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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확신한다.” 제6대 제임스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53·사진)는 그의 007 시리즈 은퇴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9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출연진과 감독이 국내 언론의 질문에 답한 영상이 이날 공개됐다. 크레이그를 비롯해 조연 라미 말렉, 레아 세두, 러샤나 린치, 케리 후쿠나가 감독이 참여했다. 크레이그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역대 최고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6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첩보 액션영화 007 시리즈에서 그는 여섯 번째로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카지노 로얄’(2006년)을 시작으로 ‘퀀텀 오브 솔러스’(2008년), ‘스카이폴’(2012년), ‘스펙터’(2015년)에 출연했다. 이번 편은 전체 시리즈 중 25번째로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출연작이다. 그는 “2015년 ‘스펙터’를 연기한 뒤 ‘이 정도면 007로서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연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재밌고 훌륭한 생각들을 점점 발전시켜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출연작 중에선 제임스 본드를 처음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후쿠나가 감독은 “이번 작품은 크레이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며 “‘카지노 로얄’을 다시 보면서 마지막 챕터를 어떻게 구상할지 고민했고 지금의 007이 있게 된 과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이그 역시 “007 시리즈에선 액션이 이야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개를 훌륭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잘 표현됐다”고 강조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확신한다.” 제6대 제임스 본드이자 역대 배우들 중 가장 오래 본드 역을 연기한 대니얼 크레이그(53·사진)는 그의 007 시리즈 은퇴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9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007 노타임 투 다이’의 출연진과 감독이 국내 언론의 질문에 답한 영상이 이날 공개됐다. 크레이그를 비롯해 조연 라미 말렉, 레아 세이두, 라샤나 린치,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참여했다. 크레이그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역대 최고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6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첩보 액션영화 007 시리즈에서 그는 여섯 번째로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카지노 로얄(2006)’을 시작으로 ‘퀀텀 오브 솔러스(2008)’ ‘스카이폴(2012)’ ‘스펙터(2015)’에 출연했다. 이번 편은 전체 시리즈 중 25번째로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출연작이다. 그는 “2015년 ‘스펙터’를 연기한 뒤 ‘이 정도면 007로서 할 만큼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연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재밌고 훌륭한 생각들을 점점 발전시켜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출연작 중에선 제임스 본드를 처음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후쿠나가 감독은 “이번 작품은 크레이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며 “‘카지노 로얄’을 다시 보면서 마지막 챕터를 어떻게 구상할지 고민했고 지금의 007이 있게 된 과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이그 역시 “007 시리즈에선 액션이 이야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개를 훌륭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잘 표현됐다”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와 대결하는 악당 사핀 역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라미 말렉이 맡았다. 그는 “본드에게 가장 공격적이고, 괴로운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본드걸’ 매들린 스완 역을 연기한 레아 세이두는 “여성 캐릭터도 진화했다. 단순히 본드를 돕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연기인생 65주년을 맞은 대배우가 동료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 있었다. “이제 더 하고픈 작품이 뭡니까?” 이순재(86)는 그때마다 연극 ‘리어왕’을 꼽아 왔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최고령 리어왕에 등극했다.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의 기자간담회에 주연 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 참석한 이순재는 “종종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연극은 역시 리어왕 아니겠느냐’고 말하던 게 공론화돼 무대까지 서게 됐다. 연기인생 중 해본 적 없는 작품”이라며 “만용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필생의 마지막 대작이라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기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제게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입에서 대본이 녹아나고,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익히고 있다”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작품을 맡은 이현우 연출가(순천향대 영미학과 교수)도 참석했다. 그는 여러 셰익스피어 작품의 연출, 번역을 맡아 국내에서 ‘셰익스피어 대가’로 통한다. 이 연출가는 “유럽에 흑사병이 만연하던 시기, 셰익스피어는 집에 격리된 상태에서 리어왕을 집필했다. 원전에도 소수자, 가난한 자에게 흑사병이 더 큰 피해를 끼치는 시대적 상황이 나온다. 현 시대 관객에게도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였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미치광이 노인으로 변하는 리어왕을 선보인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걷어낸 정공법을 택했다.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차 전 공연에서 리어왕 역할을 홀로 책임진다. 그는 “그간 여건상 원전을 생략한 리어왕 무대가 많았다. 이번엔 원전 그대로 의상, 분장까지 재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극단 관악극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무대는 최종률 박용수 김인수 임대일 등 중견 배우들을 비롯해 소유진 이연희 오정연 등도 출연한다. 이순재는 “셰익스피어 극의 핵심은 언어다. 복합적 용어, 수식어구가 많아 어렵지만 젊은 배우들과 원전의 대사를 정확하게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역동적으로 신나게 준비해서 제대로 완주해 보겠다”고 답했다. 10월 30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4만∼9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물랑루즈’(사진)가 제74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석권했다.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토니 어워즈는 아카데미상, 에미상,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약 1년 연기돼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물랑루즈는 올해 뮤지컬 분야 13개 부문 중 10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안무·오케스트레이션(편곡)·남우주연·남우조연·무대디자인·음향디자인·조명디자인·의상디자인 부문이다. CJ ENM이 글로벌 프로듀서로 참여해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건 2013년 뮤지컬 ‘킹키부츠’에 이어 두 번째다. 물랑루즈는 1890년 프랑스 파리의 클럽 ‘물랭루주’의 한 가수와 젊은 작곡가의 사랑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마돈나, 엘턴 존,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리애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곡을 더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2019년 7월 뉴욕에서 공식 개막한 물랑루즈는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공연을 중단했다가 24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물랑루즈는 토니 어워즈에 앞서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며 큰 기대를 모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물랑루즈’가 제74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석권했다.