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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현재 주한미군 규모가 너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위원장은 1일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 관계 논의를 위한 조찬 간담회’에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군사력의 오버캐파(overcapacity·과잉)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필요 이상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뒤이어 “예측 불가능한 세력을 통제, 관리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성은 있는데”라며 여지를 뒀지만, 듣기에 따라선 주한미군 감축 주장에 명분을 줄 수 있는 발언이다. 이어 그는 “미국과 북한이 진정 비핵화를 바라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과 북한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회고록 논란을 일으킨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론하며 “미국이 ‘핵 없는 북한’을 상정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볼턴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 측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이 송 위원장의 뜻”이라고 해명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현재 주한미군 규모가 너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위원장은 1일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 관계 논의를 위한 조찬 간담회’에서 “주한미군은 한미(韓美) 동맹 군사력의 오버캐파(overcapacity·과잉)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필요 이상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뒤이어 “예측 불가능한 세력을 통제, 관리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성은 있는데”라며 여지를 뒀지만, 듣기에 따라선 주한미군 감축 주장에 명분을 줄 수 있는 발언이다. 그는 이어 “미국과 북한이 진정 비핵화를 바라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과 북한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회고록 논란을 일으킨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론하며 “미국이 ‘핵 없는 북한’을 상정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볼턴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 측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이 송 위원장의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세(稅) 부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세제 강화 등 추가 대책의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다. 김 장관은 6월 29일 밤 한 TV 방송에 출연해 “6·17부동산대책으로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부자’의 투자를 막기 어렵지 않으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정부가 부동산 세제의 부족한 점을 손봐야 할 점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집을 많이 가진 것이 부담되게 하고 투자 차익은 환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며 “종부세 강화 방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되면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높아져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해 최고 4%까지 세율을 높이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김 장관은 “재산세도 실거주자냐 다주택자냐에 따라 세율을 차등화하는 나라들이 있다”고 덧붙여 보유세 개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한편 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부동산 대책이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니다. 지금까지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부동산 정책이 잘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며 “어떤 건 시행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정책이 종합적으로 작동되는 결과를 추후에 봐야 한다”고 말했다.이새샘 iamsam@donga.com / 이은택 기자}

‘한국의 어떤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더 많은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혁신가들의 구루(스승)’로 불린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23일(현지 시간) 항암 치료를 받던 중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그는 임종 일주일 전 동아일보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언했다. 병마 탓에 직접 컴퓨터 자판을 칠 힘이 없어 그의 아내가 남편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 기고문에서 크리스텐슨 교수는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던 시절을 즐겁게 회상하곤 한다”며 미래 한국을 위한 5가지 화두를 던졌다. 