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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 넷. 열심히 취업준비를 위해 달릴 때다. 학점, 토익점수를 높이고 자격증도 따야하는데…. 준비하지 않으면 냉혹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이때 생뚱맞게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남극에서 요리사로 일해 보는 것.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조리지원 대원으로 5개월간 일한 경험을 지난달 15일 에세이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상상출판)로 펴낸 김인태 씨(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26)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2019년 여름방학 때 남극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 내용의 공상과학(SF) 소설 ‘남극낭만담’을 읽다 문득 남극에 가면 재밌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을 읽던 중 남극에서의 삶이 갑자기 머리 속에 펼쳐졌다는 것. “원래 저는 안전지향의 삶을 살았는데 ‘지금 남극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남극기지에 미친 척하고 지원했는데 합격해버렸습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근무대원을 매년 뽑는다. 극지 연구뿐 아니라 시설관리나 조리를 담당하는 업무도 있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지만 조리지원 업무는 자격증과 1년 이상의 조리 경력만 있으면 된다. 그는 “전공인 경제학이 너무 재미없어서 2017년 군 전역 후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사흘을 이동한 끝에 2019년 11월 남극에 도착했다. 온통 새하얀 남극의 풍경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재미삼아’ 떠난 이곳은 휴양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습도가 15% 이하라 피부가 갈라지기 일쑤였고 강한 추위에 몸이 벌벌 떨렸다. 매일 오전 5시 30분 기상해 무거운 음식재료를 옮겨야 했다. 조리담당 대원 세 명이 나머지 대원과 방문객 100여 명의 세 끼를 책임졌다. 그는 “친구들끼리 한강에 가서 치맥을 즐기며 깔깔거리던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도착 사흘 만에 우울증이 왔다. 엄마가 보고 싶어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남극의 광활한 대자연이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함께 근무하는 대원들과 어울리며 점점 남극에서의 삶에 적응했다. 휴일에 대원들과 남극펭귄을 보거나 다른 해외 연구소를 방문하려 하이킹을 떠났다. 틈틈이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도 썼다. 그는 “낮이 짧고 돈 쓸 곳도 없는 남극에서 내가 무얼 위해 달려왔고 어디로 가야할지 깊이 고민했다”며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다보면 모든 행동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냐는 잣대로만 판단하지만 남극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남극에서 근무를 마친 그는 지난해 4월 귀국했다.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스스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독서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남극에 다녀와서 삶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취업이나 결혼을 포기한 ‘N포’나 내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외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아니에요. 오직 재밌을 것 같아서 남극으로 떠난 ‘재미주의’에 가까웠죠.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제 생각에 확신은 생겼어요. 재밌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열대야 때문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유튜브를 기웃거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럴 땐 작가나 성우가 책을 낭독해 주는 오디오북을 들어볼까 기웃거린다. 듣고 싶은 오디오북을 찾으면 그때서야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이 책은 작가 김영하가 이탈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에 머문 경험을 담은 여행 산문집이다. 2009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랜덤하우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간됐을 때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김영하에게 매료됐다. 책이 지난해 4월 ‘오래 준비해온 대답’으로 재출간됐을 때 사서 다시 읽어볼까 고민했지만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러다 며칠 전 이 책의 오디오북이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서슴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낭독자인 김영하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007년 김영하는 한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 촬영차 시칠리아를 방문한다. 김영하는 여유가 넘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시칠리아인들을 보며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본다. 한국에 돌아온 김영하는 대학교수직을 사직한다.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난 김영하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과 생업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작품 집필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1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을 오디오북으로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활자에서 음성으로 형식이 바뀌니 같은 책의 내용도 참신하게 들렸다. 책이라면 다시 안 읽었겠지만 오디오북은 달랐다. 눈으로 읽었던 책을 귀로 들으며 음미하는 재독(再讀)의 묘미를 느낀 경험이었다.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을 예찬한 에세이 ‘월든’(은행나무)을 읽다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량이 500쪽이 넘는 탓에 번번이 독서에 실패했지만 최근 오디오북으로 완독(完讀)에 성공했다. 잠이 들기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덕이다. 가끔은 재생 속도를 빠르게 설정해 속독(速讀)하거나 느리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정독(精讀)하기도 한다. 오디오북으로 독서법이 다양해진 셈이다. 오디오북 시장의 진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윌라는 올 3월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의 원작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공개했다. 이 오디오북은 빗소리, 천둥소리 등 날씨와 관련된 효과음을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로 들려주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밀리의 서재는 이달 15일 수면을 도와주는 오디오북을 모아 제공하는 ‘굿나잇 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작가들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오디오북으로 사전 연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오디오북을 들으며 숙면을 취해 보는 건 어떨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난해 3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미국 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현재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인 사트마가 존재하고, 사트마에 사는 유대인들이 폐쇄적인 삶을 사는 현실이 낱낱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트마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정도로 화제를 끌었다. 드라마의 바탕이 된 이 책은 1986년 사트마에서 태어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풀어낸 자서전이다. 그는 공립학교 대신 사트마 내에서 11년간 교육 받고 외부세계와 차단된 채 자랐다. 