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동아일보는 11일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를 ‘동일본 대지진’으로 표기합니다. 동일본은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일본 동북부 주요 현을 뜻하는 도호쿠(東北) 지역과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 지역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 생각하고 싶지 않던 우려가 현실로 바뀌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마을이 초토화되고 전체 인구 1만8000명 중 60%에 이르는 1만500명가량이 실종됐던 미야기(宮城) 현 해안 마을 미나미산리쿠(南三陸)에서 14일 1000여 명이 한꺼번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미야기 현 재해대책본부는 이날 이 마을 해변에 널려 있는 시신 1000여 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신들은 폐허가 된 건물 잔해와 함께 휩쓸려 바닷가까지 밀려왔다가 바닷물이 빠지면서 잔해와 진흙을 걷어내자 갯벌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오시카(牡鹿) 반도 해안에서도 이날 시신 약 1000구가 발견됐다. 실종된 주민들이 연락만 두절됐을 뿐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미야기 현 지사도 “미야기 현에서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날 미야기 현 경찰본부장이 한 발언을 재확인했지만 미야기 현 전체가 아니라 미나미산리쿠에서만 사망자가 1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14일 오전 9시 동아일보 취재팀은 미야기 현 센다이(仙臺) 시에서 미나미산리쿠로 연결되는 센다이 고속국도에 진입했다. 그러나 경찰은 “센다이 시에서 미나미산리쿠로 가는 국도 4호선은 물이 차서 통행이 불가능하다. 다른 우회 도로가 있지만 길 및 다리가 끊어지거나 추가 지진으로 붕괴될 위험이 있어 역시 갈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전날까지는 취재진과 구조 및 구호차량에 한해 통행이 허용됐던 길이다. 전날 미나미산리쿠에 서구 언론 가운데 처음 발을 디딘 영국 채널4 뉴스의 30년 베테랑 기자 알렉스 톰슨 씨는 “과장이 아니다. 마치 1945년 8월 6일 피폭 직후의 히로시마를 찍은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세계 각지 전쟁과 무력분쟁, 주요 대지진 현장을 수십 차례 취재했다는 톰슨 기자는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이렇게 황폐화한 모습은 결코 본 적이 없다”며 몸서리를 쳤다.그가 전한 미나미산리쿠는 침묵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울음도, 분노도, 히스테리도 없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일본인답게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조용히 기다렸다. 바닷가 마을에서 내륙으로 약 6.5km 지점까지 95%가 잿더미로 변했다. 건물들은 단순히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뼈대를 이뤘던 철근은 휘었고 목재들은 톱밥처럼 변해 있었으며 벽돌과 콘크리트는 산산조각이 났다. 남아 있는 건물이라야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자위대원들이 잔해를 뒤져 시신을 찾아내 언덕 위에 있는 시즈가와 초등학교로 옮겼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덮치던 날 대피소로 쓰였던 학교 체육관은 이제 영안실로 변했다.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이 학교와 맞은편 언덕으로 7000∼8000명이 피신했다. 영어교사 사키 신지 씨는 “쓰나미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이 차를 몰거나 뛰어서 이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곧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삼키는 걸 지켜봤다”며 “당시 심정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사키 씨는 “쓰나미에 쓸려가는 집 지붕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 공무원인 다카하시 조신 씨는 14일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집 2층에 남기고 온 집이 많다. 그들은 아마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안과 가까운 곳에 있던 5층짜리 시즈가와 병원에서는 환자 110명 가운데 30명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의료진은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자마자 환자들을 들쳐 업고 3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30분 뒤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바닷물은 3층까지 차올랐다. 환자들을 등에 업고 의료진은 5층으로, 옥상으로 계속 올라갔다. 환자 9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70여 명은 쓰나미에 쓸려간 것으로 보인다. 옥상에 있던 이들은 13일 자위대 헬리콥터에 겨우 구조됐다.미나미산리쿠 행정사무소와 소방서, 경찰서도 모두 휩쓸렸다. 11일 당시 행정사무소 3층에서는 마을의 노인 100여 명이 참석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고 한다. 쓰나미가 닥치자 이들은 옥상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쓰나미는 건물 옥상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사투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토 히토미 미나미산리쿠 정장(町長·행정책임자)은 “우리 주민들은 매년 5.5m 높이의 쓰나미에 대비하는 훈련만을 했다. 이번처럼 상상을 불허하는 쓰나미가 닥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역시 겨우 목숨을 건진 마을 공무원 이와부치 다케히사 씨는 기자들에게 “부디 이곳의 참상을 알려주세요. 사람들이 아직도 폐허 밑에 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한편 이 마을 공무원인 엔도 미키 씨(25·여)는 11일 3층짜리 마을사무소 방송실에서 쓰나미가 코앞에 닥치는데도 “고지대로 대피하십시오”라는 방송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방송을 듣고 많은 주민이 목숨을 건졌지만 엔도 씨는 쓰나미에 휩쓸리고 말았다. 14일 구조대가 아무리 뒤져도 엔도 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후쿠시마=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조성원 고려대 의대 교수 성희 작곡가 성애 연세대 면역질환연구소 연구원 모친상·김명진 서울대 치과병원장 장모상·박선영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 교사 시모상=12일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921-2899}
