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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결선 투표에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과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54)가 맞붙었다. 2017년에 이은 5년 만의 재대결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 두 후보는 결선 하루 전인 23일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집중 부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대통령만은 막아 달라”고 호소했고, 르펜 후보는 “부자를 위한 대통령 때문에 서민의 삶이 팍팍해졌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투표소 곳곳에서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자’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전했다.○ “이번 대선, 비호감들의 경쟁”이날 파리 15구 투표소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가브리엘 씨(42)는 “극우 대통령은 막아야 한다”며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파리 13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쥘리앵 씨(30)는 “르펜이 좋아서 찍는 건 아니다. 경제가 안 좋으니 그나마 민생 공약이 많은 르펜이 나아 보였다”고 말했다. 13구는 10일 열린 대선 1차 투표에서 르펜 후보의 지지율이 파리에서 가장 높았다. 파리 13구에 사는 로라 씨(26)는 기자에게 “이번 대선은 비호감들의 경쟁”이라고 했다. BBC는 “두 후보가 자신의 강점보다 상대가 안 되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부동층과 기권표가 결선 투표의 핵심이 됐다”고 분석했다. 10일 1차 투표에서 유권자 4875만 명 중 투표를 포기한 인구는 1282만 명(26.3%)에 달했다.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는 득표율이 각각 27.8%, 23.1%였다.○ 부동층 표심이 승패 갈라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해 탈락한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후보가 결선 투표의 캐스팅보트를 쥐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멜랑숑 후보는 1차 투표에서 21.9%의 득표율로 3위에 올라 르펜과 차이가 1.2%포인트에 불과했다. 멜랑숑은 탈락 직후 지지자들에게 “르펜을 뽑지 말라”면서 “마크롱 대통령 또한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LFI가 17일 당원 21만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7%가 결선 투표에 대해 ‘투표장에 가되 무효표를 내겠다’고 답했다. 28%는 ‘기권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선 과정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러시아를 오가며 외교 안보에 치중한 반면 르펜 후보는 부가가치세 인하, 30세 이하 소득세 폐지 등 생활 밀착형 공약을 내세웠다. 1차 투표 직전인 8일 조사에서 20∼40대 유권자들의 르펜 지지율은 마크롱보다 6∼12%포인트 높았다. 결선 투표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5∼10%포인트 차이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망했다. 22일 발표된 르몽드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결선 투표 예측조사에서는 마크롱 대통령(56.5%)이 르펜 후보(43.5%)보다 1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롱 대통령이 66.1%의 지지를 얻어 거의 두 배 차로 르펜을 압도했던 2017년 결선 투표 때보다는 격차가 줄었지만 르펜 후보에게 극우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르펜의 소속 정당인 국민연합이 러시아 군수업체로부터 1200만 유로(약 161억 원)의 선거자금을 대출했다는 사실도 논란이 됐다. 르펜 후보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를 두둔하고, 유럽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는 등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20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르펜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이를 지지한 최초의 유럽 정치 지도자”라고 공격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요충지 마리우폴을 완전히 함락했다고 주장한 21일(현지 시간) 당일 마리우폴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만후시에서 300여 개의 구덩이가 발견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리우폴 일대에서도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후 대규모로 매장했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집권 민주당의 모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 차례나 ‘도살자(Butcher)’라고 비판했다. 미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위성사진에선 만후시 공동묘지 인근에서 집단 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달 19일 사진과 이달 3일 사진을 비교하면 매장지가 대폭 늘었음이 확인된다. AP통신은 이 매장지의 직선 길이가 340m에 달한다고 전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 또한 CNN에 “만후시 공동묘지 인근 공터에 30m 길이의 구덩이들이 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시신을 실어와 이곳에 던졌다”고 했다. 그의 보좌관인 페트로 안드류시첸코 역시 “러시아군이 수천 구의 시신을 검은 가방에 수거한 후 트럭을 이용해 매장지로 실어 날랐다.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마리우폴 시의회 또한 “러시아군이 만후시에서 최대 9000명을 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에서 42곳의 마을을 점령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다음 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때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돈바스 점령을 서두르고 마리우폴 함락 또한 선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마리우폴이 완전히 함락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하며 우크라이나에 13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자폭 드론으로 유명한 ‘스위치 블레이드’를 개량한 ‘피닉스 고스트’ 드론 121대, 155mm 곡사포 72문, 포탄 14만 발 등이 포함됐다. 현재 우크라이나군 2500명, 민간인 1000명 등이 마리우폴 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 일대의 민간인 학살 정황 또한 속속 밝혀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프라우다에 따르면 키이우 경찰서장은 22일 “지금까지 수습한 민간인 시신 1084구 중 75%가 총상으로 숨졌으며 이 중 300구 이상은 신원 확인이 불가한 정도로 훼손됐다”며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밝혔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요충지 마리우폴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한 21일(현지 시간) 당일 인근 만후시에서 300여개의 구덩이가 있는 대규모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보로단캬 등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일대에서도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굳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도살자(Butcher)’라고 비판했다. CNN 등에 따르면 표트르 안드류셴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시민 2만여 명이 러시아군에 숨졌다. 러시아군이 시신을 수거한 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트럭으로 옮긴 후 매장하거나 유기했다”고 밝혔다. 미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이날 공개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마리우폴에서 서쪽으로 19㎞ 떨어진 만후시 공동묘지 근처에서 300여개의 구덩이가 확인됐다. 가로 180㎝, 세로 3m 로 러시아군이 만후시를 점령한 지난달 23~26일, 이달 6일 각각 촬영됐다. 마리우폴 시의회도 “러시아군이 만후시에서 최대 9000명을 묻었을 것”이라며 명백한 전쟁범죄 증거라고 규탄했다. 러시아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에서 42곳의 마을을 점령했다. 푸틴 대통령이 다음 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에서 이번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돈바스 점령을 서두르고 마리우폴 함락 또한 선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마리우폴이 완전히 함락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 2500명, 민간인 1000명 등이 마리우폴 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13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자폭 드론으로 유명한 ‘스위치 블레이드’를 개량한 ‘피닉스 고스트’ 드론 121대, 155mm 곡사포 72기, 포탄 14만 발 등이 포함됐다. 