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

전혜진 기자

동아일보 히어로스쿼드

구독 34

추천

해가 뜨고 지는 사이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취재합니다.

sunrise@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지방뉴스41%
사회일반40%
사고13%
인사일반3%
부동산3%
  • 실종자 찾았지만 잔해에 매몰돼 구조 난항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근로자 6명이 실종된 가운데 수색 사흘째인 13일 실종자 1명이 발견됐다. 하지만 붕괴된 건물 구조물 더미에 매몰돼 있어 신원 확인을 하지 못했고, 구조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소방 당국은 투입 인력을 교대하며 야간 수색을 이어갔다. 이날 오전 9시 반, 15시간 30분 만에 수색을 재개한 소방당국은 오전 11시 14분경 사고가 난 건물 지하 1층 계단 난간에서 실종자 1명을 발견했다. 이곳은 구조대원들이 전날에도 수색했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한 장소다. 구조대는 이날 내시경 카메라와 유사한 탐색 장비로 수색한 끝에 실종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실종자가 잔해 더미 속에 묻혀 있다 보니 즉각 구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문희준 광주 서부소방서장은 “콘크리트 잔해가 많아 사람의 힘만으로는 진입하기 어렵다”며 “낙하물이 떨어진 도로를 정비하고 진입로가 확보되면 중장비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실종자가 발견된 지하 1층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층도 계속 수색 중”이라며 “주야간 조를 교대하며 끊기지 않고 수색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 12명은 오후 4시 반경 소방당국 안내로 실종자가 매립된 현장 인근을 둘러봤다. 실종자의 조카 A 씨는 “사흘째 기다리기만 하며 너무 답답했는데 직접 들어가서 보니 위험해 보이긴 했다. 아무리 급해도 안전이 최우선이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야간 수색이 진행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종일 현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 측 임시 대표인 안정호 씨(45)는 어두운 표정으로 “폴리스라인과 20m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체감상 200km는 넘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정오 무렵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눈이 점점 굵어지자 일부는 한숨을 쉬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수색에 85명의 구조대원을 투입했다. 무인굴착기, 드론, 여진탐지기, 음향탐지기, 열화상 카메라 등도 총동원했다. 투입한 구조견도 전날 6마리에서 10마리로 늘렸다. 민간 구조견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인명구조견협회는 광주소방본부에 “수색을 돕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광주=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광주=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광주=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 2022-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벽보다 바닥 먼저 무너져…“콘크리트 덜 마른채 서둘러 층 올렸나”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12일 실종 근로자 6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재개됐지만 6시간 40분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수사당국은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했고, 광주시는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지역 현장 전체에 대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광주 서부소방서는 12일 오전 전문가 안전진단을 거친 뒤 오전 11시 20분 구조견 6마리와 ‘핸들러’(구조견 관리사)를 투입해 수색 작업을 재개했다. 전날 오후 8시 2차 붕괴 우려 등으로 수색 작업을 중단한 지 15시간 20분 만이다. 전문가들과 소방당국은 소방관 154명, 차량 33대, 열영상 탐지기, 드론 등 각종 장비를 투입해 오후 6시까지 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일부 수색견이 26∼28층 구간에서 특이 반응을 보여 해당 지역을 집중 수색했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진 못했다. 소방당국은 “안전을 감안해 야간 수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등의 조사 결과 붕괴된 곳은 201동 23∼39층의 서쪽 발코니 부분으로 확인됐다. 실종자 6명은 사고 직전 28∼34층에서 일했는데 사고 층에 매몰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몰 지점에는 아직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부 등은 콘크리트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넣는 작업) 도중 거푸집이 무너지면서 외벽이 붕괴해 발생한 ‘인재(人災)’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공기를 단축시키려고 서둘러 층을 올린 것 같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부실시공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 측은 “충분한 양생(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호하는 작업) 기간을 거쳤다”며 이를 부인했다. 그 밖에 강풍 등으로 타워크레인이 외벽과 충돌하며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며 “사전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대책 강화 등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12일 광주지검 광주경찰청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을 중심으로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됐고, 광주경찰청은 현장소장 이모 씨(49)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또 고용노동부는 현대산업개발 전국 주요 공사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광주 신축 아파트 외벽 왜 무너졌나 콘크리트 양생 불량 가능성… ‘무량판 구조’ 탓 우르르 무너졌나근로자 6명이 실종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공사 강행과 콘크리트 양생(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호하는 작업) 불량 등 부실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안전규정을 모두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강풍과 강추위에도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콘크리트 양생 불량” 가능성11일 오후 3시 46분. 