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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회사의 고공성장기를 거치며, 자신도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연이은 야근에 주말 반납도 자청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공황증세, 이명증, 디스크, 무기력, 번아웃 증후군까지. 일이 싫었던 건 아닌데…. 뭐가 문제였을까. 네이버 라인프렌즈 사내 한 팀에서 브랜드경험 기획자,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세 사람은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큰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밖으로 나오고 나니 비로소 문제가 보였다. “우리는 일을 싫어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미칠 듯 좋아한다. 다만 일하는 태도가 조금 달랐을 뿐.”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 ‘모빌스 그룹’이라는 회사를 세운 ‘MZ세대 윗자락’ 모춘(38), 소호(35), 대오(37)를 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본명 대신 별명을 쓴다. “주체적으로 일 하자는 다짐을 담아 새 이름을 지었어요. 본명을 쓰면 왠지 노예근성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아서요. 회사가 망하면 본명으로 되돌아가야죠.”(모춘) 퇴사 순간부터 창업, 작업 과정 자체를 영상 콘텐츠화 하여 이들은 유튜브 채널 ‘MoTV’에 올렸다. 현재 구독자는 약 5만 명, 시청자 주 연령대는 23~34세다. 모빌스 그룹이 일하는 방식을 동경하는 팬들로부터 ‘노동계의 아이돌’ ‘자유노동자들’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 ‘프리워커스’는 3개월 만에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지난해와 올해 노동절에 이들의 메시지를 담은 상품을 전시·판매한 팝업스토어엔 1만 명이 넘게 몰렸다. 하지만 콘텐츠를 처음 접한 이들은 여전히 “그래서 뭐하는 회사인데?”라고 묻는다. 분명히 뭔가 인기는 있는데 정체는 잘 모르겠다는 것. 소호는 “한 마디로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들은 물건, 상품이 아닌 일에 대한 메시지를 판다. 메시지는 간명하고 유쾌하다. 일할 때 가능한 한 천천히 일하자는 ‘ASAP·As Slow As Possible’,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는 ‘Small Work Big Money’, 어젠다 없는 삶을 갈구하는 ‘No Agenda’ 등이다. 사무실 탈출을 꿈꾸는 ‘Out of Office’도 있다. 대오는 “더 뾰족하고 구체적인 브랜드와 메시지를 고민한다. 또 디자인 분야를 넘어 타 업계와 만나는 방식을 끊임없이 시도한다”고 했다. 메시지에 공감한 구글, 오뚜기, 뉴발란스 등 대기업들도 이들에게 손을 뻗고 있다. 세 사람이 시작한 모빌스 그룹은 현재 구성원이 7명이다. 규모가 커지며 네 명의 직원을 뽑았는데 모두 ‘MoTV’ 구독자 출신이다. 30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었단다. 부하 직원보다는 일하는 태도가 잘 맞는 동반자를 채용한 느낌이다. 회의는 ‘수다 타임’에 가깝다. 소호는 “주체성, 솔직함, 유머, 끈기를 봤다. 함께 일할 땐 성과보다 개인 성향이 더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대오는 “저희도 학점이 안 좋다. 이력서에서 수치화된 점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셋은 마치 업계서 ‘슬로 푸드’ 같은 존재다. 천천히, 오래 음미해야 이들이 전하는 가치와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다. 최근 브랜드업계서는 모빌스 그룹이 가장 자주 언급될 만큼 이들의 이야기가 갖는 파급력은 커지고 있다. 모춘은 “처음 ‘빅 머니’의 목표로 세웠던 수익 월 100만 원은 이미 달성했다. 그런데 조금 일하고 얼마나 벌어야 할지, 얼마나 덜 바쁘게 일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매일 ‘갈 지’ 자로 오가며 늘 실험 중”이라고 했다. 소호는 “7명이 일해도 더 많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한다고 느껴진다. 일종의 캠페인운동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요즘, 이들은 마스크를 하나 더 얹었다. 가면을 쓰면 상대의 눈동자도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이들은 남들과 다른 걸 느낀다. “나를 가리면 가릴수록 새로운 세상과 환상이 보인다”고. 창작 집단 ‘거기 가면’의 스테디셀러 가면극 ‘소라별 이야기’가 다음 달 9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국내 연극계에 이토록 오래 이어진 가면극은 없었다. ‘연극계의 변방 중의 변방’이라는 가면극을 붙잡고 지금껏 이끌어 온 이는 백남영 연출가(53·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그를 25일 대학로 중앙대 공연예술원에서 만났다. 백 연출가는 “배우는 본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만 가면극에선 감추는 게 우선이다. 이 작품을 왜 하는지 매번 공연마다 고민하는데, 나를 가림으로써 자신을 더 드러내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극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의의도 있다”고 털어놨다. ‘소라별 이야기’는 주인공 동수 할아버지가 11세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을 그렸다. 시골 개구쟁이 4총사와 서울에서 온 소녀의 순수한 사랑, 우정, 이별을 담았다. 2011년 중국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중국국립연극대학) 실험극장에서 열린 ‘세계연극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이며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후 독일 신체연극 축제 등에도 초청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반(半)마스크를 착용해 입과 하관만 보인다. 배우들은 일반극보다 훨씬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한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은 100% 비사실주의 연극이다. 흔히 ‘철판 깐다’는 말처럼 배우는 내면에 있는 감정을 더 뻔뻔하게, 과장해서 표현하고 관객은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연과 크게 달라진 건 없으나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거친 대사나 장면을 소폭 수정했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 배우이기도 하다. 2009년 국내서 처음으로 논버벌 마스크 연극 ‘반호프’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2019년에는 1인 가면극 ‘더원’을, 지난해에는 2인 가면극 ‘더투’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가 가면에 심취한 때는 1997년 신체극을 배우러 떠난 독일 폴크방예술대 대학원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식 공연장도 아닌 작은 펍에서 배우 두 명이 나와 말 한마디 없이 가면만 바꿔 쓰고 수십 명의 인물을 연기했어요. 연극은 대사가 중심인 청각적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그 편견이 와장창 다 깨졌죠.” 마음속에 ‘가면’을 늘 품고 있던 그는 귀국 후 여러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면을 왜?”라는 물음만 나왔다. 가면을 처음 접한 이들이 “가면이 한국 얼굴이 아니네? 좀 이상하다”고 하면 그는 “무대에서 가면이 잘 보이려면 입체적으로 제작하느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2009년 뜻이 맞는 동료들과 ‘거기 가면’을 직접 창단한 뒤 꾸준히 가면을 쓴다. 그는 “가면 쓰고 연기하면 땀이 흥건하다. 종이 재질이라 매번 드라이어로 잘 말려서 모셔놓는 게 일이다. 극단에서 가면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며 웃었다. 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참 좋다” “상업적이지 않아 더 좋다”는 반응을 보인단다. 그는 “변방에 물러나 있는 가면극을 조금은 중심부로 밀어보고 싶다. 배우와 마스크가 만나는 순간 창조되는 제3의 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전석 3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요즘 모두가 마스크를 쓸 때, 이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하나 더 얹었다. 남들은 코와 입만 막아도 답답하다는데 이들은 얼굴 전체를 가리고 연습한다. 가면을 쓰면 상대의 눈동자도 보기 힘들다. 대신 이들은 남들과 다른 걸 느낀다. “나를 가리면 가릴수록 새로운 세상과 환상이 보인다”고. 창작 집단 ‘거기 가면’의 스테디셀러 가면극 ‘소라별 이야기’가 다음달 9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국내 연극계서 이토록 오래 이어진 가면극은 없었다. ‘연극계의 변방 중의 변방’이라는 가면극을 붙잡고 지금껏 이끌어 온 이는 백남영 연출가(53·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그를 25일 대학로 중앙대학교공연예술원에서 만났다. 