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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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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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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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시장 호황에… 작년 아트페어 77개 열려

    미술시장이 최근 호황기를 맞으며 미술품 시장인 아트페어도 크게 늘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아트페어 수는 총 77개로, 전년(35개)보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신규 아트페어는 32개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올해도 이달 12일 기준 15개의 신규 아트페어가 열렸다. 지난해 시작한 신한카드의 ‘더 프리뷰’ 아트페어는 젊은 작가들의 데뷔 무대로도 유명하다. 작품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초보 컬렉터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신한카드의 ‘더 프리뷰 성수’에는 관람객 1만2000여 명이 다녀갔다. 순수예술 분야 이외 작가들의 참여도 눈여겨볼 점이다.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아트페어인 ‘어번 브레이크’는 갤러리뿐 아니라 작가나 브랜드도 참여할 수 있다. 올해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7월 21∼24일 열리며 아트토이 작가, 웹툰 작가, 타투이스트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미술에 관심 갖는 세대가 MZ세대로 넓어졌고, 다양한 정보를 통해 관객이 주목하는 작가도 많아져 아트페어 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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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와 호크니가 한 자리에…인산인해 이룬 ‘아트부산’

    약 7만2000명. 아트페어 ‘아트부산’ 측이 12일부터 14일까지 집계한 추정 방문객 수다. 아트부산은 손영희 이사장이 2012년 시작한 순수 민간 아트페어로 올해 11회 차를 맞았다. 올해 아트부산은 12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5일까지 부산시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다. 개막을 앞두고 대표이사가 해임되는 논란이 있었으나 지난해 전체 방문객 수가 8만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결과 자체로는 흥행이었다. 동기간 ‘롯데아트페어 부산’ ‘더코르소아트페어-부산’과 같은 자발적인 위성페어가 생기는 등 ‘미술품 효과’도 증명했다. ‘해외 유수 갤러리들의 진출지’라는 명성답게 올해 라인업도 화려했다. 규모 면에서는 21개국 133개(국내 101개, 해외 32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작품 중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와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았다. 이들 작품은 올해 아트부산을 통해 한국에 처음 진출하는 그레이 갤러리에서 볼 수 있었다. 피카소의 누드 인물화 ‘Tete d’homme et nu assis‘(1964년)는 50억 원대에 이르며, 호크니가 자신의 LA 스튜디오 안에서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을 담은 ’Pictures at an Exhibition‘(2018년)은 길이 8.7m로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은 한층 더 격을 높였다. 아트페어장 곳곳에는 소위 ’미술관급‘ 작가라 불리는 장 프루베, 백남준, 오스틴 리 등의 14개 특별전이 열렸다. 또 안토니 곰리, 오스틴 리, 자오자오, 강이연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관람객과 대담에 나섰으며, 세계 미술 신에서 대체불가토큰(NFT) 아트계를 개척한 전문가들이 강연도 열었다. 단순히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미술 축제로서의 위상을 강화했다는 평이다. 같은 기간 부산으로의 유입을 도운 데에는 지역 미술관들의 몫도 컸다. 부산시립미술관은 현재 몸을 주제로 20년 간 작업 활동을 한 조각가 이형구의 개인전을 비롯한 3개의 전시를 진행 중이다. 이중 10월까지 진행하는 ’나는 미술관에 ○○하러 간다‘展은 예술축제 시즌에 딱 맞는 전시다. 전시장에는 13명의 작가 작품이 놓여있는데, 이 작품 앞에서 요가, 드로잉, 명상 등을 즐길 수 있는 100여회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황서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은 뜻하지 않게 미술관에 길게 머물게 된다. 작품은 오래 볼수록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현대미술관 또한 관객주도형 전시가 눈에 띈다. 7월 17일까지 진행되는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는 획기적인 전시 형식이 돋보인다. 전시장에는 87점의 작품이 철저히 익명으로 전시돼있다.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참여 작가나 작품의 정보를 제거했을 때 작품이 어떻게 이해되고 감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마련한 전시”라고 했다. 전시장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관람객들의 직관적인 감상평을 보는 것도 이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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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따로 또 같이’ 시대에 어울리는 집이란

    밀레니얼 세대의 관계론은 ‘따로 또 같이’로 정리된다. 이른바 ‘느슨한 연대’다. 홍익대 건축도시대 교수인 저자는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타인과 어울리고자 하는 심리를 건축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책은 저자가 공유하우스 ‘맹그로브’를 설계하고 그 이후 거주자들의 삶을 분석한 관찰기다. 저자는 “기존의 공동 주거는 중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사생활을 보호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과하게 애쓰고 있었다는 것. 그가 찾은 공동주거의 해답은 ‘짧지만 잦은 스침’이다. 타인과 만나는 기쁨을 늘리되 심리적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 핵심이다. 복도 폭을 넓혀 교류의 스파크가 일도록 하고, 주방 조리대와 식탁을 직각으로 배열해 고개를 돌리면 짧게 눈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물론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은 날을 위해 라운지를 거치지 않아도 주방으로 갈 수 있는 우회로도 함께 마련했다. 공유하우스를 짓는 것이 끝은 아니었다. 저자는 거주 후 평가가 진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맹그로브에 함께 입주한 설계 디자이너 현수가 조언자 역을 맡았다. 저자는 “혼자 밥 먹고 싶을 땐 마주 보는 주방이 불편하다”는 현수의 피드백을 듣고 ‘혼밥 동굴’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이 외에도 현수는 묘하게 불편한 지점들을 잡아냈다. 일례로 공용 냉장고에 ‘n분의 1 하실 분?’이라고 적힌 계란을 나눠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덜기 위해 현수는 냉장고 안에 식재료를 자유롭게 넣고 가져갈 셰어박스를 따로 만들고 공유 일지를 쓰기도 한다. 디테일한 팁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공동주거공간에 길이가 3m인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소파와 의자가 테이블을 보도록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이 ‘공공 공간 속 개인 공간’을 느끼면서 다른 이의 표정 정도는 알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조명 하나, 의자의 높이만 살짝 바꾸어도 나와 타인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에 특히 눈길이 간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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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쪽 청각 잃고… 2교대 일하며… “내일은 뮤지컬 스타”

    “작곡가는 왜 마지막 음을 더 올렸을까요? 에너지도 다 써버렸는데….”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채널A ‘뮤지컬스타’ 촬영 현장. 뮤지컬 ‘마리 퀴리’ ‘킹 아더’의 신은경 음악감독이 뮤지컬 ‘데스노트’ 중 주인공 라이토의 넘버(노래) 시연을 막 끝낸 참가자에게 물었다. “점점 고조되는 주인공의 감정을 다음 장면에서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 같습니다.” 참가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자 신은경 감독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목소리는 충분히 완성도가 있는데…. 넘버의 음악적 구조를 본인 생각으로 분석한 게 아니라 남의 것을 카피한 느낌이라 아쉽네요. 다시 불러볼까요?” 이날 촬영에선 ‘뮤지컬스타’ 참가자 18명이 뮤지컬 연출가와 음악감독의 멘토링을 받았다. ‘뮤지컬스타’는 2015년부터 8년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개최해 온 뮤지컬 배우 발굴 프로젝트로, 채널A가 2019년부터 매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다. 네 번째 시즌인 올해 ‘뮤지컬스타’는 10일 오후 11시 10분 첫 회가 방송된다. 멘토링 프로그램에는 뮤지컬 ‘베르테르’를 연출한 조광화와 연극, 뮤지컬에서 활약 중인 김태형 연출가, 신은경 이경화 음악감독이 멘토로 참여한다. 참가자들을 향한 조광화 연출가의 연기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넘버 속에서 분위기가 바뀌면 배우의 행동도 바뀌어야 하는데…. 가사 분석이 하나도 안 돼 있는 것 같아.” 멘토의 날카로운 지적에 참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로디에 숨지 말고 본인의 말을 따라가라.” “상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라.” “강약 조절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날 멘토링을 받은 참가자 18명은 전체 지원자 728명 가운데 3월부터 두 달간 이어진 경연을 통과한 이들이다. 