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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8일 서울에서 열린 5년 만의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정면으로 겨냥해 “압제 정권(repressive government)”이라고 비판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핵심 대북정책이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이 이날 회담 전 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에서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계속 추구하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것인지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군사 도발까지 위협했지만 미국이 대북 접근법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권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북한을 고려해 인권 문제 거론을 피해 온 우리 정부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그럼에도 한국은 북한 비핵화 목표와 인권 문제에 방점을 찍은 미국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르다”며 “조속한 대화 재개”를 되풀이해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엇박자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美 “압제 정권” 김정은 정면 비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2+2 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부터 북한을 정조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압제적 정권 밑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authoritarian regime)이 자국민들에게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고 한 데 이어 비판 수위를 한층 더 높여 김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 블링컨 장관은 대북정책의 “압박 옵션과 향후 외교적 옵션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정책의 목표는 매우 분명하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북한이 미국과 우리 동맹에 가하는 광범위한 위험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최선희는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기를 감수하고 받아들일 준비도 안 돼 있는 미국과 마주 앉아 봐야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다”며 “싱가포르나 하노이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합동 군사연습을 벌여놓기 전날 밤(7일)에도 제3국을 통해 우리와 접촉에 응해줄 것을 다시금 간청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우리와 한 번이라도 마주 앉을 것을 고대한다면 몹쓸 버릇부터 고치고 시작부터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블링컨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 차례 이어진 최선희 담화 관련 질문에 직접적인 답은 피하면서 오히려 김 위원장을 직접 겨냥했다. 북한의 위협에 상관없이 원칙적 대북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 美 “북한 비핵화”, 韓은 “한반도 비핵화가 맞다” 한미는 이날 대북정책과 관련해 “긴밀한 조율”을 강조했지만 2+2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한미 2+2 회담 뒤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블링컨 장관이 강조한 “비핵화” “북한 인권”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 방문 전 일본 도쿄에서 발표한 미일 2+2 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못 박은 것과 대비된다. 한미 2+2 공동성명에서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런 문제들이 한미 간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 아래 다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블링컨 장관이 당장 대화 재개보다 북한 인권과 대북 억지 및 압박에 방점을 찍은 반면 회견에 함께 나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북핵 문제는 시급한 사안” “북-미 비핵화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강조했다. 특히 정 장관은 ‘북한 비핵화가 맞느냐, 한반도 비핵화가 맞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회견에서 앞서 블링컨 장관이 “북한의 비핵화”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바로 이를 뒤집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 정 장관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서 우리 정부가 스스로 핵무기 포기 선언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도 비핵화를 같이 하자는 의도”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장 억제를 없애야 한다는 의도에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는 일반화된 용어이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최지선 기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방장관이 17일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이 자국민들에게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날 오후 방한한 블링컨 장관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기본권과 자유를 옹호하고 이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맞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우리가) 함께 직면한 도전”이라며 “한국 및 일본을 포함한 우리의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에 대해서도 “강압과 위협을 사용해 체계적으로 홍콩 경제를 침식시키고 있다. 대만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신장위구르의 티벳의 인권을 유린하고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을 위반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지역(인도태평양)을 포함한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 근간이자 동북아와 세계 평화번영의 핵심축”이라며 “오늘 회담 결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확고히 정착해서 실질적 진전을 향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이 이날 예상과 달리 북한과 중국에 대해 쏟아낸 강경 발언은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이번 방한의 주요 목적이 한국에 중국 견제 동참을 요구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북한 인권 문제를 대북정책 핵심으로 삼아 북한에 제기할 방침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현해온 우리 정부와 달리 블링컨 장관은 “북한 비핵화”라고 콕 짚어 강조했다. 중국과 관계를 중시해 미중 사이에서 ‘전략성 모호성’을 취하는 동시에 북한과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인권 문제 거론을 피하며 대북 유화 기조를 유지해온 문재인 정부가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1년 만에 미 국무, 국방 장관이 동시 방한해 18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단된 한미 외교·국방장관(2+2)회담을 여는 데 대해 “공고한 한미동맹 강화의 신호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번 두 장관의 방한에서 북한과 중국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을 제대로 좁히지 못할 경우 남은 정부 임기 1년간 양국 간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도 이날 이날 두 장관의 방한 목적을 설명하는 ‘철통같은(Ironclad) 한미동맹 강화’ 제목의 자료에서 “북한은 국제평화와 안보 세계 비확산 체제의 심각한 위협”이라며 “미국은 북한 인권 보호와 증진뿐 아니라 대북 억지 강화와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당장 북한과 협상에 나서기보다 압박을 통해 북한의 심각한 위협을 억지하는 데 우선 초점을 두겠다는 것.