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방탄소년단(BTS·사진)이 미국 NBC TV 프로그램인 ‘더 투나이트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다시 출연한다. BTS는 13, 14일(현지 시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9일 발표하는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에 오른 인기곡 ‘버터(Butter)’ 퍼포먼스를 각각 펼칠 예정이다. 앞서 BTS는 지난해 9월 29일부터 닷새간 이 프로그램이 특별 편성한 ‘BTS 위크’에 출연했다. BTS는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등에서 곡 ‘아이돌(IDOL)’과 ‘소우주’ 무대를 비롯해 여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BTS는 8일 이 프로그램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된 출연 예고 영상에서 “지미 팰런 쇼에 돌아온다. 꼭 시청해 달라”고 말했다. BTS의 리더 RM은 이날 공개된 아마존뮤직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인기의 비결이 무엇인가 물어보시는데 태풍의 눈 안에 있을 때는 알 수가 없는 것 같다”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친구들에게 ‘내 작품이 추리소설이야?’라고 물어볼 정도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윤고은 작가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그는 국내에서는 순문학 작가로 여겨진다. 그런 그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민음사)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1일(현지 시간) 수상하자 스스로도 의아해했던 것. 이 작품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여행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의 직원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순문학이지만 속도감 있는 문체로 범죄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선 추리소설이라고 평가받은 것 같다”며 “그동안 문학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써왔던 만큼 앞으로도 경계를 넘나들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작가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창비)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되며 순문학의 성과를 인정받은 이후 최근엔 추리, 스릴러 분야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 김영하 작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복복서가)으로 지난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추리문학상인 독일추리문학상을 받았다. 편혜영 작가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불구가 된 대학교수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홀’(문학과지성사)로 2018년 추리·스릴러·호러 작품에 수여하는 미국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선 순문학 작가의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해외에선 장르문학에 해당하는 상을 받은 셈이다. 장르성이 짙은 작품의 해외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종의 기원’(은행나무)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1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암살 청부 집단이 등장하는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문학동네)은 영국 미국 등 2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추리·스릴러 소설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언어권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해외 출판사가 직접 국내 작가들의 작품 중 추리·스릴러 성향이 강한 소설을 골라 번역 출간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예술성이나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순문학과 대중의 흥미를 중시하는 장르문학을 엄격히 구분하는 경향이 크다. 반면 해외에선 둘 사이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순문학 작가로 분류됐던 이들이 추리·스릴러 소설의 특성인 긴박감 넘치는 사건과 속도감 있는 문체를 차용해 작품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며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기보단 각각의 장점과 특성을 적절히 조합해 작품을 써내는 풍토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에서도 작품을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칸막이 치기보단 작품성을 기준으로 작품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밤의 여행자들’을 수출한 출판 에이전시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최근 해외 출판사들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성 짙은 한국 작품을 찾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한강의 작품처럼 문학적 성취에 방점을 둔 작품을 원하는 해외 수요도 있는 만큼 작품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 헤어지자. 솔직히 너 못생겼어.” 10대 여학생 소연은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남자친구가 평소 얼굴을 꾸미지 않는 소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 얼마 뒤 소연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외모를 가꾼 뒤 나타나자 남자친구는 다시 만나자며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이미 소연의 곁에는 외모는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해주는 새 남자친구가 있다. 소연이는 전 남자친구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소리친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해 만든 드라마 ‘여자의 변신은 무죄’의 내용이다. 2018년 출시된 제페토는 가상 캐릭터를 제공해 전 세계에서 2억 명이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자의…’는 제페토의 캐릭터를 활용해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배경음악과 자막 등을 추가해 만든 작품. 10대로 추정되는 이가 2019년 9월 유튜브에 올린 이 드라마는 최근 1년 새 입소문을 타며 54만 회나 재생됐다. 내용이 단순하고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만 10대의 관심사인 외모 스트레스를 다뤄 관심을 모았다. “뻔하고 유치한데 우리 이야기라 재밌다” “속이 시원하다” 등 공감형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처럼 제페토를 이용해 만든 드라마가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방황하던 청소년들이 우정을 쌓아가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진이 착해지는 과정’은 51만 회,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널 좋아한다면’은 16만 회 재생됐다. 현재 유튜브에는 수천 개의 제페토 드라마가 올라와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제페토가 제공하는 캐릭터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메타버스 세계를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재가공하고 있다”고 했다. 제페토 드라마는 대부분 MZ세대가 만들고 즐긴다. 학교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이 펼쳐지는 학원물이 대부분이다. 싸움하는 남학생, 외모 꾸미기에 빠진 여학생 등 주인공들은 MZ세대의 관심사나 호기심을 뚜렷하게 반영한다. 보통 드라마 한 편은 10분 내외로 짧지만 5회에 걸쳐 연재될 정도로 제법 긴 것도 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제작하고 싶어 하는 MZ세대는 온라인 카페에서 드라마 제작법을 공유한다. 여럿이 각자 역할을 나눠 대본을 쓰고 캐릭터를 만든 뒤 편집하며 함께 드라마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공동 창작인 셈이다. 제페토 드라마가 2000년대 유행한 인터넷 소설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대 중고교생들이 기존 작가가 쓴 무거운 주제의 소설 대신 또래의 일상을 다룬 인터넷 소설을 가볍게 즐기던 것처럼 영상에 익숙한 MZ세대가 제페토 드라마를 만들고 본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MZ세대는 완성도는 높지 않아도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콘텐츠를 더 잘 받아들인다”며 “영상을 편집하고 보는 일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제페토 드라마는 그들만의 취향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원, 투, 스리. (찰칵) 생큐!”