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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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책의 향기]마리 앙투아네트도 빠졌다, 이 반짝이는 욕망에

    요즘 백화점에서 명품 시계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유명 브랜드의 시계는 재고가 없을 정도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 시계를 사러 갔다 허탕을 친 이들이 늘어나 “롤렉스 매장은 공기를 판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산 뒤 중고시장에서 웃돈을 얹어 되파는 이들도 있다. 주 고객층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고등학생 때부터 손목시계가 아니라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던 MZ세대가 마주한 아이러니다. 왜 MZ세대는 명품 시계에 열광하는 걸까. 정밀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을 읽어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시계에 매혹되는 건 사람과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시계는 동서고금에 걸쳐 남녀노소를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저자가 추정하는 인류 최초의 시계는 ‘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이샹고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원숭이의 종아리뼈가 고대엔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도구였다는 것. 2만5000년 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뼈에는 구불구불한 빗금이 각기 다른 깊이로 수십 개 그어져 있다. 빗금의 깊이는 한 달 주기로 달라지는 달의 위상을 나타낸다는 게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크기가 작은 뼈는 멀리 사냥을 떠날 때 갖고 가기 편리해 휴대성도 갖췄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선 바닥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물시계를 사용했다. 물시계에 물을 가득 채우면 물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물시계 안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을 재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 13세기 유럽에선 추가 떨어지는 힘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가 등장해 시간의 정확성이 높아졌다. 대항해시대엔 시계를 더 작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개인용 시계가 있어야 낯선 곳을 효율적으로 탐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는 아름다움을 향해 발전하기도 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장인에게 최고로 사치스러운 시계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면 안 되고, 시곗바늘은 금으로, 케이스는 사파이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제작에 40여 년이 걸린 이 시계는 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뒤에야 완성됐다.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의 수제 황금 시계는 15분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를 낸다. 저녁이 되면 미국 뉴욕 맨해튼 하늘의 별자리를 보여준다. 시간의 정확성과는 상관없는 기능이 다수 담긴 시계지만 2014년 경매에서 당시 휴대용 시계 최고가인 2323만7000스위스프랑(약 300억 원)에 팔렸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저자는 “기계 부품으로 구성된 이 소우주는 시간을 알려주는 하찮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별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고귀한 업무를 할 수도 있다. 시계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계는 주인이 어떤 감정과 목적으로 쓰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쩌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마음에 사치스러운 시계를 원하지 않을까. 더 비싼 시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은 특권층만 소유했던 시계가 기술 발전과 함께 널리 퍼지니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요즘 MZ세대가 명품 시계를 사는 이유도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달라지기 위해서일지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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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언론중재법 폭주… “언론자유에 재갈”

    더불어민주당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야당은 “현대판 분서갱유”(국민의힘), “언론중죄법”(정의당)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24일 법제사법위원회, 25일 본회의까지 강행 처리 방침을 이어갈 계획이다. 여기에 민주당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기후위기 대응법을, 교육위원회에서는 사립학교법을 각각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세 상임위 모두 25일 위원장이 국민의힘으로 바뀌는 곳으로, 내년 3·9대선을 200여 일 앞두고 다시 한 번 입법 폭주에 나선 것. 전날(18일) 열린민주당과 손잡고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한 민주당은 이날 오전 11시 문체위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의원 40여 명은 문체위 회의실 앞에 모여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언론 탄압” “공산당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반발했지만 회의 개최를 막진 못했다. 국민의힘은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 조정위원으로 포함시킨 점을 문제 삼아 “안건조정위 절차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민주당 소속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표결을 강행했다. “찬성하는 의원들은 기립해 주시기 바란다”는 도 위원장의 말에 민주당 의원 8명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 등 9명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전체회의 시작 2시간여 만에 언론중재법은 문체위를 통과했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에 국민의힘은 “독재 DNA의 민낯”이라며 성토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민주당 권력이 꼰대, 수구 꼴통이 됐다”면서 “대한민국에 다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독재 권력에 물든 저 집권세력이 물러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권 연장을 위해 언론 자유를 후퇴시킨 것”이라며 “이 정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비리가 있기에, 무엇이 그렇게 무섭기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자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수적 열세로 인해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저지할 뾰족한 수가 없는 국민의힘은 25일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 토론)를 신청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도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금이라도 폐기할 것을 국회에 요구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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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통제 길 터놓은 위헌적 입법 폭거 규탄”

    19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자 언론단체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단체는 19일 ‘언론에 재갈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개정안 중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허위·조작 보도는 그 개념이 불분명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돼 언론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민주당은 언론을 일반인의 공적으로 규정해 언론사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언론에 대한 신뢰를 근본부터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언론 재갈 물리기란 본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반민주적 악법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4개 단체도 공동성명을 내고 “민주당의 강행 처리는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라며 “자신들을 감시하는 언론의 발을 묶어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강화할 길을 활짝 열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120여 개국 신문사 편집인 등이 참여한 국제언론인협회(IPI)는 17일(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한국은 새로운 ‘가짜 뉴스’법을 철회해야 한다”는 성명을 올리고 “언론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국의 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를 표명한다”면서 “이 법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막는 데 쓰일 수 있어 한국의 언론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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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전세살이 지쳐 강릉 이주… 수입 반토막났지만 행복 넘실넘실