오디션 참가 요건을 ‘만 24세 이하’로 두고 있는 만큼 지원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다수다. 박정숙 DIMF 사무국장은 “경연대회 외에도 멘토링 프로그램을 따로 두는 이유는 뮤지컬스타가 단순히 우승자만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실력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더욱 엄격해진 경연 룰로 긴장감을 더한다. 심사위원 5명 중 4명에게만 선택을 받으면 합격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시즌부턴 심사위원 전원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만장일치 선택을 받지 못한 참가자는 그 자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심사는 뮤지컬 배우 정영주, 마이클 리, 민우혁, 켄 그리고 장소영 음악감독이 맡는다. 각양각색 사연을 지닌 참가자들의 드라마도 주요 볼거리다. 올해로 4년째 도전하는 뮤지컬스타 ‘4수생’부터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 2교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지망생, 한쪽 청각은 잃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 낮엔 회사 저녁엔 연습실을 오가는 직장인까지…. ‘뮤지컬스타’ 연출을 맡은 전경남 PD는 “여러 사연을 지닌 참가자들이 기존의 뮤지컬 넘버를 어떻게 본인 이야기로 재해석하고 어떤 메시지를 담아 노래하는지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귀 기울이면 방송을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MC는 뮤지컬 ‘알타보이즈’(2016년)에서 주인공 매튜를 연기한 배우 이이경이 맡았다. 이이경은 “참가자들이 각자의 개성과 강점을 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순간이 정말 많았다”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분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길 응원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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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의리있고 당당했던 ‘깡수연’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어요. 75세가 됐을 때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 같은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어요.”(2010년 동아일보 인터뷰) 7일 오후 3시경 향년 56세로 별세한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 강수연은 늘 그랬듯 영화에 오롯이 헌신하고자 했다. 올해 공개하는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복귀한 뒤 연기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5일 쓰러진 그는 결국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을 8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내 영화가 더 빛날 수 있었다. 워낙 영리한 배우라 숱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촬영에 지장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감사한 배우”라며 비통해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정사진이 영화 촬영 소품같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한다. 1969년 세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후 초등학생 때 어린이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1976년)과 ‘정의의 번개돌이’(1978년)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로 떠올랐다. 고교 시절인 1982년 영화 ‘깨소금과 옥떨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며 TV와 스크린을 넘나들었다. 정식 영화 데뷔작은 1976년 ‘핏줄’이다. 이후 영화 ‘별 3형제’(1977년), ‘어딘가에 엄마가’(1978년)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1985년 김수형 감독의 ‘W의 비극’,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본격적인 도약을 예고했다. 배 감독은 “아역 시절부터 재능이 특출해 눈여겨봤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 참신함이 여전하더라. 발랄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20대 초반에 ‘젊은 거장’ 배우가 된 데에는 임권택 감독의 공이 컸다. 고인은 1987년 임 감독의 ‘씨받이’에서 주인공 ‘옥녀’ 역을 맡아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배우가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처음이었다. 1989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997년 인도 트리반드룸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석했는데 현지인들이 ‘영화 ‘씨받이’를 봤다. 강수연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고인은 한국영화와 한국 배우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2011년 방송에서 “당시 모두가 노출 연기에만 관심을 가져 큰 상처를 받았다. 상을 타고 나니 갑자기 다들 ‘너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느냐’고 물어 상처가 싹 치유됐다”고 했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 1980, 90년대 화제작에 다수 출연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거나 여성이 겪는 차별을 들여다본 작품에 출연했다. 2000년대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의 주인공 정난정 역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펼쳐 연기대상을 받았다. 공개되지 않은 ‘정이’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작은 2013년에 개봉한 단편영화 ‘주리’다. 시드니국제영화제 심사위원(2013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2015∼2017년)을 역임하며 국내외 영화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안 주는 짝사랑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쓰러지기 3주 전까지 ‘정이’ 후시녹음을 하며 한순간도 영화를 손에 놓지 않았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른다. 김동호 전 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임 감독과 배우 김지미 박중훈 안성기 박정자 등이 장례 고문을 각각 맡았다. 10일 오후 10시까지 조문을 받은 뒤 11일 오전 영결식을 한다.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한다. 영화 ‘베테랑’ 명대사의 원작자스태프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 유명비구니역 삭발-겨울 얼음물 입수 등“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영화 ‘베테랑’(2015년)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내뱉은 이 대사의 원작자는 배우 강수연 씨다. 스태프를 챙길 때나 사석에서 이 말을 자주 한 고인은 류승완 감독과 만나 농담처럼 말했다. 이 말이 ‘베테랑’에 나오며 돈의 유혹에도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의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고인은 의리 있고 인간적인 면모로 유명했다. 그를 월드 스타에 오르게 한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는 특히 각별했다. 2008년 부산 동서대가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을 출범시키자 고인은 특강 강사들을 다 섭외했다. 임 감독은 2010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사료로) 몇백만 원은 줘야 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을 수연이가 다 데려온다”고 했다. 카리스마 있고 불의 앞에서 단호히 행동해 ‘깡수연’으로도 불렸다. 과거 제작자가 나쁜 의도로 그를 호텔에 불렀을 때 주저 없이 뺨을 때렸다. 그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건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라고 잘라 말했다. ‘말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계 유명한 애주가들도 그를 술로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삭발 투혼’은 뗄 수 없는 단어.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역을 위해 삭발하던 모습은 한국영화사의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고인은 당시 “머리는 또 자라는 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에선 얇은 소복만 입고 한겨울 얼음물에 장시간 들어가 화제가 됐다. 배우 손숙은 “강수연이야말로 배우다. 다른 수식어가 없다. 오롯이 인생을 거기에 바친 사람”이라고 했다. 고인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이에 “가정환경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는 “독신주의자는 절대 아니다”라며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지만 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당당함은 고인을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그 이면엔 여린 모습이 있었다. 고인은 “언제 가장 외롭냐”는 질문에 “당당한 척할 때, 그때가 가장 외롭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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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유신독재에 저항… “행동한 참여시인”