백 연출가는 “배우는 본래 자신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만 가면극에선 감추는 게 우선이다. 이 작품을 왜 하는지 매번 공연마다 고민하는데, 나를 가림으로써 자신을 더 드러내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극계 다양성을 지키는 의의도 있다”고 털어놨다. ‘소라별 이야기’는 주인공 동수 할아버지가 11살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을 그렸다. 시골 개구쟁이 4총사와 서울에서 온 소녀의 순수한 사랑, 우정, 이별을 담았다. 2011년 중국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중국국립연극대학) 실험극장에서 열린 ‘세계연극페스티벌’에서 첫 선을 보이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10개국 연극 팀이 전통을 주제로 공연을 해야 했죠. 가면과 한국적 전통 소재를 섞어 동서양의 보편적 정서를 표현해봤어요.” 이후엔 독일 신체연극 축제 등에도 초청받을 정도로 큰 인기였다. 작품서 배우들은 반(半)마스크를 착용한다. 배우의 얼굴 중 입과 하관만 보인다. 배우들은 일반극보다 훨씬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한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은 100% 비사실주의 연극이다. 흔히 ‘철판 깐다’는 말처럼 배우는 내면에 있는 감정을 더 뻔뻔하게, 과장해서 표현하고 관객은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연과 크게 달라진 건 없으나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거친 대사나 장면을 소폭 수정했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 배우이기도 하다. 2009년 국내서 처음으로 넌버벌 마스크 연극 ‘반호프’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2019년에는 1인 가면극 ‘더원’을, 지난해에는 2인 가면극 ‘더투’ 시리즈도 선보였다. 그가 가면에 심취한 때는 1997년 신체극을 배우러 떠난 독일 폴크방예술대학교 대학원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식 공연장도 아닌 작은 펍에서 배우 두 명이 나와 말 한 마디 없이 가면만 바꿔쓰고 수십 명의 인물을 연기했어요. 연극은 대사가 중심인 청각적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그 편견이 와장창 다 깨졌죠.” 마음속에 ‘가면’을 늘 품고 있던 그는 귀국 후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한국선 ‘가면을 왜?’라는 물음만 되돌아왔다. 가면을 처음 접한 이들이 “가면이 한국 얼굴이 아니네? 좀 이상하다”고 하면 그는 “무대에서 가면이 잘 보이려면 입체적으로 제작하느라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2009년 뜻이 맞는 동료들과 ‘거기가면’을 직접 창단한 뒤 꾸준히 가면을 쓴다. 그는 “배우들이 가면 쓰고 연기하면 땀이 흥건하다. 종이 재질이라 드라이로 매번 잘 말려서 모셔놓는 게 일이다. 극단에서 가면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며 웃었다. 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하나같이 “참 좋다” “상업적이지 않아 더 좋다”는 반응을 보인단다. 그는 “변방에 물러나 있는 가면극을 조금은 중심부로 밀어보고 싶다. 배우와 마스크가 만나는 순간 창조되는 제3의 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달라”고 말했다. 전석 3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표적 선승인 고우(古愚) 스님(사진)이 29일 경북 봉화군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5세. 법랍 60세. 경북 성주군에서 태어난 스님은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군 복무 중 폐결핵에 걸려 1961년 요양을 위해 경북 김천시 수도암을 찾았다가 출가했다. 1968년 선승의 본산인 봉암사의 명맥을 되살리기 위해 스님들과 뜻을 모으고 봉암사로 들어가 결사 정신을 되살렸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벌인 ‘10·27 법난’으로 총무원 기능이 마비되자 탄성 스님을 총무원장에 추대하고 스님은 총무부장을 맡아 사태를 수습한 뒤 석 달 만에 봉암사로 돌아갔다. 참선 수행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1987년 적명 스님과 함께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6년 경북 봉화군에 금봉암을 창건해 법문과 참선에 매진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고,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다. 장례는 봉암사에서 5일간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다음 달 2일 오전 10시 반에 거행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내 주요 언론단체들이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30일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 시위를 벌인다. 이날 법안 통과 시 위헌심판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30일 오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폐기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이 7개 언론단체는 이날 기자회견 후 항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7개 언론단체들은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변호인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위헌심판 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을 한다는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앞서 24일 이들은 개정안 철회를 지지한다는 언론인 2636명의 서명지를 국회와 청와대에 각각 전달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는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 개악 후 권력의 횡포와 부패는 사회 곳곳으로 파고들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기구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위원회’와 ‘저널리즘 윤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시도에 대해 “파쇼 독재 정권의 영구화를 기도하는 게 분명하다”며 국회 본회의에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예고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긴급 현안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은 절대 다수 의석수에 취해 입법 독재에 중독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 개혁이라는 가짜 구호를 동원해 언론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외신엔 적용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에 대해선 “외신까지 통제하자니 국제 망신이 두려워 그런 것”이라며 “쓴웃음이 나오는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고집한다면 국민의힘은 국민들의 뜻을 모아 필리버스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은 다원적 민주주의 대원칙인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억압하고, 거대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개악안”이라며 “민주당은 본회의 처리를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현 시점 인간 사회가 충분히 풍요로운지 단정할 순 없지만,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인류사에서 30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학창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생산과 소비의 폭발적 증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없었더라면 사회 속 개인은 지금보다 더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였을지도 모른다. 책은 거시적, 미시적 관점으로 인류의 풍요의 기원을 톺아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현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동서양과 한국의 다양한 사례들을 가로지르며 폭넓게 자본주의의 흐름도 조망한다. 경제사를 다룬 내용이 많지만, 통계나 수치보다는 여러 사례와 인과관계 설명을 통해 비교적 쉽게 풀어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역사적 흐름과 사건에서 한발 더 들어가 ‘왜’에 주목했다. 화석연료 시대가 열리며 영국은 이 시대적 전환을 맞아 산업혁명을 연 반면에 중국은 해양 진출을 포기한 뒤로 민간 부문에서 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밖에도 시기별 국가의 흥망성쇠를 경제사적 관점에서 쉽게 설명한다. 