    “우리 강릉 가서 살까? 나 행복하고 싶어.” 2015년 7월 서울시내 중국집. 결혼한 지 4개월 된 남편이 짜장면을 먹다 아내에게 불쑥 자신의 소원을 고백했다. 어렵사리 전세로 구한 서울 용산구 빌라에서 막 신혼생활을 즐기던 차. 누가 보면 철없는 얘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부부는 이듬해 8월 강원 강릉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때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부부는 평일 저녁에는 경포호 주변을 걷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영진해변을 뛰논다. 에세이 ‘주말엔 아이와 바다에’(어떤책)를 최근 펴낸 김은현(39·여), 황주성 씨(38)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부부가 막 성인이 돼 겪은 ‘서울 공화국’에서의 삶은 지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릉 출신인 그는 2001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후 고시원에서 살았다. 입사한 뒤로는 친구와 자취를 했다. 남편도 경기도에 살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 소재 대학과 직장으로 왕복 2시간을 왔다갔다 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2015년 3월 결혼한 두 사람은 1년 계약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거실 1개, 방 1개, 화장실 1개인 33m² 빌라의 전세가는 1억6000만 원. 아파트는 돈이 부족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재계약 시기가 되자 집주인은 월세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매달 부담스러운 돈을 내야 했다. 결혼생활 내내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겠구나 싶어 진이 빠졌다. 치열한 직장생활에 지쳐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구상해온 남편이 조심스레 아내에게 제안했다. “당신 고향인 강릉에서 살면 어떨까. 새로운 일도 해보고 싶어. 바다가 가까운 것도 좋잖아.” 아내는 망설였다. 뮤지컬을 보고,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문화 인프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서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게 정답일까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은 강릉에 봐둔 2층 단독주택이 매물로 나왔다고 했다. 매매가는 빌라 전세금과 비슷했다. 결심이 선 두 사람은 2016년 8월 직장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향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릉 단독주택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이었다. 1000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다. 부부는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꾸몄다. 66m² 넓이의 2층에 살림집을 차렸다. 거실 1개, 방 2개, 화장실 1개, 창고 1개로 두 사람이 살기에 충분했다. 집에서 차를 타고 3분만 가면 해변. 100m² 넓이의 1층은 부부의 가게로 사용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출판을 해본 아내의 경험을 살려 셀프 웨딩 촬영업체를 차렸다. 때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할 때보다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출도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서울에서는 돈 버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풀었죠. 여기선 바다와 산을 걸으며 공짜로 스트레스를 풀어요.” 부부는 강릉에서 두 딸을 낳았다. 아이들은 해변을 벗 삼아 커간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교육 문제가 크지 않고, 부부 역시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어 의료 인프라가 아쉽지 않다. 김 씨는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현실적 조언을 덧붙였다. “저는 강릉이 고향이라 적응이 쉬웠지만 낯선 지역으로 옮긴 뒤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무작정 자영업을 한다며 떠나는 것도 금물이에요. 냉철하게 고민하고 준비한 분들이 옮겨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강릉 이주를 고민한다면 한 달 살기를 미리 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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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하고 싶어”…서울 전세집 떠나 강릉 단독주택으로 간 부부

    “우리 강릉 가서 살까? 나 행복 하고 싶어.” 2015년 7월 서울의 한 중식당. 결혼한 지 4개월 된 남편은 짜장면을 먹다 아내에게 자신의 소망을 고백했다. 발품을 팔아가며 겨우 구한 서울 용산구의 한 빌라에 막 전세로 입주해 신혼생활을 즐기던 때였다. 서울을 떠나자니…. 현실성 없는 토로였다. 그러나 다음해 8월 두 사람은 강원 강릉시로 이사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부부는 주중 저녁엔 경포호 언저리를 걷고, 주말엔 아이와 함께 영진해변에서 뛰어논다. 최근 에세이 ‘주말엔 아이와 바다에’(어떤책)를 펴낸 김은현(39·여), 황주성 씨(38)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부부는 ‘서울공화국’에서 성인의 삶을 보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강릉 출신인 김 씨는 2001년 서울 소재 대학 입학과 함께 상경해 고시원에 살았다.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엔 친구와 함께 자취를 했다. “남편은 2002년 서울 소재 대학 입학 후 직장에 다닐 때까지 경기도에서 ‘러시아워’에 출퇴근을 했죠. 왕복 2시간 이상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서 지쳐갔다고 합니다.” 2015년 3월 결혼한 두 사람은 용산구에 1년 계약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거실 1개, 방 1개, 화장실 1개인 33㎡ 빌라의 전세가는 1억6000만 원. 발품을 팔아가며 어렵사리 구한 매물이었다. 아파트는 예산에 맞지 않아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뒤 재계약 시기가 되자 집주인은 계약형태를 월세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집주인이 제시한 월세 금액은 부담되는 수준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겠구나 싶어 진이 확 빠졌다. 치열한 직장생활에 지쳐가기도 하던 때였다. 그동안 구상해온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황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 고향인 강릉에서 살면 어떨까. 새로운 일도 해보고 싶어. 바다가 가까운 것도 좋잖아.” 김 씨는 망설였다. 주말엔 뮤지컬을 보고,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인프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서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싶었다. 어느날 남편이 강릉의 한 2층 단독주택이 매물로 나왔다고 했다. 매매가는 당시 살던 용산구 빌라의 전세금과 비슷했다. 결심이 선 두 사람은 2016년 8월 직장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떠났다. 서울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릉의 단독주택은 30년 이상 된 오래된 집이었다. 1000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다. 부부가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꾸몄다. 66㎡인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거실 1개, 방 2개, 화장실 1개, 창고 1개라 두 사람이 살기엔 충분했다. 차를 타고 3분만 가면 해변이었다. 100㎡인 1층은 자영업 가게로 꾸몄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황 씨와 출판 업무를 맡았던 김 씨의 이력을 살려 셀프 웨딩 촬영업체를 차렸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서울에서 맞벌이 직장생활 할 때보다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출도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서울에선 돈 버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풀었는데 강릉에선 바다와 산을 걸으며 공짜로 스트레스를 풀죠.” 부부는 강릉 이사 후 두 딸을 낳았다. 아이들은 해변을 벗 삼아 커가고 있다. 물론 아직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교육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부부 역시 큰 질환을 겪지 않아 의료 문제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5년 전과 현재 강릉의 집 시세가 다른 만큼 그는 현실적 조언도 덧붙였다. “전 강릉이 고향이라 적응이 쉬웠지만 낯선 지역으로 이사 후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무작정 자영업을 한다고 오는 것도 금물이에요. 냉철하게 고민하고 준비한 분들이 내려와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강릉 이주를 고민한다면 한 달 살기를 미리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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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일 오빠 보러 경기장 출근하던 ‘축덕’, 이제 K리그로 출근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전북 전주시에 사는 열세 살 소녀는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옷을 입고 다녔다. 틈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K리그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어른이 된 소녀는 K리그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고, 멈추지 않는 축구 사랑은 그를 영국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까지 이끌었다. 20일 에세이 ‘저질러야 시작되니까’(시크릿하우스)를 펴내는 양송희 씨(32) 이야기다. 그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축구장에 한 번 간 적 없었던 여중생이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가수 ‘god(지오디)’보다 축구선수 김남일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다”면서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마음에 K리그 경기장을 다녔던 게 축구 사랑의 시작”이라고 웃었다. “연예인은 TV 안에만 존재하는데 축구선수는 경기장에 가면 실제로 볼 수 있잖아요. 운이 좋으면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 일촌이 될 수 있었어요. 축구야말로 소녀 팬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파고드는 행위)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대상이었죠.” ‘월드컵 키즈’인 그는 고등학생 땐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축구 경기장에 달려가곤 했다. 국제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축구 중계를 보며 밤을 새웠다. 2008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스포츠학과에 입학하고선 대한축구협회가 여는 여대생 축구 대회에도 나갔다. 전국 여대생 중 축구선수가 아닌 아마추어만 출전하는 경기지만 참가자의 다수가 학창 시절 때 운동을 했던 이들이었다. 축구 한 번 해본 적 없는 같은 학과 여학생 중 경기에 뛸 수 있는 최소 인원인 11명을 겨우 맞춰 출전했다. 그는 “실력은 부족했지만 경기 전날에 축구 유니폼을 입고 축구 스타킹까지 신고 잤을 정도로 열의는 넘쳤다”며 “2011년까지 매년 이 대회에 참가했다. 팀 주장도 맡으며 매주 1회 꼬박꼬박 팀 훈련을 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K리그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사했다. 남자 직원이 대다수인 직장이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만으로 점차 업무를 배워갔다. 전기 건축 소방 설비 잔디관리 등 경기를 지원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경기 포스터와 칼, 테이프를 넣은 보따리를 보부상처럼 이고 지고 다니면서 인천 시내 전역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모르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 ‘포스터를 붙여도 될까요’라고 부탁한 뒤 구단에 대한 팬들의 생각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일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축구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다. 2018년 여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EPL의 여러 구단에 지원서를 넣었고 한 달 만에 런던 토트넘 홋스퍼에 채용됐다. 한국의 정규직 대신 얻은 타국의 7개월 계약직, 구장을 밟는 대신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기념품을 파는 ‘팬스토어’에서 일했지만 손흥민 선수가 뛰는 명문 구단에서 일하게 된 것. 그는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사이즈별로 파는 일명 ‘손흥민 존’에서 일하거나 몸으로 뛰는 다른 현장직 업무를 겸했다”며 “철저하게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EPL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하지 못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또 “월급이 한국 돈으로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아 경기가 없는 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며 버텼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성장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난해 1월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러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진 않았지만 결국 그가 살아온 길이 재취업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해맑게 답했다. “너무 오랫동안 취미로 좋아했고, 이젠 직업이 된 이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요. 어쩌면 저처럼 축구를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꿈꾸는 일을 찾아 어디든 떠날 거냐고요? 슛을 쏴야 골이 들어가듯 뭐든지 저질러야 꿈이 시작되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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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휴가철 서점가 여성작가 돌풍

