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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의 우선순위를 거론하며 “우리에게는 역시 중국보다는 미국”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인근의 한 식당에서 가진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서 (중국과 가까워지는 한국을) 의구심을 갖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며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 대표는 친중(親中) 성향 아니냐’는 워싱턴 일각의 시각을 의식한 언급”이라고 평가했다. 한일 관계 관련 발언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이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후 10시경 수행기자단 버스에 예고 없이 올라탄 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같이 갈 수는 없는지,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한국이 마음을 풀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미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에서도 “일본과의 치욕적인 역사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는 국민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우드로윌슨센터 연설에서 “그동안의 전략적 인내를 넘어 창의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가 논의해야 한다”며 기존 6자회담을 넘어설 수 있는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정해진 일정을 마친 뒤 술자리 등을 피하며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내가 머리가 나빠 제대로 준비해 나간다고 새벽 2시까지 자료를 봤다”며 “그런데도 오늘 연설에서 상당히 헤맸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워싱턴=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이승헌 특파원}
세계에서 가장 바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버지의 나라’인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해 이 나라 국민 수천 명 앞에서 “케냐가 기로에 서 있지만, 젊은이들은 (발전의) 한계가 없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26일 케냐 방문을 마무리한 오바마 대통령은 4500여 명의 청중이 모인 나이로비의 카사라니 스포츠 경기장에서 “케냐가 성장하고 있고 여러분의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어 “케냐가 성공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며 “남녀차별과 부패, 부족 간 다툼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청중은 “오바마, 오바마”를 연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케냐를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한 명의 친구로서는 케냐가 발전하길 바란다”며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친밀감을 보였다. 이날 연설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복 여동생인 아우마 오바마는 “내 형제이자 여러분의 형제이고 우리의 아들”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해 첫 일정으로 아버지 가족들과 만났다. 의붓할머니인 세라 오바마 등 친척 30여 명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백악관과 케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아버지 고향 코겔로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의붓할머니는 오바마 대통령이 열 살 때 사망한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만큼 출신 부족인 루오족 전통에 따라 무덤을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그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면 양복을 벗고 아버지의 고향으로 다시 오겠다”고 밝혔다. 퇴임 후 인도주의 활동을 케냐에서 이어갈 생각을 내비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마친 직후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에티오피아로 이동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대선의 공화당 경선 선두 주자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최근 유세 중 일자리 만들기를 강조하며 “한국은 미쳤다(crazy)”고 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트럼프는 21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선시티에서 열린 유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에 수십억 달러를 벌면서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 군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한 뒤 “한국도 그렇다. 그들은 (미국에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 간다. 한국은 미쳤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가인 트럼프가 한미 안보 동맹을 잘 모르고 내놓은 발언인 것임에 분명하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분담금으로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주장을 그저 광기 어린 ‘독설 퍼레이드’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단적인 예로 올해 발효 3주년을 맞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선 한미 무역 역조를 거론하며 “미국이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는 250억 달러(약 29조3000억 원)로 FTA 발효 전인 2011년보다 115%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 수출은 2011년보다 9% 증가한 반면 수입은 13% 늘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이슈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을 앞두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협정에 필수적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과 TPP를 추진하면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최근엔 지한파로 분류되는 공화당 로버트 돌드 하원의원조차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비공개 서한을 보내 한미 기업 간 공정 경쟁을 위해 미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돌드 의원은 지난달 26일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한국 대기업들에만 유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어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렵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공정위는 올 4월 미국의 간판 정보기술(IT) 기업인 오러클, 퀄컴 등이 ‘제품 끼워 팔기’를 