먼저 그는 한국이 ‘파괴적 혁신’을 통해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한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언급하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기업들이 새 시장을 창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과거 한국의 혁신 기업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해온 것처럼 한국은 이런 도전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 “한국인들은 50년 전 기억하는 그대로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이들이 예전만큼 행복한지는 의문”이라며 “혁신을 선도하며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번영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인가”라고 했다. 아울러 △한국이 국내외 새로운 주체들로부터 생겨나는 파괴적 혁신에도 무너지지 않는 경제를 어떻게 일굴 것인가 △새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을 어떻게 구분해내고 우선 발전시킬 것인가 △지속가능한 혁신을 이루면서, 동시에 파괴적 혁신을 우선시하는 경제발전을 어떤 식으로 이뤄낼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고인은 1995년 발표한 ‘파괴적 혁신’이라는 개념과 1997년 내놓은 ‘혁신가의 딜레마’라는 저술을 통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등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였다. 1952년 4월 6일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몰몬교)의 신자로 미국 브리검영대를 졸업했다. 1971∼1973년 선교사로 춘천, 부산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4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을 꾸준히 육성하는 국가가 경쟁력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암에 걸린 뒤에는 자신의 이론을 인생에 투영하려는 노력을 했다. 2012년 ‘당신의 삶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공저를 내놓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이 책에서 “신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지표는 ‘달러’가 아니라 내가 접촉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개인적 명성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운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라”고 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정경선 씨 별세·하주용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부인상=27일 서울 고려대구로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20분 070-7606-4197}

1940년 5월 15일 오전 7시 30분 경. 영국 수상 처칠은 프랑스 수상 레노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우리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전투에서 졌습니다.”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국에 더 많은 지원을 요청했다. 그 중에서도 절박하게 요청한 것이 바로 전투기였다. 탱크를 앞세운 독일의 전격전에 프랑스 전선이 허물어지자, 땅위를 기어가는 탱크를 하늘의 독수리들이 때려잡는 광경을 상상했던 것 같다. 영국은 이미 프랑스에 474대의 전투기를 파견했었고 추가 파견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지 논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치가였던 처칠은 내각에서 결정한 4개 대대에 6개 대대를 더해 10개 대대의 추가 파견을 결정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처칠은 속까지 깎아내는 결정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도 영국 방어를 위해서는 공군사령관 다우딩이 말한 대로 25개 전투기 대대를 본토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했다. 하지만 다우딩이 주장한 숫자는 50개 대대였다. 그는 50대 대대를 확보하기 전에는 4개 대대조차 보낼 수 없다고 맞섰다. 다우딩은 이 논쟁에서는 패배했지만, 뒤이어 벌어진 독일공군과의 영국 항공전에서는 승리했다. 이 승리는 전적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상급자에게 대들기도 잘하는 다우딩의 고집스런 투쟁의 덕분이었다. 그 전부터 이후로도 다우딩은 정치인의 압력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 방해, 반대를 꿋꿋이 이겨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존경해야 할 사실은 다우딩을 싫어하고 그의 뻣뻣한 태도에 질색한 권력자들도 전쟁동안 그의 지위를 보존해 주었다는 점이다. ‘영국전투’의 저자 마이클 코다는 이렇게 단언한다. 독일의 패배는 다우딩과 같은 지휘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인물을 용납하는 리더나 사회적 시스템이 없었던 탓이라고 말이다.임용한 역사학자}

웅진그룹이 설립한 웅진재단(신현웅 이사장)은 28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스튜디오에서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개국 11주년 기념행사(사진)를 열었다. 이 방송은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등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어려움을 달래주기 위해 시작됐으며 하루 24시간, 8개 언어로 진행된다. 재단이 기획 및 협찬했고, 2008년 디지털스카이넷(김충현 사장)이 제작해 2008년 8월 15일부터 전파를 탔다.이은택기자 nabi@donga.com}

