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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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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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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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조훈현 “정석(定石)은 어디 가고…, 강수 꼼수만…”

    《 국수(國手)가 보는 정치판이 궁금해 첫 인터뷰를 가진 것이 약 1년 전. 당시 그는 “(정치) 하수인 나도 수가 보이는데, 고수들이 왜…”라며 미생마(未生馬)가 된 뒤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소속 당을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대체적인 민심은 여전히 차가운 상태. 그는 “지난 1년여간 당 혁신이라는 정석(定石) 대신 강수와 꼼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3선은 실리, 2선은 패망, 1선은 사망. 지금 우리는 어디를 달리고 있나. 국민은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르는 건 아닐까….● 의원 된 지 2년 정도 됐는데 정치가 좀 보이나.○ 아직은…. 전에는 의원들끼리 대판 싸우면 ‘왜 저러나?’ 하고 놀랐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정도일까? (지방선거가 코앞인데 지금 한국당은 어느 선을 달리고 있다고 보나. 실리를 얻고 있다고 말하기는 좀 힘든 것 같은데….) 실리선은 아니고… 거참…, 그렇다고 패망선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2.5선? 잘하면 실리를 얻고, 못하면 패망하다 사망하는…. 지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대로 투표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에는 말 안 하고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한국당 안에서 초재선 의원다운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 총선에 출마할 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출마 안 한다. 초재선 의원들이 나름의 모임은 갖고 있는데…, 계파 다르고, 생각 다르니 뭉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한 수가 없는 것 같다. 강수가 필요한데… 수가 안 보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수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준표 대표란 돌이 강수는 강수 아닌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의원들 사이에서 말이 많지…. (말이 많다는 게 무슨 뜻인지…, 거칠다는 뜻인가?) 한마디로 할 수 있으면 별문제가 아니지…. 사람이 누구나 하나씩은 결점이 있지 않나. 막말이다, 정책이다, 의사소통이다 다 걸리니까…. 솔직히 소통이 안 되고 있거든. 그렇게 여러 가지가 겹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그런데 또 거꾸로 보면 단점도 많지만 대체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말도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버티고는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이만큼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 지도부가 좀 생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차피 그건 알고 뽑은 거니까. 작년에 투표할 때는 지금은 책사 협상 정책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싸움꾼이 필요할 때라는 정서가 더 강했거든. 하나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탄핵 이후부터 강수 묘수보다 기본에 충실한 정석의 길을 걸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된 혁신이 정석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건데….○ 그게 정석이고 정도인데…, 한편으로는 이런 게 있다. 사실 바둑도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가 실수를 많이 하느냐로 갈릴 때가 더 많지. 정치든 뭐든…. 우리는 최순실에게 나라가 농락당한 어마어마한 한 방을 크게 먹은 게 아직도 회복이 안 되는 거고…, 그런데 저쪽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나 드루킹 사건 같은 악수가 나오기 시작하잖아? 나도 점점 정치인이 돼가는 건가? 하하하. 우리 당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잘한 게 있나?) …글쎄 모르겠어. 칭찬해줄 수는 없으니까…. 사실 한국당에 몸담고 있지만 중간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동네가 재미있는 게 (상대 당에 대해) 아예 서로 인정을 안 해. 누구나 백가지를 하면 최소한 하나는 잘하는 게 있지 않겠나. 그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난 그런 생각인데….● 한국당은 무기가 ‘좌파빨갱이 낙인찍기’ 아니면 막말밖에 없느냐는 지적이 많다.○ 너무 궁지에 몰리니까…, 진짜 안 썼으면 좋겠는데…. 우리 어릴 적에는 무조건 ‘빨갱이’라고만 하면 끝나던 시절도 있었다. 근데 그게 이제는 50, 60대에게도 안 먹히지 않소? 6·25전쟁이 거의 70년 전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야지….● 2016년 2월 쓴소리를 듣겠다며 대표실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라는 백보드를 붙였다가 진짜 총선에서 ‘훅’ 갔다. 이번에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고 플래카드를 붙였는데, 실제로 변한 것이 없다보니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 정치적인 행위지, 뭐…. 지금 상황에서 정당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도 하고…. 정부나 우리나 사실 똑같은 거 아닌가? 입으로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은…. (바둑은 승패를 떠나 서로 잘 어우러진 판이 있는데 정치는 그게 안 되나?) 근데 그게 참 묘한 게…, 전날까지 치고받고 싸우면서 ‘죽이네 살리네’ 하더니만 아침에 오면 밤에 합의됐다고 본회의 들어가자는 거야. 그런 거 보면 난 진짜 정신 못 차려…. 이해도 안 되고…. 욕먹는 건 사실인데, 또 누군가는 조금 양보하고 협상하면서 끌고 가더라고. 그런 게 정치인가 싶기도 하고…. ● 최근에 반홍진영 의원 모임에 참여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아∼ 그거∼, 포럼이나 세미나에 나와 달라고 하면 시간 되면 웬만하면 구별하지 않고 다 가니까. 전에도 비박 측에서 친한 사람이 뭐 성명 내는데 나와 달라고 해서 ‘네’ 하고 갔더니 그다음부터는 ‘비박이’가 되더라고. 친박 모임에 가면 ‘친박이’가 되고…, ㅋㅋㅋ. 뭐 친박 비박 친홍 반홍 그런 게 다 뭔지….● 숙원 사업이던 ‘바둑진흥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람이 뭐라도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하는데 그동안 법이 통과가 안 돼 정말 애를 먹었다. 밖에서는 쉽게 봤는데 법 통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정말 몰랐다. 그동안 바둑계는 기업 후원에만 의존해 기업이 안 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바둑 진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해야 한다. 60년 바둑 인생에서 마지막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바둑 격언에 ‘빵 따내면 30집’이라는데…. 누굴, 무엇을 ‘빵’ 따내야 판이 바뀔 수 있을까. 드루킹? 사면초가에서 그런 수가 있기는 한 걸까.● 홍준표 대표의 막말 때문에 선거운동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아∼, 그 얘기 많지, 많이 들리던데…. 우리 지역구에는 제발 (홍 대표가) 오지 말아달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그런데 고칠 수가 없으니까…. (홍 대표만 ‘빵’ 따내면 지지율 30%가 될 거라는 말도 나온다.) 쯧쯧쯧, 뭐… 잘 모르겠고…,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으니까…. 그걸 막을 수는 없겠지. (막지는 못해도 조언은 할 수 있지 않나.) 안 들으니까…, 들을 거라면 진즉에 들었겠지. 그런데 거참, 그게 없으면 홍준표가 또 아니지. 싸움 바둑이 갑자기 집 바둑으로 가겠나. 지방선거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 지난해 취임 초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너무 조급해하거나 욕심 부리지 말라는 조언을 했는데 지금은 뭘 조언하고 싶나.○ 뭐랄까…,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가는 변명이 많아지더라고.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건도 ‘당시 국회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토록 하겠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너희들도 했는데 왜 문제 삼느냐는 것인가? 그럼 왜 역대 인사청문회에서 숱한 총리 장관 후보들이 낙마해야 했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법성을 질의한 것도 한 개를 빼면 선관위 소관이 아닌 내용이고…. 그걸 떠나 굳이 누구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나.● 고향이 전남 영암인데 한국당 국회의원이 돼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나.○ 처음에는 왜 한국당 가느냐고 말이 많았지만 난 그런 걸 안 따진다. 따질 이유가 뭐야. 이 좁은 나라에서…, 그것도 반으로 쪼개졌는데 또 영호남?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래도 그런 정서가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궁지에 몰리면 꼭 그 소리가 나오더라고. 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영호남을 따지는 거야. 전라도 ××, 경상도 ×× 그러면서 표 몰아달라고…. 그래서 지역감정을 풀 수가 없는 것 같아. 사람 좋고 일 잘하면 되지 어디 태생이 뭐가 중요한가? 난 그런 게 마음에 안 든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치소에 있다. 어떻게 푸는 게 좋을까?○ 해법은 난 잘 모르겠고…. 뭐 법대로 처벌받는 건 받는 건데…. 그래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꼭 수갑 찬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모든 범죄자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도망갈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 장면을 꼭 보여주고 망신을 시켜야 하는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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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돈이 된다면 뭐든지… 개들의 ‘개만도 못한 삶’

    개 번식장, 유기견 보호소, 개 농장, 도살장…. 처음 듣는 이름도 아니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잔인함과 ‘사람은 돈이 된다면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동물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더 섬세한 사람들은 인간 혐오를 느낄 수도 있을 듯. 이 책은 갈 곳이 없어진 강아지 ‘피피’를 기르게 되면서 유기견에게 관심을 갖게 된 저자의 생생한 고발 르포다. 2013년부터 동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 육견업자, 번식업자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국내 개 산업의 놀랍고도 처참한 실태를 그려냈다. 30년 경력의 한 육견업자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왜 이 산업이 그토록 잔혹하고 비정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속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누가 모르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다못해 개 사료까지도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주기 때문에 되레 ‘돈을 받고’ 가져온다는 것. 중간 마진을 줄이기 위해 직접 개를 잡아 식당에 납품하고, 어떤 방법으로 도살해도 개는 축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걸리지도 않는다. 육견업자 김모 씨가 설명하는 도살 과정을 보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읽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이 같은 현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해결책도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이 초등학교 교육 교재로 사용된다면 아마 몇십 년 후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나 생명을 대하는 수준은 월등히 올라가 있을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문득문득 살짝 보이는 행간에서 그래도 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어르신도 개고기 드세요?” 한참 만에 내가(저자) 물었다. 김 씨(육견업자)는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본 뒤 먼 산으로 눈을 돌렸다. “안 먹어.” “왜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본문 중에서)’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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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교육감, 조희연에 ‘안철수 멘토’ 도전… 보수후보 단일화 움직임

