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3

추천

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칼럼64%
인사일반13%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 [자연과학]불량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는 진화했다

    “허준을 드라마로 또 한다고?” 많이도 우려먹는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물론 시대에 따라 시각이나 전개방식이야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 정도면 ‘구암 허준’이 아니라 ‘사골 허준’이라 불러야겠다. 방송국 속내와는 별개로, 시청자들은 그래도 허준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아니 허준이란 인물을 참 사랑한다. 왜냐? 고생하는 의사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만큼 현실에선 이런 명의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허준은 단지 병 잘 고쳐서 존경받는 게 아니다. 환자를 정성으로 살피고, 백성을 애정으로 돌보는 그 마음이 선생을 명의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제대 의학교수인 저자가 명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면식도 없고, 국내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인문의학교실’도 들은 바 없다. 하지만 ‘몸의 역사’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등 많은 의학 및 과학 대중서적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적어도 책을 통해 일반인들이 의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환자를 짐짝 취급하며 권위만 내세우는 (일부!) 의사들보단 훨씬 나아 보인다. ‘불량 유전자는…’은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몸을 인간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자는 주제의식이 담긴 책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는 가끔 과학에 매몰돼 인간을 너무 도식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책에서도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하고, 신체는 그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다”라는 설명은 진화생물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시각이다. 하지만 현상 이해에 치중하다 보니 너무 유전자 중심으로 시각이 고정된 게 안타깝다. 결국 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간의 신체를 더 깊이 파악하려면 “늙고 병들고 아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일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인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도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을 통해 던져보는 화두다. 유전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따질 가치 기준은 없다. 그저 유전자란 개체로서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선 그토록 오랫동안 진화가 이뤄졌는데 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유전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뤄지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다. 불량 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도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왠지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나 의학과 관련된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유전학이나 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친절하게 일러준다. 문장도 딱딱하지 않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다만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지 얘기를 하다가 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줄기세포처럼 논쟁적인 주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사례로 든 이야기들도 다른 의학 역사책 등에서 조금씩 접했던 내용인지라 살짝 신선도가 떨어졌다. 책 끝자락에 보면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토버의 “과학은 사실과 가치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책도 그런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여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 조심스레 증보판을 기대해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경새재아리랑 원형 네 구절 東亞 에서 찾았다

    아리랑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문경새재아리랑에 대한 기록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새로 찾은 문경새재아리랑은 이전의 어느 기록보다 자세해 아리랑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사료로 평가된다. 경북 문경시에 있는 옛길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인 안태현 박사는 21일 “학술 문헌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 1925년 3월 16일자 기사에 문경새재아리랑 네 구절이 있는 것을 찾았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안도현 시인의 친동생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아리랑은 “聞慶(문경)새재 덕무푸레 말채쇠채로 다 나간다/聞慶새재 박달나무(檀木) 북바듸집으로 다 나간다/黃柏(황백)나무 북바듸집은 큰아기 손목이 다 녹아난다/할미성(姑母城·고모성) 꼭대기 진을 치고 倭兵丁(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의 네 구절. 동아일보는 ‘동아일보 기자 지방순례’라는 연재기사에서 문경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며 문경새재아리랑을 함께 실었다. 기사에는 “檀木(박달나무)도 亦是(역시) 만은(많은) ㅱ닭에 特(특)히 此(차·이)에 대한 民謠(민요)ㅱ지 잇다”고 전했다. 이번에 발견된 아리랑 네 구절은 그간 문경새재아리랑을 전한 어느 기록보다도 분량이 많다. 미국 선교사이자 역사학자로 항일운동에도 기여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가 1896년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아리랑을 처음으로 소개한 기록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한 구절만 실려 있다. 1910년대 ‘조선속곡집’ ‘고금잡가’나 이후 1929년 ‘조선속곡집’에도 “문경새재 박달남근 다듬이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1행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 박사는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해진 민요라 기록으로 남아 있는 자료 자체가 희귀하다”며 “동아일보 자료는 양도 풍부하고 당시 문경새재아리랑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이한 것은 192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 아리랑을 ‘박달나무 민요’라고 소개한 점이다. 당시는 아리랑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문경에 박달나무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민초들이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안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1985년 고 송영철 선생으로부터 채록한 문경새재아리랑을 보면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가네/홍두깨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질로 놀아나네/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로 날 반겨주소”라는 대목이 있어 그 원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옛길박물관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특별공동기획전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 아리랑’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독일 훔볼트대가 소장한 ‘김그레고리의 아리랑’ 유성기 음반도 국내에 처음으로 전시된다. 김그레고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에 징용됐다가 독일에 포로로 잡혀서 아리랑을 녹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시는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800∼1000원. 054-550-8365∼8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교류의 발견

    요즘 전시회를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사람들이 엄청 몰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는 겨우 한 달 지났건만 3만여 명이 다녀갔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은 누적관객 4만 명을 넘었다. 1월 25일 개막해 두 달도 채 안 됐다. 솔직히 둘 다 국내에 친숙한 작품이 많진 않은데, 안목들이 대단하다. 이런 외국과의 교류전에는 관계자들의 노고가 엄청나다. 그 나라 보물을 가져와 전시하는 일이니 신경 쓸 일이 한둘이겠는가. 19일 시작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은 담당자가 조금 과장해 5분 걸러 한 번씩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소장처인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은 물론이고 싱가포르관광청과 주한 싱가포르대사관 등 온갖 관련 부처에서 연락이 왔다. 애를 먹긴 했지만 그 적극성엔 감탄했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 인사들을 만나보면 이런 교류는 상대국마다 특색이 있다. 그 나라의 독특한 성향이 배어나온다. 미국과 영국은 일처리가 확실하기로 유명하다. 전시 노하우가 많아서인지 업무 분담도 꼼꼼하다. 진행 속도도 빠르고, 가부 결정도 명쾌해 일하기 편하다. 일본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절차는 다소 복잡하나 논리적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다만 다른 나라와 달리 직접 대면을 중시 여긴다. 관계자가 얼굴을 마주하고 신뢰를 쌓아야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선진국이라고 다 시원시원하진 않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때가 많다. 국민성 자체가 느긋해서 그런지 속도가 영 느리다. e메일을 보내도 한참 뒤에야 답을 한다. 관계자를 만나러 갔는데 늦잠으로 약속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단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대도 있다. 대체로 사회주의를 겪은 나라들이 그런 경향이 짙다. 서류 작업도 많고, 기준이 애매모호해 일이 지체되는 사례가 잦다. 문제가 생겼을 때 뚜렷한 해명을 듣기도 힘들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해외교류전은 통상적으로 6개월 전에 협정서가 체결된다”며 “중국 측이 개막 1주일 전에야 사인을 하는 바람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인도도 만만찮다. 정부는 승낙했는데, 소장 박물관이 꿈쩍도 안 해 전시가 난항을 겪는 상황도 벌어진다. 사실 이런 판단은 모두 상대적이다. 외국 입장에선 한국도 장단점이 있다. 모두가 우릴 좋은 파트너로 꼽는 건 아닐 게다. 과거엔 문화후진국으로 낮춰 보기도 했으리라. 그렇기에 교류는 더 소중하다. 서로를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흐뭇한 건, 요즘 이런 전시가 상대국 제안으로 성사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미국미술이나 페라나칸도 먼저 요청해왔다. 부탁해야 전시품 보내주던 시절은 지나갔단 소리다. 교류는 우리를 살찌우는 힘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3-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싱가포르의 혼혈문화 한눈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Peranakan)’ 특별전의 문을 열었다. 페라나칸이란 ‘아이’를 뜻하는 말레이어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후손을 일컫는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는 예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해 외국인이 정착하는 사례가 많았다. 중국이나 아랍, 인도 남성들이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면서 독특한 공동체가 형성된 것. 페라나칸 남성은 ‘바바’, 페라나칸 여성은 ‘뇨냐’라고 불렀다. 전시회는 페라나칸이 현지에 적응하며 이룬 독특한 문화를 조명했다. 전체 5부로 구성된 전시회에서 1, 2부는 혼례복과 ‘첫날밤’ 침실 장식품을 소개했다. 중국계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인지 형태나 색감이 중국풍이 물씬 나는 게 특징. 12일 동안 치러진다는 혼례에 쓰이는 장신구들은 화려하고 섬세해 그들의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3부 ‘뇨냐의 패션’과 4부 ‘서구화된 엘리트’는 뇨냐의 일상과 그들이 유럽문화를 수용해 변화하는 과정을 되짚는다. 20세기 싱가포르에서 사회지도층에 오른 대표적 페라나칸 가운데 한 명인 송옹시앙(1871∼1941)의 초상화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5부 ‘공예미술’은 페라나칸 특유의 자수와 구슬 세공품, 도자기 등을 전시한다. 특히 신부용으로 따로 주문 제작한다는 도자기 ‘뇨냐자기’는 대부분 핑크빛으로 화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페라나칸 혼혈문화가 사회적 편견 없이 자연스레 융화되는 과정은 현재 한국사회도 배워야 할 대목”이라고 밝혔다. 5월 19일까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려시대 수묵화 국내 첫 발견?