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콘퍼런스센터. 사진작가 라미 현(본명 현효제·42)이 6·25전쟁 참전용사인 마셜 킬링스워스 미국 공군 일병의 손녀이자 주한 미8군 소속인 미란다 중령의 사진을 찍으며 외쳤다. 촬영이 끝나자 라미 현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경의를 표했다. 미란다 중령은 라미 현의 노트북 화면에 뜬 자신의 흑백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이날 라미 현은 전경련이 마련한 ‘한국전 참전국·참전용사 후손 초청 감사회’가 끝난 뒤 자청해서 후손 20명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일일이 액자에 담아 전달했다. 비용은 모두 라미 현이 부담했다. 자비 5억 원을 들여 6·25전쟁 참전용사 1500여 명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온 라미 현.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최근 에세이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마음의숲) 출간을 계기로 그를 인터뷰했지만(본보 6월 15일자 A23면)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 그를 다시 만났다. 방금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고 있는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2017년부터 4년에 걸쳐 미국, 영국 등 22개국을 다니며 6·25전쟁 참전용사 1500여 명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데 쓴 개인 돈이 약 5억 원이다. 특별한 사연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노력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 없었다. 경찰이셨는데 6·25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다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3년간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 어릴 땐 두 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전쟁 영화를 보다 나가서 우시더라.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했던 것 같다.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에 대해….” ―아버지가 참전용사 사진을 촬영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해하신다. 여전히 참전용사들이 대우를 못 받기 때문이다. 군인에겐 돈보단 존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군인을 ‘군바리’라고 낮춰 부르지 않나.” ―본인의 군 생활은 어땠나. “2001년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고 대전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조교로 있었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라고 생각할 만큼 군대가 싫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이 다 낭비라고 여겼었다(웃음).” ―사진은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한양대 인문학부를 다니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로 가 비주얼 아트를 공부했다. 멋진 그래픽을 만들고 싶어 유명한 비주얼 아트 디렉터에게 e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했다. 딱 한 줄 답변이 왔다. ‘넌 안 된다’고. 이유를 물으니 ‘넌 빛도 제대로 모르지 않냐’고 했다. 방법을 묻자 ‘흑백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비주얼 아트는 빛, 구도, 색이 중요한데 흑백사진은 빛과 구도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1년 동안 13만 장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 누구냐고 묻더라(웃음). 나 같은 애들에게 e메일을 하루 200통은 받는다며. 하지만 나처럼 실제 사진을 찍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종군기자인 태상호(미 국무부 외신 기자단 소속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취재) 형을 알게 됐다. 형이 ‘너 비주얼 아트 재밌냐’고 묻기에 ‘재밌다’고 하니까 사진을 권하며 한마디 했다. ‘너 사진 찍는 거 보면 미친 사람 같다’고. 바로 다음 날 사진과로 전과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종군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미국 영주권이 없으면 미군과 다닐 수 없어 생각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3년 육군 홍보 영상을 찍었던데. “육군에서 요청이 왔다. 보통 군 홍보 영상은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총 쏘는 장면만 나온다. 나는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60명 넘는 군인들을 무작위로 인터뷰하고 그걸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재밌었다.” ―반응이 어땠나. “담당자가 상사에게 엄청 깨졌다고 했다. ‘군 생활 그만하고 싶지?’라며. 그런데 상사가 부인에게 영상을 보여줬더니 ‘최고의 영상’이라고 했다더라. 군인 눈에는 별로였는데 일반인 눈에는 달랐나 보다. 그 영상으로 상도 받았다.” ―육군 홍보 영상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군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한 부사관은 임신한 아내가 양수가 터졌는데 훈련 중이라 연락을 못 받아 급하게 휴대전화를 쓰려다 징계를 받았단다. 한 장교는 딸이 ‘아빠는 나랑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는 같이 산 적이 없다’고 쏘아붙여서 펑펑 울었단다. 이런 분위기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6·25 참전용사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 솔저’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프로젝트 솔저’는 어떻게 진행했나. “참전용사들이 한국에 올 때 찍기도 하고, 내가 외국에 가서 찍기도 했다.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는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서만 지냈다. 연로한 분들이 많고 일정이 달라 그분들이 된다고 할 때 바로 이동해야 해서 미국에서 대기한 거다. 한 달에 2명 정도 찍었다. 한번 촬영할 때 5, 6번 방문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참전용사들도 긴장이 풀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분들이 겪은 6·25전쟁을 듣는다.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사랑하는 전우를 잃은…. 잃어버린 역사를 배운다. 어느 참전용사는 88올림픽 때 엄청 울었다고 한다. 우뚝 선 서울을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희생한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고 했다. 사진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에세이를 쓴 것도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알아야 참전용사의 눈빛에 새겨진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다음 세대가 6·25전쟁을 기억한다.” ―왜 슬픈 전쟁을 다시 조명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했는데 감사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고마워하지 않고 군인을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일 거라 단정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극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예술 프로젝트다. 기록은 예술이 되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킨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참전용사의 눈과 자세엔 영웅의 모습이 배어 있다. 난 전쟁이나 전투 같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개인적인 사연을 들여다본다. 그게 내 작업 방식이다.” ―당신의 사진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면을 찍으니까…. 겉모습만 보면 몸이 탄탄한 젊은 군인이 멋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노병이 멋있다. 본질을 찍으려 한다.” ―많이 바쁜 것 같다. “올해 1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후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더니 요즘은 매일 뛰어다닐 정도로 정신없다. 