    6·13 교육감 선거의 시도별 구도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비후보들의 물밑 움직임은 활발하다. ○ 서울, 2파전이냐 3파전이냐?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보수 진영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사실상 2파전 또는 3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 단일화를 추진 중인 진보 진영은 20일까지 후보 등록을 마감하고, 다음 달 5일 경선 결과를 발표한다.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과 이성대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장, 최보선 전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 교육감은 20일 후보등록일을 전후해 교육감직을 사퇴한 뒤 경선에 참여할 계획이다. ‘좋은 교육감 추대 국민운동본부(교추본)’와 ‘우리 교육감 추대 시민연합(우리감)’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를 추진 중인 보수 진영에서는 두영택 광주여대 교수, 신현철 전 부성고 교장, 최명복 한반도평화네트워크 이사장 등이 단일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한 이준순 전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장과 곽일천 전 서울디지텍고 교장도 보수 진영 후보로 도전장을 낸 상태. 이 밖에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멘토 출신인 조영달 서울대 교수(사회교육과)가 출마를 선언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조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교육공약을 입안했다. 보수 진영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조 교수와의 막판 단일화 여부도 관심사다. 현역 프리미엄에, 진보 진영의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조 교육감에게 맞서려면 범중도보수 진영이 결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다. 다만 양측의 단일화는 “희망사항일 뿐 쉽지 않다”는 전망이 더 많다. 조 교수도 이미 “진보·보수 어느 쪽과도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다자 대결 전망되는 경기 경기에서는 임해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현재 당적 없음)이 일찌감치 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추대됐다. 이재정 현 교육감은 진보 후보 단일화에 불참을 공언한 상태. 이 교육감은 재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교육계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4년 이 교육감으로의 단일화를 지지했던 전교조 경기지부는 경기도교육청과의 단체협약 갈등으로 지난해 11월 “이 교육감은 더 이상 진보 교육감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는 구희현 전 전교조 경기지부장, 송주명 한신대 교수, 이성대 신안산대 부교수,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범진보로 분류되는 배종수 서울교육대 명예교수는 독자 노선을 걷기로 했다. 배 교수는 진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념 성향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편은 아니다. 이 때문에 경기도교육감 선거는 일단 이 교육감과 진보 진영 단일 후보, 보수 진영의 임 후보, 기타 등 다자 구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3일 중부일보가 여론조사기관인 타임리서치에 의뢰한 조사 결과(1500명·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이재정 24%, 송주명 9.5%, 정진후 7.7%, 임해규 4.5%, 배종수 4.5%, 이성대 3.5%, 구희현 3.2% 순이었다. 진보 진영 단일화에 참여한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포함하면 23.9%로 이 교육감과 비슷하다. 이 교육감과 진보 진영 단일 후보가 끝까지 완주하고 보수 진영이 결집할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중도-진보의 각축장 인천, 부산 인천은 진보 성향의 전임 이청연 교육감이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된 게 변수다.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아온 박융수 전 부교육감은 출마를 선언했지만 아직까지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거부하고 중도 노선을 걷고 있다. 박 전 부교육감은 양 진영의 단일화에도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인천은 현재까지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고 있지 않아 4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보수 단일 후보를 추진했던 ‘바른 교육감 후보단일화 추진단(바른위)’과 교추본은 고승의 덕신장학재단 이사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반면 ‘인천교육감 후보단일화추진통합위원회(통합위)’는 최순자 전 인하대 총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진보 진영은 도성훈 전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 경선에는 5만4000여 명의 시민이 시민참여단으로 참가했다. 보수 2, 중도 1, 진보 1의 4파전 양상.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2014년 때처럼 보수가 분열돼 패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2014년 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이청연 전 교육감으로 단일화해 32%를 얻은 반면에 보수는 이본수(27.4%), 김영태(20.8%), 안경수 후보(19.9%)로 표가 분산돼 패했다. 부산도 보수-중도-진보 후보 간의 경쟁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재선 출마를 선언한 김석준 현 부산시교육감은 진보 성향. 예비후보로 등록한 함진홍 전 신도고 교사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반면 좋은 교육감 후보 추진 부산운동본부는 김성진 부산대 교수를 보수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일단 보수 진영은 단일화 과정에서 탈락한 임혜경 전 부산시교육감, 이요섭 전 부산전자공업고 교장이 김성진 단일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결집하는 모양새라 보수-진보 간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고 있다.○ 복잡한 울산, 조용한 광주 7명으로 가장 많은 예비후보가 등록한 울산은 다소 복잡한 양상이다. 보수 성향인 전임 김복만 교육감은 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 등으로 지난해 12월 사임한 상태. 보수 진영에서는 권오영 전 울산시의회 교육의원, 김석기 전 울산시교육감, 박흥수 전 울산시교육청 교육국장 등이 출사표를 냈다. 교추본, ‘21세기 울산미래교육연대’, ‘우리 교육감 추대 시민연합’ 등 보수단체는 이달 말까지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현재까지는 각 후보가 단일화에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진보 진영은 노옥희 전 울산시의회 교육의원과 정찬모 전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간의 단일화가 관건이다. 노 교육의원은 민주노총 울산본부, ‘울산 희망교육감 만들기 시민네트워크’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장평규 울산혁신교육연구소 대표와 구광렬 울산대 교수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까지 울산시교육감 선거는 다른 지역처럼 보수-진보의 2파전 또는 보수-중도-진보의 3파전이 될지, 아니면 단일화에 모두 실패해 다자 구도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양상이다. 대구는 현 우동기 교육감이 일찌감치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보수 진영은 강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단일화를 이뤘고, 진보 진영에서는 김사열 경북대 교수,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이 단일화를 추진할 계획이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광주는 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 정희곤 전 광주시의원, 최영태 전남대 교수가 출사표를 냈다. 여기에 현 장휘국 교육감이 3선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광주는 장 교육감과 이 전 총장이 시민경선 불참을 선언한 데다 진보-보수 대결도 없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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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세계 술 맛본 애주가 “소주, 풍미 없이 달달해”

    프루노, 그라파, 비터스, 페르넷, 셰리주, 마데이라, 괴즈, 압생트 미드, 말레트. 이 책은 술을 정말로 사랑하는, 자칭 애주가라고 하는 저자가 자신이 맛본 전 세계의 술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술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사케 위스키와 중국의 백주(Baijiu), 우리의 소주도 당당하게 출연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소주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소주에 대해 ‘한국의 진로 소주가 단일 브랜드 판매량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이며, ‘연속 증류와 희석으로 만든 한국 소주는 별다른 풍미가 없는 달달한 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달달함은 첨가물 때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가 이 정도의 미각을 가졌다면 평범한 애주가 수준은 분명 넘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맨해튼의 소주 하우스에서 팔고 있는 ‘오이 소주’, 백세주와 소주를 반씩 섞은 ‘오십세주’까지 소개돼 있다. ‘연장자가 따라준 술을 마실 때 직접 바라보지 말고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마셔야 한다’, ‘잔이 비었을 때는 직접 따라 마셔서는 안 되며, 따라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한국식 주도를 언급할 때는 ‘함께 마시며 가르쳐준 사람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도 살짝 든다. 방대하고 다양한 술 종류를 고려하면 상당히 많이, 깊게 알고 썼다는 느낌. 하지만 술이 그 나라의 수백∼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져 온 ‘문화’라는 것을 고려하면 각각의 술에 대한 분량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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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공무원이 연애질한다고 각하가 대로해서… 잘렸어”

    《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던 1970년대, 미국에는 ‘형사 콜롬보’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수사반장’이 있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날리며 번득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정의의 사도. 범죄에는 가차 없으면서도 물질만능사회가 빚어낸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지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사람. 캬∼. 그가 25년 만에 연극배우로 돌아왔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바람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서 ‘미지의 노인’역으로. 》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1993년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한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처음이니까 그 정도된 건데…. TV 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안 됩디다. 대본도 이것저것 받아봤는데… 굉장히 후회스러운 일이지요…. 연극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나이도 있으니 한 번 모든 것을 들여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내가 연극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동안 못 다한 빚을 갚고 싶은 생각도 있고….”(그는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다. ‘바람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자신이 우주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노인이 만나는 지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을 통해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사람들이 많이 아프잖아요. 다들 삶의 의미가 희박해져가는 것도 같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지려고만 하고…. 