    《 고려시대 수묵(水墨)으로 그린 산수화로 추정되는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국 당나라 시절 시작된 수묵화는 고려시대에 전해진 뒤 조선에서 꽃을 피웠지만 지금까지 고려시대 작품은 한 점도 발견된 적이 없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한국 회화사 연구에 획기적 발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중국 랴오닝성박물관 특임연구원·48)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12∼14세기에 그려진 고려 수묵 산수화 ‘독화로사도(獨畵鷺5圖)’를 찾았다”며 실물을 공개했다. 》이 그림은 가로세로 54×75cm 크기로 기암절벽 사이로 곳곳에 나무들이 우거진 가운데 촌락을 이룬 가옥들이 있고, 맨 앞에 쇠백로 한 마리가 외다리로 우두커니 서 있다. 오른쪽 상단엔 화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시구가 있고, 왼쪽 하단엔 소장가로 보이는 ‘유하노인(柳下老人)’ 명의로 “퇴경화사(退耕畵師)에게 그림과 시를 부탁해 보물로 삼았다”는 발문이 있다.○ “이규보 시문집 소개된 그림과 일치” 이 전 교수는 “2010년 3월 개인 소장품인 이 그림을 발견하고 3년 동안 연구한 끝에 고려시대 수묵화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는 우선 고려 문신이자 학자인 이규보(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에 등장하는 그림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온상인이란 승려가 소장한 독화로사도를 보고 쓴 이규보의 시에는 “…강호의 기절한 경치를 그렸으면/어째서 어부와 사공이 왕래하며 노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이미 백로의 뜻을 이룬 모습을 그렸으면/어째서 물고기와 게가 출몰하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라고 독화로사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 풍경과 형식도 중국 회화와는 차이가 난다. 일단 그림 가운데 위치한 움막집 12채는 중국 그림에 나오는 누각 형식의 가옥들과 생김새가 다르다. 12세기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열두어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집 크기는 서까래 2개를 넘지 않았다”고 밝힌 고려 촌락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발견 당시의 족자 형태도 상단이 하단보다 길고 장식의 일종인 경연(驚燕)을 사용한 중국식과 달리 상·하단 길이가 일정하고 경연도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은제도금타출신선무늬 향합’에 독화로사도와 같은 족자 형태가 등장한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조선 그림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증거도 나온다. 조선 전기 대표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발견되는 태점(苔點)이 독화로사도에는 보이질 않는다. 태점이란 산이나 바위에 난 이끼 등을 표현할 때 쓰는 작은 점. 몽유도원도보다 시대가 앞서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머리 뒤 깃털 2개가 길게 달린 쇠백로 한 마리도 눈여겨봐야 한다. 쇠백로는 12세기 초반 금나라 시절 도자기 베개에 즐겨 그리던 소재로 중국에선 북송 문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한다. 바위나 나무의 묘사는 북송시대 문인이자 화가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와 서화가 미불(米(불,비,패)·1051∼1107)의 표현 방식과 닮아 조선 회화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또 그림에 소장가가 글을 써 넣는 것은 12, 13세기 남송에서 유행하던 방식이다. 고려 예술계가 당대 주류로 인정받던 송나라 화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전 교수는 주간동아에 연재하는 칼럼 ‘예술과 천기누설’(18일 발행)에도 이런 내용을 실었다.○ “가능성 높지만 명확한 고증 거쳐야” 하지만 독화로사도가 고려시대 산수화로 인정되기까지는 논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교수가 심혈을 기울였지만 아직 국내외 학계의 명확한 고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탄소연대측정 등 과학적 검증도 필요하다. 그림 공개 뒤 접촉한 전문가들이 “고려 산수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실명 공개를 꺼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학자는 “고려 산수화가 발견된 것 자체는 학술적 가치가 크나 실물을 보지 않아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다만 그림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고, 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아니어서 예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 전 교수는 “향후 정식으로 요청받으면 학계에서도 당당하게 검증받겠다”고 말했다.정양환·구가인 기자 ray@donga.com}

    • 2013-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일제강점기 궁중의 일본회화 3점 첫 공개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이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이 소장하던 일본 회화 3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박물관 지하 1층 왕실 회화실에서 ‘일제강점기 궁중의 일본 회화’를 주제로 병풍으로 만들어진 일본 회화 3점을 전시한다”고 밝혔다. 공개되는 작품들은 일본 화가 시미즈 도운(1869∼1929 추정)이 그린 매, 곰 그림 2점과 일본 전통 연극 노(能)의 한 장면을 자수로 놓은 작자 미상 그림 1점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한 1905∼1915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화가들은 주로 조선총독부 의뢰를 받아 궁중에서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이나 장식화 등을 그렸다. 시미즈 씨는 당시 한반도에 설립됐던 미술 강습소 교육을 위해 내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은 “특히 세 그림 모두 기존에 왕실 장식 병풍에 쓰던 소재와 전혀 다르고 일본 색채가 매우 강하다”며 “도화서 화원들이 맡았던 업무를 일본 화가 손에 넘긴 것은 조선 식민화를 공고히 하려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박물관은 궁중장식용 회화와 기록화, 흥선대원군 등 왕실 인물들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회화와 서예 작품 등을 수록한 도록 ‘궁중서화Ⅰ’도 최근 발간했다. 도록에는 보물 제1442호로 지정된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 병풍’을 비롯해 일월오봉도 모란도 십장생도 등 의례용 그림도 다수 실렸다. 왕실 회화의 전통은 물론이고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궁중 회화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문사회]“배트맨, 왜 쫄쫄이 입니?” 철학자가 묻는다