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토니 어워즈는 아카데미상, 에미상,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약 1년 연기돼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물랑루즈는 올해 뮤지컬 분야 13개 부문 중 10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안무·오케스트레이션(편곡)·남우주연·남우조연·무대디자인·음향디자인·조명디자인·의상디자인 부문이다. CJ ENM이 글로벌 프로듀서로 참여해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건 2013년 뮤지컬 ‘킹키부츠’에 이어 두 번째다. 물랑루즈는 1890년 프랑스 파리의 클럽 물랑루즈의 한 가수와 젊은 작곡가의 사랑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마돈나, 엘튼 존,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리한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곡을 더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2019년 7월 뉴욕에서 공식 개막한 물랑루즈는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공연을 중단했다가 24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물랑루즈는 토니 어워즈에 앞서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며 큰 기대를 모았다. 이번에 연출상을 받은 알렉스 팀버스는 올해 7월 한국에서 개막해 호평 받은 뮤지컬 ‘비틀쥬스’의 세계 첫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서울 중구 회현역 인근 서울로7017부터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까지. 나 홀로 길을 걸으며 1930년대 경성을 관람하는 공연이 관객과 만난다. 팬데믹 시대에 맞춰 탄생한 맞춤형 1인 이동식 공연이다. 국립극단은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코오피와 최면약’을 서울로7017과 국립극단 일대에서 선보인다. 서울로7017 안내소에서 출발한 관객은 각자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활용해 준비된 음향을 들으며 국립극단 방향으로 걷는다. 목적지인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에 도착한 관객이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한 한 편의 가상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총 소요 시간은 약 50분. 국립극단이 주변 문화시설과 연계해 기획한 이번 작품은 다원예술가인 서현석 작가가 구성하고 연출했다. 그는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은 같은 장소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고 상상하며 1930년대 경성과 현재의 서울을 중첩해 표현했다. 공연은 소설 ‘날개’ 속 주요 배경인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서울역 일대를 거닐었을 이상 작가의 흔적과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서 작가는 앞서 장소특정형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여의도, 세운상가 등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무력감, 심화하는 폭력성, 사회 균열이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답답한 일상의 틀을 뛰어넘게 만드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평일은 오후 1시 반부터 9시까지, 주말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한다. 3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18년 한 유튜버가 권총으로 실험을 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100m 상공으로 올라간 뒤 장전된 권총들을 자유 낙하시킨 것. 다른 총들은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격발되거나 망가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글록사의 ‘글록19’ 모델은 달랐다. 땅에 떨어져 튕겨 오른 뒤에도 고장이 나거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총을 주운 사격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그제야 총구가 화염을 뿜었다. 글록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보여준 이 영상은 미군 특수부대가 왜 이 총을 채택해 주요 무기로 사용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등을 거친 기자 출신의 저자는 ‘미국의 권총’이 된 글록의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을 풀어냈다. 글록의 변천을 좇다 보니 책은 자연스레 20세기 미국 총기 시장의 흐름을 짚는 역사서 성격을 지닌다. 사회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전후 미국엔 사냥을 위한 소총 생산의 비율이 높았으나, 급격한 도시화로 사냥이 줄었다. 사람들은 휴대가 편한 권총을 선호했고, 권총에 강점을 보였던 글록사의 인기는 치솟았다. 책은 끔찍한 총기 사고, 정치권 로비 뒷이야기를 포괄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사살한 조승희를 비롯해 많은 총기난사범들이 글록 총기를 사용했다. 미국 경찰도 허리춤에 글록 권총을 찬다.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면 총기 반대 여론이 격화한다. 제조사인 글록은 당연히 전미총기협회(NRA)처럼 총기 규제에 강경히 반대할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르다. 저자는 글록이 “NRA와 총기 옹호론자를 방패막이 삼아 실속을 차리며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흑막”이라고 묘사한다. 중도적 입장에서 교묘하게 총기 규제 운동을 억누른다고 보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글록을 창립한 가스통 글록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철도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중년의 나이에 총을 만든 그가 총기를 팔아 대성공을 누린 일화는 한 편의 영화 같다. 글록이란 새 키워드로 바라본 미국 사회, 정치가 새롭게 읽힌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카이(본명 정기열·40)만큼 다채로운 색을 머금은 뮤지컬 배우가 또 있을까. 사랑에 사무친 베르테르를 연기하다가 복수에 미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을 노래한다. 고귀한 황태자부터 신을 향해 울부짖는 벤허, 나아가 인간이 빚어낸 괴물 연기까지. ‘이 배우는 언제 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쉼 없이 무대에 서는 그는 여러 배역을 맡아도 ‘기복이 없다’ ‘믿고 본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빼어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배우가 지닌 올곧은 색깔 때문인지 모르겠다. “뮤지컬의 정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껏 이뤄낸 것보단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을 먼저 꺼내놓았다. “죽을 때까지 제 무대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겸손한 말과 함께. 이번엔 또 새 모습이다.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 카이는 주인공 ‘아더’를 연기한다. 풋풋한 모습을 지닌 소년부터 분노, 배신을 딛고 끝내 희망을 노래하는 캐릭터다. 2019년에 초연 무대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다. 14일 만난 그는 “이상하게 이번 작품이 재밌다. 왜 그런지 고민해 보니 팬데믹을 겪으며 ‘오늘 무대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무대를 더 기쁘게 누리기로 했다”며 웃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새 지평을 연 이 작품은 6세기 영국, 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아더왕 신화를 재해석했다. 평범한 소년이 왕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렸다. 김준수, 세븐틴 도겸, 비투비 서은광이 함께 아더를 맡는다. 덜컹거리는 서사를 다듬었고 극에 개연성을 더했다. ‘지킬앤하이드’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 음악에 화려한 무대 연출이 백미인 작품. ‘아더왕’의 넘버 2곡도 추가됐다. 카이는 “대형 창작뮤지컬에 참여해 자부심을 느낀다. 아직 부족해도 끊임없이 정답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더는 굴곡이 많은 캐릭터다. 출생의 비밀, 왕이 될 운명, 친구의 배신, 실연 등 여러 사건이 몰아친다. 심장을 쥐어짜는 왕관의 무게도 견뎌내야 한다. 카이는 “‘분노’는 노래를 더 크게 부르거나 동작을 크게 하는 등 표현할 도구가 많다. 하지만 ‘희망’이란 감정을 연기하기란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마저도 그만의 올곧은 방식으로 풀어냈다. “결국 악보, 대본에 모든 답이 있어요. 음표와 박자가 가진 감정,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요.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수입니다.” 농익은 아더 연기로 관객과 만나는 그는 슬슬 다음 작품도 시동을 걸려고 준비 중이다. 11월부턴 3년 전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1인 2역을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로서 한계에 도전하는 작품”이기에 애정이 더 크다고 했다. 올해로 뮤지컬 데뷔 11년을 맞은 그는 “이제야 무대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다만 ‘주인공 역할이 벼슬’이라는 태도나 ‘당치도 않은 오만함’을 끝없이 경계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과잉 감정’ ‘연기를 위한 연기’를 꼽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다며 귀띔했다. “상대역을 노래, 연기로 이기려 해선 안 됩니다. 