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미국의 가벼운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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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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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는 감자를 어린이 손가락 굵기로 길게 썰어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이 프렌치프라이가 ‘프리덤프라이(Freedom Fries)’로 불린 적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전쟁 개시에 반대하자 미국 하원은 건물 내 카페테리아 메뉴에서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프라이로 바꾸게 했다. 프렌치토스트는 프리덤토스트가 됐다. 미국 내 일부 식당도 이에 동참했다. 프랑스에 대한 항의이자,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했다.

▷몇 년 뒤,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던 미국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자 프리덤프라이는 슬그머니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작가 칼 크리스트먼이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리덤프라이: 그리고 손주들에게 설명해야 할 어리석은 짓거리’는 ‘프랑스를 비난하고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던 시위대의 성조기는 모두 중국제였다’고 지적했다. 애국심을 표방한 비상식적인 행동의 이면에 도사린 위선과 모순을 풍자한 것이었다.

▷지난주 미국 사회와 정치권은 중국산 옷 때문에 펄펄 끓었다. 27일 열리는 영국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미국 선수단이 입고 나올 유니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중국산 유니폼을 성토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중국산 유니폼을 모두 쌓아놓고 불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니폼을 디자인했던 미국의 고급 의류 브랜드 랄프로렌은 성명을 내고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반드시 유니폼을 미국에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랄프로렌이 디자인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미국 선수단 유니폼 역시 중국산이었다. 당시에도 그 사실이 알려졌지만 이번처럼 십자포화를 받지는 않았다. 2008년 이전 10년 동안 미국 선수단의 올림픽 유니폼 또한 미국에서 만들지 않았다. 이미 미국 의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 미국 의류업체의 제품 중 5%만이 미국 내에서 제작된다. 리드 원내대표가 일상적으로 입는 옷도 대부분 미국 밖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그가 자신의 옷도 불태울 수 있을까. 이번 논란이 ‘프리덤프라이’ 소동의 재판(再版) 같아 보이는 이유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미국#애국심#프리덤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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