    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 시인이 8일 오후 4시경 강원 원주시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함께 살던 차남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부부가 임종을 지켰다. 고인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이름처럼 고인은 과거 독재정권에 맹렬하게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1941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여했다. 당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대표로 활동했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서울대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4개월간 수감됐다. 한때 수배를 피해 항만 인부나 광부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고인은 참여시인이자 민중시인이었다. 1969년 시 ‘황톳길’과 ‘비’를 발표하며 등단한 후 1970년 월간지 ‘사상계’에 ‘오적(五賊)’을 발표해 구속됐다. ‘오적’은 300줄 남짓한 풍자시로 독재시대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댔다. 고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와 편집장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그해 구속됐다. 이어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주화 이후 2013년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2014년 법원은 고인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15억 원의 국가배상 판결을 내렸다. 1987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 이산하 시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적’을 읽고 이것이 진짜 시이고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꽁꽁 얼어붙은 유신시대에 뜨거운 피를 가진 문학청년들에겐 충격적인 영향력을 준 시를 쓴 분이다.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참여 시인”이라고 평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고인은 1970년대 저항운동을 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산 분”이라며 “자신이 터득한 사상을 글로 표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80년대 이후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다.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생명사상을 깨쳤다. 고인은 “처음에는 생태학을 파고들었는데 그것만 가지고서는 세계와 삶의 진화를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심오했다”며 “선(禪)과 불교에 관한 깊은 내면적 지식과 무의식적 지혜를 갈구하게 됐다”고 했다. 1990년대에는 절제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줬다. ‘중심의 괴로움’(1994년), ‘비단길’(2006년), ‘새벽강’(2006년), ‘못난 시들’(2009년), ‘시김새’(2012년) 등 시집을 꾸준히 펴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고인은 많은 지인들과 후배들로부터 “데모대 선두에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마다 “이제 정치가 아닌 다른 일을 찾고 있다. 더 이상 데모는 안 한다”고 거절했다. 변절, 배신, 반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고인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한 일간지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고인은 “민중을 지도하겠다는 사람들이 목숨을 경박하게 버리는 반민중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으며 자기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민중을 선동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고인은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이 칼럼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계속 견지했다. 고인은 2008년 한 언론사 기고문 ‘좌익에 묻는다’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은 아예 읽은 일도 없고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자들이 정권을 틀어쥐고 앉아 왔다갔다 나라 경제를 몽땅 망쳤다”고 지적했다.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근배 시인(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1970년대 시인뿐 아니라 논객조차도 군부세력을 비판하는 글과 시를 못 쓰던 시절, 고인은 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오적’을 발표한 고인은 유신 시대의 지성이다. 정치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당시 고인만큼 폭발적인 문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대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이 떠나갔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작가와 차남 세희 이사장이 있다. 고인의 부인으로 대하소설 ‘토지’를 쓴 고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 씨는 2019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9시. 김지하, 박경리 딸과 결혼… 朴 “글 잘쓰는 젊은이에 호감”朴, 金 민청학련 구속때 옥바라지고 김지하 시인은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1926∼2008)의 사위로, 그가 걸어온 길뿐만 아니라 가족사 역시 한국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 ‘오적’을 사상계에 발표한 김 시인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경찰과 중앙정보부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평소 종종 들렀던 서울 정릉 인근의 박경리 선생 집을 찾아 숨겨 달라고 청했다. 선생은 그의 부탁을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외동딸 김영주(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1946∼2019)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김영주는 “어머니가 혼자 살다 보니 성격이 그렇다. 이해해 달라”며 사과했다. 이후 김 시인이 숨어 있던 강원 원주시 집에 선생과 김영주가 찾아와 그를 돌려보낸 것을 미안해했다. 생전 선생은 김 시인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현대문학’ 김국태 씨(편집장)가 지하와 함께 왔어요. ‘오적’을 읽고 싶었는데 구하질 못해 읽어보지는 못했던 때였죠. (글을 쓰는 내가) 글 잘 쓰는 젊은이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이 통한 김 시인과 김영주는 1973년 4월 서울 명동대성당 반지하 묘역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김 추기경은 부부간의 예절과 함께 김 시인의 앞길을 예감한 듯 비상한 결심과 각오를 강조했다. 부부는 두 아들 김원보(작가), 김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를 낳았다. 결혼 이듬해 김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자 선생은 직접 면회를 가며 그를 챙겼다. 6·25전쟁 때 부역자로 몰린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자 추위가 매서운 겨울 날마다 옷 보따리를 들고 흑석동 집에서 서대문까지 걸어 면회를 다닌 선생이 사위의 옥바라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선생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시인을 살리기 위해 정권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조용히 백방으로 뛰었다. 김영주는 “남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모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암 투병을 하다 2019년 눈감은 김영주는 김 시인이 20년간 12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두 아들 양육부터 집안 살림, 간호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맞서 홀로 딸을 키운 선생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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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스타 부담 내려놓고… 임종때 처음으로 평화로워”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원조 ‘월드스타’ 고 강수연 씨의 장례가 11일까지 나흘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8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는 조문이 이어졌다. 고인을 월드스타로 만든 영화 ‘씨받이’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부인 채령 씨와 한걸음에 달려왔다. 전날도 빈소를 찾은 임 감독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임 감독은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세상을 떠나 아깝다”라며 비통해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9시 반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켰다. 이날 그는 자필편지를 통해 “청천벽력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압구정동 만둣국 가게에서 점심을 나누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스물한 살부터 ‘월드스타’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았다. 