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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통일 과정에 파생되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들일까요?”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SNUKOA) 소속 강서연 씨(서울대 중문과 18학번)가 올해 4월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너무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어서 지난해 11월 런칭 이후 우아한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두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6월 중순 40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메일을 보낸 결과 모두 아홉 명이 구체적인 답변을 해 오셨습니다. 너무 소중한 의견들이라서 오늘 제가 종합해서 핵심을 전달해 드리고 25일부터 4일 동안 주제별 의견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아한 사상 처음 있는 ‘전문가 콜라보’입니다.먼저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이념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남북한은 서로 상대방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고 수복과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남북한을 두 나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심으로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통일전략을 수립해 공개해야만 한다”며 “중국이 수십 년에 걸쳐 국제사회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압박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얻어낸 것처럼 우리도 ‘원 코리아(One Korea)’ 원칙을 다시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준형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도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유도함에 있어 그 출발점은 국제적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하나의 한국’(One Korea)론을 체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전수미 경희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도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해 1966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남북한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미리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이념적 근거가 수립되면 통일에 수반되는 과제별로 우리의 능력을 미리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민족의 저력과 시너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라며 “북한 내 우수한 인력과 노동력이 남한의 자본 및 기술과 결합할 때 누릴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통일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다섯 가지의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①북한이 보유하였던 생화학 무기 처리 ②북한 지역 안정화 ③북한의 핵처리 ④난민문제, 이행기 정의 실현 ⑤북한 인프라 개발, 북쪽 주민의 연금, 복지, 일자리 창출, 교육, 주거 문제 등입니다.(항목별 준비과제는 26일 우아한에 소개합니다)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가 한반도라는 좁은 지형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지역 문제, 특히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다양한 도전과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고 때론 희생을 감수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이 과정에 주변국들의 안보우려 해소와 신뢰구축은 필수적입니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통일한국이 주변국들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고 역내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수미 교수도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와 같은 주변국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으로 남한주도의 통일이 각 국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구축에 이바지 할 거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이 모든 과정을 미리 보여준 사례가 바로 독일의 통일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 통일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국가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고 북한주민들에게 매력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상국 독일 국립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한반도 통일이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주변국에게 현 분단 상황보다는 통일이 그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해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 강력한 경제력과 뛰어난 외교역량이 바탕이 된 가운데 통일을 하겠다는 양국 국민의 지지와 결단이 강대국을 설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전수미 교수는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예상보다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어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과 자체의 취약성으로 인해 붕괴할 것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며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서 준비해야 하며 찾아올 수 있는 통일의 기회를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2013년 6월 7,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랜초미라지에서는 집권 2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막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이 3차 핵실험(2월 12일)을 실시한 지 넉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만난 두 정상은 북핵 문제 대응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토머스 도닐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 두 정상의 합의사항을 브리핑하면서 북핵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공식 발표 내용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양국이 공동 노력한다는 다소 진부한 내용이었다. 합의사항의 ‘앙꼬’를 전한 것은 며칠 뒤 뉴욕타임스(NYT)였다. 시 주석이 “김정은의 태도가 변화할 때까지 직접적으로 포용 또는 간여하지(engage) 않겠다”고 오바마 대통령과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시 주석은 한동안 약속을 성실하게 지켰다. 북한이 2015년 말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이렇다 할 전략도발을 하지 않았지만, 북-중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이어진 북한의 핵무력 완성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 주석은 2017년 말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여덟 차례, 문재인 대통령을 세 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상황은 지난해부터 급반전됐다. 김정은이 신년사 이후 대미 대남 평화공세에 나서자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네 차례 김정은을 중국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대한 답방 형식인 20일 평양 방문을 통해 시 주석은 6년 전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랜초미라지 약속’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는 꼴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자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는 실례까지 범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적어도 4월 초까지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한국과 북한을 차례로 들러 동북아 3국을 두루 배려하는 모양새를 그렸다. 이번 방북이 급하게 결정되었다기보다 방남이 급하게 취소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무엇이 시 주석을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최근 출간한 ‘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를 통해 북한이 미국, 중국과의 ‘전략적 삼각관계’를 활용해 핵을 개발하고 생존의 길을 모색해 왔다고 지적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대화 길을 뚫자 한중 수교 이후 멀어지던 중국의 관심도 되돌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대화 카드를 흔들어 시 주석을 결국 평양까지 불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미 행정부가 바뀐 것도 요인이다.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강조하며 중국의 선의에 기댔던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중국이 우리를 호구로 보고 있다”고 비난하며 무역과 기술,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와 함께 전통적인 북-중-러 3각 동맹 강화에 나선 중국에 미국과 싸우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한국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6년 전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랜초미라지 약속’을 벗어던진 시 주석의 대북 포용정책은 퇴행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영변만 내놓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벗어나겠다’는 김정은 식 계산법을 인정하면 ‘핵을 가진 평화(nuclear peace)’라는 평양의 전략목표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한때 6자회담을 주도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중국이 ‘중국 배후론’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지난해 이후 북핵 대화 국면에서 종종 ‘서울의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을 만날 때마다, 단연 주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시점이었습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모두 네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베이징 등으로 불러들였지만, 약속한 평양 답방은 미루어왔습니다. 소식통의 전언을 시기적으로 복기하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시기를 놓고 매우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지난해 9월 초 소식통을 만났을 때 역시 시 주석의 방북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이후 공전 상태였던 비핵화 대화가 다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미 3월과 5월, 6월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회담 진전을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파다했습니다.하지만 소식통들은 이런 관측을 부인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직 한 번도 평양에 가겠다는 의시표시를 한 적이 없고, 시 주석이 평양에 간다는 해외언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베이징에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더 강합니다.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회담이 빨리 진전되지 않는 원인을 중국에 돌렸습니다. 이른바 ‘중국 배후론’이죠.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평양에 가게 되면 중국이 스스로 배후론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모양새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내년(2019년)은 중국과 북한이 국교를 수립한지 70주년이 되니 이를 기념하는 명분으로 방북하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많습니다.”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방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월 8일 김 위원장을 다시 한번 베이징에 불러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중 양국 공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결렬로 끝났지만 시 주석은 역시 방북 카드를 쓰지 않았습니다. 4월 1일 만난 베이징 소식통에게 다시 전망을 요청했습니다.“하나도 정보 없이 분석하는 겁니다. 6월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잖아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면 일본에 가시게 될 겁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고 중일 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입니다. 일본에 가는데 한국에 안 오면 한국 분들 서운해 하시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하신 상황이고. 한국에 오시게 되면 북한 안 찾아가면 서운하겠지요. 그런 이유로 6월 중에 동북아 3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시 주석이 20일과 21일 평양을 방문한다고 17일 오후 북한과 중국이 동시에 발표하면서 이 소식통의 ‘정보 없는 분석’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도 방문할 것이란 전망만 빼고 말이죠. 