해왔다며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가 히스패닉 비하 발언 등에도 공화당 경선 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 백인 주류 계층이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건드리며 보수층에 대리 만족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미쳤다” 발언이 미국에선 반론에 부닥치지 않은 것도 이런 정서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 “중국과 인도로부터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 ‘일자리 창출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하며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트럼프의 발언과 미국의 분위기를 접하며 한미 관계가 마냥 ‘한줄기 빛도 샐 틈이 없는 굳건한 동맹’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어디서든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5월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발생한 ‘탄저균 배달사고’와 관련해 한미합동실무단이 조만간 주한미군기지에 대한 현장조사에 들어간다. 11일 구성된 한미합동실무단은 현장조사를 위한 사전 준비를 진행해 왔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은 24일 미 국방부가 발표한 탄저균 배달사고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현장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탄저균 샘플 취급 및 처리 절차를 지켰는지, 탄저균 포자가 남아 있는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7일 미 화생방어합동사업단장으로부터 미국의 조사 결과에 관한 사전 설명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주한미군 오산 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inexcusable mistake)였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살아 있는 탄저균의 우연한 배달: 검토위원회 보고서’라는 제목의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미국과 전 세계 7개국의 86개 실험실에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배달한 사실이 있고 이는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탄저균이 살아 있는 상태로 배달된 배경과 책임 소재는 밝히지 않았다. 프랭크 켄들 미 국방부 조달·군수담당 차관은 이날 보고서를 공개한 뒤 가진 브리핑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주한미군 시설 중 오산 공군기지 연구실에만 실험용으로 보내졌고 다른 주한미군 시설에는 배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백 차관은 “조사 대상을 오산 기지에만 국한하지 않고 과거 다른 주한미군 기지에도 맹독성 세균이 반입됐다는 의혹까지 포함해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도 “주한미군 측에서 탄저균 배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이번 현장조사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한미 합동실무단이 한미 생물 방어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협의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미국 연방 상·하원 의원 20여 명이 22일(현지 시간) 일본 정부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이들은 또 위안부 이야기를 일본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라고 요구했다.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의원(민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사진),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민주) 등 지한파 의원들은 이날 오후 워싱턴 하이엇 리젠시 호텔에서 열린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KAGC)’에 참석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 왜곡 시도를 비판했다. 아울러 한인들의 영향력 확대 방안도 논의했다. 미주 지역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모임인 KAGC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로이스 위원장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 정부 관리들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위안부 얘기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혼다 의원도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공개 촉구는 아베 총리가 다음 달 종전 70주년에 맞춰 담화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선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인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안드레 카슨 하원의원(민주)은 “한인들이 (투표율 제고를 통해) 정치력을 결집해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계 시장과 주지사, 더 나아가 상·하원 의원 선출 문제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2016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주자 중 한 명이자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69)가 수차례의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출마 선언 후 내놓은 히스패닉 비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금세 잊혀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더니 급기야 공화당 간판주자로 평가되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제치고 선두로 부상했다. 21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16∼19일·1002명 대상)에 따르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24%의 지지율을 얻어 2위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13%), 3위 부시 전 주지사(12%)를 크게 앞섰다. 트럼프의 인기가 고공행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진보 정책에 염증을 느낀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민법 개혁,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 케어) 등 오바마 정부의 주요 이슈가 백인 주류 계층에 불리한 정책이라는 점을 파고들고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트럼프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건드렸고, 백인 상당수가 익명이 보장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특징은 히스패닉에 대한 막말 논란에서 보듯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별명이 ‘햄릿’일 정도로 정책을 결정할 때 장고(長考)를 거듭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트럼프는 각종 인터뷰와 유세에서 거침없는 언변을 보여주고 있고, 내용보다는 그런 스타일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일부 언론은 그의 행태를 빗대 ‘골든(돈 많은) 카우보이’로 부를 정도다. 