상대를 빛내는 게 결국 제가 가진 힘이자 캐릭터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라 믿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의 리듬이 또 한 번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범 내려온다’ 열풍에 이어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 두 번째 시리즈가 세계인을 ‘힙한’ 한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관광공사가 유튜브 채널 ‘Imagine your Korea’에 공개한 시즌2의 8개 영상은 서울, 부산·통영, 대구, 서산, 순천, 강릉·양양, 경주·안동을 각각 90∼120초 내외로 비춘다. 3일 올라온 이들 영상은 게재 후 약 열흘 만에 평균 조회 수 7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가장 인기를 끈 ‘머드맥스’ 서산 편은 14일 기준 850만 회에 달한다. 함축적으로 표현한 지역별 특징을 영상미 넘치는 화면, 세련된 음악과 함께 버무렸다. 작위적인 모습보단 자연스러운 속살을 담아내며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 이 ‘세련된 국뽕’에 모두가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 빼어난 영상 속 K힙합과 민요 시즌2 영상의 첫 번째 인기 요인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빼어난 영상미와 음악으로 꼽힌다. 영화 ‘매드맥스’를 차용해 ‘머드맥스’로 연출한 서산 편에서 경운기 수십 대가 갯벌을 질주하는 장면은 백미다. 경주 편에서는 어슴푸레한 새벽녘을, 서울 편에선 도시의 세련된 감성을 담아냈다. 하회탈, 호미, 한복, 막걸리 등 한국을 상징하는 전통 소재와 음식도 틈틈이 등장한다. ‘K힙합’도 톡톡히 역할을 한다. 지난해 ‘범 내려온다’ 속 판소리가 ‘조선의 힙합’으로 불린 점에 착안해 한국 힙합과 민요를 섞었다. 유명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 AOMG의 아티스트들이 ‘사랑가’ ‘아리랑’ ‘쾌지나칭칭나네’ ‘옹헤야’ 등 민요를 힙합과 결합시켰다. 촬영 현장에서 음원을 계속 틀며 아티스트, 제작진이 곡에 어울리는 장면들을 담았다. 영상의 오리지널 음원은 17일 음원사이트에서 공개된다.○ 한국의 뿌리와 현재의 조화 이번 시리즈에선 어르신들이 자주 등장한다. 삶의 터전인 갯벌, 밭, 전통시장, 마을 어귀에서 한결같이 생업을 영위하는 이들은 진한 울림을 준다. 젊음, 역동성, 화려함을 내세운 여느 한국 홍보 영상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한 시청자는 “오늘날 한국의 역동적 모습 뒤에서 뿌리처럼 이를 지탱하는 노년 세대의 모습이 멋지게 담겨 울컥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겹고 따뜻하다”며 호응하는 해외 구독자도 많다. ‘젊은 한국’의 모습은 아티스트, 군무, 화려한 야경, 바쁜 거리 모습 등으로 표현됐다. 이번 시리즈는 한국 홍보 외에 ‘세대 간 통합’에도 긍정적 효과를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별 키워드 하나씩 영상을 보고 나면 ‘서산은 갯벌’ ‘순천은 시골’ ‘경주는 유적’처럼 지역별로 하나의 인상적 이미지가 남는다. 관광지를 주르륵 나열하기보단 키워드 한 가지만 남기는 ‘로컬 브랜딩’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한 지역의 면모를 자연스럽게 담는 방식을 선택해 라이프스타일, 골목, 사람들의 숨결이 유쾌하게 묻어난다. “머릿속에 지역을 각인시키는 게 먼저다. 관광지 정보는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오충섭 한국관광공사 브랜드마케팅팀장의 설명이다. 관광공사가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2011년 개설한 ‘Imagine your Korea’의 구독자 수는 지난해 ‘범 내려온다’의 히트로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 약 43만 명. 한국 구독자 비율은 31%까지 불어났다. 해외 구독자 비율은 국가별로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태국 순이다. 유럽, 미주 지역 구독자도 많다. 오 팀장은 “한국을 재발견할 수 있는 ‘설레는 한국’을 앞으로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의 리듬이 또 한 번 세계를 뒤흔든다. 지난해 밴드 이날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협업한 ‘범 내려온다’ 열풍에 이어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의 두 번째 시리즈가 세계인을 ‘힙한’ 한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서울, 부산·통영, 대구, 서산, 순천, 강릉·양양, 경주·안동을 비춘 시즌2의 8개 영상은 각각 1분 30초~2분 내외. 이 짧고 강력한 영상들은 3일 게재된 후 약 열흘 만에 평균 조회수 7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가장 인기를 끈 ‘머드맥스’ 서산 편은 14일 기준 무려 850만 회. 함축적으로 표현한 도시별 특징을 영상미 넘치는 화면, 세련된 음악과 함께 버무렸다. 작위적인 모습보단 자연스러운 도시의 속살을 담아내며 국내외서 호평 받고 있다. 당초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개설된 유튜브 채널 ‘Imagine your Korea’의 한국 구독자 비율도 약 31%까지 불어났다. 이 ‘세련된 국뽕’에 모두가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이거 뮤직비디오야?” 빼어난 영상 속 K-힙합과 민요시즌2 영상의 첫 번째 인기요인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빼어난 영상미와 음악으로 꼽힌다. ‘머드맥스’를 연출한 서산 편에서 경운기 수십 대가 갯벌을 질주하는 장면은 백미로 꼽힌다. 경주 편에서는 어슴푸레한 새벽녘의 모습을, 순천 편에선 정겨운 시골의 모습, 서울 편에선 도시의 세련된 감성을 미학적으로 담아냈다. 하회탈, 호미, 한복, 막걸리, 인삼 등 한국을 상징하는 전통 음식, 소재도 틈틈이 등장한다. 빼어난 영상미는 이현행, 정용준 감독 등의 손길을 거쳤다. 케이팝 열풍을 주도하는 장르 중 하나인 ‘K-힙합’도 톡톡히 역할을 한다. 지난해 ‘범 내려온다’ 속 판소리가 ‘조선의 힙합’으로 불린 점에 착안, 본격적으로 한국 힙합과 민요를 섞었다. 유명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 AOMG의 아티스트들이 ‘사랑가’ ‘아리랑’ ‘쾌지나칭칭나네’ ‘옹헤야’ 등 민요를 힙합과 버무렸다. 영상 제작 전 미리 음원을 완성한 뒤 촬영 현장에서 아티스트, 제작진이 이를 수없이 반복재생하며 곡에 어울리는 장면들을 담았다. 영상의 오리지널 음원은 이달 17일 별도로 음원사이트서 공개 예정이다.●한국의 뿌리와 현재, 아름다운 신구(新舊) 조화 이번 시리즈선 유독 어르신, 노년세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삶의 터전인 갯벌, 밭, 전통시장, 마을 어귀에서 한결같이 생업을 영위하는 이들의 모습은 진한 울림을 준다. 젊음, 속도, 역동성, 화려함만을 내세운 여느 한국 홍보 영상과 차별적이다. 한 시청자는 “오늘날 역동적인 한국의 이미지 뒤엔 뿌리처럼 한국을 지탱하는 노년층이 있다. 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러우면서 세련되게 담아 울컥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매일 지나던 탑골공원 근처 어르신들의 모습도 한국의 멋이 될 수 있다니 신선하다”는 댓글도 있다. 외국인 구독자들도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겹고 따뜻하다”며 호응했다. 세계가 흔히 떠올리는 ‘젊은 한국’의 모습은 아티스트, 군무, 화려한 야경, 바쁜 거리 모습 등으로 표현됐다. 한국관광공사도 이번 시리즈가 한국 홍보라는 목표 외에도 ‘세대 간 통합’이라는 부가적 목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도시별 하나씩만, 로컬 브랜딩영상을 보고 나면 도시별로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가 남는다. 보여주고픈 관광지를 마구잡이로 욱여넣기보단 하나의 키워드만 남기는 ‘로컬 브랜딩’ 전략이 먹혔다. ‘서산은 갯벌’ ‘순천은 한국적 시골’, ‘경주는 문화유적’ ‘양양은 서핑’이 대표적이다. 이를 보여주는 방식도 조금 다르다. 한 도시의 여러 면모를 라이프스타일, 골목,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작위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머릿속에서 남기만 한다면 관광지 정보는 다른 곳에도 얼마든 널려있다. 잊히지 않는 영상이 우선”이라는 게 오충섭 한국관광공사 브랜드마케팅팀장의 설명이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황홀하면서 서정적인 음악, 탄탄한 극본, 배우들의 맛깔 나는 연기 그리고 뮤지컬이 주는 몽환적 판타지까지. 당신이 꿈꾸는 뮤지컬의 매력들이 ‘하데스타운’에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2019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음악상 등 8관왕을 휩쓸었다. 대사 없이 노래로 극을 전개하는 ‘성스루 뮤지컬’로 미국 밖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팬데믹으로 18개월간 극장 문을 닫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2일 하데스타운을 시작으로 뮤지컬 무대가 다시 열렸다.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신화에선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저승에 간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를 음악으로 감동시켜 아내를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지상의 문턱에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명령을 어겨 홀로 돌아온다. 극중 오르페우스는 클럽에서 일하는 가난한 웨이터로,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추위를 피하려고 스스로 지하세계행을 택하는 인물로 각색됐다. 하데스는 부당계약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광산 운영자이자 자본가로,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라이선스 공연의 관건은 원작의 완성도를 어떻게 재현하고, 관객의 공감을 얼마나 끌어내는지에 달렸다. 국내 프로덕션이 내놓은 이번 무대는 원작 못지않은 파괴력을 갖췄다. 1등 공신은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낸 배우들. 국내의 내로라하는 뮤지컬 장인들이 빚어내는 화음과 연기력은 관객을 지하와 지상으로 끌고 다니며 신화 속으로 빨아들인다. 