신송그룹 계열사인 신송산업이 서울대 치과대 및 치의학대학원 여자 동창회와 함께 캄보디아 봉사활동에 나선다. 이들은 1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신송 캄보디아 의료봉사단 발대식’(사진)을 열고 신송산업의 타피오카 전분 생산 공장이 있는 캄보디아 크라체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할 예정이다. 발대식에는 조승우 신송산업 대표와 김원경 동창회장 등이 참석했다. 의료봉사단은 크라체 지역에 대한 지원을 모색하던 신송산업과 해외 봉사 기회를 찾던 서울치대 여자동창회가 합심해 지난해 출범했다. 봉사단은 지난해 크라체병원에서 주민 200여 명을 치료했다. 조 대표는 “앞으로 의료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크라체 지역은 물론 한국과 캄보디아의 교류 협력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조선의 최고 권력자는 어머니였다. 실제 광기로 권좌에서 내쫓겼거나 병약했던 임금 중에는 어머니를 일찍 잃고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 단종, 인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등이 그랬다. 특히 경종은 어린 시절 어머니(장희빈)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유일한 왕이었다. 작은 상처는 쉽게 회복 되지만 큰 수술 자국은 몸에 상처를 남긴다. 정신적 아픔도 너무 크면 큰 상처를 남긴다. 우리가 흔히 ‘트라우마’로 부르는 바로 그것. 경종은 한 평생을 트라우마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실록은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이 경종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숙종실록 27년 10월 1일 장희빈의 죽음과 관련해 공조 판서 엄집(嚴緝)은 상소한다. “왕세자가 이제 막 망극한 슬픔을 당하고 또 비상한 변고를 만났는데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려 해도 변명할 말이 없고 은혜로 용서해 주기를 빌고자 해도 왕명이 지엄한지라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니 정리가 궁박하여 답답한 심사가 병이 됩니다.” 경종은 이후 이름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렸다. “내가 이상한 병이 있어 10여 년 이래로 조금도 회복될 기약이 없다(경종 1년 10월 10일).” “상(경종)이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에 싸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질병을 앓았고 해를 지낼수록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한 증상도 있었다. 곤담환, 우황육일산 등의 처방을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경종 4년 8월 2일).” 실록이 말하는 경종의 ‘이상한 병’, ‘형용하기 어려운 질병’은 과연 무엇일까? 경종이 복용한 약물 곤담환과 가미조중탕의 공통적 치료목표는 전간(癲癎), 즉 간질의 치료다.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 민진원이 쓴 ‘단암만록’에는 경종의 기행이 기록돼 있다. “숙종 승하 시 울지를 않고 까닭 없이 웃으며, 툭하면 오줌을 싸고 머리를 빗지 않아 머리카락에 때가 가득 끼어 있었다.” 많은 호사가들은 경종의 죽음을 두고 “건강한 경종을 상극의 음식인 게장과 생감으로 독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록을 살펴보면 경종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병과가 날짜 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어 근거 없는 음모설 임을 알 수 있다. “시평탕을 계속 복용하자 수라가 줄어들고 머리에 통증이 있었다(경종 4년 4월).” “밥맛이 거의 없고 변이 묽고 설사가 지속된다(경종 4년 8월 7일).” “침실에서 진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경종 4년 8월 10일).” 경종은 이날 이후 밥을 먹지 못해 약 복용을 중단했다가 사흘 후인 13일이 되어서야 재개한다. 일주일 후인 20일에 이르러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동변(어린아이 소변)을 복용하고 생강차를 마신 후 게장과 생감을 먹었는데, 이후 설사 증상이 심해졌다. 홍합탕으로 치료를 했지만 무위로 끝나고 결국 25일 경종은 세상을 떠났다. 게장과 생감, 두 상극 음식을 이용한 ‘경종 독살설’은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의 죽음은 어머니의 충격적 죽음이 몸과 마음에 새겨 놓은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 심신의 근간이 완성되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존재는 어쩌면 한 사람의 건강한 삶과 수명을 결정짓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휴가철 고속도로에서 우리 귀를 즐겁게 해주던 노래들이 있었죠. 손바닥 절반만 한 카세트테이프 하나면 ‘뽕∼짝∼뽕∼짝∼’ 멜로디에 어깨춤 들썩거리며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달렸는데요. 요새는 이렇게 손가락만 한 USB로 깜찍하게 바뀌었네요. 비록 저장장치는 변했지만 선곡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강원 인제군 내린천휴게소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휴가철 고속도로에서 우리 귀를 즐겁게 해주던 노래들이 있었죠. 손바닥 절반만한 카세트 테이프 하나면 ‘뽕~짝~뽕~짝~’ 멜로디에 어깨춤 들썩거리며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달렸는데요. 요새는 이렇게 손가락만한 USB로 깜찍하게 바꼈네요. 비록 저장장치는 변했지만 선곡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강원 인제 내린천휴게소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승리, 정준영 등 한류를 이끌던 스타들의 몰락이 안타깝다. 아직은 젊은, 한창 피어나던 이들이 왜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든 행동들을 했을까.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에 한숨짓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윤리’를 가르쳤는지 의문이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좋은 직업은 ‘생계유지, 사회적 기여, 자아실현’이란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책임감, 도덕성, 사명감 등이 요구되는데, 그런 마음이나 사회적 규범을 직업윤리라고 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료인의 윤리강령이듯 직업마다 각각의 규범이 있다. 윤리란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다.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어떻게 돈을 버냐는 인식도 크다. 