사트마의 교육기관에선 동유럽계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어만 가르치고 영어는 쓰지 못하게 한다. 사트마에 사는 여자는 결혼 후 모두 삭발을 한다. 아이를 낳는 일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부여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학살한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유대인의 인구수를 회복하기 위해서란다. 그 역시 17세에 중매결혼을 하고 19세에 아들을 낳았다. 그의 고백이 담긴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사트마 여성이 겪는 끔찍한 삶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족쇄에 갇힌 그의 탈출구는 책이었다. 틈날 때마다 가족들의 감시를 피해 몰래 서점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유로운 삶이 존재하는 외부세계를 알게 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심 끝에 그는 2009년 사트마를 몰래 탈출한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사트마를 나간 엄마를 찾아 유럽으로 건너간다.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아들의 양육권도 가져온다. 독일 베를린에서 살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글로 적었다. 물론 그의 삶은 여전히 평탄하지 않다. 2012년 책이 출간된 뒤 사트마에선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전문성 있는 직업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책을 낸 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지 않았다면 사트마의 진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지 않았을까. 그는 사트마에서 도망쳤지만 삶에선 도망치지 않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 책은 한국추리작가협회가 기획출판했습니다. 작가는 책 정가의 45%를 인세로 받고, 영상화 판권 등 2차 저작권 수익을 100% 가져갑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 부회장인 김재희 작가(48)는 27일 출간한 장편소설 ‘러브 앤 크라프트, 풍요실버타운의 사랑’(책과나무)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출간할 만한 수준의 원고를 고른 뒤 책을 내고 홍보하는 기획출판의 주체를 전문출판사가 아닌 한국추리작가협회로 옮겼다는 것. 협회 소속 작가는 책을 출간할 때 300여만 원을 내지만 관행보다 높은 인세를 받고 2차 저작권을 모두 가질 수 있다. 김 작가는 “작가들이 전문출판사와 계약할 때보다 투명하게 인세를 정산받기 위해 협회가 기획출판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협회 소속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모은 ‘한국추리문학선 시리즈’를 직접 기획출판하고 있다. 장강명 임홍택 작가가 출판사에서 일부 인세를 받지 못한 사건과 비슷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아직 출판사 법인을 세우지 못해 책을 편집·디자인하고 서점에 유통하는 일은 전문출판사를 통해 하고 있다. 1983년 설립된 협회는 회원이 80여 명이며 현재 7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통 작가는 책 정가의 10%를 인세로 받는다. 하지만 일부 출판사는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알리지 않아 작가가 정확한 인세를 요구하기 어렵다. 김 작가가 ‘러브 앤 크라프트…’를 내며 출판사와 맺은 계약서엔 “도서 정가의 45%를 작가에게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원하면 매일 책 판매량을 확인하고 매월 말 인세를 받도록 했다. 작가와 출판사가 2차 저작권 수익을 5 대 5로 나눠 갖는 관행과 달리 영상화 판권 등 2차 저작권 수익은 모두 작가가 가진다. 협회 소속 장우석 작가는 지난해 8월 출간한 단편소설집 ‘주관식문제’(책과나무)의 드라마 판권을 올 4월 영상 제작사에 팔고 수익을 모두 가져갔다. 작가들은 책을 편집하고 홍보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책 표지에 들어갈 그림을 그릴 작가도 직접 선정하고 제목도 스스로 정한다. 서점에 소개되는 책 안내 문구와 언론사 보도 자료도 작가가 작성한다. 과거엔 전문출판사를 통하지 않으면 서점과 미디어에 책을 소개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작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책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아져 작가의 기획출판 참여는 가속화되고 있다. 김 작가는 “글만 쓰는 것보다 품이 많이 들지만 자신의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책 디자인을 정하고 마케팅에 참여할 수 있다”며 “아직 책을 내지 않았지만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협회에 책 출간을 문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들이 모여 기획하고 출판을 주도하는 방식은 SNS 사용에 익숙한 MZ세대 작가들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MBC가 2020 도쿄 올림픽 중계 사흘 만에 대형 참사를 잇달아 일으키면서 국내외 비난이 쇄도하자 박성제 사장이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책임자 문책이나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이 없어 ‘알맹이 없는 사과’라는 비판까지 더해지고 있다. 박 사장은 26일 서울 마포구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 상처 입은 해당 국가 국민과 실망한 시청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MBC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국가들의 주한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보냈으며, 외신에도 사과문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내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콘텐츠 적정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재발을 막겠다”고 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정밀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앞서 MBC는 23일 개회식 중계에서 특정 국가 소개에 모욕적인 내용들을 넣은 데 이어 25일 대한민국과 루마니아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를 겨냥해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MBC가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소개에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쓴 데 대해 이고리 데니수크 주한우크라이나 대사대리는 26일 뉴스1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언급된 것이 불편하다(uncomfortable)”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MBC의 잇단 참사에 “MBC의 올림픽 중계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부터 “MBC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MBC 시청자소통센터 홈페이지에는 “국가 망신 금메달” “수십 년 쌓아온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순식간에 말아먹는 능력자” “지상파 자격을 박탈하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연일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6일 “각국 TV 방송은 올림픽 선수단이 입장하는 시간을 사소하지만 유용한 정보(trivia nuggets)나 선수의 프로필, 지정학적 성찰로 채우며 (국민들의) 외교 및 국제적 인식을 키우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의 한 방송사는 몇몇 나라에 ‘부적절한(inappropriate)’ 이미지를 골랐다”고 보도했다. 앞서 MBC의 개회식 중계 논란을 보도했던 미 CNN은 26일 웹사이트에 관련 기사를 또 게재했다. CNN은 “개회식은 시청자들이 친숙하지 않은 나라와 선수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그러나 한국의 한 방송국(MBC)은 몇몇 나라를 묘사하면서 모욕적인(offensive) 고정관념을 사용했다. 지식의 격차에 다리를 놓는 데 보기 좋게(spectacularly) 실패했다”고 질타했다. MBC노동조합(3노조)은 박 사장의 사과에 대한 성명을 내고 “많은 방송사 중에 왜 MBC에서만 상식 이하의 사고가 빈발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면서 “MBC의 전근대적인 차별 문화와 의식이 한꺼번에 외부로 노출된 게 도쿄 올림픽 중계다. 