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있어 범죄인지 몰라” 호소에도…싱가포르, 마약밀매범 사형 집행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7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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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싱가포르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나가엔트란 다르밀링암의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다르밀링암의 어머니가 아들이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며 
사형 집행 중단을 위해 제기한 항소심을 기각했다. 다르밀링암은 27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쿠알라룸푸르=AP 뉴시스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싱가포르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나가엔트란 다르밀링암의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다르밀링암의 어머니가 아들이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며 사형 집행 중단을 위해 제기한 항소심을 기각했다. 다르밀링암은 27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쿠알라룸푸르=AP 뉴시스
싱가포르가 지적장애가 있는 마약밀매범을 27일(현지 시간) 사형에 처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사형 집행을 만류했지만 ‘사형은 마약 범죄 단절에 효과적’이라며 강행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당국은 이날 오전 말레이시아인 나가엔트란 다르밀링암 씨(34)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했다. 다르밀링암 씨는 2009년 헤로인 약 44g을 바지 속 허벅지에 묶어 싱가포르로 들어오려다 국경 검문소에서 발각돼 2010년 마약 밀매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12년째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다르밀링암 씨는 당초 지난해 11월 30일 사형 집행이 예정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뤄졌다.

다르밀링암 씨와 변호인은 1심 판결 이후 그에게 지적장애가 있어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인지할 수 없었다면서 감형을 호소하며 항소했다.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에서 그의 어머니는 “다르밀링암은 지능지수(IQ) 69로 추리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가 있다”며 “지적 수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 활동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재판장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 아들은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감형을 바라는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달 초 다르밀링암 씨 어머니는 사형 집행 중단을 요구하는 항소를 다시 제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26일 “다르밀링암이 마약을 밀수할 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지적장애에 의한 심신 미약이라고 판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사형 집행일은 다음날로 확정됐다.

항소가 기각되자 다르밀링암 씨는 유리 칸막이가 있는 법정 피고인석에서 “엄마”를 외치며 오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약 2시간 동안 어머니와 동생들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항소 기각에 국제사회는 들끓었다. 유엔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약물 관련 범죄에 사형을 적용하는 것은 국제인권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사형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국제사면기구 앰네스티도 “이 믿을 수 없는 잔인함에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다”며 사형제 폐지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르밀링암 씨의 고국인 말레이시아에서도 비난 여론이 터져나왔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말레이시아 총리도 싱가포르 정부에 감형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에는 시민 300며 명이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다르밀링암 사형 집행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벌였다. 그의 사면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약 10만 명이 서명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관련 법을 개정해 사형을 종신형으로 감형할 수 있는 재량권을 판사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사형 집행이 마약 범죄 단절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내무부는 2019년 ‘시민 70% 이상이 마약사범 사형 집행을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여파로 사형 집행을 약 2년간 중단하다가 지난달 68세 남성 마약밀매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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