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과 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전례 없는 도전(challenges)으로 인해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보와 안정을 제공하는 핵심 국가”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위협과 중국의 역내 질서 도전에 맞설 한미일 안보 협력의 필요성도 먼저 제기했다. 국방부는 “두 장관이 북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협력적인 동북아 안보 구도 형성을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이 “한반도와 동북아 주변, 인도태평양 지역이 직면한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 서 장관은 “국방부 차원에서 예정된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이 차질없이 추진될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군은 전했다. 국무부도 이날 자료에서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공고하고 효과적인 한미일 3각 관계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지키며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규칙을 증진하기 위한 우리의 공동 안보와 이익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한일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는 없다”고도 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또는 화상으로 회담하거나 서신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남북 간 합의 이행을 재확약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임기 1년 동안 정상 수준에서 판문점선언을 되살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경색 국면인 남북관계를 2018년 수준으로 복원시키겠다는 것. 반면 북한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 “3년 전(2018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관계 전면 단절을 위협하고 나섰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6일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남북 정상이 다시 확인해 복원하는 것이 목표”라며 “김 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문 대통령이 방문할 수도 있고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날 수도 있다. 화상회담이나 서신을 통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복원한 남북관계를 차기 정부로 넘겨 임기 초를 비교적 안정된 남북관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하지만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8∼18일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남조선 당국(한국 정부)이 앞으로 상전의 지시대로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그처럼 바라는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특히 “남조선 당국은 또다시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명백한 것은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번 담화에서 김여정은 미국을 겨냥해 “4년간 발편잠(마음 편한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 기자}

남북 정상이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재확인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임기 말 3년 전 남북관계를 복원해 차기 정부에 넘기겠다는 목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다음 달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보고 올해 7월 도쿄 올림픽,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등을 활용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합의를 공개적으로 되살릴 기회를 찾겠다는 것이다. 반면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16일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는 과정에서 “남조선 당국(한국 정부)이 앞으로 상전(미국)의 지시대로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그처럼 바라는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재확약하려는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9·19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위협했다. 김여정은 대미·대남 총책이다. 3년 전인 2018년의 남북관계를 되살리려는 정부의 구상과 2018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한 북한의 입장이 묘한 대조를 이룬 것. 김여정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하루 전인 이날 미국에도 군사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평양선언 재확인”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을 재확약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 위원장의 방남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판문점회담 △화상회담 △서신 교환 등을 꼽았다. “2018년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을 다시 확인하면 이후 남북관계가 더 진전되지 못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안정된 남북관계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남북 정상이 다시 나서 2018년 합의 이행을 보장해야 남은 임기 1년 안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결국 북-미관계가 중요한 북한은 우리가 바이든 행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히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남북관계 복원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 北은 “임기 말 남조선 당국 고통스러울 것” 하지만 김여정이 담화에서 거친 표현으로 남북관계 전면 단절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은 정부의 임기 말 구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한국 정부)은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이런 상대와 마주 앉아 그 무엇을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금 확증하게 된 결론”이라고 했다. 특히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당중앙(김 위원장)이 이미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했다”며 “이것이 북남관계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경고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연합훈련에 대해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이라며 정부에 “태생적인 바보” “떼떼(말더듬이)” “미친개” 등 막말도 쏟아냈다. 김여정은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정리와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남북 협력 교류 관련 기구 폐지 같은 “중대 조치를 최고 수뇌부에 보고드린 상태”라고도 했다. 특히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며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 군사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 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담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되는 노동신문 2면에 실린 만큼 단순한 경고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담화에는 바이든 행정부에 침묵하던 북한의 첫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김여정은 “앞으로 4년간 발편잠(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도쿄에서 미일 외교·국방장관 2+2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북 전략은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 대해 재검토 중이다. 