그게 다 채워질 수가 없는 건데…. 사람은 저마다 빛을 가진 별이에요. 그 별들이 모여 우주가 되는 것이고. 때론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나의 삶이 곧 우주라는 걸 이 연극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배우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떤 방법들이 필요할까를 연극을 통해 호소할 수 있다면…. 그런 사명감이 있죠.” ―교양프로그램을 제외하면 2014년 이후에는 방송 드라마도 안 하셨는데요. “연기를 하면 감독이나 작가로부터 이렇게 해달라는 주문과 지적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모두들 예우만 해주고 별다른 말을 안 해줍디다. 어려워만 하고…. 은퇴는 아니고 그냥 물러남이지요. 후배들에게 불편함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 연습에서는 지적을 받습니까?) “혹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지만 참는 건 아닌지…. 지적을 못 받다 보면 왠지 서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선생님, 거기는 이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은데….”―‘수사반장’ ‘전원일기’ 때와 똑같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파∼으하하. 요즘도 지방에 촬영 가면 사람들이 ‘당신 구십 넘었지?’라고 묻습디다. ‘그렇게 보여요?’ 하고 되물으면 ‘내가 마흔 몇 살 때 전원일기 김 회장이었으니 지금은 구십도 훨씬 넘은 거 아니오?’라면서요. 수사반장(1971년) 박 반장 역이 서른 하나였고, 전원일기(1980년) 김 회장은 마흔에 했으니…. 지금은 안 해도 되지만 평생 머리에 흰 칠하고 살았을 정도로 아버지 역, 노인 역을 해서겠죠.” ―30대에 노인 역 맡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대학에서 처음에는 연출을 전공했는데 그 당시에는 내 얼굴로 배우 하겠다고 하면 웃었을 때니까…. 근데 연기자들이 노인 역을 못해서 연기 지적을 했는데, 그걸 본 선생님이 ‘최불암 네가 해라’라고 하십디다. 그렇게 시작된 거지요.” ―그 덕분에 한국의 아버지상, 국민 배우로 각인됐는데 아쉬운 점도 있으신가요. “참 해보고 싶은 범죄자 역이 있었는데…. 범죄자의 의식 속에는 성장 배경이나 범행 동기 등 배우로서 연기해볼 만한 요소가 너무 좋은 게 많거든요. 근데 시키지도 않지만 해봐도 별로 효과가 없습디다. 몇 번 해봤는데…. (수사반장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망나니 역도 해봤는데 잘했다는 말은 안합디다. 파∼. 전원일기도 그렇고 너무 이미지가 좋게만 나와서… 그게 사람들 뇌를 아주 고정시켜 놓은 것 같습디다.” ―혹시 멜로드라마는 안 해보셨습니까. 거의 본 적은 없습니다만…. “왜? 한 번 했지요….(이 대목에서 그는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구리 남편’이라고… 뭍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사는….” (제목에서 벌써 느낌이 확 오는데요?) “내가 공무원 남편으로 나오는 일일연속극이었는데 그날은 깜빡 잊고 두고 간 서류를 여비서가 직접 부산까지 가지고 온 내용이었어요. 둘이 태종대에 간 장면이 있었는데…. 난 바바리 깃 세우고, 여비서는 마후라(머플러) 감싸고…. 그날 방송이 나간 뒤에 방송국에서 난리가 나서 빨리 의상 그대로 입고 튀어오라고 합디다. 놀라서 가보니 작가며 PD며 다 나와서 다음 회부터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방송 보고 노발대발했다고….” (왜요?) “국민의 녹을 먹는 국가공무원이 나가서 연애질이나 한다고…. 더구나 자기 여비서랑….” (그냥 드라마일 뿐인데요?) “그냥 드라마인데…. 원래 80회 분량이었는데 10회인가 하고 흐지부지 끝났죠. 그러고 나니까 다시는 연애하는 게 안 들어옵디다. 1969년이었지? 아마?” (박 대통령이 펄펄 날 때였네요) “어이구∼, 말도 못하지…. 무서워서…. 결국 바람 못 피우고 끝났는데 한국 최초의 건전 불륜드라마라고 할까. 하하하. 수사반장도 한 편도 안 빼고 보셨다고 합디다.” ―국사가 다망하실 텐데 매일 본방 사수를 했다고요? “그런 것 같습디다. 1974년인가? 일요일 집에서 그날 방송된 수사반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또 전화가 왔지요. 집사람이 받았는데, 청와대 부속실이라고 합디다. 그땐 부속실이 뭔지도 모를 때니까….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더니 ‘깔깔’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저 육영수예요’ 하더라고? 그때 나도 모르게 놀라서 탁자를 ‘탁’ 치면서 ‘네!’ 하고 벌떡 일어났지요. 육 여사가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우세요’ 하시더라고…. ‘네! 방송에서 도입부, 클라이맥스 때 등 네 번 피우기로 설정했습니다!’ 했더니, 웃으시면서 ‘한두 대만 하세요. 최 선생님 태우실 때마다 이 양반도 따라 피우세요. 그런데 이 양반도 그렇지만 국민들도 다 따라 피우지 않겠어요’ 하시더라고. 멀리서 박 대통령이 ‘쓸데없는 얘기한다’는 말이 들립디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긴, 한두 대로 줄이고 그나마 전원일기부터는 한 대도 안 피웠지요.” ―14대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잘 맞으시던가요. “난 안됩디다. 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진짜 연기자 같고…. 야단만 맞았지요.” (국회의원이었는데 야단을 맞았다고요?) “국회상임위에서 ‘장관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질의했더니 쉬는 시간에 선배 의원이 불러냅디다.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장관!’ 하고 세게 불러야지 그게 뭐냐고….” (그때는 여당 아니었나요?) “여당이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야단치라는 거지요. 사실 정치인이 될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정주영 씨를 좋아해서 열심히 찬조연설하고 다녔더니 전국구 의원이 됩디다. 의원이 되는 줄 알았으면 아마 안 했을 텐데….” ―평소 ‘배우란 세상을 비추는 방향판’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배우도 역시 사회 안에서 의미를 지닌 사람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사회를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작가들의 펜이 그런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시청률 때문에 쉽지 않지요. 인기를 끌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인기 작가가 돼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갈등 구조를 만들어서 흥미롭게 만들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나는 그런 면에서는 좀 달리하고 싶어요. 이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 말해줘야 하고 배우도, 드라마도, 연극도 그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년이면 데뷔 60주년인데 가장 아쉬움이 남는 배역이 있으셨습니까. “40대 중반에 셰익스피어 ‘리어왕’ 역을 맡았는데 기운이 달려 뻗어버렸죠. 수사반장하고 전원일기를 하던 때라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디다. 연출자가 ‘지금 못하면 결국 못 한다. 꼭 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한 게 지금도 아픔으로 남지요.” (지금 다시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제는 몸이….”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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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범죄 재범률 14.1%→1.69%로 급감… ‘1인당 18.4명’ 관리인력 태부족

    올 2월 기준 전자발찌 착용자는 전국에 3008명. 성폭력사범이 2406명(80%), 살인 456명(15%), 강도 136명(5%), 유괴 10명(0.3%)이다. 성범죄자만 찰 것 같지만 다른 흉악범도 범행에 따라 재범 우려가 높을 경우 발찌를 채운다. 조두순처럼 상상도 못할 흉포한 성범죄를 저질러야만 채우는 것도 아니다. 기자의 위치 추적을 담당한 법무부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 백인철 주임은 “지하철에서 엉덩이 서너 번만 만져도 상습성이 인정되면 채울 수도 있다”며 “성범죄 형량이 높다고 반드시 다 차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리적 압박감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전자발찌의 효과는 분명하다. 성범죄 재범률은 제도 시행 전(2004∼2008년 8월) 14.1%였으나 시행 이후(2008년 9월∼2018년 2월) 1.69%로 급감했다. 발찌 훼손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모두 99건(0.38%)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제도 도입 효과는 분명하지만 전자발찌를 채우면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24시간 감시를 해도 늘 보호관찰관이 옆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정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또 발찌 절단을 막기 위해 더 크고 무겁거나 강화된 재질로 만드는 것도 인권 등의 문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은 관리인력 증원이다. 전국의 전자발찌 착용자를 감독하는 보호관찰관은 160여 명. 보호관찰관 1인당 평균 18.4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산술적인 수치. 서울 남부준법지원센터는 보호관찰관 5명이 80명을 관리하고 있지만 밤에는 야근자 1명이 모두 맡는다. 야근자는 다음 날 쉬기 때문에 실제로는 4명이 80명을 맡는 셈이다. 미국은 전담직원 1명이 10명 미만을 맡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휴일이나 명절이 없다. 야근 다음 날 비번으로 쉬는 날이 있을 뿐이다. 쉬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동시에 출동할 상황이 벌어질 경우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 특히 밤에는 야근자 1명이 전부 맡기 때문에 두 건만 발생해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도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1인당 100명 정도가 적정 인원이지만 현재는 320여 명을 맡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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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엔 큰 액세서리 찬 느낌… 갈수록 엄청난 압박감

    “어떻게 감시하기에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끊을 수 있으면 뭐 하러 채워? 좀 더 강하게 못 하나!” 최근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일본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발찌 착용자가 해외로 도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찌 착용자의 성범죄 재범이나 발찌 훼손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론은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한다. 전자발찌는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정말 대응이 안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또 어떤 느낌일까? 피상적인 통계나 자료보다 피부로 느껴보기 위해 법무부 협조를 얻어 발찌를 차고 위치추적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전자발찌 제도라 부르지만 정확한 이름은 ‘전자감독제도’다.○ “왼발 찰래? 오른발 찰래?” 마음속에 음란마귀가 들었나. 차고 난 직후 느낌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살 충동까지 생긴다”던 설명과 달리 조금 큰 액세서리 발찌를 찬 느낌이랄까? 착용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고 재산, 채무, 집의 방 수, 음주 및 흡연 시작 나이, 가족 및 지인의 신상 정보와 친밀도까지 5장 분량의 신고서를 깨알같이 적어야 했다. 여기에 A4용지 13장 분량의 질문지에 답해야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배우자,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태도 등도 묻는다. 그리고 ‘부착명령 집행 전 의무사항 고지 확인서’와 ‘전자장치 수령확인서’에 서명. 임의로 전자발찌를 끊거나 손상시키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해진다는 내용이다. “기자님, 왼발? 오른발?” ‘이건 뭔 소린가. 아무 데나 채우지….’ 전자발찌 착용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발찌가 노출되는 것. 오른손잡이는 주로 오른발을 많이 쓰기 때문에 그만큼 노출되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쓰는 발에 찬다고 한다. 채운 뒤에는 제대로 채웠다는 증거로 인증 샷도 찍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는 발에 채우는 전자발찌, 항상 소지해야 하는 휴대용 추적 장치, 재택 감독 장치로 구성된다. 휴대용 추적 장치가 발찌를 감지해 위치추적 관제센터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 기기는 늘 휴대용 추적 장치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어 올 하반기부터는 둘을 합친 일체형이 보급된다고 한다. 발찌에는 센서가 있어 끊거나 훼손하면 바로 관제센터로 신호가 간다. 재택 장치는 충전 기능과 함께 착용자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장치다. 기자에게는 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외출 금지가 부과됐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면 이 기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기기는 전원만 뽑아도 경보가 센터로 전달된다. 