화정아이파크 201동 39층 공사 현장에 있던 근로자 A 씨는 ‘쩍’ 하는 굉음을 들었다. A 씨는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낮 12시까지 1시간 반 동안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 작업)을 한 뒤 시멘트를 온풍기로 말리고 외벽을 비닐로 덮는 양생 작업 중이었다. 굉음이 발생한 지 1분 후 39층 서쪽 외벽이 붕괴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23층까지 무너졌다. 반대편에 있던 A 씨는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붕괴 당시 상황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이 ‘콘크리트 양생 불량’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일 39층 꼭대기 층에서 새로 콘크리트를 부어 넣었는데 벽은 남아있고 바닥이 무너지며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통상 건설업계는 아파트 한 층을 올리는 데 최소 7일에서 10일이 걸린다고 본다. 추운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얼면서 양생이 제대로 안될 수 있어 더 가열, 보온을 하며 작업한다. 양생은 콘크리트 작업에서 강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지만 공사기간을 줄이려고 부실시공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콘크리트 강도가 100이라고 하면 일단 70∼80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작업을 해야 한다”며 “양생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사 안전 담당 임원도 “상층부 거푸집을 고정할 때 하층부 천장 부분과 연결하는데, 콘크리트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거푸집을 고정하고 타설 작업을 진행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공사 현장에 몰아친 강풍과 추위가 붕괴에 영향을 줬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강풍으로 거푸집 고정 장치 등이 뽑히면서 충격이 발생해 외벽이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광주지역의 체감온도는 영하 1.8도였고 강풍이 불었다. 붕괴가 시작된 39층은 높이 119m로 지상보다 기온이 낮고 바람은 거세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은 “건물을 높이 지으면 모서리에 하중이 집중된다”며 “(강풍으로) 모서리 쪽 거푸집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과 연결된 타워크레인의 무게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강추위와 강풍이 밀어닥치면 가급적 타설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광주 서구 관계자도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작업시간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은 “사고가 발생한 201동의 경우 타설 후 12∼18일의 양생 기간을 거쳤다. 필요한 강도가 확보되기에 충분한 기간”이라며 “공기는 예정보다 빨라 무리하게 단축할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무량판 구조’가 사고 키웠나국토교통부 등은 1차적인 사고 원인을 갱폼(외벽 거푸집) 붕괴로 추정하고 있다. 갱폼이 무너지면서 아파트 외벽이 버티지 못하고 연이어 무너졌다는 것. 특히 건설업계에선 이 아파트가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것도 사고 규모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량판 구조 건물은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건축된다. 하중을 수평으로 지탱하는 보가 없다 보니 39층부터 23층까지 16개 층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도미노 붕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외부 충격이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붕괴 당시 강풍이 불어 크레인이 흔들리다가 외벽과 충돌했고 이후 39층 옥상에 쌓여 있던 철근, 벽돌의 무게 때문에 대규모 붕괴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광주=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광주=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 2022-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실종자 가족 “더딘 수색에 상황 설명도 부실… 차라리 직접 찾겠다”

    “부디 살아만 계세요… 제발 돌아만 오세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실종된 근로자 6명의 가족들은 12일 사랑하는 가족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빌며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폴리스라인으로 출입이 통제된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눈물만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실종자 김모 씨(56)의 친척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동서(실종자 아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꿈에도 몰랐다”오후 6시경 소방당국은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드론이 촬영한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는데, 가족 일부는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실종자 김모 씨(66)의 아들은 “지난주까지도 아버지와 통화했는데 광주에서 일하신다고만 들었지, 이런 사고가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느라 전국을 돌아다니셔서 자주 못 뵈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실종자의 조카라고 밝힌 박모 씨(34)는 “(이모부가) 가족을 위해 주말에도 일을 나가시며 바쁘게 지내셨다”면서 “딸과 엄마(실종자 아내)가 현장에 와 있는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불이라도 비춰 달라”전날 오후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현장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은 강추위 속에 비닐 천막과 전기난로에 의지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일부는 “현장 관계자들의 구조 상황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2일 오전 1시 반경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유병규 대표가 현장을 찾자 실종자 가족들은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이 추위 속에서 (실종자가) 기절해 있다가 깨어나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 “살아있다면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게, 제발 공사장에 불빛이라도 비춰 달라”고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가 붕괴 우려로 수색 및 구조 활동이 지연되는 것을 두고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저기(공사장)에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납득할 수 없다”며 “직접 수색 안 할 거면 나라도 들여보내 달라. 