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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출간된 책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는 제목부터 참 의미심장했다. 누구나 놀고 싶지 일하는 게 좋을까 싶다가도, 만족스러운 이도 있을 텐데 너무 일반화시켰단 반감도 생겼다. 어쨌든 노동이 버거웠던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터. 혹 극복할 방도만 있다면야 책 100권이라도 읽겠다. 얼른 주사 한 방이 필요했지만, 책은 청진기부터 갖다댄다. 독일 여성 철학자인 저자는 문제의 근원을 성과주의에 물든 사회에서 찾는다. 정부와 사회조직, 그리고 구성원 스스로조차 일중독을 장려하기 때문이란다. 책은 이를 ‘향락 노동’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노동은 결코 쾌락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현대 인류는 노동이 자아실현을 이룰 행복의 수단이란 집단최면에 걸려 일에 몰두한다. 이런 자가당착이 인간을 우울하게 만드는 쳇바퀴가 되는 셈이다. 살짝 현학적이나 상당히 수긍이 간다. 주위를 둘러보자. 일 잘한단 소리 듣는 사람들, 근사하긴 한데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고 사는 것 같진 않다. 스스로 선택했지만 자기 시간을 희생하고 억제하는 데 익숙하다. 저자는 이를 ‘강박적인 사랑’과 비슷하다고 봤다. 계속해서 뭔가를 갈구하고 인정받길 원하며. 육체적 정신적 혹사를 오르가슴 비슷한 훈장으로 받아들인다. 뭐, 아닌 사람도 있다.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남한테 책임 전가하는 이가 왜 없겠나. 하지만 그들조차 ‘능력자’로 대접받으려 하지 밀려나길 바라진 않는다. 결국 책이 제시하는 처방전은 이렇다. 내려놓아라. 적극적인 과로가 존경받는 사회적 편견부터 바꾸자. 권태와 게으름에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건 성과사회를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만 들고 판다고 매번 아이디어가 샘솟던가. 때론 편안한 수다가, 가끔은 멍한 사색이, 이따금 목적 없는 휴식이 더 매력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노동이 우울하지 않으려면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수영이 하고 싶은가. 그럼 일단 가만히 몸에 힘을 빼야 물에 뜨는 법을 배운다. 요즘은 대체휴일제가 꽤나 논란인가 보다. 잘못 도입하면 최대 32조 원까지 손실이 생긴다니 심사숙고하잔 의견에 동의한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비용절감에 밤잠 설치는 중소기업들은 더욱 걱정스럽겠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보자. 경영자님들, 이 고통분담 함께하는 거 맞죠. 직원들은 별 보며 일하는데, 분식회계나 저질러 뒤로 사욕만 채우는 수장들은 이 땅엔 없으니까. 휴일 늘리지 않아도 수당 덜 받아도, 분명 너도나도 신나서 출근하는 직장 만들려 애쓰고 계실 게 분명하다. 아, 우리의 노동은 우울할 틈이 없다. 대체휴일제도 내려놓자. 평일에 슬쩍슬쩍 놀면 되잖나.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는 책이 있다. 해리 포터는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회고록인지, 19금 폭로물인지는 출판사가 계약금만 5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뭐, 에릭 슈밋(정확한 표기는 이게 맞다) 구글 회장은 이 정도 반향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호령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첫 저서라니 꽤나 관심이 컸다. 그것도 구글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구글 아이디어’ 소장을 맡고 있는 제러드 코언 미국외교협회(CFR) 부선임연구원과의 공동 저작이라니. 두근두근. 머리말 첫줄부터 근사하다.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맞다. 인터넷은 참으로 요물이다. 슬금슬금 인류의 삶에 스며들더니 이젠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대처럼 커지고 복잡해지는 인터넷. 저자 말처럼 “엄청난 선(善)과 무시무시한 악(惡)의 근원”이란 두 얼굴을 지녔다. 하지만 이 위험천만한 가상환경 속에서 슈밋 회장은 새로운 미래를 목격한다. 본질적으로 무정부 상태인 방대한 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사상 초유의 관계망이 되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연결짓고 있다. 이는 결코 정보기술(IT) 선진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뒤로 여전히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았던 이라크를 보라. 음식은커녕 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그 땅에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휴대전화는 빚을 내서라도 구입했다. 연결은 이제 인류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다. 이런 욕구는 공상과학(SF) 영화를 뛰어넘거나 견줄 만큼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집 안에 앉아 홀로그램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동료들과 마주 앉은 듯 회의할 날이 머지않았다. 지난해 미국 네바다 주는 역사상 처음으로 무인자동차에 면허증을 발급해 줬다. 조만간 휴대전화가 질병을 체크하고, 안경만 쓰면 눈앞에 정보가 펼쳐지는 세상이 온다. 타임머신이나 공간이동까진 아니라도, 기술 진보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대비해야 할 일도 많다. 국가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술로 통제와 감시에 나설 게 분명하다. 시민들의 바이오메트릭(biometric·생체인증) 정보를 활용해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고 더 큰 권력을 쥐고 싶어 할 것이다. 또 그만큼 반작용도 거세지리라. 보스턴 마라톤 ‘압력밥솥 폭탄’을 보라. 인터넷 정보와 약간의 손재주만 있으면 굳이 첨단 무기를 구하지 않아도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 금융과 군사 정보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해커들의 온라인 전쟁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만큼 끔찍하다. 기업에서 보안 유지는 이윤을 내는 본질적 목적 이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저자들의 혜안은 매력적이다. 현장에서 뛰는 이들이라 그런지 별다른 미사여구를 쓰지 않는데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이런 미래가 제3세계에도 희망의 빛이 될 거란 낙관은 그다지 수긍이 가질 않는다. 물론 빈국도 디지털 기술 덕분에 살림살이가 나아질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공 좀 찬다고 모두 리오넬 메시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서구에선 축구선수 못 돼도 딴 일 하면 그만이지만, 그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 있다. 가난한 어부도 인터넷을 이용하면 물고기를 더 많이 잡고 팔 수 있단 공염불은 접어두시길. 당신들이 지금 생선 때문에 이런 글 쓴 건 아니지 않나? 서구 자본가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대한제국 자주외교의 역사가 앞당겨졌다. 