그는 집권 민주당의 모금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을 두 차례나 “도살자”로 칭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보로댠카의 민간인 학살 현장을 찾아 러시아를 규탄했다. 200t의 탄약 및 군수 물자도 전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또한 “우크라이나군에 대공 미사일 사용법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120대의 장갑차도 보내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슬로베니아가 보유한 M-84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슬로베니아에 탱크와 장갑차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공세에 나선 러시아가 20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나 프랑스 전역을 한 번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발사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을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서방 11개국 정상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강화하기로 한 지 하루 만에 러시아가 핵 위협 수위를 한층 고조시키는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후 북서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차세대 ICBM RS-28 사르마트의 첫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은 15분 만에 5800km를 비행해 한반도 북동쪽 캄차카반도의 목표물에 명중했다. 세계 최대인 이 ICBM은 메가톤(TNT 100만 t)급 핵탄두를 최대 16개 탑재할 수 있어 파괴력이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2000배에 이른다. 美 “우크라 무기지원 강화” 다음날… 푸틴 ‘악마 ICBM’ 핵위협 러, 신형 ICBM ‘사르마트’ 시험발사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선언한 러시아가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해 미국 등 서방에 대한 핵 위협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서방이 ‘러시아를 패퇴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전투기와 초음속 지대공미사일 등 최신 무기 지원에 나서자 하루 만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ICBM 시험 발사 직후인 21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 장악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을 “성공적으로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최후 항전을 벌이고 있는 요새인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공격하는 대신 “파리 한 마리도 통과시키지 말라”며 봉쇄령을 내렸다.○ 러, 초대형 ‘사탄’ ICBM 발사러시아 국방부는 20일 오후 3시 12분 신형 ICBM RS-28 사르마트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2009년부터 개발해 온 이 미사일 시험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사르마트는 전 세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사일”이라며 “전략 핵 전력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사탄(악마)-2’로 명명한 사르마트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핵미사일로 사거리가 1만8000km에 이른다. 북극은 물론이고 남극을 건너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다. 여러 목표를 한 번에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재진입체(MIRV)나 적 요격미사일을 피해 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등 16개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 독특한 무기는 광란의 공격적인 레토릭(정치적 수사)에 사로잡혀 러시아를 위협하려는 적들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지난해 말 시험 발사를 연기했던 러시아가 이날 발사를 강행한 데 대해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라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공식적으론 “통상적인 시험 발사”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시험 발사를 사전에 통보했다”며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CNN은 미군 당국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보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이 더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비이성적인 일들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 마리우폴 최후 요새 제철소 봉쇄인테르팍스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21일 푸틴 대통령에게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제외한 마리우폴의 모든 지역이 해방됐다”고 보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제철소) 진입은 무익하다. 취소할 것을 명령한다”며 주변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 BBC는 “러시아군 전력 손실을 방지하고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비판, 유럽 최대 제철소의 경제적 가치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특수부대 ‘아조우 연대’가 주축이 된 병사 2500여 명이 저항하고 있다. 11km²로 유럽 최대 규모인 이 제철소는 지하에 길이 20km, 깊이 30m의 철강 운반용 터널 등이 있어 지하 요새를 방불케 한다. 러시아군이 터널로 진입하려 할 때마다 번번이 저격을 당하자 지하시설 관통용 특수 폭탄인 ‘벙커버스터’를 동원하는 바람에 지하에 대피해 있는 민간인 1000여 명까지 집단 학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의 우리 군과 시민을 없애면 정전협상은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마리우폴 상황이 집단 학살이 발생한 북부 부차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가 제철소를 봉쇄해 우크라이나군을 굶어죽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마리우폴 함락을 선언하면서 이미 점령한 남부 도시 헤르손-크림반도-마리우폴-돈바스를 잇는 친러시아 동남부 벨트가 완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CNN은 “러시아군이 헤르손 등 점령 지역에 옛 소련 전승기를 내걸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4일 치러질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맞붙을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가 20일 TV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과거 ‘소련 해체 후 강한 러시아를 만든 푸틴을 존경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르펜 후보를 ‘친(親)푸틴’ 성향이라고 공격하자 르펜 후보 또한 푸틴 대통령을 파리 인근 베르사유 궁에 초대한 사람은 마크롱 대통령이라고 받아쳤다. 이날 포문은 마크롱 대통령이 열었다. 그는 “르펜 후보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이를 지지한 최초의 유럽 정치지도자”라고 비판했다. 르펜 후보는 “푸틴 대통령을 베르사유 궁에 초청하고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맞섰다. 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프랑스가 사실상 공동 교전국이 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또한 국익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르펜 후보는 “히잡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강요하는 제복”이라며 공공장소 내 히잡 금지 공약을 폈다. 마크롱 정권이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5세로 올리겠다고 한 것에 맞서 “오히려 은퇴 연령을 60세로 낮추겠다”고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계몽주의, 관용(톨레랑스)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종교적 상징을 금하면 헌법에 어긋나고 내전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받아쳤다. 토론 직후 BFM TV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마크롱 대통령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4일 치러질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맞붙을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가 20일 TV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과거 ‘옛 소련 해체 후 강한 러시아를 만든 푸틴을 존경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르펜 후보를 ‘친(親)푸틴’ 성향이라고 공격하자 르펜 후보 또한 푸틴 대통령을 파리 인근 베르사유 궁에 초대한 사람은 마크롱 대통령이라고 받아쳤다. 이날 포문은 마크롱 대통령이 열었다. 그는 “르펜 후보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이를 지지한 최초의 유럽 정치지도자”라며 “국민연합 또한 러시아 은행에서 많은 돈을 대출받았다”고 비판했다. 르펜 후보는 “푸틴 대통령을 베르사유 궁에 초청하고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맞섰다. 