사장과 가까운 임직원에게도 공정한 문책이 이루어지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내고 “MBC는 (소속 기자가 경찰을 사칭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담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모든 콘텐츠의 제작부터 검수까지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BC의 연이은 대형 참사는 재미와 경쟁만 추구하고 엄격한 검증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내부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MBC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올림픽 중계를 내보내면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외부의 간섭은 전혀 받지 않겠다는 MBC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박 사장이 말한 제도 개선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윤고은 작가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로 1일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은 걸 계기로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밤의 여행자들은 프랑스 스페인 등 4개국에서 출판 계약을 맺고, 영국에서는 영상 제작사와 판권 계약도 맺었다. 과거에는 국내 작품이 해외에 알려지는 것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판권을 해외에 판매하는 상업적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 작가 중 해외 시장에서 작품이 활발히 거래되는 이들로는 정유정 김영하 김언수 등이 꼽힌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미국 영국 그리스 불가리아 등 15개국에서 출판 계약을 맺었다. 미국 영상 제작사와 판권 계약도 이뤄졌다. ‘한국 문학 전도사’로 불리는 영미권 출판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54)를 20일 화상으로 만나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 전망을 들어봤다.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보나. “이미 한국 문학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작품의 성공이 이어지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 작가가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건 이미 보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 비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많이 떨어지지 않나.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 문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아졌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2년 연속 아카데미 시상식을 흔들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덕에 한국 문학을 찾는 영미권 독자들도 늘었다. 미국 할리우드 영상 제작사들이 한국 문학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다.” ―한국 문학의 어떤 점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까. “한국 작품에는 운명론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 주인공은 연쇄살인마, 김언수 ‘설계자들’의 주인공은 암살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다. 또 한국 작품에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담겼다. 등장인물이 끝내 진실에 가 닿지 못할지언정 책을 덮은 후에도 깊게 생각할 만한 질문과 여운을 남긴다. 명확히 결론을 내는 할리우드식 결말에 익숙한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고 매력적인 서사다.” ―해외 출판계는 한국의 순문학과 장르문학 중 어떤 걸 더 선호하나. “특정 장르 작품이 상업적으로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둘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최근 한국 작가들의 스릴러, 미스터리, 공상과학(SF) 작품이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이 인정받은 건 시각이나 소재가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미권에서는 작품 정체성이 명확하기를 바라는 흐름이 있는 만큼 각 작품을 어떻게 마케팅하는지에 따라 상업적 성공의 99%가 결정될 수 있다.”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한국 작가들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에 도전하기에 출판사 한 곳에만 판권을 팔기보다 작품에 따라 여러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게 유리하다. 최근 영미권 출판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중시하는 만큼 작가들이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면 영미권 독자들에게 직접 자신을 알리는 기회가 늘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일 윤고은 작가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한국 문학이 해외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됐지만 최근엔 세계 시장에서 한국 문학의 책 판권이 여러 나라에 팔리는 ‘상업적 성공’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리는 국제 문학 에이전트 바바라 지트워(54)를 20일 화상으로 만나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 상황과 전망을 들었다.―세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성과를 알려 달라. “한국 작가 중에 정유정 김영하 김언수의 작품이 해외 판권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특히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는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최근 상을 수상한 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역시 해외 판권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보나. “이미 한국 문학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작품의 성공이 이어지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고 있다. 앞으로 한국 작가가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보증된 것이나 다름없다.”―한국 대중문화에 비해선 한국 문학의 성과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아졌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2년 연속 아카데미 시상식을 흔들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이 덕에 한국 문학을 찾는 영미권 독자들도 늘어났다. 미국 할리우드 영상 제작사들이 한국 문학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다.”―한국 문학의 어떤 점이 세계 시장에서 매력적인가. “한국 작품엔 운명론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의 주인공은 연쇄살인마, 김언수 장편소설 ‘설계자들’의 주인공은 암살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다. 또 한국 작품엔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등장인물이 끝내 진실에 가 닿지 못할지언정 책을 덮은 후에도 깊게 생각할 만한 질문과 여운을 남긴다. 명확히 결론을 내버리는 할리우드식 결말에 익숙한 영미권 독자들에겐 생소하고 매력적인 서사다.”―한국의 순문학과 장르문학 중 어떤 것을 해외 출판사가 선호하나. “특정 장르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최근 한국 작가들의 스릴러, 미스테리, 공상과학(SF) 작품이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이 인정받은 건 시각이나 소재가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미권에선 작품의 정체성이 명확하기를 바라는 흐름이 있는 만큼 각 작품을 어떻게 마케팅하고 판매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상업적 성공의 99%가 결정된다.”―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한국 작가들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도전했기 때문에 출판사 한 곳에 판권을 판매하기보단 작품에 따라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해야 한다. 