그런 트럼프도 최근 고비를 맞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5년간 포로로 붙잡혔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전쟁 영웅이 아니다”라고 비하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공화당 주자인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20일 “트럼프는 암(癌)적 존재”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주자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아예 대놓고 “트럼프는 멍청이(jackass)”라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21일 “바보(idiot) 같은 그레이엄이 몇 년 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서 나에 대해 잘 좀 말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레이엄 의원의 휴대전화번호를 유세장에서 공개해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선시티에서 열린 유세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도 막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에 수십억 달러를 벌면서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 군대가 해결해줘야 한다”며 “한국도 그렇다. 그들은 (미국에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간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한국은 미쳤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트럼프가 지지율 상승세를 계속 유지할지는 ‘매케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미국인에게 ‘전쟁영웅’으로 존경받는 매케인 의원에게 인신공격성 비판을 가한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이유종 기자}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 논란에 대한 여야 해법이 충돌하면서 정보기관의 권한이 강한 미국에선 이들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같은 미국의 정보기관은 강력한 권한만큼이나 누적된 문제가 적지 않지만 정보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주로 의회 차원의 선별적 조사와 입법 활동을 통한 견제가 이뤄진 게 특징이다. 2013년 6월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NSA가 민간인까지 무차별 감청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직후 미국 정치권은 지금 한국처럼 백가쟁명식 해법이 속출했다. 2001년 9·11테러 후 제정된 ‘애국법’을 기초로 한 감청인 만큼 감청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부터 NSA 권한을 대폭 축소하거나 연방수사국(FBI) 등 다른 정보기관으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은 NSA의 감청 범위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입법을 통해 정보기관의 기능은 인정하되 권한은 제한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마련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민주당은 NSA의 제한적 감청과 자료 수집만 가능케 한 ‘미국 자유법’을 마련했다. 공화당은 “정보기관의 대테러 활동에 차질이 있다”며 1년 넘게 제정을 반대했지만 결국 하원을 거쳐 올해 6월 상원을 통과했다. 의회 차원의 비공개 조사 활동 후 보고서를 발간해 추후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는 노력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CIA의 고문 실태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CIA가 알카에다 테러 용의자 2명에게 고문을 가했고, 이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파괴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의회 상원 정보위원회는 곧바로 CIA에 관련 자료의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직후 CIA의 해외 비밀수용소 폐쇄와 고문 금지를 규정한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이에 힘입어 상원 정보위는 그해 3월 CIA 고문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했다. CIA는 한동안 자료 공개에 협조하지 않았으나 여론전에 나선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과의 힘겨루기 끝에 제한적으로 자료를 공개했고, 결국 지난해 12월 CIA가 테러범 색출을 이유로 자행한 여러 고문이 테러 방지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의 보고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일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을 지지하며 이란의 비핵화 의무 이행에 따라 유엔의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이번 협상에 반대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을 설득하고 핵 협상 의회 통과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안보리는 결의안을 통해 “(관련국들이)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합의안을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의 핵 활동을 확인하고 감시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이행해야 하며 이란은 IAEA에 완전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보리는 IAEA 조사 결과 이란의 핵 활동이 평화적이라는 점이 확인된 뒤 이르면 내년 초 현재 7개 결의안에 규정된 대이란 금융·경제 제재를 종료할 예정이다. 다만 재래식 무기와 탄도미사일 금수 조치는 각각 5년과 8년 동안, 이란이 협정에 따른 의무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자동으로 복원하는 ‘스냅백’ 조항은 15년 동안 유지된다. 중동 방문에 나선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19일 이스라엘로 가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군사 공격 없이 이란의 핵 보유를 막는 것이 이번 협상의 초점”이라며 이란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옵션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터 장관은 이번 협상 타결 후 서방 측 협상 참여국인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의 고위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중동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다. 카터 장관은 2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을 접견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19일 이란 핵 협상안을 의회로 보내면서 반대파를 설득하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의회가 협상안을 부결하면 우리는 사찰도, 제재도, 협상 능력도 갖지 못하게 된다”며 “협상안 통과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의회를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워싱턴 인근 골프장에서 조 코트니, 에드 펄머터, 존 야무스 등 민주당 의원들과 골프 라운딩을 하고 협상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그가 의원들과 골프를 친 건 2011년 6월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라운딩을 한 후 처음이다. 