특히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인권 침해 문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2018년 3월 6일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온 뒤 이렇게 발표한다.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2018년의 ‘봄날’은 지금은 외교부 장관이 된 정 당시 실장이 전한 이 한마디로 시작됐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이 전언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지난달 정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위원장이 실제 정 장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당시 정말 무슨 말을 했는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라는 얘기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정 장관을 수석으로 한 특사단을 1시간 정도 만났다. ‘비핵화’라는 단어는 썼다고 한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무조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바로 “미국의 핵 공갈과 적대시 정책이 없다면 우리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비슷하게 “군사적 위협이 중단되고 체제 안전 보장이 있으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미국의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지 않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당시 평양 방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말을 먼저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밝히지 않은 새로운 비핵화 입장을 김 위원장이 천명한 것으로 읽혔다. 당시 김 위원장의 실제 발언을 접한 정부 인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큰일 났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북한이 계속 해오던,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를 가지고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을 오랫동안 상대해본 당국자라면 김정은의 이 ‘조건부’ 발언이 새로운 입장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성명을 발표한다. “핵이 동원되는 전쟁 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고 안전 담보가 실지로 이뤄진다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돼야 핵·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정 장관에게 한 말과 놀랍게 똑같은 논리다. 2016년 성명에는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라는 말도 포함됐다. 그래서일까.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에 ‘한반도 비핵화’가 명문화됐음에도 하노이 회담은 비핵화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미국은 협상이 진전될수록 김정은에게 핵 포기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커져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외교 소식통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review)에 두세 달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 대상에는 2018년 3월도 포함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부터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맡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차관보가 아니고 왜 ‘대행’인지부터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인 그가 대행에 임명돼 서둘러 미국으로 귀국한 배경도 미스터리였다. 그는 한반도 문제에 정통하지만 동아태 차관보를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럼 왜 그 넓은 태평양을 건너가 임시직을 맡은 걸까. 한미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이 확인해 보니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정무직인 동아태 차관보는 미국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함께 떠난다. 보통은 새 행정부의 새 차관보가 올 때까지 부차관보가 대행을 맡는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지우기(ABT·Anything but Trump)를 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에 비유하면 트럼프 시대에 이른바 ‘부역’한 사람들에 대해 ‘적폐청산’ ‘인적청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동아태 부차관보도 그 대상으로 찍혔다고 한다. 그래서 부차관보 대신 태평양 건너의 김 대사를 불러들여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것. 이런 ‘적폐청산’은 국무부 전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든 사람들은 트럼프식 대북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트럼프 시절 북-미 비핵화 협상에 관여한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민주당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 그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9일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몇 차례 고사한 정 장관을 임명한 배경은 청와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렇다. “북한을 잘 아는 베테랑 외교관들이 미 국무부에 복귀한 만큼 그들과 대화가 될 관록 있는 외교관을 배치한 것”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 맞춰 우리도 외교안보 라인 체제에 변화를 준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주려 했다”고 한다. 다만 정 장관의 복귀를 바이든 행정부가 ‘변화’로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정부 관계자들도 “워싱턴 일각에서 정 장관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가 깊숙이 관여한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대해 바이든 사람들은 “무엇이 비핵화인지 합의하지 못한 채 트럼프에게 과시성 사진 찍는 기회를 줬다”고 본다. 한 정부 소식통의 얘기다. “북핵 문제가 시급하지만 지금은 북한보다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북한과 대화할 힘이 나온다. 바이든 사람들이 거부감 갖지 않도록 잘 조율하는 게 정말 중요한 시기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사람들이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만 우선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 장관은 어서 빨리 블링컨 장관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미국과) 다소 상이한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조율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런 그가 “여전히 김정은의 비핵화 의사를 믿는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걱정하는 미국과 불통이 자칫 정 장관 자신에게서 비롯될 수 있음을, 베테랑 외교관인 정 장관도 잘 알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이란 정부가 지난달 4일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포한 한국 선박 ‘한국케미’호 선원들을 2일 석방했다. 억류된 지 29일 만이다. 다만 선박과 선장에 대한 억류는 해제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날 “이란이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가 2일 지난달 4일 나포해 억류하고 있는 ‘한국케미’호 선원을 29일 만에 석방하고 출국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라 국내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 70억 달러(약 7조5600억 원)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한편으로 선박 나포 문제가 장기화되면 동결자금 문제를 해결할 동력이 약해진다고 설득한 결과 이란 측이 선원 석방을 전격 결정했다고 당국자들은 밝혔다. 