최근 영미권 출판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중시하는만큼 작가들이 SNS에서 활발히 활동한다면 영미권 독자들에게 직접 어필하는 접촉점이 늘어날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저와 오랫동안 살았고, 지금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제 할머니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어요.” 2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최은영 작가(37)는 27일 펴내는 첫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소설은 지연이 해안가의 작은 도시 ‘희령’으로 이사한 뒤 20년 넘게 연락 없이 지내던 자신의 할머니와 만나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최 작가는 이 글을 쓰는 데 어린시절 자신을 오랫동안 키워준 할머니와의 기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는 “지금 아흔이 넘은 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으며 한 평생 고생을 한 이야기를 하시곤 하지만 난 겪지 못한 이야기라 마치 설화처럼 느끼곤 했다”며 “할머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 시대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서울을 도망치듯 떠난 지연은 할머니에게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4대 여성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쓴 이유를 묻자 그는 “어떤 사람들은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난 과거를 조명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분들의 구술을 모은 책과 논문을 찾아보며 에피소드를 만들고 디테일을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지연은 모계 혈족을 뜻하는 접두사 ‘외’를 뺀 채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를 호칭한다. 지연이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작법에서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여성주의 소설이란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을 뜻하기보단 여성의 시각에서 쓰는 소설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항상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인물을 그리고 언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소수자나 여성을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면 여성의 이름을 지우고 누구의 ‘처(妻)’나 ‘엄마’로 부르지 않게 된다”며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10년, 20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최대한 제 가치관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으로 증명된 서정적이고 섬세한 그의 문체와 시선은 이번 장편소설에서도 반짝인다. 사찰의 향 냄새, 계곡의 이끼와 물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를 통해 할머니와의 옛 추억을 기억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담긴 문장은 독자를 여름의 한가운데로 살며시 이끈다. 2019년 봄부터 지난해 봄까지 1년간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쓰지 못했다는 그에게 이번 소설의 의미를 묻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한동안 머리가 고장 나서 소설뿐 아니라 실용적인 글도 못 썼어요. 친구에게 ‘언어 기능이 고장 난 것 같다’고 울면서 토로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 쓰고 싶었던 장편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써야 한다고 마음먹고 ‘으아’ 하면서 힘을 내고 글을 썼죠. 바다에서 표류하던 제가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치유돼 육지에 도달한 기분입니다. 밤처럼 어두운 시대에 힘들게 살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밝게 빛난 이들을 조명하고 싶어 소설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었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수영장에서 무슬림 가족을 본 적이 있다. 아빠와 아들은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풀 안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반면 엄마는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는 히잡을 두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엄마는 가끔씩 발과 손으로 물을 휘젓기만 할 뿐 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이들을 기이하게 쳐다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슬림에 대한 호기심과 반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이 뒤섞인 묘한 경험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이주민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다. 2018년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후 일각에서 이슬람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을 찾는 해외 이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답을 찾으려고 해외 이주민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다룬 두 책을 읽었다. 신간 ‘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바꿔놓은 유럽 사회의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한다. 출산율은 줄고, 은퇴자는 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진 유럽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돼 유럽은 더 이상 유럽인들의 땅이 아니게 됐다. 영국과 독일에는 무슬림이 모여 사는 일종의 ‘유럽인 출입금지구역’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범죄를 일으켜 감옥에 수감된 이들의 절반이 무슬림이다. 이에 따라 치안에 불안을 느낀 일부 유럽인들은 이민자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비유럽 선진국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저자는 다문화주의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값싼 노동력의 혜택만 얻으려고 한 유럽의 대처방식을 비판하며 한국 현실을 돌아본다. 한국이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뒤 혐오와 차별 등의 사회문제를 겪고 있지만 이민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없다는 것. 한국 정부가 이민자를 포용하는 정책을 마련하든 노동력을 자국민으로 충당할 방법을 찾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유럽은 무슬림들의 이민으로 인해 이슬람화돼 가고 있다. 오늘의 유럽은 내일의 한국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반면 신간 ‘인류, 이주, 생존’은 이민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다. 저자는 나비, 새, 곤충 등 다른 생명체들처럼 인류가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건 본능이라고 말한다. 원시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적절한 환경을 찾아 여러 대륙으로 이주한 것처럼 인류가 끊임없이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 다양한 문화가 섞이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규모 이주의 역사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단절됐다. 많은 국가가 장벽을 높이고 이동을 차단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난민 혐오 같은 이주자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저자는 세계화 시대에 이민자를 막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근시안적 태도로 반이민 정책을 펼치지 말고 인류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도록 장려하자는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국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이후의 사회적 수용 과정일 것이다. 