이번 핵 협상 타결에 대해 찬반 진영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광고전을 벌이고 있다. 친이스라엘 로비단체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는 ‘핵 없는 이란을 위한 시민들(CNFI)’을 결성해 TV와 인터넷에서 이란 핵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규모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반면에 ‘전미이란계미국인협의회(NIAC)’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전쟁 대신 평화를 원하는 수천만 미국인의 목소리를 사장시킬 수는 없다”며 미 의회의 이란 핵 합의 승인을 압박하고 있다.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입’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히스패닉에 대한 독설로 여론의 주목을 끌며 공화당 대선 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가 이번에는 같은 당의 간판 중진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난하다 스스로 덫에 빠진 형국이다. 18일 미 아이오와 주 에임스에서 열린 보수단체 행사인 ‘패밀리 리더십 서밋’에서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매케인 의원을 “전쟁 영웅이 아니다”라고 비난한 것. 그는 “매케인이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 영웅이라는 것인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며 “아마도 그는 전쟁 영웅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많은 사람에게 매우 나쁜 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트남전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매케인 의원은 1967년 10월 북부 베트남에서 자신의 전투기가 격추당해 다리와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뒤 1973년 3월 석방되기 전까지 5년간 포로로 붙잡혔다. 모진 고문과 구타를 겪은 매케인은 아버지가 해군제독이 되자 북베트남 당국으로부터 조기 석방을 제안받았으나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며 먼저 잡힌 포로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했고, 이게 알려지면서 미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아 왔다. 민주당조차 전쟁 영웅으로 인정하는 매케인 의원을 트럼프가 공격하고 나선 것은 어느덧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히스패닉 이민자 이슈에 대해 매케인이 맹비난했기 때문이다. 매케인 의원은 트럼프가 11일 자신의 지역구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유세하던 중 또다시 히스패닉에 대해 “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자 “이번 유세가 내 마음을 매우 상하게 만들었다. 미치광이들을 흥분시켜 놓았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즉각 트위터에 글을 올려 “매케인은 내년 상원의원 경선에서 패배해야 한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꼴찌로 졸업한 멍청이”라고 받아쳤다. 워싱턴 정가는 대체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의 상승세를 꺾어야 하는 다른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한목소리로 트럼프 때리기에 나섰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비방 공격은 이제 그만”이라고 트위터에 올렸고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매케인 의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대선 후보 경쟁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매케인 의원의 상원 동료였고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존 케리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 “매케인을 붙잡은 이들은 그의 뼈를 부러뜨렸지만 그의 정신은 꺾지 못했다. 매케인은 영웅”이라며 트럼프를 비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의 역사적인 핵협상이 타결된 지 2시간여 뒤인 14일(현지 시간) 오전 5시경 기자의 휴대전화에 e메일이 왔다는 표시가 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전 7시 핵협상 타결과 관련해 생방송으로 긴급 성명을 발표한다는 백악관 대변인실의 e메일이었다. ‘백악관 사람들은 잠도 없나…’라는 생각도 잠시, 오바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부통령과 CNN 등으로 생중계되는 성명 발표를 위해 백악관 내 회견장에 섰다.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은 푸석했고, 바이든 부통령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협상 내용을 보고받느라 거의 잠을 못 잔 듯했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핵협상 타결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못하게 됐다”며 미 국민들에게 협상 내용과 의미를 설명했다. 중동 정책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외교 이슈에 대해 대통령이 지체 없이 ‘대국민 보고’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 발표 직후 뉴욕타임스 간판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과 인터뷰를 하더니 15일에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협상 타결에 대해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난상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역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선 일부 기자들이 공세적 질문을 퍼부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핵협상으로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당신들도 그 정도는 알지 않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란 핵협상 타결 후 오바마 대통령이 이틀 사이 보여준 새벽 성명 발표, 프리드먼 인터뷰, 기자회견을 보면서 국민들이 주요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투명하게 접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새삼 절감했다. 대통령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언어로 가급적 빨리,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적어도 ‘대통령 의중이 뭘까’를 놓고 소모적인 추측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라는 국가적 이슈가 터진 후 뚜렷한 메시지를 일찍 내놓지 않아 사회적 혼란이 가중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미 정치 문화를 수평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기자회견 등을 통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전달 횟수는 턱없이 적은 편이다. 