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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다 필요 없다. 그깟 감투 다 소용없어…. 응? 가지 말아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널 보고 이완용이라는….” “어머니, 전 당당합니다. 매국이 아닌 애국이란 신념이 있기에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에 대해서도 한 점 부끄럼 없습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한일 양국의 국교 수립에 관한 조약)이 전격 체결됐다. 이동원 당시 외무부 장관은 일본 출국길에 만난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굴욕외교’ ‘매국협정’이라는 거센 비난 속에서 한일협정을 추진하던 외교관의 비애가 묻어난다. 이 장관과 함께 일했던 문석주 차관 역시 “최선이 못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어도 차선의 해결책은 마련했다고 믿었다. 하루도 편안한 날 없이 고생해 왔던 외무부 관계자나 대일교섭에 숱한 고생을 했던 대표단으로서는 (국회 비준을 받는 과정에서) 서글픔 또한 금할 도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과거사 청산이냐, 경제 발전부터인가.’ 한일협정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러나 외교사적으로 본다면, 한일협정은 무려 13년 8개월간 치열한 ‘외교 전쟁’의 결과물이었다. 1951년 미국이 한일 수교를 종용하면서 회담이 시작됐지만 광복 이후 한일 간의 거리감은 여전히 컸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취임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경제개발자금 확보를 위해 6차 한일회담을 추진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은 극비리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 이상 지원’에 합의했고 가장 견해차가 컸던 청구권 문제도 해결됐다. 하지만 ‘김-오히라 메모’라는 이면합의와 독도 폭파 밀약설 등으로 “한일협정은 매국협정”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1964년 6월 3일 1만여 명이 거리 투쟁에 나서는 ‘6·3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다.김-오히라 메모 이후 외교 전면전 ‘김-오히라 메모’가 끝이 아니었다. 더욱 살벌한 외교전은 이후에 벌어졌다. 국내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국은 2년 반 넘게 끈질긴 외교적 노력을 했다.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대일 청구권 자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6·3사태로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1964년 7월 이 장관이 취임했다. 그는 “우리 측은 외무장관급 이상이 일본까지 날아가 테이블에 앉았지만 일본 측은 외무성 아시아국장이 나오는 등 불평등은 시정되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로서도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반드시 일본 외상이 한국에 오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장관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시위를 부추기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1965년 2월 17일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이 일본 관리로는 광복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시나 외상은 김포공항에 내려 “양국 간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시간이 있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 깊이 반성한다”고 해 처음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반발 여론은 상당히 누그러졌다. 이 장관과 시나 외상은 2월 20일 새벽 청운각에서의 ‘한밤 담판’을 통해 가까스로 기본조약의 윤곽을 마련했다. 당시 평행선을 달리던 쟁점인 △1910년 한일병합 조약 무효 △한국의 영토 관할권 조항을 양국이 각각 독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절묘한’ 표현으로 바꾼 것. 일본의 강제병합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한국과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이전까지는 유효하다는 일본은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모호한 문구로 타협했다. 한반도 전역의 관할권을 확인하는 규정에 대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유엔 결의를 인용했다. 시나 외상은 회고록에서 “역사는 밤에 이뤄졌다”고, 이 장관 역시 “청운각 회동에서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각각 술회했다.한일협정 재조명 받아 “대체 이 서류 몇 개 가져오는 데 몇 년이 걸린 건가….” 한일협정 28개 문서를 받아 든 박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서류뭉치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고 한다. “앞으로 150년이든, 1500년이든 잘돼야 할 텐데…”라는 말도 덧붙였다. 2005년 한일협정·한일회담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재평가 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당시 일본과 국력을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였던 한국이 외교 무대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전승국(戰勝國) 자격을 얻지 못한 한국은 배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처음 일본이 제시한 대일 청구권 금액은 5000만 달러였다. 당초 ‘김-오히라 메모’는 대일 청구권을 해소하는 대신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 이상을 약속했고 결국 상업차관을 3억 달러까지 늘려 8억 달러를 받았다. 정식 배상을 받은 필리핀(5억5000만 달러), 베트남(4000만 달러)과 비교해 보면 적지 않은 액수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안 되는 국력으로 막강한 관료조직을 가진 강대국 일본과 집요하게 싸워 얻어낸 성과”라며 “이를 통해 개발자금을 확보하고 안보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업그레이드됐다.”(윤병세 외교부 장관 모두발언) “방중 합의 문안 내용은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자화자찬 그만두시라.”(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10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2일 한중 정상회담 성과를 놓고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조속한 통일외교’도 쟁점이 됐다. 윤 장관의 발언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모처럼 손을 잡았다. 