책 후반 저자는 현 사회의 풍요와 함께 찾아온 위기에 대해서도 말한다. 기후 변화, 불평등을 비롯해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여부에도 질문을 던진다. 그는 국제사회, 글로벌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을 통해 조심스럽게 희망을 말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현장에 적용될 경우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 남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허위나 조작 보도의 개념을 모호하게 정의한 데다 언론사의 고의 및 중과실까지 추정할 수 있도록 한 탓에 비판 보도의 대상이 된 이들이 일단 소송으로 대응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일명 ‘입막음용 소송’이라 불리는 전략적 봉쇄 소송은 공적 의제에 관한 비판이나 반대 여론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말한다. 애초에 소송의 주요 목적이 승소가 아니라 상대에게 비용 부담이나 정신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전략적 봉쇄 소송이 이어질 경우 기자와 언론사들이 법적 대응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리 의혹 제기나 비판적 보도, 취재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전략적 봉쇄 소송이 불러올 위축 효과를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며 “기자가 사실로 여겨 보도했더라도 만약 나중에 허위로 밝혀질 경우 언론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이 이뤄지고, 원고의 입증 책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적용되면 특히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손쉽게 전략적 봉쇄 소송을 제기해 비판적 보도를 막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기존 언론 상대 소송에서도 일반인보다 공직자나 기업의 제소 비율이 더 높은 상황을 감안하면 언론중재법은 이 격차를 더 벌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언론중재위원회가 2019년 발간한 ‘언론 관련 판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언론 관련 소송 중 단체, 유명인, 공적 인물이 원고로 제기한 소송은 236건 중 162건으로 68.6%에 달했다. 반면 일반인이 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31.4%에 그쳤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언론 관련 소송 제기는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일반 국민을 위해 추진한다고 주장하는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가 현실과 맞지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조계도 전략적 봉쇄 소송이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소송이 헌법상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9년 기준 29개 주가 ‘전략적 봉쇄 소송 방지법(Anti-SLAPP law)’을 두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목적의 소송을 법원이 조기에 각하하도록 하는 장치다. 앞서 올 2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재판관 9명 중 위헌 의견을 낸 4명의 의견서를 보면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의견서에는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가능해졌고, 표현의 자유는 심대하게 위축됐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보도를 주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면서 “언론에 의한 피해는 언론에 의해 구제하는 게 원칙이다. 반론이나 잘못된 내용은 독자들이 지면과 인터넷에서 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고 밝혔다.전략적 봉쇄 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승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나 감시를 막기 위해 하는 소송. 주로 기업, 정부, 공직자 등이 공적 관심사나 의제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개인이나 조직, 단체를 대상으로 제기한다. 국민의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9세기 초 조선, 세도정치의 폐단이 극에 달하며 민생은 수렁에 빠진다. 이 시절 함께 나고 자란 세 명의 죽마고우가 있었으니…. 이 중 하나는 큰돈을 벌어 이웃과 백성을 구하고자 했고, 혁명을 일으켜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는 이도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이 권력을 잡아 폐단을 바로잡고자 했다.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한 방식은 각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을지 모른다. ‘삶이 팍팍할수록 노래를 부르며 한과 울분을 달래고 싶지 않았을까?’ 이 같은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양 음악에 한국 정서를 버무려 개량한복과 같은 선율을 얹으니 흥이 넘치는 뮤지컬 한 편이 탄생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예술단들이 모여 만든 합동공연 ‘ART―9세종’의 뮤지컬 ‘조선 삼총사’가 다음 달 17∼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다. 3인 3색의 삼총사 배우 허도영(32·김선달 역), 한일경(40·홍경래 역), 김범준(32·조진수 역)을 최근 만났다. 서울시뮤지컬단 소속인 이들은 “서울시뮤지컬단 창단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무대에 서게 됐다. 유쾌하면서도 웅장한 무대를 기대해 달라”고 했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간다. 1811년 발생한 홍경래의 난을 역사 배경으로 삼았다. 홍경래는 극 중 삼총사 중 유일한 실존 인물이다. 한일경은 “셋 중 유일하게 실존 인물을 맡았다. 역사 인물을 어떻게 올곧이 담아낼지 고민이 많은데 사실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차별로 인해 쌓인 분노를 ‘마초 같은 캐릭터’에 담아 표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화로 전해지는 평양 출신 희대의 사기꾼 김선달 역을 맡은 허도영은 익살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그는 “그저 강물을 팔아먹는 사기꾼이 아니다. 능글맞아도 임기응변이 뛰어난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김범준이 맡은 조진수는 세도가 풍양 조씨 출신의 금위영 대장이다. 김범준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김선달이 돋보였지만 조진수도 극의 균형감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 성격도 조진수와 비슷해 이입하기가 쉬웠다”며 웃었다. 세 인물은 극 초반 유년 시절을 제외하곤 끊임없이 견제하고, 충돌한다. 주로 음악을 통해 이들의 격정을 객석에 전한다. 한일경은 “음악적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2막에서 일어날 갈등의 기폭제가 될 폭풍전야와 같은 넘버 ‘꿈꾸는 자들의 세상’을 기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의 미덕 중 하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단이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 앞서 2019년 ‘극장 앞 독립군’에서 여러 아티스트가 협업한 무대가 호평을 받자 두 번째 프로젝트로 이번 공연이 나올 수 있었다. 아쉽게도 지난해 팬데믹으로 공연이 한 차례 무산됐다. 허도영은 “연습을 멈추고 1년 만에 다시 작품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다들 기억을 잘해서 놀랐다”고 했다. 김범준은 “여전히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기분이다. 마스크를 써도 연습 인원에 제한이 있어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훈련을 하다 실제 무대에 서면 배우들은 더 힘차게 날아다닐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수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범위와 처벌 요건을 더 포괄적으로 만든 ‘누더기 악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그간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를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면서 주요 조항마다 위헌이라는 비판을 받자 면피성 수정을 거듭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법사위로 넘긴 개정안마저 급하게 문구를 변경했다.