공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발찌와 휴대용 추적 장치가 3∼4m 이상 떨어지면 관제센터로 신호가 간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휴대용 추적 장치를 자리에 두고 5m 정도 떨어진 화장실에 갔더니 2, 3분 후 발찌에 진동이 오고 바로 전화가 왔다. “관제센터인데, 어디세요?” “화장실인데 깜빡했어요.” “빨리 돌아가세요.” 마무리할 때까지 진동은 1, 2분 간격으로 세 번이나 울렸다. ‘아, 이렇게 24시간 감시되는구나.’ 착용자가 피해자 거주지 등 출입제한 지역에 들어가거나, 일정 시간 이상 발찌와 휴대용 추적 장치가 떨어져 있으면 일단 전화로 고지를 하고 개선되지 않거나 연락이 안 되면 보호관찰관과 무술 유단자인 무도 실무관으로 이뤄진 신속대응팀이 출동한다. 보호관찰관들은 주기적으로 착용자들을 만나 면담을 하고 상황을 파악하는데, 위험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불시에 방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생활을 옥죄는 고통감 착용 직후와 달리 발찌 하나 찼을 뿐인데,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출근하기 위해 평소 입던 슬랙스 바지를 입었더니 ‘오 마이 갓∼’ 바지가 발찌를 덮지 못해 고스란히 보였다. 이대로 나가면 ‘나 성범죄자요’ 하고 외치고 다니는 꼴이다. 지하철에 자리가 났지만 발목이 보여 앉을 수도 없었고, 참석한 모임 자리가 방인 것을 보고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나오기도 했다. 이 모임은 여자가 절반인데, 의자에 앉아도 발목이 보이거늘 하물며 방이면…. 안 신어보고 사면 모를까 신발을 사기도 어려웠다. 신고 벗을 때마다 발목이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어보지도 않고 사는 걸까. 2년 동안 다니던 헬스클럽도 옮겼다.(헬스클럽 만기일이 며칠 안 남아 옮기는 데 부담은 없었다.) 체육복 긴바지를 입고, 샤워는 집에 와서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땀에 젖은 바지가 말려 올라갈 줄은 몰랐다. 바로 내렸는데 누가 봤을까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이 화끈화끈…. 실제로 헬스클럽에서 발찌에 대해 묻거나 말을 건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봐 봐’ ‘저거 전자발찌 아냐?’ ‘멀쩡하게 생긴 놈이….’ ‘뭐? 우리 헬스클럽에 강간범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별것 아닐 수 있는 시선도 의심과 경멸로 느껴지고, 옆에서 운동하던 여성 회원이 자리를 뜨는 것도 발찌 때문으로 느껴졌다. 운동을 할 만큼 해서 간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 착용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착용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알려졌을 때 닥칠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극소수 지인에게 알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알릴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뒤에 올 것을 감당할 수 없기에…. 기자가 만난 착용자 중에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에게 아직 말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미리 말하면 헤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말 안 하고 할 수도 없어서다. 10년을 차야 하기 때문에 끝난 다음에 할 수도 없다. 그는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에 착용 사실을 알린 사람들도 대개 남자들은 별 말 안 하지만 여자들은 표정이 달라지고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범죄가 아니라 폭행이나 강도로 교도소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착용자는 “(발찌 때문에) 잠시도 내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 수가 없다”며 “TV에 관련 뉴스라도 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조마조마해진다. 차라리 다른 중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 숨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성범죄자라도 교도소 안에서는 발찌를 차지 않는다. 발찌는 출소 후 보호관찰 개념으로 부과되는 보안처분이기 때문이다. 죄에 따라 다르지만 부착 기간은 1년에서 최장 30년. 5년 이상 부착자가 전체의 67% 정도다. 한 착용자는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는데 병원에서 X레이를 찍으려 하자 한사코 거부하고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성범죄 유형에 따라서는 특별한 제재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 한 전자발찌 착용자의 경우 거주지를 지나는 특정 번호의 버스 안에서만 상습적으로 추행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당 버스 승차가 제한됐다. 승차 여부는 이동 경로를 알기 때문에 보호관찰관이 불시에 방문해 확인한다고 한다.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이 너무 피곤해 주말 약속을 모두 연기했다. 집에도 말을 안 했더니 거실 나가는 것조차 피하게 된다. 주말 내내 방에서 영화만 봤다. 일주일도 이런데 10년, 20년을 이렇게 산다면…. 착용자들이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생활을 옥죄는 느낌. 법무부에 따르면 2008년 9월 시행 이후 지금까지 50여 명의 발찌 착용자가 심리적 부담 등 여러 이유로 자살했다고 한다.○ 착하게 살자 체험 기간 중 받은 성범죄자 단체 교육. 대체로 이런저런 애로점을 진지하게 토로하는데 한 착용자는 “전혀 사는 데 상관없어요. 뭐 신경 안 써요. 한쪽에만 차니까 불편한데 다른 쪽으로 옮겨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착용자는 누군가 이성을 사귀는 문제를 어렵게 꺼내자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지, 나 봐! 안 만나잖아”라고 말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피해자들은 생각이나 하고 사는지…. 100%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자발찌도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최근 일본으로 도주한 착용자의 경우 휴대용 위치추적기와 분리돼 경보가 울리자 차에 두고 내려서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휴대용 위치추적기는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위치 파악이 안 되는 상황. 그리고 공항에서 바로 발찌를 끊고 일본으로 출국했다. 위치 추적은 안되지만 발찌를 차고 있으면 검색대에 걸리기 때문이다. 보호관찰은 말 그대로 보호관찰이지 감금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기자에게 부과된 오후 11시 이후 외출 금지도 단순히 그 시간에 안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야근도 있고, 갑작스러운 출장도 생기기 마련.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출 제한 시간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사고가 나면 늘 “그럴 거면 뭐 하러 발찌를 채우느냐”고 뭇매를 맞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부착했을 때와는 달리 갈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정도가 심해졌다. 방바닥에 누우면 발목이 발찌에 눌려 편하게 자기도 힘들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전자발찌를 떼는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인간 본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차-카-게 살자. 꼭.’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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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공격당하기 전에 너를 저격해야 한다’고 협박했죠”

    《 눈이 펑펑 내린 3월의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섭외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작은 찻집을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디 누굴 인터뷰하는겨?” “밴디 리라고요, 미국 대학교수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성에 대한 책을 쓴 분이에요.” “글치…, 갸가 많이 위험허지….”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란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한국은 지난달 말). 이 책은 같은 해 4월 열린 ‘예일콘퍼런스’의 발표문과 이후 기고문을 모은 것이다. 미국 최고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심리학자 27명이 트럼프의 정신건강을 기술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낸 이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의과대학원 법·정신의학부 임상조교수인 밴디 리다. 》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대한 첫 전문 서적인데, 미국에서의 반응은 어느 정도였나. “출판 이틀 만에 재고가 다 나가고, 아마존에서는 다시 인쇄할 때마다 2시간 만에 매진이 됐다. 이후 트럼프 백악관의 뒷이야기를 다룬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나오면서 우리 책이 다시 관심을 받았다. (트럼프가 미국 출판업계를 먹여 살린 건가?) 하하하, 워낙 그의 정신상태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그 흐름을 잘 탄 것 같다.” ―그가 왜 출판금지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책에 관심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책 자체를 몰랐을 것 같고…. 이 책이 유명해지자 어느 날 트위터로 책 내용과 소문을 들은 것 같다. 그 다음 날 가장 먼저 트윗한 것이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인지, 좋은 사람인지를 소개한 것이었다. ‘화염과 분노’는 배포를 막으려고 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출판을 예정일보다 3일 앞당겼다. (트럼프가 책을 읽긴 할까?) 거의 안 읽을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조차 다 읽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의 대필 작가인 토니 슈워츠조차 우리 책에 트럼프의 문제점을 기고했다.” ―책의 의도와는 별개로 대중은 트럼프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수십억 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명백하게 위험한 정신장애 징후를 보일 때 전문가로서 경보를 울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가질 수 있을 법한 정신질환을 총망라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초등학생이 총을 들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인가. “사람이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와 합리에 의한 경우도 있고, 병리적인 양식으로 할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하는 일은 그것을 구분하고, 그 병리적 양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가 병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인가?) Right! 정신장애와 인지적 장애, 심지어 신경학적인 장애까지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지는 않나?) 그가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갈리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직업윤리에 어긋나느냐 아니냐는 것뿐이다.” ―자기 이름을 비행기에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다니는 심리는 왜 그런 건가. “정신과 중 내 전공이 폭력이다. 그래서 내 환자는 모두 폭력범이고 임상을 하는 곳도 교도소다. 그 안에 트럼프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이 수천 명 있다. (트럼프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교도소라는 말인가?) absolutely! 트럼프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절대 권력을 갈망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행동을 한다. 보통은 이런 특성들이 사회 내에서 제한되는데 트럼프는 운과 함께 여러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정치적인 힘도 가지다보니 지금까지는 그런 충동에 충실해도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지난달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교 총기사건 후 트럼프는 총기 규제보다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주장인데 실제 플로리다주가 7일 교사를 무장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2년 28명이 사망한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때도 워낙 비극적이어서 차라리 교사를 무장시키자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황당해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악성의 정상성’이 벌어지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에서 증오범죄와 학교 폭력이 늘었는데 아이들이 ‘대통령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며 폭력을 가한다. 