어제 양국 발표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을 놓고 지난해부터 고민해 왔으며 올해 성사를 목표로 고민해 왔다는 점입니다. G20 일본 회의를 계기로 하는 것이 유력한 선택지였고, 최근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무역과 5G 기술 전쟁 등 다방면에 걸친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 과정에 이뤄지는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이후 공전상태인 북-미 비핵화 대화와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크게 보면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강화하는 수순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은 14년만의 중국 최고지도자 방북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중국 배후론’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 및 경제 발전을 맞교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어제 “중국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실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새로운 전략 노선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정전협상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월 8일 북-중 4차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깊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힌 대목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요컨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동맹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일본의 3각 동맹 및 협력관계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이지요.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대규모 인도적 식량 지원 및 비공식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미국이 이끄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짐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러 3국의 최근 정상 간 대화는 이를 위한 정치적 스크럼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경제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이 가진 대북 레버리지를 더 활용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북한의 김대중 대통령 조의방문단 일행 6명이 서울에 온 2009년 8월 21일 저녁. 청와대 주변에는 “조문단이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왔는데 거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가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에 들어갔지만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ICBM) 발사(4월 5일)에 이은 2차 핵실험(5월 25일)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카드로 남북관계를 반전시키는 ‘조문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문을 근거로 섣불리 기사를 쓰기는 어려웠습니다.하지만 북한의 ‘조문정치’는 가능성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23일 청와대 방문을 자청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은 “저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습니다”라며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양건 부장은 28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정식으로 요청을 해왔습니다.이렇게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그 해 10월 김양건 부장과 임태희 당시 노동부장관의 싱가포르 비밀접촉(10월 17일)으로 급물살을 탔지만 통일부와 통전부간 개성회담(11월 7, 14일)에서 최종 결렬되게 됩니다. 남북간에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 이명박 정부 내에 대화와 원칙을 놓고 대북정책의 노선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조문정치’로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첫 남북대화는 그렇게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다음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침몰하게 됩니다.10일 오후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버전의 ‘조문정치’ 가능성을 둘러싼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도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고인은 2000년 6월 평양에서의 첫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습니다. 2011년 12월 26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방문해 상주인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조의를 표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관심은 어떤 형식과 수위인지에 모아집니다. 고위급 인사가 조문단을 이끌고 올수록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고, 조문단이 오지 않고 김 위원장이나 대남조직 명의의 조전만 온다면 그 반대일 것이라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10일 말했습니다.10년 전 당시와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거나 조의는 전하겠지만 당시처럼 적극적인 ‘조문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은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대화의 다리를 놓은 문재인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표시해왔습니다. 나아가 “중재자요 촉진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인 것은 같습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는 권력세습을 완성하기 위해 달러와 식량이 절실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제재에 가로막힌 지금의 북한도 달러와 식량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제재를 우회해 대북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평양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10년 전은 북한이 전략도발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운 상황에서 우연하게 찾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대화 재개의 계기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문정치’라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북-미, 남북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으로서는 굳이 조문을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10년 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보다는 남북관계가 위축되었지만 김양건과 같이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실행해 온 베테랑 엘리트들이 살아 있었고 통전부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 조직들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에서는 대미라인과 동시에 대남라인에 대한 일제 검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전부장에서 물러난 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김성혜 통전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에 대한 검열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태와 민화협 등은 대남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문을 닫아건 상황입니다.곧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이번 조문 및 조의 형식과 수위는 안팎으로 불편한 북한의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최근 두 명의 탈북자 출신 기자가 북한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숙청 바람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먼저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가 지난달 30일 ‘서울과 평양사이’ 칼럼에서 여섯 사람을 거론했습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간여했던 김성혜 통전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고,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되었으며,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도 취조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미국통인 한성렬 외무성 부상이 총살됐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통전부장 자리에서 내려온 김영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사단의 몰락이라는 것입니다. 다음날인 31일자 조선일보 1, 3면을 통해 김명성 기자는 ‘북한 소식통’을 소스로 한발 더 나갔습니다. 김영철은 자강도 노역형에 처해졌고 김혁철은 총살되었으며 김성혜와 신혜영(하노이 김정은 통영사)은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다는 겁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도 근신에 처해졌다며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처음으로 노동신문에 “반당, 반혁명, 준엄한 심판”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고 함께 전했습니다. 저 역시 2월 28일 하노이 북-미 2차 회담이 결렬되는 그 순간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평양에서 ‘수령의 잘못’을 대신 짊어질 엘리트 숙청 바람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fact)이라고 할만한 것은 김영철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통전부장 자리에서는 내려왔다는 4월 24일 국정원 국회 보고가 전부입니다. 청와대와 통일부 등이 김혁철 처형 등 보도에 대해 신중한 반응인 가운데, 3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영철이 김정은과 함께 군 예술공연 관람을 했다고 전했고 ‘김영철의 자강도 노역형’ 보도의 신빙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를 포함해 다른 인사들의 현재 상황이 확인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북한 당국이 최근 밖으로 통하는 문을 꽁꽁 닫아놓고 지난해 이후 북-미, 남-북 대화의 전 과정을 철저하게 ‘총화’ 및 ‘검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방북했던 한 해외동포 단체 관계자는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도 완전히 닫혔다. 연말까지 남북관계는 어려울 것”이라며 평양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전했습니다만 숙청설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북미 대화도 올 스톱 상황입니다. 하노이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와 숙청이 진행되고 있음을 추할 수 있는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들은 많습니다. 소련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현실사회주의의 역사는 숙청이 그들의 일반적인 정치 현상임을 말해줍니다. 미국의 공산주의 연구가이자 민주당 전략가로 불리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56년 펴낸 ‘영구 숙청: 소련 전체주의의 정치’라는 책에서 숙청이 소련 전체주의 체제 전반에 역동성과 동기를 부여해 주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당원 개개인에 대한 객관적인 성과평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숙청은 소련 공산당이 주기적으로 엘리트를 순환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행위라는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설명입니다. 브레진스키의 연구 등을 이론적 자원으로 북한의 숙청을 연구한 허정범은 2005년 12월 경남대 북한대학원에 제출한 ‘북한의 숙청 연구-기능과 유형을 중심으로’에서 북한의 숙청에는 더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의 숙청은 조선노동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 공고화, 심지어 권력 승계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며 “북한의 역사는 곧 숙청의 역사”라고 썼습니다. 허정범은 1948년 북한 건국이후 김씨 부자에 의해 자행된 다양한 숙청을 ①정권 장악형 ②권력 유지형 ②후계 구축형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6·25전쟁 이후 소련파와 연안파(중국파), 남로당파에 대한 김일성의 숙청은 권력 장악형 숙청입니다. 1956년 8월 전원회의 숙청 사건은 김일성의 권력 유지형 숙청입니다. 1967년의 갑산파 숙청, 1969년의 군부 숙청의 경우 김정일에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한 후계 구축형 숙청으로 분류됩니다. 소련 등에서의 ‘공산당 권력 유지’라는 다소 공적인 목적과 달리 북한에서 숙청은 김 씨 일가 세습체제의 수립과 유지, 승계라는 ‘사적 이익’에 활용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누군가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책임을 김정은 대신 짊어진다면, 이번 숙청은 어느 부류에 들어가게 될까요? ①과 ②사이에 정도에 해당하는 ‘권력 공고화를 위한 숙청’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집권 8년째, 외형적으로는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나이나 권력기반, 개인적인 자질, 자신의 지도 사상이나 조직 구축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완전한 권력 장악이 아닌 권력의 공고화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한 모멸의 책임을 엘리트들에게 전가하면서 혹시나 자기를 비웃고 깔볼 수 있는 여타 엘리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숙청의 목표는 당사자들이 아니라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엘리트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고모부 장성택을 죽여 권력 장악의 마지막 수순을 밟았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김정은의 상황 인식에 따라 이번 숙청의 범위나 강도가 더 넓고 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모든 것이 향후 대남, 대미 전략에 연동이 될 것으로 봅니다. 김정은은 올해 말까지를 명시해 ‘미국의 변화를 기다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숙청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고 아들 김정일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모든 부문에서 할아버지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김정은은 숙청의 기술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요. 북한 현대사를 관찰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생긴 셈인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숙청이란 수단은 같지만 과거와 지금의 정치적 맥락과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항일투사로서의 경력을 통치의 전면에 내세운 김일성과 그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3대째 물려받은 김정은은 정당성 차원에서부터 같은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이 올해 초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현금이 아니라 두 배 값에 해당하는 쌀과 비료를 주겠다는 정부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대량 현금 대북 송금(벌크 캐시) 금지 조항을 우회하기 위해 ‘친절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인데, 북한은 식량 보다 현금을 원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통일부는 관련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전제조건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자체가 무산된 상황입니다. 