반정부-민주화 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예멘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독가스를 쐈다고 시위대가 주장했다. AFP통신은 12일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이날 수도 사나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시위대 수십 명이 진압경찰이 쏜 가스를 맡고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기절했다고 보도했다. 현장에 있던 의사 후세인 알조샤이 씨는 “이건 절대 최루탄이 아니다.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 사람의 호흡기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독가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멘 내무부는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며 독가스 사용 주장을 일축했다. 경찰은 이날 동틀 무렵 사나 도심 ‘대학광장’에서 3주째 농성을 벌이던 시위대에 대해 무력 진압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장기화한 시위 때문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을 위한 해산 작전이었다”고 주장했다. 대학광장 말고도 이날 사나 곳곳에서 수천 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경찰 저격수의 발포로 시위대원 2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시위대는 33년째 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인류 역사상 다섯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 이날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12일 오전 3시 현재 사망자는 최소 337명, 실종자는 530여 명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교도통신은 사망자가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의 해안가에서는 교민 30여 명의 연락이 두절됐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11일 오후 2시 46분 리히터 규모 8.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에 이은 최대 높이 10m의 쓰나미가 센다이 시 등 해변 도시들을 덮치며 피해가 속출했다. 와카바야시(若林) 구 아라하마(荒濱)에서는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300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아직 전체 피해가 집계되지 않은 데다 2차, 3차 대형 쓰나미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돼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이번 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이며 1995년 6000여 명이 희생된 한신(阪神) 대지진(규모 7.3)의 180배 위력이다. 일본 기상청은 이날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연안 지역에 대(大)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12일 오전 2시 현재 도쿄를 비롯한 간토지역 일대에는 진도 3∼5의 지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진원은 미야기 현 센다이 동쪽 앞바다 130km, 후쿠시마 현 동북동쪽 178km 지점의 해저 24.4km 지점. 진원에서 가까운 미야기 현과 후쿠시마 현 이와테(巖手) 현 등 도호쿠 지방은 지진 여파로 인한 쓰나미로 바닷물이 역류해 건물이 붕괴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후쿠시마(福島) 현에서는 농업용 댐이 무너져 주민들과 주택이 휩쓸려 떠내려갔으며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내 수위가 낮아지면서 연료봉 노출로 인한 방사능 누출 위험이 대두돼 주변 3km 이내의 주민이 긴급 대피했다. 미야기 현에서는 조선소 근로자 100여 명이 작업하던 배가 쓰나미에 휩쓸려 해안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도 규모 6의 강진이 발생해 곳곳 빌딩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도쿄 인근의 지바(千葉) 현 이치하라(市原) 시에서는 코스모석유의 고압가스 플랜트가 연쇄 폭발했다. 이날 도호쿠 지방으로 향하는 신칸센 등 모든 열차는 운행이 중단됐으며 나리타, 하네다, 이바라키 공항도 모두 폐쇄됐다가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은 12일 새벽부터 일부 항공업무를 재개했다. 한편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괌 파푸아뉴기니 등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국가를 포함한 30개가 넘는 국가에도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 열도를 삼켰다. 최고 10m 높이 초대형 쓰나미가 열도를 덮치는 모습은 재난 영화 ‘해운대’의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쓰나미는 11일 진앙 인근의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 도시들을 휩쓸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이 발생한 오후 2시 46분을 기해 태평양 연안 일대에 최고 높이 6m에 육박하는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안전을 위해 높은 지역으로 대피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막대한 인명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날이 밝으면 더 많은 사망자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를 휩쓴 쓰나미는 해안선에서부터 10km 떨어진 와카바야 시 구청 건물 앞까지 치고 올라왔다. 센다이에는 이날 오후 3시 반 4m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친 데 이어 3시 55분 10m에 육박하는 쓰나미가 한 차례 더 왔다.NHK방송이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쓰나미는 2004년 인도네시아 해안에 밀어닥친 쓰나미보다 더 거대했다. 센다이와 나토리(名取) 시 인근 연안에 상륙한 쓰나미는 제방을 넘어 수십 km²에 이르는 센다이 평야를 순식간에 덮쳐 나갔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에서 암흑의 수백만 대군이 전투지를 덮쳐 오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지면에서 통째로 들어올려진 수십 채의 가옥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건물 및 도로의 잔해, 뒤집힌 채 뒤섞여 떠다니는 자동차의 모습은 ‘죽음의 검은 급류’를 보는 듯했다. 쓰나미는 고속도로용 둑을 만나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센다이 공항 활주로도 쓰나미에 덮였다. 