    한국 여성 작가들이 출판시장의 대목으로 불리는 여름 휴가철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전체 베스트셀러 2∼6위는 모두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차지했다.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미예의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2’(팩토리나인)와 지난해 7월 출간된 전작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각각 2, 6위를 차지했다. 이달 18일 출간될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은 예약판매만으로 4위에 올랐다. 지난달 27일 나온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과 6월 출간된 정유정의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도 각각 3, 5위를 차지했다. 알라딘 회원 가운데는 문학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보문고에선 4권(달러구트 꿈 백화점2, 완전한 행복, 달러구트 꿈 백화점, 밝은 밤), 예스24에선 3권(달러구트 꿈 백화점2, 달러구트 꿈 백화점, 완전한 행복)의 한국 여성 작가 장편소설이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포함됐다. 직장인의 휴가와 학생들의 방학이 몰려 있는 7, 8월은 서점가의 대목으로 불린다. 보통 해외여행에 들고 갈 법한 여행서나 에세이가 많이 팔린다. 오랜 기간 휴가지에 머물면서 읽을 만한 두툼한 평전이나 경영서도 인기다.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해 알라딘에서 같은 기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든 한국 소설은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가 9위로 유일했다. 2019년엔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이 4위, 조정래의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1’(해냄)이 10위였다. 두 작가 모두 남성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소설이 인기를 끌 만한 상황임을 고려해도 한국 여성 작가의 강세는 이례적이다”라고 했다. 출판계에선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20, 30대 여성의 지지가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한 이들을 분석해보니 전체 구매자 중 20, 30대 여성이 ‘지구 끝의 온실’은 64.5%, ‘밝은 밤’은 55.4%에 달했다. 조선아 알라딘 마케팅팀 차장은 “한국 여성 작가들에 대한 20, 30대 여성의 지지가 확고해 작품이 출간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여성 작가들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장르문학의 강세는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거나 문학평론가들이 추천하는 순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이젠 독자들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원한다는 것. 이미예는 판타지, 김초엽은 공상과학(SF), 정유정은 스릴러 작품을 쓴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은 “문장 표현에 방점을 둔 순문학보단 이야기의 힘이 강하고 읽으면 영상이나 그림처럼 장면이 그려지는 장르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장르 문학을 원하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쓰는 한국 여성 작가의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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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휴가철 서점가, 한국 여성 작가가 휩쓴다