이란 외교부도 석방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 측은 동결대금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면서 최대한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2일 “이날 오후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정무차관의 통화에서 아락치 차관이 한국케미호 선박과 선장은 잔류시키는 조건으로 한국인 4명 등 선원 19명을 즉시 석방하고 귀국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의 석방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고 석방과 동시에 이란 정부가 주장하는 선박 나포 이유인 ‘환경오염’ 혐의에 대해 이란 국내에서 사법적 절차가 시작된 것이라고 당국자는 전했다. 이제부터 한국케미호를 기소할지 재판을 통해 가리겠다고 알려왔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석방된 선원들이 선박 관리를 위해 이란을 떠나지 않고 잔류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날 이란 관영 IRNA통신에 따르면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한국 정부의 요청과 이란 사법부의 지원에 따라 페르시아만 해양오염을 저지른 혐의로 구금됐던 한국 선박 선원들에게 인도적 조치로 이란을 떠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하티브자데 대변인은 “선박과 선장의 규정 위반에 대한 조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의 석방 결정은 지난달 10∼12일 최 차관이 이란을 방문한 지 21일 만에 이뤄졌다.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던 이란 정부는 최근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한 당국자는 “양국 차관 간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이란 측에 동결자금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선박 나포 문제가 장기화돼 정치적 문제가 되면 동결자금을 풀 수 있는 동력이 약해진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란 제재 문제를 풀 열쇠인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설득해 동결자금 문제를 풀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줬고 그에 대해 이란 측이 ‘한국 측의 진정성을 잘 받아들였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란 측은 우리 정부에 “그렇다면 선박 억류 문제로 한-이란 관계의 허들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한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시사한 만큼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동결자금 문제에 유리할 것이라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아락치 차관과 최 차관은 이날 통화에서 동결자금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이 자산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이 통화에서 한국 측은 이란의 자산 동결을 해제하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겠다고 강조했다고 하티브자데 대변인은 전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 / 최지선 /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뒤 첫 공식 대북 메시지로 “새로운 전략(new strategy)을 채택하겠다”고 밝히면서 2018년 싱가포르 선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옛 정책’ 계승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과 온도 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밝힌 ‘트럼프 정부 성과 계승’을 미국에 무리하게 설득할 경우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미 간 파열음이 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새로운 전략’의 의미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의미 파악에 나섰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22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미리 준비한 답변을 읽어 나갔다. 그는 “우리는 미국인과 동맹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면서 ‘대북 압박 옵션’ 등을 거론했다. 그는 “대통령의 관점은 의문의 여지없이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다른 핵 확산 관련 활동이 국제 평화와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분명히 대북 억제에 핵심 이익(vital interest)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억지에서 협력하기 위해 미국은 (아시아) 지역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도 했다. ‘새로운 전략 채택’의 공식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싱가포르 합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18일 신년 기자회견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뚜렷한 대북정책이 없었던 ‘전략적 인내’ 방침에서도 탈피해 북핵 억제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새 정부가 이전 정부를 계승한다거나 현 전략 그대로 가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긴밀히 공조하겠다고 한 만큼 한국과 협의를 통해 대북 정책 방향을 수립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간 톱다운 방식 대북 접근법을 실패로 규정한 바이든 행정부에 우리 정부가 2018년 싱가포르 회담 때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북-미 회담을 중개하려 할 경우 미국이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백악관의 발표는 트럼프 행정부를 계승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당장 협상보다 북핵 문제의 심각성과 대북 억지를 강조한 만큼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와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을 주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임기 초반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높아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백악관이 밝힌 ‘새로운 전략’이 대북 압박을 강화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한 뒤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때처럼 북-미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여러 국가가 협상에 참여하는 다자 해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대북 제재의 구멍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 최상의 핵 거래 모델은 이란”이라며 다자 방식의 북핵 협상과 이를 위한 대북 제재 강화를 강조해 왔다. 이런 가운데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 시드니 사일러 북한 담당관이 22일 “북핵 문제의 재다자화(re-multilateralization)”를 강조하면서 “6자회담과 같은 다자적 접근”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서 주목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국·일본 담당 보좌관을 지낸 그는 국무부 등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 방식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미국이 JCPOA에 복귀하는 과정이 북한에 중요한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박효목·권오혁 기자}