전시도 연달아 있다.” ―후원이 늘지는 않았나. “최근 ‘프로젝트 솔저’ 모자를 판매하며 후원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입이 많지는 않다. 해외에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정도다. 지금까진 ‘한 걸음만 더 가자’며 스스로 독려했는데, 이젠 ‘두 걸음 더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려면 더 뛰어야 한다.”라미 현 사진작가△ 1979년 서울 출생△ 2000년 한양대 인문학부 입학△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사진과 학사 졸업△ 2014년 한양대 교육대학원 응용미술학과 석사 졸업△ 6·25 참전용사 사진 찍는 ‘프로젝트 솔저’ 기획△ 라미스튜디오 대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옛날에는 인세 못 받아도 그냥 어쩔 수 없이 넘어갔어요. 요즘 작가들이 목소리 내는 걸 응원합니다.” 한 중견 문인은 최근 장강명 임홍택 작가가 앞장서 제기한 인세 누락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출판사로부터 인세 일부를 받지 못한 작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그는 “과거엔 작가가 출판사 대표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며 “그동안 작가들이 찾지 못한 권리를 되찾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책은 최근 인세 누락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출판사와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관심에 목매는 사람을 뜻하는 ‘관종’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묵묵하게 일해서 인정받는 시대가 아닌 만큼 자신을 홍보하는 관종이 살아남는다는 것. 물론 자극적인 홍보가 아니라 올바르게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출판사도 온라인서점에 “우리 모두가 ‘관심 추종자’가 돼야 한다”는 홍보문구를 올렸다. 작가와 출판사 모두 자기 생각을 스스로 알리고 홍보하는 관종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셈이다. 일부 출판사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관종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한 출판사 대표는 “작가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출판사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받지 못한 인세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책은 출판사와 작가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신인을 키워준 출판사의 실수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물론 책을 만드는 건 작가 혼자의 일이 아니다.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오탈자를 잡아내고, 만듦새를 정돈하고, 외부에 홍보하는 출판사의 역할이 없다면 책은 독자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자신이 들인 노력을 강조하는 일은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당연한 일이라 출판사들을 이기적이라 비판하는 일은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쉬운 건 작가 단체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인세 누락 논란이 벌어진 뒤 대화한 많은 작가들이 문제를 꺼낸 작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응원과 공감의 목소리를 보냈다. 앞으로도 책을 내야 하는 작가 개인의 입장에선 출판사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출판사를 비판하기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 단체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작가들을 대변한다는 취지로 모인 여러 작가 단체가 있지만 인세 누락 논란 이후 공식적으로 입장을 낸 단체는 없었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발표가 취소되는 일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작권 문제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며 자신의 입장을 먼저 밝혔지만 작가 단체의 입장은 뒤늦거나 미미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모인 것이 이익단체다. 작가 단체라면 응당 작가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관종 작가 단체의 외침을 기다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읽다 보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향하고 싶은 책이 있다. 묘사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 공간을 향해 발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에세이의 배경은 일본 도쿄의 한 지역인 시모키타자와. 작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풍경을 동화처럼 그려낸다. 소설 속에서나 만날 법한 친절하고 특이한 이웃들의 이야기도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작가가 처음 시모키타자와를 찾았던 때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난 뒤 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시모키타자와에 들렀다. 눈이 살랑살랑 내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아버지와 쌓은 추억은 작가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았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작가는 자신이 낳은 아이와 이 거리를 우연히 걷게 됐다. 아이의 손을 잡은 작가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때 작가는 결심한다. 시모키타자와에 살겠다고. 시모키타자와는 서울로 치면 홍대입구나 합정 같은 지역이다. 소극장에선 연극이 벌어지고, 인디밴드들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좁은 도로 곳곳에 빈티지 가게나 선술집이 자리 잡고 있다. 북적거리는 대로 안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하고 조용한 샛길이 펼쳐진다. 중년 여성인 작가는 혼자 이 길을 걷다 록 음악에 심취한 남성을 만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독특한 서점 안으로 홀리듯 들어서기도 한다. 악착같이 살아오며 견디던 삶의 무게가 이 동네에선 조금 가벼워진다. 사랑하던 책방이 사라지고, 함께 웃던 이웃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동네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지만 작가는 분노하지 않는다. “덕분에 멋진 시대를 보냈다”며 이별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항상 따뜻한 소설을 써내는 작가의 푸근한 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직사각형의 이미지 안에 시집 96페이지가 하나하나 펼쳐져 있다. 가운데엔 진한 갈색과 옅은 갈색으로 그린 쥐의 얼굴이 있다. 왼쪽 위엔 출판사 현대문학을 상징하는 로고 ‘H’, 오른쪽 아래에는 배수연 시인(37·여)의 서명 ‘ㅂㅅㅇ’이 보인다. 이 이미지의 정체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배 시인의 3번째 시집 ‘쥐와 굴’(현대문학) 1쇄. 디지털 작품의 가치와 소유권을 증명하는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으로 발행된 뒤 한국 문학작품 최초로 NFT 경매를 통해 판매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배 시인은 새로운 흐름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는 노트북에 무선 인터넷을 연결하는 데 헤맸고 인터넷에 접속하다 오류가 날 땐 당황했다. 천생 시인처럼 정확한 단어를 고르려 자주 머뭇거렸고 내용을 확신하지 못하면 말을 끝맺지 않았다. 옛것만 좋아할 것 같은 그에게 왜 최첨단 기술인 NFT를 이용해 경매를 열게 됐는지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큰돈을 벌려고 한 일은 아니에요. 문학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나중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 ‘한국 문학작품 최초의 NFT 경매’라고 한 줄 올라오면 의미 있다고 생각했죠.” 그가 올 2월 시집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을 때만 해도 NFT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올 3월 블록체인 회사 인젝티브프로토콜이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영국의 미술 작가 뱅크시의 그림 ‘멍청이(Morons)’를 NFT로 변환해 경매에 내놓고, 인젝티브프로토콜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진짜 그림은 불태우는 사건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 그림은 가상화폐인 이더리움(ETH)으로 228.69ETH(판매 당시 4억3000만 원)에 팔렸다. 