북한의 요구가 사실이라면 김 씨 3대 세습독재 체제 고유의 ‘체면 차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들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받아야 할 거래의 대가를 마치 받을 수 없는 것을 돌려받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은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의 체면, 그리고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면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해 이후 한국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지원 제의도 “구걸하라는 것이냐”며 거부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를 감안해 91억 원의 식량을 국제기구를 우회해 지급하려 하고 있습니다. 체면을 제외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달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제재에 막혀 달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제제로 들어오는 달러는 줄어들었지만, 경제의 현상유지를 위해서 전과 다름없이 달러를 쓰며 물건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달러화(dollarization)가 심화된 북한 원의 대 달러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국이 시장에 달러를 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선 수입을 위한 지출 문제입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5월 22일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연구원과 북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일반 가정도 벌이가 줄어들면 일단 저금해 둔 돈을 써서 생활규모를 유지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지금 그동안 축장해놓은 달러를 풀면서 경제의 크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국가적으로 외화소득이 줄어들고 있지만 외화지출은 유지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상품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겁니다. 벌어놓은 외화를 축내면서 당장의 경제적 고통을 모면하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2017년 중국에 17억30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고 32억5000만 달러 어치를 수입했습니다. 심화된 제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2억10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는데 그친 반면, 수입은 22억2000만 달러 어치로 크게 줄이지 않았습니다(중국 해관 통계를 인용한 것으로 중국의 대 북한 원유 공급은 제외한 것입니다). 제재 속에서도 북한의 시장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들어온 수입품이 공급측면을 버텨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현재 쌀값은 1kg당 5000 북한 원 수준입니다. 현재 달러 당 8000 북한 원에 유지되고 있는 환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위원은 “북한으로 유입된 외화의 대부분은 북한 돈으로 환전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 환전은 소규모 주변적 거래에 불과하다”며 “외화 수급보다는 북한의 통화량이 시장 환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현재 북한 통화량도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화량이 유지되기 때문에 달러 환율도 관리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올해 2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인플레이션에 관한 연구: 시장가격 변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연욱 NH투자증권 부장은 “북한 원으로 달러를 사려는 사람에게도 정부가 출혈을 감수하고 8000원대라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환율 방어에 나서는 것처럼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달러를 더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의 외형을 최대한 제재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부족한 달러를 풀어 쓰고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수입이 줄어든 가정이 전처럼 지출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통장잔고가 바닥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지 않는 상태에서 외화지출을 계속한다면 1997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환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김 박사는 올해 장형수 교수와 쓴 다른 논문에서 2018년 말 북한의 외화보유액을 25~58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2016년까지 증가세였다가 유엔 대북 제재가 강화된 2017년부터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결국 북한이 언제쯤 비핵화 결단을 내릴 것인지는 언제쯤 달러보유액이 바닥날 것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닿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말과 내년 말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언제까지나 모아놓은 달러를 쓰면서 지금의 경제규모와 체면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랜만에 남측 인사들의 평양 방문이 잦았던 지난해 하반기 평양. 북한 당국자가 “남북관계 진전은 남측 하기에 달렸다”는 당의 지시문을 암송하듯 말하자 남쪽 방문자가 “북측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받아쳤다고 한다. 북쪽 당국자는 주변에서 감시하는 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의식한 듯 정색하며 “어떻게 그런 무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쪽 방문자들이 김 위원장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안내원들은 “김 위원장이 근사하게 찍히지 않은 사진이 남측 SNS에 잘못 퍼지면 내가 곤란해진다”며 읍소를 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평양냉면을 공수해 와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조금 다른 독재자인가’라는 순진한 질문을 갖게 됐다.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제3국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 취재원들에게 물어물어 모은 증거를 종합하면? 그 역시 선대처럼 신격화된 독재자에 불과했다. 독재도 독재 나름이다. 정치학자 스테펀 해거드와 로버트 코프먼은 공저 ‘민주화의 정치경제’(1995년)에서 ‘목적’을 기준으로 좋은 독재와 나쁜 독재를 구분했다. 집중된 권력을 공익을 위해 쓰면 전자, 일부 지지층의 사익을 위해 쓰면 후자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한 줌의 추종자들이 2, 3, 4대를 이어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나쁜 독재다. 나쁜 독재는 관료적 경화(ossification)와 약탈(predation)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엘리트들이 독재자의 변덕스러운 의중을 읽느라 복지부동하고, 독재자는 엘리트와 대중의 가치를 마음대로 유린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 위원장이 동분서주하며 대외 평화공세를 폈지만 단골 등장인물은 그를 포함해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 판에 끼지 못한 엘리트들은 “정말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며 외려 남측 인사들에게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 2월 하노이 회담에서야 김 위원장의 내심이 드러났고, 말로만 비핵화와 남북 교류 놀음에 부화뇌동한 대미 대남 일꾼들은 지금 조직지도부의 검열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인민경제 제일주의’를 외치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내보내지만 경제 관료들은 ‘경제 제재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손놓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집권 이후 김정은의 한마디에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 수많은 당정군 관료들이 생명을 잃고 전 재산을 털리는 것을 목격한 이들은 그저 복지부동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국내외에서는 ‘협상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기’라는 등 음모론이 아직도 나오고 있지만 핵심 원인은 북한 체제 내부에 있다. 독재자가 “우리가 영변 내놓으면 미국이 당연히 제재 풀어야지?”라고 내심을 밝힌 이상 그 어느 누가 “트럼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김정은이 말로는 “경제 재건 우선”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엘리트와 인민들이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해 딴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기지 않을까.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가기 힘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시대착오적인 김씨 3대 세습 독재정치다. 독재자의 측근들도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우리가 굳이 외면하고 미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Q. 결국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다음 단계(핵군축 등)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아니요! 그건 옳은 선택이 아닙니다.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은 북한이 청년 여러분들의 미래를 어떻게 위협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기성세대의 무능함과 편협함, 냉정한 국제관계의 역학이 맞아 떨어지면 아마도 북핵 문제는 어정쩡하게 파킹(parking) 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움직여야 하는 빚더미가 여러분들에게 대물림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선택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최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국내외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이 뻔한 대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원하는 것의 ‘메우기 힘들 것 같은’ 간극을 적나라하게 알게 된 주요 행위자들이 하나 같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대충 묻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미국은 북핵문제를 대외정책 1순위에서 점차 내려놓는 모양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에 “핵실험만 하지 말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만 안하면…”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내년 재선을 앞두고 중국과 이란에 관심을 집중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더욱 강화하면서 북에 대해서는 납치자 문제 해결 없이도 대화하겠다며 2중 플레이에 나선 상태구요. 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북한에 2009년 이후 최고치인 136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우려에도 북한 시장에 쌀 가격이 안정세인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식량 지원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최근 우아한에 원유와 정제유 공급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을 보내온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러시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얼마나 북한에 기름을 보내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 국제정세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감지한 북한도 남한을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대남 민간 창구인 민경련과 민화협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킨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20여 년 동안 북한 식량 위기를 가장 먼저 알리는데 공을 들여 온 법륜스님을 3일, 민간단체들의 추정으로는 해외동포 관련 루트로 방북시켜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을 끌어들여 정부를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통일부는 17일 국제기구를 통한 91억 원 인도지원안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의 사실상 첫 단추에 속하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허용 카드와 함께 말이죠. 물론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를 계속 우선순위에 둘 수도 있고, 미국의 압박을 받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버릇들이기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통일부의 이번 조치가 북한을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마중물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최근의 상황이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통적으로 수동적입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대응하고 대화하자고 하면 나섭니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실험과 ICBM 발사 실험은 국내 여론을 움직여 선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향한 작은 도발(최근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듭니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버리지 못하고 결정적일 때마다 북한을 지원해 제재와 압박의 국제적인 레버리지를 떨어뜨립니다. 일본은 북핵문제에 가장 강경하지만 납치자 문제 등을 이유로 북한과 대화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압박과 대화로 오락가락 합니다. 최근 각국의 움직임들은 모든 면에서 북한이 핵보유를 굳혀가면서 미국의 제재 속에 주변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아주 좋지 않은 종착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파키스탄 모델: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핵보유국이 된 국가로 분류됩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분리 독립하면서 인도와 정치 군사 종교로 대립하게 된 파키스탄은 1974년 인도의 핵보유에 대응해 핵개발에 나섰습니다. 이후 1998년 5월 여섯 차례의 집중적인 핵실험을 실시해 핵무기 제조 기술을 입증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등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에 나서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파키스탄을 반(反) 테러전쟁에 참여시키면서 제재를 완화했고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미국의 묵인 하에 사실상의(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얻게 됩니다. 파키스탄은 이후 우라늄 농축 기술을 북한에 전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북한은 현재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주장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박 박사)양소희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