올해 들어 제대로 된 회견은 1월 신년 기자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민들은 ‘요즘 박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과 갈증을 지우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회견식의 대국민 메시지 전달이 불편하다면 다른 형식을 찾아보면 어떨까. 오바마 대통령이 지금도 하고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애용했던 주례 담화가 참고할 만하다. 양방향 소통이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주례 담화라고 꼭 거창한 국정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넷과 라디오로 전달하는 주례 담화에서 독립기념일(7월 4일)을 맞아 미국의 건국 정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난해 추수감사절엔 가족의 가치를 나누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요즘 매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의지를 전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배신의 정치’와 정치권 개혁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정리해 더 공론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전부터 메시지의 양과 빈도를 아꼈고, 희소성 있는 메시지의 폭발력을 잘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이런 신비주의형 메시지 관리를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가는 것은 효율적인 국정 운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기 후반기를 맞는 박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나름의 대국민 소통 방식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2016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주자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히스패닉 비하 발언에도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USA투데이와 서퍽대가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는 17%의 지지율을 얻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14%),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8%) 등을 누르고 공화당 대선 주자 중 1위였다.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가 히스패닉 비하 발언으로 인한 일시적인 ‘노이즈 마케팅’을 넘어서며 공화당 주력 지지층인 백인 주류 사회에 어필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역대 대선 주자 중 가장 성공한 사업가인 트럼프의 기업적 마케팅 능력이 정치에 접목됐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출마 선언 후 히스패닉 비하 발언을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발언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백인 주류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히스패닉 사회에 대한 불만을 건드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선거 유세에서 “멕시코가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그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이나 범죄를 미국으로 가져오고 있다” 등 막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출마 선언 후 드러내놓고 자신의 브랜드를 강조하는 것도 지지율 상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출마 선언 후 주요 인터뷰와 미팅을 대부분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건물인 트럼프타워에서 진행할 정도로 대선 행보를 철저히 자신의 브랜드에 연결시키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연방정부에 제출한 대선 후보자 재산공개 명세에서 자신의 재산을 100억 달러(약 11조5000억 원)로 신고했다. 이는 역대 미국 대선 후보 중 가장 많은 재산 신고액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상 타결 후 국내외 반대론자를 대상으로 한 설득전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인 14일 오전 7시 백악관에서 긴급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뉴욕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이자 중동 전문가인 토머스 프리드먼과 인터뷰를 갖고 이번 협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번 협상으로 이란 정권 내부의 변화 가능성 여부가 아니라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에 반대해온 이스라엘과,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반목해온 수니파 원조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설득전을 벌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월 미국 의회에서 “이란이 핵무기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잘못된 협상보다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한 데 이어 타결 직후에는 “세계에 누를 끼칠 역사적 실수를 저질렀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런 네타냐후 총리에게 14일 오전 전화를 걸어 “핵으로 무장한 이란이라는 망령이 퇴치될 것이며 이번 합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가안보를 위한 결실”이라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도 통화를 하고 “미국이 중동의 동반자들과 계속 협력하고 공동 역량을 강화해 지역 정세에 불안을 야기하는 이란의 활동에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을 직접 중동에 보내 우방 달래기에 나설 계획이다. 카터 장관의 행선지는 아직 이스라엘까지만 공개됐지만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15일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협상의 의미를 미 국민에게 설명하며 대여론전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이란 핵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은 ‘의회 승인’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공화당은 이번 합의안이 이란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해준 결과가 됐다며 앞으로 의회 심의 과정에서 이를 부결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상원 공화당을 이끄는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켄터키 주)도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의회 통과 과정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 언론들은 민주당 상원의원들도 친(親)이스라엘 성향 의원 14명이 합의안에 반대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의회는 앞으로 60일간의 검토 기간을 거쳐 이번 합의안을 승인 또는 불승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성명에서 “의회가 합의안을 반대할 경우 불승인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상원과 하원은 다시 각각 3분의 2(상원 67표, 하원 290표)의 찬성을 얻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어 백악관과 의회의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당신에겐 묵비권이 있습니다.” “나도 압니다. 