지난해 102년 만에 우리 품에 돌아온 옛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잃어버린 3년’을 다시 찾았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25일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가 소장한 자료를 통해 워싱턴 로건서클 역사지구에 있는 공사관 개설 시점이 1891년(고종 28년)이 아니라 3년 가까이 앞선 1889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간 정부와 학계는 1891년 12월 1일을 ‘대조선주차 미국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의 개설일로 삼아왔다. 대한제국이 당시로선 거금인 2만5000달러에 건물을 매입했다는 건물 등기서류의 이전 날짜였다. 주차는 주재를, 화성돈은 워싱턴을 뜻한다. 하지만 재단은 이번 현지조사에서 공사관 운영이 이보다 훨씬 앞섰음을 증명하는 미국 국무부 공문을 찾았다. 당시 T F 베이야드 미국 국무장관이 이하영 서리전권공사에게 1889년 2월 13일자로 보낸 공문엔 “워싱턴의 조선(Corea) 공사관 공식 주소를 이곳으로 확정했음을 통보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사관이 이름만 내건 게 아니라 다양한 외교 활동을 벌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문서도 함께 발견됐다. 당시 현지 정치외교계 인사를 초청한 연회가 몇 차례 열렸는데,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여사도 참석했다. 당시 프랜시스 여사가 외국 공사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어서 현지 언론도 크게 보도했다. 1888년 첫 공사관으로 썼던 ‘피서옥(皮瑞屋)’ 터도 새롭게 확인했다. 피서옥은 고종 어의였던 호러스 알렌(1858∼1932)의 친구 V H 피셔가 소유해 지어진 이름이다. 그간 존재는 알려져 왔으나 정확한 위치는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600년 동안 파묻혀 있던 신라 기마무사의 갑옷(사진)이 제 모습을 찾았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는 24일 “2009년 경주 황오동 쪽샘 지구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갑옷을 철갑 비늘을 두른 원래 형태 그대로 복원했다”고 밝혔다. 삼국시대 갑옷은 이전에도 복원된 적이 있지만 고구려 고분벽화나 조선시대 사료를 종합 유추해 만든 것이라 온전한 실물 복원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신라 갑옷은 출토 당시 보존 상태가 좋아 원형을 100%에 가깝게 되살린 첫 사례가 됐다. 이번에 공개된 비늘갑옷은 전체가 투구와 목가리개, 몸통가리개로 이뤄져 있다. 출토된 갑옷의 쇠로 만들어진 소찰(小札·비늘처럼 촘촘히 달린 가죽이나 쇳조각)만 1249개로 수습 자체도 쉽지 않았다. 연구소는 소찰 하나하나 번호를 매겨 일일이 정리한 뒤 먼저 3D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했다. 이후 조금씩 다른 모양을 지닌 소찰을 일일이 다시 만들어 출토품과 똑같은 배열로 갑옷을 지었다. 재현에 쓰인 소찰은 모두 1270개. 3년간 공들인 끝에 실제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되살린 셈이다. 완성된 갑옷은 그 생김새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과 전혀 달랐다. 일단 목가리개가 목에서 얼굴 쪽으로 목을 감싸듯 안으로 휘어져 있다. 이전에 확인된 삼국시대 갑옷은 반대로 마치 나팔이 입을 벌린 것처럼 바깥으로 퍼지는 형태였다. 몸통가리개도 특이하다. 이전 갑옷들은 허리 부분 소찰의 단면이 평평하거나 살짝 불룩했는데, 신라 갑옷은 요(凹)자처럼 안으로 움푹 들어간 모습이었다. 상반신 앞부분도 이전 것들은 가운데에서 여미게 제작되어 있는데 비해 신라 갑옷은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 여미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복원에 참여한 황수진 연구원은 “원래 고위 무사의 갑옷은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옷’이기 때문에 주문자 요구에 따라 조금씩 모습이 다를 수 있지만 이 갑옷은 이전의 발굴이나 연구에서 비슷한 유형도 찾을 수 없어 가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1차 갑옷 복원을 마무리한 연구소는 현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팔다리 가리개도 이른 시일 내에 완성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무사갑옷과 함께 출토됐던 ‘말 갑옷’도 정리를 서둘러 전쟁에 나서는 기마무사의 갑옷 전체를 완성할 계획이다. 류 소장은 “이전에 옛 가야지역에서 출토됐던 갑옷과 비교 연구해 학술적인 성과도 얻으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착하고 성스럽고 문무를 겸비했다.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지혜롭고 인자하다. 엉큼하면서 날래고 세차면서도 사나우니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연암 박지원·1737∼1805) 연암이 극찬한 것은 선비나 장수가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수천 년 영물(靈物)로 사랑받아 온 호랑이다. 조선시대까지 산신령이자 수호신으로 추앙받던 이 땅의 아이콘. 그들은 왜 한반도에서 사라졌을까.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그간 국내외 학계는 호랑이가 멸종된 주된 이유로 일제강점기 해수구제(害獸驅除·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을 없앤다) 정책을 꼽아왔다. 대표적인 한반도 호랑이 연구가인 엔도 기미오 일본 야조회(野鳥會) 명예회장도 1986년 저서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에서 당시 무분별한 포획을 핵심 요인으로 봤다. 당시 일제는 농지 개간과 짐승가죽 획득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 이를 위해 호랑이를 비롯한 범, 늑대 사냥을 방조 혹은 장려하면서 조선의 야생 생태계가 망가졌다는 시각이다. 일제의 횡포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이보다 병자호란 전후에 발생한 ‘우역(牛疫·바이러스로 발생하는 소의 전염병)’을 더 결정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호랑이 사학자’로 알려진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의 김동진 인문학술이사(47·전 서울대 BK연구교수)는 “17세기 중국 심양에서 발생한 우역이 기근과 겹치며 호랑이가 조선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일제의 남획을 원인으로 꼽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마구잡이로 사냥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 총독부 자료를 보면 1919∼1924년 포획한 호랑이는 65마리였다. 1년에 10마리 안팎인데, 상당수 중국 러시아와 맞닿은 함경도(40마리)에서 잡혔다. 이는 이전 시대와 비교하면 그 수가 너무 적다. 17세기 병자호란 직전 상황을 살펴보자. 1633년 무안 현감이던 신집(申楫·1580∼1639)이 올린 보고서에는 각 군현이 해마다 호랑이 가죽 3장을 바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전국에 군현이 330여 개였음을 감안해 단순 계산하면 1년에 약 1000마리를 잡았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유지할 만큼 호랑이 개체는 넉넉했다. 10 대 1000. 이 엄청난 간극을 만든 원흉이 바로 우역이었다고 김 이사는 진단했다. 인조실록(仁祖實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소현세자가 쓴 심양장계(瀋陽狀啓)를 보면 우역이 어떻게 조선에 퍼졌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인조 14년(1636년) 청나라 심양에서 발생한 우역은 8월 평안도에서 처음 발견됐다. 같은 해 12월 병자호란이 한반도를 휩쓰는데 이때 우역도 전국으로 퍼졌다. “한양에 소가 한 마리도 없다”거나 “소가 멸종할 처지에 놓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후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까지 겹치며 한반도의 곤궁은 절정에 다다랐다. 