○ 독소조항 더 강화한 법사위 수정안 민주당은 법사위를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을 규정한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 보도’라는 조문에서 ‘명백한’을 삭제했다.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등의 일부 문구도 없앴다. 이는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하고 이중규제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해당 조항을 오히려 더 악화시킨 것이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명백한’을 뺀 것은 적용 대상이 더 포괄적으로 바뀌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란 표현은 영미법 체계의 ‘악의성’ 요건을 비슷하게 도입해 언론을 규제하겠다는 내용인데, 심지어 왜 여기서 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법안을 확대 적용하면서 남용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필요에 따라 권력자들이 법 적용을 남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도 일부 변경됐다. 특히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는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로 수정됐다. 이 교수는 “‘보복’ ‘반복’ ‘피해 가중’ 문구 중 ‘피해 가중’만 뺐다. 이는 피해 가중도 따지지 않고 규정을 완화해 손쉽게 비판적인 보도를 못 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더기 법안은 이미 정당성 상실” 민주당은 앞서 문체위에서 ‘고의·중과실 추정’의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둔 것에 대한 위법성 논란이 일자 추정의 주어로 ‘법원은’을 추가했다. 또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라는 문구에서 ‘언론사의’만 제외했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와 법학자들은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미룬 문제의 본질은 전혀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사위까지 이어진 민주당의 수정 내용들은 위헌적 뼈대는 유지한 채 논란을 비켜 가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사위의 수정안 역시 법안의 위헌적 본질이 달라진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언론 현업단체들은 민주당이 스스로 부실 법안이라는 것을 드러낸 일이라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방송기자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4개 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민주당은 법사위 논의에서조차 의미 없거나 더 후퇴한 문구 수정에 나섰다”면서 “속도전에 골몰하다 정부 여당 안에서도 좌충우돌하며 누더기가 된 법안은 이미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본회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는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는 법안인가”라고 지적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파격’ ‘외설’ ‘도발’ ‘실험’. 안은미(58)의 이름 앞에는 30년 넘게 여러 수식어가 붙어 왔다. 하지만 이 말들도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의 춤 앞에선 ‘파격’이란 단어마저 덜 파격적으로 보이기 때문. 그 대신 그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명제가 있다. 안은미가 없었다면, 한국 현대무용계는 지금보다는 더 심심했을 거라고. 때론 유쾌하게, 때론 기괴하게 몸짓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대표작 4편을 연달아 선보인다. 33년간 무르익은 안은미의 춤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안은미 컬렉션’이다. 현대무용단 안은미컴퍼니의 창단 33주년을 기념한 이번 공연 ‘4괘―용 이름 거시기 조상님’은 8월 28∼29일, 9월 4∼5일에 걸쳐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서 관객과 만난다. ‘드래곤즈’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Let Me Change Your Name)!’ ‘거시기모놀로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등 4개 작품을 차례로 하루씩 공연한다. 최근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안은미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는 지금도 제가 오토바이 타는 걸 걱정하신다. 시간을 쪼개 여기저기 다니려면 오토바이밖에 없다. 연습하는 무용단 애들 호떡 간식 사다 주고 왔는데 잘 먹는 걸 보니 행복하다”며 웃었다. 늘 당당하고 여유가 묻어나는 안은미지만 작품 네 편을 연달아 짧은 기간에 선보이는 건 그에게도 처음이다. “힘들어 죽겠다. 그래도 춤을 막진 못한다.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더 힘내보기로 했다. 특히 연습 땐 내가 5만큼 가졌어도 10까지 끌어내야 한다. 무대는 3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 작품을 연달아서 빡!” 이번 공연 중 28일에 선보일 첫 작품 ‘드래곤즈’는 팬데믹 덕분에(?) 더욱 역동적으로 탄생했다. 본래 아시아 5개 지역 무용수 5인과 ‘용’을 주제로 함께 무대를 만들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왕래가 막혔다. 그래서 3차원(3D) 작업, 홀로그램 기술을 통한 디지털 실험작이 탄생했다. 실제 무용수들과 3D 기술로 만든 다른 무용수들의 그래픽이 한 무대에서 겹쳐진다. 그는 “작업 과정 자체가 즐거운 배움이자 큰 실험”이라고 했다. 2005년 베를린에서 열린 태평양주간(Pacific week)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한 인기작이다. ‘거시기모놀로그’는 이제껏 제대로 말하지 못한 여성들의 ‘성’을 풀어낸 작품이다. 2019년 초연했으며 60∼90대 여성 10명의 첫 경험을 안은미식 몸짓으로 풀어낸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전국을 돌며 만난 할머니들의 춤을 직접 기록해 작품에 녹여냈다. 무용수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실제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는 ‘커뮤니티 예술’ 장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안은미의 예술 세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 제게 무용이란 무용수, 극장, 나로 이뤄진 거였죠. 그런데 일반인들의 존재적 몸짓은 누구도 주목하거나 기록하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들의 ‘막춤’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춤을 추는 이라면 누구든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밖으로 꺼내거든요.” 1986년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안은미는 무용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1988년 2월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디뎠고, 지금까지 155편을 내놨다. 1년에 4, 5편을 작업한 꼴이다. “제 삶은 계속 새로운 걸 찾는 발명가 같다. 발명가가 발명이 지겨우면 일을 그만둬야죠.”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무용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진다. 다음 달 1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2021 무용인 한마음축제 in 성남’은 국내 스타 무용수와 유명 무용단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2013년부터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매년 개최한 축제는 올해 성남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며 무용 관객층 확장을 노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망라한 갈라 축제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영상 속 독특한 안무로 인기를 끈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FEVER’를 비롯해 부산시립무용단의 ‘운무雲霧’, 김용걸 댄스시어터의 ‘Obliviate(망각)’를 만날 수 있다. 국내 정상급 현대무용단인 LDP무용단의 ‘MOB’,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파드되, 김설진의 ‘낙서’, 국립발레단의 ‘탈리스만’ 파드되도 무대에 오른다. 일부 작품에는 시각장애인 관객들을 위해 무용 음성해설이 도입된다. 한 축제에서 여러 작품에 음성해설을 제공하는 건 처음이다. 음성해설이란 머릿속으로 춤 동작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설을 곁들이는 것.