그는 “영화 ‘매트릭스’(1999년)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주인공 네오는 진짜 세상을 뜻하는 빨간 약과 가짜 세상을 뜻하는 파란 약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하지만 이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진짜, 가짜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NFT 경매를 해본 이는 없다. 해외에서도 미술, 음악 분야는 NFT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문학계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배 시인은 NFT 경매 방법을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출판사가 서점을 통해 시집을 판매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작가가 스스로 NFT 경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5월 25일 0시 배 시인은 세계 최대 NFT 경매사이트인 오픈시(OpenSea)에서 경매를 열었다. 경매 기간과 시작 및 마감 시각은 진행하는 이가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고 해당 기간에는 24시간 경매가 계속된다.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하는 우려와 달리 경매 시작 8시간 만에 한 참가자가 1.2ETH를 제시했다. 경매는 배 시인이 정한 6월 5일까지 이어졌고 마감 시간 30분을 남기고선 두 참가자가 경쟁하듯 가격을 올렸다. 총 8차례 경매 입찰이 이뤄졌고, 마침내 5일 오후 3시 반 한 참가자가 2.94ETH에 ‘쥐와 굴’ 1쇄 NFT 파일을 샀다. 낙찰일 기준으로 약 900만 원이다. 종이책 정가 9000원의 1000배인 셈. 배 시인은 NFT 경매 수익을 미얀마 민주화운동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그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돼 깜짝 놀랐다”며 “아이디만 알 뿐 누가 NFT 낙찰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문화예술이나 NFT에 관심이 많은 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누군지 궁금해 죽겠다”고 했다. 시인이 시집을 팔아 밥벌이하기 힘든 시대다. 배 시인 역시 중학교 미술 교사로 일하며 새벽에 시를 쓰고 있다. 배 시인은 2013년 등단 후 낸 두 권의 시집인 ‘조이와의 키스’(민음사·2019)와 ‘가장 나다운 거짓말’(창비교육·2019)의 인세로 총 900만 원을 벌었다. 이번 NFT 경매 수익과 같다. NFT 경매는 잠깐 스쳐가는 유행이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지금도 시는 시장에서 돈으로 거래되고 있어요. ‘쥐와 굴’은 1쇄만 NFT로 팔았고 2쇄는 종이책으로 만들어 서점에서 9000원에 판매하고 있죠. 모든 문화예술품이 NFT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요. 예를 들어 가수 아이유 행동 하나하나에 팬들이 환호하는데 아이유가 윙크하는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이 NFT 경매로 나올지 누가 알겠어요. 지금은 제가 쓴 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미술작품을 만들고, 미술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변환한 NFT 파일을 경매로 내놓으려 준비 중이에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도서 2종에 대해 세종도서 선정 사실을 철회하고 대체 선정했기에 공고합니다.” 2019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홈페이지에는 이런 공고가 올라왔다. 종당 800만 원 이하의 책을 구입해주는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 사업에 선정된 A출판사의 책 2종이 신간이 아니라 개정판인 사실이 뒤늦게 들통난 것. 애당초 개정판은 선정 대상이 아니라고 진흥원이 알렸지만 A출판사는 이를 무시하고 지원했다가 선정이 취소됐다. 진흥원 관계자는 “사업 심사위원과 직원들이 사업 선정 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지만 지원하는 책 종수가 많다 보니 놓치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출판사가 제보해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출판사 웨일북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임홍택 작가(39)와 이중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출판계 관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부정 사례가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문체부가 진흥원을 통해 종이책 단행본을 지원하는 사업은 크게 3가지다. 올해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 85억 원,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10억 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8억 원으로 총 103억 원이 투입된다. 출판사가 각 사업에 응모하고 계약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 예술원 직원들이 1차적으로 검토한다. 이후 전문 심사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선정작을 정한다. 한 심사위원은 “심사위원 수십 명이 응모작 수천 편을 며칠에 걸쳐 검토한다”며 “특정 작품을 골라 지원해야 하는 만큼 작품의 우수성과 독창성, 완성도를 꼼꼼히 살펴봐야 해 다른 심사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출판사들이 정부 사업에 응모할 때 지원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B출판사의 책은 다른 출판사가 표절 문제를 제기해 지원 선정이 취소됐다. C출판사 책은 세종도서 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 출판사가 저자와 계약을 해지해 역시 선정이 취소됐다. ‘90년생이 온다’처럼 정부 지원 사업에 응모하려고 기존 계약서 외에 별도로 계약서를 작성한 문제는 처음 불거졌지만, 드러나지 않은 유사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흥원은 사업을 공고할 때 ‘자격 미달 시 선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지만 일부 출판사는 나중에 걸리더라도 일단 지원하자는 분위기다. 한 작가는 “발각되기 전까지 밀어붙여 보자는 생각을 가진 출판사들이 있다. 행정 업무에 미숙한 신인 작가는 부정 지원한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출판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정부 지원 없이는 출간이 힘들다는 생각에 악질 출판사들이 이런 행태를 벌이곤 한다”며 “제대로 조건을 갖춰 지원한 출판사 입장에선 일부가 물을 흐리는 것 같아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한편 문체부는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던 ‘90년생이 온다’에 지급한 500만 원을 환수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김혜수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향후 지원 시 계약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부정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느 날 ‘나’는 기묘한 셰어하우스에 입주한다. 전세 입주자인 남성 쾌조씨는 거실 한쪽 구석에 산다. 작은 방엔 각각 청년 남성 희진과 청년 여성 재화가 사는데, 둘은 공용 공간을 청소했는지를 두고 매일 싸운다. 반면 큰방에 혼자 사는 나는 다른 이들과 별도로 화장실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회사에서 잘리고, 서울의 비싼 월세에 시달리던 내게 셰어하우스는 꿈의 집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집주인이 집을 점검한다며 들이닥치면서 입주자 4명은 동분서주하는데…. 단편소설 ‘타인의 집’은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슬픈 세태를 유머 있게 그려낸다. 18일 첫 소설집 ‘타인의 집’(창비)을 출간한 손원평 작가(42)는 2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주거 문제 때문에 청년 세대가 분노하는 것을 자주 느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집값도 오르는 상황을 보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나도 신혼집을 구하러 다닐 때 ‘왜 우리 집은 없지’라고 한숨을 쉬고 고민했다”며 “있는 현상을 그대로 그려내기만 했는데 소설에 부동산으로 나눠진 계층이 드러났다. 우린 아직 작지만 첨예하게 계급이 나눠진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출간 후 80만 부가 팔리고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2개국에 수출된 장편소설 ‘아몬드’(창비)로 유명 작가가 됐다. 이번 소설집도 출간된 지 11일 만에 8000부가 팔렸다. 지난해 미스터리 영화 ‘침입자’의 메가폰을 잡는 등 소설과 영화 두 길을 함께 가는 이유를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영화 일을 하면서도 매해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기가 부지기수였죠. 