    ‘히스 레저(1979∼2008)를 기억하며.’ 아아, 다 필요 없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등장하는 헌사.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차고 넘친다. 21세기 제임스 딘 반열에 오른 레저에게 바친다는데, 그럼 됐다. 서평 끝. 안타깝다. 이러쿵저러쿵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이 소개 글은 더 읽을 필요 없다. 배트맨을 좋아한다면 조커가 그립다면, 여기서 멈추고 책을 보시라. 하긴 배트맨은 개뿔, 슈퍼맨도 지겹다 하는 분도 있겠다. 그럼 이 책, 눈길도 주지 마시라. 이미 눈치 챘겠지만, ‘배트맨과 철학’은 전공서적이다. 배트맨대학 덕후(일본어 오타쿠·은둔형 외톨이에서 유래된 말)학과 학부생쯤은 돼야 읽는 맛이 제대로다. 영화 한두 편 봤거나 옛 TV 만화의 아련한 추억 정도론 접근이 상당히 난해하다. 물론 누구라도 책을 씹어 먹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번역을 고교생들이 했다. 우리도 한글은 읽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물론이고 국내에 들어온 배트맨 그래픽노블 정도는 다 독파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례가 가득하다. 삼킬 순 있으나 목구멍에 자주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배트맨과 철학’은 평소 배트맨 애독(청)자들이 가졌던 철학적 혼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책이다. 배트맨은 왜 그렇게 당하고도 끝끝내 악당들을 살려둘까(영화에선 잘 죽인다). 갑부인 브루스 웨인이 뭐가 아쉬워서 불법 자경단이 되어 밤거리를 배회할까. 허구한 날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결국엔 다시 쫄쫄이를 입는 이유가 뭘까. 친절하게도 미국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철학 종교학 윤리학(심지어 물리학까지) 교수와 박사들이 이런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잠깐 고급스러운 척하자. 배트맨은 명백히 대중문화 상품이지만, 중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심도 깊은 텍스트다. 실례, 뱉고 나니 감당이 안 된다. 그냥 얜 좀 다르다. 거미에 물린 적도 없고, 친부모가 하늘을 나는 외계인도 아니다. 엄청난 재산과 뼈를 깎는 육체적 단련을 빼면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다. ‘똘끼’는 충만하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목숨을 잃은 뒤 눈이 뒤집혔다. 초등학생쯤 되는 애가 복수도 아니고, 평생 악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곤 영웅도 범죄자도 아닌 ‘다크 나이트(Dark Knight·어둠의 기사)’로 산다. 분명 나쁜 놈 같진 않은데, 애들한테 “본받으라”고 권하긴 머뭇거려진다. 만화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이런 모호한 경계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배트맨과 철학’이 명쾌한 해답을 주리라 기대하진 말자. 알잖은가. 철학이 언제 우리 등을 시원하게 긁어준 적이 있던가. 그래도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꽤나 편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어질어질한 철학이 수북하지만, 결론은 배트맨이 몇 가지 결점은 있을지언정 옹호 가능한 캐릭터라고 쓰윽 손을 들어준다. 안쓰럽긴 해도 악플 달릴 정도는 아니란 거다. 하긴, 배트맨도 슈퍼맨처럼 ‘우리의 친구’ 아닌가. 다만 이 책은 사공이 너무 많다. 저자가 너무 많다 보니 꼭지마다 문장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가벼웠다 무거웠다 쉬웠다 어려웠다 하는데 전혀 리드미컬하지 않다. 이는 결코 고등학생 4명이 번역을 나눠 맡았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원문은 보지 않았지만, 웬만한 번역가보다 훨씬 애쓴 티가 난다. 감수자 말대로 ‘미덕적’ 같은 부자연스러운 대목도 있지만, 왜 그걸 살렸는지도 수긍이 간다. 하나 더, 돈 좀 들더라도 영화 스틸 컷이나 관련 만화를 군데군데 넣어 줬더라면. 그리 정색 안 해도 철학책인 줄 다 아는데. 냉소 어린 히스 레저 얼굴이 보고팠건만. 어찌 그리 야박하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장-차관급 외청장 18명 인사]4대 권력기관장 영호남 출신 全無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신임 검찰총장에 채동욱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국세청장에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경찰청장에 이성한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명하는 등 18개 외청장 인사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주요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민형종 조달청장(현 조달청 차장), 김영민 특허청장(현 특허청 차장) 등 18명 중 9명이 내부 승진이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현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1998년 금감원 설립 이후 내부 승진으로 금감원장에 오른 첫 사례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전문성을 중시했으며 주무부에서 청장이 내려왔던 것을 최소화하고 내부 차장을 적극 승진 발령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주무부에서 청장으로 간 경우는 백운찬 관세청장(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이용걸 방위사업청장(현 국방부 차관), 이양호 농촌진흥청장(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등 3명이다. 황철주 전 벤처기업협회장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첫 중소기업청장으로 임명됐다. ‘손톱 밑 가시’로 대표되는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총장의 경우 다른 외청장들과 별도로 인선을 발표해 권력기관장으로서 대우를 해주던 관례를 깨고 이날 다른 외청장 인사와 함께 발표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개혁의 신호탄 아니냐”며 긴장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 권력기관장 ‘빅4’ 서울 3명-대전 1명… 지역안배 없어 ▼■ 靑 “채 후보, 군산에 선산” 궁색 해명… 경찰청장 임기보장 공약 뒤집어, 임기 남은 감사원장도 교체 가능성출신 지역을 보면 영남이 9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충청 4명, 호남과 서울이 각각 2명, 경기 1명이었다. 특히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에는 이례적으로 영·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고, 서울 3명, 대전 1명(국세청장)이었다. 호남 출신 중용 등의 지역 안배는 없었던 셈이다. 윤 대변인은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검찰총장 인선 배경의 하나는 지역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며 “채 후보자는 서울 출생이지만 아버지가 5대 종손이고 선산이 전북 군산에 있다”고 말했다. 또 “(채 후보자가) 매년 선산을 다니면서 그 지역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도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궁색한 설명이란 지적이 나왔다. 채 후보자는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법조인 대관에도 출신지가 서울로 기재돼 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윤 대변인의 발언은 궤변과 변명에 불과하다. 지역 안배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경찰청장 2년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지난해 5월 임명된 김기용 경찰청장을 이날 교체했다. 윤 대변인은 경찰청장 교체 배경으로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새롭게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오늘 발표하게 됐다”고만 했다. 