어쩌면 수연 씨의 숙명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응급실에 누워 있을 때, 임종할 때, 세파에 시달렸고 어렵게 살아왔던 수연 씨가 처음으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목도했다.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영화계 인사들은 비통해했다. 배창호 감독은 “10대 때부터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쭉 지켜봤고, (고인이) 더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줄 때가 됐는데 우리 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장호 감독은 “고인은 톱스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노력했고 참을성 있게 연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같이 만들어 여기까지 오게 한 분”이라고 애도했다. 고인과 함께 연기한 배우들도 안타까워했다. 배우 박정자 씨는 “영화 ‘웨스턴 애비뉴’(1993년)를 같이 하며 본 강수연은 아주 똑 부러지는 배우였다”며 “지나치게 잘나서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김학철 씨는 “영화 ‘지독한 사랑’을 같이 촬영했다. 늘 고마웠고 꼭 한 편 더 좋은 영화를 함께 찍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배우 김혜수 이미연 김윤진 문근영 한지일, 영화감독 윤제균 봉준호 김태용 박정범 임순례를 비롯해 가수 노영심도 빈소를 찾았다. 온라인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이틀 연속 빈소를 찾은 데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추모했다. 영화감독 겸 배우인 양익준은 인스타그램에 “누나 같았고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던 분”이라며 “누나라고 한번 불러봤어야 했는데”라고 썼다. 정치권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학창 시절 강수연 님의 연기를 보며 성장했다. 명연기를 평생 기억하겠다”고 애도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가 올겨울에 고인에게 훈장을 추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부겸 국무총리,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박찬욱 감독, 배우 엄앵란 안성기 전도연 이병헌 송강호 강동원,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에 열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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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정치 등 각계 인사들 애도…강수연 빈소에 조문 행렬

    ‘영화계 원조 월드스타’ 고 강수연의 장례가 나흘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별세 이틀째인 8일 배우 강수연 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영화인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이 평소 아버지처럼 따랐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9시 반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위원장은 “(고인은) 영화계 최초의 ‘월드 스타’로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그 뒤에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한국 영화산업에도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배우 강수연을 월드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도 아내 채령씨와 함께 한걸음에 달려왔다. 전날도 빈소를 찾았던 임 감독은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임 감독은 “(너무 슬퍼) 할말이 없다”면서도 “살면서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먼저 세상을 떠나 아깝다. 워낙 영리한 배우라 숱한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영화 촬영 과정에서 지장을 준적이 한번도 없었다. (강수연이라는) 좋은 배우를 만나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 감사한 배우”라고 회고했다. 빈소를 찾은 봉준호 감독은 “몇 달 전에도 만나 뵀는데 실감이 안난다”며 “종종 뵙고 이야기도 길게 나누곤 했다. 그래서인지 빈소의 영정사진도 영화촬영 소품같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안난다”며 애통해 했다.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은 배우 박정자는 “과거 영화 ‘웨스턴 애비뉴’란 작품을 같이 출연하며 본 강수연은 아주 똑부러지는 배우였다”며 “지나치게 똑소리나고 잘나서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떠나는 그를) 많이 응원하고 또 사랑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황 장관은 “강수연 씨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에 (사망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영화사에 크게 역할을 하실 분인데 너무 일찍 가셔서 안타깝다. 정부는 올 겨울에 훈장을 추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전날 빈소를 찾은데 이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애도했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에서 상대 배우로 출연한 배우 문성근은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 아픕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배우 김규리는 2015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고인을 만난 일화를 전하며 “저희에게, 저에겐 등대 같은 분이셨습니다.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부겸 국무총리,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배우 엄앵란 안성기, 박기용 영화진흥윈원장 등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고인의 장례식의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집행위원장이 맡았고 동료 영화인 강우석 강제규 봉준호 설경구 등 49명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했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될 예정으로,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다.손효주기자 hjson@donga.com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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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로잉부터 조각까지… 팀 버튼의 모든 상상력 보러오세요

    빨강, 노랑, 파랑의 구형 생명체가 전시장 흰 벽을 뚫고 나타났다. 줄무늬 다리를 꿈틀거리며. 여러 개의 눈으로 사방을 뒤살피며.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 전시장 입구에 놓인 이 조형물은 팀 버튼(바른 표기는 팀 버턴) 감독(64)이 올해 만든 새로운 캐릭터다. 조형물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인 DDP에서 꼭 전시를 열고 싶었다”던 버튼이 DDP 디자인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버튼이 한 도시에서 한 번만 전시를 여는 것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이 조형물은 한국을 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버튼은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월드투어 프로젝트 ‘팀 버튼 전’을 연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10년 만에 두 번째 전시를 연 이유에 대해 그는 “10년 전 광장시장에서 먹은 부침개와 시장 사람들의 따뜻한 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10년 만에 서울을 다시 방문해 선보인 이번 전시는 일러스트, 회화, 사진, 조각 등 출품작만 522점에 이른다. 브랜디 폼프렛 팀버튼프로덕션팀 총괄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버튼이 해온 52년간의 작업이 총망라돼 있다. 어디서부터 버튼의 창작이 시작됐고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는지 전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튼 영화의 팬이라면 전시장 곳곳에 대표작 ‘비틀쥬스’(1988년),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년) 등의 원천이 된 드로잉과 스토리보드, 대본을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할 것이다. 영화와 관련된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전시의 시작은 10대 시절 그린 드로잉 원본들로 구성돼 있다. 스스로를 “언어 구사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평하는 버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알을 깨고 나오는 괴생명체와 커다란 비행접시를 그린 ‘비행접시와 외계인들’(1972∼1974년)을 보면 그의 상상은 초기부터 남달랐다. 공상가였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고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말에 열리는 카니발이었다. 그의 작품세계의 주제를 담은 작품들도 눈에 띈다. ‘유머와 공포’(카니발레스크) 주제가 대표적이다. 절제의 시간인 사순절 직전에 축제가 벌어진다는 모순은 그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기괴한 거미를 그린 ‘무제―비정상적인 역사: 거미 선인장’(1994년)에서 볼 수 있는 튀어나온 눈동자, 꼬인 혓바닥이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다. 버튼의 상상이 매번 현실이 됐던 건 아니다. 전시 후반부에는 실현되지 못한 영화, TV, 도서 프로젝트도 가감 없이 공개됐다. 눈과 발이 여러 개인 괴물과 꼬마의 이야기를 담은 드로잉 ‘무제―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1980년)가 눈길을 끈다. 