국토의 황폐화는 당연히 호랑이 생존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호랑이가 잡아먹는 사슴의 급감이었다. 소와 같은 우제류(偶蹄類·짝발굽동물)인 사슴에게도 우역은 치명적이었다. 주요 먹잇감을 잃은 호랑이의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대기근에 빠진 백성들이 산림을 파헤치고 화전을 일궜다. 호랑이는 영역과 사냥감 모두 난관에 봉착했다. 이로 인해 호랑이는 안타깝게도 최악의 선택에 빠진다. 백주 대낮에도 인가를 침입해 해를 끼치는 사고가 훨씬 잦아졌다. 결국 민관은 이전까진 나라에 바칠 때나 나서던 호랑이 사냥에 총력을 쏟기 시작했다. 이런 삼중고가 겹치며 호랑이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남은 개체들도 한반도를 떠나 시베리아 등지로 영역을 옮겨갔다. 호된 시련을 겪으며 호랑이는 18세기에 이미 희귀동물로 전락했다. 영조 4년(1728년) 왕실은 호랑이 가죽을 국가에 바치던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잡히지도 않는 호랑이 탓에 백성들의 고충만 막대하다는 판단이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우역이란 돌멩이가 일으킨 파문이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휩쓸어버리는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김 이사는 “병자호란 전후에 전파된 우역은 국가의 근간을 바꾸는 괴력을 발휘했다”며 “이때 호랑이는 대부분 사라졌고 겨우 명맥만 유지했는데 일제가 숨통을 끊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이달 말 한국역사연구회와 대한의사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1일 문을 연 경남 양산시 양산유물전시관(관장 신용철)이 개관 기념 특별기획전 ‘양산의 보물’을 개최한다. ‘양산(梁山)을 지명으로 정한(定名) 600주년’을 맞아 개관한 양산유물전시관은 7년간 준비한 끝에 양산 지역에서 출토되거나 전승된 유물 450여 점을 관람객에게 선보인다. 특히 양산의 보물 특별전은 이 지역 역사와 문화를 담은 국가지정문화재 21건을 포함해 총 50여 점의 유물을 선별해 소개한다. 특별전에서는 중국미술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승려 사명당의 영정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때 도난당했던 통도사의 불사리를 되찾고 관음전을 재건해 양산과 인연이 깊다. 현재 영정 30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번에 공개되는 영정은 대구 동화사 영정(1786년경)과 함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사라진 조선 태종의 어보(御寶·임금의 의례용 도장)가 찍힌 ‘양산 이씨 종손가 고문서’, 통도사가 소장한 화엄탱화(보물 제1352호) 등도 함께 전시된다. 상설전시유물 가운데서도 볼 것이 많다. ‘금제조족(金製鳥足)’은 북정동 금조총에서 발굴된 유물로 금으로 만든 새 다리다. 새가 영혼을 인도한다고 믿는 북방 유목민의 전통이 이어진 증거로 한강 이남에선 유일하게 발견됐다. 1979년 유산동에서 발굴된 반가사유상은 미세한 손동작과 부드러운 옷 주름으로 탁월한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고분실 중앙에 실제 크기로 재현한 양산의 대표적 고분 ‘부부총’도 둘러볼 만하다. 신 관장은 “1413년 양주(梁州)에서 양산으로 이름을 바꾼 지 600년이 되는 해에 종합박물관이 들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유서 깊은 양산의 역사를 알리는 데 정성을 쏟겠다”고 말했다. 문의는 홈페이지(museum.yangsan.go.kr)나 전화(055-392-3313)로 하면 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음이 울적한 날. 길을 가다 홀로 핀 들꽃을 마주쳤다 치자. 저 꽃도 나처럼 서글퍼 보이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뜬금없는 질문. 식물도 슬픔을 느낄까. 농부가 수확물을 자식에 빗대긴 하지만 사실 과학적으로 이런 의인화는 ‘참’이 될 수 없다. 무 자르듯 단정 짓고 싶진 않지만 식물은 감정도 지능도 없다. 왜? 중추신경계가 없으니까. 다시 말해 “몸 전체의 정보를 조정하는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 제목인 ‘식물은 알고 있다’는 출발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식물이 인식할 수 있는가는 지능이나 감정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인식이란 표현이 다소 거창하긴 하다. 하지만 식물이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생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이는 외부 자극을 인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식물은 보고, 냄새를 맡는다. 심지어 듣고 느끼기도 한다. 위치를 파악하고, 과거 정보를 기억하기도 한다. 뭐야? 뇌가 없다더니 웬만한 건 다 하잖아? 그렇다. 식물은 인간과는 다른 계통과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지 돌덩어리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계통과 방식’이다. 예를 들어 후각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은 당연히 코로 향기를 맡는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누군가 방귀를 뀌었다고 하자. 그러면 외부로 향을 유발하는 작은 화학물질(분자)이 퍼진다. 공기 흐름을 타고 당신에게로 분자가 이동하면 코 속 특정 수용체(세포)가 이를 감지한다. 그러면 뇌가 이 자극을 받아들여 반응한다. “으이그, 냄새∼!” 당연히 식물은 코도 뇌도 없다. 하지만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대의 데이비드 로데스와 고든 오리언스라는 학자에 따르면 서양흰버들이란 식물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화학혼합물을 배출한다. 그러면 인근에 있던 서양흰버들의 잎에는 이를 감지하고 애벌레가 싫어하는 페놀성 화학성분이 급속도로 늘어난다. 즉, 공격당한 식물이 이를 경고하는 냄새를 풍기면 옆에 있던 동료 식물이 이를 맡고 방어체계를 갖춘다는 얘기다. 어떤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식물도 분명 냄새를 인식하는 셈이다. 과학책치곤 상당히 가벼운 책이다. 두께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분량이 아니고, 문장 역시 크게 버겁지 않다. 그렇다고 내용이 결코 허술하지는 않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최신 과학정보를 살뜰히 전달한다. 식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푹 빠져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꽃이나 나무라면 제 몸처럼 애지중지하는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인간과는 다른’ 진짜 식물의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랑한다면 알고 싶지 않은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에서 전해진 조선의 민요.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 시대 연호) 시대부터 일본에서도 불리기 시작했다. 종류가 다양하나 ‘아리랑 아라리요’란 후렴구가 들어 있다.”(일본 고지엔 사전) 아리랑은 한반도의 혼이 담긴 가락이다. 한국인이라면 완창은 몰라도 누구나 읊조릴 수 있다. 머나먼 타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핏줄이 이어진 곳에선 아리랑도 살아남았다. 그 끈끈함이 지난해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 등재도 이뤄냈으리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과 정선아리랑연구소(소장 진용선)가 공동 주최하는 해외 순회전 ‘아리랑 로드’는 이러한 발자취를 되짚기 위한 시도다. 