한중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국 내에서 “지나치게 중국에 기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신경민 의원은 “미국 조야에서 한국에 대한 네거티브한 반응이 있다”고 했다. “통일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도 “걱정스러운 게 10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미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올 것으로 본다”며 대책을 물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이 “이번 중국 전승절에 대해서 (미국 내) 대부분의 여론이 한국의 전략적 판단과 결정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고 답하자 일부 의원은 “뚜렷한 방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외교가 결실을 보기까지 차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최종 확률은 663 대 1.’ 9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다음 달 20∼26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1차 후보자 선정을 위한 추첨이 끝나자 장내에는 “아…” 하는 탄식이 흘렀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6만6300명 가운데 단 500명이 좁은 문을 통과했다. 불과 3분 만에 끝난 1차 후보자 선정 추첨 경쟁률은 132 대 1. 500명은 다시 최종 후보자 100명으로 좁혀지게 된다. 현장에 나와 추첨을 지켜봤던 상봉 신청자 10여 명은 1차 대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세 번째 추첨인데 또 떨어졌다는 구본실 씨(86)는 1951년 1·4후퇴 당시 4세 아들과 둘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헤어졌다. 그는 “아들이 아장아장 걷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평양이 고향인 남편 이창용 씨(93)와 함께 추첨을 지켜본 조갑순 씨(82)는 탈락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조 씨는 “밤사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기도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평양에 부모와 동생을 남겨둔 채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정세훈 씨(85)도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정 씨는 “월남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상봉 신청을 망설였다”면서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보자는 마음에 신청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추첨에 앞서 고령자와 직계가족 우선 원칙 등 인선 기준을 마련했다. 500명 중 절반은 90세 이상 고령자로만 선발하고 직계가족은 가점을 받도록 설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500명을 추첨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의 상봉 의사를 확인하고 건강검진 결과를 반영해 대상자를 200명으로 압축한다. 납북자·국군포로 상봉 대상자는 별도로 50명을 선정한다. 이들 250명 명단은 15일 북한으로 보내져 생사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다음 달 5일 북한이 생사확인 결과를 보내오면 사흘 뒤인 8일 최종 상봉자 100명의 명단을 발표한다.김호경 whalefisher@donga.com·우경임 기자}

“10월 10일 전후 상봉은 안 된다. 20일 이후로 하자.”(박용일 북측 수석대표)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해결 문구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이덕행 남측 수석대표) 무박 2일간 계속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은 남북이 상대방의 핵심적인 요구를 서로 수용하면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8·25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을 한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우리 측 의견이 다수 반영됐다. 남북 이산가족이 각각 100명씩 만나지만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는 1∼2명의 가족을 동행할 수 있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100명당 동반가족이 150명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측 생사 확인 의뢰 명단(250명)이 북측 명단(200명)보다 많은 것은 납북자·국군포로 50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납북자·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2000년부터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상봉을 추진하는 것을 묵인해 왔다. 2014년부터 그 규모가 50명으로 늘어났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2000년 이후 생사가 확인된 납북자·국군포로는 93명이고, 이 가운데 35명이 가족을 만났다.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서신 교환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실무 접촉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논의하자”며 소극적이었다. 결국 양측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문제의 전반을 논의하기로 절충했다.○ “시간은 벌었지만…” 북한은 다음 달 10일 이후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함으로써 추석 연휴, 노동당 창건일 휴일 등 행사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또 이산가족의 전면적인 생사 확인 등 북측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운 과제를 다음 적십자 회담으로 미뤘다. 북한 내부 일정을 처리한 뒤 남북 문제에 나설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북한이 다음 달 10일 장거리로켓 발사 등의 도발에 나서고 이산가족 행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 책임을 남측에 돌릴 수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가 취해지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추가 제재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비정상적 사태의) 기본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아직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문제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비정상적 사태’로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국 사회 내부에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과 남은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적십자회담을 열고 호상(상호)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해 폭넓게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짧게 전했다. ○ 향후 남북관계 ‘순항’ 속단 어려워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됨에 따라 당국회담 개최, 민간 교류 활성화 등 다른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가 순차적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이번(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를 잘 지켜 나간다면 분단 70년간 계속된 긴장의 악순환을 끊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선 가까운 시기에 이산가족 문제 전반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을 열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적십자회담 개최 시기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직후로 예상했다. 