전직 고위 외교관의 아들인 신희석 씨(39)는 청소년기 절반을 아버지를 따라 미국 일본 스리랑카 등 외국에서 보냈다. 국제법 전문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국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대학 시절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는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 국제인권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아버지가 뉴욕 주재 유엔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로 있던 2004년 뉴욕에 갔다가 비정부기구(NGO) ‘국제형사재판소를 위한 연합(CICC)’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경험이 삶의 방향을 바꿨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국제 범죄와 인권 침해 사건을 연구하고 이를 바로잡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알지 못했다. CICC에서 만난 재미교포 앨리스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들을 들려줬다. “너무 놀랐어요.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이야말로 ICC에서 다뤄야 하는 사건들인데….” 미얀마에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시리아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TV뉴스를 통해 처참한 실상이 공개되고 피해자들의 육성 인터뷰가 전파를 탄다. 하지만 극도의 폐쇄 사회인 북한은 수백만의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텐데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적었다. 앨리스와의 만남 이후 그는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하버드대 로스쿨 석사과정에서 국제법을 공부한 것도 “국제인권법을 ‘도구’로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박사학위를 딴 그는 지금 북한 인권 NGO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에서 법률분석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북한 인권 운동이 인류 보편적 권리인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제법을 통한 체계적 접근이 없어 진영 논리에 휘둘렸다는 점에서 신 분석관의 존재는 특별하다. 그를 지금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워싱턴 조야가 대북전단금지법에 크게 분노하고 있는데도 이를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를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특히 그는 최근 미국 등 국제사회 여론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과거에는 북한을 비판했지 우리 정부를 비판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침해에 가담하는 것 아니냐’고까지 비판합니다.” 실제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외교안보 인사들과 가까운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본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워싱턴에서 일으킨 실망과 분노의 정도를 청와대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 분석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해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게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며 “인권 문제에 더욱 엄격한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어떻겠느냐”고 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되는 3월 이 문제가 한미관계 이슈로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분석관의 아버지는 현역 시절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온 신각수 전 주일대사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등 “대북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성과 계승’을 미국에 설득할 외교부 장관으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했다. 정만호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정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장으로 3년간 재임하면서 한미 간 모든 현안을 협의 조율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행을 위한 북-미 협상, 한반도 비핵화 등 주요 정책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정 후보자는 2018년부터 3년간 진행된 톱다운 방식 북핵 협상의 산증인”이라며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의 의미와 북핵 협상 과정, 우리의 대북 구상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 측에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고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이 이를 미국에 설득할 외교 수장으로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 원년 멤버인 정 후보자를 낙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후보자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가 될 블링컨 지명자는 19일(현지 시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될 일은 대북 접근법과 정책 전반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문제는 기존 행정부들을 괴롭혔던 어려운 문제이며 나아지지 않고 사실 더 악화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해 왔던 대북 정책을 접고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할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싱가포르 선언 계승’을 조급하게 밀어붙일 경우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파열음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는 20일(현지 시간)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에 일부 책임이 있는 정 후보자가 차기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됐다”며 “정 후보자는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자 (북-미) 양측을 오도(misleading)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 교체 6시간여 만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외교부 내 ‘북미통’으로 평가받는 김형진 서울시 국제관계대사로 교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는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과 권칠승 의원을 각각 지명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박효목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20일·현지 시간)이 13일로 D―7을 맞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외교 라인 인선도 마무리 단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8차 당 대회를 통해 대미 진용의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실무 협상을 전담하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면 북-미 대화 여건이 예상보다 빨리 갖춰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핵 선제 타격”을 거론하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북-미 간 협상 재개냐, 강 대 강 대치냐를 가를 운명의 1년이 시작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12일 “바이든 행정부 측에 대북정책특별대표 임명을 가능한 한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웬디 셔먼 부장관 지명자의 청문회가 이르면 이달 안에 열릴 수 있고 이후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임명되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첫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정책특별대표 임명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10일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통일전선부장에서 해임했던 강경파 김영철을 다시 통전부장에 기용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함께 대미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링컨 장관과 셔먼 부장관뿐 아니라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까지 모두 북한 문제 베테랑들이다.