세계 곳곳에 한민족이 뿌리내린 땅을 찾아 아리랑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이 전시는 5월 2일 일본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뒤 7월 도쿄 한국문화원으로 이어지고, 2014년 미국과 2015년 러시아에서도 진행된다. 향후 한국인 입양아가 많은 프랑스와 덴마크에서도 순회전을 열 계획이다. ‘아리랑-The Soul of Korea(한국의 혼)’라 명명된 오사카 전시는 6월 11일까지 열린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다양한 아리랑 음원과 관련 생활용품 393점을 소개한다. 배우 겸 가수로 활동했던 김연실이 1932년 부른 일본 빅타레코드 ‘아르렁’ 음반과 1931년 고바야시 지오코(小林千代子)가 부른 음반이 눈길을 끈다. 고바야시의 노래는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부른 최초의 아리랑 음반이다. 조선에서 전해진 조선의 민요가 일본에 어떻게 전파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시기간에 다양한 아리랑 공연도 전시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오사카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특별연구전시에 해당하는 ‘재일한인-아리랑은 내 삶의 존재 이유’. 민속박물관은 이 전시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수십 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아리랑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응답자들의 반응은 가슴 한편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아리랑은 하나의 음악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철우 씨는 아리랑이 준 문화적 충격을 떠올렸다.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을 자주 아리랑이라고 불렀다. 어릴 땐 그런 호칭이 차별로 느껴져 분하기도 했는데 스무 살 무렵 아리랑을 듣고 온몸이 떨렸다고 한다. 한국말조차 할 줄 몰랐건만 ‘우리 노래’란 걸 그의 심장이 느낀 것이다. 이후 ‘코리아음악연구소’를 차려 평생 아리랑 연구에 매진한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이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부인회에서 55년 동안 일한 최금분 씨(83)에게 아리랑은 아련한 추억과 같은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얼큰하게 취하시면 언제나 아리랑을 불렀다. 그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아리랑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노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 씨의 남편에게 아리랑은 고향이었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리랑을 흥얼거리다 한숨을 내쉬곤 했다. 오사카에 사는 최갑신 씨(69)는 아리랑 덕분에 고향 친척들과 인연을 맺었다. 5년 전 아버지가 부르던 밀양아리랑이 줄곧 마음에 남아 경남 밀양을 방문했다가, 부친의 고향인 경북 영덕 친척들과 연락이 닿았다. 핏줄과 대화하고 싶어 한글도 다시 배웠다. 이젠 명절이면 당연한 듯 한국을 방문한다. 재일교포에게 아리랑은 희망이자 긍지였다. 극심한 차별에 자살을 결심했던 한 여성은 아리랑의 아름다운 선율에 자부심을 되찾았다. 도쿄 요양소에서 만난 한인 봉사자는 사경을 헤매던 노파가 아리랑 가락에 정신을 되찾았다는 기적을 들려줬다. 이역만리에서 각기 다른 풍파를 겪고 있지만 아리랑은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동아줄이었다. 현지 조사를 책임진 이건욱 학예연구사는 “재일교포에게 아리랑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이산·離散)의 구심점”이라며 “이 전시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신명나는 아리랑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가 수십만 점에 이르는 신라 기와의 분류 체계와 용어 통일화에 나선다. 문화재연구소는 최근 경북 경주시 경주출토유물보관동 세미나실에서 학술심포지엄 ‘신라 기와 조사현황과 향후 연구방향 검토’를 열고 현재의 유물 관리 시스템, 자료 활용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국립경주박물관과 동국대 등 국내외 학자 수십 명이 모여 신라 기와의 조사연구 과제에 대해 다각도로 토론했다. 발표자들은 모두 현재 신라 기와의 용어와 구분 체계가 학자나 연구마다 상이해 지속적인 연구발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신라 기와인 연화문수막새조차 현재 4, 5가지 분류 기준이 혼재하고 있다. 노윤상 동국대 경주캠퍼스박물관 학예연구원은 “그간 다양한 형식과 명칭으로 연구자 간에 혼선이 빚어졌다”며 “시기와 제작기법을 반영한 체계적 분류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수십만 점에 이르는 신라 기와를 형태나 특성에 따라 분류 기준을 세운다면 향후 연구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다양한 의견 및 제안을 종합해 올해 하반기 기와의 분류 체계에 대한 1차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류춘규 소장은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신라 기와 연구에 대한 학술세미나가 열린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며 “향후 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통일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 학자로 꼽히는 탄허(呑虛·1913∼1983)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이 문을 열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테마전 ‘한국의 큰스님 글씨-월정사의 한암과 탄허’를 6월 16일까지 상설전시관 서화관 서예실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17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탄허 탄생을 기리는 뜻에서 스님과 그의 스승인 한암(漢岩·1876∼1951)의 대표적 서예작품 80여 점을 소개한다. 독립운동가 김홍규(金洪奎)의 자제인 탄허는 젊은 시절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인물. 그러나 한암과의 문답에 감읍해 불교에 귀의한 뒤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경전 번역사업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화엄경을 우리말로 완역한 ‘신화엄경합론’은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전통 선풍을 계승한 한암은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고승. 1951년 1·4후퇴 때 오대산 상원사의 소각 위기를 온몸으로 지켜낸 일화가 유명하다. 참선을 중시했지만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연구하는 자세를 함께 갖춰야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요지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한국 불교의 중흥을 이끈 스승과 제자이나 필체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암은 단정하고 정갈해 격조 높은 선비의 글씨를 보는 듯하다. 반면 탄허의 필치는 활달하고 호방한 기세가 일품이다. 박물관은 “오대산 월정사 두 큰스님의 글씨를 비교해보고 평생 전하려 했던 가르침을 되새겨볼 기회”라고 말했다. 02-2077-9000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오광대 발길 따라 떠나는 경상남도의 문화 발자취.’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올해 경남 민속 문화의 해를 맞아 경남도청과 함께 17일부터 특별전 ‘끈질긴 삶과 신명, 경상남도’를 개최한다. 민속박물관은 경남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 262점을 기획전시실Ⅰ에서 소개한다. 