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프랑스가 사실상 공동교전국이 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또한 국익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은행 대출은 프랑스 금융계가 자신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르펜 후보는 “히잡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강요하는 제복”이라며 공공장소 내 히잡 금지 공약을 폈다. 마크롱 정권이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5세로 올리겠다고 한 것에 맞서 “오히려 은퇴 연령을 60세로 낮추겠다”고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계몽주의, 관용(톨레랑스)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종교적 상징을 금하면 헌법에 어긋나고 내전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받아쳤다. 토론 직후 BFM TV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마크롱 대통령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했다. 19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결선투표에서 르펜 후보를 5~10%포인트 격차로 이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공세에 나선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나 프랑스 전역을 한 번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를 시험 발사했다. 발사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을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확대한 서방을 겨냥해 핵 위협 수위를 한층 고조시키며 무력사위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후 북서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차세대 ICBM RS-28 사르맛의 첫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은 15분 만에 5800㎞를 비행해 한반도 북동쪽 캄차카 반도의 목표물에 명중했다. 이 ICBM은 현존 미사일 중 가장 크며 메가톤(TNT 100만t)급 핵탄두를 16개 탑재할 수 있어 파괴력이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2000배에 이른다. 러시아는 최대 사거리 1만8000km인 이 ICBM을 올해 가을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서방 11개국 정상들과 긴급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강화하기로 한 지 하루 만에 ICBM을 발사했다. 미 백악관은 “러시아는 미국에 사전 통보했다”며 “러시아의 미사일 시험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NN은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매주 2, 3차례 러시아의 핵 동향에 대해 보고받고 있으며 군 당국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기간에 파티에 참석해 방역조치 위반으로 범칙금을 내게 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58·사진)가 의회에서 사과하면서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언론은 “다음 달 5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결과가 존슨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19일(현지 시간) 하원에 출석해 “무조건 ‘나의 실수’이며 사과한다. 경찰 조사 결과를 존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런던 경찰은 12일 존슨 총리와 부인 캐리 존슨 등 50여 명이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6월 19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내각 회의실에서 존슨 총리 생일파티를 연 것에 대해 참석자 1인당 최대 200파운드(약 32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이날 의원들에게 “당시 파티는 코로나19 전략회의 직전에 모인 것”이라며 “법 위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하원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그는 지난해 12월 ‘파티게이트’ 의혹이 제기되자 의회에 나와 코로나19 봉쇄 기간 총리관저에서는 방역지침을 모두 지켰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반발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는 “사과가 농담이냐”며 “거짓말을 일삼는 존슨은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여당 보수당의 일부도 반발하고 있다. 하원은 21일 존슨 총리의 거짓말 여부를 조사할지 표결로 정하기로 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파상 공세에 돌입한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서방이 전투기와 초고속 미사일 등 무기 지원 강화에 나섰다. 러시아와의 군사 충돌을 우려해 그동안 지원을 주저하던 전투기까지 제공하면서 서방 화력 지원이 새 국면을 맞았다. 러시아는 시리아와 리비아 출신 용병 약 2만 명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분수령이 될 ‘돈바스 결전’이 서방과 우크라이나 대(對) 러시아의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된 셈이다.○ 서방, 전투기에 초고속 미사일까지 지원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국 정상 11명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추가 무기 지원을 논의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20일 곡사포와 방공 무기 등을 포함한 8억 달러(약 1조 원)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 대책을 발표한다고 미 CNN 등이 보도했다. 13일 155mm 곡사포와 헬기를 비롯해 8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 만에 또 지원하는 것이다. 새 무기 지원 대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총액은 34억 달러(4조2000억 원)에 이른다. 특히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전투기도 지원하고 있다고 미 국방부가 처음 밝혔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전투기와 부품이 공급돼 공군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2주 전보다 더 많은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신은 미국이 1997년 몰도바에서 구입한 러시아제 미그-29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냈고 이 전투기 수리 부품도 슬로바키아를 통해 제공했다고 전했다. 다만 커비 대변인은 “다른 국가들이 우크라이나가 비행기를 제공받도록 도왔다”면서 “미국이 전투기를 직접 수송하지는 않았다”고만 말했다. 앞서 미국은 폴란드를 통한 전투기 지원 방안을 추진했으나 폴란드가 미군 공군기지를 통한 지원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다. 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10대 안팎의 대공 장갑차 스토머와 병력 수송 차량 120대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스토머는 음속의 3배 이상으로 날며 적 헬기 등을 공격하는 초고속 지대공미사일 스타스트리크 17기를 탑재한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회의에 유일하게 참석한 아시아 국가 정상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3억 달러(약 3700억 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캐나다도 며칠 내로 중화기를 지원한다. 체코는 손상된 우크라이나 탱크, 장갑차 수리를 지원한다.○ 러, 동부 일대 1260곳 일제 공격미국과 서방이 무기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나선 것은 전쟁의 승패를 가를 돈바스 결전에서 전세가 우크라이나군에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군은 이날 돈바스와 인근 하르키우 등 동부 일대 1260여 곳을 일제히 미사일 등으로 공격하고 병력을 더 증파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병력 700∼1000명으로 구성된 전투부대인 대대전술단(BTG) 2개 부대를 증파해 모두 78개 BTG를 투입했고, 시리아 및 리비아 출신 용병 1만∼2만 명을 돈바스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의 돈바스 침공은 대규모 작전의 전주곡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서방의 무기 지원 경로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CNN에 “러시아군이 서방 무기 수송에 이용되는 다리나 도로, 철도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CNN은 러시아 공군 투입이 돈바스 결전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돈바스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전투기 동원이 수월하다. 