내가 직접 찾아보겠다”고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인근 상인들도 수년째 문제 제기사고 현장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아파트 건축 공사가 시작된 2020년부터 공사장이 위험하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해 왔다고 했다. 홍석선 ‘아이파크 피해대책위’ 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공사는 날씨가 춥고 비가 오는 등 공사를 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공사를 강행했다”며 “사고 전에도 콘크리트 덩어리가 주변으로 떨어져 민원을 넣었고, 사고 당일에도 외벽에서 가루가 계속 떨어졌다”고 했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박태주 씨(58)는 “20년 동안 끄떡없던 건물이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고 갈라지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며 “구청과 시공사 측에 몇 번이고 민원을 넣어도 돌아오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에 이어 이번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광주시민들도 적지 않다. 조선대 건축과 대학생 이상훈 씨(26)는 “학동에서 사고가 난 지 6개월여밖에 안 됐는데 또 사고가 벌어졌다”면서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학동 붕괴 사고로 고교생 아들을 잃은 아버지 A 씨는 이날 직접 화정아이파크 현장을 찾았다. A 씨는 “지난 사고 이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유족을 찾아 진정성 있게 사과한 적도 없었다”며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광주=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광주=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광주=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 2022-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아날로그 즐기는 청년들 “LP판 바늘 내릴 때 ‘치직’… 가슴이 찌릿”

    《종이 신문을 가위로 스크랩하고 LP 음반을 수집하는가 하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한다. 부모 세대가 아닌 요즘 2030세대의 이야기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진 청년들의 모습을 들여다봤다.》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진 2030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6DP(6days.paper)’ 계정에는 가위로 오려낸 여러 신문 기사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속 신문의 기사 문장이나 칼럼 구절에는 여러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각종 이모티콘도 붙어있다. 인상 깊은 문장이나 글귀는 따로 적어놓기도 한다. 언뜻 봐선 정체를 알기 힘든 이 계정의 팔로어는 7일 기준 약 1만5600명. 지난해 5월 계정을 개설한 뒤 7개월여 만에 급성장했다. 가장 인기를 끈 게시물의 조회수는 약 10만 회다. 개인의 공부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유행했던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계정은 ‘신스타그램’(신문+인스타그램)이다. 주 6일 발간되는 일간지 중 8개(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한국일보)의 기사를 요약하고 스크랩한 것이 이 계정의 주요 게시물이다. 젊은층이 신문을 멀리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 계정 팔로어의 80.3%가 18∼34세다. 주로 ‘2030세대’인 것이다. 팔로어들은 24시간 동안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토리’ 형태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게시글에 “종이 신문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감상과 댓글을 남기며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30세대가 오래된 것의 장점을 재발견하는 ‘역주행’을 즐기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판을 즐기고,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집어 든다.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찾기도 한다. 익숙함이나 편리함 대신 직접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物性)’을 중시하고,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지금은 찾기 어려운 감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2030세대를 역주행 열풍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밑줄 치며 신문 열독하는 ‘2030’“다른 사람은 어떤 기사를 재밌게 읽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신문 지면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포털 사이트 기사만 보다가 ‘6DP’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니 신선하고 좋아요. ‘이런 게 신문 기사였지…’ 하고 새삼 신문 읽던 기억이 나요.” 인스타그램 ‘6DP’ 팔로어들이 이 계정에 보내는 반응이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진예정 씨(31)는 한 방송사의 라디오 PD다. 진 씨도 댓글을 남긴 팔로어처럼 지난날 신문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 중 한 명이다. 30대가 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진 씨에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던 진 씨는 불현듯 20대 초반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매체’였던 종이 신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신문을 읽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인, 친구들만 볼 수 있는 개인 계정에 자신이 읽은 신문 기사 관련 게시글과 감상을 짧게 올렸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진 씨는 자신처럼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있음을 실감했다. 신문 읽기 ‘역주행’의 수요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느낀 진 씨는 곧 ‘6DP’ 계정을 개설했다. 지금은 1만5600여 명의 팔로어와 함께 신문을 읽는다. 