Q. 4일과 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표출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의 반응은 탐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지원이 비핵화 대화 재개에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14학번A.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 계획을 밝힌 가운데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EF) 사무총장이 방한해 국내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각각 비슬리 총장을 접견하고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장관은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한 대북지원의 최고위 결정권자이고 서울시는 대북지원을 희망하는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손’들인 셈이지요.하지만 정부는 15일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북 식량 지원 시기와 방법, 규모 등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9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내 대북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북지원에 대한 다양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상대방인 북한도,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재 유지를 외치고 있는 미국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식량 지원이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하고 국회 논의도 있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9일 발언을 전하며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그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요 촉진자 역할을 자임해온 정부가 2월 하노이 회담 결렬이후 국제사회에 대앙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대북 식량지원이라는 소통 카드를 꺼낸 것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국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김 장관이 비슬리 총장을 만나 “인도주의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WFP의 기본 입장에 공감한다”고 말했지만 식량지원을 수단으로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도주의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순수하게 하려면 출범 직후부터 조용히 꾸준히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정부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핵협상 촉진을 위한 수단으로 즉 대북 달래기용으로 식량지원을 꺼냈고 이는 인도적 지원의 순수성 자체를 스스로 왜곡시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주성하 탈북 기자도 14일 페이스북에 “늘 대북식량 지원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지만 이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지금 식량이 모자라지도 않고 북한이 (한국에는) 달란 말도 안 하고, 국제기구에 요청한 이유는 몇 년 전에 털어먹은 군량미 창고를 채우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습니다.실제로 올해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WFP의 주장(2009년 이후 최저치인 연간 생산량 490만t으로 136만t의 곡물 부족이 예상된다는 지난해 전망)에 다양한 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 제재를 우회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덕분에 시장 쌀값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보도도 나왔고 북한 당국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수치를 국제사회가 알 수 없다는 근본적인 지적이 나옵니다. 제가 지난해 8월 31일 ‘NK노믹스’ 코너에 보도()한 것처럼 핵보유국임을 자처하는 북한은 남한에서 인도적 지원은 더 이상 받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습니다. 남측 지원단체들이 마치 걸인에게 먹을 것을 주듯 거들먹거리지 말고 돈을 들고 와서 경제사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그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당연한 것이며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는 겁니다. 주 기자가 말한 세 번째 이유는 고질적인 전용(전용)의 문제입니다. 북한 당국이 인도적 지원 식량과 물품을 가로채 군인과 권력자들을 위해 쓴다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충분한 우려입니다. WFP는 투명성을 담보할 장치들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그럴 장치들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입니다.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청와대는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통화 직후 서면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다음날인 8일(현지 시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선다면 미국은 간섭하지 않을 것(not going to intervene)”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버리지가 떨어지지만 인도적 지원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는 미국 정부의 마뜩치 않은 상황 인식을 보여줍니다.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와 같은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잘못 하다가는 ‘주고도 욕을 먹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에게 인도적 지원은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2006년까지는 핵실험을 하지 않았던 북한과, 지금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다른 상대입니다. 다른 상대에게 같은 접근을 하다보니 국내외에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건 대북 식량지원 카드는 이미 신선도가 떨어진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Q.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북한이 4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은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무력대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단지 방공능력을 시험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지난달 22일 우아한을 통해 북한의 ‘소극적인 도발’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기 좋게 협상 결렬을 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실제 발사 실험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의 살라미(도발이나 대화의 수단을 조금씩 끊어서 시간을 끌며 내놓는 것) 전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8일 저녁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규탄 성명을 보면 이번 사건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대변인은 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내놓은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①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응당한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를 애써 참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대한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한데 대하여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상응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아 6.12조미공동성명 리행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②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의 합의를 무시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과 4월에만도 남조선에서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동맹19-1》과 련합공중훈련이 진행되였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계획들이 끊임없이 작성되고 있다.”③ 이런 가운데 우리도 ‘전술 유도 무기’ 능력 시험을 하는 자위적 군사훈련을 단행하였고 이는 한국 등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우리 군대가 진행한 훈련은 그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서 지역정세를 격화시킨 것도 없다. 어느 나라나 국가방위를 위한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서 일부 나라들이 다른 주권국가를 겨냥하여 진행하는 전쟁연습과는 명백히 구별된다.”대변인은 이런 논거를 토대로 한국과 미국 등이 자위적 군사훈련을 도발이라 비난하고 있다며 “대단히 불쾌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경종을 울린다”고 주장했습니다.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군이 ‘발사체’라고 표현한 것이 과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탄도미사일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대변인은 문답에서 “방사포와 전술 유도 무기”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한미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발사체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북한형으로 보입니다.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이 상원 청문회에서 “미사일과 로켓”이라는 표현을 한 가운데 우리 군은 여전히 “발사체”요 “분석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어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려스럽게도 어제 대변인 문답까지 이어진 북한의 무력도발 살라미 전술은 과거 북한이 대화국면에서 도발국면으로 기조를 전환하면서 사용했던 패턴과 너무 유사합니다. 꼭 10년 전인 2009년 상황을 보면, 그해 4월 5일 2년 인공위성을 빙자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한 북한은 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4월 13일)을 비난하면서 6자회담 거부, 핵시설 원상복구 등을 한 뒤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합니다. 이런 과거 패턴으로 볼 때, 북한은 조금씩 무력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며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할 것으로 보입니다.다만, 이번 도발은 과거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아직 북한도 대화기조는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ICBM이던 것이 지금은 단거리 미사일이고, 국제사회에 대한 반발도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에 그쳤습니다. 문답은 한국과 미국 등에 대한 경고로 끝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의 차후 언동을 지켜볼 것”이라는 정도에 그쳤습니다.이런 분위기를 읽은 한국 정부는 미국의 묵인 하에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섰고 미국 내에서도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에만 합의하면 제재 완화나 해제 조치를 조기에 단행할 수 있다는 ‘당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확인한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습니다.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사실상 대북제재를 와해시키겠다는 북한, 이참에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올 한해도 북한의 틀에 박힌 ‘도발의 볼레로’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만든 확실해 보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에서 철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족집게 예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태 전 공사는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지난해 6월 4일 보도된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지금 본인의 능력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치군인에 불과한 그에게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지금 자리는 분에 넘친다. 물론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지만, 나중에 숙청될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언했다. 그는 “대화가 잘될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삐걱거리면 곧바로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에 들어간다. 핵문제의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김정은과 김영철이 잘못 내린 결정이 많을 텐데,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이라도 책임은 김영철이 지게 된다.