백인우월주의에 의한 살인도 두 배가량 늘었다. (임기가 반도 안 됐는데?) 1년 조금 됐다….” ―트럼프가 최근 퇴임을 26시간 남긴 앤드루 매케이브 FBI 부국장을 전격 경질해 은퇴 연금 혜택도 못 받게 했다. 이런 행동에 대한 의학적 병명이 있나. “사디즘(sadism)이다. 남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선거기간에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지자들조차 유혹해 끌어들여, 조종하고 이용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조종할 수 있구나’ 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 행동이 돈을 벌거나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자주 하지만,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도 안 한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한다. 오바마도 하고…. 하지만 거짓말 횟수를 1년 단위로 세야 하는 사람과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 하면 전쟁이 연상되지만, 린든 존슨, 부시 부자 등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은 많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도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유독 트럼프만 더 위험하다고 봐야 하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신장애가 많고,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정말 너무 우려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뇌중풍, 치매를 앓은 대통령도 있었지만 이것은 일반인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 일반 대중은 현재 상태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심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 알기 어려운 정신장애 신호들을 우리 전문가들이 포착한 것이다.” ―그가 확실히 위험하다고 해도, 그 위험을 막기 위한 무슨 방법이 있나. “고위 공직자나 군 요직에 임명되는 인사들은 그럴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를 관장하는 대통령에게 같은 절차가 없다는 것은 너무 큰 결함이다. 헌법에 폭군이 생겨나지 않게 예방하고, 만약 생기면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현재 정치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탄핵도 가능성이 희박하고…. 지금은 가능한 한 모든 법과 제도를 통해 그가 가진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제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간 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은 없었나. “일부 지역 신문에서 나와 공저자들을 비판하는 기사가 났다. 개인적으로는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많이 받았다. 내가 국회의원들에게 트럼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브리핑을 했다는 뉴스가 나간 뒤 협박 때문에 한 달 동안 학교에 출근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사무실 주소, 연락처 등이 다 공개된 상황이었다. 인터넷에는 ‘이 사람을 저격해 살해해야 한다. 그가 트럼프를 공격하기 전에’라는 협박 선동도 있었다. (KKK일까?) 하하하. 한 달 만에 사무실에 나가니 편지와 카드, 꽃 초콜릿 같은 선물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용기를 내준 데 대해 감사하고 고맙다고…. 또 협박받고 있는 것을 위로한다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보다 양도 질도 훨씬 감동적이었다.” ―트럼프가 치료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늘, 환자는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경우다. 지금 트럼프의 정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허함이다. 자신이 굉장히 취약하고 약하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과대포장하고 허풍을 떤다.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핵무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동의 없이 치료를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 아예 감금시켜 치료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도 아닌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감금 치료할 수 있나. “모르는 일이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안 오리라는 법은 없다. (정말?) 지금 너무나도 불안한 상태인데…, 트럼프가 점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같은 것으로 트럼프가 기소될 위험이 굉장히 농후하다. 만약 기소가 된다면, 그래서 구금이 된다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외에도 푸틴, 두테르테, 시진핑 등 소위 ‘스트롱맨’들이 한 시점에 출현한 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가 더 고도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불평등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다. 모든 범죄와 병으로 인한 사망을 다 합쳐도 불평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죽음이 10배나 더 많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다. 폭력적인 체제가 탄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게 세계사적 흐름이라면… 트럼프만 막는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가장 시급하고 큰 불이니까…. 트럼프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고…. 지금의 혼란과 무질서에서 트럼프의 부상은 하나의 증상이지만, 다시 원인자가 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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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금씩 줄이겠다고? 술은 그런게 아니야

    ‘그만 좀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비가 와서, 승진을 해서, 승진에서 누락돼서…. 이 책은 그렇게 시나브로 젖어 들어가 거의 알코올 중독 상태까지 이른 저자가 음주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다. 당연히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빠져나오는 방법’이겠지만 허무하게도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그저 단칼에 ‘안 마시기 시작하는 것’뿐. 그 대신 저자는 ‘음주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착각’과 ‘금주로 인해 할 수 있게 된,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을 강조한다. 음주가 우연에서 습관, 습관에서 문제로 진행되는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고, 술을 끊고 나서도 음주에 익숙해진 뇌 구조는 평생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따라서 일정 기간 금연했다고 흡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흡연에서 못 빠져나오듯이, 술도 절주로 점차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술이 열정과 도전으로 꽉 채워져야 할 인생의 골든타임을 소멸시킨다고 말한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지금보다 더 승진했다거나, 통장 잔액이 늘었거나,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보다는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시간을 썼을 테고 그 만큼의 결과는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실제 저자는 술에 의지해 살던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마감시간까지 마치도록 계획하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점심시간에 요가하기 같은 것들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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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원보다 더 내야죠”

    《 당초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시행령 개정 효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2016년 9월 시행 이후 농수축산 농가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거세지자, 정부와 국회는 ‘법 취지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농수축산물 선물비와 경조사비 상한액을 수정했다. 개정안은 올 1월 17일부터 시행됐고, 얼마 후 대목이라는 설 연휴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53·전 도지사) 사건이 터지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질문의 선후(先後)와 주부(主副)도 바뀌었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오피스텔 편의를 제공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4억1000만 원 상당의 이 오피스텔은 그의 친구 S 씨가 운영하는 건설사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S 씨는 본보 통화에서 “서울에 출장 왔을 때 필요하면 이용하라고 출입카드를 줬다”고 밝혔다) “법 위반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요. 단지 아직은 오피스텔 사용에 대한 대가 지급 여부, 수수한 금품 등의 가액, 당사자 간의 직무관련 여부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서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고발한 혐의는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이고, 아직까지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람은 없는데…. “고소 사실 외에 추가로 위반 사안이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의 인지 내지 신고·고발을 통해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하지 않는다면 청탁금지법상 개인이나 시민단체 등 누구든지 법 위반 행위를 신고할 수도 있고요.” ―안 전 지사는 이미 사임했는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되나요. “법 적용은 행위가 벌어졌을 때를 기준으로 하니까 이후 그만뒀어도 청탁금지법 적용에는 상관이 없겠지요.” ―공무원 비리가 발생했을 때 “왜 징계하지 않느냐”고 하면 자주 듣는 말이 “사직해서 기관이 징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안 전 지사도 사직서를 제출한 바로 다음 날 도의회가 수리했지요. 독일은 사직해도 기관이 징계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않는지요. “퇴직제도가 징계 회피 수단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 공무원이 퇴직을 희망할 경우 징계사유가 있는지 감사원 검찰 경찰에 확인해야 한다는 게 국가공무원법에 있습니다. 그래서 혐의가 확인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 연금같은 부분도 결국 나중에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퇴직으로 인한 징계 실효성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있다고 보이네요.” ―올 1월부터 5만 원이던 선물 상한액을 농수축산물에 한해 10만 원으로 완화했습니다.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을 완화해 준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특정인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절 때 우리 농수산물을 차례에 올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었으니까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농가와 정치권에서 나오긴 했죠. 사실 화훼농가는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법은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일부라 해도 심대한 타격을 받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부분은 정치적·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화해준 경제적 효과는 나타났습니까. “아직 두 달도 안 돼 분석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고…, 충분히 시간이 지나도 아마 이 법 개정으로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 엄격하게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 경제 상황, 자유무역협정(FTA) 등 많은 요인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늘 한 말이지만, 농업 부문의 어려움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지 권익위 차원에서 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탁금지법으로 내수를 진작시키거나 농가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에 비해 올 설 기간 축산 과일 수산 등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의 판매는 17.4%, 5만∼10만 원대 선물세트 판매는 18.7% 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법 개정 효과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법이 없었을 때도 명절에 선물세트가 집으로 오는 국민이 얼마나 됐을까요. 