러시아는 전투기 770대를 보유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70여 대뿐이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가 18일(현지 시간) 친러시아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대대적인 포격을 감행하며 대규모 지상전을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일대에 대한 ‘1단계 군사작전’을 끝내고 돈바스를 자국 영토로 강제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지 24일 만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2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9일 “작전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서방은 러시아가 자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다음 달 9일까지 돈바스를 손아귀에 넣어 전쟁 승리를 주장하려 한다고 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무리 많은 러시아군이 몰아닥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지만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다시 행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군은 이미 1일부터 돈바스의 관문 격인 인구 4만6000명의 이줌을 포위했고 최대 1만5000명이 대피하지 못한 상태다. 영국 가디언은 이줌이 ‘제2의 부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러, 크레민나 장악… 용병 투입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러시아군이 돈바스 루한스크주에 있는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크레민나에 진입해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크레민나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인근 루비즈네 등에도 포격이 쏟아져 최소 10여 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페이스북에 “러시아군이 피란 가려는 시민들을 총으로 쐈다. 이곳은 지옥”이라며 주민들에게 “당장 탈출하라”고 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돈바스에 형성된 480km의 전선을 따라 대규모 지상 공격을 감행했다. 평야가 많고 인구밀도가 낮은 돈바스는 키이우 등 대도시와 달리 건물 등 몸을 숨길 지형지물이 적다. 수십 km 거리에서 양국이 152∼240mm 곡사포를 쏘는 대대적인 화력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병참 등의 문제로 키이우 장악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돈바스는 러시아 국경과 가깝고 도움을 줄 친러 세력도 많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측면을 포격해야 승산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최근 1주일간 돈바스 인근에 방공, 기갑, 포병 등으로 이뤄진 11개 대대전술단(BTG)을 추가로 투입해 기존 65개 부대를 76개로 늘렸다. 러시아군은 ‘보급선 차단, 공습, 포위’라는 3단계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1단계로 공격 목표 도시의 식량 등 보급선을 차단한 뒤 대대적인 폭격과 공습을 감행한다. 이어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도시를 포위하고 우크라이나군을 옥죄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사병(私兵)으로 유명한 용병 조직 ‘바그너그룹’도 투입됐다. 해골 모양을 트레이드마크로 쓰는 이들은 중동, 중앙아프리카 등에서 러시아군을 대리하고 있으며 고문, 민간인 학살 등으로 규탄받고 있다. 푸틴의 최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대표 또한 돈바스에 도착했다고 더타임스 등이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대피하지 못한 이줌 주민들이 한 달 이상 음식도 없이 지하실에 숨어 있다며 “이줌과 부차의 상황이 놀랍도록 흡사하다”고 전했다. 발레리 마르첸코 이줌 시장은 “러시아군의 포위 후 이미 100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 우크라 서부서도 첫 민간인 희생자러시아군은 18일 폴란드 국경에 접한 서부 르비우 등 주요 도시 16곳에도 미사일을 쐈다. 그간 안전지대로 꼽히던 르비우에서 처음으로 민간인 7명이 숨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추가 제재가 이뤄지며,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등도 제재할 수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24일 열리는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과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 극우 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54·사진)가 유럽연합(EU) 예산을 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프랑스 탐사보도매체 메디아파르는 16일 르펜 후보가 2004∼2017년 유럽의회 의원 시절 공금 13만6993유로(약 1억8000만 원)를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이 담긴 EU부패방지국(OLAF)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르펜은 공금으로 가방 펜 열쇠고리 등 RN 판촉물을 사거나, 아버지인 극우 정치 리더 장마리 르펜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에 썼다. 또 당원 숙박비, 와인 및 샴페인 129병 주문 등 목적이 불투명하게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OLAF는 해당 자금 회수에 착수했다고 일간 르몽드는 전했다. 프랑스 검찰도 위법사항을 검토 중이다. 르펜 측은 “2016년부터 시작된 이 조사에 대해 지난해 서면으로 해명했다. 왜 지금 조사 내용이 공개되는지 의문”이라며 정치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10일 열린 대선 1차 선거에서 르펜 후보보다 득표율에서 4.7% 앞선 마크롱 대통령(45)에게는 호재라고 AFP는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EU 고위직 등의 임금 삭감을 추진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2030년까지 현 62세에서 65세로 올리는 연금 개혁안 철회를 시사하는 등 막판 득표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 대해 시민 통제용 통행증을 발행해 외부 출입과 주민 이동을 금지하는 봉쇄 조치를 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전체를 인질로 잡아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러시아의 최후통첩에도 우크라이나군 2500여 명은 마리우폴에서 끝까지 항전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CNN 등에 따르면 페트로 안드리우시첸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17일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발행한 통행증이 없으면 시내 이동과 외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아있는 남성들은 모두 조사 후 (다른 거처로) 재배치되고 18일부터 마리우폴 출입도 중단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도 이날 “러시아군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강제로 시민들을 러시아로 보내고 있다”며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 2500여 명은 마리우폴 내에 있는 아조우스탈, 일리치 등 제철소 2곳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주축인 특수부대 ‘아조우 연대’는 2014년 동부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전쟁을 일으키자 이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다. 그해 6월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워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됐다. 당시 독일 나치즘을 신봉하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탈(脫)나치화’라는 침공 명분을 내세우는 빌미가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극단주의 성향이 희석됐다고 영국 더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17일 오후 1시까지 항복하라”고 최후통첩을 했으며 현재 기한이 지나 언제든 무차별 공격이 자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해군의 상징인 모스크바함이 14일 격침돼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은 러시아는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미사일 3발에 모스크바함이 침몰돼 40여 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미 CBS와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은 어떻게든 마리우폴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한 것 같다. 이는 ‘레드라인’이 될 수도 있다”며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CNN에 “휴전을 위해 돈바스 등 영토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군이 16일(현지 시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8개 거점도시를 맹폭했다. 흑해함대 기함(旗艦)이자 러시아 해군 상징인 미사일순양함 모스크바함이 침몰해 막대한 전력 손실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보복이라고 미국 CNN 등은 분석했다. 모스크바함 침몰 사유를 놓고 주장이 엇갈린다.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함 탄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과 화재가 난 데다 폭풍까지 불자 균형을 잃고 가라앉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넵튠’ 지대함미사일 2발로 격침시켰다고 반박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도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명중했다”고 말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전했다. 