    한국 여성 작가들이 출판시장의 대목으로 불리는 여름 휴가철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전체 베스트셀러 2~6위는 모두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차지했다.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미예의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2’(팩토리나인)와 지난해 7월 출간된 전작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각각 2, 6위를 차지했다. 이달 18일 출간될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은 예약판매만으로 4위에 올랐다. 지난달 27일 나온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과 6월 출간된 정유정의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도 각각 3, 5위를 차지했다. 알라딘 회원 가운데는 문학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보문고에선 4권(달러구트 꿈 백화점2, 완전한 행복, 달러구트 꿈 백화점, 밝은 밤), 예스24에선 3권(달러구트 꿈 백화점2, 달러구트 꿈 백화점, 완전한 행복)의 한국 여성 작가 장편소설이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포함됐다. 직장인의 휴가와 학생들의 방학이 몰려 있는 7, 8월은 서점가의 대목으로 불린다. 보통 해외여행에 들고 갈법한 여행서나 에세이가 많이 팔린다. 오랜 기간 휴가지에서 머물면 읽을만한 두툼한 평전이나 경영서도 인기다.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해 알라딘에서 같은 기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든 한국 소설은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가 9위로 유일했다. 2019년엔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이 4위, 조정래의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1’(해냄)이 10위였다. 두 작가 모두 남성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소설이 인기를 끌만한 상황을 고려해도 한국 여성 작가의 강세는 이례적이다”고 했다. 출판계에선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20, 30대 여성의 지지가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한 이들을 분석해보니 전체 구매자 중 20, 30대 여성이 ‘지구 끝의 온실’은 64.5%, ‘밝은 밤’은 55.4%에 달했다. 조선아 알라딘 마케팅팀 차장은 “한국 여성 작가들에 대한 20, 30대 여성의 지지가 확고해 작품이 출간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여성 작가들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장르문학의 강세는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거나 문학평론가들이 추천하는 순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이젠 독자들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원한다는 것. 이미예는 판타지, 김초엽은 공상과학(SF), 정유정은 스릴러 작품을 쓴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은 “문장 표현에 방점을 둔 순문학보단 이야기의 힘이 강하고 읽으면 영상이나 그림처럼 장면이 그려지는 장르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장르 문학을 원하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쓰는 한국 여성 작가의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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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MZ세대 에세이 붐, 어떻게 골라 읽지?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쓴 에세이가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가 그만큼 MZ세대가 직접 경험한 일상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인다는 뜻일 터. 시류에 맞춰 보도자료에 ‘MZ세대’를 커다랗게 써서 언론사에 책을 보내는 출판사들도 생겨났다. MZ세대 담론에 영합해 수준 낮은 에세이를 펴내는 출판사도 종종 보인다. MZ세대 저자의 책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와 어떤 책이 좋은지 고르기 힘들다. 이 책은 2007년 문학동네에 입사한 후 14년간 에세이를 펴낸 이연실 편집팀장의 비밀노트다. 그는 문학동네에서 작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작사가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등의 굵직한 에세이를 다수 펴냈다. 그는 에세이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린다. 좋은 에세이는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대로 된 MZ세대의 에세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에세이에 대해 해박한 선구안을 지닌 그의 시선을 빌려보자. 이 편집팀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 수와 인지도에 속지 말라”고 단언한다. 요즘 SNS에서 활동하는 유명인들이 에세이를 많이 펴내지만 유명하다는 게 좋은 이야기를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것. 실제로 MZ세대의 통찰을 담은 명저를 표방하지만 저자가 SNS에 올렸던 내용을 급하게 짜깁기한 것에 불과한 책이 있다. 진하게 여운이 남는 감동보다는 빠르게 화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작가에게서 골라낸 경우도 보인다. 출판사가 MZ세대라는 허울을 씌웠지만 저자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있다.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출판사가 홍보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작가의 기억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는 이 편집팀장의 기준엔 못 미치는 책들이다. 이 편집팀장은 “제목을 무시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MZ세대 저자가 썼는데 제목은 극히 평범한 책들이 있다. MZ세대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와 시각을 담기 위해선 MZ세대의 일상적 표현이 담긴 제목이 필요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에세이엔 갤러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눈이 간다. MZ세대가 쓴 에세이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MZ세대 독자다. MZ세대에겐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글보다 사진이 더 매력적이다. 줄글만 가득 채워놓은 책은 MZ세대를 겨냥해 에세이를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다. 책 만듦새에 들인 성의가 부족했던 셈이다. 이 편집팀장은 “에세이의 타깃 독자는 결국 대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에세이는 대중을 상대로 만든 책이라 품을 수 있는 층위가 넓고, 사회가 원하는 이야기를 시시각각 담을 수 있다는 것. 정치권에서 MZ세대에 대한 담론이 뜨거워지자 MZ세대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가 곧바로 인기를 끈 이유다. 지금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MZ세대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 이야기를 찾아주길 기대하고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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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플 세상… 언제 누가 타깃 될지 몰라”

    일본 유명 아이돌이 루머에 휘말린다. 팬을 때렸다는 것. 아이돌은 사건의 전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실망한 팬들은 돌아서기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 아이돌의 팬인 여고생 아카리는 혼란에 빠진다. 다른 이들처럼 냉정하게 비난할까. 아니면 끝까지 사랑하는 이를 지지할까. 삶의 유일한 의미인 아이돌을 포기하고도 아카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5일 장편소설 ‘최애, 타오르다’(미디어창비·사진)를 한국에서 펴낸 일본 작가 우사미 린(22)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이돌, 배우, 유튜버, 예능인, 운동선수 등 언제 누가 논란에 오를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 일본에선 2, 3개월에 한 번꼴로 유명인의 발언이나 행동을 두고 비판적인 의견이 퍼지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SNS 악플이 많아진 현상에 주목해 책을 썼다는 것. “원래 팬이던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누군가의 발언이나 행동을 비판하거나 반복적으로 논쟁을 벌인다. 인터넷에 비방 댓글이 많아지고 있다.” 소설은 “최애가 불타버렸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일본에서 ‘최애’(최고로 애정한다)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를 뜻한다. ‘타오르다’는 거세게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됐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 그는 “작품에서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다”며 “다만 이야기의 본질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몸을 던지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어떤 한 가지에 인생을 바친 적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아카리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고 취업 준비에도 관심이 없다. 반면 아이돌 앨범과 굿즈를 사고 콘서트 표를 구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팬덤 활동에 쓸 돈을 구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아르바이트를 뛴다. 어른들은 아카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론 지적한다. 그는 “어른들은 아카리의 행동을 ‘어리광’이나 ‘게으름’이라는 말로 규정하지만 아카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위기에 처한 미성년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책망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문하고 자책하는 아카리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의 올해 수상작이다. 지난해 9월 출간 후 일본에서만 50만 부가 팔렸다. 한국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고 있듯 일본 독자들도 젊은 작가가 10, 20대를 그린 신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그는 “무언가에 애착을 느끼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금 세대에도 많든 적든 있지 않을까”라며 “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다. 20대에 뛰어난 작품을 수없이 써낸 대단한 작가들을 성실하게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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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이 팬을 때렸다…최애가 불타버렸다”