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김정은은 뒷짐 지고 모른 체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지금 현 상황을 외무상이자 대미협상 베테랑인 이용호가 끌고 나간다면 상당히 오래가겠지만 김영철이 운전하고 있어 언제 갑자기 멈추어설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에 국제 전문가들을 초대하겠다고 남측에 밝혔다가 뒤늦게 철회한 것이 대표적인 ‘삑사리’ 사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직전 출간한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영철과 비슷한 운명을 거친 엘리트들의 사례를 다수 제시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남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최승철(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뒷선에서 지휘했던 한시해(전 유엔 주재 대사)와 권희경(전 주러시아 대사),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관계에 발을 들였던 류경(국가보위부 부부장)도 총살을 당했다. 김영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 달이 넘게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숙청설이 돌았지만 이달 열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랐고 국무위원 자격으로 김정은과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숙청은 면한 것처럼 보였다. 현재도 그가 장금철로 교체된 것만 정부 당국이 확인된 것이어서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원직은 유지하는 것인지, 최고인민회의 이후 김정은이 마음을 바꿔 모든 직책에서 철직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특정 엘리트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즉시 경쟁 엘리트들이 그동안 숨겨졌던 다양한 비리를 ‘상소’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더 강한 형태의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지만 김정은의 군사 교관이라는 인연으로 살아남았던 김영철이 ‘트럼프 폭탄’을 맞아 정치적 운명을 다할 것인지 주목된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Q.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의 협상팀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에 참관했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비난과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많은 외신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미국과의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궁금합니다.-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질문하신 대로 2월 말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회담 결렬’이라는 홀대를 당한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날선 말과 군사도발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강도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점입니다.우선 날선 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인 4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 보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앞서 17일 볼턴 보좌관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데 대해 “두 수뇌분(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해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었다”며 맞받아치고 나온 것입니다.매력이 없고 멍청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볼턴 보좌관은 기분이 나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실무책임자 격인 최선희와 볼턴 보좌관이기에, 이번 발언의 내용은 ‘너랑 이야기 안하고 싶다’는 뉘앙스로도 들립니다.하지만 북한을 오래 연구하다보면 그들이 내뱉는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형식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형식으로 했는지에 따라 평양 내부의 기류를 다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결론적으로 이번 발언은 북한 측도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선희라는 중요한 인물의 발언이지만 그 형식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의 발언은 다양한 형식으로 외부에 공개되는데,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은 부류입니다. 우선 주체가 최선희가 아니고 기자입니다. 나중에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기자가 물어보니 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자가 잘못 보도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입니다. 만약 최선희 부상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직접 발언했다면 더 강한 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는 외무성 성명, 공화국 성명 등이 있겠습니다.이런 관점으로 이전의 발언들을 살펴봅시다. 미국의 또 다른 회담 실무 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해 “폼페이오가 회담에 또 관여하면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고 한 18일 발언 역시 이름마저 생소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한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강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실세중의 실세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올라선 최선희가 아니라 권정동 국장이 발언한 것에 대해 ‘나를 볼턴보다 낮게 보는 것이냐’며 항의해야 할 판입니다.결론적으로 북한의 날선 말의 공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청중인 것으로 보이고, 하고 싶은 말은 ‘측근들의 말을 듣지 말고 우리 위원장과 잘 좀 대화해 보라’는 취지로 들립니다.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과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옆에서 말리는 볼턴과 폼페이오가 불만이고 그래서 이 둘을 향해 ‘소극적인 빈정거림’을 퍼붓고 있는 셈입니다. 즉, ‘너랑 말 안 해’가 아니라 ‘말 좀 잘해보고 싶으니 선수 바꿔’ 정도의 뉘앙스가 깔린 것입니다.북한의 무력도발도 마찬가지입니다. 20일(현지 시간) 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잘 지적한대로, 북한의 최근 군사움직임은 북미대화의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불만을 표시하는 수준입니다. 김 위원장이 16일 평남 순천 군부대를 시찰하고 17일 신형 전술 유도무기 사격 실험을 참관한 것을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하노이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이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전후해 인공위성을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그 길을 현재까지는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행할 경우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위반하게 되도 유엔은 2013년 1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에 넣은 자동개입 조항(트리거)에 따라 또 다른 대북제재 결의안을 내놓게 됩니다.이에 따라 탄도미사일이 아닌 신형 전술 유도 무기(한국 정부는 전차나 장갑차 같은 지상표지 파괴용 유도무기로 추정)를 시험발사 하는 선에서 ‘소심한 형식으로’ 하노이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당한 수모에 대한 불만 표시를 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패트릭 섀너헌 미 국방장관 대행도 18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탄도미사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을 보면 미국도 북한의 속마음을 잘 읽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전문가들의 관심은 멀리 내년으로 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대화의 판을 깰 만한 극한 말이나 무력도발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말이 온다고 해도 미국은 핵과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강대국적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 같고 이 점을 김정은도 모를 리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평행선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상황이 악화된 채 내년을 맞게 될 때, 김정은이 또 어떤 국면전환을 꾀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12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 14기 1차 회의에 참석한 북한 엘리트들은 국무위원장에 재추대 된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듣고 차오르는 한숨을 참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김 위원장의 발언 가운데 북미 3차 정상회담 전망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요구 정도에 관심을 가졌지만 사실 김 위원장은 연설의 대부분을 엘리트와 주민을 상대로 강력한 내핍과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데 할애했기 때문입니다.A4용지 16장에 이르는 긴 연설문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공화국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장기화 될 것 같으니 자력과 자강으로 이겨나가자’는 것입니다.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라는 외교적 실패의 책임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전가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경제난 극복의 책임을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른바 ‘비핵화 협상의 국내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특히 어떤 부분이 엘리트들의 한숨을 자아냈을까요? 우선 김 위원장은 연설 초반에 엘리트들의 특권의식과 부정부패 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인민 위에 군림하여 인민이 부여한 권한을 악용하는 특권행위는 사회주의의 영상과 인민적 성격을 흐리게 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약화시켜 사회주의제도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투쟁을 국가존망과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로 내세우고 그와의 단호한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도록 하겠습니다.”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인민 위에 군림하지 말라는 말은 정당한 듯 보이지만 부패가 만연된 북한 사회에서 이 말은 ‘누구든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에 다름 아닙니다. 마치 과거 한국 권위주의 군사정권하 정풍운동처럼, 지도자에 대해 불만을 품는 세력이 있다면 누구든 부패와 파당형성, 반국가사범으로 몰아 단속하겠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북한 사정당국은 최근 부패한 관료들을 잇달아 처벌하며 부족한 달러를 흡혈하고 있습니다.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군기잡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각급 인민정권기관(내각과 산하 지방정부) 일군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에선 이렇게 말합니다.“일군들은 당에서 밀어주어야만 일자리를 내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사업태도를 결정적으로 뿌리뽑아야 하며 당에서 준 과업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강인한 혁명가적 일본새를 지녀야 합니다.”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한과 자원이 부족한 내각과 지방정부에 핵개발과 제재로 인한 국가경제 파탄의 책임을 돌리는 전형적인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 위원장의 위협은 인민들에게도 향합니다. 연설 초반부터 ‘인민생활 제일주의’를 강조하며 민본정치를 홍보하더니 정작 인민들이 당과 국가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담아야 하는 시장을 통한 자본주의 사상의 확산을 경고합니다.“사람들의 정신을 침식하고 사회를 변질 타락시키는 온갖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현상들의 자그마한 요소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가지고 사상교양, 사상투쟁을 강도 높이 벌리며 법적투쟁의 도수를 높여 우리 국가의 사상문화진지를 굳건히 수호하여야 합니다.”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라는 개념은 그동안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정권만 잡으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던 ‘사정한파’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김 위원장은 “온 사회에 사회주의 준법기풍을 철저히 확립하여 전체 인민이 높은 준법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법을 존엄 있게 대하고 자각적으로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며…”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북한의 위정자들이 법을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사용해 온 것을 의식한 듯 “법집행에서 이중규율을 허용하지 말며 법적용에서 과학성과 객관성, 공정성과 신중성을 철저히 견지함으로써…”라고 덧붙였습니다.결론 부분에서 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앞선 연설 곳곳에는 제재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힘으로는 우리를 어쩔 수 없는 세력들에게 있어서 제재는 마지막 궁여일책이라 할지다로 그자체가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만큼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스스로 ‘국가와 인민의 근본이익’이라고 정의한 핵보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사실, 핵과 미사일, 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의 전면적인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항해 다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면 더 강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는 현실 인식도 드러납니다. 미국에 ‘계산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면서도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볼 것”이라고 한반 물러섭니다.마치 시간은 자신들의 편인 양 표현하고 있지만, 글쎄요? 