던 유리천장에 상당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백인 여성 샌드라 데이 오코너(92)는 불과 41년 전인 1981년에야 미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올랐다. 2006년 그가 치매 남편을 돌보기 위해 자진 사퇴한 후 2009년 상반기까지는 ‘미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유대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가 유일한 여성 대법관이었다. 같은 해 8월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68)가 취임했고 엘리나 케이건(62), 에이미 코니 배럿(50)에 이어 잭슨까지 등장했다. 미 대법원의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생전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명 전부”라고 했다. 대법관 9명이 모두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여성 9명이 무슨 문제냐는 의미다.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최초의 여성 부통령, 최초의 여성 국가정보국(DNI) 국장,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등이 탄생했고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 최초의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 아시아계 대법관의 탄생 등도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 미 최후의 인종장벽 붕괴잭슨은 흑인으로는 남녀 통틀어 세 번째, 여성으로는 여섯 번째 대법관이다. 미 대법원에 최초의 흑인 판사 서굿 마셜이 등장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7년. 1991년 두 번째 흑인 판사 클래런스 토머스가 취임한 지 31년이 흐른 후에야 잭슨이 발탁됐다. 그는 고령을 이유로 종신 임기를 지키지 않고 6월 퇴임 예정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잭슨은 인준 다음 날 바이든 대통령, 미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대동한 채 백악관에 나타났다. 그는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애호하는 흑인 여성 시인 마야 앤절루의 시구 “나는 노예의 꿈이자 희망”을 인용하며 자신의 조부모 세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날 거의 모든 미 언론이 1면에 그의 인준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에 남아 있던 가장 중요한 인종적 장벽이 무너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 법조인, 특히 흑인 여성 판사는 그야말로 희귀한 존재다. 미 연방판사 중 여성 비율은 35.7%이지만 흑인 여성만 놓고 보면 5.7%에 그친다. 3억3000만 명 인구 중 흑인 여성 비율(11.4%)보다 훨씬 낮다. 이종곤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잭슨의 후임인 워싱턴 항소법원판사에도 흑인 여성이 발탁됐다. 소수계가 한번 발탁되면 그 후임 또한 소수계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 법조계의 인종 다양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명식 조선대 교수(공공인재법무학) 또한 “그냥 여성 대법관 한 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했다. 인종과 성별을 제외해도 하버드대 학사, 하버드대 로스쿨 우등 졸업, 브라이어 대법관의 재판연구원, 지방법원 및 항소법원 판사, 연방 국선변호인 등을 지낸 엘리트 법조인 잭슨이 대법관에 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잭슨이 특히 형사 사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호평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지방법원 판사로 일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방해 혐의와 관련해 트럼프 측근들이 의회 증언을 거부하자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라며 출석해 증언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야당 공화당은 줄곧 그를 ‘좌파 급진주의자’로 평가하며 인준을 반대했다. 수전 콜린스(메인)를 포함한 공화당 내 중도 성향 의원 3명이 지지해 간신히 인준은 통과했지만 초당적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 오코너의 인준 당시 표결에 참여한 의원 99명이 전원 찬성했고, 두 번째 여성 대법관 긴즈버그 또한 불과 3명으로부터 반대표를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가 임명한 배럿과 대조잭슨과 닮은 점도, 다른 점도 많은 인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탁한 배럿 대법관이다. 10대 자녀를 둔 워킹맘이라는 점, 각각 야당으로부터 거센 반대를 받았다는 점이 공통점이고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한다는 점이 다르다. 낙태를 반대하고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등 강경 보수 성향인 배럿은 미 법조계의 보수 대부 고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서기를 지냈다. 모교 노터데임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사람의 인생은 잉태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낙태 반대 논문을 써서 유명해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대법관의 전 단계로 여겨지는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발탁됐고 차기 대선이 불과 한 달 남은 2020년 10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췌장암으로 타계하자 곧바로 배럿을 지명했다.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선 승리가 유력했고 긴즈버그 또한 생전 “대선 전에는 나의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보수 대법관을 늘릴 기회라 여긴 트럼프 대통령은 지명을 강행했다. 당시 미 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7석이었다. 민주당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공화당에서도 콜린스 의원이 반대해 찬성 52표, 반대 48표로 인준을 통과했다. 야당으로부터 단 1명의 찬성표도 얻지 못한 대법관은 미 역사상 배럿이 처음이다. 그는 7명의 자녀를 뒀다. 이 중 2명은 아이티에서 입양했고 직접 낳은 막내아들 벤저민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의 지명 당시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배럿이 학령기 자녀를 둔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며 적극 홍보했다. 강경 보수 대법관의 탄생을 우려하는 진보 진영에 ‘모성애’로 맞선 것이다. 잭슨 또한 보스턴 명문가의 후손인 백인 의사 남편과의 사이에 각각 21세, 17세의 딸을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배럿이 강조했던 모성애가 잭슨의 인준 과정에서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했다.