더 큰 혜택은 농가 소득을 핑계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가져간 것 아닌지요. “시행령 개정으로 한우가 더 팔리고, 굴비 판매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경제지표로 보면 내수 진작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만약 이런 점이 확인이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법 때문에) 가액을 조정하라는 말도 나오지 않겠지요….” ―청탁금지법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습니다. “모든 국민이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농수축산물은 10만 원), 경조사비 5만 원을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법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은 얼마를 주고받든 상관없습니다. 또 법 적용 대상자들도 받는 것이 안 되는 것이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친구에게는 50만 원을 주든 100만 원을 주든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셨나요?) 물론이죠. 제 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 원보단 더 내야죠. 하하하.” ―전임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특별히 당부한 것이 있습니까. “취임하고 몇 차례 뵀는데…, 당초 정부안에 있었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진 게 좀 아쉽다고 했습니다.”(이 규정은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나 가족이 인허가, 계약, 채용 등에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부정청탁금지와 함께 청탁금지법의 양대 축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제정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적용 대상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확장시키면 법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요.(정부 원안은 국공립학교만 있었으나 형평성을 이유로 사립학교가 포함됐다. 언론사도 공직유관단체인 KBS, EBS만 대상이었으나 같은 이유로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그런 부분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일단 헌법재판소가 대상 확대가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공직자만 대상으로 했다면 법의 명확성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데 기여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한쪽에서는 청렴을 외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2016년 공무원 소청심사 인용률이 36.2%에 달할 정도로 징계를 완화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 또는 교원이 징계를 받은 경우 이에 대한 취소·감경을 요청하는 제도. 인용률 36.2%는 소청 신청자 중 36.2%가 징계 감경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저도 교원징계재심위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제도가 아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은 경우의 구제 차원 제도여서…. 아마 원 처분보다 더 센 처분을 할 수는 없게 돼있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지요. 우리 위원회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요청이 공직자 부패를 엄격히 처벌해달라는 것입니다. 일벌백계,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그래서 2014년 부패공직자 현황 공개, 징계 감경 금지 등 ‘부패행위 처벌 정상화 방안’을 권고한 적도 있는데…. (소청심사위는 유형별 감경률 통계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경우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아래 들어가 있죠. 취지 자체가 교원 권익을 위한 입장이라 이런 구조적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가장 큰 문제가 청탁에 의한 채용이고, 이것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채용비리를 뿌리 뽑겠다면서 한편으로는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는 것은 안 맞는 것 아닌지요. “핵심적인 질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페어플레이어 클럽(Fair Player Club)의 반부패 서약 선포식에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우리가 소소한 부패는 잡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크고 구조적인 부패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금품 수수보다 더 큰 게 부정청탁이고, 그중 하나가 채용비리인데…. 저는 이 부분이 낙하산 문제도 있지만, 지역 토착세력의 카르텔형 부패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뿌리 뽑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한창입니다. 5만 원 이상 선물은 금지하면서 얼마를 내는 지 제한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출판기념회는 왜 제재하지 않는지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지는 고민인 부분입니다.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는 책을 못 팔게 하고 서점에서만 팔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고, 또 그렇게 금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죠. 금지하려면 입법을 해야 하니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제도 개선은 적극적으로 제안할 계획입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책을 정가로 파는 안부터 수입·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안, 출판기념회 자체를 폐지하는 안 등의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되고 현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제출된 관련 개정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사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돼도 그분들이 통과시키지는 않겠지요? “하하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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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본주의 시대, 팔리는 상품이 된 페미니즘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꼽았다. 쉽게 말해 ‘돈’이 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만들고, 팔 수 있다는 뜻. 아마도 자본주의는 그것이 자신을 부정하는 반자본주의적인 것일지라도 돈이 된다면 기꺼이 사고팔 것이다. 앤디 자이슬러의 ‘페미니즘을 팝니다’는 사회운동의 하나인 페미니즘이 이런 ‘시장 논리’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적한다. 물론 그 시장에 적용돼 가는 페미니즘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즘을 점점 더 많이 소비해가고 있을까. 또 더 많이 페미니즘을 소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안 바뀌거나,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처럼 초기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이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와의 결합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봤다. 오랜 노력 끝에 양자는 결합했고, 많은 곳에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 스타들이 페미니즘을 다루기 시작했다. 가수 비욘세는 800만 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당당히 페미니스트의 개념을 설명했고, 영화 ‘해리포터’의 에마 왓슨은 유엔에서 성평등에 관한 연설을 했다. 동시에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속옷, 매니큐어는 물론 막대걸레에서까지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마초 잡지인 ‘맥심(Maxim)’이 여자 연예인들의 성적 매력을 더 이상 순위 매기지 않는다고 ‘페미니스트들의 필독 잡지로 등극했다’고 하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저자는 이런 현상에서 ‘페미니즘’이 과거와 달리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른바 ‘시장 페미니즘’이다. 광고는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 미의 기준에 반발하는 한 여성을 조명한다. 고민 끝에 그녀는 ‘이것은 나의 선택, 나를 위한 일’이라 결정하고, 은연중 페미니즘이 투영된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화장품, 비누(또는 다이어트 음식 회사). 은연중 광고는 ‘여성 개인의 주체적인 삶과 결정’이라는 콘셉트를 자사 상품과 연계시키고, 이를 통해 상품을 소비하게 한다. 이런 유의 시장 페미니즘은 엄청나게 늘었지만 반대로 정말로 필요한 분야―보육, 낙태, 남녀평등헌법수정안 등―는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후퇴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저자는 시장 페미니즘이 선택하지 못한 분야는 과거처럼 주목을 못 받을 수 있겠지만, 그 분야야말로 상업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수가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힘을 준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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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3가지 요리로 튀지 않게’가 IOC 주문이었죠”

    《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날인 8일 저녁, 강원 평창 켄싱턴호텔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IOC President‘s Dinner)이 열렸다. 이 만찬은 오랜 기간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귀빈들과 IOC 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제 본격적인 올림픽 기간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 한정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및 각국 대통령과 왕세자, 공주, 우리나라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그리고 대기업 총수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IOC가 호텔 측조차 음식 사진을 찍어 놓지 못하게 할 정도로 보안을 요구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를 기념해 정상급 귀빈들에게 제공된 만찬은 어땠을까? 맛은? 이 호텔 김규훈 총주방장(43)은 “4년에 두 번(여름, 겨울올림픽)밖에 없는 만찬이라 대단히 호화로울 것 같지만 (음식 구성을) 지극히 무난하게 해 달라는 것이 IOC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  ―IOC가 레시피를 6번이나 수정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스타터(starter·전채 요리)로 ‘훈제 송어와 연어’, 메인은 ‘대관령한우 스테이크’, 후식 등 3코스를 준비했죠. 식사 전 서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먹을 카나페(canape·한입에 먹을 수 있게 만든 작은 요리)를 6종 준비했고요. 원래 스테이크 옆에 으깬 단호박 버무린 것을 준비했는데 만찬 이틀 전에 수정을 요구해 구운 통감자로 바꿨습니다. 송어 위에도 처음에는 새싹 같은 것을 올렸는데 허브를 추가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단호박은 한국적인 느낌도 있어 괜찮을 듯한데 왜 바꿔달라고 하던가요. “외국분들에게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혹시라도 거부감을 느끼는 귀빈이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너무 튀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은 지양하고 무난한 콘셉트로 메뉴를 짰습니다. 감자야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먹는 음식이니까…. 