한 공항 직원은 “한때 2m 높이까지 물이 찼다”고 말했다. 물에 잠긴 센다이 도심 주택가에서는 방송사 헬리콥터를 향해 흰 침대보를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미야기 현 이시노마키(石卷)에서는 쓰나미에 휘말려 실종된 사람이 속출했다. 지역 공무원인 겐 호시 씨(41)는 “이런 건 살면서 처음 본다”며 “해안에서 수백 m나 떨어진 기차역까지 쓰나미가 덮쳤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이시노마키 도심은 건물 1층까지 잠겼고 차들은 장난감처럼 떠다녔다. 침수된 가옥만 200∼300채가 넘었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도심은 물이 빠지고 나자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찢긴 흔적으로 마치 전쟁터 같았다. 찌그러진 차들은 건물 벽에 처박혔다.미야기 현 북쪽 이와테(巖手) 현 가마이시(釜石) 항구에는 이날 오후 3시 21분 4.1m 높이의 쓰나미가 엄습했다. 가마이시 도심을 삼킨 바닷물에는 자동차들이 둥둥 떠다녔고 창고 건물과 어선도 휩쓸려갔다.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다리로 변해 버린 고가도로 위에서는 차를 세운 운전자들이 근심 어린 눈으로 밀려드는 물살을 지켜봤다. 혼슈(本州) 북쪽 끝 아오모리(靑森) 현에서는 항구에 정박해 있다 뒤집힌 원양어선 5척이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뭍으로 올라와 가로수와 항구 인근 쇼핑가를 산산조각 냈다.센다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4m가 넘는 쓰나미가 잇따랐다. 후쿠시마(福島) 현 소마(相馬) 항에서는 이날 7.3m 높이의 쓰나미가 관측됐고, 이바라키 현 오아라이(大洗) 항에는 4.2m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쓰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쪽 해안으로 내려갔다. 기상청은 이날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서부터 최남단 오키나와(沖繩)까지 대형 또는 일반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리비아 시위 사태 시작 이래 미국 등 서방국과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간의 유일한 비공식 핫라인이었던 무사 쿠사 리비아 외교장관(사진)의 연락이 두절됐다. 쿠사 장관은 카다피 원수와 운명을 함께할 ‘순장(殉葬)조’로 불렸던 핵심 측근이다. 미국 등 서방국은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열쇠를 쿠사 장관이 쥐고 있다고 보고 유엔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 그러나 10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쿠사 장관은 지난 주말 이후 서방국과 연락이 끊겼다. 쿠사 장관이 권력 중심부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쿠사 장관은 리비아 정보국 부국장이던 1980년대 미국 팬암기 폭파 테러를 비롯해 반정부 요인 암살 등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죽음의 사자(使者)’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정보국장이던 2003년 리비아의 핵무기-대량살상무기 포기 협상을 주도하며 서방세계에 믿을 만한 카운터파트로 꼽혔다. 핵무기 포기로 서방세계를 위협할 수단을 잃은 카다피 원수가 쿠사 장관을 숙청했을 가능성과 함께 자신의 음모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잠수를 탔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부인이 1조 원대의 금괴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랍권 위성 뉴스채널인 알아라비아는 6일 카다피 원수의 두 번째 부인인 사피아 파르카시(58·사진)가 금 20t을 갖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금 20t은 현 시가로 9억2500만 달러(약 1조500억 원)어치에 이른다. 1992년 아랍권 인권단체인 ‘전범에 맞서는 국제연합(ICAWC)’은 사피아의 재산이 300억 달러(약 34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사피아는 리비아 국내외를 오갈 때 전세 제트기를 이용했다.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의 전문에 따르면 사피아는 딸 아이샤와 함께 매일 쇼핑을 다닐 정도로 쇼핑 중독이었다. 사치스러웠지만 보수적이던 사피아는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이 난잡한 파티와 여성을 밝히는 생활을 지속하자 얼굴도 잘 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경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10대 후반의 사피아는 혁명 직후 맹장수술을 받으러 온 카다피 당시 혁명지도평의회 의장과 사랑에 빠져 그해 결혼했다. 카다피는 첫 부인 파히타 알누리와 결혼한 뒤 6개월 만에 이혼해 독신이었다. 사피아는 카다피와의 사이에 6남 1녀를 뒀다.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는 부인의 동의가 있으면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이지만 카다피는 집권한 이래 이를 비판하며 따르지 않았다. 한편 영국 데일리메일은 카다피의 3남 사디가 2004년 이탈리아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뛸 때 자가용과 전용 제트기 구매, 스트립댄서 고용, 5성급 호텔 숙박 등에 1년간 3000억 원을 썼다고 전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미국의 실업률이 22개월 만에 처음으로 9% 아래로 떨어졌다. 미 노동부는 2월 실업률이 8.9%로 1월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했다고 4일 발표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9%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9.8%를 나타낸 이후 석 달 연속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9% 벽을 깨뜨렸다. 또 2월 한 달간 새로 생겨난 일자리도 19만2000개에 달했다. 1월의 6만3000개에서 200% 이상 증가한 것이다.