○ 오바마는 여성 대법관 2명 임명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 여성 대법관 2명을 임명한 최초의 미 대통령이다. 이 중 푸에르토리코계인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현 대법관 9명 중 진보 성향이 강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판사 시절 “현명한 라틴계 판사가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할 수도 있다”며 사법부의 인종차별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보수 텃밭인 남부 텍사스주가 주법으로 ‘낙태금지법’을 강행한 후 대법원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다수 대법관이 현실을 외면했다”며 동료를 비난했다. 대법원에서 금기시하는 동료 비판을 꺼리지 않은 것이다. 그의 급진 성향이 성장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생지인 뉴욕 브롱크스는 빈민가이며 알코올에 의존하던 부친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모친의 높은 교육열과 본인의 의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대법관까지 올랐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폭발적인 불화로 계속된 긴장 상태’로 묘사할 정도로 아픈 기억이 많다. 2010년 임명된 케이건은 진보 성향이지만 보수와 진보 양측의 견해를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는다. 별명 또한 좌우를 잇는다는 뜻의 ‘교량 건설자(bridge builder)’. 그는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후 교수로 일했고 2003년 여성 최초의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이 됐다. 다른 대법관과 달리 판사 경력이 전무한데도 대법관으로 뽑혔다.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로 활동할 당시 지역의 유명 인사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우위 대법원과 충돌하는 바이든여성 대법관의 증가가 성소수자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잭슨은 인준 청문회에서 공화당 의원이 ‘여성의 정의’에 관해 묻자 “답하지 않겠다. 난 생물학자가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그가 성소수자를 옹호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 또한 2020년 ‘기업이 특정 직원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이끈 바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이 6명, 진보 성향이 3명인 현 대법원과 거듭 충돌하는 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텍사스주의 ‘낙태 제한법’ 시행을 중지해 달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을 기각했다. 임신 6개월 이전의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보장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매우 우려스럽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법원은 올 1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민간기업의 백신 의무 접종 조치 또한 개인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무효화했다. 3월에는 집권 민주당 소속인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가 흑인 인구가 늘어난 선거구를 분할해 기존 6개에서 7개로 늘리자 “위헌”이라며 불허했다. 개별 주가 획정한 선거구를 대법원이 뒤집은 것은 미 역사상 처음이다. 대법관 개개인의 윤리 문제도 불거졌다. 보수 성향인 토머스 대법관의 부인이자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로비스트 지니 토머스는 2020년 대선 기간 중 마크 메도스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과 29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진보 진영에서는 “대법관의 배우자가 대선에 개입했다”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긴즈버그 대법관 또한 생전 변호사 남편의 관련 소송에서 남편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구설에 올랐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중립성과 신뢰도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한 판결이 헌법에 근거해 중립적으로 내려지지 않고 법관 개인이 선호 또는 지지하는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미 그리넬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는 “대법원 판결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정치에 좌우된다”고 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오늘날 대법관들이 스스로를 일종의 정치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법원이 정치기관으로 전락하면 헌법을 지탱하는 근간이 무너지고 국민 불신이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감안할 때 대법원의 자정 기능 강화, 더 많은 다양성이 추가된 대법관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법관에게 종신 임기를 보장해준 것 또한 낙태, 대학 입시 등에서의 소수계 우대(어퍼머티브 액션), 총기, 투표법, 성소수자, 종교 자유, 사형제, 인종차별 등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의제에 대해 외풍에 휘둘리지 말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리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피란 생활 50여 일째인 21일, 8세인 큰 딸은 이날도 같은 질문을 해왔다. 올레나 티우텐코 씨(36)가 지난달 초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떠나 체코 프라하에 머물고 있는 지금까지 거의 매일 듣는 질문이다. “엄마, 아빠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야?” 티우텐코 씨 부부는 전쟁 전만 해도 키이우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징집 대상인 남편은 키이우에 남고, 세 모녀만 피란길에 올랐다. 두 딸에게 아버지가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티우텐코 씨는 “아빠 일이 마무리되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라며 달래듯 답해왔다. 그는 피란을 떠날 때만 해도 곧 키이우로 돌아와 남편과 상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집에서도 옷 몇 벌과 약간의 현금만 챙겨 나왔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그 사이 아이들은 전쟁의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피란을 떠나기 전 키이우에 있는 동안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고 수시로 울리는 경보 사이렌 소리에 어린 딸들은 소리를 지르며 치를 떨었다. 