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부산시립무용단, LDP무용단, 국립발레단이 선보일 4개 작품에 적용된다. 지우영 댄스시어터 샤하르 대표, 이경구 고블린파티 안무가 겸 무용수,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 양은혜 스튜디오그레이스 대표가 음성해설가로 참여한다. 음성해설 공연 전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터치투어와 프리뷰 시간이 진행된다. 터치투어는 시각장애인 관객들을 초청해 공연에 사용되는 의상이나 소품, 토슈즈 등을 설명과 함께 직접 만져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부 작품 구성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도 있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프리뷰 시간도 이어진다. 시각장애인 관객의 수신기를 통해 공연 관람 전까지 프리뷰 내용을 반복 송출하면서 충분한 이해를 돕는다. 이와 별개로 신진 발레 안무가들의 무대도 펼쳐진다. 국립발레단은 이달 28,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Movement Series) 6’을 선보인다. 단원들이 새롭게 안무한 작품을 공연하는 무대로 강수진 예술감독 취임 이듬해부터 마련한 시리즈다. 단원들의 무용 기량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됐다. 6회째를 맞는 이번 공연에는 단원 8명이 참여한다. 박슬기의 ‘이매진’, 강효형의 ‘마네킹스 스토리(Mannequin‘s story)’, 배민순의 ‘히어로’, 박나리의 ‘샤이닝 스타’, 김나연의 ‘틈으로 스며들다’, 신승원의 ‘아르모니아’, 김경림의 ‘디어’, 이영철의 ‘죽음과 소녀’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부터 국립발레단 발레 마스터로 활약 중인 이영철 전 수석무용수는 당초 지난해 마지막 무대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번 작품 ‘죽음과 소녀’로 현역 은퇴 무대를 대신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비 내리던 날, 포장마차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앓은 시간의 이름을 난 청춘이라고 지었어.” “창문 열고 청소하다 바람이 좋아 누워버렸어.” 일기장에 써있을 법한 ‘세기말 감성’의 글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싸이월드 게시물 제목도 아니다.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즐겨 듣는 유튜브 선곡 모음(플레이리스트) 제목들이다. 말랑말랑한 감성을 표현한 이 플레이리스트는 음악에 어울리는 제목과 상황을 적고, 간단한 이미지나 영상을 곁들인다. 이는 ‘벅스뮤직’ ‘멜론’ ‘지니’ 등 기존 음원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선곡 모음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유튜브에서는 분위기에 맞는 이미지나 영상을 추가해 몰입을 돕는다. 구독자들은 댓글로 곡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소통하는 음악’으로 진화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콘텐츠에 MZ세대 음악 팬들이 몰리고 있다. 구독자 65만 명의 유튜브 채널 ‘essential;’에는 영상 한 편당 벅스뮤직 음악 PD들이 선곡한 10곡이 담긴다. 인기 콘텐츠는 조회수 500만 회를 넘겼다. 2019년 6월 첫 콘텐츠를 올린 후 2년 만에 급성장했다. 이가영 벅스 뮤직PD서비스 총괄은 “자사 플랫폼에서 운영하던 추천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놀랐다.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23일에는 국내 가요에 특화한 새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내놓았다. ‘음악 덕후’를 자처하는 개인들이 운영하는 채널에도 구독자들이 몰리고 있다. 구독자 80만 명의 ‘때껄룩Take a look’은 개성 넘치는 선곡과 제목들로 차별화했다. ‘지독한 짝사랑 경험 적고 가기’ ‘엄마의 연애시절 다이어리를 훔쳐보았다’ 등의 제목을 붙이는 식이다. 인기 콘텐츠는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겼다. 유튜브에는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 등 다양한 플레이리스트 채널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이들의 강점은 구독자들의 일상 경험에 다가가 소통하는 한편 제작자의 내밀한 취향을 엿볼 수 있다는 것. 한 구독자는 “유명인, 전문가가 뽑은 선곡보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제작자가 고른 음악이 더 와닿는다. 댓글로 다른 이들과 소통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음악과 무관한 기업들도 관련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제일기획의 유튜브 채널 ‘채널일’은 “광고사에서 만든 광고 없는 플레이리스트”를 표방하며 ‘KozyPop’ 채널과 협업한 영상을 만들었다. 일할 때 듣는 소위 노동요가 주제다. 최안나 제일기획 프로는 “채널 구독자의 80% 이상이 18∼34세로 집계돼 대학생, 취준생, 직장인에게 최적화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소개팅 망하고 집에 돌아올 때’ 등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도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 조사 업체 오픈서베이의 ‘콘텐츠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지난해 이용률이 가장 높은 음악 콘텐츠 플랫폼은 유튜브(25.1%)였다. 이가영 총괄은 “보면서 소통하는 방식으로 음악 감상의 행태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단, 음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튜브 채널들의 저작권 위반은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다. 법무법인 미션의 장건 변호사는 “저작권자 동의 없이 음원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광고 수익을 받지 않더라도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 저작물 사용의 허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화한 국악이 뮤지컬과 만나 MZ세대를 공연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공연장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국악은 더 이상 고루한 장르가 아니라, 한번 느껴보고 싶은 ‘힙한’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의 선풍적 인기와 국악 장단이 어우러진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이 이런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연 제작자, 작곡가들도 국악기를 활용한 ‘국악 퓨전’으로 다양한 음악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 정동극장의 뮤지컬 ‘판’은 최근 10∼30대 관객층으로부터 인기가 뜨겁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아 지난달 27일 개막한 작품은 19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읽어주고 돈을 벌던 직업인 ‘전기수’가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풍자, 해학, 흥을 담고 있는 극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국악기 활용이 돋보이는 넘버들. 한 10대 관객은 “국악 퍼커션(타악기 연주)이 대박이다. 인형극과 판소리가 잘 섞여 있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20대 관객도 “국악, 판소리, 마당극 등 전통적 소재와 뮤지컬 장르가 너무나 잘 어우러져 놀랐다”고 평가했다. 정동극장의 박진완 홍보마케팅팀장은 “정동극장엔 중장년 관객도 많이 찾는 편인데 국악과 결합한 공연에 MZ세대 관객이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보여 놀랐다”며 “청소년층의 증가도 눈에 띈다. 전체 관람객의 15% 수준을 넘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18일 개막하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뮤지컬 ‘금악’에선 국악을 활용한 음악적 실험도 엿볼 수 있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가 뮤지컬에 뛰어든 건 드문 일이다. 신라시대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진 금지된 악보 ‘금악’을 둘러싼 이야기로 판타지 사극 뮤지컬을 표방했다.