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떼가 춤을 출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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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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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보존대책 현장설명회… ‘10년 논쟁’ 의견차만 확인

11일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기자현장설명회에 불시에 찾아온 박맹우 울산시장(왼쪽 머리에 손 올린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강경환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외면하고 있다. 울주=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11일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기자현장설명회에 불시에 찾아온 박맹우 울산시장(왼쪽 머리에 손 올린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강경환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외면하고 있다. 울주=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11일 정오경 울산 울주군 대곡리. 인근 사연댐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10여 분을 가니 푸른 대곡천 중류 왼편으로 암회색 암벽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最古)의 고래사냥 그림이 새겨진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한 곳이다.

직접 마주한 반구대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뭐가 새겨졌는지 쉽사리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손 그늘을 만들고 쳐다보자 겨우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와 사슴, 고래와 거북이 너울너울 바위 위로 춤을 췄다.

하지만 함께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2)는 한숨부터 쉬었다. 1971년 발견 당시보다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가운데 떼로 몰려있던 고래 떼는 흔적도 없다”며 “이런 속도라면 수십 년 내로 그림 전체를 잃을 판”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구대가 핫이슈가 됐다. ‘반구대 지킴이’로 불리던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문화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반구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 해결책 마련이 더욱 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니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았다.

이날 오후 반구대 전망대에서 벌어진 현장설명회는 그 앙금의 골을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울산시였다. 문화재청이 보존책을 설명하는 도중 박맹우 울산시장(새누리당)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한껏 격앙된 박 시장은 “울산 시민에겐 맑은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며 “문화재청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의 얼굴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 논란은 10년 넘게 이어져왔다. 반구대는 1965년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매년 여름 물이 차올라 겨울까지 강물에 잠겨 있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해왔다. 이로 인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한 의견이 분분하다가 2003년 문화재청이 보존대책연구에 착수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으나 크게 문화재청의 ‘수위 조절론’과 울산시의 ‘생태제방 설치안’이 현재 맞서고 있다.

수위 조절론은 말 그대로 하천 물높이를 낮추자는 주장.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수량을 조절해 침식을 막자는 게 골자다. 지난달 구성된 반구대암각화전담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강경환 문화재청 보존국장은 “2009년 국무총리실 조정회의에서 정한 정부 기본방침도 수위를 낮추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대곡천에서 공급하던 울산시의 식수 부족분은 다른 식수원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울산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족한 물을 채울 대안도 없이 무조건 수위를 낮출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이춘실 울산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당시 정부안에 찬성했던 것은 경북 청도군 운문댐에서 식수를 공급받는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타당성 조사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 났으므로 백지상태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울산시가 내놓은 대안이 생태제방이다. 지난해 한국수자원학회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반구대 주위로 제방을 쌓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 박 시장은 “보존하자는 마음은 울산도 매한가지”라며 “한 방식만 고수하지 말고 다양하게 검토하자”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난색을 표했다. 반구대와 대곡천 일대를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인데, 제방을 세우면 주위 경관을 망쳐 심사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 교수도 “반구대를 우물처럼 가두면 이끼가 끼어 더 심하게 훼손될 위험이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

울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울산#반구대#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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