침몰한 군함 한 척을 놓고 양측이 입씨름까지 벌인 것은 모스크바함이 러시아 해군의 상징적 존재여서다. 1983년 취역한 슬라바급 미사일순양함 모스크바함은 길이 187m, 폭 21m, 무게 1만2490t에 510명이 탑승 가능하다. 사거리 700km인 항공모함 타격 미사일 ‘불칸’, 해상 특화 지대공미사일 그럼블, 1분에 1만 발을 발사하는 함포 AK-630M과 핵미사일까지 탑재 가능해 ‘바다 위 요새’로 불린다. 침몰 당시 핵미사일을 싣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군함 30여 척으로 구성된 흑해함대 지휘함이자 가장 강력한 장거리 방어 능력을 갖춰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무력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에도 참전했다. 모스크바함 한 척으로 우크라이나 해군 전체를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라는 평가다. 군 전문가들은 모스크바함 침몰로 러시아군의 해안 상륙, 후방 방어, 보급로 확보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본다. 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가 러시아 함대 사정권에서 벗어나 오데사 주둔 우크라이나 병력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모스크바함 침몰 후 러시아 함정들이 해안에서 150km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며 ‘남부 작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런 규모의 침몰은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함이 영국 해군 어뢰에 격침된 후 처음”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 최대 손실로 전했다. “미 해군이 항공모함을 잃은 것과 유사한 사건”(CNN), “사고였다면 러시아군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뉴욕타임스)라는 평가도 있다. 모스크바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알려진 ‘넵튠’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이 2015년 소련제 미사일을 개조해 첫선을 보인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16일 키이우, 북부 하르키우, 서부 르비우 등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러시아군은 특히 넵튠 미사일을 생산하는 키이우 남서부 외곽 비자르 공장을 집중 공습했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크라이나군 2만3367명이 사망했다”며 승전이라도 한 듯 발표했다. 또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전체를 장악했다”며 “17일 오전 6시까지 항복하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 내 우크라이나군을 없앤다면 러시아와의 협상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전쟁에서도 규칙이 있다. 전쟁범죄는 이 최소한의 규칙마저 어긴 행위다.” 전쟁범죄(war crime)는 전쟁 중에 일어나는 각종 반인도적 행위를 뜻한다.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이 대표적이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벌인 행위는 전쟁범죄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차, 보로i카, 모티진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 피란민 이동 경로 폭격, 산부인과와 학교 공습 등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무도한 행위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오나 힐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최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장악’이 아니라 ‘절멸’”이라며 그가 우크라이나인 말살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옛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미얀마 등 세계 각국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지만 러시아의 최근 행보는 수위와 강도 면에서 역대급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상당수 전쟁범죄가 특정 국가의 내전 과정에서 벌어져 같은 나라 국민이 피해를 입은 반면 러시아는 엄연한 주권 국가인 타국 국민을 상대로 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인종학살을 자행한 세르비아 지도자가 전범(war criminal)으로 법정에 선 것과 달리 폭주하는 푸틴 대통령을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전 세계서 전쟁범죄 잇따라유엔이 정한 전쟁범죄의 요건은 △무고한 사람에 대한 고의적 살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지시 △민간인 인명 및 재산피해 △무방비 상태의 도시, 마을, 건물 등을 폭격 등 총 15가지다. 하나같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짓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전쟁범죄가 수차례 벌어졌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남부 밀라이에서 미군의 손에 민간인 약 500명이 숨졌다. 이웃 캄보디아에서는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 루주’가 1975∼1979년 당시 전 인구의 약 4분의 1인 최대 200만 명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1988년 쿠르드족에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무기 ‘사린가스’를 사용해 역시 5000명이 사망했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다수파 후투족이 100일간 소수파 투치족 및 온건 후투족 80만 명을 살해했다. 별도의 성폭행 피해 여성 또한 최대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유고 내전은 전 세계가 전쟁범죄의 참상에 눈뜬 계기로 평가받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보스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 등의 독립 요구를 탄압하고 곳곳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해 냉전 붕괴 이후 최악의 전쟁범죄자 겸 학살자로 꼽힌다. 그를 따르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민간인 8000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유고 내전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 설립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유일한 ‘인종학살’로 인정한 사건이다. 세르비아계는 이슬람계가 많은 코소보가 1998년 독립을 요구하자 역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현재 약 8600명이 사망 또는 실종 상태다. 당시 코소보의 난민만 100만 명에 달했다. 2001년 권력남용 등으로 체포된 밀로셰비치는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았다. 최종 결론이 나기 전인 2006년 헤이그 교도소에서 숨졌다. 지난해 2월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도 군부가 소수민족과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미얀마군은 지난해 7월 중부 사가잉에서 민간인 40명을 살해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부차 집단학살의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손과 발이 묶인 시체가 여럿 발견됐다. 5개월 후에는 동부 카야주에서 불에 탄 40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주민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일부 희생자는 산 채로 불탔다”는 끔찍한 증언을 내놓았다. 유엔은 쿠데타 발발 후 1년간 최소 1600명이 사망했으며 미얀마군이 인구 밀집지역에 중화기를 사용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고 규탄했다.○ 러, 체첸-시리아 때부터 민간인 학살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이 푸틴 대통령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며 과거 체첸, 시리아 때도 널리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의 민간인 대상 범죄가 본격화한 것은 제2차 체첸 전쟁 때부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군이 최근 부차 등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에 대해 “2000년 체첸에서 벌인 ‘자치스트카(Zachistka·청소)’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평했다. 1999년 당시 러시아는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려 했지만 함락이 쉽지 않았다. 그러자 도시를 포위하고 이듬해 초 일대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고, 그로즈니는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 82명의 민간인은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됐다. 