버튼은 언제나 창작을 즐겼고,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게 습관이었다. 종이가 없으면 냅킨을 사용했다. 출품작인 냅킨 드로잉 90점은 한 장 한 장이 다른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실수로 흘린 붉은 소스까지도 그림의 일부로 활용됐다. 그의 열정은 전시 마지막에 재현한 영국 런던 작업실에서도 드러난다. 6∼9m² 남짓한 이 공간의 책상과 벽면 곳곳에는 그의 드로잉 작품이 빼곡히 걸려 있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버튼의 TV 시리즈 ‘웬즈데이’를 엿볼 수 있는 그림들도 이 공간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9월 12일까지. 1만3000원∼2만 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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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세기 내내 그려진 화가의 기억 속 한 장면[영감 한 스푼]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태언 기자입니다.여러분, 혹시 어제 노을을 보셨나요? 저는 평소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대를 좋아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화가 윤중식(1913~2012) 덕에 요즘 저도 노을 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곤 합니다.지난달, 윤중식 화백의 유족은 성북구립미술관에 고인의 작품과 자료 500점을 무상 기증했습니다. 윤중식은 박수근 이중섭 등과 가깝게 지냈고, 살아생전 함께 단체전을 열었을 정도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낯선 분들이 훨씬 많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우선 ‘석양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기억해두시면 됩니다.그는 생애 내내 석양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레퍼토리를 고수하는 것은 드문 예인데요. 대체 윤중식에게 석양은 무엇이었던 걸까요?답하기에 앞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석양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각자의 답을 안고 윤중식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다, 그날 그 순간을윤중식1. 윤중식은 반세기 내내 석양 풍경을 그린다. 이는 실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보았던 기억 속 고향의 석양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었다.2. 그의 고향은 평양이다. 윤중식은 월남 도중 아내, 두 딸과 영영 헤어진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과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석양을 그리는 동력이었다. 반복적으로 석양을 그리며 그는 인생의 무게를 거둬들여 나갔다. 3. 그는 자신의 그림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시장에 잘 내놓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생전 대중의 주목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죽는 날까지 석양을 그리다 간 ‘석양의 화가’라는 공고한 타이틀을 갖게 된다.○눈앞에서 맞닥뜨린 가족과의 생이별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윤중식의 삶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집니다. 1951년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오던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데요.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그의 장남 윤대경 씨(75)와의 대화를 잠깐 살펴봅시다.기자 : 월남 도중 가족이 이산했다고 들었습니다.윤대경 : 피난길에 갑자기 폭격이 가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께서는 젖먹이 둘째 여동생을 업고, 한 손으로는 제 손을 잡은 채 달리기 시작하셨죠. 어머니는 첫째 누나와 함께 반대 방향으로 피신했고요. 그 후로 영영 두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셋이서 내려가다 둘째 여동생도 죽었어요. 젖먹이었거든요. 1·4 후퇴 피난길은 겨울길이었고, 우리는 먹을 게 없었죠.기자 : 두 분이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요?윤대경 : 부산이 첫 피난지였습니다. 이후에 대구를 거쳐서 1953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중섭 선생이 먼저 자리 잡고 계셨어요. 우리보다는 형편이 나아서 이중섭 선생이 “걱정 말고 우리 집에 가자”며 챙겨주셨어요. 그런데 만나기로 한 날, 이중섭 선생이 항구 바닥에 만취해 계셔서 저희는 결국 이모 집으로 가 지냈습니다. 알고 보니 선생이 아내를 만나러 일본으로의 밀항을 요구하면서 술을 걸치셨다고 하더이다. 하하.이런 사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윤중식의 작품은 모두 그가 남하한 후의 작품뿐입니다. 작품을 들고 전쟁길을 걸을 순 없었을 테니 말이죠. 대신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피난길의 순간을 그린 드로잉을 볼 수 있습니다. 윤중식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낡은 종이와 수채물감을 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드로잉 시리즈 28점에는 총을 쏘는 인민군, 울부짖는 피난민들, 정신없이 죽을 먹는 아들의 모습 등이 담겨있습니다.제가 가장 오래도록 봤던 드로잉은 1번 작품이었습니다. 불타는 고향을 등지고 온 가족이 남으로 떠나는 모습입니다. 5명이 함께 했던 마지막 장면을, 가족과 헤어지고 난 뒤 그렸을 윤중식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윤중식은 추후 서울 시내 보육원을 헤집고 다녔다고 합니다. ‘헤어진 첫째 딸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하는 마음에 발톱이 다 빠지도록 말이죠.○반세기 내내 그린 석양그는 1953년 서울로 온 지 1년 만에 첫 개인전을 엽니다. 이때 이경성 비평가로부터 ‘석양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는데요. 그로부터 내내 윤중식의 개인전에서는 석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이 석양은 그가 직접 어딘가에 사생을 나가 본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릴 적 고향에서 봤던 노을 진 풍경을 마음속으로 떠올린 것이죠. 실제 윤중식은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석양을 그렸다고 합니다. 즉 그에게 석양은 곧 향수였습니다. 도로 갈 수 없는 고향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죠. 이번 전시의 제목 ‘회향’의 한자가 ‘回向’(돌아올 회·향할 향)가 아니라 ‘懷鄕’(품을 회·시골 향)인 이유기도 합니다. 그는 자기 삶이 가장 온전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몇 번이고 마음의 눈으로 그때를 되새김질했습니다.“붉은 태양이 서쪽 산으로 기울어질 때면 석양은 찬란한 빛과 신비의 세계로 물들고 다양한 변화에 가슴마저 울렁거리게 된다. 너무나 순간적인 빛과 색을 바라보는 찰나 강한 빛과 색은 사라지고 안식과 침묵에 고요한 적막으로 변해버린다.” -윤중식의 에세이 ‘석양’그의 작품이 따뜻한 색감을 갖고 있지만 아련함과 쓸쓸함을 동반하는 이유겠지요. 하루를 비추던 해가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 찬란한 주홍빛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잠깐. 그리고 가족과 행복했던 시절도 윤중식에게는 너무나 짧게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짧았던 이 순간을 그는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성북동에서 사랑하는 빠렛트와 함께석양은 그가 남기고 간 아틀리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장에는 그의 아틀리에를 재현해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미술관은 그가 1963년부터 살았던 성북동 아틀리에의 물품들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그의 팔레트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사랑하는 빠렛트/2011년 8, 2일/현재 98세/“사용 중”그 팔레트를 사용해 마지막까지 그린 작품도 의자 앞에 놓인 석양 그림입니다. 작고하기 약 10년 전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탓에 색감도 형태도 뭉개져 있습니다.윤중식은 별세 전날까지 이 앞에 서서 그림을 그렸고, 일어나 아침 우유 한 잔을 마신 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와의 대화를 통해 윤중식이 남기고 간 삶의 흔적을 살펴봅시다.기자 : 윤중식 화백의 아틀리에 공개는 처음 아닌가요?학예사 : 윤중식 선생님은 가족들조차도 작업실에 잘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러니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도 처음이 맞습니다. 작업실에 놓인 물건들을 보면 선생님께서 얼마나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사랑하셨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값이 비싼 캔버스 천을 구하기 힘들 때에는 도자기와 조개 위에도 그림을 그리셨어요. 기자 : 일상품이 캔버스셨네요.학예사 : 그렇죠. 실제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중 약 15점만 캔버스에 그려졌고 나머지는 하드보드지, 종이(캔트지), 박스지 등에 그려진 것들입니다. 작업실 한편에 놓아뒀던 항아리를 그린 출품작 ‘무제’도 케이크 받침대에 그린 그림입니다. 전시에 출품되진 않았지만 목가구의 문짝이나 과일포장 스티로폼, 심지어는 양파링 과자 포장지에도 그린 그림들이 있었죠.기자 : 재현 공간 입구에 놓인 그림 ‘무제’ 속 모델은 누구인가요?학예사 : 부인입니다. 윤중식 선생님은 서울에 정착하신 뒤 새로 가정을 일구셨어요. 전쟁통에 두 딸을 잃었지만 재혼한 부인 덕에 두 딸을 다시 얻게 되죠. 이 초상은 재혼한 부인의 얼굴인데요. 윤중식 선생님께서 별세하시기 한 달 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부인께서는 교통사고로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고, 윤중식 선생님은 거의 눈이 보이지 않으셨지만 그림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기자 : 풍경화만 그리신 건 아니신가봅니다.