전날 오후 10시경 갑자기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위원들에게 소집 연락을 한 점이나 ‘약속’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뒤집으면서까지 경찰청장을 갑자기 교체하게 된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임기 2년 보장 약속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4대 악 척결이라는 국정철학 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경찰청장 교체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기가 남아 유임이 예상돼 온 감사원장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해 교체 가능성을 열어뒀다. ▼ 백운찬 관세청장 ▼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 재산소비세정책관, 세제실장 등 조세와 관련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세제 전문가. 세제실장으로 일하면서 재벌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국선도를 10년 이상 수련했다. △경남 하동(57) △진주고 △동아대 법학과, 서울시립대 세무학 박사 △행정고시 24회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 ▼ 박형수 통계청장 ▼한국은행 출신으로 2001년부터 한국조세연구원에서 재정, 예산 분야를 연구한 재정 전문가. 역대 최연소 통계청장이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맡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전남 화순(46) △광주 동신고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은행 조사국 △한국조세연구원 예산분석센터장, 연구기획본부장 ▼ 이용걸 방위사업청장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예산·재정 분야 전문가다. 뛰어난 기획력과 꼼꼼한 일처리가 장점. 국방부 차관 재직 시 저렴하고 질 좋은 민간제품을 군수품으로 채택해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56)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23회 △기획예산처 재정운용기획관 △기획재정부 2차관 △국방부 차관 ▼ 변영섭 문화재청장 ▼조선시대 회화를 전공한 미술사학자로 사상 첫 여성 문화재청장이란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평소엔 털털한 성격이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호에 적극적이다. △경북 봉화(62) △안동여고 △이화여대 사학과 박사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미술사학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 신원섭 산림청장 ▼충북대에서 20년간 강단에 섰으며 산림휴양관리 전문가로 산림치유사업단장 등 실무 경험도 많다. 부드러운 성격에 소통이 능하다. ‘숲으로 가는 건강 여행’ ‘치유의 숲’ 등 저서를 냈다. △충북 진천(54) △청주 운호고 △충북대 임학과 △캐나다 뉴브런즈윅대 석사 △토론토대 박사 △세계산림의학회 부회장 △한국산림휴양학회장 ▼ 이일수 기상청장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88년 과학기술처 행정사무관에 특채된 뒤 2007년 기상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머감각이 있고 친화력이 뛰어나 기상청 출신이 아닌데도 인기가 높다. 외국인 기상전문가 영입 등 기상청 혁신 업무를 주도했다. △부산(57) △기장종합고 △공사 29기 △과학기술부 총무과장 △기상청 기획조정관, 차장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행정고시 출신으로 법제처에서 근무하다 1997년 해경에 경정으로 특채됐다. 해적 퇴치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국내 첫 ‘해적 박사’로 국제해양법의 전문가다. 기획통으로 제주지방해경청과 평택, 창원해경서 신설을 주도했다. △경남 하동(48) △진주 동명고 △한양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37회 △해경 기획과장 △남해지방해경청장, 기획조정관 ▼ 민형종 조달청장 ▼공직 입문 후 32년간 외길을 걸어온 조달정책 전문 관료. 조달청장에 내부 출신이 임명된 건 1997년 이후 16년 만이다. 전자조달 체계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영암(55) △광주 제일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24회 △서울지방조달청장 △부산지방조달청장 △조달청 차장, 기획조정관 ▼ 박창명 병무청장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주로 야전에서 근무한 작전통이다. 후방 지역의 민관군 통합방위작전 경험이 풍부해 병역자원 관리와 예비군 동원 업무에 밝다는 점이 발탁 배경으로 꼽힌다. 작년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국방안보추진단에서 활동했다. △경남 사천(63) △마산고 △경상대 △학군 12기 △36사단장 △9군단장 △육군 1군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대 총장 ▼ 남상호 소방방재청장 ▼소방방재청을 떠난 지 8년 만에 청장으로 복귀했다. 1980년 소방간부후보생 2기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소방이론과 실무에 모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온화한 성품으로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충북 괴산(60) △청주상고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충남대 행정대학원 석사 △행정자치부 소방국장 △한국소방검정공사 사장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대우교수 ▼ 이양호 농촌진흥청장 ▼농림부에서 기획 인사 공보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성격이 온화해 부하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높다. 차관 승진 유력 후보였지만 영남대 선배인 이동필 장관이 취임함에 따라 외청장으로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북 구미(54) △영남고 △영남대 행정학과 △행시 26회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 식품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 김영민 특허청장 ▼공직에 입문한 뒤 30여 년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특허청에서 근무하며 산업정책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국장 때는 지식재산기본법 제정의 기초를 닦았다. △경북 상주(55) △함창고 △경북대 행정학과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정책학 석사 △행정고시 25회 △산업자원부 기획예산담당관 △지식경제부 통상협력정책관 △특허청 차장 ▼ 이충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7급 공무원 출신으로 드물게 차관급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올랐다.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한국방송통신대를 다녔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택·도시계획 전문가로 개성공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경기 연천(58) △용문고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행복도시건설청 차장 ▼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재무부, 금융위원회를 거친 금융관료로 2011년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맡았다. 금감원에서 수석부원장이 곧바로 원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꼼꼼한 성격과 강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충남 예산(58) △서울고 △서울대 생물학과 △행시 25회 △재무부 이재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금융위 기획조정관 △금감원 수석부원장동정민·장원재 기자 ditto@donga.com}