특별전은 조선시대 경남에서 장터를 돌며 민속가면극을 펼쳤던 오광대패를 주제로 이들의 발길을 뒤쫓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1부 ‘물길 따라 일천리-경남의 자연 문화’는 경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바닷가의 풍경, 삶에 초점을 맞췄다. 진주와 합천, 거창 등 경남 명승지 14곳을 그린 진재 김윤겸(1711∼1775)의 ‘영남기행화첩’과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들었다는 경남 특유의 전통선박 ‘통구민 배’가 눈길을 끈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제637호 ‘가야 바퀴장식 뿔잔’도 함께 전시된다. 2부 ‘삶에서 꽃핀 경남의 공예문화’는 갓, 자개, 목가구 같은 전통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전국적 인기를 끌었던 통영반(소반)과 단아한 멋을 풍기는 마산 이층롱, 우아한 밀양 미닫이 가구를 함께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3부 ‘의기로 우뚝서다-경남의 정신문화’는 남명 조식부터 진주농민운동과 3·15 마산의거를 통해 외세와 불의에 대항하는 저항정신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꾸몄다. 마지막 4부 ‘끈질긴 삶과 신명-오광대 마당’은 전체 전시의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는 오광대를 집중 탐구했다.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추며, 대개 다섯 마당으로 구성됐다고 해서 오광대로 불리는 이 민속놀이는 통영(중요무형문화재 6호) 고성(7호) 가산(73호) 등 경남 전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된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 기간에 다음 달 4, 5일을 ‘경남의 날’로 지정하고 박물관 마당에서 오광대 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특별전이 6월 24일 마무리되고 나면, 9월 13일∼12월 1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순회전을 연다. 02-3704-311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30여 년간 한국 전통의 천연염색에 전념해온 이병찬 씨(81)의 작품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기획전시실Ⅱ에서 이 씨가 최근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과 자료 221점을 정리한 기증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를 개최하고 있다. 이 씨는 1982년부터 홀로 염색 공부를 시작해 실전(失傳)됐던 전통 천연염색법을 되살려 왔다. 그는 1990년 제15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천연염색실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별전 ‘자연을 되살리다’는 전체 3부로 구성됐다. 1부 ‘색, 스며들다’는 이 씨의 염색 입문 배경을 소개하고 공예대전 수상작들을 전시한다. 2부 ‘색, 담기다’는 그가 고문헌을 뒤져가며 전통 방식을 되찾는 노력을 담은 연구 자료와 다양한 식물 표본, 실험기록을 소개한다. 특히 식물학자인 고 이창복 선생의 도움을 얻어 직접 쪽을 키워 전통기법으로 만든 ‘쪽빛’을 찾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3부 ‘색, 발산하다’는 염색 공방을 재현해 전통 염색 과정을 보여주고, 그와 제자들의 주요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이 씨는 매주 목요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직접 염색하는 과정을 시연할 계획이다. 전시와 연계한 염색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이 씨는 올해 초 복막염으로 수술까지 받으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근 호전돼 다시 염색 연구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단절되고 쇠퇴된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 염색이지만 노력만 하면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02-3704-311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1일 정오경 울산 울주군 대곡리. 인근 사연댐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10여 분을 가니 푸른 대곡천 중류 왼편으로 암회색 암벽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最古)의 고래사냥 그림이 새겨진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한 곳이다. 직접 마주한 반구대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뭐가 새겨졌는지 쉽사리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손 그늘을 만들고 쳐다보자 겨우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와 사슴, 고래와 거북이 너울너울 바위 위로 춤을 췄다. 하지만 함께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2)는 한숨부터 쉬었다. 1971년 발견 당시보다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가운데 떼로 몰려있던 고래 떼는 흔적도 없다”며 “이런 속도라면 수십 년 내로 그림 전체를 잃을 판”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구대가 핫이슈가 됐다. ‘반구대 지킴이’로 불리던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문화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반구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 해결책 마련이 더욱 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니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았다. 이날 오후 반구대 전망대에서 벌어진 현장설명회는 그 앙금의 골을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울산시였다. 문화재청이 보존책을 설명하는 도중 박맹우 울산시장(새누리당)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한껏 격앙된 박 시장은 “울산 시민에겐 맑은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며 “문화재청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의 얼굴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 논란은 10년 넘게 이어져왔다. 반구대는 1965년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매년 여름 물이 차올라 겨울까지 강물에 잠겨 있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해왔다. 이로 인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한 의견이 분분하다가 2003년 문화재청이 보존대책연구에 착수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으나 크게 문화재청의 ‘수위 조절론’과 울산시의 ‘생태제방 설치안’이 현재 맞서고 있다. 수위 조절론은 말 그대로 하천 물높이를 낮추자는 주장.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수량을 조절해 침식을 막자는 게 골자다. 