학예사 : 풍경이 윤중식 선생님 작품의 주를 이루는 건 맞지만, 실내 정물과 인물화도 즐겨 그리셨어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셔서 주로 작업실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보니 그런듯합니다. 인물화의 모델도 대개가 손녀, 부모님, 부인 등 가족입니다.기자 : 작업량이 적지 않은데 왜 대중에 덜 알려졌던 걸까요?학예사 : 미술시장에 유통된 작품이 적기 때문이에요. 선생님께서는 작품을 판매하는 걸 꺼리셨어요. 작품이 흩어지는 걸 원치 않으셨거든요. 대신 선생님께서는 작품을 작업실에 손수 모아놓으셨습니다. 물론 상경 후 초반에는 몇몇 작품을 파시긴 했는데 그때마다 정말 안타까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여러 전시회에 초대되어도 응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오롯이 작업에만 몰두하셨고요. 팔레트 글귀에서 볼 수 있듯 선생님께서는 정말 그림 그리기 자체를 사랑하셨던 분이셨습니다.이곳 아틀리에는 여전히 성북구에 존재합니다. “평양이란 고향을 떠나왔는데, 다신 갈 수 없으니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야 했다”던 장남 윤대경 씨의 말처럼 성북동은 윤중식에게 제2의 고향이었습니다. 윤중식이 50년 넘게 성북동에 살았던 이유도 언덕 위의 석양과 산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고요.그는 끊임없이 석양을 그리면서 때론 추억에 잠겨 미소 짓고, 또 때론 그리움에 서글펐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인생의 하중을 받아들여나갔을 겁니다. “그의 그림에 불안과 회한 같은 것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지 않은 것은 풍랑 치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커다란 도량과 경륜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서성록 평론가의 말처럼요. 여러분께서는 이 화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기억 속에 오래 자리하고 있는 장면이요. 평생을 바쳐 곱씹어도 좋을, 언제든 다시 재회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지금 눈을 감고 찬찬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전시 정보 윤중식10주기 추모전 《회향懷鄕》2022.03.20~2022.07.03성북구립미술관(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성북로 134)작품수 140여 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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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행스님 “지도자 반목은 국난 자초, 통합 힘써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사진)이 부처님오신날(5월 8일)을 앞두고 미리 배포한 봉축사에서 “선거라는 합법적인 대결의 장이 끝나면 지도자들은 상호 존중과 화합을 통해 국민 통합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원행 스님은 “우리 역사를 보면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을 때 전쟁을 비롯한 어떤 위기도 모두 극복해 냈지만 지도자들이 분열하고 반목하면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고 국난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처님오신날 이틀 뒤에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을 비롯해 6월 지방선거, 9월 총무원장 선출 등을 언급하며 “이런 중대한 일들을 모두 희망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국가의 중대사와 우리 종단의 중대사가 모두 한 단계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화쟁의 역사, 희망의 역사가 되도록 힘써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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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버튼, 서울서 전시 두번 여는 이유가 광장시장 부침개 때문?

    “10년 만에 돌아왔네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다시 만나 기쁩니다.” 29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자들과 만난 미국 영화감독 팀 버튼(64)이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30일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 개막에 앞서 이날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 ‘비틀쥬스’(1988년), ‘가위손’(1991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년), ‘유령 신부’(2005년) 등과 관련된 일러스트, 회화, 사진, 조각 등 총 522점을 선보인다. 이 중 150여 점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전시는 ‘유머와 공포’ 등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10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The World of Tim Burton’ 전시는 그의 두 번째 월드투어 프로젝트다. 2012년 그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공동 기획한 전시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는 한 도시에서 한 번만 전시를 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번째 서울 전시를 연 데 대해 그는 “10년 전 광장시장에서 먹은 부침개와 시장 사람들의 따뜻한 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전시가 열리는 DDP에 큰 관심을 보였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인 DDP에서 꼭 전시를 열고 싶었다. 우주선 같은 곳에 들어오니 집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하다”며 웃었다. 그는 DDP 디자인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한 캐릭터 조형물을 전시장 입구에 설치했다. 그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9월 12일까지. 1만3000원~2만 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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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 입은 상업사진, 작품이 되다

    상업사진은 흔히 세속적인 사진으로 취급받는다. 국내 첫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한 한국 상업사진의 대부 김한용(1924∼2016)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사진에 완성이란 없다. 다만 완성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할 뿐”이라고 밝혔다. 상업사진 한 장을 남기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을 헤아릴 때 선뜻 ‘상업사진이 예술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는 국내 상업사진의 미적 특성을 조명한다. 국내 대표 상업사진가 29명의 작품 150여 점이 출품돼 상업사진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전시는 ‘비주얼 패션 매거진’을 표방한 잡지 ‘월간 멋’이 창간된 1984년을 상업사진의 기점으로 삼는다. 엘르, 보그 등 해외 유명 패션잡지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 발간된 ‘월간 멋’은 프랑스 패션 잡지 마리끌레르와 제휴해 서울의 패션 세계를 조명해 왔다. 1전시실은 1세대 상업사진가로 꼽히는 김중만 구본창 김용호 김영수 등의 주요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대개 해외유학파로 1984년 무렵 속속 귀국했다. 유학 당시 최신 장비를 활용해 작업한 이들이 귀국해 활동하면서 국내 상업사진은 발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두 남성이 서울 용산구의 한 창고에서 포즈를 취한 구본창의 ‘알렉시오’(1988년)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의 작업은 마치 영화 스틸컷 같다. 선례가 없어 더욱 실험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보정 기술이 흔치 않아 순수한 사진의 힘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김영수의 ‘에스콰이아 포트폴리오’(1991년)는 카메라 렌즈에 수증기를 뿌려 구두의 은은한 느낌을 살렸다. 2, 3전시실에선 상업사진의 특징인 ‘거대한 자본력, 화려함, 분업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상업사진은 패션 잡지를 통해 공개돼 왔다. 대중문화 시장이 커지면서 상업사진가들은 음반 화보나 영화 포스터에도 참여했다. 목정욱의 ‘누메로 러시아’(2020년)는 프랑스 패션잡지 누메로의 러시어판을 장식한 모델 정호연을 담은 작품. 한국 모델이 해외 잡지 표지에 등장하고 한국 사진가가 해외 잡지 표지를 찍는 변화를 상징한다. 스타일링, 헤어 담당자가 모델을 단장하며 촬영을 준비하는 장면을 담은 안상미의 ‘하퍼스 바자’(2021년)는 협업이 필수인 상업사진의 특징을 보여준다. 양복점에서 일상을 찍은 듯한 레스의 ‘아레나 옴므 플러스’(2018년)나 가수 이효리를 촬영한 김태은의 ‘더블유’(2017년)는 단조로움을 부각해 상업사진의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낸다. 6월 26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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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7년 베니스비엔날레 역사를 뒤엎다, 최고상 휩쓴 흑인 여성들[이번주 미술계]