유럽처럼 이주민들이 실업과 범죄 등에 내몰린 채 문화적으로도 융합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인류의 이주사에서 보듯 이주민이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는 묘안을 찾을 수 있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지난해 6월 25일 이슬아 작가(29·여)는 작가로 활동하는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38)에게 도발적 이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은 작가 모임에서 몇 번 대화한 적은 있지만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편지로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자며 독특한 제안을 남긴 것. 이 작가는 엠넷의 힙합 오디션 예능 ‘쇼미더머니’를 언급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펀치 같은 편지를 날리지 않으면 제가 거짓으로 아름다운 편지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남궁인 교수는 닷새 뒤 “작가님을 조금도 미워할 수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두 사람의 ‘발칙한’ 편지 교환은 이렇게 시작됐다. 올 6월까지 1년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주고받은 28통의 이메일이 서간집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문학동네)로 묶여 12일 출간됐다. 두 사람이 유머를 섞으며 서로를 이해해가는 모습이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이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4쇄를 찍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예의나 체면치레를 차리는 고전적 서간집을 벗어나고 싶어 발칙한 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 최근 엄숙함을 버리고 있다. 요즘 서간집은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 비판하는 이른바 ‘디스’ 문화와 더불어 인터넷에서 주로 쓰는 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서로에게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서간집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한 시도다. 올 3월 출간된 서간집 ‘이토록 씩씩하고 다정한 연결’(스튜디오티클)은 30대 여성 작가 구보라와 도티끌(필명)이 나눈 20통의 독서 편지를 모았다. 두 사람은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과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에 대한 진솔한 감상을 밝히며 유쾌하게 떠든다. 이들은 당신과 나의 마음이 같다는 뜻으로 “네 맴 is 내 맴! 역시 우리는 운명의 데스티니”라고 말한다. 때론 “하하하핫핫핫!!!”이라는 요란한 웃음소리도 쓴다. 도티끌은 “서간집은 대중이 아니라 특정 대상을 상대로 쓰기에 작가의 속마음을 더 솔직히 드러낸다. 독자는 작가의 사적인 기록을 훔쳐본다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쾌함 너머에는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도 담았다. 지난달 21일 출간된 서간집 ‘우리 세계의 모든 말’(카멜북스)은 1991년생 동갑내기 여성 작가 김이슬과 하현이 주고받은 편지 30통을 모았다. 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즐겁게 떠들면서도 “아이를 왜 낳지 않으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경험처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공유한다. 김난아 카멜북스 편집자는 “젊은 작가들이 내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해 젊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남자는 한밤중 우연히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술에 잔뜩 취해 어묵을 먹고 있었다. 이미 먹은 어묵 꼬챙이가 수십 개는 될 듯했다. 여자는 옷을 잘 차려입고 얼굴도 아름답건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의 발이 추워 보였다. 남자는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에게 동정심인지 사랑인지 모를 마음을 품는다. 어느 날 남자는 여자와 함께 여자의 집으로 향하는데…. 사건이 벌어지기 전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면서요.” 이 단편 소설집의 표제작인 ‘같았다’는 삶의 목적을 잃고 표류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람은 결국 여자의 남편을 죽인다. 하지만 둘 다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남자는 긴장감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맥을 못 추고, 여자는 아파트 밖에서 자기 집 창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의 내면에는 공허만 있다. 성별, 나이, 계층은 다르지만 인생의 덧없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았다’. 백가흠 소설의 주인공들은 방황한다. 단편 ‘훔쳐드립니다’의 주인공 남성은 영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지만 도둑질을 하면서 산다. ‘1983’은 한국계 미국인이자 입양아인 남성이 자신은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며 고통스러워한다. 주인공들은 누군가와 소통하기보다 자기 고독의 심연 속으로 파고든다. 마음 깊이 숨겨둔 광기와 삶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살펴본다. 친절한 설명 없이 속마음을 꺼내는 주인공을 보다 보면 언뜻 거북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뒤에는 윤리성을 부순 후 맛볼 수 있는 쾌감이 찾아온다. 우린 항상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백가흠의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술에 취한 듯 꿈을 꾸듯 우리 내면은 늘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걸 받아들인다. 원고 기한을 맞추지 못해 늘 편집자에게 거짓으로 둘러대는 소설가가 등장하는 ‘그는 쓰다’의 한 문장은 사람들이 원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아니지만 한 노동자의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낸다. “(이유 없이 편집자에게) 거짓말한다. 청탁도 없고 발간 예정도 없다. 일상에서도 그는 소설을 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죽어가는 서점과 출판사를 살리려면 정부 지원이 늘어야 한다.” 최근 국내 3대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부도 처리된 후 출판계 관계자들은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서점 위주로 운영된 반디앤루니스가 직격탄을 맞았고, 오랜 출판계 불황으로 다른 서점이나 출판사들의 사정도 극히 나쁘다는 것. 출판사 관계자는 “국가가 세금이나 정책으로 출판계를 살리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지원을 늘려 결과적으로 출판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책에는 국가가 출판에 개입한 역사가 담겨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와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지낸 저자는 문헌을 샅샅이 뒤져 국가의 출판 통제를 고발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프랑스 왕정 때 출판 검열관은 왕에게 유리한 책의 출간을 독려하면서 서문에 “매혹적 요소가 가득하다”고 극찬했다. 다른 검열관은 “달콤하고도 열렬한 호기심을 자극해 계속 읽고 싶게 한다”고 평가했다. 권력의 간섭이 드러나지 않게 여론을 조종하기 위해 채찍보다 당근을 쓴 것이다. 양서(良書)가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국민의 교양을 높이기에 출판에 대한 공공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시장성은 낮더라도 내용이 충실한 책은 정부 지원을 통해 장려돼야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가 지원을 미끼로 출판을 통제한 과거사가 담긴 책을 읽다 보면 출판계에 대한 정부 지원을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정부가 지원만 하고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100% 지킬지 자신할 수 없어서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작가에 대한 출간 지원을 배제하는 내용의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출판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커질수록 정부가 출판계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와 관련해 일부 출판인이 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친정부 인사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들린다. 