지난달 구성된 반구대암각화전담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강경환 문화재청 보존국장은 “2009년 국무총리실 조정회의에서 정한 정부 기본방침도 수위를 낮추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대곡천에서 공급하던 울산시의 식수 부족분은 다른 식수원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울산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족한 물을 채울 대안도 없이 무조건 수위를 낮출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이춘실 울산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당시 정부안에 찬성했던 것은 경북 청도군 운문댐에서 식수를 공급받는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타당성 조사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 났으므로 백지상태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울산시가 내놓은 대안이 생태제방이다. 지난해 한국수자원학회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반구대 주위로 제방을 쌓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 박 시장은 “보존하자는 마음은 울산도 매한가지”라며 “한 방식만 고수하지 말고 다양하게 검토하자”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난색을 표했다. 반구대와 대곡천 일대를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인데, 제방을 세우면 주위 경관을 망쳐 심사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 교수도 “반구대를 우물처럼 가두면 이끼가 끼어 더 심하게 훼손될 위험이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울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 최대 불교사원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이 최초로 한국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다. 해외 문화재를 국내 기술로 디지털 복원하는 것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과 베트남 후에 황성에 이어 세 번째 쾌거다. 유라시아디지털문화유산연구소(소장 박진호)는 9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의 지원을 받아 보로부두르 발굴 200주년인 2014년까지 3D 디지털 장비와 자료 고증을 통해 훼손되기 이전 사원의 원형을 가상공간에 되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관리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뒤 올해 초 당국의 협조 아래 1차 시뮬레이션 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다. 본격적인 현지 조사 및 영상화 과정은 6월 시작된다. 8세기 초반 사일렌드라 왕국이 자바 섬 욕야카르타 북쪽에 세운 보로부두르 사원(산스크리트어로 ‘언덕 위의 승방’)은 한 면이 약 123m에 이르는 정방형 9층 사원. 총 100만여 개 돌을 탑처럼 쌓아올려 높이도 34.5m가 넘는다. 층마다 불교세계를 표현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2440여 개로 한 줄로 세우면 4.4km가량이다. 832년 왕국 멸망과 함께 잊혀졌다가 1814년 이 지역을 점령한 영국의 토머스 래플스 총독에 의해 발굴돼 1991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보로부두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12세기), 미얀마의 바간(11세기)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으로 불린다. 앙코르와트는 가로 850m, 세로 1050m 외벽 안에 여러 개의 사원이 몰려 있다. 바간 역시 미얀마를 처음으로 통일한 바간 왕조의 수도로 현재 3000여 개의 탑과 사원이 분산돼 있다. 이와 달리 보로부두르는 단일 건물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7월 세계 최대 불교사원으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됐다. 보로부두르 디지털복원 프로젝트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연구소는 먼저 레이저 스캐너로 정밀한 사원의 실측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후 영화 ‘아바타’에서 사용됐던 3D 입체영상 카메라를 이용해 보로부두르의 모습을 담는다. 천재지변으로 사원이 훼손됐을 경우에 대비한 ‘디지털 보험’인 셈이다. 더 중요한 작업은 원형 복원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근에 있는 므라피 화산의 폭발로 1000년 넘게 화산재에 묻혀 있었다. 이로 인해 스투파(인도식 탑)를 장식했던 금은박이나 부조마다 형형색색 칠해 넣은 안료가 모두 사라졌다. 전체 형태 역시 변형이 심각하다. 박 소장은 “철저하게 옛 사료를 바탕으로 지금의 암회색이 아닌 찬란하고 화려한 사원의 원래 모습을 디지털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8일부터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TV프로그램마켓에 1차 작업한 3D필름 트레일러(홍보 영상)를 공개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디지털 복원하는 작업 자체가 처음인지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3D 그래픽 박람회인 ‘코리아 그래픽스 월드 2013’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박 소장은 KAIST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2006년 앙코르와트 사원과 2008년 후에 황성을 3D영상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주도했던 디지털 문화재 복원 전문가. 특히 베트남전쟁을 겪으며 거의 폐허가 됐던 후에 황성을 복원한 디지털 영상은 황성 내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되며 관광객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박 소장은 “국내에선 앙코르와트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보로부두르 역시 해마다 25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세계적 명소”라며 “여기에 한국 디지털 기술문화를 접목하면 아시아의 문화재 한류로 화제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 주말 국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는 다소 예상외였다. 경기 때마다 당연한 듯 관심이 들끓던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월요일 새벽 등판할 메이저리그 류현진이 최고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놓는 노래마다 난리 났던 SBS ‘K팝스타2’ 악동뮤지션의 우승도, 누구누구의 연애설이나 사건사고도 수위에 오르진 못했다. 이틀 내내 부동의 1위 검색어는 일본 만화 팬이 아니라면 생경할, ‘진격의 거인’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원래 진격의 거인은 2009년부터 연재한 일본 만화다. 단행본은 현재 9권까지 나왔는데 현지에서만 12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의 첫 회가 7일 일본 방송에서 전파를 탔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이 폭발적으로 열광하며 검색어 1위까지 차지한 것. 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엄청난 리뷰와 찬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 소식은 정말 반갑다. 2011년 잠깐 만화 칼럼을 쓸 때 굉장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SF(공상과학) 장르물인데, 스토리가 탄탄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린 세대가 일본 만화에 몰입한단 우려의 시선은 거두시길. 글로벌 한류 시대에 그런 잣대는 너무 편협하다. 