특히 해설자이자 헤르메스 역할의 최재림 강홍석을 비롯해 오르페우스 역의 조형균 박강현 시우민 등 출연진이 발군이다. 앙상블의 역동적 군무와 화음도 풍성함을 더한다. 어딘가 묘하게 몽환적인 매력은 포크와 뉴올리언스 재즈를 오가는 음악에서 나온다. 7인조 밴드가 이를 완벽하게 뒷받침하는데 신화에서 리라(lyra)를 즐겨 연주하는 오르페우스처럼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다양한 현악기 소리를 들려준다. 트롬본의 기교와 드럼은 흥을 돋운다. 무대 전환은 최소화했다. 원작에선 지하세계로 푹 꺼지는 듯한 하강 무대장치가 있으나, 국내에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장치로 대신했다. 중앙에서 회전하는 턴테이블 무대를 걷는 배우들을 통해 삶의 순환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만큼이나 상상력을 동원해 극을 음미하는 맛이 있다. 최근 몇 년 새 브로드웨이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지만 태동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아나이스 미첼은 어려서부터 오르페우스 신화에 빠졌고, 2010년 포크송 앨범 ‘하데스타운’에 이 이야기를 녹여냈다. 이후 여성 연출가 레이철 차브킨과 함께 추가로 15곡을 작곡했다. 귀에 맴돌던 노래들을 눈에 보이는 극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작품에 대해 “연대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종, 성별, 자본에 의해 나뉘고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함께 일어서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국내 무대에선 인종에 대한 이야기는 덜 부각되는 편이다. 하지만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그려진 에우리디케 등과 하데스에 맞서는 오르페우스를 통해 연대를 말한다. 극에서 결말은 신화와 비슷하다. 마치 돌이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이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 신화’와도 닮았다. 틀어질 줄 알고, 어긋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노래하고 연대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황홀하면서 서정적인 음악, 탄탄한 극본,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 그리고 뮤지컬이 주는 몽환적 판타지까지. 당신이 꿈꾸는 뮤지컬의 모든 것들이 ‘하데스타운’에 다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2019년 브로드웨이에 정식 개막한 뒤 본 공연 3개월 만에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 음악상 등 8관왕을 휩쓴 작품이다. 대사 없이 노래로 극을 전개하는 ‘성스루 뮤지컬’로 미국 밖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처음. 18개월 간 극장 문을 닫았던 미국 브로드웨이도 2일 하데스타운을 시작으로 뮤지컬 무대를 재개할 만큼 미국서도 제일 ‘핫한’ 작품 중 하나다. 극 중 인물들의 노래가 차가운 지옥도 녹이듯, 하데스타운도 한국, 미국서 팬데믹으로 얼어붙은 관객들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낸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저승에 찾아간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를 음악으로 감동시켜 아내를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지상 문턱 앞에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버려 홀로 지상에 돌아온다는 그 이야기다. 극 중 오르페우스는 클럽에서 일하는 가난한 웨이터로,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추위를 피하려 스스로 지하세계 행을 택하는 인물로 각색됐다. 하데스는 부당계약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광산 운영자이자 자본가로,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원작의 완성도가 높아 라이선스 공연의 성패는 이를 어떻게 재현하고, 얼마나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지에 달렸다. 결과적으로 한국 프로덕션이 내놓은 무대는 원작 못지않은 파괴력을 갖췄다. 1등 공신은 캐릭터 특징을 살려낸 주역 배우들. 국내서 내로라하는 ‘뮤지컬 장인들’이 빚어내는 화음과 연기력은 관객을 지하, 지상으로 마구 끌고 다니며 신화 속으로 빨아들인다. 특히 극의 해설자이자 ‘헤르메스’ 역할의 최재림 강홍석을 비롯해 주인공 ‘오르페우스’ 역의 조형균 박강현 시우민 등 전 출연진이 발군이다. 앙상블의 역동적 군무와 화음도 풍성함을 더한다. 어딘가 묘하게 몽환적 구석을 가진 작품의 매력은 포크, 뉴올리언스 재즈를 오가는 음악서 나온다. 7인조 밴드가 이를 완벽히 뒷받침하는데 신화 속 ‘리라(lyra)’를 즐겨 연주했다는 오르페우스처럼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현악기 소리가 돋보인다. 트롬본의 기교와 드럼은 흥을 돋운다. 무대 전환은 최소화했다. 원작에선 지하세계로 푹 꺼지는 듯한 하강 무대 장치가 있으나 국내선 무대 뒤로 사라지는 개폐식 장치로 대신했다. 중앙서 회전하는 턴테이블 무대를 걷는 배우들을 통해 삶의 순환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만큼이나 상상력을 동원해 극을 음미하는 맛이 있다. 작품이 몇 년 사이 브로드웨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실 태동기는 한참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아나이스 미첼은 어려서부터 오르페우스 신화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고, 2010년 포크송 앨범 ‘하데스타운’에 이 이야기를 녹여냈다. 이후 여성 연출가 레이첼 차브킨과 협업해 추가로 15곡을 작곡했다. 귀에 맴돌던 노래들을 눈에 보이는 극으로 함께 탈바꿈시켰다. 그는 작품이 “연대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종, 성별, 자본에 의해 나뉘고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함께 일어서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국 무대서는 인종에 대한 이야기는 덜 부각되는 편. 하지만 주체적 여성 캐릭터와 하데스에 맞서 노래하는 오르페우스를 통해 연대를 말한다. 신화에서도, 극에서도 결말은 비슷하다. 마치 돌이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돌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 신화’와도 닮았다. 틀어질 줄 알고, 어긋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노래하고, 연대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짙다. 작품도 우리 인생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당신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콘텐츠가 된다? 유튜브 세계에선 이미 현실이 된 얘기다. 친환경,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환경보호를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운동), 쓰레기 대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쓰레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 효율적 재활용법, 친환경 조리법이 콘텐츠 소재가 되고 있는 것. 콘텐츠 취지에 공감하며 각자 실천 중인 정보를 공유하는 누리꾼도 적지 않다. 유튜브 채널 ‘발명! 쓰레기걸 Trash girl’은 지난해 7월 개설 후 1년 만에 약 4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채널 운영자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발명품을 만드는 사랑의 발명가’를 표방한다. 생활 쓰레기의 쓸모를 새로 찾아 유쾌하게 재해석한 발명품을 내놓는다. 예컨대 미용실에서 쓰는 마네킹 머리 모형을 개조해 도시락 통을 만드는 식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들을 모아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 집도 짓는다. 구독자들은 “쓰레기에 미친 천재”라며 열광하고 있다. 20대 대학생 안혜미, 맹지혜 씨가 운영하는 구독자 7만 명의 유튜브 ‘쓰레기왕국’ 채널도 MZ세대 사이에서 화제다. 채널 이름은 지구가 일회용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왕국으로 변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은 그릇을 들고 다니며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오거나, 다 쓴 플라스틱 샴푸 통을 분해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플라스틱 없는 주방을 만들거나, 제주도 여행에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활동도 곁들였다. ‘친환경 여행’ 콘텐츠에는 많은 이들이 “휴가 때 나도 따라 해보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시민단체 서울환경연합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플라스틱 방앗간’ 코너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정보를 제공한다. 쓰레기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과정이나 택배 쓰레기를 해체 분리해 배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미디어홍보팀장은 “쓰레기, 환경을 다루면 구독자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당장 조회 수를 올리기 쉬운 콘텐츠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환경 문제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각종 생필품을 포장 없이 판매하는 알맹상점은 ‘친절한 래교(zero-waste)’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구독자는 약 2만 명. 플라스틱 줄이기, 친환경 비누 만들기, 신문지 재활용 등 환경보호 실천 방법을 감각적인 영상에 녹여냈다. 충성 구독자들이 많은 편이다. 