진 씨는 “신문을 읽으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해 이용자를 편협한 시각에 갇히게 하는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사진과 캡션(사진설명), 제목 등 지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집중해 콘텐츠를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는 것이 신문의 매력”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신문은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빼곡한 매체입니다. 손으로 직접 종이 신문을 넘기고, 밑줄을 치며 읽으면 그 콘텐츠를 ‘씹어 넘기고 있다’고 저절로 느껴져요. 앞으로 더 많은 팔로어들께 제가 느낀 재미와 매력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진 씨) 대학생 강지수 씨(24)는 ‘6DP’ 계정 덕분에 신문 읽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읽으면 별 생각 없이 화면 스크롤만 내리면서 텍스트를 보게 된다”며 “지면 기사를 읽으면 기사 배치와 편집을 확인할 수 있고,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수연 씨(24)는 ‘6DP’ 계정 콘텐츠를 즐기다가 다음 달부터는 자신도 신문을 구독하기로 했다. 이 씨는 “지면과 소통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25)는 “이 계정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신문 활용 교육(NIE·Newspaper In Education)을 하며 오려 붙이던 신문 지면을 떠올렸다. 원래 집에서 아버지만 신문을 보셨는데 한 달 전부터는 제가 가장 먼저 신문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이 계정의 한 팔로어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종이 신문의 매력을 알리는 계정을 만들어줘 정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래된 것’의 고유한 재미 2030세대 사이에서 LP판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애림 씨(35)는 LP 음반 수집가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월 1만 원 정도를 내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기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김 씨는 수십만 원을 들여 턴테이블을 마련하고 LP판을 구매해 음악을 즐긴다. 김 씨는 “단순히 음악 감상이라고만 생각하면 LP 음반을 통한 청음이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LP는 음악을 듣기까지의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과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문득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앨범을 하나하나 만지며 고르는 과정의 설렘, LP판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 느껴지는 소중함이 좋다”고 했다. LP 음반을 수집하는 양모 씨(30)도 “LP 음반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한 판에 수록된 곡의 수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며 “‘최애’ 가수의 소중한 LP 음반을 직접 만지고 소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을 때 들리는 ‘치직’ 소리도 이들이 꼽는 LP의 매력이다. 실제 LP판을 찾는 젊은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LP 상품 구매자 중 20대와 30대를 더한 비율은 2019년 27%에서 2021년 40.8%로 크게 늘었다. 2017년 문을 연 국내 유일 LP판 제작업체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지난해 주문량이 2020년에 비해 2.5배가량으로 늘었다”면서 “최근 공장 가동 시간을 늘렸다”고 했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음반 판매점 ‘바이닐앤플라스틱’ 관계자는 “매장 방문 고객 중 젊은층이 많아 최신 인기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음반을 만들어 선착순 판매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LP 음반을 찾는 고객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이들의 감성에 맞춰 디자인된 상품도 나오고 있다. LP판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을 깨고 흰색, 빨간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돼 젊은 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LP판이 제작되고 있다. 이른바 ‘컬러반’이다. 흩뿌린 듯한 무늬가 인쇄된 ‘스플래터’를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의 LP판이 시험 제작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데이식스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팬들을 위해 LP 앨범을 출시했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젊은층의 팬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LP 음반 발매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라지던 필름 카메라도 젊은층에게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됐다. 4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필름 카메라 숍 ‘필름로그’는 이날 오후 약 1시간 동안 매장을 찾은 손님 8명이 모두 20대였다. 배상인 필름로그 팀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가 2030세대”라며 “이 연령대 손님들은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나 이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카메라’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처럼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사진관처럼 현상도 해주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와 교감 매개 이처럼 오래된 물품을 찾는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물성’을 즐긴다는 것이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는 뜻의 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어지는 ‘역주행’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다. 콘텐츠를 디지털 방식으로 소비하는 대신 아날로그 매체를 통해 보다 밀접하게 손으로 느끼고 만지며 향유하는 트렌드를 설명해 준다. 대학생 박민영 씨(2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전자책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종이책을 꺼내들었다. 