적십자회담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당국 회담 채널을 열게 되면 △경원선 복원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 유감 표명 및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문제 △군사적 신뢰 구축 문제 등 정부의 통일 과제가 한꺼번에 대화 테이블에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2013년 9월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던 것처럼 실제로 실현되기까지 낙관할 수 없다”며 “우리 정부에 다른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남북 이산가족이 추석을 계기로 다음 달 20∼26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만난다. 남북은 8일 무박 2일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적십자 실무 접촉 결과 이 같은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예정대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면 지난해 2월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이 1년 8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2010년 10월 마지막으로 열린 적십자회담도 5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인도주의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남북이 ‘8·25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에 합의하면서 남북관계는 또 한 번 고비를 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적십자회담을 통해 인도적 문제를, 당국 간 회담을 통해 남북의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는 채널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번 합의에서 주목할 대목은 생사 확인 의뢰 대상을 남측은 250명, 북측은 200명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남측 수석대표를 맡은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은 “국군포로 이산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일반 이산가족 명단 200명에 국군포로 이산가족 명단 50명이 추가된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로 생사를 확인할 50명에는 납북자도 포함된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는 남북 100명씩, 총 200명 규모다. 거동이 불편한 상봉 대상자는 1, 2명의 가족이 동행할 수 있게 돼 상봉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접촉은 7일 오전 10시 50분부터 8일 오전 10시 10분까지 만 하루 가까이 이어진 마라톤협상이었다. 이 위원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라는 문구를 합의문에 담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 열린 첫 남북 접촉이 난항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8·25 합의 이후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가운데 7일 열린 첫 번째 남북 간 만남에서 북한은 강경한 태도를 되풀이했다. 북측은 이날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 전면 생사 확인 문제 등에 대해 행정적인 어려움을 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 10시 50분부터 시작된 실무 접촉은 오후 10시 반 현재 11시간 반가량 이어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어졌다. 당초 8·25 고위급 접촉 합의 직후여서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은 특히 이날 적십자 실무접촉이 진행되는 동안 장외 공세까지 펼치며 협상단을 압박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오후 담화에서 “앞으로 조선반도(한반도)에서 또다시 원인 모를 사건이 터지거나 그로 인해 무장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엄중히 따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한중 정상이 합의한 ‘의미 있는 6자회담 조속 재개’를 위한 후속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6자회담 차석대표인 샤오첸(肖千) 외교부 한반도사무 부대표는 7일 방한해 한국 6자회담 차석대표인 김건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을 면담했다. 8일엔 권용우 평화외교기획단장을 만난다. 올해 상반기에 임명된 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샤오 부대표는 북핵 해법뿐 아니라 북한 도발 예방책과 한반도 통일 문제까지 폭넓게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 전후로 장거리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을 두고 대응책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 추가 발사 또는 핵실험을 하면 중대한 조치를 (자동적으로) 취하도록 되어 있다”며 “북한이 10월 도발에 나서면 당분간 남북 간 대화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처럼 마련된 남북대화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외교적 협의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한중 정상이 ‘6자회담’ 재개 문제를 꺼낸 이유의 하나는 도발 대신 대화 등 다른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에 해당한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중 간 협의 결과를 들고 금명간 미국을 방문한다. 황 본부장은 워싱턴에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 한중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북한의 도발 대비책을 협의한다. 황 본부장은 뉴욕으로 이동해 1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사들과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문제 등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협력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7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은 것은 향후 남북대화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2013년 8월과 2014년 2월 두 차례 열렸다. 지난해 2월 5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4시간 만에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이번 회담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체회의로 시작해 수석대표 일대일 면담, 전체회의를 반복하며 양측이 좀처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10시 예정됐던 회담도 50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기조연설 순서 등 양측이 실무 절차를 협의하다가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신경전이 팽팽했다는 뜻이다. 