해외에서도 찾아보는데 한 베트남 구독자는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많다. 유용한 팁을 베트남에서도 많이 실천했으면 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쓰레기 관련 콘텐츠가 관심을 모으면서 이른바 ‘쓰레기 박사’로 불리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관련 유튜브 채널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홍 소장은 “몇 년 전 쓰레기 대란 같은 사회문제를 비롯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쓰레기 콘텐츠 수요를 늘렸다. 지금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이나 살림 노하우 같은 정보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향후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도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환경보호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유난 떤다’ ‘너무 튄다’는 시선이 아직 존재하기에 유튜브 콘텐츠는 이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이 팀장은 “유튜브에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지만 환경 콘텐츠만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당신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 누군가에겐 콘텐츠다? 이 말은 유튜브 세계서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쓰레기 대란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쓰레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천법, 재활용 방법, 업사이클링, 친환경 조리법 등 쓰레기, 절약과 관련한 모든 것들이 콘텐츠 소재가 된다. 영상별 댓글창에는 콘텐츠 취지에 공감하며, 각자가 실천 중인 여러 정보 공유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모여든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채널은 ‘발명! 쓰레기걸 Trash girl’이다. 지난해 7월 채널을 개설한 이래 1년 만에 구독자 약 40만 명을 끌어 모았다. 채널 운영자는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발명품을 만드는 사랑의 발명가”를 표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버리는 쓰레기들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 유쾌하게 재해석한 발명품으로 내놓는다. 미용실에서 버리기 직전인 마네킹 모형 머리를 개조해 도시락통으로 만든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들을 모아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집도 지었다. 구독자들은 버려질 쓰레기들을 모아 만든 기상천외한 예술품, 발명품에 “쓰레기에 미친 천재들 같다”며 열광하고 있다. 20대 대학생 안혜미, 맹지혜 씨가 운영 중인 구독자 약 7만 명의 유튜브 채널 ‘쓰레기왕국’도 MZ세대 사이서 큰 화제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일회용품,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왕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채널명을 지었다. 이들은 다회용 그릇을 들고 다니며 식당에서 직접 음식을 받아오거나 흔히 쓰는 플라스틱 샴푸통을 분해한 뒤 버리는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플라스틱 없는 주방 만들기’ 콘텐츠도 화제였다. 3박4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 쓰레기를 최대한 발생시키지 않으며, 쓰레기 줍기 활동도 곁들였다. ‘친환경 여행’ 콘텐츠에는 수많은 이들이 “휴가 때 꼭 나도 따라해보겠다”며 공감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단체인 서울환경연합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속 ‘플라스틱방앗간’이라는 코너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분리배출 정보 등을 제공한다. 기후변화, 지구회복성 같은 더 큰 주제도 포괄한다.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미디어홍보팀장은 “쓰레기, 환경이라는 주제는 조회수나 구독자를 끌기에 쉽지 않다. 당장 조회수 올리기 쉬운 시의적 콘텐츠보다는 장기적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포장, 껍데기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알맹상점’은 ‘친절한 래교(Zero-waste)’라는 채널을 운영한다. 구독자는 약 2만 명. 플라스틱 줄이기, 비닐 줄이기를 비롯해 살림, 일상 속 실천법을 감각적 영상에 녹여냈다. 충성 구독자들이 많은 편이다. 해외 시청자도 많은데 한 베트남 출신 구독자는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많다. 유용한 팁을 베트남에서도 많이 실천했으면 한다”는 반응도 보였다. 쓰레기를 다룬 콘텐츠가 각광받다 보니 일명 ‘쓰레기 박사’로 불리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여러 콘텐츠에 자주 모습을 비추는 단골 출연자가 됐다. 홍 소장은 “몇 년 전 쓰레기 대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비롯해 전 지구적 환경에 대한 관심이 ‘쓰레기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높였다. 아직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 살림 노하우 같은 정보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더 높지만, 향후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환경 보호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유난 떤다’ ‘너무 튄다’는 시선이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유튜브 플랫폼은 이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이 팀장은 “자극적 콘텐츠가 널려있는 유튜브에서도 환경 콘텐츠만큼은 장기적 관점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어부들에게 ‘만선(滿船)’은 풍요의 상징이다. 물고기로 가득 찬 배를 보기만 해도 자식들 먹일 생각에 배부르다 했던가. 하지만 연극 ‘만선’에서 만선은 풍요만을 뜻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어민의 빈곤과 상실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 돼버린다. 작품에서 ‘구포댁’ 역의 배우 정경순(58)은 “만선 때문에 이 사달이 나는 거다. 누군가는 만선하려고 용쓰다 또 희생당하고…. 시대가 풍요롭다 해도 어디에나 가난과 비극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이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1960년대 어민 ‘곰치’의 가족을 통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천승세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희곡은 1964년 초연됐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돼 당초 지난해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로 연기됐다. 주인공 ‘곰치’와 그의 아내 ‘구포댁’은 베테랑 배우 김명수(55)와 정경순이 각각 맡았다. 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이들은 “정통 사실주의 연극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제격이다. 어떤 배우가 해도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갈 만큼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극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운명이다. 대대로 어부인 곰치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고, 아들 셋마저 바다에서 잃는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듯 만선의 꿈을 접지 못하고 뱃일을 고집한다. 배를 빌려 고기잡이를 하기에 잡아온 물고기는 선주에게 넘어간다. 배 임차료에 빚 부담까지 떠안는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곰치는 참 답답한 사람이죠. 만선한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바다만 고집해요. 하지만 그가 절벽 끝에서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평생 해온 거라곤 그물질뿐인 사람이 과연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까요.”(김명수) 반면 구포댁은 지독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정경순은 “여성에게 순종만 강요하던 시대에 도저히 실성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자식을 잃은 한과 뭍으로 나가 살려는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미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두 배우는 연극무대, 드라마, 영화에서 잔뼈가 굵었다. “모든 연극은 힘들어도 때가 되면 항상 고프다”고 할 만큼 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작품에서 1960년대 부모 세대의 감성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정경순은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은 만큼 많이 죽기도 했다는데 가슴속에 자식들을 한처럼 묻고 사는 게 어떤 감정일지 가늠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명수는 천 작가의 삶을 참고해 곰치 캐릭터를 구체화했다. “천승세 선생은 문인들 사이에서 ‘500년 조선에도 없을 만한 가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남성성이 강한 분이셨다고 해요. 