이후 아이들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몸을 벌벌 떨며 자지러졌다. 이제 1살인 둘째 딸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울었다. 부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살얼음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티우텐코 씨는 프라하에 사는 지인 부부의 아파트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아이들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TV를 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뉴스만 틀면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티우텐코 씨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아이가 무섭다고 울면 다른 분들 눈치가 보여 아이의 입을 막으며 달랜다. 그 나이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라고 했다. 티우텐코 씨는 하루에 2, 3차례 남편과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남편은 키이우 등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낮에는 두 딸도 함께 통화를 하기 때문에 남편은 최대한 조용한 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전화를 건다. 주변에서 포성이 울리는 등 상황이 불안할 땐 통화를 미룬다. 밤이 되면 티우텐코 씨는 화장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부부는 전화로 전쟁 중인 조국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혹시라도 전쟁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까봐 거의 속삭이듯 기도한다. 티우텐코 씨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는 “가져온 현금은 거의 바닥났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피난길에 오른 이후 계속 감기가 낫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두 딸은 잠결에 잠시 깼을 때도 엄마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아빠 언제 와?”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인구 70만 명의 남태평양 소국 솔로몬 제도가 미중 갈등의 최전선으로 급부상했다. 중국이 19일 솔로몬 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했다고 전격 발표하자 미국 역시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사진)을 이번 주 안에 솔로몬 제도로 급파하기로 했다. 특히 AFP통신 등 외신은 안보협정 초안에 중국 함정을 솔로몬 제도에 파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거점 괌과는 약 3000km, 호주와는 약 2000km 떨어진 이곳에 인민해방군을 파견할 합법적 통로를 마련함에 따라 남태평양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또한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이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군함을 상시 파견해 미국 호주 영국 3국의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 호주 일본 인도의 4개국 협의체 ‘쿼드(QUAD)’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中-솔로몬 제도 안보협정 전격 타결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제레마이아 마넬레 솔로몬 제도 외교장관이 양국 정부를 대표해 최근 안보협정에 정식 서명했다. 양국의 전면적인 협력을 위한 중요한 요소를 갖췄다”고 밝혔다. 서명 시점 및 협정 전문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협정은 두 주권국 간의 정상적인 협력”이라며 “제3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 두 나라가 안보협정 초안을 공개한 후 격렬히 반발해 온 미국과 호주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솔로몬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미국과 협력했다. 201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후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중국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질적 경제난 등으로 반정부 시위대가 총리관저를 파괴하는 등 안보 불안이 고조되자 중국에 손을 벌렸다. 중국 또한 당시 폭도들이 차이나타운을 습격해 중국인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았다는 점을 군대 파견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앞서 NSC는 18일 “캠벨 조정관,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미 대표단을 이끌고 이번 주 솔로몬 제도, 파푸아뉴기니, 피지 등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또한 “우리의 제안과 역내 다른 큰 국가(중국)의 제안을 비교하는 일은 솔로몬 제도에 맡기겠다”며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 때 솔로몬 제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선임행정관은 정치매체 액시오스에 “중국이 솔로몬 제도를 중심으로 남태평양에 교두보를 확보하면 미군의 군수품 공급 등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 더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솔로몬 제도와 마찬가지로 201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이웃 키리바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키리바시는 미국의 또 다른 군사거점 하와이에서 약 3000km 떨어져 있다.○ 美-필리핀 국방장관 “남중국해 협력”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8일 미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을 접견했다. 미 국방부는 두 사람이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조약에 남중국해의 필리핀 군함 및 공공 선박, 항공기도 포함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J-20’을 투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필리핀 선박 및 항공기를 공격하면 미군이 자동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미 CNN은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 영공을 침범하는 모든 외국 군용기를 J-20으로 격추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학교 지하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출입문 뒤에 검은색 크레용으로 하루하루 날짜를 적었다. ‘지하실 달력’의 시작은 3월 4일. 