김치도 내지 않았거든요.” ―김치도 없었다고요? “아주 한국적이고 특별한 음식을 요구할 것 같지만 사실 IOC 요구는 ‘세계 각국에서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누구나 거부감 없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죠. 사람마다 기호가 갈릴 수 있는 음식은 선호하지 않더라고요. 고기 굽기도 미디엄 레어로 거의 통일할 정도였죠. 그래서 만찬 전 6, 7일 열린 132차 IOC 총회 오찬도 뷔페로 저희가 준비했는데, 김치를 백김치만 올렸어요. 자극적인 것은 빼달라고 하더라고요. 만찬 메뉴도 아마 다른 요리사들이 봤다면 ‘이게 만찬에 나간 음식이야? 너무 뻔한 거 아냐?’라고 했을 거예요. (홍어를 냈으면 큰일 날 뻔했겠네요?) 하하하, 제 애가 아직 어려요.” ―만찬은 메뉴가 정해져 알 수 없었을 테고, 오찬 뷔페에서는 어떤 음식이 가장 인기가 많던가요. “음…, 저희가 그릇 나가는 걸 보는데 잡채를 그렇게 많이 드시더라고요. 잡채가 건강식이기도 하잖아요. 채소도 많고…, 그래서인 것 같기도 하고…. 무난하게 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를 좋아하시는 경향이 있었어요. 갈비도 그렇고….” ―송어와 대관령한우를 선택한 이유가…. “송어가 제철인 데다 이 지역에서 최초로 양식에 성공해서 양식장이 이쪽에 있어요. 진부에서 송어 축제도 하고요. 연어 위에 송어를 올렸는데 둘 다 기름기가 많아 송어는 훈제로 만들었죠. 대관령한우도 이 지역 브랜드인 데다 우리 호텔도 평창에 있어서 지역에 뭔가 기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바로 옆 횡성 한우도 유명한데 혹시 두 한우의 맛 차이를 구별할 수 있나요?) 아∼, 제가 구별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요. 하하하. 수입육과 한우는 차이를 느끼지만, 같은 한우를 놓고 지역별로 구별하는 정도까지는 아직…. 맛이란 게 재료 차이도 있지만 다른 요소도 많이 작용하잖아요. 여자친구랑 먹으면 더 맛있을 테고…. (쇠도 맛있죠). 회식이면 뭘 먹어도 좀 그럴 테고….” (인터뷰가 끝난 뒤 당시 만찬에 나왔던 메뉴를 먹어볼 수 있었다. 대관령한우 스테이크는 안심 130∼140g과 볼살 60∼70g으로 이뤄졌다. 안심은 올리브유, 허브 등을 넣고 재운 후 저온 조리했고, 볼살은 육수에 넣고 끓인 뒤 오븐에 넣어 4시간 정도 졸였다고 한다. 김 총주방장은 “볼살은 원래 좀 질기지만 푹 끓이면 굉장히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스튜(stew)로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맛은? 음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먹어본 소감을 아주 솔직히 말한다면, 설명대로 너무도 무난한 맛. 그의 동의를 얻어 표현하자면 누구나 스테이크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맛이었다.) ―맛은 그렇다 치고, 정상급 만찬이 3코스면 너무 간소한 것 같은데요. “국내 특1급 호텔 결혼식 식사가 더 잘 나오죠. 5코스, 7코스도 있으니까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국빈 만찬 때 스태프로 일했는데 그때도 보면 식사가 아주 심플해요. 이런 귀빈들은 만찬 이후에도 계속 일정이 있으니까 식사 시간을 아주 길게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코스를 많이 넣지 않고 처음부터 3코스로 준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교도 부리지 않았어요.”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똑같은 음식도 요리사에 따라 스테이크를 잘라 탑을 쌓는다든지, 고기 옆에 놓는 부재료에 모양을 내는 식으로 플레이팅(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 모양을 내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지 않았죠. 수백 명이 참석하는 이런 귀빈들의 대형 연회에서는 아무래도 긴장이 되기 때문에 서빙을 하다가 실수가 나올 수 있어요. 그때 음식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음식에 모양을 내지 않고 최대한 심플하게 만든 거죠.” ―셰프도 장인인데, 고심 끝에 짠 레시피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던가요. “만약 제가 초청해 나만의 요리를 대접하는 자리라면 그랬겠지요. 하지만 이 만찬은 국제적인 행사이고, 바흐 위원장이 각국 귀빈들을 초청한 자리니까 전적으로 IOC가 원하는 맛에 맞춰줘야죠.” ―바흐 위원장 정도면 세계 각국의 진미는 다 먹어봤을 것 같은데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던가요. “유심히 봤는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단지 좀 딱딱한 빵을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는 별로 구별을 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식사 때마다 먹는 빵이 조금씩 달라요. 아침은 크루아상, 대니시, 버터롤 같은 부드러운 것을, 점심이나 저녁은 바게트 같은 좀 딱딱한 것을 먹어요. 총회 오찬에서 제공된 바게트가 있는데 ‘이것보다 좀 더 딱딱한 것이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된 빵을 갖다드렸죠.” ―만찬 참석자 중에 무슬림과 채식주의자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각각 30명 정도였는데 이분들을 위한 메뉴는 따로 준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슬림을 위해서는 할랄 푸드를, 채식주의자들을 위해서는 비트루트(beetroot·빨간 무라고 불리는 채소)를 조려서 메인 요리로 제공했죠.” ―자기만의 음식이나 맛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특별히 개인적인 요구를 한 사람은 없었어요. 단지 외국인들 중에는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해요. 특히 새우나 랍스터 같은 갑각류에…. IOC에서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뷔페 오찬에서 아예 새우나 갑각류는 뺐어요. 여기 오대산 쪽이 나물이 유명하거든요. 산채 비빔밥도 좋고…. 그래서 처음 만찬 메뉴를 구상할 때 나물을 이용한 뭔가도 생각을 했는데 그쪽에서 안 맞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나물 맛을 알기는 할까요?) 잘 모르겠죠?” ―만찬이 끝날 때까지 가장 신경 쓰인 점은…. “맛은 당연히 좋아야 하는 것이고, 별다른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거죠. 귀빈들이 갈 때 ‘생큐’ 한마디만 해주면 더할 나위 없고요. (쉽게 말해 접대받는 자리인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나요?) 거의 없죠. 그런데 간혹 한두 명 ‘좀 짰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도 있어요. 다 만족시키는 게 맞기는 한데 입맛 차이가 또 있으니까…. 그런 경우마저 없으면 완벽한 거죠. (이번에는?) IOC에도 식음료 파트가 있어 평가하는데 거기 계신 분들이 ‘좋았다. 다 만족하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호텔로서는 굉장히 기념할 만한 행사인데 만찬 음식 사진이 없습니다.(호텔 측은 만찬 당일 제공된 메뉴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지면에 실린 사진은 인터뷰를 위해 재현한 것이다.) “거의 막판까지 메뉴 수정이 이뤄진 데다 IOC에서 행사 전까지 비공개를 원하더라고요. 보안도 세서 만찬이 열린 홀에는 저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비표를 받은 서빙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었죠.” ―요새 TV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종이 셰프인데 거의 못 봤습니다. “제가 뭐 벌써…, 방송국에서 전화 받은 적은 없어요. 하하하. 아직 더 배워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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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제도 신부 “北주민 의료-나라걱정 많으셨던 추기경님 그리워요”

    “음…, 뭐랄까…. 아주 많이 그리운 분이죠. 9주기라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네요.” 16일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지 9주기 되는 날. 7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메리놀외방전교회에서 만난 함제도(제라드 E 해먼드·84·사진) 신부는 김 추기경을 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메리놀외방전교회는 1911년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가톨릭 외방전교회. 함 신부는 1960년 사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선교 및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 및 의약품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김 추기경과는 1968년 국내 한 강연에서 처음 만난 이후 약 40년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오래전입니다만 처음 추기경을 만났을 때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뭐랄까…, 아주 편안하고 푸근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인상도 좋으시고…. 분명히 처음 뵈었는데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느낌? 그때가 1968년인데 추기경 되시기 한 해 전이었죠. 서울대주교이실 때 한 강연에서 뵈었는데 그때는 그냥 인사만 드렸지요. 그게 시작이었죠.” (김 추기경은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메리놀전교회와 함 신부님이 북한 주민을 위한 사업을 많이 하는데 추기경께서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1989년인가 제가 메리놀전교회 한국지부장일 때였는데, 추기경님을 찾아뵙고 ‘얼마 있다가 북한에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추기경께서 북한 주민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으셨어요. 당신께서도 굉장히 가고 싶어 하셨고, 제가 그 말씀을 드렸더니 ‘메리놀전교회가 할 일’이라고 하시면서 아주 기뻐하셨어요. 그 뒤로도 몇 번 뵐 때마다 북한 얘기를 했는데 1995년 진짜 북한에 가게 됐을 때 인사를 드리러 갔죠. 그랬더니 ‘진짜 가느냐?’면서 당신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차비나 하라’고 하시면서 봉투를 주시는 거예요. 돌아와서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5000달러나 됐거든요. 1995년에 5000달러면 엄청나게 큰돈이에요.” ―평소에 그렇게 큰돈을 갖고 계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추기경께서 평상시 그렇게 큰돈을 갖고 계실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달러로…. 여쭤 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저희 전교회와 제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사업에 관심이 많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걸 아시니까 아마도 미리미리 조금씩 준비해두신 것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북한에 갈 때가 오면 보태주시려고요. 마음 씀씀이가 그런 분이셨어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한다. 김 추기경은 1975년부터 겸임을 했고 정진석 추기경도 1998년부터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추기경에게 평양은 자신의 사목 구역이기도 했다. 함 신부는 2007년부터 평양교구장 고문을 맡고 있다.) ―추기경께서 북한에 많이 가보고 싶어 하셨다는데요. “네, 맞아요. 정말 가보고 싶어 하셨어요. ‘나도 기회가 있으면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시고. 실제로 방북 신청도 하신 걸로 알아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북한이 돈을 요구해서…. 아마 10만 달러쯤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고요.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추기경께서 가시면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결국 못 가셨는데 굉장히 아쉬워하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들이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하는 것을 많이 지지하고 지원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북한을 50번 넘게 다녀왔는데 늘 가기 전, 다녀온 후에 꼭 찾아뵙고 북한 상황과 지원 활동을 말씀드렸어요. 그때마다 그렇게 좋아하셨죠.” ―사무실에 추기경 사진이 많습니다. “제가 가져다 놓았어요. 늘 생각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분인데…. 물론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님 사진도 있지요. 김 추기경께서 늘 당신을 ‘바보’라고 하신 게 기억이 나요. 스스로를 가장 낮게 낮추신 거죠. 그리고 늘 ‘내가 잘못했다’고 하셨어요. 추기경께서는 늘 누구와도 함께하려고 하셨어요. 무척 바쁘실 텐데도 늘 찾아뵈면 ‘좀 더 있다 가라, 여기 앉아라’ 하시면서 얘기하려고 하셨고요. 그리고 ‘우리’ ‘함께’라는 말을 늘 기억하라고 하셨어요.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우리 아버지, 우리나라, 우리 부모님, 우리 민족, 우리 신부님 등등….” ―추기경께서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을 많이 하셨는데, 혹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난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추기경께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셨어요.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 하는 분들을 많이 돕고 군부정권에 쓴소리도 많이 했지만 사람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가셔서 직접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고요. 