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미국의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핵개발을 밀고 나가겠다고 공을 넘긴 상황”이라며 “하지만 바이든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의 협상, 도발 패턴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은 접근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동아일보에 “김 위원장의 핵 능력 증강 계획은 핵미사일에 대한 공세적 추구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바이든 행정부에 알린 것”이라고 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 선제 및 보복 타격”을 거론하면서 핵무기 장착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개발을 처음 공식화했다. 비핵화 협상 3년 만에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직접 타격할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들의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며 “핵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고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밝혔다. 핵탄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핵추진잠수함은 미국 해안까지 은밀히 침투해 핵미사일을 기습 발사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 “1만5000km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하는 명중률을 더욱 제고해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할 데 대한 목표가 제시됐다”고 했다. 한미 당국은 김 위원장이 “신형탄도로켓에 적용할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의 탄두 개발 연구를 끝내고 시험 제작 준비를 하고 있다”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무기를 처음 언급한 점도 주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한국을 겨냥한 핵공격 위협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최대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앞으로도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에서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북남(남북)관계의 현 실태는 (2018년)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며 “방역·인도주의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 문제를 꺼내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구상,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강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 선제 및 보복타격”을 거론하면서 핵무기 장착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개발을 처음 공식화했다. 2018년 시작된 비핵화 협상 3년 만에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직접 타격할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들의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을 “주적”이라고 밝혀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국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 대회 나흘째인 8일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며 “핵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고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밝혔다. 핵탄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핵추진잠수함은 미국 해안까지 은밀히 침투해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기습 발사할 수 있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다 위협적으로 평가된다. 한미 당국은 김 위원장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한미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활공무기 개발을 처음 언급한 점도 주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신형탄도로켓에 적용할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의 탄두 개발연구를 끝내고 시험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초음속활공무기는 마하 5 이상의 초고속으로 비행한 뒤 변칙 낙하해 한국과 미국이 운용중인 방공망으론 요격이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또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한국을 겨냥한 핵공격 위협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바이든 행정부에 내놓은 첫 메시지는 강경했다. 그는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한 뒤 “대외 정치활동을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북남(남북)관계의 현 실태는 (2018년)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남조선(한국) 당국은 방역·인도주의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꺼내들고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조한 보건방역 협력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 청와대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내부 결속용 메시지로 보인다“며 진화에 나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한국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이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입 비용으로 국내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로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 정부가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약 7조5600억 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맞받아치면서 미-이란 갈등 속에 불거진 이번 나포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확보하려는 코로나19 백신 비용을 한국에 원화로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으로 납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아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으나 송금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이 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이란 측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은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지원해 왔으나 이란 강경파는 수출대금 규모에 비해 한국의 지원이 적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 시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인질범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금 70억 달러를 아무 근거도 없이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미 국무부는 대변인 명의로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했다. 정부에 따르면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 70억∼90억 달러(약 7조5600억∼9조7200억 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날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한국인 5명 등 억류된 선박 선원들의 조속한 석방을 요청했다. 외교부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0일 이란을 방문해 백신 비용 지불 문제를 협의하는 동시에 조만간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해 나포된 선박과 선원의 석방을 요구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데 대해 “국가안보실이 유관 부처와 대응책을 긴밀히 협의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5일 밝혔다.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박효목 기자}