    어느 날, 일본 유명 아이돌이 루머에 휘말린다. 팬을 때렸다는 것. 아이돌은 사건의 전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실망한 팬들은 돌아서기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비판이 쏟아진다. 아이돌 팬인 여고생 아카리는 혼란에 빠진다. 다른 이들처럼 냉정하게 비난할까. 아니면 끝까지 사랑하는 아이돌을 지지할까. 삶의 유일한 의미인 아이돌을 포기하고도 아카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5일 장편소설 ‘최애, 타오르다’(미디어창비)를 펴낸 일본 작가 우사미 린(22)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이돌, 배우, 유튜버, 예능인, 운동선수 등 언제 누가 논란에 오를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 일본에선 2~3개월에 한 번 꼴로 유명인의 발언이나 행동을 두고 비판적인 의견이 퍼지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SNS 악플이 많아진 현상에 주목했다는 것. “원래 팬이던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누군가의 발언이나 행동을 비판하거나 반복적으로 논쟁을 벌인다. 인터넷에 비방 댓글이 많아지고 있다.” 소설은 “최애가 불타버렸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일본에서 ‘최애’(최고로 애정한다)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를 뜻한다. ‘타오르다’는 거세게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됐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 그는 “작품에서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다”며 “다만 이야기의 본질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몸을 던지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어떤 한 가지에 인생을 바친 적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신작에서 아카리는 학업성적이 좋지 않고 취업준비에도 관심이 없다. 반면 아이돌 앨범과 굿즈를 사고 콘서트 표를 구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팬덤 활동으로 쓸 돈을 구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아르바이트를 뛴다. 어른들은 아카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론 지적한다. 그는 “아카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며 “어른들은 아카리의 행동을 ‘어리광’이나 ‘게으름’이라는 말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위기에 처한 미성년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자책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문하고 자책하는 아카리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일본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 올해 수상작이다. 지난해 9월 출간 후 일본에서만 50만 부가 팔렸다. 한국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고 있듯 일본 독자들도 젊은 작가가 10, 20대를 그린 신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그는 “무언가에 애착을 느끼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금 세대에도 많든 적든 있지 않을까”라며 “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다. 20대에 뛰어난 작품을 수없이 써낸 대단한 작가들을 성실하게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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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원 이루는 식당’ 현실감 있는 판타지 소재에 “영상화 제격”

    《평범한 보건교사가 젤리와 싸우며 학생들을 구하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판타지 소설에 빠진 적이 있나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원작 소설을 산 경험은 없나요? ‘영감(靈感) 어딨소’는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함께 소개합니다. 이 원작이 왜 영상화됐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살펴보며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들여다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상한 식당이 있다. 말할 줄 아는 마법식물 맨드레이크가 재잘재잘 식당 홀에서 떠든다. 주방 한쪽엔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의 마법 향신료가 가득 차 있다. 이 신비한 식당의 주인은 마녀. 그는 커다란 솥 안에 갖가지 재료를 넣고 기다란 국자를 휘익 젓는다. 핫초콜릿이나 토마토 수프 같은 서양식 식사만 만들까. 먹으면 힘이 번쩍 나는 영계백숙이나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김치콩나물죽처럼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도 판다. 물론 음식은 공짜가 아니다. 원혼에 시달리거나 희생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손님만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배가 부른 것은 물론이고 원하던 소망까지 이룰 수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드라마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내용이다. 공개 직후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1위를 기록한 이 작품의 상상력이 어디서 왔을까 했더니 원작 소설이 있었다. 2016년 다산책방에서 출간된 동명의 장편소설은 드라마 공개 후 판매량이 4배 늘었다. 이 장편소설은 지식재산권(IP) 확대를 위해 교보문고가 열고 있는 스토리 공모전 제3회 당선작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티빙 사무실에서 원작자 구상희 작가와 연출을 맡은 소재현 이수현 감독을 만나 왜, 어떻게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물었다. 소설 ‘마녀식당…’은 마녀식당이 배경인 판타지다. 최근 판타지 장르가 인기인 드라마 시장의 흐름에 딱 맞다. 동시에 ‘마녀식당…’은 현실과 멀지 않은 곳에 판타지를 구축했다. 주인공들은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를 걷다 환상의 세계인 마녀식당에 들어간다. 판타지 드라마가 유행하는 드라마 업계의 요구를 맞추면서도 컴퓨터그래픽(CG)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이점이 있었던 것. 방대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영국 판타지물 ‘반지의 제왕’처럼 CG로 모든 세계를 재창조할 필요가 없어 영상화 결정에 유리했다. 이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면 제작비 때문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해야 한다. 이 작품은 정해진 시간 안에 구현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현실에 기반을 둔 판타지는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쉽다. 영국 판타지물인 해리 포터에 독자들이 매료된 건 우리 주위 어디든 마법사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이였던 해리 포터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을 걷다 마법의 힘이 깃든 벽으로 다가가면 비밀의 승강장으로 들어가듯 시청자도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구 작가는 “누구나 언제든 마녀식당을 찾아갈 수 있듯이 현실 속에서 판타지가 일어날 때 ‘나도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고 말했다. 소 감독은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언제 어느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바로 이해가 된다. 연애, 취업, 학교생활, 자식 걱정처럼 다양한 세대가 느낄 수 있는 고민이 녹아 있다”고 했다. 영상화 과정에서 소설과 달라진 점도 있다. 독자가 대개 순서대로 읽는 소설책과 달리 OTT는 시청자가 원하는 회차를 골라 본다. 소설에는 주요 인물이 천천히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빠른 몰입을 원하는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하기에 초반 10분 안에 주요 인물을 모두 소개한다. 소설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심리를 혼잣말로 표현하곤 하지만 드라마에선 감정을 대화로 보여준다. 마녀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비서인 ‘오 대표’를 새로 추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감독은 “학교폭력 피해자인 남자 주인공을 드라마에서는 학교폭력 피해자를 도와주는 인물로 바꿨다. 로맨스를 부각하려다 보니 남자 주인공을 멋져 보이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전체 8화 가운데 6화까지 공개됐다. 이 감독은 “반응이 좋아 드라마 시즌2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작가도 “소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2’를 쓸 가능성도 없진 않다”며 웃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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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단 향해… 더 젊어진 한국문학이 간다