박 씨는 “전자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는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혼자 향유한다는 감각을 갖기 어렵다”며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원본’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커지고, 디지털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촉각’ 같은 실재하는 감각도 중시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젊은 세대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음악 등 특수한 콘텐츠 영역에서 ‘물성’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유행은 부모 세대와 손쉽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신명길 씨(24)는 아버지를 따라 취미로 LP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LP 애호가인 아버지가 오래된 재즈 LP 음반을 2017년 신 씨에게 선물하면서부터다. 신 씨는 아버지에게 LP판 관리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한다고 했다. 신 씨는 “본격적으로 LP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부모님과 중고 LP 음반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6년째 LP 음반 판매점 ‘서울레코드’를 운영 중인 황승수 사장은 “LP를 즐겨 듣던 부모님과 새롭게 LP를 찾게 된 2030세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도 최근 종종 보인다. LP 레코드를 통해 세대가 교감하는 모습이 즐겁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이수빈 씨(26)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이 씨는 어느 날 오래전부터 집안 구석에 놓여 있던 부모님의 필름 카메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 씨는 “오래된 카메라에서 어머니가 찍어둔 필름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현상소에서 이 필름을 인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향유하던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재발견하고 함께 즐기는 건 서로 다른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공감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뉴트로’ 유행은 옛것의 답습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 세대는 오래된 것을 계속 혁신하고 재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2022-0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신문·필름·LP판…오래된 것에 빠진 2030 청년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6DP(6days.paper)’ 계정에는 가위로 오려낸 여러 신문 기사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속 신문의 기사 문장이나 칼럼 구절에는 여러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각종 이모티콘도 붙어있다. 인상 깊은 문장이나 글귀는 따로 적어놓기도 한다. 언뜻 봐선 정체를 알기 힘든 이 계정의 팔로어는 6일 기준 약 1만5600명. 지난해 5월 계정을 개설한 뒤 7개월여 만에 급성장했다. 가장 인기를 끈 게시물의 조회수는 약 10만 회다. 개인의 공부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유행했던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계정은 ‘신스타그램’(신문+인스타그램)이다. 주 6일 발간되는 일간지 중 8개(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한국일보)의 기사를 요약하고 스크랩한 것이 이 계정의 주요 게시물이다. 젊은층이 신문을 멀리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 계정 팔로어의 80.3%가 18~34세다. 주로 ‘2030세대’인 것이다. 팔로어들은 24시간 동안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토리’ 형태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게시글에 “종이 신문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감상과 댓글을 남기며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30세대가 오래된 것의 장점을 재발견하는 ‘역주행’을 즐기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판을 즐기고,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집어 든다.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찾기도 한다. 익숙함이나 편리함 대신 직접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物性)’을 중시하고,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지금은 찾기 어려운 감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2030세대를 역주행 열풍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밑줄 치며 신문 열독하는 ‘2030’“다른 사람은 어떤 기사를 재밌게 읽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신문 지면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포털 사이트 기사만 보다가 ‘6DP’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니 신선하고 좋아요. ‘이런 게 신문 기사였지…’ 하고 새삼 신문 읽던 기억이 나요.” 인스타그램 ‘6DP’ 팔로어들이 이 계정에 보내는 반응이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진예정 씨(31)는 한 방송사의 라디오 PD다. 진 씨도 댓글을 남긴 팔로어처럼 지난날 신문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 중 한 명이다. 30대가 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진 씨에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던 진 씨는 불현듯 20대 초반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매체’였던 종이 신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신문을 읽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인, 친구들만 볼 수 있는 개인 계정에 자신이 읽은 신문 기사 관련 게시글과 감상을 짧게 올렸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진 씨는 자신처럼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있음을 실감했다. 신문 읽기 ‘역주행’의 수요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느낀 진 씨는 곧 ‘6DP’ 계정을 개설했다. 지금은 1만5000여 명의 팔로어와 함께 신문을 읽는다. 