다만 아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은 누구보다 극진했죠. 곰치 캐릭터에 천 작가의 모습이 묻어있다고 봤어요.” 60년 전 작은 어촌에서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채 사는 별난 이들의 이야기 같지만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돈보다 상전이 어딨냐’는 대사가 있어요. 지금 우리 얘기잖아요. 동서고금 우리네 인생은 돈 때문에 비루해도 그걸 겪어내야 하는 게 인생이겠죠.”(김명수 정경순) 19일까지, 2만∼5만 원, 14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7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5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기관 및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7, 8월 2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2021년 제35회 인촌상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습니다. ▽교육= 아주자동차대학 ▽언론·문화= 박세은 발레리나 ▽인문·사회= 이종화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 선양국 한양대 교수 인촌상운영위원회(위원장 안병영)는 올해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 대해 5월 1일부터 후보자를 접수해 8월 말까지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와 경성방직을 설립하고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를 통해 인재를 양성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인촌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10월 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치를 예정입니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억 원과 메달을 수여합니다. 제35회 인촌상 영광의 수상자들자동차 전문 기술인 양성 26년 한우물… 한국 車산업 이끄는 맞춤형 인재 배출 교육 아주자동차대학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 양성.’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전문대의 정의다. 국내 고등교육 전문가들은 전문대의 정의에 부합하는 학교 중 하나로 아주자동차대학을 꼽았다. 충남 보령시 아주자동차대학은 1977년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학교법인 대우학원 소속으로 1995년 대천전문대학으로 출발했다. ‘세계 수준의 자동차 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국가와 세계의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할 역량을 갖춘 기술인 양성 하나를 위해 26년간 ‘자동차’ 외길을 걸었다. 박병완 총장(사진 왼쪽)은 “한 학년이 500명 정도인 작은 학교에서 인촌상같이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게 돼 너무나 기쁘고 영광”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아주자동차대학의 핵심 교육가치는 ‘경험’이다. 현장에 나갔을 때 바로 업무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 한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해 내고자 노력했다. 대표 프로그램은 ‘아주 파란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졸업까지 실제 자동차 1대를 만들어 보는 경험을 쌓게 된다. 현대모비스, BMW, 아우디 등 500여 개 산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산업계 맞춤형 인력’도 배출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학생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드론 등도 정규 교육과목으로 개설했으며, 친환경 자동차 및 e모빌리티 전공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실습용 전기자동차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높은 취업률’이라는 결과로 반영됐다. 지난해 아주자동차대학의 취업률은 73%다. 2016년부터는 북유럽의 직업교육 선진국인 핀란드 직업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4년째 전기자동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상생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아주자동차대학은 충남도, 보령시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캠퍼스 주변인 주포면 일원에 230억 원을 투입하는 ‘자동차 튜닝산업 생태계 조성사업’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박 총장은 “대학과 지역이 상생하는 발전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공적 아주자동차대학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 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1995년 대천전문대로 개교했다. 2004년 교명을 변경하고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자동차 대학으로 관련 직업교육 발전을 선도해 왔다. 풍부한 산업체 경력의 우수한 교수진과 폭넓고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한 실습실을 갖춘 글로벌 수준의 자동차 관련 직업교육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건설기계, 드론에 이르기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다. 2015년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 최우수 등급, 고등직업교육 품질인증대학 등 각종 평가에서 13관왕을 달성했다. 산업정책연구원이 선정하는 ‘국가산업대상’에서 인재양성 부문 대상을 2년 연속 받았다. 동양인 첫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 “가장 낮은 자리서 가장 빛나는 별 될것” 언론·문화 박세은 발레리나 “감히 제가 받아도 되는 상인지 스스로 되묻습니다. 더 많은 땀과 열정을 쏟아 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발레리나 박세은(32)은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 소식에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는 6월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BOP)에서 최고 등급 무용수인 ‘에투알(´etoile·별)’로 지명됐다. 352년 역사의 BOP에서 동양인 최초로 이룩한 쾌거다. 새 시즌 준비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연습 중인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박세은은 역대 최연소 인촌상 수상자다. 인촌상을 받은 예술가 가운데 무용수로는 처음이기도 하다. 그는 “한태숙 연출가, 한강 소설가, 봉준호 감독 등이 받은 상을 받게 돼 놀랍다. 그만큼 크고 영예로운 상을 주셔서 기쁘다”며 “발레리나의 수명이 워낙 짧아서 그런 점까지 감안해 저만의 외로운 싸움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의미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에는 완벽이라는 게 없다. 내일 좀 더 나아지기 위해 오늘 더 열심히 배운다는 신념으로 춤을 춰왔다”며 “인촌 선생께서 교육으로 나라를 살리셨듯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떠올렸다”고 밝혔다. 그는 동아일보와 인연이 각별하다. 서울예고 1학년이던 2005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그는 “제 오랜 팬들은 대부분 동아무용콩쿠르 때부터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다”라고 했다. 인촌상 심사위원들은 승급과 서열관리가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BOP에서 박세은이 에투알로 지명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에투알은 빈자리가 나야 후임을 지명하는 ‘별의 자리’로 단 16명에게만 주어진다. 또 BOP는 단원 150명 중 95%가 BOP 발레학교 출신일 만큼 발레 종주국인 프랑스의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박세은은 피나는 노력과 빼어난 실력으로 프랑스 현지 무용계 인사들은 물론 관객들로부터 예술성, 스타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용을 시작한 이후 ‘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배움의 자세로 추는 것’이란 말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콧대 높은 프랑스 무용수들에게 배운 것을 제 춤으로 만들었듯 겸손하면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 되겠습니다.”공적 2005년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수상하며 무용계에 이름을 알린 박세은은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2006년 미국 잭슨 콩쿠르(IBC)에서 금상 없는 은상, 2007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까지 세계 4대 발레 콩쿠르 가운데 세 곳을 휩쓸었다. 2009년 특채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으며 2011년 준단원으로 파리오페라발레단(BOP)에 입단해 10년 만에 최고 무용수인 에투알에 올랐다. 2018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BOP 단원의 정년은 42세로, 박세은은 향후 10년간 에투알로 무대에 선다. 인재육성이 국가경제 미치는 영향 연구… “사람을 모으고 키웠던 仁村 업적 떠올라” 인문·사회 이종화 고려대 교수 “누구보다 인재 양성에 힘써 왔던 인촌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아 그 어떤 상보다 영광스럽습니다.