소설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할 수 있어 좋지만, 가끔 사람들과 함께하는 영화가 끌리기도 해요. 소설과 영화 둘 다 제 정체성이죠.” 아몬드의 외전인 단편소설 ‘상자 속의 남자’는 남을 돕다 식물인간이 된 형을 둔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몬드의 주인공은 왜 보통 사람들이 타인을 돕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며 “상자 속의 남자의 주인공은 감정을 느끼지만 마음이 닫혀 있어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몬드가 선천적으로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를 다뤘다면 상자 속의 남자는 후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를 다뤘다는 것. 그는 “사람들은 도와야 한다고, 손길을 뻗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4월의 눈’에서 한 부부는 아기를 유산한 뒤 이혼 위기에 처하고, ‘괴물들’에서 중년 여성은 아이들이 남편을 죽일까 전전긍긍한다. 소설집에 유독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출산 뒤 아이를 키우며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행복했지만 내가 처하지 않은 비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곤 했죠. 그동안 유독 안쪽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했지만 이젠 (사회적 문제 등) 바깥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독자님들. 정세랑 작가의 신작 에세이 제목을 골라 주세요!” 지난달 13일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독자 100명을 상대로 이 같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긴급 진행했다. 작가와 출판사가 책 제목을 정하지 못하자 독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경합 끝에 독자들의 다수 의견에 따라 이 에세이의 제목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로 정해져 이달 10일 출간됐다. 위즈덤하우스가 의견을 빠르게 모을 수 있었던 건 독자들을 책 편집에 직접 참여시키는 ‘SSA 비밀요원 프로젝트’를 지난달부터 운영한 덕이다. 김소연 위즈덤하우스 스토리독자팀장은 “책 1권당 100명의 독자를 비밀요원으로 선정하고 출간 전에 온·오프라인으로 의견을 취합한다”며 “미리 가제본과 기념품을 받는 혜택뿐 아니라 편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자들이 만족해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출판사들이 독자들을 책 출간 전 편집 단계까지 참여시키고 있다. 독자들은 제목뿐 아니라 표지 디자인도 검토한다. 출판사는 독자에게 가장 인상 깊은 한 문장, 책을 소개하고 싶은 대상 등을 물어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과거엔 출간 후 독자들에게 책을 무료로 주고 온라인 서평을 독려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책 출간 전에 독자를 참여시키며 마니아 독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이타북스는 이달 14일 김진명 작가의 장편소설 ‘고구려 7’을 출간하기 전에 독자 10명을 선정해 오탈자를 바로잡는 책 교정에 참여하게 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한 마니아 독자들에게 인쇄된 원고와 교정 가이드를 보낸 뒤 빨간색, 파란색 볼펜으로 교정을 해서 되돌려 달라고 한 것.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는데도 독자들은 문맥상 오류도 찾아내고, 사실관계도 꼼꼼히 검토해 출판사에 회신했다. 정은진 이타북스 편집장은 “참여하는 독자는 대부분 작가를 사랑하는 애독자다. 소수 정예로 운영하기 때문에 원고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편집자가 원고를 서너 번 꼼꼼히 봐도 오탈자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애독자 10명이 도와주시면 편집자 10명이 도와주는 기분”이라고 했다.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책 출간 여부를 정하기도 한다. 2013년 출간됐다가 절판된 경영서 ‘조인트 사고’를 올 4월 다시 펴낸 김은영 생각지도 대표는 “경영서를 주로 읽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재출간을 바라는 독자들의 의견을 알게 돼 재출간을 결심했다”며 “책 편집뿐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독자들의 입김이 미치는 셈”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말녀’라는 이름의 한 여자가 있다. 큰언니는 금주, 작은언니는 은주이건만 여자는 동주가 아닌 말녀였다. 말녀(末女)는 남아선호사상이 있던 시절 ‘마지막 딸이 되라’는 뜻으로 짓던 이름이었다. 여자는 어릴 적 엄마에게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왜 계속 말녀라고 불러요?”라고 따져 물었지만 엄마는 묵묵부답이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여자는 뒤늦게 자신의 이름을 동주로 바꾼다. 단편소설 ‘매화나무 아래’는 한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과거 여성이 겪었던 차별과 늦게라도 삶을 바꾸려 하는 여성의 삶을 차분히 보여준다. 2016년 출간한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으로 문학계에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킨 조남주(사진)가 첫 소설집을 내놓았다. 100만 부 이상 팔린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을 비판하는 조남주 문학의 특성은 여전하다. 다만 ‘82년생 김지영’이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면, 이번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은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쳐 여성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몰래카메라 사건의 피해자의 엄마와 언니가 사건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중년인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으니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청년인 언니는 “상습범은 봐줄 수 없다”고 반박한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의 삶을 다룬 ‘가출’처럼 중년 여성을 차분히 관찰하기도 한다. 남편 없이 홀로 살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중년 여성을 묵묵히 응원하는 건 오직 그의 딸이다. 세대가 다른 여성들은 위기 앞에서 분열하기도 하지만 삶의 무거움을 버티기 위해 서로에게 기댄다. 여성 문제에 대한 천착은 여전하다. 한 여성이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현남 오빠에게’는 권력적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통제해 본인의 생각에 동조하게끔 만드는 가스라이팅이 벌어진 연애 문제를 다룬다. 중소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이 등장하는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직장 내 성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일부에선 조남주의 문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조남주가 화제성이 높은 페미니즘을 의도적으로 주제로 삼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 조남주 관련 기사엔 남성의 고충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여성의 피해만 강조한다는 취지의 악플이 달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조남주는 왜 이토록 끊임없이 여성의 삶을 소설로 쓸까 궁금했다. 자전적 소설 ‘오기’에서 악플에 시달리는 여성 소설가가 자신이 왜 소설을 쓰는지 되뇌는 독백이 조남주의 답변처럼 읽히는 듯하다. “나는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병종 화백(68)의 그림 ‘서설(瑞雪)의 서울대 정문’이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 경매로 나온다. NFT는 디지털 콘텐츠의 진품 여부와 소유권을 보증하는 가상 인증서로, 최근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들이 NFT 경매에 나오고 있다. 마케팅 기업 워너비인터내셔널은 “다음 달 20∼26일 일주일간 NFT 경매 플랫폼 ‘엔버월드’에서 이 작품 경매를 진행한다”고 22일 밝혔다. 경매는 한국, 영국, 미국 등 22개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수익금 전액은 유니세프의 개발도상국 아동 복지사업에 기부된다. 김 화백은 “생명 존엄에 대한 평소 신념에 따라 디지털 아트 온라인 경매에 참여했다”며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을 배경으로 두 그루의 소나무가 얽혀 있는 모습을 그렸다. 