지난달 초부터 러시아군이 포위해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봉쇄의 모델이 그로즈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2013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사린가스를 사용해 민간인 1400명을 숨지게 했다. 2017, 2018년에도 각각 사린가스와 염소가스를 투하해 최소 87명, 1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러시아군은 정부군을 동원해 반군에 국제법이 금지한 ‘진공폭탄’ 등 각종 대량살상무기도 사용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푸틴은) 과거에도 군사 작전을 벌일 때마다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더럽혔다”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과 민간물자를 겨냥한 것은 전형적인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시리아 전쟁의 유산이 푸틴 대통령에게 폭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라고 진단했다.○ 상대국 공포 극대화 및 분열 노려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하고 초강력 제재를 가하고 있음에도 푸틴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는 전쟁범죄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군사 전략가 알렉세이 아르바토프는 “러시아는 민간인의 사망을 용인하는 전략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면 상대국의 저항 의지를 손쉽게 꺾고 공포와 두려움을 확산시킬 수 있다. 상대국의 분열도 부추길 수 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여론 또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협상하자’는 쪽과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주변국에도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들이 증가해 주변국 또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탓이다. 폭력을 부추기는 러시아 군대 특유의 ‘데도브시나(dedovshchina)’ 문화 또한 러시아 병사로 하여금 죄책감 없이 전쟁범죄를 자행하도록 만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데도브시나는 신병의 정신과 신체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자행되며 구타, 집단 폭행, 성폭력 등이 빈번하게 자행된다. 미 CNN은 우크라이나 침공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 군대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문화로 유명했다고 지적했다. ○ 러 국민이 나서야 단죄 가능하나 난망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일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12일에는 러시아의 침공 후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줄곧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 전 지휘관은 물론 민간인 공격 명령을 내린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푸틴 대통령을 단죄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ICC에 세우는 것이다. ICC는 지난달부터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ICC가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어 전범 용의자를 체포하려면 해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ICC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탈퇴했다. 특히 ICC는 결석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자국에서 체포되지 않는 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유고 내전, 르완다 대학살 당시 국제사회는 전범을 기소하기 위해 특별 ICC를 일회성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특별 법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설립된다. 역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쓰면 불가능하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ICC 법정에 선 이유도 그가 민중 봉기로 실각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려면 러시아 국민이 현실을 깨닫고 푸틴 대통령을 몰아내야 가능하다. 가디언은 “전쟁범죄와 잔학 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라며 수만 명의 러시아인이 거리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이 잔혹한 행위를 막는 최선의 도구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굳건하다. 모스크바의 여론조사회사 ‘레바다센터’가 침공 후 최초인 지난달 31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푸틴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직전 조사인 1월(69%)보다 14%포인트 올랐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도 지지율 급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집권 후 22년간 강력한 언론 통제를 통해 서방을 악마화하고 전쟁범죄를 ‘가짜뉴스’ 혹은 ‘우크라이나 내 나치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제외하면 푸틴에 대항할 만한 정치인도 전혀 안 보인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체첸전쟁 때는 체첸군 또한 러시아에 테러를 저질렀고, 시리아에는 직접 지상군을 파병한 것이 아니어서 일반 러시아인은 두 사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대다수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계를 탄압하고 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푸틴 정권의 주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파리=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파리=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명분으로 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립 노선을 유지하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이어지는 역설로 나타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 동진(東進)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북유럽을 자극해 ‘나토 확장’이라는 “자충수를 맞았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등은 지적했다. 러시아는 14일(현지 시간)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나토 확장’ 역풍 맞은 푸틴영국 BBC 등에 따르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13일 열린 핀란드-스웨덴 정상회담에서 “몇 주 안에 나토 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외교안보정책 장관회의에서 안보 환경과 대책을 분석한 안보보고서를 최종 확정한 핀란드는 내부적으로 가입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웨덴 언론도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가 나토 가입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양국은 6월 29, 30일 스페인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나토 팽창과 서방에 맞서려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립주의를 유지하던 북유럽의 나토 가입을 촉진하는 ‘역효과’만 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0개 회원국이 약 350만 병력을 보유한 나토에 스웨덴과 핀란드가 가입하면 러시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서부 국경에 인접한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헝가리에 스웨덴 핀란드까지 더해지면 러시아 서북부 국경은 나토 회원국으로 포위된다. 나토와 러시아 병력 차도 줄어든다. 국가 군사력 비교 지표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지난해 분석을 보면 러시아군은 군인 135만 명(예비군 포함), 전투기 772대, 탱크 1만2420대, 잠수함 70척 등으로 세계 2위다. 나토는 최전선 투입 가능 병력 33만 명, 전투기 353대, 탱크 1515대, 공격용 헬기 136대, 항공모함 3척 등이다. 하지만 군사력 25위 스웨덴, 58위 핀란드가 가세하면 전력이 보강된다. 군사기술 강국인 스웨덴은 전투기 71대, 장갑차 3371대, 탱크 121대, 잠수함 5척 등을 보유했다. 병력(예비군 포함) 93만 명과 장갑차 2090대의 핀란드는 지상전에 강하다. ○ 러 “발트해에 핵 배치” 위협이에 러시아가 핵무기 배치를 위협하면서 유럽에 신(新)냉전 구조가 가속화되는 안보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14일 “더 많은 적대국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상군과 방공망을 강화하고 핀란드만에 상당한 해군력을 배치해야 할 것”이라며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가 나토 확장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이후 군사행동을 가한다면 발트3국이 유력하다고 본다. 옛 소련에서 독립해 2004년 나토에 가입한 발트3국은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처럼 러시아와 역사, 문화를 공유했지만 서방 편을 든 ‘배신자’이자 되찾아야 할 영토다. 다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단기적으로는 긴장이 고조되지만 나토가 강화돼 장기적으로는 유럽 안보가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프랑스 대선 결과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24일 결선투표를 앞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는 13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반대하며, 프랑스는 나토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토와 러시아는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 빅토르 메드벳추크(68)가 도주 중 체포됐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괴뢰 정부를 세우면 그 수장으로 유력시됐던 인물이다. 