변호사니까요.” 4월 30일 미국 워싱턴 고등법원 재판장에서 토머스 모틀리 판사가 불법 노숙 혐의를 받은 알프레드 호스텔(68) 씨에게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자 대뜸 이런 답이 돌아왔다. 포스텔 씨는 “하버드 로스쿨을 1979년에 졸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모틀리 판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당신을 압니다. 나도 그해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으니까요”라고 말한 뒤 이 ‘동기동창’에게 2개월 간 구치소에 머물 것을 선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구치소에서 나온 포스텔 씨가 다시 워싱턴 길거리 생활을 시작했다며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하버드 출신 노숙자’의 기구한 인생을 14일 소개했다. 흑인인 포스텔 씨는 집안이 넉넉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공부에 재능을 보여 워싱턴 스트레이어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고 이어 매릴랜드대에서 경제학,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학위만 법학, 경제학, 회계학 등 3개를 가진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손꼽히는 학생으로 통했다. 동기 중에는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많았지만 포스텔 씨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고 동기생 마빈 배그웰 씨가 말했다. 그는 하버드 졸업 직후인 1980년 ‘쇼 피트맨 포츠 앤 트로브리지’라는 유명 로펌에 변호사로 취직했다. 당시 그 로펌의 유일한 흑인 변호사였던 그는 공인회계사 경력을 활용해 세무 관련 업무를 다뤘고 당시로는 거액인 연봉 5만 달러를 받았다. 그는 주말에는 워싱턴 포토맥강에서 개인 요트를 탈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40대 초반 분명치 않은 이유로 로펌에서 쫓겨났고 그 충격으로 모든 것을 잃으며 나락에 빠졌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몇 시간을 방황하기 일쑤였고 결국 지금의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며 길거리를 전전하게 됐다. 노숙자들의 정신질환 치료 기관인 ‘그린 도어’의 리처드 드보 실장은 “변호사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게 됐고 결국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며 성공만을 향해 내달리는 미 상류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향후 한미 및 한중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미 의회에서 나왔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12일(현지 시간) 공개한 2015년 연례 한미 관계 보고서에서 “한국이 독자로 사드 시스템을 구매할 수 있는지와 사드가 북한 미사일 대처에 효율적인지, 그리고 사드를 어느 정도 배치할 것인지에 우려를 갖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군축·검증·이행 차관보 등 정부 관계자들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미 의회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사드 배치를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모두 서로 타협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앞으로 몇 달간 한일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당초 지난달로 잡혔던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 직전인 6월 11일 작성됐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 의회 전문가들이 한미 주요 이슈를 어떻게 보는지 엿볼 수 있는 보고서”라고 평가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헤이 조지.” “헬로 빌.” 9일 오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기념관에서 서로를 이렇게 부르며 두 전직 대통령이 나타나자 객석에선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 리더십 연구(PLS·Presidential Leadership Scholars)’ 프로그램의 1기 졸업식장에 빌 클린턴(42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43대)이 나란히 참석한 것이다. PLS는 미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이 주관하는 대통령 리더십 연구 프로그램. 여기에는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와 린든 존슨 전 대통령 기념관도 참여했다. 클린턴, 부시 전 대통령은 동갑내기(1946년생)로 퇴임 후에도 오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 둘이 강사로 나선 이날 강의에는 올 2월부터 4곳에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분야에서 리더십을 연구한 1기 수강생 60명이 경청했다. 대통령 리더십의 특징에 대해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전쟁을 치르는데 수많은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며 “내가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를 빨리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고 이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세계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 정부 시스템에서는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리더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은 차일피일 미뤄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고도의 종합적 상황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테러조직에 대한 폭격을 고민하는데 이를 ‘오늘 결정할까, 내일 결정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데 지나고 보니 오늘 결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이 70%이면 나중에 결정해 해결 확률을 100%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대통령의 결정은 시간 싸움”이라고 말했다. 