실업률이 줄고 일자리가 대폭 증가하는 것은 미국 기업들이 고용을 확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앞으로 몇 달 더 이런 실업률 감소세가 계속된다면 미국 경제는 회복 단계에 안착한 것으로 봐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업률 하락이 중동 민주화 및 반정부 바람의 영향으로 유가가 급등하는 등의 악재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교황, 예수 죽음 ‘유대인 집단 책임론’ 처음 부인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 저서에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집단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개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예수 사형 선고에 대해 교황이 직접 유대인 집단 책임론을 부인한 것은 처음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신작 ‘나사렛 예수’에서 “사도 요한이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현대 독자들이 가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인종적 의미에서 쓴 것은 더욱 아니다”며 “예수의 죽음에 대한 진짜 책임은 유대인 전체가 아닌 당시 성전 지도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몇몇 이에게 있다”고 밝혔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둘러싼 유대인 책임론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요한복음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데려가 사형 선고를 받게 한 것처럼 묘사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21억 원짜리 바이올린, 18만 원에 팔려 했다한국 출신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진 씨(33)의 21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훔친 존 모건과 공범들이 이 바이올린을 불과 100파운드(18만 원)에 팔아치우려 했던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3일 영국 검찰에 따르면 이 10대 공범들은 지난해 11월 김 씨가 런던 유스턴역으로 가던 중 식당에서 5000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으며 전화를 하는 사이 종업원들의 시선을 따돌린 뒤 바이올린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 이튿날 일당은 시내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으로 한 남성에게 이 바이올린을 100파운드에 사라고 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범인들이 바이올린의 가치를 몰라 어이없는 액수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가 빌린 이 바이올린은 1698년에 제작된 120만 파운드(약 21억4000만 원)짜리다.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리비아 인권상황을 호평하는 보고서를 이달 중 발표하려다 뒤늦게 보류했다. UNHRC는 지난해 11월 리비아 인권상황 전반을 검토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작성된 ‘보편적 인권상황 정례검토(UPR)’ 보고서는 “리비아 정부가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했고 인권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으며 이를 위한 ‘헌법적’ 틀을 정비하는 등 인권 상황이 향상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UNHRC는 당초 3월 18일 회원국 표결을 통해 보고서를 정식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리비아의 참상이 알려지고 카다피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보고서 채택을 3일 연기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북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알제리 카타르 캐나다 등 출신의 UNHRC 대표들은 ‘리비아 시민이 받는 법적 보호 조치’에 대해 긍정적인 점수를 줬고, 특히 북한 대표는 “리비아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진보했다”는 별도의 언급까지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월 22일 오전 △배경: ‘카다피, 베네수엘라 망명설’ 퍼짐 △포인트: “나는 리비아에 있다” △복장·소도구: 비행기 조종사가 쓰는 형태의 모자·우산 △태도(말투): 1인용 골프 카트 같은 자동차에 타서 짧게 인터뷰 △연설(발언) 시간: 22초○ 2월 22일 오후 △배경: 반정부 시위, 수도 트리폴리까지 번진 위기상황 △포인트: “나는 베두인 전사로 반정부 시위에 끝까지 맞서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 순교할 것” △장소: 1986년 미군 폭격으로 무너진 채 보존된 트리폴리 자신의 전 관저 앞 △복장·소도구: 아랍 베두인족 전통 의상과 터번·그린북 △태도(말투): 불끈 쥔 주먹 쳐들고 연단 수차례 내려치는 등 격렬 △연설시간: 75분○ 2월 24일△배경: 동부 장악한 반정부 시위대, 트리폴리로 서진 예고 △포인트: “폭력을 쓰는 젊은이들은 빈라덴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며 알카에다가 이들에게 마약을 지급하고 있다” 알카에다 배후 처음 언급 △장소: 트리폴리 서쪽 자위야로 추정 △복장·소도구: 국영TV 프로그램 끊고 음성메시지 전화 연결 △태도: 횡설수설에 가까움·맥락 파악 어려움 △연설시간: 30분○ 2월 25일 △배경: 트리폴리 반정부 시위대 무차별 진압 후 △포인트: “우리는 그들(반정부 시위대)을 무찌를 것이다. 필요하면 모든 무기를 동원할 것이다. 시위대에 복수하라. 리비아를 지켜라. 석유를 지켜라” △장소: 트리폴리 녹색광장 옆 붉은성 성곽 △복장·소도구: 전투기 조종사용으로 보이는 털모자·점퍼·선글라스. 카다피 원수는 명품 루이뷔통 선글라스를 비롯해 다양한 선글라스 컬렉션 보유 △태도: 첫 대중 연설. 의기양양하게 두 손 쳐들기 수차례 △연설시간: 30분○ 3월 2일 △배경: 반정부 세력 움직임 주춤. 내전 교착 상태 △포인트: “미국이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수천 명의 리비아 국민이 죽게 될 것.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 경고. 그러나 “무기를 반납하는 시위대는 사면할 것” 양보안도 제시 △장소: 트리폴리 시내. 지지자 및 외신기자 참석 △복장·소도구: 베두인 전통 터번·숄 △태도(말투): 주먹을 쥐거나 연단 내려치지 않고 차분 △시간: 150분}
“병원에 들이닥친 보안군들이 환자들을 창밖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외곽 타주라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3일 아랍 위성채널 알자지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리폴리의 끔찍한 상황을 전했다. 