독서 인구 감소로 출판계가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출판계가 자생력을 얻기 위해선 독자를 매료시킬 작가를 찾는 게 우선이다. 출판인들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지만 독자들은 “쏟아지는 책 중에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토로한다. 유튜버보다 재밌는 글을 쓰는 소설가, 블로그보다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작가들이 나타난다면 독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더불어 시민의 발길이 끊긴 오프라인 서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정부 지원만 바란다면 출판계의 불황이 끝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고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싶었어요.” 최근 에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판미동)을 출간한 신순규 씨(54)는 14일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신 씨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가(CFA)로 27년간 미 월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인물. 그는 “주식 분석이 운동선수에 비유하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평가하는 과정이라면 회사채 분석은 견고함(durability)이 주된 평가 기준”이라며 “견고한 기업이 외부 충격에도 견디듯 삶도 팬데믹처럼 상상도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견뎌 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15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진로를 바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애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2015년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에서 일상에서의 소소한 일화와 긍정의 메시지를 강조했다면 이번 책에선 코로나19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소개한다. 아내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아이와 대화 중 쓸데없는 근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팬데믹을 버틸 힘을 얻게 된다. 책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느낀 생각을 견고함, 배려 등 33개 키워드로 풀어냈다. 회사를 분석하는 그가 기업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치를 인생까지 확장한 것. 그는 “갑질, 아동학대 사건 등 극단적인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많이 연약해져 가는 것 같다”며 “이런 것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견고하게 견디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삶은 내가 어떠한 삶의 가치들을 선택하고 추구하느냐에 따라 삶이 서서히 달라질 수 있다”며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도 견고해야 나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청년들을 향해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청년층이 가상화폐 투기에 빠진 상황에 대해선 “가상화폐는 적정 가치를 산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도박이다. 당장의 이익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위험하다”며 “지금 현실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에 희망을 건다. 자신의 모든 것 혹은 삶의 의미를 건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아들에게도 말하지만 통계에 따라가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에 따라가지 말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가라”고 덧붙였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중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먹고살 걱정에 꿈을 접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처음으로 인생이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꿈꿔온 글쓰기를 배우려고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대학 문을 다시 두드렸다. 회사는 망(亡)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소망(所望)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예대 문예학부에 시간제로 재학 중인 황윤선 씨(30·여)가 신간 ‘이번 책은 망했다’(망 출판사)에 쓴 내용이다. 제목은 젊은 세대가 자신의 삶을 자조하며 쓰는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를 풍자한 것이다. 그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나 같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며 “누군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로 볼지 모르지만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용기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신간은 황 씨를 포함해 서울예대 문예학부 재학생 5명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들은 올 6월 출판사를 차린 직후 이 책을 냈다. 1991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MZ세대 젊은이들이 모여 자신의 삶에서 망했던 일과 의미, 이후의 삶을 다뤘다. 황 씨는 “MZ세대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며 “우리 세대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실패 경험을 유쾌하게 혹은 담담하게 풀어낸다. 박인기 씨(21)는 고교 시절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둔 경험을 솔직히 고백한다. 당시엔 힘겨웠지만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 덕분에 글 쓰는 사람이 됐다. 강민경 씨(22·여)는 대학 과제를 늦게 제출하는 사소한 실패에도 한껏 우울해지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실패에 맞서거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않기도 한다. 정혜성 씨(25)는 시험을 망친 후 텀블러를 가방 왼쪽에 넣고, 뚜껑에 곰 그림이 있는 향수를 뿌린 뒤 노란색 양말과 검은색 신발을 신는 유별난 규칙을 만들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찾는다. 김준아 씨(22·여)는 대입 수시 3번, 정시 2번의 실패를 겪은 끝에 마침내 바라던 서울예대에 입학한 뒤 환호했다. 김 씨는 “안정적인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를 담당한 서울예대 디자인학부 김효선 씨(25·여)는 삶이 망한 뒤 정처 없이 방랑한다는 뜻의 캐릭터 ‘망랑이’를 만들어 삽화로 넣었다. 황 씨는 “겉으로는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짝 웃고 있는 망랑이의 모습에는 절망에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며 “망한 기억을 솔직히 풀어놓은 우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당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MZ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중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먹고 살 걱정에 꿈은 항상 접어뒀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가 파산했다. 처음으로 인생이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왔다. 