    ○ 베니스비엔날레 휩쓴 흑인 여성들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흑인 여성 작가들이 휩쓸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공식 개막과 함께 시상식을 열었는데요. 미국의 조각가 시몬 리(55)가 본 전시 부문 황금사자상(최고 작가상), 영국관 대표작가 소냐 보이스(60)가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은 겁니다. 두 사람은 각각 미국과 영국 국가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최초의 흑인 여성작가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외 받아온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놨죠. 리는 눈을 가린 대형 흑인 여성 청동 조각 ‘브릭하우스’를 본 전시에서 선보였습니다. 보이스는 영국관에 사운드 설치 작품 ‘Feeling Her Way’를 통해 영국 음악사에서 비주류였던 여성 뮤지션을 부각했습니다.○ 프랑스 아를에 문 연 이우환 미술관한국 생존 작가 중 작품가가 가장 높은 예술가 이우환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이달 15일 프랑스 아를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와 한국 부산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이우환미술관이죠.아를 시는 로마제국 유적이 많고, 반 고흐가 머물면서 다양한 작품을 남긴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우환미술관은 16~18세기에 지어진 베르농 호텔에 개관했습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협조로 완성된 곳이죠. 25개의 방이 있는 옛 3층 주택이며, 연면적 1350㎡ 규모라고 합니다.외신에 따르면 1층에 10점의 설치작품과 30점의 회화가 전시돼 있고 2층에선 특별 전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음악을 전시한다는 백남준의 꿈, 61년 만에 현실로음악을 듣는다가 아닌 전시한다. 백남준이 20대에 꾼 꿈입니다. 그가 만든 악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이 국내 최초로 시연되고 있습니다. 이 악보에는 음계나 음표로 이뤄져있지 않습니다. 웬 지시문만 있지요.전시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7팀이 그의 지시문을 보고 해석해 시각화한 전시입니다. 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듣는 것에 한했던 음악에 대한 통념은 사라집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425/113054899/1※‘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한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한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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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함-분업화-자본력 갖추자…상업사진, ‘예술’로 성장했다

    국내 최초로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한 한국 상업 사진의 대부 김한용(1924~2016)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내 사진에 완성이란 없다. 다만 완성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할 뿐”이라 말했다. 흔히 상업사진은 세속적인 사진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김한용의 말을 보면 ‘상업 사진이라고 예술적이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선뜻 ‘맞다’고 답할 수 없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는 국내 상업사진 속 독자적인 미적 특성을 조명한다. 전시가 상업사진의 계보를 따라가기 때문에 국내 상업사진가 29명의 작품 150여 점이 대거 출품됐다. 1984년을 기점으로 잡은 것은 그해 국내 상업 사진계에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주얼 패션 매거진’을 표방한 잡지 ‘월간 멋’이 그해 5월 창간했다. 엘르, 보그 등 현재 유명 잡지사들이 국내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월간 멋’은 프랑스 패션 잡지 ‘마리끌레르’와 제휴해 서울에 글로벌한 패션을 소개했다.이 즈음 1세대 상업 사진가들이 해외 유학 후 최신 장비를 습득해 귀국하면서 상업사진의 발전은 더 박차를 가했다. 1전시실은 그러한 상업 사진 동향을 이끈 김영수, 구본창, 김중만, 김용호의 주요 작업물을 선보인다. 구본창의 ‘알렉시오’(1988) 등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의 작업은 마치 영화 스틸컷 같다. 전형이라 불릴 만한 선례가 없어 더욱 실험적일 수 있었다. 특히나 가공이나 보정 기술이 부재하던 때였기에 순수 사진의 힘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일례로 김영수의 ‘에스콰이아 포트폴리오’(1991)는 카메라 렌즈에 수증기를 뿌려 구두의 은은한 느낌을 살린 작품이다.장서영 일민미술관 에듀케이터가 꼽은 상업사진의 특징 ‘거대한 자본력, 화려함, 분업화’는 2~3전시실에서 두드러진다. 2000년대 이후 상업사진은 패션 잡지를 매개로 공개됐으며, 대중문화 시장이 성장하면서 상업 사진가들은 음반 화보나 영화 포스터에도 참여했다. 목정욱의 ‘누메로 러시아’(2020) 등은 한국 모델이 해외 잡지 표지에 등장하거나 한국 사진가가 해외 잡지 표지를 찍는 변화를 상징한 예이며, 안상미의 ‘하퍼스 바자 코리아’(2021)는 협업과 분업을 필수로 하는 상업사진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와중에 일상 모습을 찍은 듯한 레스의 ‘아레나 옴므 플러스’(2018)나 이효리를 모델로 한 김태은의 ‘더블유’(2017)는 단조로움을 부각해 상업 사진의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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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을 전시한다’는 백남준의 꿈, 61년 만에 현실로

    ‘귀로 듣는 음악을 전시한다.’ 백남준(1932∼2006)이 20대에 꿈꿨던 목표다. 1961년, 백남준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이란 이름의 악보를 만들었다. 오선지에 음계나 음표를 적어놓는 여느 악보들과는 다르다. 사각형 모양의 선 위로 ‘X선 촬영실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붉은 전등’ ‘신비스러운 향’ ‘재잘거리는 아기 소리’ 등 음표의 기능을 대신하는 지시문만 빼곡히 적혀 있다. ‘듣는 것’에 한했던 음악에 대한 통념을 깬 백남준의 실험적 시도였다. 살아생전 연주된 적 없던 이 교향곡이 61년이 지난 지난달 24일 국내 처음 시연됐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은 백남준을 기리며 준비한 특별전에서다. 전시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은 사운드,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7개 팀이 백남준의 악보를 해석해 시각화했다. 전시장은 개별 방처럼 구획을 나눠 악보별 지시문을 이행한다. 1번 악보에는 ‘매우 여리게/물이 흐른다/낡은 괘종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테이프 녹음기…’라고 적혀 있다. 권용주 작가는 물이 가득한 드럼통을 만들고, 송선혁 작가는 백남준이 지시한 소리들을 채집해 테이프에 담는 식으로 지시문을 구현했다. 백남준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언급하기도 했다. 3번 악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닭/조명 100W/부드럽고 신비스러운 향’이 대표적이다. 이는 사람 외의 생명체와 사물이 내는 소리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백남준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전시의 특징은 의도된 떠들썩함이다. 악보별로 방의 경계는 존재하지만, 옆방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벽체가 없어 많은 소리가 한데 뒤섞여 있다. 한누리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는 “교향곡은 관객에게 한 방향의 음악을 듣게 하는 데 비해 백남준의 교향곡은 악장이라 볼 수 있는 사각형이 순서를 가늠할 수 없게 펼쳐져 있다. 시간순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되는 백남준의 음악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다방향성(多方向性)으로 정의되는 백남준의 음악세계는 관객 참여가 중요하다. 백남준은 사각형 위에 구체적인 모양을 그리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텍스트만을 보고 각자 다른 형태를 상상해 악보를 완성시킨다. 작가들만이 아니다. 각 방 중간중간에는 피아노, 축음기 등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백남준이 1962년에 쓴 ‘음악의 전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나는 청중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처럼 그의 악보를 넘기는 주체, 즉 방을 넘나드는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6월 19일까지. 무료.용인=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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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곧고 푸른… 대나무를 닮은 고장에 대해

    전남 담양군에는 가사문학(歌辭文學)면이 있다. 면 단위 행정구역의 이름이다. 관동별곡부터 사미인곡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가사문학 작품에는 유독 담양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이른바 ‘담양 18가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인터뷰 연재로 유명한 현직 언론인과 오랫동안 문화재 분야를 취재한 전직 언론인인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담양을 현지 답사한 뒤 쓴 기행문이다. 앞서 두 사람은 경기 남양주시의 역사를 해설한 ‘왕들의 길, 다산의 꿈 조선 진경 남양주’(컬처룩)도 같이 썼다. 이번에는 담양의 가사문학을 비롯해 고택과 대나무, 누각과 정자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담양의 상징인 대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 담양 관광 1번지 죽녹원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삼다리 대나무숲 및 만성리 대나무밭, 대나무 공예 장인을 통해 대나무의 역사와 미래를 짚는다. 양곡 창고를 고쳐 지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려주는 담빛예술창고를 특히 자세하게 묘사했다. 옛것뿐 아니라 새롭고 역동적인 문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장소에 대한 정보도 담았다. 담양 금성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거점이었고, 동학농민군과 항일의병의 격전지였다. 