지난달 25일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한 뒤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장악한 수도 트리폴리 구석구석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섰던 ‘부역자’ 색출과 보복이 한창이라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타주라는 트리폴리 중심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진 외곽으로 이번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알자지라와 인터뷰한 이 의사는 “내동댕이쳐진 환자들을 보안군이 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갔다”고 전했다. “교도소에서도 반정부 성향이 강한 죄수들은 음식을 제대로 배급받지 못해 굶주림에 허덕인다”는 증언도 나왔다. AP통신은 친정부 민병대가 사진, 비디오,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타주라 주택가를 돌면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조 확인해 체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생 두 명이 이들에게 끌려갔다는 한 남성은 “제복을 갖춰 입고 무장한 민병대원들이 차량 17대에 나눠 타고 돌아다녔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은 대문 자물쇠를 총으로 쏴 열고 들어와서는 동생들을 데려가면서 패물도 훔쳐갔다”며 “임신 6개월 된 제수씨까지 폭행을 당해 입원했다”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대 색출이 도를 더해 가면서 실종자도 늘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트리폴리 남부 카다피 국가원수 관저가 있는 바브 아지즈 요새 근처에서는 열두 살 된 소년이 등굣길에 납치되기도 했다. 시위대 체포 건수를 늘리려는 민병대의 소행으로도 보이지만 보안군을 빙자해 몸값을 노린 유괴범들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트리폴리에서는 2일 카다피 원수의 “최후까지 싸울 것”이라는 연설이 끝난 직후 친정부 시위대 수천 명이 카다피 옹호 시위를 벌였는데 참석자 중에는 보안군이 억지로 끌고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고 미국 CNN 방송은 전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국제사회까지 반정부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리비아 정권을 압박하고 있으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오히려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양새다. 민심 앞에 추풍낙엽처럼 고꾸라진 튀니지 이집트의 정권에 비해 카다피 정권은 어떻게 이렇게 질기게 버틸 수 있는 걸까.○ 강력한 친위대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모두 정규군과 정권 유지의 첨병인 친위대 성격의 군사기구를 두고 있었다. 튀니지에는 전국적으로 1만2000명의 국민방위군이, 이집트는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중앙보안대(CSF·35만 명)가 내무부 산하에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친위대는 정규군이 국민 쪽으로 등을 돌리자 그 거대한 힘 앞에 쉽게 압도됐다.두 국가의 친위대가 방대한 조직에 충성심도 느슨했다면 리비아의 친위대는 정예부대의 성격이 강하다. 11만9000여 명의 리비아 전체 병력 가운데 친위대는 1만∼1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위부대인 호위총국과 비슷한 규모다. 7남 카미스가 이끄는 32여단, 5남 무타심의 대통령경호대, 용병부대 범아프리카군단, 청년 민병대 조직 ‘혁명위원회’가 수도 트리폴리를 방어하고 있다. 반정부세력으로 이탈한 정규군도 이들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끈끈한 부족애리비아 사회를 이집트 튀니지와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은 부족 간 역학관계다. 32여단이나 대통령경호대는 모두 카다피 원수의 부족인 카다파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카다파가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카다피 원수는 1969년 쿠데타 이후 인구 100만 명을 넘는 리비아 최대 부족인 와팔라, 그리고 다음 가는 부족 마가리하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카다파와 와팔라의 관계는 ‘혈맹’이라고 불릴 정도다.이들 부족은 모두 리비아를 동서로 나누는 시드라 만 서쪽의 연안과 중부에서 발원했다. 반정부세력이 장악한 시드라 만 동쪽 지역의 부족과는 전통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들 세 부족민이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몰려 있다. 비록 지난달 21일 와팔라 원로그룹과 마가리하 일부 세력이 카다피 원수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이들 부족 전체가 카다피 원수에게 등을 돌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카다피 원수의 학정과 시민학살에도 불구하고 카다피 체제하에서 이권과 기득권을 누려온 전체 인구의 5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이들 세 부족 출신의 주민들은 반정부시위대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리비아 제재 결의안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명줄을 죌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발표된 유엔 결의안 1970호에서 카다피 정권에 실질적인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주목되는 내용은 카다피 국가원수 및 자녀 5명의 해외 자산 동결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다. ○ 자산 동결 실효성은?카다피 일가의 리비아 국내외 자산은 추정하기 쉽지 않지만 반(反)카다피 세력은 최소 800억∼최대 1500억 달러(약 90조∼169조 원)로 추정하고 있다. 이른바 ‘카다피 주식회사’로 불리는 카다피 일가는 오일머니를 통해 축적한 돈과 이를 이용해 해외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세계 각지의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카다피 일가가 집권 42년 동안 사업투자, 사치성 소비재 구매, 해외 부동산 구입 등에 쓴 돈이 대략 25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카다피 원수 및 일가의 주요 수입처는 700억 달러 규모의 리비아 국부펀드인 ‘리비아투자공사(LIA)’로 알려져 있다. LIA의 자산규모는 리비아 경제의 75%가량에 해당한다. LIA는 영국,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기업과 은행 등에 투자해왔다. 카다피 원수는 2008년 5남 한니발이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여성 종업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되자 스위스 은행 계좌에 있던 예금 약 63억 달러를 인출했다. 그의 아들들은 유럽 각지에 고급 대형저택 등을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도 둘째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이 영국에서 1500만 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7일 카다피 원수가 지난주 비밀리에 영국 런던의 개인 자산 운용가에게 30억 파운드(약 5조5000억 원)를 입금시켰다고 보도했다. 