당초 정부는 이번 실무접촉이 북한이 8·25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접촉을 발판 삼아 당국자 회담 등도 성사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북 확성기 중단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북한은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 발사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8·25 합의 이후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도발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도 도발→ 합의→ 파기 수순을 밟을 경우 남북관계는 장기간 공전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팽팽한 신경전 남측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출발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모든 분의 기대와 염원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8·25 고위급 접촉 이후 첫 회담이어서 남북 모두가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접촉 결과가 향후 남북대화의 방향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논의했던 지난 접촉과 달리 이번 회담 테이블엔 △이산가족 생사 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 교환 및 화상 상봉 등 다양한 의제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의 달라진 기류가 협상 지연의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한중 정상회담과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외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3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해외 행각에 나선 남조선 집권자가 우리를 심히 모욕하는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의 비무장지대 도발 사태’ ‘(중국의) 건설적 역할’ 등을 언급한 데 대한 반발이다. 이날 실무 접촉이 열리고 있는 도중에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번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에서의 합의를 통해 우리 민족끼리 일촉즉발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수호할 능력이 있음을 온 세상에 보여준 조건에서 ‘조선반도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미군 주둔의 해묵은 구실도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이 대남 비난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은 8·25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는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자 취재 제한한 비공개 접촉 남측은 실무접촉에서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 달 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를 제안했다고 한다. 남북은 지난해 2월 상봉행사와 비슷하게 금강산 면회소에서 200명 규모(남북 각각 100명)로 치르는 것으로 의견 접근을 했지만 이날 오후 10시 현재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8·25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도 남측은 이산가족 명단 교환 얘기를 꺼냈지만 북한 대표단이 생사 확인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려 당장은 어렵다는 태도를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기자들의 취재 없이 비공개로 진행된 ‘깜깜이 회담’으로 열렸다. 통일부 관계자는 “회담이 아닌 실무접촉은 ‘풀 기자’가 가지 않는 전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7월에 열린 개성공단 남북 공동위원회 접촉에도 기자들이 동행했고, 과거 적십자 회담이나 실무접촉도 기자들이 취재를 해왔던 만큼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남북대화가 투명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25일 고위급 접촉도 남북은 비공개로 진행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와 “올 하반기에는 외교 일정도 많고…, 노동개혁도 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국내외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외교안보는 ‘완행(緩行)’, 경제활성화와 노동개혁은 ‘급행(急行)’의 ‘투 트랙’ 전략을 세웠다. 청와대는 한중 관계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란 발언에 따른 후속 조치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 중국과 합의한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 △2+2(양측 외교부 국장급 인사와 국방부 부국장급 인사 참여) 외교안보 대화 △국책연구기관 합동전략대화 △정당 간 정책대화 등 4대 전략대화 채널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 채널은 2013년 6월 박 대통령 취임 후 첫 중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신설됐지만 그해 11월 단 한 차례 서울에서 대화가 열렸을 뿐이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 논의에 동참하겠다고 한 발언의 진의 파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미동맹의 부담을 무릅쓰고도 박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한 것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중국이 일종의 ‘립 서비스’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 하지만 청와대는 철저히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한다는 복안이다. 철저히 거품을 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내 분위기는 우리와 온도 차가 있어 보인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지만 양국 정상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논의했다거나 앞으로 양국 정부가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는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한반도 평화통일과 관련해 중국 측이 밝힌 입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중국과 통일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통일이라는 것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국, 나아가 세계도 암묵적으로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동의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중국 이외에 주변국을 상대로 한 통일외교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10월 16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일외교를 재점화하고, 10월 말이나 11월 초로 예상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일본과의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관계도 신중 모드다. 