4일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 정부가 하루 만에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 70억 달러(약 7조5600억)를 우리 정부가 “인질로 잡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선박 나포의 배경에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해 자금을 동결시킨 한국에 대한 불만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한국과 갈등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이기 때문. 특히 이란 혁명수비대가 우리 선박을 억류한 시점은 정부가 동결 대금을 이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입에 활용하기로 하고 이란 정부와 비공개 협상을 벌이던 막바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결 자금으로 백신 구입 협상 중 “인질” 운운 AP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 시간)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이라는 관측을 부인하면서도 “이란 자금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했다. 이어 “누군가를 인질범으로 불러야 한다면 70억 달러가 넘는 우리 자금을 근거 없이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AP통신은 라비에이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동결된 자산과 연관성에 대해 가장 직설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라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 70억∼90억 달러(약 7조5600억∼9조7200억 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대금 중 최대 규모다. 이 밖에 한국은행에도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맡긴 초과 지급 준비금이 3조 원 이상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계정의 자금을 합치면 국내 은행에 최소 10조 원이 넘는 이란 자금이 있는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에게 나포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란이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란이 한국 내 은행에 동결돼 있는 수출대금을 백신 구입 비용으로 내달라고 한국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핵개발에 매달리던 이란을 제재하기 위해 2012년부터 국제 달러 금융 거래 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이란중앙은행 등 30개 금융기관을 퇴출시켰다. 이 때문에 백신 비용을 달러로 지불할 수가 없다. 이란의 요청을 받은 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특별 승인을 받은 뒤 이란 백신 구입 비용을 코백스 퍼실리티에 지급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가 승인 사실을 이란 측에 전했음에도 이란 정부는 송금 과정에서 달러화로 바꿔 미국 은행으로 자금이 들어가면 미국 정부의 동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해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 차관 이란 방문 때 무리한 요구해올 수도 특히 한국 선박이 나포된 4일은 한-이란 간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방문하기로 한 10일을 불과 엿새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혁명수비대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을 납치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정부 일각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이란 주요 이권을 장악한 강경파로 한국이 원유 대금과 맞바꿔 이란에 제공하는 물품 액수가 너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이란이 코로나19 백신 구입 비용으로 활용하기로 한 액수는 1680만 도스(회) 접종 분량에 해당하는 2억4400만 달러(약 2650억 원)로 추정된다. 이란이 강경파를 내세워 이 기회에 이란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이란과도 잘 지낼 수밖에 없는 한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지난해 동결 대금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제공해 왔다고 밝히면서 “이란 강경 보수파에서 한국이 동결 자금 규모에 비해 (이란에 제공하는 액수가) 아직도 조금이고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선박 나포 문제와 동결 자금 문제를 같이 풀어보겠다는 구상이지만 이란 정부가 백신 구입 비용보다 더 많은 동결 자금을 이란에 제공해야 한다고 무리한 요구를 해올 수도 있다. 이란 외교부 측은 “선박 억류와 원유 대금을 연계해 협상하자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하지만 이란 테헤란타임스에 따르면 에스하그 자항기리 이란 제1부통령과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은 2일 만나 최 차관의 이란 방문과 관련해 “코로나19 백신뿐 아니라 원자재, 의약품, 석유화학,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물품들을 우리의 돈과 맞바꿀 우선 교환 품목으로 제시하고 이에 한국이 얼마나 협력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보자고 논의했다”고 보도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김형민 기자}

한국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 케미호’를 나포한 이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입을 위해 국내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제재로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 정부가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약 7조6000억 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맞받아치면서 미-이란 갈등 속에 불거진 이번 나포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비용을 한국에 원화로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으로 납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아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으나 이란 측에서 송금 과정에서 미국 정부에서 이 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이란 측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은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지원해왔으나 이란 강경파는 수출대금 규모에 비해 한국의 지원이 적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 회견에서 “인질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금 70억 달러를 근거 없는 이유로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미 국무부는 대변인 명의로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했다. 정부에 따르면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 70억~90억 달러(7조5600억~9조7200억 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날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한국인 5명 등 억류된 선박 선원들의 조속한 석방을 요청했다. 외교부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0일 이란을 방문해 백신 비용 지불 문제를 협의하는 동시에 조만간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해 나포된 선박과 선원의 석방을 요구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데 대해 “국가안보실이 유관 부처와 대응책을 긴밀히 협의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5일 밝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최지선·박효목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위협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나.” 