그리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리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럼 국내외에서 진격의 거인은 왜 이리 인기일까. 워낙 액션신이 호쾌하지만, 현 시대상을 투영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에 갇혀 몸부림치는 인류. 그 모습에서 젊은이들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절망을 느낀단 얘기다. 상대를 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한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 있단 평가도 있다. 그런데 진격의 거인엔 또 다른 음울한 현실도 존재한다. 드높은 벽을 쌓아 오랫동안 거인이 뚫지 못하니 성 안에서 ‘새장 속 평화’에 안주하는 군상들이 늘어난다. 바깥에 존재하는 위험에 눈을 감고, 거인과 싸워야 할 의무는 군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막상 100년 만에 초(超)거인이 벽을 무너뜨렸을 때, 그들은 비탄에 잠긴 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요즘 외신을 보면 그들은 현재 남한의 풍경이 참 신기한 모양이다. 북쪽에서 저렇게 엄포를 놓는데 별다른 동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전쟁 억제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까. 수십 년째 듣던 소리인지라 그러려니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협박에 단련되는 것과 무뎌지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탄탄한 대비는 차선이라도 거머쥐지만, 뭉툭한 허술함은 최악을 보장한다. 그들이 거인은 아니다. 하지만 진격조차 못할 거란 예단은 금물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짜릿짜릿하다. 솔직히 그간 맘고생 많았다. 회사에선 두셋만 모여도 상사 ‘뒷담화’에 열광했다. 배우 A양 소문이 돌면 인터넷 뒤지며 눈을 번득거렸다. 하나 찝찝함도 컸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던 담배 맛 같다고나 할까. 당기는데 떳떳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어깨를 툭 쳐 준다. 멀리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사람들은 가십에 열광했단다. 인품이 고매한 귀족이나 학자 같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란다. 아, 옆 칸에서 꽁초 빨던 반장을 마주쳤을 때 이렇게 기뻤을까. “가자, 가십의 향연으로. 나와 함께 가자. 오랜 슬픔 뒤에 그런 축제가 있어야지.”(셰익스피어 ‘실수 연발’ 중에서) 말 나온 김에 가십 예찬을 펼쳐 보자. 함께 수군거린다는 건 뭔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대화는 대체로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우리끼리니까”로 물꼬를 튼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란지교인가. 타인을 제물로 정신건강도 윤택해지니 이 또한 널리 이롭다. 사회적으로도 가십은 가치가 크다. 절대 권력으로 느껴지던 지도층이나 명망가들의 진짜 얼굴을 파악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최소한 그들도 고만고만하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자괴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오호라, 그렇다면 가십은 신이 주신 선물이란 말인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에 따르면 ‘성난 초콜릿(raging waxy chocolate)’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타인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고 싶다. 가십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달짝지근한 꿀을 좇는 벌처럼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하나 더 얘기한다. 그걸 집어삼키는 순간, 입안에서 달콤했던 가십은 목구멍에서 돌변할지 모른다. 녹아내린 초콜릿 속엔 식도를 태우는 독이 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라. 사회가 발전하며 온갖 루머와 소문이 넘쳐흐른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고, 확인도 검증도 쉽지 않다. 하나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 입고, 어떤 이는 목숨도 끊는다. 하나만 자문해 보자. 킬킬거리며 벌였던 그 말잔치. 그걸 듣고 옮기는 게 그리 중차대한 일인가. 가십이 사실이라 한들 각자의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나. 가십이 자본과 결탁해 양산한 저 수많은 파파라치 부대에 꽃다발이라도 안겨야 하나. 왜 이랬다 저랬다 하나 싶지만 해답은 간명하다. ‘선’은 지키자는 소리다. 가십은 일종의 배변과 같다. 당연한 인체 활동이다. 때론 시원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하지만 과하면 탈이 나고, 아무데서나 하면 곤란하다. 벽에 × 쳐 바르면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진다. 뭐든 적당히 하라. 너무 빠져들면 언젠간 뒤통수를 치니까. 하긴 ‘우리끼리 얘긴데’ 당신이 손 털고 일어나도 가십은 여전히 활개를 칠 것이다. 어디 싸는 게 우리뿐이겠는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달 16일 영국 런던 교외 레드하우스. 대한항공 선임사무장인 차문성 씨(53)는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책이 출간되면 꼭 이곳에 오리라. 1년여 전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예술의 기계화에 반대한 영국 시인이자 사상가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살았던 붉은 벽돌집을 마주하니 1년이 아니라 온갖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건 뭔가를 이뤘단 만족감도, 털어낸 시원함도 아니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벽돌 냄새가 진득하니 배어나왔다.취미로 시작한 답사가 삶의 기쁨으로 지금이야 꽤 알려졌지만, 차 사무장이 처음부터 ‘문화재 빠꼼이’였던 건 아니다. 학부 전공도 경영학이었다. 술로 청춘을 보내는 게 싫어 우연히 사찰 답사를 쫓아갔다 마음을 뺏겼다. 홀로 공부하며 문화재를 찾아보길 몇 해. 서툴던 취미는 삶의 기쁨이 됐다. “1986년 대한항공 입사는 더 큰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습니다. 해외나 지방에 비행 갈 때마다 현지 박물관 등을 문턱이 닳게 드나들었죠. 그렇게 모은 문화재 자료가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답니다. 그때 모은 도록이나 팸플릿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에요.” 그렇게 키운 공력은 PC통신 시대를 맞아 빛을 발했다. 1990년대 천리안 문화유산답사동호회 ‘우리얼’에서 재야 고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필명이 ‘아사달’이던 차 사무장이 글을 올리면 격찬이 쏟아졌다. 오프라인에서 강의 요청까지 폭주했다. 입소문을 타고 100∼200명씩 모여들곤 했다.오종도 비-대자사 터 처음 찾아내기도 그렇다고 우리얼 활동을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건 곤란하다. 대외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와 강화도를 지킨 명나라 장수 오종도(吳宗道)의 업적을 기리는 비를 발굴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얼은 강화도 해안에 버려진 비를 찾아내 강화역사관에 보존토록 했다. 