다만 국내 현안에 대해서는 속도를 낼 방침이다. 청와대는 최우선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을 올해 반드시 완수해야 경제활성화를 위한 총력전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 정국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외 순방 때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의 일정은 노동개혁에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박민혁 mhpark@donga.com·우경임 기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7일 오전 10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지난달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 여부를 북한의 합의 이행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할 잣대라고 보고 있다. 남북 수석대표로는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이 각각 나선다. 이번 상봉 행사는 지난해 2월과 비슷하게 금강산 면회소에서 200명 규모(남북 각각 100명)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상봉 준비 기간이 짧은 탓에 북측이 대상자 선정 및 생사 확인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 상봉 시기는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직전인 다음 달 초순이 유력해 보인다. 정부는 이번 접촉에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8·15 경축사에서 북측에 제안한 연내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제안할 계획이다. 한편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사진)이 6일 북한 인권 정보 수집을 위해 방한했다. 6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 종로구에 개설된 이후 첫 방한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일본 내 동포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최근 정관 제정을 비롯해 법인화 추진 계획을 우리 정부에 통보했고, 정부가 이를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민단 측이 법인화 계획을 통보해 왔고,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이 같은 계획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1946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으로 창립한 민단은 그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했다. 민단 계획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사단법인 ‘민단중앙’부터 이른 시일 내에 법인화할 계획이다. 이어 △일본 내 자산을 관리하는 재단법인 △일본 내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민족교육 등을 실시하는 공익법인 설립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 민단이 법인화를 추진하면 정부는 그간 법인화 진전을 전제로 집행하지 않았던 지원금 12억800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국회는 지난해 민단 지원금 예산을 의결하면서 민단의 투명성을 문제 삼아 총 지원금 80억 원 중 12억8000만 원의 집행을 유보했다.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7일 오전 10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지난달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여부를 북한의 합의 이행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할 잣대라고 보고 있다. 남북 수석대표로는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이 각각 나선다. 이 위원과 박 위원은 2013년 8월, 2014년 2월 적십자 실무접촉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해 2월과 비슷하게 금강산 면회소에서 200명 규모(남북 각각 100명)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상봉준비기간이 짧은 탓에 북측이 대상자 선정 및 생사확인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 상봉 시기는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직전인 다음달 초순이 유력해 보인다. 정부는 이번 접촉에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8·15 경축사에서 북측에 제안한 연내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제안할 계획이다. 한편,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6일 북한 인권 정보 수집을 위해 방한했다. 6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 종로구에 개설된 이후 첫 방한이다.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은 10일까지 서울에 머물며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를 포함해 외교부·통일부 관계자를 만날 예정이다.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중국 원격의료 시장에 한국 병원이 진출한다. 4일 오후 중국 상하이(上海) 셰러턴호텔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서울성모병원과 상하이자오퉁대 부속 루이진(瑞金)병원은 원격의료 기반 만성질환 관리모델 구축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4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당시 페루에 가천대 길병원, 브라질에 한양대병원이 각각 진출한 데 이어 세 번째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가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맞춰 기획한 이날 포럼은 한국과 중국 측에서 200여 명씩 참석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행사였다. 박 대통령은 포럼에 참석해 “중국의 리펑(李鵬) 총리는 한중 수교 당시 양국 관계를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된다’는 의미의 ‘수도거성(水到渠成)’에 비유했다”면서 “양국 관계는 이미 도랑을 넘어 강이 되었고 이제는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주역에 ‘이인동심(二人同心), 기리단금(其利斷金)’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인데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은다면 눈앞의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이고, 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는 한국 측에서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상헌 네이버 대표,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대표 등이 참석했다. 