이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약 140km 떨어진 야히드네 마을 어린이 60명을 포함해 주민 380명을 포로로 잡았다. 70m²도 채 안 되는 교실 네 곳에선 제대로 누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화장실도 못 가게 해 양동이에 볼일을 봤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러시아군이 물과 음식 공급을 끊자 병이 있거나 나이 든 사람들이 쓰러졌다. 발렌티나 사로얀 씨는 “한 노인이 숨지고 그의 아내가 뒤따랐다. 바닥에 누워 힘겨워하던 남자도…”라고 말했다. 그렇게 18명이 숨졌다. 장례도 허용되지 않아 시신들은 그냥 한쪽에 놓여졌다. 술에 취했거나 마약을 한 듯한 러시아 군인들이 종종 지하실로 내려와 주민 목에 총을 겨누고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거나 러시아 국가를 부르게 했다. 주민들은 지하실에 남은 약간의 식료품과 물로 버텼다. 낮에 문 틈새로 들어오는 가는 빛을 조명 삼아 아이들은 벽에 그림을 그렸다. 긴 수염에 뾰족한 귀를 가진 고양이, 축구장, 공습 전 마을 모습…. 지난달 말 러시아군은 퇴각하면서 ‘마지막 선물’이라며 지하실 출입문 틈새를 콘크리트로 막았다. 주민들은 겨우 문을 부수고 탈출했다. ‘달력’ 날짜 3월 31일이었다. 침공 전과 완전히 달라진 마을에서 주민들은 숨진 이들을 수습하고 있다. 유리 발라노비치 씨(39)는 영국 텔레그래프에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어 무덤을 파기 쉽지 않지만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말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약 6백만 명이 아니라 그 두 배가 넘는 1500만 명 이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 시간)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를 1500만 명이라고 지난해 자체 집계했지만 인도의 반대로 발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WHO에 따르면 16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619만 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WHO 집계 결과 이미 1500만 명이 넘었고, 늘어난 사망자 약 900만 명 중 400여만 명이 인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NYT는 보도했다. WHO는 지난해 세계적인 통계학자와 공중보건전문가로 특별전담팀을 꾸려 정확한 코로나19 사망자 집계에 나섰다. 전담팀은 각 국가 공식 사망자 통계와 해당 국가 지역 및 가구 조사 통계 등을 결합해 분석했다. 추가 집계된 사망자에는 코로나19 직접 사망자와 함께 코로나19로 기저질환이 악화돼 숨진 사망자도 포함됐다. NYT에 따르면 WHO는 지난해 12월 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인도 정부 반대로 공개하지 못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를 52만 명이라고 발표한 인도 정부는 올 2월 유엔(UN)에 성명서를 보내 “(WHO의 통계 결과는) WHO 위상에 걸맞지 않은 방식으로 집계됐다”며 통계방법론 결함을 주장했다. WHO 코로나19 사망자 집계 연구 핵심인 존 웨이크필드 워싱턴대 통계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집계는 마쳤으나 인도 정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전면 재검토했다”고 말했다. WHO 통계전문가인 사미라 에스마 박사는 전 세계 실제 코로나19 사망자 10명 중 6명은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의 정확한 사망자 집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는 지난 2년간 사망자 수는 발표했지만 이를 WHO에 공식 보고하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를 30만 명이라고 WHO에 보고했지만 러시아 통계국은 최소 1백만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중국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약 5000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세계 통계 및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비해 치명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발레계 주요 인사들이 속속 고국을 떠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 시간) 러시아 문화의 상징이었던 발레가 러시아 고립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최고의 발레리나로 꼽혔던 올가 스미르노바 전 볼쇼이 발레단 수석 무용수(31·사진)는 지난달 조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뒤 네덜란드로 망명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세계적 안무가인 전 볼쇼이 예술감독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또한 조국의 침공 직후 미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권좌를 지키고 있는 한 귀국하지 않겠다”고 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네미로비치단첸코 발레단의 예술감독인 로랑 일레어 역시 침공 며칠 만에 사임했다. 테드 브랜드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여러 러시아 무용가들이 입단 문의를 하고 있다. 냉전 시대로 돌아온 것 같다”며 더 많은 러시아 발레계 인사가 서구로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전쟁에서도 규칙이 있다. 전쟁범죄는 이 최소한의 규칙마저 어긴 행위다.” 전쟁범죄(war crime)는 전쟁 중에 일어나는 각종 반인도적 행위를 뜻한다.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이 대표적이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벌인 행위는 전쟁범죄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차, 보로i카, 모티진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 피란민 이동 경로 폭격, 산부인과와 학교 공습 등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무도한 행위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오나 힐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최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장악’이 아니라 ‘절멸’”이라며 그가 우크라이나인 말살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옛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미얀마 등 세계 각국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지만 러시아의 최근 행보는 수위와 강도 면에서 역대급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상당수 전쟁범죄가 특정 국가의 내전 과정에서 벌어져 같은 나라 국민이 피해를 입은 반면 러시아는 엄연한 주권 국가인 타국 국민을 상대로 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인종학살을 자행한 세르비아 지도자가 전범(war criminal)으로 법정에 선 것과 달리 폭주하는 푸틴 대통령을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전 세계서 전쟁범죄 잇따라유엔이 정한 전쟁범죄의 요건은 △무고한 사람에 대한 고의적 살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지시 △민간인 인명 및 재산피해 △무방비 상태의 도시, 마을, 건물 등을 폭격 등 총 15가지다. 