    • 2013-03-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판소리 신영희씨 등 4명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

    문화재청은 14일 신영희(71) 김청만(67) 씨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김경배 씨(54)를 제29호 서도소리, 김각한 씨(56)를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보유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신 씨와 김 씨는 각각 춘향가와 고법(鼓法) 분야의 맥을 잇고 있다.}

    • 2013-03-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한말 ‘오입쟁이’ 위관 이용기 알고보니… 조선가요-요리책 쓴 재야 지식인이었다

    위관 이용기(韋觀 李用基·1870∼1933?).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위관은 한국사에서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사진 한 장 찾기 힘들 정도로 생소하다. 당시 구전되던 조선가요 1400여 편을 집대성한 ‘악부(樂府)’를 편찬한 인물임에도 별다른 연구조차 없었다. 이용기가 홀대받은 데는 크게 2가지가 작용했다. 일단 ‘오입쟁이’란 낙인이다. 민속학자 손진태 선생이 악부 원본 첫머리에 남긴 소개 글에 “풍류를 좋아하여 오입쟁이로 일생을 살았다”는 대목을 넣은 탓이다. 현대적 시각에서 바람둥이 날건달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없었다. 나머지는 첫 이유의 파장이 컸다. 그런 치가 쓴 악부니 당대에도 선입견이 컸을 터. 같은 시기 국립국악원 전신인 이왕직 아악부(李王職 雅樂部)가 간행한 ‘조선아악’ ‘가집’ 등을 베낀 서책 정도로 취급했다. 오죽하면 악부에만 실린 가요조차 ‘오입쟁이 격식’이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최근 이용기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고 학문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경숙 한성대 국문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 이용기가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재야 지식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여럿 나왔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조선어사전’ 편찬 활동이다. 계명구락부가 시작하고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이어받은 조선어사전은 일제의 탄압으로 간행 결실을 보진 못했다. 여기엔 최남선 정인보 변영로 같은 당대 유명 지식인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용기의 이름도 올라있다. 게다가 1930년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선정한 편찬원 5인에도 들어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사전 편찬 사업에 당당히 참여했던 것이다. 의외의 작품에서도 이용기를 만날 수 있다.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쓴 이도 이용기였다. 2001년 궁중음식연구원이 한글로 재발간한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도색 요리책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중 음식을 다룬 정조지(鼎俎志)를 뼈대로 서양과 중국 일본 요리법까지 총망라한 역작이다. 음식사 연구자였던 고 이성우 한양대 교수도 “전통음식에 시대의 조류를 융화시켜 온고지신의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신 교수는 이용기의 악부가 아류작이 아니란 사실도 새로이 밝혀냈다. 박성의 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장이 집필한 ‘악부연구’(1965년)에 따르면 악부는 이후 일부 추가되긴 했지만 1926년 거의 완성된 형태였다. 아악부의 가집은 그 후에 나왔다. 심지어 조선아악에는 참고 목록에 ‘이용기 악부’가 나온다. 아악부 출판물들이 거꾸로 악부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위관이 10여 년을 공들였다는 악부는 독창적인 창작물이었던 셈이다. 세 가지 사례엔 공통분모가 있다. 모두 조선의 고유한 전통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이용기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한글, 가요, 음식이란 주제에 천착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이런 저술 활동을 벌인 지식인을 어찌 오입쟁이 한마디로 단정할 수 있을까. 신 교수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풍속에 해박하고 다양한 이와 호방하게 교류한 이용기의 생애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문화 민족주의가 성장하던 20세기 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재야학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서 수집 명성 여승구 씨, 소장품 10만점 중 엄선한 1800여점 공개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화봉갤러리는 그리 화려한 전시장은 아니다. 인사동 언저리 백상빌딩 지하 1층에 자리한 갤러리는 문패를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눈 밝게 찾아간 관람객이라면 엄청난 소장 유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고서 수집으로 명성 높은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79)가 출판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달부터 본인의 컬렉션 10만여 점을 총망라하는 장기 특별전 ‘한국의 고서 1∼6’을 개최했다. 3월 ‘책으로 보는 단군 오천년’을 시작으로 △한국의 고활자(4월) △한국 문학작품 산책(5월) △한국 교과서의 역사(6월) △고문서 이야기(7월) △무속사상, 불경·성경·도교·동학 자료(8월)를 6개월 동안 6회에 걸쳐 진행한다. 전시마다 소장품 가운데 엄선한 고서 및 자료 300여 점을 공개할 계획이다. 전시회 포문을 여는 ‘책으로 보는 단군 오천년’은 제목 그대로 단군부터 반만년 이어진 한반도 역사가 담긴 고서들을 만날 수 있다. 단군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삼국유사’ 가운데 국보 306-2호로 지정된 정덕본(正德本)과 같은 판본의 일부와 단군 역사를 언급한 조선시대 고서 ‘동국사략’ ‘응제시’ ‘동사찬요’도 전시된다.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신궁건축지’에서는 최초로 인쇄된 단군 그림이 실려 있다. 이후 역사를 다룬 고서에서도 눈여겨볼 전시품이 많다. 여 대표가 처음 공개하는 ‘좌명공신녹권’ 필사본은 조선 태종이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뒤 자신을 도운 공신 47명을 선정해 포상한 기록을 담은 문서다. 지금까지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1469호 ‘마천록 좌명공신녹권’(장흥마씨중앙종회 소유)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왔다. 이순신 장군의 유고집 ‘이충무공전서’와 순조의 관서지역 시찰기인 ‘서순행일기’, 죽산 조봉암의 친필서명 정치논집도 놓치면 아쉽다. ‘정조대왕 마니아’로 유명한 그가 소장한 정조 시절 간행 서책도 빼놓을 수 없다. 정조가 경서에 담긴 좋은 문장을 직접 골랐다는 ‘어정제권(御定諸圈)’은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희귀본이다. 정조의 수택본(手澤本)인 ‘어제천자문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세운 묘(廟·경모궁)와 묘(墓·영우원)에 대한 의식 절차를 담은 ‘궁원의’도 전시했다. 여 대표는 “언젠가 국립고서박물관이 세워지면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02-737-0057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울산바위 등 ‘설악산 10경’ 명승으로 지정

    비룡폭포 계곡, 울산바위 등 ‘설악산 10경’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名勝)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11일 “설악산국립공원에 있는 10곳을 명승 제95∼104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명승이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이나 관상 측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지정문화재를 일컫는다. 명승 제1호는 1970년 지정한 강원 오대산국립공원에 있는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다. 문화재청은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설악산은 전체가 천연보호구역(1994년 지정)으로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중 특별히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난 외설악 5곳과 내설악 5곳을 명승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지정된 명승은 제95호부터 순서대로 ①비룡폭포 계곡 일원 ②토왕성폭포 ③대승폭포 ④십이선녀탕 일원 ⑤수렴동·구곡담 계곡 일원 ⑥비선대와 천불동 계곡 일원 ⑦용아장성 ⑧공룡능선 ⑨울산바위 ⑩내설악 만경대 등이다. ① ② ⑥ ⑧ ⑨는 외설악에 속하고, 나머지는 내설악에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문사회]근대 유럽 명문가는 왜 자녀들을 장기외유 시켰나