진 씨는 “신문을 읽으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해 이용자를 편협한 시각에 갇히게 하는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사진과 캡션(사진설명), 제목 등 지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집중해 콘텐츠를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는 것이 신문의 매력”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신문은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빼곡한 매체입니다. 손으로 직접 종이 신문을 넘기고, 밑줄을 치며 읽으면 그 콘텐츠를 ‘씹어 넘기고 있다’고 저절로 느껴져요. 앞으로 더 많은 팔로어들께 제가 느낀 재미와 매력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진 씨) 대학생 강지수 씨(24)는 ‘6DP’ 계정 덕분에 신문 읽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읽으면 별 생각 없이 화면 스크롤만 내리면서 텍스트를 보게 된다”며 “지면 기사를 읽으면 기사 배치와 편집을 확인할 수 있고,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수연 씨(24)는 ‘6DP’ 계정 콘텐츠를 즐기다가 다음 달부터는 자신도 신문을 구독하기로 했다. 이 씨는 “지면과 소통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25)는 “이 계정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신문 활용 교육(NIE·Newspaper In Education)을 하며 오려 붙이던 신문 지면을 떠올렸다. 원래 집에서 아버지만 신문을 보셨는데 한 달 전부터는 제가 가장 먼저 신문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이 계정의 한 팔로어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종이 신문의 매력을 알리는 계정을 만들어줘 정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래된 것’의 고유한 재미2030세대 사이에서 LP판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애림 씨(35)는 LP 음반 수집가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월 1만 원 정도를 내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기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김 씨는 수십만 원을 들여 턴테이블을 마련하고 LP판을 구매해 음악을 즐긴다. 김 씨는 “단순히 음악 감상이라고만 생각하면 LP 음반을 통한 청음이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LP는 음악을 듣기까지의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과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문득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앨범을 하나하나 만지며 고르는 과정의 설렘, LP판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 느껴지는 소중함이 좋다”고 했다. LP 음반을 수집하는 양모 씨(30)도 “LP 음반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한 판에 수록된 곡의 수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며 “‘최애’ 가수의 소중한 LP 음반을 직접 만지고 소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을 때 들리는 ‘치직’ 소리도 이들이 꼽는 LP의 매력이다. 실제 LP판을 찾는 젊은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LP 상품 구매자 중 20대와 30대를 더한 비율은 2019년 27%에서 2021년 40.8%로 크게 늘었다. 2017년 문을 연 국내 유일 LP판 제작업체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지난해 주문량이 2020년에 비해 2.5배가량으로 늘었다”면서 “최근 공장 가동 시간을 늘렸다”고 했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음반 판매점 ‘바이닐앤플라스틱’ 관계자는 “매장 방문 고객 중 젊은층이 많아 최신 인기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음반을 만들어 선착순 판매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LP 음반을 찾는 고객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이들의 감성에 맞춰 디자인된 상품도 나오고 있다. LP판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을 깨고 흰색, 빨간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돼 젊은 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LP판이 제작되고 있다. 이른바 ‘컬러반’이다. 흩뿌린 듯한 무늬가 인쇄된 ‘스플래터’를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의 LP판이 시험 제작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데이식스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팬들을 위해 LP 앨범을 출시했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젊은층의 팬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LP 음반 발매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라지던 필름 카메라도 젊은층에게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됐다. 4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필름 카메라 숍 ‘필름로그’는 이날 오후 약 1시간 동안 매장을 찾은 손님 8명이 모두 20대였다. 배상인 필름로그 팀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가 2030세대”라며 “이 연령대 손님들은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나 이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카메라’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처럼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사진관처럼 현상도 해주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와 교감 매개이처럼 오래된 물품을 찾는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물성’을 즐긴다는 것이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는 뜻의 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어지는 ‘역주행’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다. 콘텐츠를 디지털 방식으로 소비하는 대신 아날로그 매체를 통해 보다 밀접하게 손으로 느끼고 만지며 향유하는 트렌드를 설명해 준다. 대학생 박민영 씨(2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전자책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종이책을 꺼내들었다. 