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원일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재즈드러머인 한웅원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 감독은 “‘시나위’는 국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어떤 소리와도 어울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악기에 전자음악, 앰비언트 음악(편안한 환경 음악)까지 결합해 국악이 국악으로 들리지 않는 실험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악을 축으로 레게, 힙합, 록, 스윙재즈 등을 결합한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로 큰 인기를 얻은 이정연 작곡가는 “국악과 결합한 작업에 대해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국악적 색채가 대중음악에 합쳐졌을 때 엄청난 흥이 나오는 걸 깨달았다. ‘국악도 얼마든지 세련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다음 달 17일 첫 공연을 앞둔 뮤지컬 ‘조선 삼총사’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 예술단들이 합작한 이 작품에서는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인 한진섭 연출가와 이미경 극작가, 장소영 음악감독이 뭉쳤다.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배경으로 평화를 꿈꾸던 세 친구 김선달, 홍경래, 조진수의 이야기를 그렸다. 티켓을 조기에 예매한 30대 이하 관객층의 비중이 전체의 73%에 달할 정도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뜨겁다. 장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특히 국악기와 서양악기 사이 비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음악적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장면에 따라 굿거리장단, 재즈, 행진곡 등을 교차시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최근 국악을 활용한 선구자적 시도가 많아졌다. 우리 정서를 국악을 통해 풀어내는 데 대해 젊은 세대가 점차 친숙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화한 국악이 뮤지컬과 만나 MZ세대를 공연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공연장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국악은 더 이상 고루한 장르가 아니라, 한 번 느껴보고 싶은 ‘힙한’ 장르로 떠오르는 것. 특히 지난해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의 선풍적 인기와 국악 장단이 어우러진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이 이같은 변화를 이끌었다. 공연 제작자, 작곡가들도 국악기를 활용한 ‘국악 퓨전’으로 다양한 음악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정동극장의 뮤지컬 ‘판’은 최근 10~30대 관객층으로부터 인기가 뜨겁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작품은 19세기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읽어주고 돈을 벌던 직업인 ‘전기수’가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풍자, 해학, 흥을 담고 있는 극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국악기 활용이 돋보이는 음악들. 한 10대 관객은 “국악 퍼커션(타악기 연주)이 대박이다. 인형극과 판소리가 잘 섞여 있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한 20대 관객도 “국악, 판소리, 마당극 등 전통적 소재와 뮤지컬 장르가 이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어 놀랐다”는 평을 남겼다. 정동극장의 박진완 홍보마케팅팀장은 “정동극장엔 중장년 관객도 많이 찾는 편인데 국악과 결합한 공연에 MZ세대 관객이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보여 놀랐다”며 “청소년층의 증가도 눈에 띈다. 전체 관람객의 15% 수준을 넘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음달 17일 첫 공연을 앞둔 뮤지컬 ‘조선 삼총사’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 예술단들이 합작한 작품은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인 한진섭 연출가와 이미경 극작가, 장소영 음악감독이 뭉쳤다.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배경으로 평화를 꿈꾸던 세 친구 김선달, 홍경래, 조진수의 이야기를 그렸다. 14일 기준 티켓을 예매한 30대 이하 관객층의 비중이 전체의 약 73%에 달할 정도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뜨겁다. 장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특히 국악기와 서양악기 사이 비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음악적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장면에 따라 굿거리장단, 재즈, 행진곡 등을 교차시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최근 국악을 활용한 선구자적 시도가 많아졌다. 우리 정서를 국악을 통해 풀어내는 데 대해 젊은 세대가 점차 친숙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8일 개막하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뮤지컬 ‘금악’에선 국악을 활용한 음악적 실험도 엿볼 수 있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가 뮤지컬에 뛰어든 건 드문 일이다. 신라시대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진 금지된 악보 ‘금악’을 둘러싼 이야기로 판타지 사극 뮤지컬을 표방했다.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원일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재즈드러머인 한웅원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 감독은 “‘시나위’는 국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어떤 소리와도 어울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악기에 전자음악, 앰비언스 음악까지 결합해 국악이 국악으로 들리지 않는 실험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답했다. 앞서 국악을 축으로 레게, 힙합, 록, 스윙재즈 등을 결합한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로 큰 인기를 얻은 이정연 작곡가는 “국악과 결합한 작업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국악적 색체가 대중 음악이 합쳐졌을 때 엄청난 흥이 나오는 걸 깨달았다. ‘국악도 얼마든지 세련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답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그날 딸의 일기는 다른 때보다 조금 길었다. 엄마에게 “오늘 집에 내려간다”고 전화했는데 좀체 못 알아듣는 눈치. 통화가 끝나고 또 전화가 걸려온다. “온다는 게 오늘이니?” 그날 딸이 남긴 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역시 엄마가 이상하다.” 평범했던 가정에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처음엔 아버지도, 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이는 치매 당사자.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내가 노망이 났다! 짐만 되고 죽어야지”를 반복하며 울부짖었다. 어머니의 치매로 좋든 싫든 삶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가족. 딸은 상황을 부정하고 회피하기보다 차라리 ‘웃픈’ 상황들을 영상일기로 남겨보기로 했다. 몇 년이 흐르고 맞은 2017년 새해. 평소 자학 개그를 좋아하던 어머니는 딸에게 “올해는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라는 새해인사를 덕담(?)처럼 건넸다. 딸이 찍은 영상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2018년 상영됐다. 책은 딸이 아버지와 함께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며 기록한 유쾌한 간병기다. 저자는 2007년 자신의 유방암 투병기를 셀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프리랜서 영상감독. 영상에 담지 못한 순간과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며 그가 느낀 감정을 담담히 글로 풀어냈다. 평소 식칼 한 번 잡지 않은 90대의 아버지가 아내를 위해 가정주부로 변신한 모습과 부모의 시시콜콜한 말싸움이 정겹게 그려진다. 저자는 한발 물러선 시각에서 이를 관조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에 공감하다가도 “치매는 엄마를 서서히 변모시켜 감으로써 긴 이별을 준비하게 해주는 ‘신의 친절’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이후 병세가 심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저자는 감정의 과잉에 빠지지 않고 담담히 가족애를 말한다. 자신들도 서로를 늘 아껴온 가족이었음을…. 중증 치매인 어머니는 지금도 딸이 병실을 찾으면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른단다. “나오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여 명의 배우가 광장 위를 말없이 걷는다. 이들은 320벌의 옷을 끊임없이 갈아입고 걸어 다니며, 320여 명의 모습을 몸으로 표현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리고 사계절이 지나도록 또 걷는다. 