메드벳추크의 딸 다리나의 대부(代父)가 푸틴 대통령일 정도로 푸틴과 친밀한 사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텔레그램에 헝클어진 머리와 초췌한 얼굴로 수갑을 찬 메드벳추크의 사진을 공개하며 그를 러시아 측에 잡힌 우크라이나 포로와 교환하자고 요구했다. 메드벳추크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전부터 반역 혐의로 젤렌스키 정권에 체포된 상태였고 최근 도주를 시도하다가 붙잡혔다. 메드벳추크는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러시아와 석유 사업을 벌이며 큰 부를 축적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도 러시아를 후방에서 지원해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메드벳추크의 체포 소식에 ‘정치적 박해’라며 화를 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0일(현지 시간) 열린 프랑스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중도 진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극우 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각각 1, 2위를 차지해 5년 만에 재격돌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24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르펜 후보가 이기면 프랑스 첫 극우 및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마크롱-르펜, 5년 만에 재격돌11일 개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은 27.8%, 르펜 후보는 23.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후보가 21.9%, 극우 언론인 출신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가 7.0%로 뒤를 이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가 2주 후 결선투표를 벌인다.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과 르펜은 1차에서 1, 2위를 차지한 뒤 2차에서 마크롱(66.1%)이 르펜(33.9%)에게 압승했다. 넉넉한 우세가 점쳐지던 마크롱 대통령은 1차 선거 직전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안긴 ‘맥킨지 게이트’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르펜 후보는 고속도로 통행료,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같은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워 8일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2%포인트까지 좁혔다. 그러나 이날 1차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의 격차(4.7%포인트)는 2017년 대선 1차 선거 격차(2.7%포인트)보다 크다. 일간 르피가로는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집중 부각한 마크롱의 선거 막판 캠페인이 일부 통했다”고 분석했다.○ 친(親)세계화 중도주의 vs 반(反)이민 민족주의마크롱 대통령이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8일 엘라브(Elabe) 등 여론조사기관은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51∼54%, 르펜 후보 46∼49%로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과 르펜의 격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구조를 지배한 전통적 좌우 대결이 끝나고 마크롱으로 대변되는 친세계화, 친유럽연합(EU) 중도주의와 르펜이 상징하는 반이민·반EU 민족주의 대결로 바뀌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프랑스 전통적 좌우 거대 정당인 우파 공화당(LR)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7%, 좌파 사회당(PS)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1.7% 득표로, 선거 비용 보전 기준(5%)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선투표 역시 ‘극우 대통령’ 집권을 막아온 좌·우·중도 정치 연대 ‘공화국 전선’과 “무슬림에게 프랑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반이민전선이 얼마나 화력을 집중하느냐에 달렸다고 일간 르몽드는 분석했다. 마크롱은 10일 1차 투표 승리연설에서 “극우에 맞서 달라”고 밝혔고 르펜은 “프랑스를 제자리로 돌려놓자”며 이민 관련 개헌을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2차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관건은 1차 선거에서 탈락한 후보자들 표가 어디로 쏠릴지이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선거에서 3위로 급부상한 멜랑숑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했다. 멜랑숑 후보는 1차 선거 탈락 직후 지지자들에게 “르펜한테는 단 한 표도 주지 말라”고 했다. 멜랑숑을 비롯해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10명 중 현재 6명이 마크롱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페크레스, 이달고 후보와 녹색당(EELV) 후보 야니크 자도 대표는 “극단주의를 거부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제무르 후보와 민족주의 성향 니콜라 뒤퐁에냥 ‘약진하는 프랑스’ 후보는 “200만 명 이민자를 그냥 놔두는 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르펜 지지를 선언했다. 20일 예정된 생중계 TV토론이 마지막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간 레제코는 “2017년 르펜은 TV토론에서 극우적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이번 TV토론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연금 등을 두고 첨예하게 격돌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0일(현지 시간) 열린 프랑스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중도 진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극우 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각각 1, 2위를 차지해 5년 만에 재격돌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24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르펜 후보가 이기면 프랑스 첫 극우 및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마크롱-르펜, 5년 만에 재격돌 11일 개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은 27.6%, 르펜 후보는 23.4% 득표율을 기록했다.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당(LFI) 후보 21.9%, 극우 언론인 출신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 7.1%로 뒤를 이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가 2주 후 결선 투표를 벌인다.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은 1차에서 1, 2위를 차지한 뒤 2차에서 마크롱(66.1%)이 르펜(33.9%)에게 압승했다. 넉넉한 우세가 점쳐지던 마크롱 대통령은 1차 선거 직전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안긴 ‘맥킨지 게이트’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르펜 후보는 고속도로 통행료,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같은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워 8일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2%포인트까지 좁혔다. 그러나 이날 1차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의 격차 4.2%포인트는 2017년 대선 1차 선거 격차(2.7%포인트)보다 크다. 일간 르피가로는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집중 부각한 마크롱의 선거 막판 캠페인이 일부 통했다”고 분석했다.● 친(親)세계화 진보주의 VS 반(反)이민 민족주의 마크롱 대통령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8일 엘라브(Elabe) 등 여론조사기관 조사는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51~54%, 르펜 후보 46~49%로 접전을 펼칠 것을 예상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과 르펜의 격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구조를 지배한 전통적 좌우 대결이 끝나고 마크롱으로 대변되는 친세계화, 친유럽연합(EU) 중도주의와 르펜이 상징하는 반이민·반EU 민족주의 대결로 바뀌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프랑스 전통적 좌우 거대 정당인 우파 공화당(LR)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8%, 좌파 사회당(PS)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1.7% 득표에 그쳤다. 