항상 꿈꿔왔던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스물아홉 살에 대학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망할 망’(亡)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었던 ‘바랄 망’(望)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예대 문예학부에 시간제로 재학 중인 황윤선 씨(30·여)가 쓴 에세이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했나’의 내용이다. 12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만난 황 씨는 “나 같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보단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루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며 “누군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용기라 부르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우리 세대는 기술과 경제 발전으로 누리는 것도 많지만 힘들다”며 “고민을 진지하게 풀어내기보단 ‘피식’ 웃으며 해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황 씨 등 서울예대 문예학부 학생 5명이 자신들이 쓴 에세이를 담은 에세이집 ‘이번 책은 망했다’(망)가 지난달 10일 출간됐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출판사를 차린 뒤 낸 책이다. 1991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MZ세대가 모여 자신의 삶에서 망했던 일과 의미, 이후의 삶을 담았다. 박인기 씨(21)는 고등학생 시절 당하던 학교폭력을 버티다 못해 끝내 학교를 그만뒀다. 강민경 씨(22·여)는 대학 과제를 늦게 제출하는 사소한 실패에도 한껏 우울해져 절망하곤 한다. 황 씨는 “MZ세대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며 “결국 우리 세대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실패한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실패에 맞선다. 정혜성 씨(25)는 시험을 못 본 이후로 항상 텀블러를 가방 왼쪽에 넣고, 곰이 그려진 뚜껑이 덮인 향수를 뿌리고, 노란색 양말과 검은색 신발을 신는 유별난 규칙을 만들었다. 김준아 씨(22·여)는 서울예대에 입학하기 위해 3번의 수시와 2번의 정시 등 5번의 입시 과정에서 떨어졌지만 6번째 입시과정에서 도전해 합격한 뒤 환호한다. 김 씨는 줌 인터뷰에서 “안정적이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집을 꺾지 않았다”며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도 우리 세대의 특성 같다”고 했다.일러스트를 담당한 김효선 씨(25·여)는 삶이 망한 뒤 정처 없이 방랑한다는 뜻의 캐릭터 ‘망랑이’를 만들어 삽화로 넣었다. 황 씨는 “겉으론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웃고 있는 망랑이의 모습엔 절망에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은 MZ세대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망한 기억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우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당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MZ 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실수로 사람을 죽인 남자가 있다. 치기 어린 시절 순간의 실수는 모든 걸 앗아갔지만 남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4년을 감옥에서 복역한 후 출소해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가 다가온다. 사랑에 빠져 결혼한 두 사람은 소박한 집을 마련하며 달콤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곧 여자는 납치당하고 남자의 휴대전화로 여자의 낯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송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과거가 조금씩 밝혀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며 반전이 거듭되는데…. 스페인 드라마 ‘결백’은 하나의 미스터리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새로운 미스터리를 풀어놓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4월 30일 넷플릭스 공개 직후 세계 드라마 순위 3위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의 오리올 파울로 감독(46·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이 롤러코스터처럼 흥미진진하길 바라며 작품을 준비했다”며 “에피소드 한 편을 보고 나면 멈출 수 없는 시리즈를 원했다”고 강조했다. 호흡이 빠르고 반전이 강력한 작품의 매력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다는 것. 그는 “시청자들이 마지막 에피소드를 본 뒤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 주인공 마테오의 시선을 쫓던 시청자들은 부인 올리비아가 사라진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슬픈 과거를 감추려고 잠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드라마는 어떤 캐릭터를 따라가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며 “작품을 캐릭터의 시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만든 만큼 캐릭터의 시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의 시점을 이용해 에피소드 중반 이후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그는 “반전을 위해 극단적으로 모든 에피소드를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는 특정 캐릭터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시작한다. 등장인물의 비밀을 초기에 시청자들에게 알려주지만 사건의 전체적인 진실은 철저히 숨긴다. 각 에피소드가 하나의 사건에 감춰진 8가지의 진실을 정교하게 숨기고 있어 시청자들이 결말에 이르러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작품이 8개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8시간에 달하는 한 편의 영화”라며 “에피소드마다 반전이 숨겨져 있기에 이야기의 모든 조각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드라마의 원작은 미국 작가 할런 코벤(59)이 2005년에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할런은 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인 에드거상, 샤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수상한 스릴러 작가. 넷플릭스는 2018년 할런과 계약을 맺고 그의 소설 14편을 드라마와 영화로 만드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가 할런의 원작 소설을 각색해보지 않겠느냐고 내게 먼저 제안했다. 넷플릭스는 할런표 스릴러물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국내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휩쓸고 있다. 퍼미션 투 댄스는 9일 발표 당일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톱 200’ 2위를 차지했다. 이날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일본 등 92개국에서 애플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에 올랐다. 지니뮤직 톱 200, 벅스 실시간 차트 등 국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9일 오후 유튜브에 공개된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는 11일 오후 기준 1억 뷰를 넘었다. 퍼미션 투 댄스는 경쾌하고 신나는 댄스 팝 곡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 이후 전 세계인들이 자유로워진 일상에서 마음껏 춤추는 모습을 그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느 날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친다. 손잡이에 거북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고, 발판에 이름이 떡하니 쓰여 있는 분홍색 킥보드다. 할머니는 왼발을 발판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오른발로 땅을 밀쳐 본다. 바퀴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온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킥보드를 탄다. 매일 밤 킥보드에 몸을 싣고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노래를 부른다. “따르릉! 따르릉!” 윤성희 작가(48)가 7일 펴낸 6번째 단편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에 실린 ‘어느 날’의 내용이다. 발간 다음 날 전화 인터뷰로 만난 윤 작가는 “할머니들도 가끔 킥보드를 타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삶에 숨통이 트여 다음 날 다시 일어나 밥을 해 먹지 않겠냐”면서 “팍팍한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노년 여성들을 그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원숙해지지 않는다. 