여전히 말은 없다. 광장을 스치는 바람 소리, 무대 음향만 가득할 뿐. 정적 속에서 약 120분 동안 펼쳐지는 이 정체불명의 퍼포먼스는 김아라 연출가(65)의 비언어 총체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싶은 걸까. 한국 연극계에서 이름 자체가 곧 장르인 김 연출가를 10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났다.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문화비축기지 내 T2 야외무대는 작품에서 배우들이 거닐 광장이자 무대가 될 곳이다. 그는 “‘청소년 자살률 1위’. 이 말 하나로 한국의 불투명한 미래가 다 설명된다”며 “이 같은 암울한 결과를 낳은 사회의 대립, 갈등, 불안, 외로움 등을 말없이 걷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의 동명 원작 희곡을 각색한 이 작품을 김 연출가가 공연한 건 이번이 세 번째. 하지만 모두 제각각이라 할 만큼 매번 새 작품에 가깝다. 1993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개관 당시 50명의 관객 앞에서 한 번, 2019년 서강대 메리홀에서 또 한 번 무대를 열었다. 그는 “의상만 320벌이 나오는 원작 텍스트를 보면, 실험이 아닌 이상 도전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언젠가 이 작품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때문에 “천장과 사방이 뚫린 이번 야외무대는 작품 구현에 최적”이라며 흡족해했다. 작품에는 20대부터 80대 원로배우, 무용수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권성덕 정동환 정혜승 정재진 등 원로 배우를 비롯해 무용가 박호빈, 성악가 권로, 비디오아티스트 박진영 등이 나온다. 특별출연자로 박정자 김명곤 남명렬도 참여한다. 그는 “모시기 힘든 분들도 실험적 작품에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다. 연극계에서 제가 꽤 잘 살아온 모양”이라며 웃었다. 정동환은 극에서 노숙인의 겉모습을 하고 광장에 멈춰 걸어가는 이들을 관찰한다. 김 연출가는 “직접 언급하진 않는데 사실 그의 정체는 땅에 내려온 천사다. 고립된 상태에서 그는 자신을 성찰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간에게 연민과 그리움을 느끼는 역할”이라고 했다. 이어 “본능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배우들에게 지나가는 찰나를 그저 진솔하게 연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연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6년 데뷔 후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을 휩쓴 그는 당시 ‘김아라’라는 이름이 실험과 파격을 의미할 정도로 독창적 연출세계를 구현해 왔다. 1997년 경기 안성시에 야외극장을 설립해 ‘복합장르음악극’을 완성했고 해외 연극계와 교류하며 ‘침묵극’ 장르도 선보였다. 극단 무천의 대표이자 ‘혜화동 1번지’의 창립 멤버다. 그는 “관객 절반은 좋아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늘 제 작품을 싫어했을 정도로 평이 갈렸다. 지금도 ‘작품이 좋으면 관객은 온다’는 신념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35년간 연극판을 지킨 비결로 그는 자신의 충동을 꼽았다. “두려움 없이 새로움과 이상향에 계속 도전하게 만들었던 제 예술적 충동을 사랑해요.” 1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T2, 전석 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형? 오빠? 아니, 그 ‘언니’가 돌아왔다. 끼와 흥이 넘치는 언니의 이름은 ‘헤드윅’. 자신의 헤어진 반쪽을 찾아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래하는 이 트랜스젠더 로커는 2005년 국내 첫 공연 이후 13번째 시즌 동안 한국 무대를 찾았다. 무려 2300여 회 공연에서 지금껏 63만 명의 관객을 홀렸다. 뮤지컬 ‘헤드윅’을 거쳐 간 여러 헤드윅 배역 중 초연부터 작품을 이끌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린 1등 공신으로 ‘오드윅’ 오만석(46)이 꼽힌다. 원작의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과 주연까지 맡았던 존 캐머런 미첼과 가장 눈빛이 닮은 배우로 평가받는다. 오만석의 공연 영상을 접한 미첼이 “나보다 목소리도 좋고 더 예쁘다. 꼭 만나고 싶다”며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3일 만난 오만석은 “하루 한 끼에 김밥 한 줄을 먹는데 살이 안 빠져요. 힐 신고 드레스까지 입었더니 더 욕심나고…”라며 혹독한 다이어트 고민부터 털어놨다. 이어 “5kg을 감량해 현재 71kg인데 앞자리를 ‘6’으로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2시간 이상 무대를 이끌어가는 헤드윅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난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선 “힘쓰려면 이제 좀 먹으라”며 그를 나무라지만 “더 예뻐 보이고 싶다”는 오만석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발칙한 주인공이 되려면 그만한 희생이 따르는 법. 올해 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제약이 생겼다. 그는 공연 중 객석에 ‘난입’하려다가도 “방역수칙 때문에 안 된다”며 뒷걸음질치고, 자신의 메이크업 자국이 묻은 휴지를 객석에 건네려다가도 “이것도 안 된다”며 도로 가져간다. 팔만 격하게 흔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관객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환호성이 없는 헤드윅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이전보다 작품에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제약으로 생긴 여백을 오만석은 자기 색으로 꽉꽉 채웠다. 의상팀에 부탁해 옷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붙은 듯한 소품도 달았다. 노래 가사도 고치고, 대사도 바꿨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Wonderwall)’도 감상할 수 있다. “헤드윅이 사랑했던 연인 ‘토미’를 떠올리니 현실과 상상 사이의 벽을 뜻하는 ‘원더월’이란 노래가 떠올랐어요. ‘짙은 어둠 속을 지난 새벽’ ‘내 어지러운 절벽’이란 가사를 직접 쓰고 ‘∼벽’ 라임도 넣었는데, 눈치 빠른 분은 금방 알아차리겠죠?” 방송, 영화,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얼굴을 알린 그에게 2005년 헤드윅 첫 공연은 잊을 수 없다. 그는 “객석 등받이도 없는 200석 규모의 열악한 소극장이었다. 성소수자 얘기를 관객이 좋아할지 몰라 반신반의한 채 일단 무대에 섰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오만석은 “헤드윅은 출연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극한의 두려움이 몰려와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면서도 “‘공연 보고 치유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두려움은 제가 다 가져가겠다”고 답했다. 이번 시즌에는 그와 함께 전설을 써내려간 ‘조드윅’ 조승우를 비롯해 이규형 고은성 렌이 헤드윅을 연기한다. 그는 “승우는 저보다 더 잘하는 스마트한 배우다. 처음 합류한 은성이가 ‘오드윅’을 정말 많이 봤다고 해서 여러 연기 포인트를 짚어줬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머리도 탈색하고 예열도 마친 그는 이미 헤드윅 그 자체였다. 연습실에서부터 힐도 여간해선 벗지 않기로 유명하다. “무대 의상인 블랙 원피스가 원래 제 옷처럼 편하고, 너무 예쁘더라고요. 무대에서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헤드윅’이자 ‘오만석’으로 보이고 싶어요.” 10월 31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4만4000∼11만 원, 16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형? 오빠? 아니, 그 ‘언니’가 돌아왔다. 끼와 흥이 넘치는 언니의 이름은 ‘헤드윅’. 자신의 헤어진 반쪽을 찾아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래하는 이 트렌스젠더 로커는 2005년 국내 첫 공연 이후 13번째 시즌동안 한국 무대를 찾았다. 무려 2300여 회 공연에서 지금껏 63만 명의 관객을 홀렸다. 뮤지컬 ‘헤드윅’을 거쳐 간 여러 헤드윅 배역 중 초연부터 작품을 이끌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린 1등 공신으로 ‘오드윅’ 오만석(46)이 꼽힌다. 원작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과 주연까지 맡았던 존 캐머런 미첼과 가장 눈빛이 닮은 배우로 평가받는다. 오만석의 공연 영상을 접한 미첼이 “나보다 목소리도 좋고 더 예쁘다. 꼭 만나고 싶다”며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3일 만난 오만석은 “하루 한 끼에 김밥 한 줄을 먹는데 살이 안 빠져요. 힐 신고 드레스까지 입었더니 더 욕심나고…”라며 혹독한 다이어트 고민부터 털어놨다. 