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수묵화 국내 첫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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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8일 0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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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품 감정전문가 이동천씨 ‘독화로사도’ 공개

고려시대 수묵 산수화로 추정되는 ‘독화로사도’. 가로세로 54×75cm 크기로 앞에는 쇠백로, 가운데는 산수, 왼쪽 뒤로 섬들이 배치된 ‘삼분할 구도’로 그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기법이다. 이동천 전 교수 제공
고려시대 수묵 산수화로 추정되는 ‘독화로사도’. 가로세로 54×75cm 크기로 앞에는 쇠백로, 가운데는 산수, 왼쪽 뒤로 섬들이 배치된 ‘삼분할 구도’로 그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기법이다. 이동천 전 교수 제공
《 고려시대 수묵(水墨)으로 그린 산수화로 추정되는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국 당나라 시절 시작된 수묵화는 고려시대에 전해진 뒤 조선에서 꽃을 피웠지만 지금까지 고려시대 작품은 한 점도 발견된 적이 없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한국 회화사 연구에 획기적 발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중국 랴오닝성박물관 특임연구원·48)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12∼14세기에 그려진 고려 수묵 산수화 ‘독화로사도(獨畵鷺5圖)’를 찾았다”며 실물을 공개했다. 》

이 그림은 가로세로 54×75cm 크기로 기암절벽 사이로 곳곳에 나무들이 우거진 가운데 촌락을 이룬 가옥들이 있고, 맨 앞에 쇠백로 한 마리가 외다리로 우두커니 서 있다. 오른쪽 상단엔 화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시구가 있고, 왼쪽 하단엔 소장가로 보이는 ‘유하노인(柳下老人)’ 명의로 “퇴경화사(退耕畵師)에게 그림과 시를 부탁해 보물로 삼았다”는 발문이 있다.

○ “이규보 시문집 소개된 그림과 일치”

이 전 교수는 “2010년 3월 개인 소장품인 이 그림을 발견하고 3년 동안 연구한 끝에 고려시대 수묵화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는 우선 고려 문신이자 학자인 이규보(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에 등장하는 그림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온상인이란 승려가 소장한 독화로사도를 보고 쓴 이규보의 시에는 “…강호의 기절한 경치를 그렸으면/어째서 어부와 사공이 왕래하며 노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이미 백로의 뜻을 이룬 모습을 그렸으면/어째서 물고기와 게가 출몰하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라고 독화로사도를 묘사하고 있다.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가 15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독화로사도 실물을 공개하고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가 15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독화로사도 실물을 공개하고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림 속 풍경과 형식도 중국 회화와는 차이가 난다. 일단 그림 가운데 위치한 움막집 12채는 중국 그림에 나오는 누각 형식의 가옥들과 생김새가 다르다. 12세기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열두어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집 크기는 서까래 2개를 넘지 않았다”고 밝힌 고려 촌락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발견 당시의 족자 형태도 상단이 하단보다 길고 장식의 일종인 경연(驚燕)을 사용한 중국식과 달리 상·하단 길이가 일정하고 경연도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은제도금타출신선무늬 향합’에 독화로사도와 같은 족자 형태가 등장한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조선 그림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증거도 나온다. 조선 전기 대표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발견되는 태점(苔點)이 독화로사도에는 보이질 않는다. 태점이란 산이나 바위에 난 이끼 등을 표현할 때 쓰는 작은 점. 몽유도원도보다 시대가 앞서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머리 뒤 깃털 2개가 길게 달린 쇠백로 한 마리도 눈여겨봐야 한다. 쇠백로는 12세기 초반 금나라 시절 도자기 베개에 즐겨 그리던 소재로 중국에선 북송 문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한다.

바위나 나무의 묘사는 북송시대 문인이자 화가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와 서화가 미불(米(불,비,패)·1051∼1107)의 표현 방식과 닮아 조선 회화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또 그림에 소장가가 글을 써 넣는 것은 12, 13세기 남송에서 유행하던 방식이다. 고려 예술계가 당대 주류로 인정받던 송나라 화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전 교수는 주간동아에 연재하는 칼럼 ‘예술과 천기누설’(18일 발행)에도 이런 내용을 실었다.

○ “가능성 높지만 명확한 고증 거쳐야”

하지만 독화로사도가 고려시대 산수화로 인정되기까지는 논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교수가 심혈을 기울였지만 아직 국내외 학계의 명확한 고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탄소연대측정 등 과학적 검증도 필요하다. 그림 공개 뒤 접촉한 전문가들이 “고려 산수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실명 공개를 꺼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학자는 “고려 산수화가 발견된 것 자체는 학술적 가치가 크나 실물을 보지 않아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다만 그림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고, 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아니어서 예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 전 교수는 “향후 정식으로 요청받으면 학계에서도 당당하게 검증받겠다”고 말했다.

정양환·구가인 기자 ray@donga.com
#고려시대#수묵화#도화로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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