한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두 소나무를 통해 양국이 우의를 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14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오연천 서울대 총장이 시 주석에게 이 작품을 선물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 화백은 생명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발표해 미술계에서 ‘생명작가’로 불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39)가 이 책의 인세 누락 문제로 출판사와 소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장강명 작가가 출판사에 인세 누락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출판계에서 인세 관련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출판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작가는 CJ그룹에서 일하던 2018년 11월 웨일북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두 번째 저서인 ‘90년생이 온다’를 펴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신입사원과 기성세대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실질적 인사관리 방법을 담았다. 2019년 8월 문 대통령이 이 책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하면서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종이책이 약 36만 부 팔렸다. 신인 작가와 중소 출판사가 출간한 책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 출판계 관행상 판매부수는 출판사가 관리하고,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이 수치를 통보받는다. 임 작가는 올 1월 출판사로부터 통보받은 종이책 판매부수를 검토하다 인쇄부수보다 10만 부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쇄됐지만 팔리지 않은 재고라기엔 큰 수치였다. 임 작가는 출판사에 판매부수를 다시 확인해 인세를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수차례 항의했고, 2개월 뒤인 3월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장 작가에 대한 아작 출판사의 인세 누락 사례처럼 출판사가 자료를 안 주면 작가가 판매부수를 파악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임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출판사가 인세를 무단으로 지급하지 않으려 했고 이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며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판매부수를 속이면 작가는 정확한 인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출판사는 단순한 계산 착오였다는 입장이다. 권미경 웨일북 대표는 “전산 시스템이 미비한 중소 출판사 여건상 판매부수와 인세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잘못한 부분도 있고 (작가에게) 죄송하지만 미지급된 인세를 드린 뒤에도 반발하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 작가와 출판사는 ‘90년생이 온다’의 전자책 인세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양측은 2018년 3월 전자책 인세를 ‘수익금의 15%’로 정한 A계약서를 작성했다. 6개월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출간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문체부 표준계약서에 따라 전자책 인세를 ‘전송 1회당 1400원’으로 정한 B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임 작가는 3월 말 “B계약서에 따라 미지급된 전자책 인세 1억3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웨일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계약서를 복수로 작성하는 출판계의 기형적 구조와 관행이 갈등을 부른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책 판매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현 출판유통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작가는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지만,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출판계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참여를 거부하는 건 정부 주도 시스템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라며 “민간 주도로 전산망을 만든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합리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1980년대 영국 런던. 20대 남성 동성애자 윌리엄은 고급 아파트에 살며 최상위층의 삶을 즐긴다. 낮에는 수영으로 몸을 단련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새로운 연애 상대를 찾아다닌다. 윌리엄은 우연히 80대 남성 동성애자 찰스를 만난 뒤 기묘한 사건들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지난달 25일 한국에 두 번째 장편소설 ‘수영장 도서관’(창비)을 출간한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67·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영국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는 상황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며 “신작은 영국이 1967년에 21세 이상 남성 간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을 폐기한 이후를 다뤘다”고 밝혔다. 국가가 동성애자를 처벌하던 제도가 사라지면서 이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소설이 태동했다는 것. 그는 “당시 나는 옥스퍼드 대학원생으로서 동성애 작가들을 연구했다. 영국의 커다란 사회 변화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다뤄 영국에서 1988년 출간 직후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다른 퀴어 장편소설 ‘아름다움의 선’(창비)으로 2004년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퀴어 작품으로 부커상을 받은 건 그가 처음이었다. 당시 동성애 반대론자들이 그의 수상에 반발하기도 했다. 그는 “부커상 수상 당시 이미 20여 년간 동성애자의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내 책에 대한 논란에 약간 곤혹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부커상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상이다. 수상 후 영국에서 성에 대한 미묘하고 복잡한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의 부커상 수상이 퀴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퀴어 문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퀴어 문학은 우리 사회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퀴어 문학의 발전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퀴어 문학이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퀴어 문학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기묘한 소재를 끊임없이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작가들이 필요하다”며 “재능 있는 퀴어 문학 작가들이 문학계 주류로 들어오는 건 작가의 천재성과 더불어 주제 자체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긴급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박상영 김봉곤 등 퀴어 문학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때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퀴어 문학이 주류 문학계에서도 차츰 인정을 받고 있지만, 영미권에 비하면 작가들의 활동이 아직 적은 편이다. 그는 “한국 퀴어 문학 역시 번역을 통해 해외에 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30대 초반 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정세랑 작가(37·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 모임이었지만 작가의 이름이 나온 건 의외였다. 요즘 시대에 연예인도, 유튜버도 아닌 작가 이야기라니….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에 대해선 “원작이 더 재밌다”며 추천하는 이도 있었고,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에 대해선 “읽고 나서 울 뻔했다”며 극찬하는 이도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시대에 친구들이 가장 많이 사 보는 건 정 작가의 책이었다. 이 책은 정세랑의 첫 번째 에세이다. 10여 권의 책을 낸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곳곳에 작가로서 그가 인정받기까지 겪은 과정과 마주친 편견들이 담겨 있다. 