하지만 이제 직업윤리 준수여부는 개인을 떠나 조직의 흥망과도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 승리, 정준영 파문으로 이들의 소속사가 휘청거릴 정도다. 회사의 위험관리에 절대적 요인이 된 셈이다. 같은 업계에서도 회사 대표가 어린 아이돌들과 자주 식사하면서 예절이나 생활태도 등을 가르친다고 소문난 회사는 탈선하는 케이스가 훨씬 드물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직업윤리 교육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체육계가 부조리 문제로 시끄러울 때 만났던 한 체육인이 그 원인을 ‘못 배운 탓’으로 돌려 놀란 기억이 있다. “운동하느라 거의 학교수업을 빼먹어 직업이 뭔지, 윤리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그러다보니 의리도 사라지고 오직 돈만 아는 분위기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비록 일부에 해당되고,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던 얘기였다.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면 직업윤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세계가 하나로, 빠르게 연결되는 사회인만큼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다. 인공지능(AI)이 장착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의 직업윤리가 잘못됐다면 미래 어떤 세상이 올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선진국마다 이공대 학생들에게 공학윤리 교육을 점점 더 강화하는 이유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를 검증할 때 정책적 능력보다 청렴성 등 공직윤리를 먼저 따지는 것도 그런 의미다. 공직윤리가 희박한 사람은 국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큰 탓이다. 특히 이 점은 우리의 중요한 전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직업의 역사를 다룬 ‘직업발달사’(김병숙)에서는 ‘고려사’와 ‘연려실기술’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직업윤리를 분석했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공직자들은 청렴결백, 바른 언행, 공평한 일처리, 준법, 청탁 배제, 인재 등용 능력 등이 주요 덕목이었다고 소개했다. 요즘 요구되는 공직 윤리와 조금도 다름없다. 직업윤리는 학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인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제자들에게 늘 “너희는 뛰어난 재능을 받았으니 세상을 위한 좋은 일에 써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승리, 정준영이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도 그랬을까.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칼바람 불던 지난 겨우내 잊은 적 없어요, 이 봄. 푸른 이파리 꼭 부여잡고 기다렸죠. 음, 조용히 맡아보아요. 짭짤한 제주 바닷바람 내음, 그 속에 스민 파릇한 청보리 향기. 여기서 한철 맘 놓고 노랗게 물들 작정이에요. 싱그러운 봄놀이 다 끝나고 지칠 때쯤 갈게요.그렇게 당신에게로 가서 나는. 도란도란 둘러 모인 저녁 식탁을 고소한 향기로 채우겠어요. ―제주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콘크리트 틈새 조그만 흙더미면 충분하지요. 푸른 초원에 기름진 옥토면 더 좋겠지만, 세상만사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요. 뿌리내린 곳이 여기인걸. 이 구석진 속에서도 빗물 머금고 햇살 받아내 꽃봉오리를 키울 겁니다. 그리고 불타는 정열의 샐비어를, 탐스러운 주홍빛 방울토마토를 기어코 당신 눈앞에 틔우고 말 겁니다.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살육의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헬멧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테러범은 뉴질랜드 이슬람사원에서 벌인 처참한 총격 장면을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에 중계했다. 대자연의 신비와 평화가 숨 쉬는 살아있는 천국. 이민자의 천국으로 여겨지던 뉴질랜드조차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후, 보다 민주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했다.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의 삶은 더 위태로운 모습으로 끈에 매달려 있는 처지가 됐다. 4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극장에서 100명 이상을 살해한 이슬람국가(IS) 테러범들은 미국 국가안보국(NSA)도 해킹이 어려운 슈어스폰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이 불가능한 다크웹으로 접선하고 지도부에서 명령을 하달 받았다. 그들은 신의 선물이었던 기술 도구들을 테러에 활용했다. 이번 뉴질랜드 테러범은 트위터와 온라인, 페이스북 등에 ‘반(反)이민 선언문’을 올리고 자신의 테러를 정당화하려 했다. 17분간의 살육 현장. 보통의 사람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 장면을 봤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편리하고 놀라운 기술의 도구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부정적 도구로 이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기술을 이용한 테러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벌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서로 더 연결되고 의존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투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지만 특정한 소수는 사회를 점점 불투명하게 만들고 이 기술로 권력을 장악해가고 있다. 