특히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적 타협과 대화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 명 모두 재임 시절 백악관에 야당 정치인을 자주 불렀던 것으로 유명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손하고 정직하고 사려 깊게 다가가면 누구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서 정치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기보다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정치적 인내와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대화와 경청을 통해 정치적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재임 기간 내가 속한 공화당과 일하는 게 편했지만 동시에 가장 터놓고 대화했던 사람 중 한 명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인) 민주당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2016년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간의 대결이 성사될지도 화제에 올랐지만 두 명 모두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나는 대선 국면에서 누구의 대리인이 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누가 당선되는 것보다는 미국인들이 내년 대선과 관련해 무엇을 결정할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되는 시퀘스터(예산 자동 삭감)에 따라 현재 49만 명인 미국 육군 병력을 2년 안에 4만 명 감축한다고 미 육군성이 9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육군성은 또 시퀘스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2019년에 추가로 3만 명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지프 앤더슨 육군참모차장은 “예산 제약으로 ‘토털 아미(현역과 예비역, 주 방위군을 포함하는 육군 전체)’를 감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통제법에 따라 실시되는 시퀘스터는 향후 10년간 미 국방 예산의 증가율을 연 최대 2%로 제한하고 있다. 계획대로 7만 명이 감축되면 미 육군병력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가장 적은 규모인 42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미국 내 기지와 국외 주둔 기지를 따지지 않고 포괄적으로 병력 감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의회 전문지인 ‘더힐’은 이와 관련해 해외의 경우 이탈리아와 독일, 한국 주둔 미군 규모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육군성 공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주한미군 병력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지만 시퀘스터에 따라 육군 병력이 42만 명으로 줄어들면 한국 주둔 병력 규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그리스 정부가 새로운 구제금융 협상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됐던 7일(현지 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회의에 새로운 안을 제출하지 않고 하루 뒤인 8일 제출하겠다는 지연 전술로 다시 유럽연합(EU)의 의표를 찔렀다.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신임 그리스 재무장관은 문서 형태의 제안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오후 열린 유로존 긴급정상회의에서 그에 관한 연설을 펼쳤지만 구체적 제안은 8일 서류 형태로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CNN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의 연기(delay) 전략으로 풀이된다”며 “그리스 사태를 지켜보는 유럽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30%의 채무탕감(헤어컷)과 만기 20년 연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고스 스타타키스 그리스 경제장관은 이와 관련해 전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정상회의에 전달할 새 제안에는 채무 탕감 방안이 담길 것”이라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30%의 채무 탕감을 요청하는 방안은 우리 제안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치프라스 총리의 새 협상안이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채권단의 제안과 거의 같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리스 정부는 채무 탕감을 관철하기 위해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6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 궁에서 회담을 하고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협상 재개 여부는 치프라스 총리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밀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7일 유로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채권단이 거부하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사임시키고, 차칼로토스 전 외교차관을 새 재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 독일의 강경 노선, 유럽 분열시켜 그리스는 당장 10일 20억 유로의 단기 국채 상환 만기를 맞고, 2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 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노선을 견지하면서 사태 악화를 막으려는 다른 유럽 채권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 “독일이 유럽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와 앞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에서도 독일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북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의 새 협상안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회의가 난항을 겪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회의 전 “그리스 국민의 삶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리스에서 지급 불능 사태가 임박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반면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는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의 결정적인 해법이 나올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유럽의회 연설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막아야 한다”며 “EU 내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내 경험에 비추어 그것은 잘못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쟁점은 그리스의 채무 탕감 문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그리스 정부의 총부채 규모는 3173억 유로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77%에 이른다. 이에 따라 그리스가 요구하는 채무 탕감 규모인 총채무의 30%는 951억 유로가량 된다. 이는 IMF가 최근 보고서에서 예로 제시한 부채 탕감 규모 530억 유로(약 66조 원)의 2배에 가깝다.