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연구와 사회봉사에 힘쓰겠습니다.” 이종화 고려대 정경대학장 겸 정책대학원장(61)은 “지금까지 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에 더 기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인촌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92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이 교수는 거시 및 국제 경제 분야에서 경제 성장과 인적 자본 등에 대한 연구로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그가 경제학자로서 평생을 바쳐 온 연구 주제는 ‘인재’, 더 넓게는 ‘사람’이다. 국가의 대표적 자원인 ‘인재’를 육성하는 방식이 국가 경제의 흥망성쇠를 어떻게 가르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그런 그에게 일제강점기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를 통해 인재 양성에 매진했던 인촌 김성수 선생을 기리는 인촌상은 감회가 클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인적 자본을 평가하는 방식과 교육이 인재 양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측정하는 기본 자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요즘 역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경제학자들이 이론 연구와 더불어 현실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학계와 대중의 접점을 늘리고 이념을 떠나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정책 당국자들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경제학계가 사회의 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할지, 현실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할지에 대해 동료 경제학자들과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학계에서 부지런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영문 저널에 102편, 국문 저널에 21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현재 진행 중인 논문도 10여 편에 이른다. 지난달부터 고려대 정경대학장을 맡았다. 내년엔 한국경제학회 회장으로 일한다. 그는 “늦어도 오전 5시에 일어나 대부분의 연구와 글쓰기를 아침식사 전에 한다”며 “사람이 가진 시간은 다 비슷하니 주어진 시간을 집중해 쓰려 한다”고 말했다. 공적 거시경제, 경제성장, 인적자본 분야의 뛰어난 연구 업적으로 국내외 학계에서 주목받은 경제학자다. 국내외 학술지에 12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1993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07년부터 4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지역협력국장, 조사국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세계 금융위기 극복과 다자 간 경제협력에 기여했다. 2011년부터 2년간 대통령국제경제보좌관 겸 주요 20개국(G20) 셰르파(사전교섭대표)로서 대외경제정책 수립과 국제 협상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경제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2차전지 양극소재 연구 세계적인 권위자… “전기차 한번 충전 1000km 가게 만들것” 과학·기술 선양국 한양대 교수 “20여 년간 열심히 한 우물을 판 덕분에 과분한 상을 받았습니다.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인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릴 2차전지 양극소재 기술 개발에 매진하겠습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부 교수(60)는 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저보다 더 훌륭한 연구자들도 많은데 제가 상을 받게 돼 연구자로서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선 교수는 휴대전화와 전기차에 적용되는 2차전지 양극소재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권위자로 꼽힌다. 1992년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6년부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2차전지 연구개발(R&D)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00년부터 한양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선 교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비롯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670여 편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모바일 산업의 성장을 보며 2차전지의 쓰임새가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리튬이온전지 양극소재가 배터리의 내구성과 안전성, 충전용량 등을 결정하는 핵심으로 보고 니켈코발트망간(NCM)을 활용한 양극소재를 누구보다 먼저 연구하기 시작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선 교수는 “일찍부터 NCM 양극소재 분야를 눈여겨봤고 깊이 있게 연구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기존 양극소재와는 다른 독창적인 구조로 수명이 길고 안전성이 월등하다”고 했다. 최근에 출시돼 관심을 끌고 있는 기아의 전기차 EV6와 현대차 코나 전기차 유럽형에 적용된 배터리도 선 교수가 연구 중인 양극소재를 활용했다. 전기차 플랫폼에서 1회 충전에 10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를 구현하는 양극소재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NCM 양극소재에서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핵심 소재인 니켈의 함량을 높이면서도 내구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연구를 지금도 수행 중이다. 선 교수는 후배 연구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기에 유망하거나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파고들어 깊이 있게 연구하다 보면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혁신, 현상,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적 리튬이온전지로 대표되는 2차전지 양극소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네이처’를 포함한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논문의 피인용 횟수만 5만1352회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2차전지 기업에 기술을 제공하며 학문적 업적은 물론이고 산업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1992년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을 거쳐 한양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과 미국 전기화학회 석학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35회 인촌상 심사위원▽교육 △위원장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포스텍 총장 △위원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백순근 서울대 교수 ▽언론·문화 △위원장 양승목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인문·사회 △위원장 김용학 연세대 명예교수·전 총장 △위원 김영민 서울대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과학·기술 △위원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한양대 석학교수△위원 김승환 포스텍 교수, 이긍원 고려대 교수,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연구위원 보령=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서울이란 도시는 어떤 질감, 빛깔, 냄새를 갖고 있을까. 대체로 비슷한 이미지를 그릴지 모르지만, 깊게 파고들면 각 장면은 조금씩 다를 가능성이 크다. 같은 공간에도 각자의 인생, 경험, 시선이 다르게 녹아 있기 때문. 모두의 삶 속에 녹아든 서울의 모습을 다양하고 구체적 모습으로 시각화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천만 개의 도시’가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심오하면서도 거대한 이 작업을 맡은 건 박해성 연출가(45).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형식, 접근 방법이 어떻든 자유도가 큰 작품이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건을 다루거나 도시를 상징화한 작품은 그간 많았다. 대신 완전히 반대로 접근하기로 했다”며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작품은 여느 연극과 사뭇 다르다. 주인공 중심의 일정한 서사가 없다. 대신 시민들의 다양한 일상을 담은 47개의 장면으로 잘게 쪼개져 있다. 100여 개의 캐릭터 중엔 장애인, 외국인 그리고 동물도 있다. 각 장면 속 인물들은 시간 순이나 서사를 따르는 대신 동시다발적으로 발화하고 연기한다. 때문에 작품은 모자이크 같기도 하고, 최근 유행하는 ‘쇼트폼(짧은 형식)’ 콘텐츠를 무대화한 느낌도 든다. 전 과정은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장애인 친화적)로 진행된다. “각자의 서울이 다른데 대표적 이미지로만 모으려면 누군가의 개별성을 희생해야 하잖아요. 서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이 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공존하는 무대를 떠올렸습니다.” 