    “여행이란 젊은이에겐 교육의 일부며 연장자에겐 경험의 일부다.”(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뭐, 뻔한 얘기다. 베이컨이 했으니 있어 보이지. 그 정도쯤 다들 안다. 솔직히 여행 아닌 뭘 대입해도 교육 되고 경험이 쌓인다. 그래도 여행은 가슴이 뛴다. 여유만 있다면 마다할 리 없다. 더구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쪼들려도 무리를 한다. 유람이건 연수건 상관없다. 내 자식 경험 키우는 거라면 빚이라도 낼 판이다. 근대 유럽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책 제목이기도 한 ‘그랜드 투어’란 젊은이들이 교육을 목적으로 장기간 해외를 돌던 풍습을 말한다. 특히 17세기 영국에선 이런 여행을 안 가면 상류층 대접 받기도 힘들었단다. 보통 2∼3년씩 당시 문화선진국으로 꼽히던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체류하며 경험을 쌓았다.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18세기 후반부터는 일반 시민도 유행에 꽤 동참했다. 물론 대중교통이 보편화된 뒤였지만. 사실 그랜드 투어는 서민에겐 꿈도 꾸기 힘든 여행이다. 당시 외국에서 몇 년씩 머물 여유를 누구나 부리겠는가. 속을 들여다보면 더하다. 몸종에 보디가드, 안내인까지 거느리고 흥청망청 사치하는 재력을 감당할 부모는 극소수다. 영국 사상가 존 로크는 파리에서 첨단 패션을 좇아 하도 옷을 사 입다가 빈털터리가 됐다는 대목도 나온다. 가난했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은 부자 친구 가족을 따라 늦은 나이에 겨우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안하무인이던 상류층 자제들이 부모 슬하를 벗어났으니 방종도 많았던가 보다. 쾌락에 빠져 병을 얻거나 거액의 도박 빚을 지는 일이 허다했다. 외국어와 문화 배우라고 보냈더니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사고치는 일도 빈번했다. 여성 시인 메리 워틀리 몬터규는 “젊은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얼마나 타락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요즘 언론에서 자주 문제 삼는 ‘조기교육의 폐해’쯤 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런 잡음에도 그랜드 투어는 긍정적인 측면이 컸다. 만사 편하게 살던 ‘우물 안 개구리’들이 큰 세상을 겪어보는 건 큰 경험이다. 해외 인사들과 교류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도 미래의 자산이 됐다. 사실 그랜드 투어는 교육 커리큘럼이 꽤 탄탄했다. 그 나라의 인문학 수업을 듣고, 예술 체육 등을 익히는 과정이 즐비했다. 당시 영국 공교육은 ‘개판 5분 전’이었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옥스퍼드조차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픈 부모에게 그랜드 투어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이 책은 참 근사하다. 소재 자체도 신선하고, 당시 유럽 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책에 들인 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료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오밀조밀 잘 엮어 읽는 맛도 풍부하다. 국내 저자가 이런 주제를 책으로 엮어 내다니, 감히 ‘별 ★★★★☆’를 드리고 싶다. 다만 별 반 개를 덜 드린 건 저자의 프롤로그 때문이다. “네 책은 어렵다”는 부모님 말씀에 받은 충격이 집필 동기라는데, 아직도 ‘먹물기’가 쫙 빠졌다고 평가하긴 어렵겠다. 조금만 더 문장이 가벼웠으면 어떨지. 책에 보면 당대 영국인들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음식 수준을 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그런 타박이 지금 두 나라 요리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진 않았을까. 그런 뜻에서 괜한 트집 한번 잡아봤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꼽은 문화재 5大 미해결 ‘콜드 케이스’

    《 ‘콜드 케이스(Cold Case)’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오랜 미해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길게는 수십 년 풀지 못하는 난제도 등장한다. 문화재도 콜드 케이스가 있다. 현재 기술로는 보존이나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다. 그렇다고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가 해결책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 문화재계 ‘CSI(과학수사대)’라 할 수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김용한)에 자문해 우리 문화재 5대 콜드 케이스를 뽑아봤다. 경주 석굴암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사례는 제외했다. 》[1]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신비한 광채 보존법 못찾아… 40년째 수장고에1973년 경북 경주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뒷가리개’는 최상급 콜드 케이스다. 40년째 뾰족한 보존처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 비단벌레 장식은 천연기념물인 비단벌레의 금빛과 초록빛이 섞인 날개로 만들어졌다. 비단벌레 날개는 은은한 광채가 아름다워 삼국시대부터 장식 재료로 사랑받았다. 일본에선 옥충(玉蟲)이라 불린다. 황남대총 말안장 장식도 비단벌레 1000마리 이상의 날개를 촘촘히 붙여 당대 최고의 공예품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장식품이 빛에 노출되거나 건조해지면 색깔이 변한다는 점. 이 때문에 현재도 빛을 차단하고 글리세린 용액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2011년 딱 사흘만 전시할 때도 어두운 조명 아래 용액에 담긴 채였다. 보존과학센터 측은 “최근 옛 방식으로 비단벌레 장식품을 복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2] 미륵사지 석탑 유리병… 풍화돼 부서진 0.04mm 조각 복원길 막막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11호로 삼국시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재다. 백제 말 무왕 대에 세워졌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때문에 석탑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에 들어있던 유리병도 백제 유리공예 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2009년 발굴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유리병은 처음부터 복원의 난제임이 직감됐던 케이스였다. 오랜 세월 공기 중 수분이 풍화작용을 일으켜 수백 개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특히 두께까지 얇아져 0.04mm에 이르는 파편도 상당했다. 보존과학센터는 영롱한 무지개 빛을 띠는 유리병을 복원하려 강화 처리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다. 지금까지 원래 형태로 짐작되는 지지물 겉면에 마개와 상반신 일부분 정도만 복원했다. 워낙 얇아진 탓에 살짝만 압력을 받아도 부서지기 쉬워 접합 자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3]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훼손 심한 10%, 밀랍 떼내는 방식 고민중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의 보물. 2124책으로 이뤄진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실록의 약 10%에 해당하는 밀랍본(蜜蠟本)이 심하게 훼손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밀랍본이란 보존을 위해 벌집에서 추출한 ‘황랍’ 성분을 종이에 입힌 책.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했던 방식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일부 서책은 종이가 눌어붙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오래도록 손상 원인을 찾지 못해 애태웠으나 조만간 해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그간 강원대 제지공학과 조병묵 교수 연구팀과 함께 모조 밀랍본을 만들어 노화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실험을 거친 결과 성분 분석에 성공했다. 밀랍본 종이가 100%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밀랍을 떼어내는 방식을 두고 다각도로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 공주 송산리 6호분 사신도… 무지한 개방에 사라지는 형상 ‘백약무효’충남 공주시 송산리에 있는 6호 고분의 백제시대 벽화 ‘사신도(四神圖)’는 희소성이 높은 문화재다. 네 방위를 맡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벽화는 주로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됐다. 백제 사신도는 6호 고분과 충남 부여군 능산리 1호 고분 두 곳뿐이다. 하지만 사신도는 현재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훼손이 심각하다. 일제강점기 사진엔 비교적 뚜렷한 형태가 보이지만 현재는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1972년 고분을 개방하면서 공기 속 유해 인자에 노출돼 안료가 퇴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출입을 막고 항온 항습장치를 가동 중이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게 아니냐는 탄식도 나오고 있다. 6호 고분은 인근 백제 무열왕릉과 함께 보기 드문 벽돌무덤 양식의 무덤. 1500년가량 이어졌던 소중한 문화유산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5] 고령 고아리 고분벽화… 퇴색된 4색 연꽃그림 최근에야 보존나서1963년 발굴된 경북 고령군 고아리 고분(사적 제165호) 벽화는 가야의 유일한 벽화로 평가받는 중요 문화재. 천장에 네 가지 색깔을 입힌 연꽃장식 그림이 유명하다. 굴식돌방무덤으로 지어진 축조양식 또한 백제의 영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역사적 자료다. 고아리 고분벽화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송산리 고분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유입된 공기로 인해 그림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측은 “무덤 벽화는 일단 한번 개방되고 나면 훼손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며 “애초 발굴 때부터 이런 점을 감안했어야 했으나 과거엔 이런 인식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지방자치단체가 보존관리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고령군은 지난해 말 각계 연구진을 꾸려 보존사업을 체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무덤을 이룬 암석과 벽화의 안료 상태를 체크하는 작업부터 이뤄져야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장수가야’… 대가야의 교두보였나 독립된 국가였나