이어 “5kg을 감량해 현재 71kg인데 앞자리를 ‘6’으로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2시간 이상 무대를 이끌어가는 헤드윅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난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선 “힘쓰려면 이제 좀 먹으라”며 그를 나무라지만 “더 예뻐 보이고 싶다”는 오만석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발칙한 주인공이 되려면 그만한 희생이 따르는 법. 올해 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제약이 생겼다. 공연 중 객석에 ‘난입’하려다가도 “방역수칙 때문에 안 된다”며 뒷걸음질 치고, 그의 메이크업 자국이 묻은 휴지도 객석에 건네려다 “이것도 안 된다”며 도로 가져간다. 팔만 격하게 흔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관객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환호성이 없는 헤드윅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이전보다 작품에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제약으로 생긴 여백을 오만석은 자기 색으로 꽉꽉 채웠다. 의상팀에 부탁해 옷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붙은 듯한 소품도 달았다. 노래 가사도 고치고, 대사도 바꿨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Wonderwall)’도 감상할 수 있다. “헤드윅이 사랑했던 연인 ‘토미’를 떠올리니 현실과 상상 사이의 벽을 뜻하는 ‘원더월’이란 노래가 떠올랐어요. ‘짙은 어둠 속을 지난 새벽’ ‘내 어지러운 절벽’이란 가사를 직접 쓰고 ‘벽’ 라임도 넣었는데 눈치 빠른 분은 금방 알아차리겠죠?” 방송, 영화,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얼굴을 알린 그에게 2005년 헤드윅 첫 공연은 잊을 수 없다. 그는 “객석 등받이도 없는 200석 규모의 열악한 소극장이었다. 성소수자 얘기를 관객이 좋아할지 몰라 반신반의한 채 일단 무대에 섰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오만석은 “헤드윅은 출연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극한의 두려움이 몰려와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면서도 “‘공연 보고 치유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두려움은 제가 다 가져가겠다”고 답했다. 이번 시즌에는 그와 함께 전설을 써내려간 ‘조드윅’ 조승우를 비롯해 이규형 고은성 렌이 헤드윅을 연기한다. 그는 “승우는 저보다 더 잘하는 스마트한 배우다. 처음 합류한 은성이가 ‘오드윅’을 정말 많이 봤다고 해서 여러 연기 포인트를 짚어줬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머리도 탈색하고 예열도 마친 그는 이미 헤드윅 그 자체였다. 연습실에서부터 힐도 좀체 벗지 않기로 유명하다. “무대의상인 블랙 원피스가 원래 제 옷처럼 편하고, 너무 예쁘더라고요. 무대서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헤드윅’이자 ‘오만석’으로 보이고 싶어요.” 10월 31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4만4000원~11만 원, 16세 관람가.김기윤기자 pep@donga.com}

팬데믹 여파로 연극무대가 사라져간다. 누군가는 “요즘도 연극하느냐”고 묻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금도 끈질기게 연극을 말하고 있다. 동시대의 여러 작품을 기록함으로써 ‘한국 연극의 증언자’가 돼야 한다는 소명감 때문이다. 최근까지 연극에 대해 꾸준히 논하며 잡지로서 명맥을 이어오는 전문지는 ‘한국연극’ ‘연극평론’, 웹진 ‘연극in’이다. 이 3개 매체 필진들은 많은 극단이 문을 닫았지만 지금껏 중단된 적이 없는 연극무대를 기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연극협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한국연극’은 1976년 1월 창간해 45년의 역사를 가진 전문지다. 올 8월 541호를 내놓았으며 매달 약 3만 부를 발행한다. 작품 리뷰는 물론이고 배우, 제작진 인터뷰를 주로 다룬다. 한국연극협회가 전국 16개 시도지회 회원들로 구성된 만큼 연극계 현안에 대한 굵직한 질문도 던진다. 김혜정 한국연극 기자는 “서울에 비해 지방 연극계는 최근 더 큰 어려움에 처했다. 힘든 상황일수록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지역 중소 극단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연극평론’은 현직 연극평론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 연극 비평 전문지다. 한국 연극의 흐름을 조망하고 해외 연극 이론도 소개한다. 1970년 첫 호를 발간했지만 1980년 중단됐다. 2000년 복간돼 올봄 100호, 여름에 101호를 내놓았다. 김옥란 평론가는 “수익이 남는 글은 아니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평론가로서 느끼는 희열과 소명의식이 펜을 잡게 만든다”고 했다. 편집주간을 맡은 임혜경 평론가는 “팬데믹을 겪으며 노동 문제를 다루는 극이 늘었다. 앞으로 연극계와 현실 속 노동에 대해서도 논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연극in’은 서울문화재단이 격주로 발행하는 연극 전문 웹진이다. 현업 작가, 연출가들이 주요 필진이다. 최근 200호를 발간했다. 리뷰를 비롯해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 창구를 표방하는 젊은 매체다. 예준미 연극in 에디터는 “연극을 관람하고 리뷰를 작성할 필자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객석이 줄었고 예매도 쉽지 않다”며 “특히 연극 리뷰는 단순히 작품 소개를 넘어 대리경험까지 가능케 하는 더없이 소중한 콘텐츠가 됐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업계가 라이브 커머스로 손을 뻗고 있다. 배우들이 영상에 출연해 공연을 소개하거나 작품에 임하는 개인적 소회, 경험도 털어놓는다. 일반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무대 뒤편의 배우 대기실, 분장실, 소품실을 보여주고 제작진을 소개하는 ‘백 스테이지’ 영상도 인기다. 공연의 이런저런 면모를 보여주는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의 목적은 결국 티켓 판매. 팬들은 영상 중간에 등장하는 ‘타임세일’을 기다렸다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구매한다. 실제로 방송을 마친 다음 날이면 주요 예매 사이트에서 해당 작품의 전날 판매량이 순위권에 오를 정도로 판매 성과도 쏠쏠한 편이다. 뮤지컬 업계의 새로운 판촉 시도가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09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처음 홈쇼핑에서 티켓을 팔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10년이 흐른 뒤 2019년 뮤지컬 ‘시라노’가 홈쇼핑과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티켓과 굿즈를 판매하자 공연계에서는 라이브 커머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9일 오후 뮤지컬 ‘비틀쥬스’는 인터파크TV 채널을 통해 라이브 커머스 쇼 ‘오늘도 전석매진’을 선보였다. 작품에서 리디아 역할을 맡은 홍나현 배우가 직접 MC를 맡아 무대 이곳저곳을 오갔다. 주역 배우인 정성화 유리아 이창용 김용수 전수미 등의 인터뷰도 담았으며, 제작진도 소개했다. 극의 매력 포인트인 무대 세트와 다양한 인형도 소개하며 쇼를 진행했다. 라이브 커머스 쇼는 ‘라이브’를 표방하지만, 백 스테이지 콘텐츠에 한해 녹화 송출하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급박한 상황을 무리하게 촬영하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 쇼를 기획한 CJ ENM 관계자는 “백 스테이지 풍경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잠재적 관객이 극을 보다 친근하고 재밌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답했다. 앞서 뮤지컬 ‘드라큘라’ ‘시카고’ ‘팬텀’ ‘그레이트 코멧’ 등 대극장 뮤지컬도 유튜브 채널 플레이DB와 인터파크TV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며 호응을 얻었다. 마니아 관객층이 두터운 김준수 배우가 ‘드라큘라’ 편에 출연하자 팬들은 “어제 관람했는데 인터뷰를 보니 재관람 욕구가 치솟는다”는 반응을 남겼다. 인터파크TV에서 공연 라이브 커머스를 총괄하는 김선경 콘텐츠팀장은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6월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자 반응이 좋았다. 작품별, 출연자별 편차는 큰 편이지만 동시 접속자 수가 평균 1만5000여 명에 달하고 다음 날 전석 매진으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아직은 초창기라 보완할 점도 많지만 극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이 공연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팬층이 결집하는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다른 매체보다 티켓 구매를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라이브 커머스는 할인판매를 통해 공연 관람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마니아층에게 재관람을 유도하는 보완적 마케팅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