작업 방식도 독특했다. 1년에 걸친 사전 준비작업 중 박 연출가는 전성현 작가와 함께 시민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시민들의 인생 이야기보다는 사소한 일상, 순간들에 대해 얘기했다. 인터뷰에 등장한 공간, 인물, 사연을 분할하고 해체한 뒤 재조립해 새로운 장면과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47개의 장면을 한 작품에 담는 게 큰 도전이었다. 이런 형식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에게도 연기는 큰 숙제였을 것”이라며 웃었다. 관객들에게도 작품은 도전해 볼 만한 숙제다. 3일 공연을 본 한 관객은 “서사가 없어 당황했지만 마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장에서 사람 구경하며 멍 때리는 것 같은 색다른 체험”이라고 털어놨다. 박 연출가는 “작품을 연출하면서 추출해낸 키워드 중에도 일상과 다른 순간으로 ‘몰입’ ‘멍 때림’ 등이 있었다”고 했다. 연극적 근본주의를 견지한다는 평가를 받는 박 연출가는 지난해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했다. 앞서 ‘스푸트니크’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코리올라너스’ 등을 선보였다. 공대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학내 극회에 발을 들였다 연극에 빠졌다. “창작자가 될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지만 “거대한 사상과 이론도 가장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풀어내는 연극에 끌렸다”고 털어놨다. 이번 작품에서도 박 연출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했단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고민해 보려 합니다.” 2만5000∼5만5000원. 14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쓸모없는 노동은 있다? 미국의 저명 인류학자이자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대담하게 비판하며 명성을 떨치던 저자가 세상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일자리가 전체의 40%에 육박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이러한 일자리를 일컬어 그는 ‘불쉿 잡’이라 칭했다. 불쉿(불싯·Bullshit)은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 이는 일하는 사람조차 노동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러 경제학자들은 예부터 20세기 말이면 인류가 적은 시간 노동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누리고 살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불쉿 잡은 증가하고 있다. 학자들은 어떤 변수를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책은 이에 대해 파고들며 이 같은 현상이 사회 구성원에 미치는 심리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파헤친다. 저자는 변화의 원인으로 금융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진영 논리와 관계없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삼는 오늘날 각국 정부의 정책을 꼽았다. 지난 100년간 생산 자동화가 생산직을 대거 없앤 반면 사무직을 급격히 늘려간 점도 한몫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가짜 일’ ‘일만을 위한 일’이 대거 생겨났다고 말한다. 불쉿 잡의 특징은 또 있다. 바로 그 일을 수행하는 당사자가 이 사실을 가장 잘 안다는 것. 저자는 사모펀드 최고경영자(CEO),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텔레마케터, 컨설턴트 등을 예로 들며 이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반면 교사, 간호사, 쓰레기 수거 요원, 음악가, 항만 노동자 등이 없어지면 막대한 사회적 파장이 생길 것이라 분석했다. 재밌는 건 이러한 무의미한 일이 쓸모 있는 일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고액 연봉,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직업의 위계를 읽어낸다. 이런 주장이 다소 과격한 일반화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났듯, 그의 주장엔 공감할 지점이 적지 않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무용 단체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는 ‘2021눈먼자들’을 4, 5일 서울 양천구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가 2016년 처음 공연한 작품은 재공연 때마다 안무, 연출을 가다듬으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무대를 선보여 왔다. 강한 리듬과 환상적 공간을 특징적으로 구현하며, 이를 현실 세계와 대조시키는 독특한 장면 구성이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현대무용의 난해함을 극복하고, 일반 관객과 적극적인 소통을 꾀하는 시도다. 작품은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이미지, 자극 속에서 눈이 멀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크게 7개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미지의 세계에서 시작해 내면 갈등, 비난의 화살, 세뇌, 폭발 등의 순간을 거치며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마무리된다. 무용수들은 화려한 조명 속에서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을 갖춰 입고, 군무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춤, 몸짓을 선보인다. 작품은 프랑스 장-프랑수와 뒤두르 무용단, 아리엘 무용단, 부르노 자깡 무용단 등에서 활동한 김성한이 안무했다. 2002년 귀국 후 그가 2005년 창단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는 ‘훔치는 타인들’ ‘구토’ ‘아유레디?’ ‘비트사피엔스’를 대표작으로 선보였으며, 지난해부터 양천문화회관의 상주예술단체로 활동 중이다. 전석 2만 원, 양천구민 1만 원, 전체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회사의 고공 성장기를 거치며, 자신도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연이은 야근에 주말 반납도 자청했다. 언제부턴가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공황증세, 이명증, 디스크, 무기력, 번아웃 증후군까지. 일이 싫었던 건 아닌데…. 뭐가 문제였을까. 네이버 라인프렌즈 내 같은 팀에서 브랜드경험 기획자,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세 사람은 퇴사를 결심했다. 큰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문제가 보였다. “우리는 일을 싫어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미칠 듯 좋아한다. 다만 일하는 태도가 조금 달랐을 뿐.”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 ‘모빌스 그룹’이라는 회사를 세운 ‘MZ세대 윗자락’ 모춘(38), 소호(35), 대오(37)를 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본명 대신 별명을 쓴다. “주체적으로 일하자는 다짐을 담아 새 이름을 지었어요. 본명을 쓰면 왠지 노예근성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아서요. 회사가 망하면 본명으로 되돌아가야죠.”(모춘) 이들은 2019년 퇴사 순간부터 창업, 작업 과정 자체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 채널 ‘MoTV’에 올렸다. 현재 구독자는 약 5만 명, 시청자 주 연령대는 23∼34세다. 모빌스 그룹이 일하는 방식을 동경하는 팬들로부터 ‘노동계의 아이돌’ ‘자유노동자들’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간의 이야기를 담아 올 4월 낸 책 ‘프리워커스’는 3개월 만에 3만 부 이상 팔렸다. 지난해와 올해 노동절에 이들의 메시지를 담은 상품을 전시·판매한 팝업스토어엔 1만 명이 넘게 몰렸다. 하지만 콘텐츠를 처음 접한 이들은 여전히 “그래서 뭐 하는 회사인데?”라고 묻는다. 소호는 “한마디로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들은 물건, 상품이 아닌 일에 대한 메시지를 판다. 메시지는 간명하고 유쾌하다. 일할 때 가능한 한 천천히 일하자는 ‘ASAP·As Slow As Possible’,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는 ‘Small Work Big Money’, 어젠다 없는 삶을 갈구하는 ‘No Agenda’ 등이다. 대오는 “더 뾰족하고 구체적인 브랜드와 메시지를 고민한다. 타 업계와 만나는 방식을 끊임없이 시도한다”고 했다. 메시지에 공감한 구글, 오뚜기, 뉴발란스 같은 유명 기업들도 이들에게 손을 뻗고 있다. 모빌스 그룹의 현재 구성원은 7명. 규모가 커지며 직원 네 명을 뽑았는데 모두 ‘MoTV’ 구독자 출신이다. 3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었단다. 부하 직원보다는 일하는 태도가 잘 맞는 동반자를 채용한 느낌이다. 회의는 ‘수다 타임’에 가깝다. 소호는 “주체성, 솔직함, 유머, 끈기를 봤다. 함께 일할 땐 성과보다 개인 성향이 더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대오는 “저희도 학점이 안 좋다. 이력서에서 수치화된 점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이들은 ‘슬로 푸드’ 같은 존재다. 천천히, 오래 음미해야 이들이 전하는 가치와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다. 최근 브랜드 업계에서 모빌스 그룹이 자주 언급될 만큼 이들의 이야기가 갖는 파급력은 커지고 있다. 모춘은 “처음 ‘빅 머니’의 목표로 세웠던 수익 월 100만 원은 이미 달성했다. 그런데 조금 일하고 얼마나 벌어야 할지, 얼마나 덜 바쁘게 일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매일 ‘갈지자’로 오가며 늘 실험 중”이라고 했다. 소호는 “7명이 일해도 더 많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한다고 느껴진다. 일종의 캠페인 운동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