불안정한 10대가 있듯 불안정한 60대가 있는 게 인생”이라며 “대단히 멋지게 늙지 않아도,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할머니가 돼도 괜찮다는 위로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일상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를 포착해 감성을 부여한 그의 시선이 이번엔 노년층 여성으로 향했다. ‘어제 꾼 꿈’은 손자가 갖고 다니는 소원 성취 막대기를 휘휘 저으며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할머니의 삶을 포근하게 비춘다.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은 뒤 자신과 원한 관계에 있는 유명 국숫집 주인에게 욕을 하러 가는 할머니를 등장시킨 ‘남은 기억’은 노년 여성의 해학을 에둘러 전한다. 왜 40대 후반인 작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주목했냐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할머니들은 기억이 켜켜이 쌓인 만큼 사연이 많아 자동으로 다층적인 캐릭터가 돼요. 한국 사회의 여러 굴곡을 거친 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죠. 우리 시대 할머니 대부분이 겪은 전쟁, 가난, 병치레에 대한 기억을 그리면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과거 시대를 겪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노년 여성의 여정을 진실하게 담으려고 했어요.” ‘여름방학’에서는 은퇴한 노년 여성이 살아갈 용기를 찾기 위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분수대에 몸을 던진다. 속옷이 비칠까 잠시 걱정하다가도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하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그는 “할머니들이 어떤 순간에 행복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그들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며 “노년 여성이 자신이 겪어온 과거를 회상하되 회한과 비애에는 젖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도전하고 싶다”며 “‘날마다 만우절’이라는 단편소설집 제목처럼 거짓말을 하는 소설을 통해 위로라는 진심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창비가 저자들과 책 인세 정보를 공유하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앞서 장강명 임홍택 작가가 제기해 출판계의 이슈가 된 인세 누락 문제에 대응하고 불투명한 출판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취지다. 문학동네는 이르면 올 9월부터 저자가 개별적으로 자신이 받을 인세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생산, 물류, 회계 등을 통합 관리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새로 만들면서 저자들이 자신의 책에 한해 계약 내용과 출고 부수, 인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저자별로 ERP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부여할 예정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저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출고 부수는 반품 물량이 포함된 수치로, 실제 판매 부수는 각 서점들이 관리한다. 김소영 문학동네 공동대표는 “이전부터 출고 부수를 저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좀 더 투명한 방식을 통해 저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창비도 문학동네와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할 방침이다. 이미 자체 ERP가 있는 만큼 저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부여하면 연내 운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황혜숙 창비 출판1본부장은 “그동안 중소 출판사를 중심으로 불투명한 유통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출판계 전체로 불신이 확산되지 않도록 대형 출판사가 앞장서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저자가 출판사에서 계정을 받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인터파크 등 5개 대형 서점에서 매일 제공하는 판매 부수를 확인하는 도서판매정보 공유 시스템을 1일 출범시켰다. 이와 별개로 정부도 일부 출판사들과 서점의 참여하에 9월부터 출판유통 통합전산망을 가동키로 해 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재정 여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인세 정보를 저자와 공유하는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정부와 출협은 상대적으로 영세해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힘든 중소 출판사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스마트폰이 못 미더울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해킹돼 개인정보가 흘러나갈까 두려워서다. 지도를 보지 않을 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꺼놓고, 새 애플리케이션을 깔더라도 정보 접근 권한을 최대한 낮춘다. 이런 노력에도 가끔 비정상적인 접근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받으면 등골이 서늘하다. 구체적인 피해를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편리함을 대가로 자유를 뺏긴 것 같다. 이 책은 두 일본인이 중국의 디지털 감시사회를 낱낱이 파헤친 결과물이다. 중국사회를 꾸준히 분석해온 일본 고베대 경제학과 가지타니 가이 교수와 중국을 취재했던 일본 저널리스트 다카구치 고타가 썼다. 중국 민간기업이 만들고 운영하는 기술이 중국 정부와 결합해 어떻게 중국인을 감시하는지 고발한다. 미래 감시사회를 예측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의 장편소설 ‘1984’나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쓴 장편소설 ‘멋진 신세계’가 생각날 만큼 실상은 무시무시하다. 저자들은 2017년 기준으로 중국에 1억7000만 대 이상의 감시카메라가 있다고 주장한다. 역, 신호등, 상가 출입구 등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퍼져 있다는 것. 다른 나라에서는 감시카메라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놓았다면 중국 정부는 감시카메라를 외부에 노출한다. 보란 듯이 ‘여기 감시카메라가 있다’고 과시한다. 감시카메라에 포착된 얼굴과 걸음걸이는 인공지능(AI) 기술로 분석해 성별과 나이를 판단한다. 중국 정부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이 기술을 쓴다고 말하지만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쓰일 가능성 역시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저자들은 중국인은 자신들이 온라인상에서 감시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감시 수법을 교묘하고 치밀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 예를 들면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바로 삭제하기보단 게시글이 외부로 잘 퍼져나가지 않도록 한다. ‘리트윗할 수 없다’ ‘검색으로 표시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뜨게 해 컴퓨터 오류인 것처럼 포장한다. 중국 정부는 사용자가 정부에 호의적인 글을 올리면 공유가 많이 되게 하는 전략도 쓰고 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는 이용자가 실명 인증을 했는지, 부적절한 글을 올렸는지를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낮으면 추천이나 팔로가 금지되게 설정해 이용자가 자기 검열을 하게 한다. 반면 정부를 칭찬하는 글을 올리는 이용자는 점수가 올라가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다. 저자들은 중국 자체를 비판하기보단 중국식 감시 체계가 다른 나라로 퍼져가는 흐름을 더 우려한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선진국도 감시할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행복’이란 편리함일까 자유일까. 편리함을 위해 자유를 내주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어느 나라 국민이든 비슷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고민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감시당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