하나같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짓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전쟁범죄가 수차례 벌어졌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남부 밀라이에서 미군의 손에 민간인 약 500명이 숨졌다. 이웃 캄보디아에서는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 루주’가 1975∼1979년 당시 전 인구의 약 4분의 1인 최대 200만 명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1988년 쿠르드족에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무기 ‘사린가스’를 사용해 역시 5000명이 사망했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다수파 후투족이 100일간 소수파 투치족 및 온건 후투족 80만 명을 살해했다. 별도의 성폭행 피해 여성 또한 최대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유고 내전은 전 세계가 전쟁범죄의 참상에 눈뜬 계기로 평가받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보스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 등의 독립 요구를 탄압하고 곳곳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해 냉전 붕괴 이후 최악의 전쟁범죄자 겸 학살자로 꼽힌다. 그를 따르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민간인 8000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유고 내전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 설립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유일한 ‘인종학살’로 인정한 사건이다. 세르비아계는 이슬람계가 많은 코소보가 1998년 독립을 요구하자 역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현재 약 8600명이 사망 또는 실종 상태다. 당시 코소보의 난민만 100만 명에 달했다. 2001년 권력남용 등으로 체포된 밀로셰비치는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았다. 최종 결론이 나기 전인 2006년 헤이그 교도소에서 숨졌다. 지난해 2월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도 군부가 소수민족과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미얀마군은 지난해 7월 중부 사가잉에서 민간인 40명을 살해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부차 집단학살의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손과 발이 묶인 시체가 여럿 발견됐다. 5개월 후에는 동부 카야주에서 불에 탄 40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주민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일부 희생자는 산 채로 불탔다”는 끔찍한 증언을 내놓았다. 유엔은 쿠데타 발발 후 1년간 최소 1600명이 사망했으며 미얀마군이 인구 밀집지역에 중화기를 사용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고 규탄했다.○ 러, 체첸-시리아 때부터 민간인 학살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이 푸틴 대통령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며 과거 체첸, 시리아 때도 널리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의 민간인 대상 범죄가 본격화한 것은 제2차 체첸 전쟁 때부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군이 최근 부차 등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에 대해 “2000년 체첸에서 벌인 ‘자치스트카(Zachistka·청소)’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평했다. 1999년 당시 러시아는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려 했지만 함락이 쉽지 않았다. 그러자 도시를 포위하고 이듬해 초 일대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고, 그로즈니는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 82명의 민간인은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됐다. 지난달 초부터 러시아군이 포위해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봉쇄의 모델이 그로즈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2013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사린가스를 사용해 민간인 1400명을 숨지게 했다. 2017, 2018년에도 각각 사린가스와 염소가스를 투하해 최소 87명, 1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러시아군은 정부군을 동원해 반군에 국제법이 금지한 ‘진공폭탄’ 등 각종 대량살상무기도 사용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푸틴은) 과거에도 군사 작전을 벌일 때마다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더럽혔다”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과 민간물자를 겨냥한 것은 전형적인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시리아 전쟁의 유산이 푸틴 대통령에게 폭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라고 진단했다.○ 상대국 공포 극대화 및 분열 노려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하고 초강력 제재를 가하고 있음에도 푸틴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는 전쟁범죄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군사 전략가 알렉세이 아르바토프는 “러시아는 민간인의 사망을 용인하는 전략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면 상대국의 저항 의지를 손쉽게 꺾고 공포와 두려움을 확산시킬 수 있다. 상대국의 분열도 부추길 수 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여론 또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협상하자’는 쪽과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주변국에도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들이 증가해 주변국 또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탓이다. 