    1993년부터 매년 약 2억 원 규모의 한국 문학 번역 출판 지원 사업을 해온 대산문화재단이 2일 올해 지원 대상 작품을 발표했다. 올해 재단의 지원을 받는 작품은 총 13건. 이 중 6건이 30대 이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해외에 번역되는 한국 문학 작품의 작가들이 젊어지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2016년 번역 지원작과 비교했을 때 올해 지원작 작가들의 평균 연령은 7.4세 젊어졌다. 2016년 52.7세였던 것이 45.3세로 낮아진 것. 이미 사망한 작가들은 제외한 수치다. 2016년 지원을 받았던 18건의 작품 중 30대 작가는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당시 36세) 한 명뿐이었다. 올해는 프랑스어와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되는 장편소설 ‘9번의 일’의 김혜진(38), 영어로 번역되는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의 임솔아(34)와 소설집 ‘실패한 여름휴가’의 허희정(32)이 모두 30대다.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작가들이 젊어진 이유는 젊은 문인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공감을 살 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다루는 소재가 한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에 비해 외국 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것.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일터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9번의 일’은 노동자들의 삶의 비애를 정면으로 다뤄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장 많은 언어권의 번역 지원을 받게 됐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소설 속 시공간을 서울에 둬도, 미국 뉴욕이나 독일 베를린에 둬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중견 작가라 할지라도 대표작 위주로 해외 출판시장에 소개됐다면 지금은 비인기작, 혹은 출간된 지 오래된 작품들도 새삼 조명된다는 점이 또 다른 차이다. 한강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이번에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가 선정돼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또 다른 지원작인 박완서의 ‘저녁의 해후’(중국어 번역),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영어 번역)는 각각 출간된 지 15년, 9년이 흐른 작품들이다. 중견 작가의 오래된 작품들이 최근 들어 해외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1년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어로 번역된 하성란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2002년)는 지난해 10월 미국 출판전문 매거진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됐다. 장근명 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과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관심이 늘면서 중견 작가들의 숨겨진 작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해 100여 건의 한국 문학 번역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도 이 같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번역원이 지원하는 작품 중 60% 정도는 해외 출판사가 작품을 미리 계약한 뒤 번역원에 지원을 신청하는 구조여서 해외 독자들의 관심과 선호의 변화를 더욱 기민하게 느낄 수 있다. 지원작 작가의 평균 연령은 2016년 54.8세에서 올해 51.6세로 낮아지는 추세다. 박소연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팀장은 “과거에는 순문학 위주로 번역했다면 최근에는 장르문학 등 분야도 다양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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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혼여행 대신 해외봉사한 MZ세대 부부 “살면서 가장 뿌듯”

    예비부부가 신혼 여행지를 고른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골목 구석구석 예쁜 카페가 즐비한 프랑스 파리? 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동남아 풀빌라? 이 부부의 선택은 좀 특이했다. 인도, 아프리카, 남미를 돌아다니며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했다. 5개월간의 해외 봉사활동 경험을 다룬 에세이 ‘분명히 신혼여행이라고 했다’(키효북스·사진)를 최근 펴낸 김현영(32·여) 홍석남 씨(38)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처음에는 둘 다 퇴사하고 세계여행만 다니려고 했다. 조금 색다른 경험으로 중간에 2주 정도만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다”며 웃었다. 결혼 전 김 씨는 방송국 여행 리포터로, 홍 씨는 종합상사 직원으로 일했다. 특별한(?) 신혼여행을 위해 2019년 3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두 사람은 1년의 여정을 거쳐 지난해 3월 귀국했다. “5개월간 봉사하고 7개월은 배낭여행을 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른 이들을 도운 경험이네요.” 이들은 2019년 6월 인도 고아에 도착했다. 이곳은 ‘히피들의 낙원’으로 불리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차를 타고 비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자 빈민촌이 나왔다.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쓰레기더미 옆에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부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짓기도 했다.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고생길을 자처했지만 2주 후 김 씨는 남편에게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털어놓았다. “인도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한 뒤 고민에 빠졌어요. 봉사활동보다 내 행복을 위해 관광을 다니고 싶었죠.” 그때 김 씨에게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아프다는 소식에 며칠을 울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가도 조카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귀국해 조카를 돌볼 수 없다면 다른 공간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자고 다짐했다. 부부는 그해 7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보육원으로 향했다. 상황은 인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에서 50여 명의 아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공부했다. 부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을 주자”는 호소에 친구들은 물론이고 지인의 소개를 받은 이들까지 힘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700만 원으로 식량을 사고 화장실을 새로 지었다.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한글도 가르쳤다. 김 씨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3개월간 탄자니아의 아이들을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아껴 주고 사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 2월에도 2주간 페루에서 50여 명의 빈민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도 올 거죠?”라고 묻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김 씨는 차분히 답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현실에 놓인 아이들과 지내면서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죠. 고생하면서 부부끼리 동지애가 생긴 건 물론이고요. 제가 살면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뿌듯하고 보람찬 일입니다. 후회하지 않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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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혼여행지, 하와이도 파리도 아니다…‘빈민촌’으로 떠난 부부