    최근 전북 장수군에선 6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굴돼 화제를 모았다. 발굴을 담당한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 따르면 지름 20m가 넘는 대형 고분에서 마구 장식과 항아리, 목관 꺾쇠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특이한 건 고분 형태나 출토품이 대다수 가야 양식이란 점이다.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백제권역으로 인식되는 전북에서 영남 쪽에 자리한 가야의 문화유적이 나오는 건 상식 밖이다. 당시 이 지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백제 틈새를 노린 대가야의 야망인가 학계에서 진안고원이 펼쳐진 전북 진안 장수의 동부 산악지역이 가야 유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발굴 조사에서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이 가야계 ‘돌덧널무덤(석곽묘)’으로 드러난 것. 호남은 백제 또는 마한의 땅이라는 고정관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변방 들러리로 취급되던 가야가 다른 3국과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세력 확장을 꾀했던 흔적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로 보면 이 지역은 6가야 가운데 대가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가야 연맹은 초반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가 위세를 떨쳤지만, 4∼6세기엔 경북 고령에서 출원한 대가야가 맹주로 군림했다. 가야연맹은 신라와 대결하면서 백제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대가야가 전북으로 진출한 결정적 계기는 5세기 초반에 일어났다. 국력이 강성해진 신라가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면서다. 예나 지금이나 강은 국가의 주요 교통로. 강이 없으면 외부와의 교역이 불가능하다. 대가야는 낙동강 대신 이 지역 섬진강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장수지역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전북지역이 곧장 가야 땅으로 편입되진 않았다. 상당한 힘을 지녔던 토착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야도 굳이 복속시키기보단 연대를 모색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 교수는 “어느 정도 자치권을 가진 형태로 범(汎)가야 연맹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았다지만 백제는 왜 가야의 진출을 묵인했을까. 당시 백제가 한강유역에서 고구려와 겨루느라 여력이 없었다. 백제 입장에서 동부 산악지역은 거리는 가깝지만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에 둘러싸여 직접 통치가 불편했다. 대가야가 일정 지분 보장을 약속해 눈감아줬을 가능성이 높다.○ 독립국가를 꿈꿨던 가야계 소국일 수도 장수 일대가 단순히 가야 영향권에 있었던 게 아니라 하나의 독립국가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학계에선 장수와 진안을 아우르는 전북 동부 산악지역이 독자적 세력을 유지했다는 시각은 어느 정도 합의를 본 상태. 여기서 더 나아가 ‘가야계 소국’이나 ‘장수가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최근 대두하고 있다. 이 지역을 국가로 보는 근거는 엄청난 고분의 양과 규모다. 중대형고분 200여 기가 군집을 이루는 곳은 기존 가야 영역에서도 찾기 힘들다. 왕족이 아니라면 이 정도 무덤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단 설명이다. 고분에서 발견된 ‘꺾쇠’도 이를 뒷받침한다. 곽장근 군산대 사학과 교수는 “목관의 부재인 꺾쇠는 왕실 무덤에서나 발견되는 유물”이라며 “이 정도 규모와 돈을 들인 고분이라면 낮은 단계의 고대국가는 형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봉수(烽燧) 역시 중요한 근거다. 현재까지 이곳 주위에선 모두 42개의 고대 봉수 유적이 확인됐다. 봉수란 불과 연기로 소식을 전하는 통신시설로 이 지역 봉수로의 도착지가 장수다. 한 국가의 수도였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곽 교수는 “장수가야는 세력은 약했을지언정 백두대간 영호남의 핵심 관문인 육십령(六十嶺)을 차지하고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것 같다”며 “고구려에 패해 남쪽으로 물러난 백제가 6세기 후반 이곳을 점령할 때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강조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 단신]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사진전 外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다룬 사진전 ‘1825일의 첫날을 기록하다’가 3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온에서 열린다. 이승하 씨를 비롯한 사진작가 10명이 찍은 20여 점이 출품됐다. 취임식 당일은 물론이고 5일 전부터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입장료 무료. 02-733-8295■ 퀼트 작품 정기전시회… 112점 선봬한국국제퀼트협회(회장 고재숙)는 3월 1∼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V갤러리와 갤러리7에서 정기전시회를 개최한다. 퀼트는 서양에서 발달한 섬유공예지만 한국 전통의 누비옷 및 조각보와 유사해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력 5∼30년인 협회 작가의 작품 한 점씩 모두 112점을 전시한다. 서울 전시가 끝난 뒤에는 광주 대전 천안 수원에서도 순회전시를 연다. 무료. 02-561-9165■ 불교대학 대관음사 신입생 모집대구 남구 봉덕동 한국불교대학 대(大)관음사(회주 우학 스님)는 2013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다. 우학 스님은 1992년 한국불교대학의 전신인 영남불교대학 관음사를 설립해 신도들을 교육해왔다. 강의는 우학 스님의 경전 해설 등을 위주로 대구와 경산, 구미, 미국 뉴욕, 중국 칭다오 등 국내외 도량에서 진행된다. 053-474-8228}

    • 2013-0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 금요일 경주에 다녀왔다. 문화재 담당이니 짐 싸서 지방 찾는 거야 당연지사. 일이라도 천년고도를 찾아가니 마음 역시 가뿐하다. 바쁘단 핑계로 자주 못 가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길 떠날 땐 책을 꼭 챙긴다. 허세가 아니라 서평 쓰는 게 업무다보니. 기차에서 책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통은 문화재 관련 책을 집어 든다. 이번엔 달랐다. 진보정의당 소속이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담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기자로선 빵점 선택이다. 유 전 장관의 정계은퇴 선언 뒤라 책은 언론에 많이 소개됐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에 대한 언급도 다뤄졌다. 기사화할 일 없단 소리다. 근데 왜 그랬을까. 그가 어떻게 살지, 어쩌면 내가 어찌 살지 궁금했던가. 일단은 프롤로그에 꽂혔다고 해두자. “마음이 고요해진다.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50분 동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독서에 몰입한 내가 자랑스럽다.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온몸으로 번져간다.” 온전히 작품만 갖고 얘기하겠다. 이 책, 마음에 든다. 대학 시절 유 전 장관 책을 읽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원래 이리 글을 잘 썼나.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절한 단문이 참 담백하다. 책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으련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읽은 문장 하나를 인용한다. “내 책이니 내 맘대로 쓰겠다.” 아암, 그렇지. 뭣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권위나 경륜을 내세우지 않아 좋다. 분명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를 하는데 강요하질 않는다. 생업을 ‘지식소매상’이라 소개하는 저자는 하고 싶은 일에 실컷 도전해보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정치를 관두는 이유도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란다. 축구에 빠진 아들에게 선수로는 자질이 떨어지니 평론가를 권하거나, 학생운동 하다 잡혀가 자술서 쓰다 글 솜씨가 늘었다는 고백은 위트가 넘친다. 자살을 떠올리는 이에게 무얼 택하든 ‘인간의 존엄’에 가치를 두고 고민하길 당부하는 대목도 와 닿는다. 무턱대고 자살은 죄악이라 몰아붙이는 이들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물론 색안경 쓰고 보자면 한정 없다. 정계은퇴 직후 책이 나왔으니 상업성이 짙다. ‘직업으로서’는 관뒀다고 하나, OO으로서의 정치인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백수 된 마당에 돈 벌어야지. 말 바꾸면 그때 가서 감당하면 된다. 성급히 재단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하나, 스스로 소매상이라 부르니 ‘정보도매상 직원’으로서 한 말씀 올린다. 유 전 장관께선 이제 결코 ‘동네 점빵’ 주인이 될 수 없다. 뭘 해도 세간의 관심을 끌 거란 소리다. 사상 성향 상관없이, 지금 이 땅엔 ‘멋진’ 어른이 한 명이라도 아쉽다. 후생(後生)에게 보낸 응원 메시지, 그대로 돌려드린다. 본인이 설파한 대로 맘껏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시라”. 기왕이면 근사하게.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3-0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도마뱀이 물 위를 두 발로 달리는 까닭은?