결선투표 역시 ‘극우 대통령’ 집권을 막아온 좌·우·중도 정치 연대 ‘공화국 전선’과 “무슬림에게 프랑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반이민전선이 얼마나 화력을 집중하느냐에 달렸다고 일간 르몽드는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0일 1차 투표 승리연설에서 “극우에 반대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이 2차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관건은 1차 선거에서 탈락한 후보자들 표가 어디로 쏠릴지에 있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선거에서 3위로 급부상한 멜랑숑 LFI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했다. 멜랑숑 LFI 후보는 1차 선거 탈락 직후 지지자들에게 “르펜한테는 단 한 표도 주지 말라”고 했다. 멜랑숑을 비롯해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10명 중 현재 6명이 마크롱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페크레스, 이달고 후보와 녹색당(EELV) 후보 야니크 자도 대표는 “극단주의를 거부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제무르 후보와 민족주의 성향 니콜라 뒤퐁에냥 ‘약진하는 프랑스’당 후보는 “200만 명 이민자를 그냥 놔두는 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르펜 지지를 선언했다. 20일 예정된 생중계 TV토론이 마지막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간 레제코는 “2017년 르펜은 TV토론에서 극우적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이번 TV토론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연금 등을 두고 첨예하게 격돌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그의 저항시를 새기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러시아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역사에서 그런 인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후에는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체르니우치, 비지니차 등 우크라이나 서남부 일대에서 지난달 말 취재했다. 가는 곳마다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에 맞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저항시를 쓴 인물이다.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후 병이 생겨 47세에 요절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외세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되새겨진다. 전국에 1000개가 넘는 동상이 건립됐다. 우리로 치면 윤동주 시인인 셈이다. 동상 앞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며 그의 시 ‘떨치고 일어나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자유의 새 나라에서 나를 기억해다오’(‘유언’)를 외치는 시민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셰우첸코의 시를 외치는 자신들의 모습이 ‘왜 되풀이되냐’고 호소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침공의 역사가 매번 반복되지만 이를 사전에 막아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분노, 후회, 연민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직후 독립을 선포했지만 5년 후인 1922년 소비에트연방에 다시 편입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소련에 휘말려 700만 명이 사망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친러시아 혹은 친서방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불안정한 내부 정치가 이어졌고, 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 때문일까. 남부 마리우폴에서 피란 온 소피아 씨는 기자에게 “죽은 사람들을 되살릴 수 없듯이, 이미 일어난 전쟁 참상은 되돌리기 힘들다”며 “러시아를 증오하면서도 ‘전쟁이 발생할 상황을 왜 우리가 막지 못했을까’란 생각도 자주 든다”고 했다. 민병대 AK 소총 훈련에 참가한 마리나 씨도 “자유를 위해 싸우려 하지만 후세대는 더 이상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추진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자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나토 가입 계획을 담은 개헌을 단행했다.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핵심 명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는 10∼20년 내로 가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나토 내부의 판단이다. 최근 러시아와의 양국 간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측은 ‘나토 가입 포기 및 중립화’를 정전 협상 카드로 내건 상태다. ‘집단 학살’이 발견된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 이어 9일에도 수도권 마카리우 지역에서 민간인 수백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다. 전쟁이 난 국가의 현장을 오가다 보니 많은 침략을 겪어온 우리의 역사가 자주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국가의 외교, 나아가 미래를 멀리 보면서 스스로 정교하게 다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 공포에 빠져 있는 가운데 10일 프랑스에서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졌다. 당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선거 막판 극우 국민연합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강력한 반(反)유럽연합(EU), 반난민 정책을 주창하는 르펜 후보가 승리하거나 마크롱 대통령과 접전을 벌이면 유럽이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이번 투표는 10일 오후 8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3시)에 끝났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24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는 2017년 대선 때도 결선투표에서 맞붙어 각각 66%, 34%를 얻었다.○ 마크롱-르펜 격차, 한 달여 만에 크게 줄어마크롱 대통령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사태 해결에 깊숙이 관여했다. 전쟁 상황에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의 심리와 맞아떨어져 2월 28일 조사에서 그는 르펜 대표를 12%포인트 차로 앞섰다. 지난달 초 상원이 마크롱 정권이 연금 개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등에서 맥킨지 등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줬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에만 8억9390만 유로(약 1조2000억 원)를 자문료로 지불해 2018년(3억7910만 유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썼다. 맥킨지가 2020년에만 3억29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최소 10년간 법인세를 한 차례도 납부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1차 투표 이틀 전인 8일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대표 간 격차는 2%포인트로 좁혀졌다. 소셜미디어에는 ‘#맥킨지게이트’ 해시태그가 증가하고 르펜 대표 또한 “국가적 스캔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내내 감세, 규제 완화 등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부자들의 권력자’ 이미지를 쌓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젊은층의 결집이 르펜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외교안보, 연금 개혁 등 거시적 사안에 치중한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그가 30세 이하의 소득세 폐지, 기초연금 인상, 물가 상승 비판 등 생활 밀착형 의제에 집중한 것이 유효했다는 의미다. 18∼24세 유권자의 56%는 “24일 결선투표에서도 르펜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2016년 미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가 투표장에서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소위 ‘샤이 르펜’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신 “르펜 선전은 EU 전체 위기”마크롱 대통령이 1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1차 투표에서는 예상보다 부진하더라도 양자 대결인 결선투표에서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르펜 후보에게 낙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합이 대선은 물론이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호성적을 거두면 러시아 제재 등 EU 차원의 단합 행동이 어려워져 유럽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르펜 후보가 과거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공감하는 발언을 해왔고, 국민전선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그가 승리할 경우 브렉시트 후 EU의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르펜이 승리하면 미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브렉시트 당시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