언뜻 바로 스타 작가가 됐다고 착각할 만한 그의 작가 인생에도 굴곡이 있었던 것. 정세랑은 2010년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단편소설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마주한 건 문단의 편견이었다. 한 문인은 “장르문학 쪽에서 잘 쓰는 작가가 없던데요? 세랑 씨도 재등단이나 하지 그래요?”라고 도발했다.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탓인지 2011년 출간한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난다)와 2012년 내놓은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네오픽션)은 초판도 모두 팔리지 않았다. 당시 심정을 정세랑은 이렇게 고백한다. “장르 소설가들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내 부아가 치미는 말들을 듣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르를 모르면 장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무례하게들 구는지 모르겠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그런 경향이 남아 있다.” 정세랑이 택한 건 문학상 도전이었다. 그는 작가와 겸업하던 출판사 편집자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소설 쓰기에 모든 걸 걸었고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창비)로 2014년 창비 장편소설상을 받은 뒤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요즘 만나는 출판사 관계자들도 “정세랑은 인정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세랑은 요즘 밀려 있는 청탁 원고를 쓰느라 밤을 새울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장르문학 작가는 글을 못 쓴다는 문단의 편견을 깨고 우뚝 선 것이다. 정세랑의 작품에 감동받고도 그의 작품을 놓고 “순문학이다” “장르문학이다” 구분 짓는 친구는 없었다. 그의 작품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없애는 퇴마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그리기도 하지만 독자는 정세랑을 장르문학 작가로 한정짓지 않는다. 독자에게는 오직 감동을 주는 소설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소설만 있을 뿐이다. 아직도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르는 이들은 일부 ‘고매한’ 문인들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요즘 콘텐츠 업계에서는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화두다. 메타버스는 가공을 의미하는 ‘메타’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현실과 혼합된 이 가상세계는 1억 명 이상이 이용 중인 게임 ‘로블록스’나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머지않아 메타버스는 시대를 이끄는 개념으로 떠오를 것이다. 1992년에 쓰인 이 공상과학(SF) 소설은 메타버스 개념을 처음 제시한 작품이다. 구글 창립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이 소설을 읽고 영상 지도 서비스 ‘구글 어스’를 개발했다.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뜻하는 ‘아바타’도 이 소설에서 개념이 구체화됐다. 시대를 앞서 30여 년 전 이미 이런 개념들을 내놓은 이 작품의 실체가 궁금하다. 미래 세계의 주인공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현실에선 피자를 배달하며 보잘것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히로는 메타버스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해커로 인정받는다. 메타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 아바타로 활동하는데 현실세계의 신분을 숨길 수 있다. 히로 역시 메타버스에서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철저히 숨기며 활동한다. 히로는 메타버스에서 퍼지고 있는 신종 마약 ‘스노 크래시’의 비밀을 파헤치며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눈길이 가는 건 히로가 현실세계와 메타버스에서 각각 보이는 상반된 모습이다. 현실에서 히로는 피자를 빨리 배달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을 일삼는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선 마약 유통 조직을 추적하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처럼 행동한다. 그에게 메타버스는 암울한 미래 시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일종의 마약 같은 게 아니었을까. 요즘 사람들이 현실세계를 떠나 메타버스로 향하는 이유도 히로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현실세계에서는 짜증 나는 일이 가득하지만 메타버스에선 신나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현실의 온갖 적을 무찌르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30여 년 전 교수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젊은 시절 일에 쫓겨 독서를 게을리했는데 임원이 되고 보니 ‘정신적 빈곤’이 몰려오네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1)는 최근 만난 삼성그룹 임원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김 명예교수가 1980년대 후반 삼성 신입사원 연수에 강연자로 초빙됐을 때 “학교 공부만 하고 책을 안 읽으면 자신만의 사상을 쌓지 못한다. 과장까지는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지만 부장 이상으로 승진해 결정을 내리는 직책을 맡으면 그땐 다르다”고 말했다는 것. 김 명예교수에 따르면 당시 강의를 들은 약 130명의 신입사원 중 자신에게 의미 있는 고전 5권을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회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독서”라고 강조했다. 그가 약 90년에 이르는 자신의 독서 경험을 담은 에세이 ‘백년의 독서’(비전과리더십·사진)를 최근 펴냈다. 1995년 출간 후 절판된 ‘망치 들고 철학하는 사람들’(범우사)을 손봐 재출간했다. 1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김 명예교수는 “출판사의 재출간 요청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수락했다”며 “초기 반응이 좋은 걸 보면 아직 책 읽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책은 출간 20일 만에 초판 3000권이 모두 판매됐다. 그가 책에 처음 빠진 때는 중학교 2학년. 학교 도서관에서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우연히 보고 꼭 읽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전쟁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철없던 시절이라 그 책이 소설인지도 몰랐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 됐어요. 톨스토이가 말한 휴머니즘은 나를 철학의 길로 안내했죠. 고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있을 때 미국의 독서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미국 학생들은 한 강의를 들을 때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최소 3권씩 읽었다. 오전 5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드는 학생들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 그는 “학교 공부 못지않게 독서가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성장시킨다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며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TV보다 책 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문학고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의 전기와 자서전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객관적 정보를 얻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결한 문장과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필력으로 유명하다.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쓰고 여전히 현역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글쓰기 비결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 독서였다.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더군요. 좋은 글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쓰고 싶어지고, 또 잘 써집니다. 독서가 10년 정도 쌓이면 인생이 달라지니까 책을 꼭 읽으세요. 그럼 언젠가 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게 될 겁니다. 