다채로운 사진과 함께 생동감 있는 글을 읽다 보면 어느덧 담양 여행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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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라스베이거스를 ‘보라해거스’로 만들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의 기적이라 말한다. 아미는 내가 기적을 느끼게 한다.”(RM)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아미가 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최고의 뷰.”(뷔) 9일(현지 시간) 방탄소년단의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라스베이거스’ 공연이 펼쳐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은 온통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색인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날 ‘ON’을 시작으로 ‘DNA’ ‘피 땀 눈물’ 등을 이어가던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라스베이거스 관객분들의 텐션이 높다”고 외치자 열기가 한층 고조됐다. 방탄소년단은 8, 9일에 이어 15, 16일에도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이번 콘서트를 기점으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지역 인근에서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방탄소년단 사진전, 대규모 팝업스토어, 방탄소년단 테마 객실, 방탄소년단이 즐겨 먹는 한식 요리를 코스로 제공하는 식당, 방탄소년단 음악이 나오는 벨라지오 분수쇼가 도시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일명 ‘더 시티’ 프로젝트로,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맵 오브 더 솔’ 오프라인 콘서트 때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팬데믹으로 미뤄지다 이번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비로소 시작됐다. 라스베이거스관광청은 공식 트위터 계정 이름을 ‘보라해거스(BORAHAEGAS)’로 바꾸며 방탄소년단의 방문을 뜨겁게 환영했다. 보라해거스는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의 은어 ‘보라해’(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 뒤에는 다른 색이 없는 만큼 서로 믿고 오래오래 사랑하자는 뜻)와 라스베이거스의 합성어. 7일 보라색 배경에 흰색 영문으로 ‘보라해거스’라고 적힌 전광판이 시내 곳곳에서 빛을 비춰 라스베이거스는 보랏빛 물결로 일렁였다. 8일 오전 사진전과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멀티콤플렉스 ‘에어리어(AREA)15’에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캐나다에서 온 캐시(37)는 “서울 콘서트를 준비했던 과정을 사진으로 보니 방탄소년단과 교감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많은 아미를 콘서트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고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17일까지 진행된다.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관람 여부와 관계없이 팬과 지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미국 등에서 지속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열린 공연의 구성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차이점은 아미의 함성 소리였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Make some noise!”를 여러 차례 외쳤고, 멤버들이 “아미들 목이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아미는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무함성으로 진행된 서울 콘서트와 달리 이날 공연장에선 마스크를 착용하되 함성은 가능했다.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총 네 차례 콘서트의 표는 모두 매진됐다. 각각 5만 명씩 입장할 수 있어 모두 20만 명이 관람한다. 그래미 어워즈 수상이 불발된 데 대해 멤버 지민은 “정말 많이 아쉬웠다. 그래미에 크게 의미를 가졌던 게, 한국인으로서 저희 음악이 어디까지 닿는지 궁금했고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고 싶어 꼭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은 “그래미는 언제든 도전이 가능하니까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라스베이거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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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브 “BTS 병역문제, 국회서 조속한 결론을”

    방탄소년단의 군 복무에 대해 소속사 하이브가 국회에서 조속히 결론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이진형 하이브 커뮤니케이션총괄(CCO)은 9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방탄소년단의 병역에 대한 논의가 이번 국회에서 정리됐으면 좋겠다. 불확실성이 어려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CCO는 “2020년 이후 병역 제도가 변화하고 있고 현재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라 이를 주시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입대 시점 등이 불확실한 상태가 지속되니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은 병역과 관련한 업무를 회사에 일임한 상태”라며 “멤버들은 그간 ‘국가의 부름에 응하겠다’고 밝혀 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위를 선양한 대중문화예술인이 봉사활동 등으로 병역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한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20년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의 군 징집 및 소집을 만 30세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한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1992년생인 방탄소년단 멤버 진은 올해 말까지 군 입대가 연기됐다. 병역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진은 내년에 입대해야 한다.라스베이거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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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 모를 이들의 가장 깊숙한 이야기…‘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나직이 벨소리가 들려온다.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다음주에 짝을 바꿔요. 그때 꼭 1번이 되게 해주세요.” “엄마, 엄마 딸 여자친구 있어.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어. 사랑해.” 목소리의 주인공은 몇날 며칠 전, 전시장에 놓인 공중전화부스에 비밀을 털어놓고 간 또 다른 관람객이다. 수화기를 매개로 관객은 이름 모를 이의 가장 깊숙한 이야기를 듣는다. 설은아 작가(47·사진)가 기획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전시 이야기다. 설 작가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다미술관 등에서 여덟 차례 해당 전시를 해왔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만 10만 여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는 등 전시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3년간 모인 통화만 9만7934통. 설 작가는 이 목소리들 중 가장 애정 하는 450개의 통화 내용을 모아 지난달 25일 동명의 책(수오서재)을 발간했다.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난 설 작가는 관련 전시에 대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억누르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는 것”이라며 “내 안에 드는 모든 마음에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일지라도 세상 누군가는 선입견 없이 듣는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실험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시가 발화자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책은 청취자를 위한 물건이다. 설 작가는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건 ‘괜찮아 힘내’가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이 보편적인 아픔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며 “(관객이)수많은 이야기 중에 자신과 공명(共鳴)하는 이야기들을 선물처럼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작가는 전시 기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도록 ARS 번호를 열어놓고 있다. 아직도 하루에 적게는 30통, 많게는 7000통까지 음성 메시지가 온다. 물론 다수의 전화는 내내 침묵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침묵도 하나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역할은 지구 반대편 세상의 끝인 듯한 공간에 그 목소리들을 놓아주는 것까지다. 그는 2018년 첫 전시를 마치고 2019년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마을 우수아이아에 가 관객들의 음성 메시지를 틀어놓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모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설 작가는 2019년부터 모인 목소리들을 놓아주러 지난 5일에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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