올해 말이 지나고 2020년 새해가 와도 뾰족한 수단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북한의 엘리트들은 내핍과 사정정국에서 살아남을 묘안을 고민하며 앞서 나라를 등진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3차 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며 김정은 달래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김 위원장, 시간은 당신 편이 아니야!”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Q.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면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외신 기자회견을 여는 등 미국에 대한 불만을 다양한 창구를 통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내 정치의 최고지도부에서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앞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까요?-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A. “대화가 잘될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삐걱거리면 곧바로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에 들어갑니다. 핵문제의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김정은과 김영철이 잘못 내린 결정이 많을 텐데,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이라도 책임은 김영철이 지게 됩니다.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김정은은 뒷짐 지고 모른 체하겠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해 5월 27일 기자와 만나 한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직전이었고, 양국의 실무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였습니다. 태 전 공사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정말 내공이 있고 학문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발언을 돌이켜보면서 그의 내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이 평양으로 돌아온 이후 한 달이 되어가지만 협상 개최의 선봉에 섰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10일 북한 전역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 후보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그가 공개활동을 했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정확한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잠적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태 전 공사는 당시 “정치군인에 불과한 김영철이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지만, 나중에 숙청될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추정의 역사적 근거들은 지난해 4월 출간된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넘쳐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남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최승철(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뒷선에서 지휘했던 한시해(전 유엔 주재 대사)와 권희경(전 주러시아 대사),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관계에 발을 들였던 류경(국가보위부 부부장) 등도 숙청됐습니다. 김정은이 이번 회담 결렬의 희생양을 내세워 처벌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북한 내부에 비핵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최선희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열린 외신기자회견에서 군부와 군수업체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실 우리 인민들, 특히 군부와 군수공업 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 수천 통의 청원 편지를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내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책임을 돌리려는 맥락에서 평양 내부 분위기를 전한 것입니다. 김 위원장에게 청원을 올렸다는 이른바 ‘북한 보수’ 세력의 위력은 상당합니다. 2000년대 초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종합시장 도입이라는 제한적인 경제개혁 정책을 단행했을 때 이들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북한 사회주의의 평등 가치가 무너진다며 조직적으로 반발해 결국 김 위원장이 개혁조지를 되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현재 북한 주민들에게는 국제사회의 제재 유지로 인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불만이 퍼져나가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청원과는 반대되는 것이지요. 핵을 포기하고 제재를 풀어 경제난을 덜어달라는 주민들의 청원이 비록 공개적으로 표출은 되지 않더라도 눈빛에서 눈빛으로 확산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난과 함께 내부 보수층의 반(反) 김정은 여론이 결합하면 통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상황은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엘리트 지배층이 매우 힘든 선택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 완화 등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모라토리엄)에 대한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 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적인 조치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다시 ‘핵무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등 내부정치적인 일정에 맞춰 모라토리엄을 깬다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더 강한 제재를 맞이하게 됩니다. 상대방인 미국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계기로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평양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사단법인 북한연구학회는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 정산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제도·담론·실천전략’을 주제로 춘계학술회의를 연다. 급락을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평화체제의 실현을 위한 제도, 담론, 실천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다. 회장인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2차 북-미 회담이후 한반도 정세가 한치 앞을 바라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공론의 장을 통한 연구자들의 집단적 고민과 노력이 하나하나씩 쌓이면 밝은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가장 먼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회담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북미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 지 궁금합니다.-김소현 부산교대 교육학과 15학번(아산서원 14기)A.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장세호 연구위원은 21일 발간된 이슈브리프를 통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조성된 구조적 현실 때문에 북한이 최우선 정상외교 대상으로 러시아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게 확장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외교가에서도 정확히 언제 어디서 열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가 아닌 극동 지역 정도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장 위원이 말하는 구조적 현실의 핵심은 ‘미국의 비핵화 문제 접근법 변경’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단계적 동시적’ 접근법에 미국과 공감을 이뤘는데,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다시 ‘일괄타결식’ 접근으로 회귀한 셈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은 다음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교섭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할 우군을 확보하고 국제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일까요. 우선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이 꼽힙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여론이 빗발치자 중국이 북한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중국 배후론’을 들고 나온 바 있습니다. 다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이런 의혹을 키운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중국이 할 수 있습니다. 북미협상 중재자를 자처했다가 촉진자로 물러선 한국 역시 북한에게 뾰족한 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북한을 포용해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이 있습니다. 옛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북한 핵문제 진행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동북아시야 영향력 확대를 꾀해 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제재에서 풀려나기는커녕 정치 경제 안보적으로 더 큰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상으로 북한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러 대화에 참석한 한 언론인은 참석한 러시아 측 인사들의 주장이 최근 북한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언을 토대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 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은 반열로 놓는다. … 국제사회 제재에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 제재는 핵개발을 지연시켰을지 몰라도 막지는 못했다. 평양 시내에 금수 사치품인 렉서스와 도요타자동차 등이 굴러다니지 않는가(국책연구소 소장).” “핵 폐기 검증 사찰단은 북한뿐만이 아니라 주한 미군에도 보내야 한다. 미국의 핵 폭격기가 북한 주변에 비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반도 비핵화에 포함되어야 한다(전 주한대사).”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라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 있는 북한 근로자는 모두 돌아가야 한다. 많을 때는 7만 명까지 됐으나 지금은 1만5000명가량인데 이것이 ‘0’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결의안에서 근로자를 제외하지 못한 것은 ‘외교적 실책’이었다(전 주북한대사).” 유엔 대북제재를 승인했고 이행을 책임져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인사들이 제재를 비난하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특히 국책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 파기처럼 합의를 쉽게 뒤집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북미 양국만의 합의가 아니라 여러 국가가 참여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6자회담 프로세스 같은 다자협의체를 다시 가동하자는 것으로 북미 양자회담 국면에서 붉어진 ‘러시아 패싱’ 논란을 잠재우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여야 한다는 지극히 러시아 국익위주의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정황들은 러시아의 개입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비핵화 협상의 주체는 미국과 북한이며, 러시아 역시 한국이 자처했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북-러 밀월 속에서 북핵문제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개입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레짐을 흔드는 상황까지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러시아 역시 공식적으로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반대하고 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제재 이행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이유로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은 러시아의 경솔한 행동에 반격을 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대북 제재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선언해 주거나 기존 제재의 예외조항으로 빼놓은 나진하산 경제협력 사업 추진 필요성 언급 등의 선언적인 조치들은 나올 수 있습니다. 장 위원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등장을 꼭 부정적으로 볼일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현재의 대화와 협상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그릇된 상황 판단과 이에 따른 군사적 도발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히 지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북한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지난달 28일 심야에 베트남 하노이에 있던 외신 기자들을 멜리아호텔로 불러 들였을 때, 저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뒤늦게 연락을 받은 한국 기자들이 달려갔을 때, 미국과 일본 등 외국 기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한밤 기자회견’의 타깃 오디언스는 ‘세계 여론’이라는 점을 직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하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협상의 판을 깼다, 우리 위원장님은 피해자다’라는 식의 세계 여론 선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5일 평양에서 북한 주재 외교관과 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이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러시아 타스통신의 1보로 알려지기 시작한 기자회견은 AP통신 등 순전히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외신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대내용인 노동신문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번 기자회견 역시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국제용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30여 년의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세계 언론과 외교가를 상대로 선전전을 벌여 왔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우호국을 설득하고 상대국의 유력 인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나팔수 역할을 맡기는 ‘초청외교’를 반복해 왔습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르게이 키슬랴크 등 러시아 상원의원들이 16일 평양에 도착해 21일까지 북한 측과 양국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타스 통신이 17일 보도했습니다. 