매일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도구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시스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 누군가가 이 시스템에 침투해 조작할 수도 있고 왜곡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중재하는 삶을 살고,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이 공급하는 5개의 메인 뉴스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혼탁하게 한 것을 반성한다며 새로운 뉴스 제공방식을 제안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뉴스 알고리즘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는 모른다. 포털 시스템은 인간의 손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단적인 예로, 그것은 해킹이 될 수도 있고 컴퓨터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손이 개입하는 경우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첫 화면에서 마주하는 뉴스, 맛집 정보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실시간 검색어는 대중의 관심을 조작할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들의 인식 범위를 결정하기도 하고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포털이나 실시간 검색어는 책이나 영화, 병원, 학교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기술들이 가끔은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거대한 사회적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실제적인 동력은 기술이다.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진 정부나 테러리스트, 사적 이익을 위해 여론을 왜곡시키는 특정 세력이 개입해 기술을 작동시키고 운영하고 통제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파괴적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실시간으로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작가}

등 뒤에서 발걸음 재촉하듯 불어오면 힘껏 버텨라.인생의 속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 떠밀려 가지 말라.쓰러뜨릴 듯 정면에서 닥쳐오거든 그것 또한 버텨라.시련에 맞서 돌파한 자만이, 따스한 봄날을 누릴 것이다. ― 미국 유타 자이언캐니언에서사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기억하는가. 수줍은 실개천 유채밭 에둘러 흐르고, 새벽마다 실안개 산허리 감싸던 곳.아침이면 정겨운 동무들 까르르 구르는 소리, 해질녘 어머니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 길게 퍼지던. 이제는 가끔 꺼내는 지갑 속 주름진 사진으로, 눈 감으면 아득한 꿈속 화폭으로 남았지만.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어느 시인 노래한, 이제 닿을 수 없는 그곳이 우리에게는 있었지. ―중국 윈난성 유채꽃밭 뤄핑=신화 뉴시스·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파릇한 새싹 살포시 감아든 너의 손가락은 빛난다. 갓 움튼 생명 품은 초록빛처럼 참 부럽게도 빛난다.새벽녘 먼 하늘 동터 오듯, 얼었던 삼 월 대지 봄볕 스미듯, 너의 시간도 그렇게 찬란하게 밝아오겠다.짧은 세월 이리저리 헤매 온 나의 손은 주름졌다. 피었던 것들은 언젠간 모두 지는, 세월이 그러하구나.붉은 노을 죽을 힘 다해 세상 물들듯, 가을볕 품은 낙엽 온 산맥 뒤덮듯, 나 또한 그렇게 찬란히 늙어 가리라.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박경구 포스코건설 송도개발사업그룹 부장은 대리 시절이던 2005년 송도사업본부로 발령 났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송도에 가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생긴 땅인지도 몰랐다. 그가 맡은 일은 송도 관련 사업을 수주하고 공사를 발주하는 일이었다. 당시 포스코건설 본사는 서울 강남구에 있었다. 송도사업본부 직원 50여 명은 그해 인천 연수구 송도 개발 현장에 3층짜리 건물을 지어 거처를 옮겼다. 서른여섯 살의 박 대리도 개발 현장에 가느라 처음 송도 땅을 밟았다. 허허벌판에 펼쳐진 간척지. 현장 곳곳에 쌓인 흙더미. 해가 지면 불빛도 없어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곳. 멀리 일렁거리는 서해. 서류에서만 접했던 송도를 실제로 본 그는 아연실색했다. “여기에 도시를 만들겠다고? 대체 누가 와서 살아?”○ 모두가 거절한 프로젝트에 달려들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12일. 기자는 송도에 갔다. 매끄럽게 닦인 대로에 여기저기 높이 솟은 고층 빌딩과 5성급 호텔, 빽빽이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고급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센트럴파크. 고개를 돌려 보니 높이 305m의 포스코타워가 보였다. ‘송도의 랜드마크’가 된 포스코타워는 현재 잠실롯데월드타워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다. 여기에 포스코대우 본사가 있다. 근처에 있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은 평일 한낮에도 쇼핑과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불과 10여 년 전 이곳이 갯벌과 간척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문자 그대로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상전벽해의 현장이었다. 송도를 바꾼 포스코의 노력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용경 당시 포스코건설 송도사업본부장 부사장(68)은 전국의 사업지를 물색하다 영종도와 송도 인근을 찾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겪은 회사는 기존 건설사들과 경쟁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개발사업을 찾아보자고 결심한 뒤였다. ‘조 부사장이 송도에 다녀갔다’는 소문이 최기선 당시 인천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인천시는 송도 갯벌을 매립했지만 개발에 나서겠다는 건설사가 없어 발을 동동거리던 시절이다. 20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가 큰 부담이던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잇달아 인천시의 개발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최 시장이 조 부사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때가 2001년 2월 11일이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번에 날짜까지 기억했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최 시장이 말했다. “송도를 좀 맡아 줄 수 없겠소?” 