    예비 부부가 신혼 여행지를 고른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골목 구석구석 예쁜 카페가 즐비한 프랑스 파리? 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동남아 풀빌라? 이 부부의 선택은 좀 특이했다. 인도, 아프리카, 남미를 돌아다니며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했다. 5개월간의 해외 봉사활동 경험을 다룬 에세이 ‘분명히 신혼여행이라고 했다’(키효북스)를 최근 펴낸 김현영(32·여) 홍석남(38) 씨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처음에는 둘 다 퇴사하고 세계여행만 다니려고 했다. 조금 색다른 경험으로 중간에 2주 정도만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다”며 웃었다. 결혼 전 김 씨는 방송국 여행 리포터로, 홍 씨는 종합상사 직원으로 일했다. 특별한(?) 신혼 여행을 위해 2019년 3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두 사람은 1년의 여정을 거쳐 지난해 3월 귀국했다. “5개월간 봉사하고 7개월은 배낭여행을 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른 이들을 도운 경험이네요.” 이들은 2019년 6월 인도 고아에 도착했다. 이곳은 ‘히피들의 낙원’으로 불리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차를 타고 비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자 빈민촌이 나왔다.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쓰레기더미 옆에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부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짓기도 했다.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고생길을 자처했지만 2주 후 김 씨는 남편에게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털어놓았다. “인도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한 뒤 고민에 빠졌어요. 봉사활동보다 내 행복을 위해 관광을 다니고 싶었죠.” 그때 김 씨에게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아프다는 소식에 며칠을 울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가도 조카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귀국해 조카를 돌볼 수 없다면 다른 공간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자고 다짐했다. 부부는 그해 7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보육원으로 향했다. 상황은 인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에서 50여 명의 아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공부했다. 부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을 주자”는 호소에 친구들은 물론 지인의 소개를 받은 이들까지 힘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700만 원으로 식량을 사고 화장실을 새로 지었다.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한글도 가르쳤다. 김 씨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3개월간 탄자니아의 아이들을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 2월에도 2주간 페루에서 50여 명의 빈민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도 올 거죠?”라고 묻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했다.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김 씨는 차분히 답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현실에 놓인 아이들과 지내면서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죠. 고생하면서 부부끼리 동지애가 생긴 건 물론이고요. 제가 살면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뿌듯하고 보람찬 일입니다. 후회하지 않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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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당신의 목숨 값은 얼마일까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였다.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이 끔찍한 테러로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가 슬픔에 빠졌고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다. 테러로 사망한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 값’을 매겨야 하는 잔인한 계산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의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윤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현실에선 끊임없이 목숨 값을 계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생명 가격표가 매겨지고 있다. 생명 가격표는 투명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9·11테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테러 직후 미 연방정부는 희생자 보상기금을 만들었다. 보상기금 단장인 케네스 파인버그 전 연방검사는 희생자의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의 3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유족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정했다. 모든 사망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비경제적 가치는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25만 달러로 통일했다. 희생자가 보살펴야 할 가족을 뜻하는 피부양자 가치는 가족 1명당 10만 달러로 책정됐다. 논란이 된 건 경제적 가치. 희생자의 나이, 받고 있던 연봉 및 수당, 정년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향후 기대소득을 산출했다. 희생자의 생전 직업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셈. 예를 들어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최저소득 계층은 경제적 가치가 낮았다. 반면 뉴욕 월가에서 일한 최고경영자(CEO)의 경제적 가치는 높았다. 결국 유족마다 총 보상금이 25만∼700만 달러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 사람의 목숨 값이 최대 30배에 이르는 격차를 보인 것이다. 기업도 목숨 값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저가 자동차를 출시하며 생산비용과 사고로 인한 합의금 비용을 계산한 표를 만들었다. 가격이 싼 대신 안전성이 낮은 차를 몰다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나 유족이 “제조사 탓에 사고가 났다”며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포드는 내부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해 사망 시 합의금이 얼마나 될지를 일일이 계산했다. “기업들은 단기이익 창출을 위해 움직이고 때론 이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내 목숨의 가치는 얼마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국내에서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적정 보상금이 얼마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자연재해라도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의 목숨 값을 정할 수 없다’며 고고한 원칙만 되뇔 순 없는 노릇이다. 보상금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을 정해야 불필요한 논란을 막을 수 있다.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가족이 쉽게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마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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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 가격표,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길 수 있는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였다.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이 끔찍한 테러로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가 슬픔에 빠졌고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다. 테러로 사망한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 값’을 매겨야 하는 잔인한 계산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의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윤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현실에선 끊임없이 목숨 값을 계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생명 가격표가 매겨지고 있다. 생명 가격표는 투명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테러 직후 미 연방정부는 희생자 보상기금을 만들었다. 보상기금 단장인 케네스 파인버그 전 연방검사는 희생자의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의 3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유족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정했다. 모든 사망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비경제적 가치는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25만 달러로 통일했다. 희생자가 보살펴야 할 가족을 뜻하는 피부양자 가치는 가족 1명당 10만 달러로 책정됐다. 논란이 된 건 경제적 가치. 희생자의 나이, 받고 있던 연봉 및 수당, 정년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향후 기대소득을 산출했다. 희생자의 생전 직업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셈. 예를 들어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최저소득 계층은 경제적 가치가 낮았다. 반면 뉴욕 월가에서 일한 최고경영자(CEO)의 경제적 가치는 높았다. 결국 유족마다 총 보상금이 25만~700만 달러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 사람의 목숨 값이 최대 30배에 이르는 격차를 보인 것이다. 기업도 목숨 값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저가 자동차를 출시하며 생산비용과 사고로 인한 합의금 비용을 계산한 표를 만들었다. 가격이 싼 대신 안전성이 낮은 차를 몰다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나 유족이 “제조사 탓에 사고가 났다”며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포드는 내부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해 사망 시 합의금이 얼마나 될 지를 일일이 계산했다. “기업들은 단기이익 창출을 위해 움직이고 때론 이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내 목숨의 가치는 얼마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국내에서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적정 보상금이 얼마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자연재해라도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의 목숨 값을 정할 수 없다’며 고고한 원칙만 되뇔 순 없는 노릇이다. 보상금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을 정해야 불필요한 논란을 막을 수 있다.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가족이 쉽게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마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하는 이유다.◇ 생명 가격표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연아람 옮김 / 328쪽·1만8500원·민음사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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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쓰는 검사 “이야기로 범죄자에 경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진 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세자가 ‘미필적 고의’로 살인을 하면 어떨까 상상하다 글을 쓰게 됐죠.” 서아람 수원지검 공판부 검사(35·변호사시험 2회)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검찰청에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지 알고도 이를 저지르는 미필적 고의형 범죄자들을 많이 만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 ‘왕세자의 살인법’을 연재하고 있다. 매일 범죄자를 마주하며 겪은 고민이 웹소설 집필로 이어졌다. 그는 “많은 범죄자들이 ‘에이, 설마’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를 발현시키며 범죄를 저지른다. 처음부터 악독한 살인범이 아니지만 점점 음험한 사이코패스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왕세자 이야기를 통해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013년 검사가 돼 서울남부지검, 광주지검에서 근무했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초연’이라는 필명으로 웹소설을 쓰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검사가 의문의 테러로 시력을 잃은 후 과거 사건을 파헤치는 ‘암흑검사’(2019년)에 이어 강력부 검사가 수사를 위해 어린이집에 위장 취업하는 내용의 ‘검사님의 보육일지’(2020년)를 연재했다. 두 작품 모두 각각 200만 회 넘게 조회됐고,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본캐’(본캐릭터)인 검사와 ‘부캐’(부캐릭터)인 웹소설 작가 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것. “그동안 교통, 보이스피싱, 성범죄, 가정폭력 등 다양한 사건을 수사했지만 검사 윤리강령에 따라 제가 수사한 사건은 작품에 쓰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개별 사건에서 영감을 얻기보다 범죄자들을 만나며 든 생각이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이기도 하다. 육아와 직장 업무, 글쓰기를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유쾌한 목소리의 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중간에 작품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주말에 틈틈이 글을 써요. 유명 출판사를 통해 등단하지 않아도,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웹소설의 매력이죠. 늘 독자에 머물 줄 알았던 저도 작가가 됐으니 다른 분들도 웹소설 한번 써보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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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캐는 검사, 부캐는 웹소설 작가