이번 자산 동결 조치로 권력 엘리트층에 지위와 함께 지급해온 물질적 급부가 줄어들게 되면 그만큼 그들의 충성도가 옅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차출해온 용병들에 대한 대가 지불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해외 자산 동결에 카다피 일가의 재산이 아닌 리비아의 석유수출대금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돈으로 카다피 일가가 더 버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카다피의 차남 알이슬람은 27일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해외에 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수수한 가족”이라고 주장했다.○ ICC 회부에 카다피 떨고 있을까이미 시민학살 등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카다피 정권이 ICC 회부라는 카드에 주춤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어떻게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각오를 더 다질 가능성이 있다.최근 카다피 원수의 차남 알이슬람이 국제 언론에 거듭 나와 민간인 사망자 수가 부풀려져 있고 전투기 폭격도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ICC의 재판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여지도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의 목소리는 때때로 흔들렸지만 눈빛은 결의에 차 있었다. “내 형제 카다피여. 홀로 리비아 국민 곁을 떠나주오”라고 말할 때 그는 단호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평생 지기(知己)인 압둘라흐만 무함마드 샬감 주유엔 리비아대사(62)는 그렇게 국민의 편에 섰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7일 이례적으로 신속히 리비아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데에는 샬감 대사의 25일 안보리 연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은 그의 연설을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규정하며 “제재결의안에 주저하던 일부 국가의 마음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입을 모았다.샬감 대사는 연설에서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자유를,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돌 하나 던지지 않았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는데도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틀러, 폴포트(크메르루주 학살 장본인)의 사례를 들며 “카다피는 이제 국민들에게 ‘나의 지배 아니면 모두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유엔이여 부디 리비아를 살려주십시오. 어떤 유혈사태도 일어나지 않게, 무고한 시민 한 명도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촉구했다.이날 안보리 결의안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내용이 포함된 데에도 그가 연설과 별도로 안보리에 보낸 서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민을 상대로 군사력 사용을 지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카다피 정권의 ICC 회부를 지지한다고 밝힌 그의 편지는 ICC 회부를 완강히 반대하던 중국 등의 고집을 꺾기에 충분한 호소력을 지녔다.6분여간의 연설을 마친 그는 연설 내내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이브라힘 다바시 부대사와 포옹했다. 반 사무총장 등도 다가와 그들을 얼싸안았다.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나는 카다피의 가장 가깝고 절친한 친구였고 혁명 초기부터 그와 같이 일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다피 원수와 같은 마을에서 어울리며 자랐으며 1969년 혁명에도 참여한 그는 2009년 유엔 대사 부임 전까지 9년간 외교장관을 지내는 등 각별한 신임을 받아왔다. 다바시 부대사를 비롯한 주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이 21일 카다피 원수를 비난하며 사임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나는 카다피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공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아랍 독재국가들을 강타한 민주화 시위 열풍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독재자 가족들의 사치와 부패행각을 하나둘 드러내주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아들들의 사치 행각이 23일 공개된 미국 국무부 전문에서 드러난 데 이어 24일 사하라 사막 남쪽 극빈국인 적도기니 독재자 아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행각도 공개됐다. 문제의 인물은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망구에(일명 테오도린·40·사진). 인구 65만 명인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69)의 장남이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음바소고 대통령은 1979년 쿠데타를 일으켜 32년째 집권하고 있다.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 최신호(3·4월호)에 따르면 인구의 80%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은 15%로 세계 최악 수준인 이 나라의 ‘황태자’ 테오도린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부자만 산다는 말리부 해안가에 현금 3000만 달러(약 330억 원)를 주고 산 저택에 산다. 영화배우 멜 깁슨,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웃이다. 테오도린의 공식 직함은 월급 5000달러의 농림부 장관이다. 그러나 벌목 허가를 받으려는 해외 기업에서 받는 ‘혁명세’ 수입이 천문학적이다. 미국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돈세탁을 해 들여온 돈이 지난해에만 1억 달러(약 1100억 원)였다. 씀씀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페라리 7대, 롤스로이스 4대, 람보르기니, 포르셰, 마이바흐 각 2대 등 최고급 명차만 40여 대가 있다. 가장 아끼는 차는 대당 가격 200만 달러(약 22억 원)인 부가티 베론. 미국의 유명 팝가수 이브를 비롯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표지모델 같은 숱한 여성들과 세계 유명 휴양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에게서 길이 100m짜리 요트를 하루 70만 달러에 빌려 즐기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한 여성들은 구치, 베르사체 등 명품매장에서 한번에 8만 달러어치를 사기도 했다. 적도기니는 2000년대 초 서부해안에서 석유가 나왔다. 사하라 남쪽에서 나이지리아, 앙골라 다음 가는 매장량을 자랑한다. 1995년 극심한 인권탄압에 진절머리를 내며 단교한 미국도 2004년 재수교했다. 