키슬랴크 의원은 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 출신으로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돼 2017년 본국으로 소환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임천일 외무성 부상이 14일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아시아담당 외무부 차관과 세르게이 베르쉬닌 외무 차관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앞서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던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 부장을 만났습니다.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흥정을 하다 한 방 맞고 온 옛 사회주의 동생국가 북한을 싸고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에게 버림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동정의 전문을 보낸 것도 일면 이해가 갑니다(15일 북한 노동신문). 하지만 북한의 노력이 진정 세계 여론을 변화시켜 미국의 대북정책을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현 사회주의 국가 진영이 편을 가를 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서유럽의 여론은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싸늘한 반응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의 언론과 외교가에서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 대한 동정심은 ‘1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만 여전한데, 북미 회담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충 합의하는 ‘나쁜 거래(Bad Deal)’ 가능성을 우려했고 회담이 깨지자 저러다 또 북한과 전쟁을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라고 합니다. 유럽 주요국들의 싸늘한 반응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보다는 조금 더 북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지만, 2017년 북한이 사거리 1만km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그 미사일을 평양에서 동쪽으로 쏘면 미국이 사정거리지만, 왼쪽으로 쏘면 런던과 파리, 베를린이 사정거리에 든다는 사실이 널리 퍼진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서유럽 국가들은 트럼프가 밉고 못미덥긴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WMD 전체를 포기한다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까지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세계 여론이라는 것을 실체가 없는 신기루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론은 자신의 생각을 전세계의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개별 국가들의 헛된 망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각국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국가이익 관점에서 저마다 달리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두로 추앙받는 고 한스 J 모겐소 전 시카고대 교수는 그의 대표작인 ‘국가간의 정치’에서 세계 여론의 허망함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북한 당국자들의 필사적인 세계 여론 선전전은 그 자체의 효과를 믿기 때문으로 보기 힘들어 집니다. 오히려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로 빈손으로 돌아온 뒤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독재의 하수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선희 부상은 김 위원장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재개와 관련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재재를 풀기 위한 협상이 또 다른 제재를 부르는 우를 범하길 바라지 않지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 길을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빈센트 부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말한 ‘김정은 체면 살리기(face saving)’가 가뜩이나 북한 편이 아닌 세계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 말입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예로부터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난 외교참사는 국내정치적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심한 경우 정권의 존망을 좌우하기도 하지요. 나치 정권의 팽창주의 야욕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1938년 9월 히틀러와 체결한 뮌헨 협정이 대표적입니다. 약소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나치의 입에 넣어주고 영국의 안위를 도모한 비겁한 외교였습니다. 내부에선 윈스턴 처칠 등이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1년 뒤 독일이 협정을 어기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체임벌린 정권은 무너지게 됩니다. 훗날 ‘유화정책’의 대명사가 된 이 조약에 대해 체임벌린은 제대로 변명도 못한 채 1940년 죽음을 맞이하지요. 2월 28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의 결렬은 북한에게 외교참사가 분명합니다. 내부에서 수령이라는 이름으로 신격화 된 최고지도자가 친히 해외에 나가서 외국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노고를 했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북한 건국 71년사에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방국인 소련이나 중국과의 협상도 아래 실무자 선에서 잘 조율된 문서에 서명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미국과의 1994년 제네바 합의나 주변 5개국과의 2005년 9·19공동성명도 실무자가 이룬 합의를 최고지도자가 승인하는 ‘바텀 업(Bottom-Up)’ 방식이었습니다. 이른바 ‘탑 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미명 하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그것도 ‘협상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샅바 잡이를 한 김정은 위원장은 보기 좋게 업어치기 한 판을 당한 형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위대한 지도자(Great Leader)라는 호칭으로 김정은을 하늘높이 띄웠다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포기라는 빅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회담이 결렬된 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고 쫓아갔지만 허사였다고 합니다. ‘모든 외교참사는 국내정치적 분란을 부른다’, ‘북미협상의 결렬은 김정은에게 외교참사다’라는 명제가 맞는다면 삼단논법에 따라 ‘북한 국내정치에 분란이 온다’는 결론이 이어질까요? 분란이 있다면 어느 정도이고 어디까지 영향이 미칠까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우리가 평양의 내부 정치에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까지 감지된 변화는 세 가지입니다. 회담 결렬 다음날인 1일 새벽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김정은의 속마음을 전한 것은 하노이 직전까지 북미접촉을 주도한 김영철이 아니라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하노이 회담 결렬 8일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김정은은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 형식으로 귀국 후 첫 대 국민 메시지를 보내며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언급했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습니다. 공작과 협상 전문가인 김영철이 뒤로 물러서고 핵문제 전문가인 이용호 최선희가 나서는 것은 미국 측에서 협상을 담당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사라지고 북핵 전문가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면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주민들 사이에 외부 정보유통이 빨라지고 있음을 아는 최고지도부는 8일 만에 고민을 끝내고 협상을 깬 미국보다는 그것에 기뻐한 일본을 비난하는 형식으로 공식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김정은은 ‘수령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예방주사 같은 한마디로 수령이 나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분란이 끝날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대규모 숙청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북미 대화에 대한 노동당 내부의 정책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가 김정은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과 ‘이번에는 뭔가에 합의하지 않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의 아주 특별하고 민감한 급소를 찔렀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령의 권위’라는 북한 수령 절대주의 독제체제의 핵심입니다.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힘의 중심부(Center of Gravity)’의 북한 판이라고나 할까요? 북한 체제의 힘은 김정은이 들고 있는 핵미사일이나 중국과의 동맹관계에서도 나오지만 신처럼 신성시되는 수령의 권위가 시원인 것입니다. 전쟁의 철학으로 불리는 ‘전쟁론(On War)’에서 클라우제비츠는 ‘힘의 중심부’란 적의 에너지가 집중된 곳. 그곳을 공격해 무너뜨렸을 때 전쟁의 목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그런 지점이라고 말합니다.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김정은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 상황 만들어 냈다고 해석합니다.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를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협상해줄 것처럼 김정은을 하노이로 끌어낸 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빅딜 카드를 꺼내 결렬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미국이 정말 계획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정보기관의 수준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의 수준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의외의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평양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화를 예의주시 할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오랜 장고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고, 과거의 패턴대로 누군가 수령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는 피의 바람이 불 수 도 있습니다. 반대로 수령도 인간이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방식의 선전선동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비핵화 협상과 북미의 국내정치’가 한반도 주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채널A의 베트남 하노이 특설 스튜디오가 마련된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 인근 렉스 호텔의 13층 옥상이었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현지 특보 해설위원으로 초빙돼 아침에 출근해서 특보들에 출연하고 저녁에 종합뉴스 해설을 마친 뒤 땅으로 내려오는 특이한 생활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태운 비스트 1호 승용차가 숙소인 메리엇 호텔에서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장소였던 메트로폴 호텔로 가고 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며 해설할 수 있었습니다.그 높이가 몇 십 미터나 될까. 옥상 스튜디오에 올라 있으면 호수를 둘러싼 하노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뿌연 매연 속의 도시, 촘촘히 들어선 프랑스풍의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베트남전쟁 당시 1965년부터 시작된 하노이 북폭에 참여한 미군 조종사들과 이에 맞선 베트남 조종사들의 시야가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었습니다. 소련제 미그기를 타고 미군 폭격기에 맞선 이들 가운데엔 북한에서 파병된 공군 조종사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의 베트남 파병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신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종사 수 백 명을 비롯해 북한 군 5000~1만 명 미만(연인원)이 파견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파병 당시 김일성 주석의 유명한 발언들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1965년 파병 여부를 결정하면서 김 주석은 “젊은 조종사들이 실제 전쟁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맞섰던 미군 전투기들과 다시 대결해 봄으로써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제2의 남침에 대비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화 시에 전쟁 대비를 하기 위해 장교들을 외국에 보내 경험하게 하라”는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 주석은 또 “베트남이 제공하는 전투기를 잘 몰고 승리한 뒤 그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기자의 하노이 출장 전인 19일 귀띔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되자 1978년 말 인민무력부장 백학림 단장을 비롯한 군사대표단을 베트남에 보내 “이제 우리가 한반도 통일을 할 차례”라며 베트남 정부에 F-4 팬텀기 4대 등 미군 장비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이 사실을 안 소련 측이 ‘절대 안 된다. 저걸 주면 북한이 남한과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반대했다고 전했습니다. 베트남이 거부하자 북-베트남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태 전 공사가 “베트남이 한반도 문제와 엮이면 결과는 한국에 유리했다”고 한 대목은 결과적으로 앞을 내다 본 선견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베트남전쟁 패전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 깊은 고민과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만에 빠져 결국 붕괴하게 되었다. 