    “자연 속 먹이사슬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 본질을 너무 평면적으로 접근한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포식자는 그저 사냥하고, 먹이가 되는 생물은 수동적으로 잡아먹히기만 하는 줄 안다. 하지만 그 현장을 들여다보면 먹고 먹히는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목숨을 건 치열한 암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관장 최재천)에서 열리는 특별기획전 ‘생물의 방어’는 이런 점에 주목했다. 포식자와 잡아먹히는 피식자의 공격과 방어가 생물의 진화 속에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25일 오후 찾은 전시전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피식자의 경이로운 본능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었다. 최 관장은 “피식자와 포식자의 사투는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진화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방어를 위해 냄새를 내뿜는 스컹크나 몸을 부풀리는 복어는 이미 많이 알려진 동물. 바실리스크도마뱀은 평소 네 발로 걷다가 위급 상황이면 두 발로 물 위를 달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태평양 심해 환형동물인 스위마는 몸에 발광물질 주머니를 달고 다니다 이를 터뜨려 포식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납작등놀래기나 쥐며느리알락나방은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시안화수소를 뿜는다. 식물도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는다. 옥수수는 테르펜이란 화학물질로 기생벌을 유혹해 자신을 갉아먹는 불나방애벌레를 퇴치한다. 포획에 실패하면 굶어야 하는 포식자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강한 힘과 빠른 속도만이 사냥의 묘미가 아니었다. 노란점호박돔은 조개를 입에 물고 바위에 탁탁 쳐서 깨는 ‘지혜’를 가졌다. 수염수리는 딱딱한 딱지 속 거북을 잡아먹기 위해 물고 하늘로 올라가 땅에 떨어뜨려 부순다. 이번 전시는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생명과학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만든 배려가 돋보인다. 서수연 학예연구원은 “아이들이 컴퓨터 터치스크린 게임을 통해 과학 상식을 배우는 e러닝 시스템과 애니메이션 영상물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11월 30일까지. 일요일, 공휴일 휴관. 입장료 무료. 02-3277-4700, nhm.ewha.ac.kr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자연과학]풀만 먹고 사는게 과연 해결책일까

    너무너무 반갑다. 솔직해지자. 요즘 주위에 은근히 채식주의자가 많다. 그들과 겸상하면 식도락(樂)은 식도애(哀)가 되곤 했다. 당위성마저 밥상에 오르면 더 골치 아프다. ‘생명의 존엄’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데 채식에 문제가 있다니. 앗싸, 대놓고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저자는 진짜 ‘배신’을 때린다. 물론 이 책, 채식의 문제점을 샅샅이 지적한다. 그렇다고 결코 육식을 옹호하진 않는단 소리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혀의 현혹에 사로잡힌 평범한 우리네는 맨 하바리이다. 어쩌란 거야, 젠장. 지지 철회.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저자는 뭐하는 사람인가. 환경운동가니 페미니스트니 거창한 이력은 관심 없다. 16세부터 20년 넘게 ‘비건(vegan)’으로 살아왔단다. 비건은 우유 같은 동물성 식품조차 거부하는 극단적 채식주의자. 농사도 직접 지어 자급자족을 실천했다. 근데 2009년쯤부터 다시 고기를 먹었다. 왜? 채식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채식의 배신’이 혁파하려는 채식주의의 함정은 무엇인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가장 먼저 도덕적 맹점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채식엔 다른 생물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이 깔려 있다. 여기에 저자는 ‘돌직구’를 날린다. 그럼 당신네가 선호하는 곡물을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지 아는가. 옥수수가 영글려면 동물의 뼈와 살과 분뇨가 필요하다. 질소와 무기질, 인은 경작에 필수 요소니까. 대안이 없냐고? 화학비료는 더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다. 특히 쌀과 밀 같은 주요 농작물은 대부분 일년초로 해마다 땅을 갈아엎는다. 저자가 “농업이야말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종 청소’ 수준의 범죄”라고 말하는 이유다. 정치적 근거도 희박하다.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얻으려 낭비되는 에너지와 비용을 비난한다.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려면 곡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야 하노라 목청 높인다. 그러나 저자가 볼 때 곡물은 ‘줄기에 달린 화석연료’와 다름없다. 대형화 기계화된 농업에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가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영양학적으로 채식이 우월하단 것도 환상이다. 저자는 채식으로 퇴행성 관절 질환과 저혈당증, 우울증을 얻었다. 거짓말 같다고? 채식주의자들이 만병통치약처럼 받드는 콩을 보자. 책에 따르면 프랑스는 분유에 콩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넣지 말라고 명령했다. 갑상샘 기능을 저해하는 탓이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콩이 유방암 발생률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저자의 공격은 신랄하지만 설득력 높다. 20여 년 동안 자신이 그렇게 살아봤기 때문이다. 영양적 불균형을 몸으로 겪었고, 스스로 밭을 일구며 농업의 폐해를 목도했다. 저자라고 긴 세월 믿어 의심치 않던 채식의 권능을 저버리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수록 절망적이었단다. 그런 이가 하는 말이니 구구절절 와 닿는다. 다만 너무 주장이 앞서가는 분위기는 아쉽다. 인구가 넘치니 아이를 갖지 말자거나 차를 더이상 몰지 말자는 결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좀 차분하게 학술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말도 강요로 느껴지면 거부감부터 생기는 게 인지상정. 살살 꼬드기는 묘미가 있었더라면. 하긴, 배신당하고 냉정하기가 어디 쉬울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본보 김남준 기자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박문홍)는 제137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동아일보 김남준 기자(사진)의 ‘원칙 朴정부에 반칙 헌재소장?’(종합부문) 등 4편을 선정해 21일 발표했다. 종합부문은 김 기자와 함께 헤럴드경제 유재훈 기자(당신도 이 자리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까?), 경제·사회부문은 아시아경제 권수연 차장(삼양식품, 하얀 국물 빨간 국물), 피처부문은 경인일보 김휘만 기자(첨단·스타일 타고 온 신의 한수)가 수상했다.}

    • 2013-0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