이후 엑손모빌 같은 미국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포린폴리시는 “부패한 외국관료에게는 비자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미국 정부의 ‘7750 선언’이 무색할 만큼 테오도린에게 관대한 이유도 다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에 몰리고 있다. 시위 발생 9일째인 22일 일부 부족은 반기를 들고 군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으며 등을 돌리는 관료는 늘어만 간다. 카다피 원수의 42년 집권을 지탱해 온 기둥으로 그의 명운을 좌우할 주요 변수들이 요동치고 있다. ① 이반하는 부족사회 카다피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리비아의 부족이 늘고 있다. 21일 주요 부족 중 하나인 알와팔라와 동부 원유지대의 알주와야는 카다피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알진탄도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카다피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부족이 늘어나고 있다. 리비아는 크고 작은 500여 부족과 씨족으로 이뤄줬다. 이 중 강력한 10개 안팎의 부족이 군 정부 경제계 등의 요직을 나눠 갖고 있다. 리비아 국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리비아인’보다는 출신 부족에서 찾을 정도다. 따라서 주요 부족의 이반은 카다피 정권에 치명적 적신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다피 국가원수가 권력 강화 수단으로 부족 간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을 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군, 정부, 석유산업의 자리를 주요 부족들에 나눠줌으로써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따라서 주요 부족이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제쳐놓고 단합해 반카다피 전선에 나설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② 흔들리는 관료-반목하는 후계자들 21일 법무장관의 사퇴에 이어 카다피 국가원수 곁을 떠나는 주요 외교 관리들의 행렬은 22일에도 이어졌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정권의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카다피 국가원수를 비난하며 직을 떠나는 것은 리비아에 급진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 같은 현상이 카다피 신격화와 그에 대한 공포가 리비아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체제 유지의 한 축이었던 정권에 대한 국민의 공포가 더는 먹히지 않고 오히려 시위대가 카다피 국가원수를 조롱하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체제 동요는 카다피 국가원수 일족 내부의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이 있다. 7명이나 되는 카다피 국가원수 아들들의 반목은 주리비아 미국대사관에서 2009년 본부에 보낸 전문에서도 나타난다. 미 대사관은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한 아들들의 내부 투쟁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차남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알려진 사이프 알이슬람에 3남 사디, 4남 무타심, 그리고 벵가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한 군대를 이끄는 7남 카미스가 서로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이슬람이 21일 전면에 나서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일족 내부 권력다툼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미 시사주간 타임은 분석했다. ③ 이탈하는 군대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20일 군이 탱크를 시위대에 ‘헌납’한 데 이어 21일 시위대에 대한 발포명령을 받은 전투기 조종사는 항명을 했다. 독재정권의 주축인 군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은 리비아군 전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견해가 많다. 군과 경찰 등 가다피 정권의 핵심 축인 무력기구에 소속된 인원은 전체 리비아 인구 600만 명 중 11만9000명이다. 모두 합쳐 4만5000명인 군과 경찰보다는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헌신하는 비밀보안대와 혁명평의회운동, 그리고 카다피 국가원수의 아들들이 이끄는 특수부대가 무력기구의 주축이다. 이들 무력기구는 그동안 시위나 소요사태를 무력 진압하라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명령을 어겨본 적이 없다. 따라서 외신도 군을 포함한 무력기구가 이집트에서처럼 정권과 시위대의 중재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지 않는다. 코소보나 보스니아에서와 같은 대량학살을 우려하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집트 시민혁명에서 이집트군을 통해 평화적 혁명 성공을 유도한 미국은 리비아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미칠 지렛대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수년간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원조는 1070만 달러에 불과하고 군사원조는 없다. 수십 년간 숙적으로 지내와 리비아 정부 내에 별다른 끈도 없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폭력진압 중단하라” 반 총장, 카다피에 전화 ▼베네수엘라 망명설이 돌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22일 모습을 드러냈다. 리비아 국영 TV는 이날 오전 2시경 22초간 카다피 원수의 모습을 내보냈다. 그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우산을 직접 펴든 채로 “나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트리폴리에 있다. ‘길 잃은 개들(stray dogs)’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수척한 모습의 카다피는 “오늘 밤 나는 녹색광장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길 원했는데 비가 내린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고 인터뷰도 매우 짧아 장광설을 늘어놓던 예전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또한 귀덮개가 늘어진 방한모자를 눈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눌러썼고 차량 운전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였다. 앞서 카다피 원수는 21일 오후 9시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전화를 받고 40여 분간 통화했다. 