상하이=박민혁 mhpark@donga.com·박형준 / 우경임 기자}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성루 위에 서서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혈맹 국가’ 북한의 자리였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옆자리를 한국에 내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을 대표해 전승절을 찾은 그의 자리는 성루의 끝자리였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대신 참석한 최룡해는 다른 국가 정상들보다는 위상이 떨어진다. 북한대표단 단장이었지만 김정은의 특사 자격은 아니었다. 이날 최룡해가 연출한 장면은 얼어붙은 북-중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면이라는 해석이 많다. 1954년 6차 열병식에서 김일성 당시 수상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바로 오른쪽에 서서 함께 웃으며 혈맹임을 과시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최룡해의 부친인 최현 전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유명한 빨치산 지휘관이다. 최룡해 생모도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1세대 빨치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항일운동을 함께 했던 집안의 적자로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외교적 치욕인 셈이다.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과 같은 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최룡해는 이날 전승절 행사 참석 직전 의례적인 악수를 나눴을 뿐 시 주석과 별도의 면담 없이 열병식이 끝난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2일 만찬과 3일 오찬에서 최룡해와 별도로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방중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회복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평화와 질서를 깨는 행동을 북한이 하지 않는 한 중국은 북-중 관계를 일정 수준 유지하고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자 명단 발표 시 박근혜 대통령을 첫 번째로 거명(지난달 25일)→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과 단독 오찬(2일)→오찬 리셉션 장소에 박 대통령 전용 대기실 마련(3일). 중국은 이번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에게 최고의 의전을 제공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3일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손님 가운데 한 분이다. 박 대통령을 잘 모셔라’란 지시를 실무진에 여러 차례 하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시 주석의 지시에 따라 박 대통령을 전담하는 별도 영접팀을 구성할 정도로 각별한 배려를 했다는 뜻이다. 이날 전승절 기념행사를 시작하기 전인 오전 9시 35분(현지 시간) 각국 정상의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박 대통령은 시 주석 왼쪽에 있는 펑리위안(彭麗媛) 여사 바로 옆에 섰다. 시 주석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리했다. 성루에서는 시 주석의 오른쪽으로 푸틴 대통령이, 그 옆에 박 대통령이 섰다. 같은 국가수반일 경우 재임 기간이 긴 사람부터 예우하는 국제적 의전 관행과 러시아가 전통적인 중국 우방인 점을 고려한 것. 박 대통령은 열병식 분열이 진행되는 내내 국산 선글라스를 썼다. 햇볕이 강한 데다 성루에 가림막이 없어 중국 정부가 박 대통령에게 선글라스를 준비하도록 사전에 조언했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도중 중국 측이 마련한 임시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휴식을 취했다. 이날 오후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뒤 귀국한다.베이징=박민혁 mhpark@donga.com / 우경임 기자}
“남측은 8·25 합의, 북측은 8·24 합의?” 남북이 25일 오전 2시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를 발표했지만 남북의 명칭은 서로 달라 궁금증을 낳고 있다. 정부는 25일 새벽 브리핑을 통해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이 오늘 0시 55분 종료됐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8·25 합의’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조선중앙방송은 25일 오전 2시 “내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이 24일에 끝났다”고 긴급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도 관련 기사를 송고하면서 공동보도문을 8월 24일자로 명기했고,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8·24 합의’라고 보도했다. 북한이 24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고위급 접촉 종료 시점이 25일 0시 55분이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 시간보다 30분 늦은 평양 표준시를 적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평양 표준시’라고 해도 25일 0시 25분으로 25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8·24 합의로 부르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동보도문을 놓고 북측이 엇박자를 보인다는 해석도 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합의안을 승인한 시간이 24일 밤이어서 북측이 이를 고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2012년 4월 경기 수원에서 오원춘 사건으로 희생당한 여성은 당시에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다급하게 112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사이 전화가 끊겼고, 결국 이 여성은 살해됐다. 이런 사고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은 지난해부터 신고전화를 다시 거는 ‘콜백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실제 회신율이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긴급출동 구조체계 구축과 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콜백 시스템은 112 신고 중에 말없이 전화를 끊거나 긴 대기 시간으로 신고를 포기했을 때 다시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2월∼올해 1월 모두 388만 건이 112에 정상적으로 신고가 되지 못했지만 이 가운데 8%(30만 건)만 콜백이 이뤄졌다. 358만 건이 누락된 것이다. 지역별 콜백 처리 건수에도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청의 회신율은 56%에 달하는 반면 경기1·인천·경북·전북청은 2%에 불과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북한이 지뢰 도발에 유감을 표명한 공동보도문을 발표한 뒤 교묘한 선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이 25일 북한으로 돌아가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이어 관련 매체들을 동원해 선전전에 나섰다. 