박 씨는 “전자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는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혼자 향유한다는 감각을 갖기 어렵다”며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원본’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커지고, 디지털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촉각’ 같은 실재하는 감각도 중시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젊은 세대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음악 등 특수한 콘텐츠 영역에서 ‘물성’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유행은 부모 세대와 손쉽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신명길 씨(24)는 아버지를 따라 취미로 LP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LP 애호가인 아버지가 오래된 재즈 LP 음반을 2017년 신 씨에게 선물하면서부터다. 신 씨는 아버지에게 LP판 관리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한다고 했다. 신 씨는 “본격적으로 LP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부모님과 중고 LP 음반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6년째 LP 음반 판매점 ‘서울레코드’를 운영 중인 황승수 사장은 “LP를 즐겨 듣던 부모님과 새롭게 LP를 찾게 된 2030세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도 최근 종종 보인다. LP 레코드를 통해 세대가 교감하는 모습이 즐겁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이수빈 씨(26)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이 씨는 어느 날 오래전부터 집안 구석에 놓여 있던 부모님의 필름 카메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 씨는 “오래된 카메라에서 어머니가 찍어둔 필름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현상소에서 이 필름을 인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향유하던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재발견하고 함께 즐기는 건 서로 다른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공감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뉴트로’ 유행은 옛것의 답습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 세대는 오래된 것을 계속 혁신하고 재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2022-01-07
    • 좋아요
    • 코멘트
  • 골방-고시원서… 세밑한파 속 잇단 ‘외로운 죽음’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 좁은 골목을 15분가량 걸어 도착한 박강훈(가명) 씨의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관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틀 전인 28일 오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 안에서 싸늘한 박 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불이 켜진 전기밥솥에는 먹을 사람이 없는 밥이 담겨 있었다. 보온 시간으로 볼 때 박 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마지막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죄 정황은 없었다. 경찰은 검안의 소견을 바탕으로 박 씨가 25일경 급성 심장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박 씨의 유족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30일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40대였다.○ 한파 속 홀로 숨진 ‘고위험 가구’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기초생활수급자의 안타깝고 외로운 죽음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주변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하고 뒤늦게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사례가 적지 않은 것.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 공용 화장실에서는 80대 고시원 주민 김장용(가명) 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했다. 전날부터 화장실 문이 계속 잠겨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김 씨는 27일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시원 측에 따르면 김 씨는 2016년부터 이 고시원에 월세 20만 원을 내고 혼자 살았다. 다른 가족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해 경찰이 김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종로구가 김 씨의 ‘무연고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이 고시원에서는 24일에도 혼자 살던 70대 주민 1명이 방 안에서 혼자 숨을 거뒀다. 2011년부터 거주해온 70대 강모 씨였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자녀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김 씨와 강 씨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단절 심화고독사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다. 감염 확산을 우려해 일부 복지 서비스가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된 탓이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지병이 있는 1인 가구 등을 고독사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가구’로 분류해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대면 모니터링을 비대면 모니터링과 병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고위험 가구는 휴대전화가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관리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28일 숨진 채 발견된 김 씨도 이달에는 지자체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지자체 복지 담당자는 휴대전화가 있는 고시원 직원을 통해 김 씨의 건강상태 등을 간접적으로만 확인했다.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되던 교류 프로그램도 사실상 중단됐다. 종로구 주민센터 관계자는 “문화 체험과 한식 조리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었는데 코로나19로 2년째 멈춘 상황”이라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고독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핑계로 우리 복지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확인하거나, 현관문만 열고 1, 2m가량 떨어져 잠시 대화하는 등 비대면 관리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2021-12-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