허허.”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13년 6월 13일. 15세 쌍둥이 남매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데뷔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강렬하게 끌린다. 남매의 정체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기원전 19년∼기원후 18년)의 자녀. 고구려 건국 초 정쟁(政爭)에 휘말린 유리왕이 남매의 목숨을 구하려고 시간여행을 통해 이들을 현대의 한국으로 보낸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남매는 방탄소년단 음악에 빠져 팬클럽 아미가 돼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는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방탄소년단을 뒤섞은 장편소설 ‘춤추는 왕자님, 별을 쏘다. 1: 시간의 문’(씨에듀테크)이 최근 출간됐다. 이 소설은 서울 강동구 꿈미학교 노선화 교사(48·여)와 경기 하남시 감일초 유혜정 교사(44·여), 경기 광주시 경안초 박준희 교사(43·여) 등 10여 명의 아미로 구성된 공동 집필 모임 ‘프라미스’가 썼다. 여중생은 삽화를, 다른 직장인은 자료 조사를 맡았다. 강력한 팬심으로 뭉친 프라미스는 연내 이 책 시리즈 3권을 포함해 총 7권을 내놓을 계획이다. 대안학교인 꿈미학교의 노 교사는 책을 내려고 1인 독립출판사까지 차렸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10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노 교사는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는 방탄소년단처럼 아미도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소설을 썼다”며 수줍게 웃었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소재를 찾던 중 방탄소년단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그는 “2017년 근무하던 초등학교에서 영어 뮤지컬을 준비했는데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방탄소년단에 대해 찾아봤다”며 “지난해 3월 RM 등 방탄소년단 멤버 6명이 재학 중인 경영전문대학원에 입학해 방탄소년단의 문화적 영향력을 공부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방탄소년단 음악을 들으며 치유된다. 부모와 떨어져 방황하는 사춘기 남매는 ‘Life Goes On’의 가사 ‘멈춰 있지만 어둠에 숨지 마/빛은 또 떠오르니깐’을 통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Dynamite’의 신나는 멜로디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우울함을 떨쳐낸다. 노 교사는 “방탄소년단 안무를 짜는 스태프 이름을 소설에 쓰고 퍼포먼스 디렉터 손성득 등 스태프를 칭찬하는 아미만의 은어를 문장 곳곳에 숨겨놓았다”며 “특정 문단의 첫 음을 세로로 읽으면 ‘방탄소년단 최고’라고 쓰여 있을 만큼 아미라면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소설은 팬들이 아이돌을 소재로 쓰는 가상소설인 ‘팬픽’의 일종이지만 멤버를 성적인 대상으로 설정한 음란물 성격의 팬픽 ‘알페스’와는 전혀 다르다. 방탄소년단을 바라보는 아미의 시선을 주로 담았고, 방탄소년단의 실제 모습을 가상 세계라고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건강한 팬덤 문화를 만들고 싶은 아미 교육자의 바람을 담았다. “팬덤 문화가 아티스트에게 불쾌감을 주는 ‘음지의 문화’가 아니라 건강하고 밝은 ‘양지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제 직업이 교사인 만큼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죠. 올해 데뷔 8주년을 기념해 방탄소년단에 이 책을 전달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서점 반디앤루니스가 부도 처리돼 16일 문을 닫았다. 1988년 설립된 반디앤루니스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이어 오프라인 서점 매출 기준으로 3위다. 출판계에 따르면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는 서울문고는 15일까지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서울문고가 막지 못한 어음은 약 1억6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반디앤루니스의 3개 오프라인 서점인 서울 신세계강남점, 롯데스타시티점, 목동점을 비롯해 온라인사업부의 운영이 16일 중단됐다. 김동국 서울문고 대표는 “(어음을 갚지 못해) 더 이상 운영을 못 한다고 판단했다”며 “사업을 정리할지,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넘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17일 서울문고 측과 만나 대금을 받지 못한 출판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흔의 노병이 제복을 꺼내 입었다. 오른팔은 포탄 파편에 맞아 온데간데없다. 수류탄에 잃은 오른 다리는 의족으로 대신했다. 왼팔과 왼 다리만으로는 제대로 서지 못해 지팡이를 짚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눈빛만은 여전히 단단하다. 전쟁은 퇴역 군인의 육체를 망가뜨렸지만 영혼은 앗아가지 못했다. 1925년 미국에서 태어나 6·25전쟁에 참전한 미 육군 예비역 대령 윌리엄 빌 베버는 당당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설치된 동상의 모델 중 한 명이다. 사진작가 라미 현(본명 현효제·42)은 2018년부터 6차례에 걸쳐 그의 사진을 찍었다. 작가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순간 느낀 통증을 물으니 베버 대령이 씩 웃으며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건네자 ‘한국이 내게 빚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라미 현이 9일 펴낸 에세이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마음의숲)에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사연이 켜켜이 담겨 있다. 그는 2018년부터 4년에 걸쳐 22개국 1500여 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촬영했다. 2001∼2003년 대한민국 육군 병사로 복무한 그는 당시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군 간부’라고 생각할 만큼 군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2013년 육군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의 사진을 찍는 작업을 의뢰받아 진행하며 생각을 바꿨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 딸에게 원망을 듣는 등 한 명 한 명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삶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참전용사의 사연은 꼰대들이 ‘나 때는…’이라며 풀어놓는 자기 자랑이 아니다”라며 “치열하고 생생한 참전용사의 기억에서 6·25전쟁을 바라보는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봉합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미 해병대 출신의 살바토레 스칼라토는 라미 현이 처음 만난 6·25전쟁 참전용사다. 둘은 2016년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서 사진작가와 초청 군인으로 처음 만났다. 2년 뒤 라미 현이 살바토레를 찾아 미국으로 갔지만 살바토레는 “사진을 팔러 온 거냐”며 삐딱하게 맞았다. 참전용사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준다며 돈을 요구하는 이들로부터 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라미 현은 살바토레를 겨우 설득해 사진을 찍었다. 그가 미국, 영국 등을 돌아다니며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데 든 비용은 약 5억 원. 외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그가 다른 사진작업을 통해 번 돈으로 충당했다. 라미 현은 “정부에서 돈을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결국 돈 벌려고 하는 짓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게 싫었다”고 했다. 라미 현은 지난해 7월 별세한 백선엽 장군(1920∼2020)의 생전 모습도 사진으로 담았다. 2019년 당시 백 장군은 거동이 쉽지 않았지만 꼿꼿이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군인은 늘 당당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소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부인의 만류로 백 장군이 결국 휠체어에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끝까지 부끄러워했다. 촬영 당시 99세였는데도 여전히 눈빛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를 향해 전쟁을 미화한다고 비난하지만 그는 이미 벌어진 전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참전 군인들은 자신을 전장에서 죽은 동료를 두고 온 겁쟁이라고 말해요. 우리가 인정할 때에야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바라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