반 총장은 카다피에게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카다피 원수는 “테러리스트들의 책동이며 최선을 다해 진압하겠다”고 말했으며 반 총장은 카다피에게 “국민을 보호하고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18일 중동은 환호와 분노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혁명의 진원지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하야 일주일을 맞아 수십만 명이 승리의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바레인 등 다른 중동 국가에서는 유혈충돌이 멈추지 않았다.○ 걸프 6국 시위확산 차단 골머리 전날 새벽 경찰의 기습적인 유혈진압으로 수도 마나마 거리에서 밀려난 반정부 시위대 수천 명은 이날 오전 마나마 남쪽 시트라 섬에서 열린 희생자 3명의 장례식과 이슬람 시아파 중심지인 서북부 디라즈의 모스크 등지에서 “국왕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전날 탱크를 앞세운 중무장 군인들이 장악해 사실상 계엄 상황에 처한 마나마에서는 친정부 시위대가 “국가를 보호하자”며 행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바레인 외교장관에게 17일 전화를 걸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바레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으로 구성된 지역기구인 걸프협력위원회(GCC)는 이날 외교장관회의를 열고 “걸프 국가들은 바레인의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 물결이 자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른 걸프국들이 (바레인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바레인 반정부 시위는 정권과 경제계를 장악한 이슬람 수니파 엘리트층에 오랫동안 저항해온 시아파(국민의 70%)가 주도하고 있다. 예멘은 수도 사나와 남부 항구도시 아덴 등지에서 이날 8일째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다. 사나 남쪽 타이즈 시에서는 시위대 사이에서 수류탄 한 발이 터져 2명이 죽고 27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날 희생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적어도 5명이 숨졌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 등에서도 수천 명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반면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친정부 시위대의 연호 속에 카퍼레이드를 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리비아에서는 이날까지 최대 24명이 숨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18일 현 정부를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날 시위를 예고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전날 웹사이트를 통해 “14일 시위 도중 숨진 두 명을 추모하는 시위를 (18일 대신) 20일 열자”고 알렸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 망명 중인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뇌중풍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타흐리르광장에선 축제 민주화 성지로 자리매김한 이집트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이날 수십만 명이 국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18일간 이어졌던 시민혁명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는 인구 9000만 국가의 현직 대통령이다. 몸에 딱 붙는 옷을 좋아하며 포르셰를 몰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부자다. 아직 미혼이고 여자친구가 자주 바뀐다. 지난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51) 이야기다. 요즘 필리핀 국민들이 독신 대통령의 로맨스 소식에 흠뻑 빠져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8일 전했다. 지난해 5월 대선 때 베네수엘라 출신의 TV쇼 진행자 샬라니 솔레다드와 손을 꼭 잡고 유세를 벌였던 그가 얼마 전에는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였던 리즈 우이와 교제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최근에는 한 증권거래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필리핀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대통령의 여자친구들’을 1면 톱기사로 게재하고 있다. 시민들도 트위터나 블로그에 아키노 대통령이 데이트하는 장면을 봤다는 둥, 사진을 올린다는 둥 열광적이다. 그의 앞머리가 벗겨졌다는 사실이 국민들이 낭만적 상상을 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키노 대통령은 자신의 연애에 관심을 갖는 언론을 향해 “(대통령의 사랑 이야기만 쓰면) 언론인으로서 양심에 걸리지 않겠느냐. 같은 정도의 관심을 국가 정책에도 써 달라”며 하소연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한다. 아키노 대통령은 1983년 암살당한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과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사이에서 태어났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민주화 혁명을 이룬 튀니지 은행들이 축출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대통령(사진) 일가에게 약 6억 달러(약 6700억 원)를 떼일 지경에 놓였다고 AFP통신이 17일 전했다. 튀니지 중앙은행 무스타파 카멜 나블리 총재는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벤 알리 전 대통령 집권 23년 동안 튀니지 국영 및 민간 은행에서 그와 부인, 그리고 그들 친인척에게 모두 17억6000만 달러(약 1조9700억 원)를 대출해 줬는데 이 중 담보를 잡지 않은 대출액이 약 6억 달러”라고 밝혔다. 6억 달러는 돌려받기가 힘들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은행들은 전 대통령 친인척 및 그들과 관련 있는 182개 업체에 대출을 해줬다. 특히 전체 대출금의 절반가량이 전 대통령의 두 사위가 주요 주주로 있던 이동통신회사 등 4개사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튀니지 당국은 벤 알리 전 대통령 일족이 부정 축재한 자산을 추적해 몰수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 관료들의 해외자산을 환수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미 자국 내 무바라크 일족 및 전직 관료들의 자산과 계좌를 동결한 스위스 법무부에 전직 관료들의 자산 환수를 위한 협조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