경주에 KTX 신역사가 생길 때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뭣보다 1999년 충남 아산 외암 민속마을을 지키는 과정에서 힘을 보탠 것은 차 사무장에게 커다란 긍지로 남아 있다. “당시 군부대가 민속마을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열심히 싸웠습니다. 500년 넘은 고택들을 지키려 동호인 모두가 나섰죠. 1년 넘게 대치하다 결국 이전이 철회됐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런데 그날 저녁 냉주파티 때 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죄송했죠. 손자 놈 하던 일 마무리되는 거 보고 떠나셨구나 싶어 더 마음이 아렸습니다.” 할머니 덕분이었을까. 이후 그의 문화재 사랑은 더한 깊이를 얻었다. 2008년엔 세종대왕이 불경을 안치했었다는 대자사(大慈寺) 터를 경기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다.“우리 것 아끼면 외국 것도 사랑하게 돼” 그가 지난달 출간한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성안당)은 오랜 문화재 사랑의 산물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하나하나를 꼼꼼히 되짚었던 발품을 초심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레드하우스를 다시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리스가 미술공예운동을 하며 미술을 생활 속으로 끌어왔듯이 차 사무장도 누구나 편안하게 문화재를 관람하는 안내서를 만든 것이다. “문화재는 국경이 없습니다. 우리 것을 아끼다 보면 해외 작품도 사랑하게 되죠. 이 책이 그런 길잡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짓궂은 궁금증이 피어났다. 이렇게 문화재에 빠져 살면 가족이 싫어할 텐데. 특히 부인은 섭섭해하지 않았을까. “전혀요. 최대한 같이 다녔거든요. 아이도 처음엔 불평했지만 점차 배우는 즐거움을 깨달아갔습니다. 아내요? 우리얼 필명이 ‘아사녀’였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불경을 읊조리는 목청이 더욱 높아졌다. 관광객이 하나둘 모여들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대웅전 앞을 뛰놀던 아이들조차 멈춰선 순간. 드디어 옥개석(屋蓋石·탑 위 지붕처럼 덮는 돌)이 서서히 들어올려졌다. 경북 경주시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모시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조문화재보수정비사업단은 2일 오후 국보 제21호 석가탑 2층 옥개석을 해체해 탑신(塔身)의 사리공(41×19cm) 안에 모셔진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부처의 사리와 이를 봉안하는 용기 및 기구)를 꺼냈다. 1966년 해체수리 후 재봉안됐던 석가탑 사리장엄구가 47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당시 사리공에는 사리 48과(顆)가 든 사리병과 금동제외합, 은제내합, 고려 초 석가탑을 중수한 기록이 담긴 문서가 들어있었다. 함께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로 밝혀지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보물들은 국보 제126호로 지정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2층 옥개석을 들어올리자 빛바랜 붉은색 보자기가 먼저 눈에 띄었다. 보자기를 걷어내자 사각 철제함이 보였다. 그 속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사리와 은제항아리, 목제사리병을 제외하곤 복제품이다. 은제내합 속 유리병에 모셔진 사리도 공개됐다. 오랜 세월 탓인지 검은 빛깔이었고 일부는 유리병에 눌어 붙어있었다. 불국사(주지 성타 스님) 측은 수습한 사리를 무설전(無說殿)에 모시고 사리친견법회를 열 예정이다. 석가탑은 2010년 석재 균열 등을 이유로 보수 복원이 결정된 뒤 지난해 9월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경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철학자도 나이가 든다. 하지만 저자는 애써 ‘청춘’에 매달리지 않는다. 올해 74세로 인공치아 시술을 받아야 하지만, 그 돈과 시간을 들여 그리스의 한 섬으로 떠난다. 작은 집을 하나 얻어 실컷 책을 읽고 친구를 사귀며 삶을 음미한다. 젊음을 갈구하지 말고 현재를 인생의 절정기로 여기면 행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긴 해도 마음을 챙기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는 깨달음. 부럽긴 한데, 누구나 가능할지는 확신이 안 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삼십육계?” “줄행랑.” 안다. 이런 반응 식상하다. 제목이 ‘36계학’이라고 줄행랑부터 떠올리다니. 근데 고백한다. ‘부터’가 아니라 ‘밖에’ 모르겠다. 다행인 건 포털 사이트에서 쳐봤더니 첫 연관 검색어가 줄행랑이다. 무지해 슬퍼도 외롭진 않아라. 자위하자면, 이런 반응이 영 빗나간 건 아니다. 분명 줄행랑도 서른여섯 계책에 있다. 한자로는 ‘주위상(走爲上)’. 때론 도망치는 게 최선이란 뜻이란다. 36계인 줄은 몰랐지만, 익숙한 것도 꽤 된다. 일부러 성을 비워두는 ‘공성계(空城計)’나 스스로 상처 입히는 ‘고육계(苦肉計)’, 설명이 필요 없는 ‘미인계(美人計)’…. 아, 다시 한번 다행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같은 동양권으로서 36계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이미 오랜 세월 녹아들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비즈니스 전략가인 서양인 눈엔 다른가 보다. ‘천년 비서’인 삼십육계를 연구하면 기업을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설파한다. 흠, 개똥도 약이 된다더니. 코쟁이 동양고전 해석을 들어봐서 나쁠 건 없다. 먼저 주위상을 살펴보자. 저자는 한때 쫓겨났다 ‘돌아온 천재’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경우로 꼽는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해 연구개발 아이템의 70%를 확 정리해버렸다. 당시 호평 받던 PDA(개인휴대정보기) ‘뉴턴’ 프로젝트도 단칼에 쳐냈다. 저자 해석대로라면 버겁던 싸움을 접고 도망친 셈이다. 그 뒤 새로운 전장을 개척해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강한 기업은 항복할 때를 알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전투를 선택한다”고 조언한다. 얼핏 그럴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끼워 맞춘 기분이 들까. 다른 예를 보자. 스포츠브랜드 퓨마는 1990년대 나이키나 리복과의 경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운동화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패션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업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이를 ‘격안관화(隔岸觀火)’ 전략이라 부른다. 강 건너 불구경, 즉 행동하지 않은 게 훌륭한 선택이 된 본보기란다. 하지만 이거, 주위상에 더 가깝지 않나? 문제는 그뿐 아니다. 계책마다 설명으로 붙인 중국사도 어정쩡하다. 명나라 영락제를 피해 도망친 건문제가 승려로 숨어산 것(주위상)은 정설로 인정받진 못했다. 제갈량이 사마의의 공격에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탔다는 일화(공성계)는 삼국지연의에 나온다. 소설이지 정사는 아니다. 저자도 께름칙했는지 실명 빼고 촉 재상, 명 황제라 얼버무렸다. 서양에선 넘어갈지 몰라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물론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기업 경영에 36계는 꽤 짭짤한 격언으로 간직할 만하다. 다만 이렇게도 연구가 주관적인데 함부로 ‘학(學)’이라 부르진 마시길. 차라리 원제 ‘미소 뒤에 비수를 감추라(Hide a Dagger behind a Smile)’는 담백하기나 하지. ‘소리장도(笑裏藏刀)’라. 하지만 영 미소가 머금어지질 않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