    “검찰청에선 자신의 범죄로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지 알고도 범행을 저지르는 ‘미필적 고의’형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늘 멋진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세자가 미필적 고의로 살인을 하면 어떨까 상상하다 글을 쓰게 됐죠.” 1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 ‘왕세자의 살인법’을 연재하는 서아람 수원지검 공판부 검사(35·변호사시험 2회)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매일 범죄자를 마주하는 검사로서의 겪던 고민이 웹소설 집필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것. 그는 “많은 범죄자들이 ‘에이, 설마’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를 발현시켜 범죄를 저지른다”며 “처음부터 악독한 살인범이 아니지만 점점 음험한 사이코패스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왕세자의 이야기를 통해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2013년 임관한 뒤 서울남부지검, 광주지검에서 일한 그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초연’이라는 필명의 웹소설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9년 승승장구하던 검사가 어느 날 의문의 테러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뒤 과거 사건을 파헤치는 ‘암흑검사’, 지난해에는 강력부 검사가 어린이집에 위장 취업해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님의 보육일지’를 연재했다. 두 작품 모두 각각 200만 회 넘게 조회됐고 영상화가 추진되고 있다. ‘본캐’(본캐릭터)인 검사와 ‘부캐’(부캐릭터)인 웹소설 작가 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것. “그동안 교통, 보이스피싱, 성범죄, 가정폭력 등 다양한 사건을 수사했지만 검사 윤리강령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제가 수사한 사건을 작품에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 개별적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기보단 범죄자를 만나며 든 생각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왕세자의 살인법’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거처인 경복궁 동궁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뤘다. 궁녀 윤서린은 손으로 물건을 만지면 그 안에 깃든 기억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인 ‘사이코메트리’로 왕세자 이범의 실체를 파헤친다. 서 검사는 “내가 초임검사였던 9년 전만 해도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피의자나 피해자를 앉혀놓고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로 상황을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CCTV도 블랙박스도 없는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을까 고민했다”며 “주인공에게 사이코메트리라는 무기가 있다면 현대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사로서 지닌 법의학 지식도 글에 활용했다. 궁중 의녀 단금이 피해자가 사망한 원인을 찾기 위해 부검을 하는 장면에서다. 그는 “검사는 변사사건 기록을 검토하다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직접 검시를 하는 등 기본적인 법의학 지식을 갖춰야 한다. 법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유골 상태를 확인한 단금이 피해자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용의자의 키가 큰지 작은지 밝혀내는 장면을 그렸다”고 말했다. 검사이자 작가인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육아와 직장업무, 글쓰기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을까 물었더니 유쾌한 톤으로 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중간에 작품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주말에 틈틈이 글을 써요. 유명 출판사를 통해 등단하지 않아도,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웹소설의 매력이죠. 늘 독자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저도 작가가 됐으니 다른 분들도 웹소설 한번 써보세요!”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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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스펙 쌓는 삶은 NO” 남극기지 요리사 도전한 MZ청년

    나이 스물넷. 취업 준비를 위해 달릴 때다. 학점과 토익 점수는 기본, 여기에 자격증까지…. 이른바 스펙을 갖춰 놓지 않으면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기에 생뚱맞은 선택을 했다. 남극에서 요리사로 일해 보는 것.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조리지원 대원으로 5개월간 일한 경험을 지난달 15일 에세이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상상출판)로 펴낸 김인태 씨(26·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3학년)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2019년 여름방학 때 남극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 내용의 공상과학(SF) 소설 ‘남극낭만담’을 읽다 문득 남극에 가면 재밌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근무 대원을 매년 뽑는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지만 조리지원 업무는 자격증과 1년 이상의 조리 경력만 있으면 된다. 그는 군 전역 후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틈틈이 레스토랑에서 일해 그 경력이 인정됐다. “원래 저는 안전 지향적인 삶을 살았는데 ‘지금 남극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남극기지에 미친 척하고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습니다.” 한국을 떠나 비행기로 사흘을 이동한 끝에 2019년 11월 남극에 도착했다. 온통 새하얀 남극의 풍경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재미 삼아’ 떠난 이곳은 휴양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습도가 15% 이하라 피부가 갈라지기 일쑤였고 강한 추위에 몸이 벌벌 떨렸다. 여름인데도 온도는 영하 15도 안팎. 장갑 없이 맨손으로 30초 넘게 있으면 동상에 걸릴 정도였다. 매일 오전 5시 반 기상해 무거운 음식 재료를 옮겨야 했다. 조리담당 대원 3명이 나머지 대원과 방문객까지 모두 100여 명의 세 끼를 책임졌다.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주 7일,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그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우울증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대원들과 어울리며 남극의 삶에 점차 적응했다. “일이 힘든데 네가 해주는 밥을 먹는 낙으로 산다”는 대원들의 격려에 힘이 났다. 휴일에는 대원들과 펭귄을 보거나 다른 해외 연구소를 방문하기 위해 하이킹을 떠났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했다. 틈틈이 일기도 썼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면 모든 행동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냐는 잣대로만 판단하지만 남극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며 “돈 쓸 곳도 없는 남극에서 내가 무얼 위해 달려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결국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남극에서 근무를 마친 그는 지난해 4월 귀국했다. 바로 복학하진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고민하며 책을 읽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남극에 다녀온 뒤 무엇이 바뀌었을까. “저는 취업이나 결혼을 포기한 ‘N포’나 내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외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아니에요. 오직 재밌을 것 같아서 남극으로 떠난 ‘재미주의’에 가깝죠.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제 생각에 확신은 생겼어요. 재밌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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