북한도 1968년 무장공비 파견 등 무모한 대남 무력도발과 중화학 군수공업 편중 경제정책을 펴다 경제의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지적하면서 하노이 회담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실제로 하노이 담판을 폼 나게 노렸던 김정은 위원장은 ’때로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의 기술‘에 제대로 걸려 빈손으로 평양행 기차를 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1호 열차를 타고 중국을 관통해 북향하던 그는 뜻밖의 귀향 선물을 받은 듯합니다. 한국과 미국이 바로 이달로 다가온 키 리졸브 연합군사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입니다. 합동 군사연습과 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는 북한이 영변핵시설 동결에 합의했을 경우를 상정하고 논의되었던 ’상응조치‘의 하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이끌기 위한 유인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번 결정은 지난달 28일 김정은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기자회견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훈련에 수억 달러가 들어간다. 워 게임(war game)을 할 수 있는데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자 나온 조치입니다.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는데 돈 쓰기 싫다‘는 순전히 경제적 이유라는 이야기지요.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하는 것이 안보요 그 핵심은 훈련입니다. 이미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을 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의 마찰(friction)과 훈련의 필요성“우리는 위험, 육체적 노고, 정보, 마찰을 서로 연합해 전쟁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정의하였다. 행동을 방해하는 매개물이 된다는 제한성 때문에 일반적인 마찰이라는 단일 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 마모를 줄일 수 있는 윤활제가 있을까? 단 하나가 있지만 장군이나 군대가 항상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전투 경험이다. (중략) 평화 시의 기동작전은 진짜 전투 경험의 약한 대체제이지만 일상적이고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부대에 이점을 줄 수 있다. 기동작전을 계획하는 것은 경험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더 많다. 작전에 포함된 마찰의 요소들은 장교들의 판단력과 상식과 결단력을 단련한다. (중략) 평화 시에 전쟁에 대한 익숙함을 얻는 다른 매우 유용한-비록 제한적이지만-방법은 실제 복무해본 외국의 장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장교들 일부를 전투장에 보내 전쟁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하는 것이다.”Clausewitz, Carl von, On War, ed. and trans. by Michael Howard and Peter Pare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6), p. 122.비록 북한과 미국이 여전히 비핵화 대화를 이어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번 합의 결렬에서 드러난 것처럼 양측의 인식과 이해관계 차이는 너무나 큰 상황입니다. 자칫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고난의 행군‘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멀고 먼 길에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할 때,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가장 중요한 양국의 연합훈련이 중단되는 상황에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어쩌면 한번 직접 체험할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신(神)은 마치 죽음처럼 늘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전쟁의 신에 대처할 올바른 전쟁 방법, 즉 올바른 군사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전쟁신과 군사전략‘ 리북, 2012).” 협상의 달인이라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신을 알고 있는 걸까요.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제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조선의 현실이다. 관계정상화와 핵문제는 철두철미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조미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민족의 안전을 더욱 믿음직하게 지키기 위한 핵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이다.”북한은 2009년 1월 17일 외무성 대변인 기자문답을 통해 북미관계의 개선보다 핵억제력의 강화를 우선시 하겠다고 처음으로 발표했습니다. 1993년 1차 핵위기 발발 이후 국제사회의 문제로 등장한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국과의 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대화용’ 가설을 스스로 기각하고 핵보유국으로서 안보를 추구하기위한 것이라는 ‘보유용’ 가설을 확인한 것입니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로 북한은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 보다는 핵 보유를 위해 두 눈을 꼭 감고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결과 2017년 11월 29일 미국 수도 워싱턴과 경제중심 뉴욕을 핵탄두로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1만3000km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핵을 가진 채로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방위 매력공세(charming offensive)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럼 그 시원이 된 10년 전, 2009년의 북한 핵정책 변화는 왜 일어났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이종주 박사는 지난해 1월 북한대학원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북한 핵정책의 변동성 연구 1991~2017’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기존 생존전략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이상 핵억제력 등 다른 핵심이익을 양보하면서까지 북미관계 개선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논문을 통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의 핵정책과 2009년 이후의 그것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적 용어로 말하면 2009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미 핵정책이 ‘제한적 편승’에서 ‘전면적 내부균형’으로 전환했다는 것입니다.다소 어려운 국제정치학 용어를 설명하기 전에 2008년과 2009년 당시 한반도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까요? 2008년 2월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해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선 사상 처음으로 흑인인 버락 오마바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되어 2009년 1월 취임했습니다. 역시 8년 만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의로의 정권교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 그해 말 3남인 김정은(당시 이름은 김정운)을 3세 세습 지도자로 책봉했습니다.그래서 당시 전문가들은 2009년 오바마 정부의 취임을 앞두고 나온 북한 외무성의 강경발언 배경을 △오바마 행정부와의 핵 담판 대결을 앞둔 실력행사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경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세습독재자 교체에 따른 내부동요 무마를 위한 대외적 긴장 조성 등으로 해석했습니다.그러나 이 박사는 앞에 거론되지 않은 다른 흐름에서 답을 찾습니다. 바로 미국 단극체제에서 미중 양극체제로의 변화, 즉 국제체제의 가장 높은 층위인 강대국간의 힘의 비율 변화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체제전환 이후 세상은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이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인 월가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에 빠지고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중국의 위상이 주요 2개국(G2)으로 높아지면서 미국 단극체제가 미중 양극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1차 핵위기 이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1994년 10월 21일), 2003년 10월 시작된 2차 핵위기 이후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 5개국과의 9·19공동성명(2005년 9월 19일)등에 응하며 미국 단극체제 하에서 핵을 내세우면서도 북미관계 개선을 추구했던 북한이 2009년 이후 북미, 북중관계 악화를 감수하는 핵보유국 지위 추구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매진했다고 보는 것이 논문의 주장입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의 후진타오 및 시진핑 정부와 경쟁과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와중에 ‘북핵공동관리체제’를 굳혀가려 하자 북미중 3각관계 속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핵보유라는 목표를 정하고 밀어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미중 양극체제의 형성은 북한에게는 ‘기회의 얼굴을 한 위협’이었다. 북한에게 불리한 생존조건을 부여한 미국의 단극체제가 약화되고 동맹국인 중국이 부상하는 우호적인 세력균형의 변화이면서, 미중관계의 변동에 따라 북한문제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위험한 변화이기도 했다. 북한의 미·중 사이에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와 미·중 모두에게 방기될 수 있는 위협에 동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국제체제의 변동에 대응하여 북한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핵정책에서 벗어나 중국의 부상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의 공동관리체제가 고착되는 것을 저지하는 핵정책을 추구해야 했다. 북한은 중국의 부상이 G-2로 인식되기 시작한 2009년을 기점으로 유효성이 낮아진 미국에 대한 ‘제한적 편승’을 중단하고, 핵억제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면적 내부균형’을 선택하였다. 핵억제력을 추구는 국제비확산체제 유지라는 미국의 핵심이익과 한반도 안정이라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동시에 침해함으로써 미·중간 우선순위의 충돌을 일으켜 북핵문제에 대한 미·중 공동 관리체제의 균열을 가져오고, 북한의 대미, 대중 레버리지를 강화한다.”여기서 편승(bandwagoning)과 균형(balancing)은 국제정치학에서의 신현실주의 주장자인 케네스 월츠 등이 제기한 강대국 국제정치의 양태입니다. 편승은 쉽게 말해 한 국가가 더 강한 국가에 순응함으로써 제기되는 위협을 피하는 것을 말하고 균형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맞서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국내정치에서는 강한 후보자에게 다른 후보들이 모여들어 자리를 얻는 편승이 일반적이지만 세계정부가 부재한 국제정치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강대국들이 상대국에 대해 균형을 취하려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양태가 됩니다.논문에서는 전면적/제한적, 내부/외부 등의 구분에 따라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 형태가 소개됩니다.①전면적 편승-위협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위협국에 동조·순응하는 전략②제한적 편승-위협국의 요구를 일부만 수용하고 위협국과의 관계에서 의도적으로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편승하고자 하는 전략③전면적 내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힘의 균형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군비를 증강하는 전략④제한적 내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군비를 증강하되, 힘의 균형이 아니라 위협국과의 협상 등 제한적 목적을 추구하는 전략⑤전면적 외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다른 국가와 동맹/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냉전기의 미·소 진영 외교와 같이 동맹에 국가의 생존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략⑥제한적 외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다른 국가와 동맹/협력관계를 구축하되, 협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전략북한이 미국 단극체제 하인 1991년부터 2008년까지는 미국에 대해 ‘②제한적 편승’ 전략을 썼지만 미중 양극체제가 출발한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③전면적 내부균형’ 전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2018년부터 전면적 관여(대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미중관계의 불확실성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비핵화가 핵보유보다 더나은 생존전략이 될 수 있는지 모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평화(nuclear peace)를 추구하고 있다는 시각보다는 현 상황을 다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이런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강대국인 미국에 대해 강대국이나 추구할 수 있는 균형 전략, 그것도 전면적 내부 균형 전략을 약소국인 북한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논문은 그래서 북한을 ‘강대국 정체성을 추구하는 약소국가’ ‘정상국가 인정을 위해 투쟁하는 불량국가’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과연 북한의 전략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이번 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 태평양 건너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와 기타 핵·미사일 전력의 동결 수준에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이른바 ‘나쁜 거래(Bad Deal)’를 할 경우 세계사는 그것을 북한의 승리로 기록할 것이요, 미국의 북한 핵개발 저지 외교의 치욕적인 실패로 기록할 것입니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목표를 잃지 않고, 세계 비확산 체제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안보 등을 두루 추구하는 협상에 임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