조 전 부사장은 인근 산에 올라가 송도를 내려다보며 최 시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포스코는 작은 어촌 광양을 매립해 지금의 광양제철소를 지은 저력이 있다.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유상부 당시 포스코 회장, 고학봉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은 “덩치가 너무 크다”며 우려했지만 조 전 부사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럼 해봅시다”라고 결정했다. 포스코건설은 해외 투자기업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송도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대상은 ‘송도의 심장’ 격으로 571만9000m²(약 173만 평)에 이르는 국제업무단지(IBD)로 총 사업비가 24조 원에 달했다. 포스코대우 등 다른 계열사들은 송도로 본사를 옮기는 등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며 그룹 전체가 달려들었다. ○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포스코 도시 땅을 파기 시작했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7년 국내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드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박 부장은 “미수금은 쌓이고 미분양이 속출하던 때라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포스코건설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뤘던 미국 투자기업 게일인터내셔널이 등을 돌렸다. 2016년부터 두 회사는 자금 조달과 투자방식을 두고 이견을 보였는데 이듬해 아파트 분양을 두고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게일과 결별하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 투자전문회사인 ACPG, TA가 참여하면서 송도 개발사업은 다시 진행 중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는 사이 송도는 빠르게 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2003년만 해도 2274명에 불과했던 송도 인구는 지난해 13만6231명으로 약 60배 늘었다. 학교 하나 없던 불모지는 명문 초중고교와 국제학교 등 43개 학교를 갖춘 교육도시가 됐다. 2010년부터 송도에 살고 있는 신승도 포스코 철강솔루션마케팅실 부리더는 “예전에는 밥 먹을 식당을 찾아서 1km를 넘게 걸어가야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완벽한 도시로 변했다”고 말했다. 도시의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기업과 오크우드프라이머호텔 등 고급 호텔, 각종 문화시설도 송도에 둥지를 틀었다. 미국 CNN방송은 2014년 송도를 ‘내일의 도시’라고 소개했다. 박 부장은 “현재 개발은 전체 면적의 약 70%가 진행됐다. 앞으로 개발 완료까지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은 송도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상품화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주거와 업무 교육 문화 의료 시설 등이 한곳에 모인 콤팩트 스마트시티를 건설한 경험을 토대로 해외의 도시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와 인천의 ‘동반성장’ ▼주니어 공학교실 운영, 포스코 직원이 ‘쌤’으로소외아동 지원 활동도 포스코는 송도개발사업 외에도 인천지역에서 동반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역 개발사업을 통해 기업 이윤을 창출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과 기업이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2004년부터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주니어 공학교실을 2015년부터 송도에서도 시작했다. 포스코에 다니는 엔지니어 등이 송도에 있는 초등학교에 찾아가 초등생들에게 ‘철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포스코는 한국공학한림원과 손잡고 공학교재·교구도 자체 개발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포스코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교실을 꾸렸고 송일초 송명초 등 7개교에서 학생 832명이 이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으로 활동한 포스코 직원만 86명이다. 포스코는 2013년 200억 원을 출연해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안에 에너지 저감형 친환경 건축물인 포스코 그린빌딩도 지었다. 태양광을 사용하는 이 빌딩에는 106가지 친환경 기술과 포스코의 고유 기술이 적용됐다. 당시 연세대와 포스코 연구진은 설계와 시공, 운영 등 모든 과정에서 협업하며 빌딩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2015년 송도로 사옥을 이전한 포스코대우는 매년 설이나 추석 등 명절마다 지역의 ‘키다리 아저씨’로 변신하고 있다. 식료품 생활용품으로 구성된 선물상자를 만들어 인천 연수구 내 저소득가정 아동들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2500여 명의 아동이 선물을 받았다. 포스코건설도 아동복지 분야에서 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인천 지역아동센터 지원 원앤원’은 포스코건설 내 37개 부서가 인천지역 아동센터 37곳과 일대일로 자매결연을 하는 활동이다. 회사 임직원들이 매달 센터에 찾아가 도배나 장판 교체, 시설 개·보수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지도, 독서지도 등 멘토링 활동까지 한다. 아동센터 대부분이 재정적으로 열악해 포스코건설의 자매결연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천=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