중국 측 인사가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중국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미국이 중국을 괴롭히는 한 중국도 대북 제재 구멍을 없애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 주최로 열린 한중 언론교류 화상포럼에 토론자로 참가했더니 중국 외교관을 양성하는 외교학원의 쑤하오(蘇浩) 교수도 기자의 질문에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희망하지만 현재 미중 갈등이 너무 뚜렷하다. 미중 간에 (관련)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밝혔다. 중국이 당장 북핵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핵은 북-미 간 협상 문제이니 미국과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외교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고 북핵 동결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니 협상을 재개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다.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때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톱다운 방식의 정상 간 담판으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했다. 자기 과시를 좋아했던 트럼프 스타일 때문이긴 했지만 한국과 미국의 북핵 실무 협상자들은 실제로는 톱다운보다 보텀업을 원했다. 문제는 한미가 실무협상을 통해 제대로 된 합의안을 올려 정상 담판을 하자고 해도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까지 날아가도 북한은 실무협상을 거부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때는 회담 일주일 전에야 실무협상이 시작됐지만 북한 협상대표 김혁철은 “결정은 김정은 동지가 한다. 나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달 방한 때 얘기한 것처럼 북한에는 실무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북한을 바이든 행정부가 선호하는 보텀업 실무협상으로 끌어내려면 우선은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북 제재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인사의 저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만큼은 미중 갈등과 상관없이 협력하자고 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중국 입장에선 미중 관계가 북핵 문제보다 상위 개념이다. 중국은 대북 제재로 어려운 북한에 문을 열어주고 북한은 더더욱 중국에 밀착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톱다운이든 보텀업이든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내기 쉽지 않다. 다음 주면 김정은이 대외 메시지를 내놓을 8차 당 대회가 열린다. 정부 내 많은 인사들이 당 대회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협상 기회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중국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3년간 한미 실무협상팀의 힘든 노력에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 비핵화 협상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21일 북핵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급)에 노규덕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이 임명됐다. 미-중-일-러 북핵 대표들과 전화통화 협의로 바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연정 라인이 외교안보에서 이렇게 센 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연정 마피아’다. 좀 심한 것 아니냐.”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외교부 2차관에 최종문 전 주프랑스 한국대사, 국가정보원 1차장에 윤형중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이버정보비서관이 임명되자 정부 안팎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두 명은 모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특히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최종건 1차관까지 모두 이 대학 같은 과 출신이어서 외교부 지도부가 이른바 ‘연정 라인’으로 채워지게 됐다. 특정 대학, 학과 출신이 외교부 장차관과 국정원 2인자인 1차장까지 휩쓴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밖에 차관급인 김준형 국립외교원장과 김기정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도 연정 라인이다. 연정 라인의 이례적인 득세 배경에는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종건 차관, 김준형 원장, 김기정 원장도 문 특보와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2017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연정 라인이 외교안보에서 이렇게 센 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연정 마피아’다. 좀 심한 것 아니냐.”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외교부 2차관에 최종문 전 주프랑스 한국 대사, 국가정보원 1차장에 윤형중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이버정보비서관이 임명되자 정부 안팎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두 명은 모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특히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최종건 1차관까지 모두 이 대학 같은과 출신이어서 외교부 지도부가 이른바 ‘연정 라인’으로 채워지게 됐다. 특정 대학, 학과 출신이 외교부 장·차관과 국정원 2인자인 1차장까지 휩쓴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밖에 차관급인 김준형 국립외교원장과 김기정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도 연정 라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이기도 한 김기정 원장은 2017년 현 정부 출범 직후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됐다가 각종 논란으로 사퇴한 적도 있으나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자리에 올랐다. 연정라인의 이례적인 득세 배경에는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종건 차관, 김준형 원장, 김기정 원장도 문 특보와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2017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유엔과 미국에 이어 영국, 일본까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이 법안의 시행을 재고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이기도 한 이낙연 대표까지 나서 국제사회의 지적을 반박하고 있어 자칫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르면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이 법안을 재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1일 ‘자유의 원칙을 일관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북한의 불합리한 요구에 굴복해 시민 권리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는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문재인 정권이 국회에서 여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것을 배경으로 여론이 갈리는 법안 통과를 강행하고 있다”며 “그 법에는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영국 데이비드 올턴 상원의원은 20일(현지 시간) ‘북한에 대한 초당파 의원 모임’ 공동 의장 자격으로 도미닉 라브 외교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재갈 물리기 법(gag law)’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하지만 민주당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개정에 대해 일각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북한 인권 증진에 역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엔 잘못된 정보에서 출발한 오해와 왜곡이 있다”며 “미국 의회 일각에서 개정법의 재검토를 거론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