북한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6일 “‘20일 남조선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남한)당국에 밝힌 성명’의 전문을 인용한다”고 주장하며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사건은 남조선(한국) 정부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어 “연이은 전쟁 연습, 대북 심리전으로 남북관계를 최악의 파국으로 몰아넣은 박근혜 정권도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회담 타결 이전의 시점(20일)을 활용해 책임을 벗어날 구멍을 만들면서도 회담 타결 다음 날인 26일 이런 보도를 함으로써 북한이 사과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한 내부 선전으로 풀이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26일 남북 합의에 대해 “북의 영도자(김정은을 지칭)가 내린 사생결단으로 마련된 것”이라며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에 대해서는 ‘황당무계한 줄거리’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발뺌했다.조숭호 shcho@donga.com·우경임 기자}

남북이 다음 달 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함에 따라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상봉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26일 “다음 주부터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6만6292명(2015년 7월 기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산가족을 상대로 생사와 인적 사항, 가족 상봉 의사, 희망 상봉 방법 등을 일일이 확인한다. 현재 대한적십자사는 상담 공간을 마련하고 상담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6만6292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치려면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초 열릴 남북적십자회담까지 전체 명단을 제출하기는 사실상 어렵고, 명단을 받아든 북한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먼저 규모와 방법을 정한 뒤 추석 이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의 전면적인 생사 확인과 금강산면회소를 이용한 상봉 상시화 및 정례화를 공식 제안한 바 있다.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은 5만7000명이다. 한 차례 남북 각각 100가족 정도가 만나온 현재의 방식으로는 이산가족 상봉 인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화상, 편지, 전화를 통한 상봉을 병행 추진한다. 200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직접 상봉 19회, 화상 상봉 7회가 이뤄져 2만6000명이 재회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지난 도발을) 다 따지면 언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잘못을 들춰서 따지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잘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합시다.”(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젊은 사람의 일생이 걸린 문제입니다.”(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22일 오후 6시 반 판문점 평화의 집. 김 실장이 ‘목함지뢰’ 도발을 언급하며 사과가 우선이라는 뜻을 전하자 황병서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김 실장은 목함지뢰가 폭발한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에 쓸려 온 게 아니다. 누군가 와서 묻은 것이다”라며 황병서를 압박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이야기하자 김 실장은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순간 회담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회담을 지켜본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속된 말로 과거는 묻지 말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무박 4일 43시간 마라톤 협상. 김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황병서와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가 마주 앉은 ‘2+2 전체회의’ 4회, 김 실장과 황병서가 비공개로 만난 ‘일대일 회담’ 10회, 실무자가 문구 조정 등을 협의하는 ‘실무 회담’ 10회 등 모두 24회나 열릴 정도로 끈질긴 협상이었다. 남북은 서로의 의견 차만 확인한 채 23일 오전 4시 15분 정회했다. 23일 오후 3시 반부터 시작된 2차 접촉에서는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문구를 두고 막판까지 대립이 계속됐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단, 대북 제재인 5·24조치 해제 등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끈질기게 요구했다. 황병서와 김양건은 모두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초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황병서가 “김 실장 선생이 크게 결단을 하시면 된다”고 남측에 물러서기를 요구하자 김 실장은 “황 총정치국장께서 크게 양보하시는 건 어떠냐”고 맞받아쳤다. 고성도 없고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팽팽한 신경전은 회의장을 짓눌렀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지루한 협상을 이어갔다. 숙박이나 샤워 시설이 없어 3일 동안 샤워도 못 하고 간신히 세수만 했다. 북측 대표단은 평화의 집 인근에서 배달해 온 한식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북한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컵라면을 먹는 모습도 목격됐다. 24일 저녁 메뉴는 우리가 준비한 매운탕이었다. 다만 협상 중에는 남북이 식사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황병서가 ‘귀측’ ‘김관진 실장’이라는 공식 호칭 대신에 ‘김 선생’ ‘김 실장 선생’으로 부르는 등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김 실장과 황병서가 비공개 회담을 하는 동안 김양건과 홍 장관도 자연스럽게 따로 만나 남북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홍 장관은 25일 “오랜 시간 같이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상대방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남북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4일 오후 11시 남북은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차를 좁혔다. 25일 0시 55분 마침내 6개 문항이 타결됐다. 북한은 이날 오전 2시 정각에, 우리 정부는 오전 2시 3분 마라톤 협상 결과물인 남북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북한의 발표가 3분 빨랐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