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그리스에 채무 탕감을 해 준다면 단일 통화동맹인 유로존은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불가론을 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날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금기가 아니다”며 채무 재조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 그리스의 2대 채권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과 긴급 전화 통화를 하고 “그리스가 계속 유로존에 머문 상태에서 재정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은행 자본 통제 10일까지 연장 당초 7일부터 정상화될 예정이던 그리스의 은행 영업은 자금 부족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ECB가 6일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그리스가 요청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 증액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의 자본 통제 조치는 10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보도(로이터통신)가 나온다. 시민들은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반대’를 표시한 국민투표가 끝난 후 이틀이 지난 7일에도 은행 영업이 정상화되지 않자 술렁대는 분위기였다. 연금 생활자인 람브로스 씨(65)는 “은행 현금도, 슈퍼마켓의 물품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아테네=전승훈 raphy@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사진)이 4일 독립기념일 행사장에서 기자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로프까지 친 ‘사건’이 계속 현지 언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워싱턴 정가에선 그의 고질적인 ‘언론 기피증’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이 당초 예상보다 이른 7일 CNN과 4월 출마 선언 후 첫 언론 인터뷰를 가진 것도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최근 상승세를 꺾으려는 것과 함께 언론 기피자라는 인식을 깨야 내년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클린턴 전 장관의 언론 기피증은 1993년 백악관 안주인이 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78년 아칸소 주지사를 지낼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특히 백악관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을 겪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때문에 클린턴 진영은 이번 대선을 준비하면서 언론과의 관계 회복에 신경을 쏟았다. 선거대책위원장인 존 포데스타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 3월 선거 캠프에 합류한 뒤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기자들을 워싱턴 자택에 초청해 손수 스파게티를 만들어주며 “이젠 오해를 풀자”고 한 것이라고 정치매체인 ‘더 힐’은 전했다. 선거 캠프에서 ‘브리핑’이란 제목을 달아 주요 이슈에 대해 설명하는 e메일을 언론에 뿌리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정작 클린턴 전 장관이 4월 출마 선언 때 아무 설명 없이 당초 언론에 고지한 것보다 몇 시간 늦게 이를 공표해 주요 방송의 생방송이 취소되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언론과의 관계가 다시 심상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클린턴 전 장관이 언론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CNN 인터뷰로는 부족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최근 확보한 정치적 자산을 임기 말까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가.” 지난달 3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는 뜬금없이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은 다시 말하면 현재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지지율을 어떻게 임기 말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뜻이었다. 현재 임기 7년 차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을 무색하게 하는 지지율 상승세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할 판이다. 30일 CNN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0%로 2013년 이후 2년 만에 처음 50% 선을 넘어섰다. 비결은 뭘까. 미국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은 ①국정 이슈들에 대한 ‘선택과 집중’ 능력 ②탁월한 대국민 소통 행보에서 해답을 찾는 분위기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무수히 많은 국정 어젠다 중 오바마케어(의료보험 개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서민경제 활성화 등 중산층을 겨냥한 민생 이슈인 ‘오바마 이슈’에 정치력을 총동원해 왔다. 지난주 연방대법원의 잇따른 판결로 오바마케어, 동성결혼 합법화 등이 승리를 거둔 것도 사실은 그 전부터 백악관이 오바마 이슈에 관심과 역량을 정조준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30일 회견에서 “현재 많은 국정의제들이 있지만 결국 보통 미국인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국정의 ‘북극성’ 같은 지침”이라며 “내 보좌진과 참모들은 모두 여기에 맞춰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당연히 대통령의 일정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테네시 주 내슈빌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최근 한 여성이 자신에게 보낸 오바마케어에 관한 편지를 소개하며 자연스레 시민들에게 오바마케어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러다 보니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등 오바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이슈는 여전하지만 여론의 관심은 이를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대국민 소통 행보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부인 미셸 여사는 1일 동영상을 통해 지난 40년간 백악관 안에 붙어 있던 ‘사진 촬영 금지’ 안내문을 직접 찢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백악관을 개방하고 격식을 파괴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은 백악관 내 이스트룸과 국빈만찬장 등을 둘러보며 링컨 전 대통령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마치 박물관을 관광하는 듯한 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관광객 리사 마리 씨는 “백악관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니 소풍 온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전날에는 백악관 앞뜰인 사우스론을 걸스카우트의 캠핑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 이슈에 집중하면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국민 접촉을 넓힌다면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여소여대 구도에서도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