폭력을 부추기는 러시아 군대 특유의 ‘데도브시나(dedovshchina)’ 문화 또한 러시아 병사로 하여금 죄책감 없이 전쟁범죄를 자행하도록 만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데도브시나는 신병의 정신과 신체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자행되며 구타, 집단 폭행, 성폭력 등이 빈번하게 자행된다. 미 CNN은 우크라이나 침공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 군대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문화로 유명했다고 지적했다. ○ 러 국민이 나서야 단죄 가능하나 난망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일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12일에는 러시아의 침공 후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줄곧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 전 지휘관은 물론 민간인 공격 명령을 내린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푸틴 대통령을 단죄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ICC에 세우는 것이다. ICC는 지난달부터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ICC가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어 전범 용의자를 체포하려면 해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ICC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탈퇴했다. 특히 ICC는 결석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자국에서 체포되지 않는 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유고 내전, 르완다 대학살 당시 국제사회는 전범을 기소하기 위해 특별 ICC를 일회성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특별 법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설립된다. 역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쓰면 불가능하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ICC 법정에 선 이유도 그가 민중 봉기로 실각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려면 러시아 국민이 현실을 깨닫고 푸틴 대통령을 몰아내야 가능하다. 가디언은 “전쟁범죄와 잔학 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라며 수만 명의 러시아인이 거리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이 잔혹한 행위를 막는 최선의 도구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굳건하다. 모스크바의 여론조사회사 ‘레바다센터’가 침공 후 최초인 지난달 31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푸틴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직전 조사인 1월(69%)보다 14%포인트 올랐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도 지지율 급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집권 후 22년간 강력한 언론 통제를 통해 서방을 악마화하고 전쟁범죄를 ‘가짜뉴스’ 혹은 ‘우크라이나 내 나치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제외하면 푸틴에 대항할 만한 정치인도 전혀 안 보인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체첸전쟁 때는 체첸군 또한 러시아에 테러를 저질렀고, 시리아에는 직접 지상군을 파병한 것이 아니어서 일반 러시아인은 두 사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대다수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계를 탄압하고 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푸틴 정권의 주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파리=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파리=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파독 광부였던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존 리(이지훈·54·사진)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가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리 판사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캘리포니아 제9항소법원의 허버트 최(최영조) 판사와 루시 고(고혜란) 판사에 이어 한국계 법률가 중 미 연방 종신직 판사에 오른 세 번째 사례가 된다. 미국 백악관은 13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5명의 신임 연방판사를 지명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 중 한 명인 리 판사에 대해 “제7연방항소법원에서 근무하게 될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소개했다. 리 판사는 2012년 일리노이 북부지원의 연방판사로 취임한 지 10년 만에 우리의 고등법원 격인 연방항소법원 판사에 오르게 됐다. 리 판사는 1968년 파독 광부였던 아버지 이선구 씨(82)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이화자 씨(78)의 3남 중 장남으로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다.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 리 판사는 생후 3개월 때 대전으로 보내져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는 1972년 4세이던 그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아버지는 새벽에 공장에 출근하고 어머니는 병원 간호사로 일해 그는 낮 동안 혼자 집을 지키며 공부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리 판사는 하버드대를 거쳐 1992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연방법원 판사로 발탁됐다. 그해 7월 리 판사의 취임식에서 딕 더빈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은 “네 살 나이에 미국에 와서 연방판사가 된 리 판사의 이야기는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리 판사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 정체성을 형성시켰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며 “항상 감사한 마음, 그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법적인 문제나 법률 문서를 읽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공정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