자비하신 마음으로 간 것이겠죠. 그게 추기경의 마음이에요.” ―추기경께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을 당시만 해도 대단히 보수적이라 내부 반발도 있었다던데요. “서울 사람이 아니니까…. 그때는 아주 옛날이라 그런 생각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추기경께서 부임하셨을 때 참석해서 인사만 하고 다 나가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추기경께서 오히려 젊은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신 것 같아요.” (김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서울대교구장 부임 이후 10년에 대해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원로 신부님들이 교회 민주화운동을 이해해주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신 것이다. 그분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데다 때로는 형님 같은 신부님도 계셨다’고 회고한 바 있다.) ―추기경께서 많이 힘들어하신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라 걱정을 하시느라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가요?) 네. 입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손을 잡으면 느낄 수 있었어요. 추기경은 남의 이름을 입 밖에 내시면서 비난하고 그러는 분이 아니에요. 당연히 정치 얘기도 직접 하시진 않았어요. 하지만 느낄 수 있었어요. 민주화운동 하며 학생들 지켜주시면서…. 굉장히 염려를 많이 하셨어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추기경 말씀을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정말로 추기경님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생하고, 봉사하고, 서로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지요. 나만 생각하는 것은 추기경님의 정신이 절대 아니에요. 추기경께서는 평생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어요. 남과 북, 가난한 자와 부자, 종교와 지역 등등 어떤 것이든 나뉘고 싸우는 것을 싫어하시고 일치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부님께서 처음 사제품을 받고 한국행을 결심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미국에서 1947년 메리놀 소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 동창으로 장면 박사의 아들인 장익 주교가 같이 있었어요.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대학을 다녔지요. 그분에게 한국에 대해 많이 들었고 그게 인연이 된 것 같아요. 우리 메리놀회 회원 중에 한국에 온 분이 많은데 저도 부제품을 받을 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지원했어요. 그래서 26세 때인 1960년 한국에 왔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일제강점기 동성상업학교 소신학교 졸업반 때 일화다. 수신(修身) 과목 시험에서 ‘조선 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 천황의 칙유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란 문제가 나왔을 때 김 추기경은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적어 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교장에게 뺨을 맞았는데, 이 교장은 추후 김 추기경이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날 수 있게 추천해줬다. 이 교장이 바로 장면 박사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을 보호하기 위해 뺨을 때리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장면 박사의 누이인 장정온 수녀도 메리놀회 수녀였다.)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문화가 달라 적응하기 힘든 것은 없으셨나요. “크게 힘든 것은 없었지만 큰 실수를 한 적은 있죠. 충북 청주에 있을 때였는데 어느 시골집을 밤에 방문했는데 소변이 마려운 거예요. 그래서 밖에 나갔는데 큰 항아리가 여러 개 줄지어 있더라고요. 나중에야 그게 장독대고, 안에 있던 것이 된장이란 걸 알았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아, 한국 사람들은 사람 크기대로 용변기를 마련해 놓고 볼일을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된장 냄새도 처음 맡아보는 거고, 그게 꼭 ‘큰 것’ 같잖아요? 하하하. 미국은 한 군데서 다 해결하는데 한국은 애 어른은 물론이고, 각자 신체 크기별로 용변기가 다르니 와∼ 엄청 위생적이고 문화적인 나라라고 생각했죠.” ―오랜 시간 한국에 계셨는데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하하하. 아무래도 외국인이니까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도 개인적인 생각은 있겠지만 신도들에게 말하면 안 돼요. (한국 교회에서는 누구 찍으라는 말도 공공연히 하는데요.) 다들 자기 생각이 있는데…. 좀 신도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데,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제가 북한 갈 때마다 세 가지 얘기를 합니다.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민족끼리 화해해야 한다, 서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전쟁이 나면 얼마나 많이 죽겠어요. 서울에만 1000만 명이 사는데…. 제가 여권이 두 개 있어요. 일반용하고 북한 가기 위해 따로 받는 것하고요. 갈 때마다 정부에 따로 신청해야 해요.” ―우리나라 정부에 신청하는 건가요. “아니요. 미국 정부에요. 이번 5월에 가는 것 때문에 신청은 했는데 아직 답이 안 오고 있어요.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신청하면 바로 나왔지요. (ㅋㅋㅋ 트럼프 대통령이 안 내주는 건가요?) 하하하하. 지금이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난번 미국 대선 때는 투표 안 했어요. 원래 매번 부재자 투표를 했는데 지난 미국 대선은…, 에휴∼ 말을 말아야지….” ―미국 생각은 안 나시는지요. “나는 이제 미국에 친구도 없어요. 동생 둘이 있기는 하지만…. 내 친구는 여기 있어요. 미국에 가면 진짜 외롭죠. 묏자리도 이미 청주에 다 봐뒀어요. 하하하.”  ▼3월 金추기경 생가 경북 군위에 ‘사랑과 나눔 공원’ 개장▼11일 용인서 선종 9주기 추모미사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9주기를 맞아 이르면 다음 달에 추기경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군위군 용대리 일대에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개장한다. 약 3만2000m²의 부지에 들어서는 추기경 기념공원에는 추기경이 어린 시절 살던 옛집, 추모전시관, 추모정원,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잔디광장 등이 조성됐다. 또 생가에 딸린 우물과 옹기를 굽던 옹기굴도 복원됐다.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추기경은 네 살 때 군위군으로 이사해 군위보통학교를 다니며 지금의 대구가톨릭대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약 8년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군위군은 121억 원을 들여 2015년 5월 공원과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시작했으며 당초 선종 9주기인 16일 개장을 목표로 했으나 다소 지연된 상태다. 한편 선종 9주기 추모미사는 11일 오후 2시 경기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경당에서 진행된다. 올해 추모미사는 설 연휴와 겹쳐 11일로 앞당겨졌다. 미사는 김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잇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주최하며, 재단 이사장인 손희송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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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 평창 겨울올림픽 대∼박! 나∼소∼

    Andante religioso 바람이 차다. 늘 하는 연습이지만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은 왜일까. 처음 첼로를 잡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주마등처럼 지나간 시간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조금씩 든다. 활을 든다. 생각은 조금 있다가…. 반주처럼 밀려오는 파도 소리. 그 위를 청아하게 나는 한 대의 비올론첼로(violoncello). 마스네(Massnet)의 오페라 ‘타이스(Thais)’ 중 명상곡(Meditation)이다.―최근 2018평창겨울음악제 홍보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본의 아니게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사임이 더 뉴스가 됐습니다. “오∼ 그렇게 됐죠. 어쩌다가 그날 이번 겨울음악제를 끝으로 2010년부터 맡아온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그만둔다는 얘길 처음 했는데…. 그게 더 뉴스가 됐나 봐요.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겨울음악제가 아니라 ‘정명화·정경화 평창음악제 예술감독 7년 만에 사임’으로 나가더라고요. 하하하.” ―평창겨울올림픽은 많이 아는데 평창겨울음악제는 잘 안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럴 거예요.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잘 아시죠? 작년까지 14회가 열렸는데, 그 대관령음악제가 사실은 평창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시작된 것이었죠. 겨울음악제는 평창겨울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것이고, 이번이 3회째입니다.”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직접 연주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발레 ‘쉴 사이 없는 사랑’과 ‘평창 흥부가’ 두 작품에 참여하는데, 둘 다 세계 초연이죠. ‘쉴 사이 없는 사랑’은 남녀 무용수가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곡에 맞춰 사랑을 표현하는 작품인데,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제가 명상곡을 연주했어요.” ―‘평창 흥부가’는 어떤 작품인지요.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흥부가’ 중 가장 유명한 ‘박 타는 대목’을 재구성한 작품인데, 명창 안숙선 소리북 조용수 피아노 김태형과 제가 함께했죠. 흥부가 박 타서 대박이 나잖아요? 평창겨울올림픽도 대박 나라는 뜻도 있고, 또 놀부의 심술을 다 용서하고 마지막에는 형제가 우애를 되찾는 흥부 이야기가 남북 간 화합이 필요한 지금 우리 상황과 잘 맞기도 하고요.” (북한이 놀부인가요?) “넹? ㅋㅋㅋㅋㅋ.” (실제로 공연 중에 안숙선 명창이 “평창올림픽 대박 나소”라고 소리하는 대목이 있다.) ―첼로로 톱질을 표현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창 흥부가는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그 제비가 보답으로 박씨를 물어오는 장면’, ‘흥부가 박을 타는 장면’, ‘흥부가 보물을 얻어 기뻐하는 장면’, ‘놀부가 흥부에게 심술궂게 했던 것을 후회하는 장면’, ‘흥부와 놀부가 함께 어우러져 평창겨울올림의 성공을 기원하는 장면’ 등 다섯 장면으로 구성됐습니다. 그중에 활기찬 톱질을 첼로의 글리산도, 반복되는 스타카토, 다양한 음계 진행 등으로 표현했죠. 피아노와 북이 분위기를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감상하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자매라도 서로 음악관이 똑같을 수는 없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그와 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이번 겨울음악제의 공동예술감독이다.) “음…, 우리는 하도 어릴 적부터 함께 음악을 해서 눈만 마주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정도로 통하는 게 있어요. 차이야 당연히 있지요. 그게 개성이기도 하고.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차이를 조율해 가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기본이에요. 그러다 보니 콰르텟 같은 앙상블에서는 서로 눈이 맞아 커플이나 부부가 많이 생기기도 해요. 하하하.” poco a poco appassionato 조금씩 현(絃)의 떨림이 강렬해진다. 한 치를 내려갈 때마다 짙어지는 감정. 연주는 정점을 향해 간다. ―1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첫날 공연이 전석 매진일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밤 8시에 시작했는데 거의 11시에 끝나더라고요. 후반부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어지면 언제 끝나나…’ 하고 걱정도 들었죠. 그래서 끝나고 손님들에게 ‘너무 길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더니 다들 ‘긴 줄도 몰랐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대관령음악제나, 이번 음악제나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그래도 운영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라도 쓸 곳이 많기는 하겠지만 국고 지원이 많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기업 후원을 요청하러 많이 다녔어요. 저희가 맡기 전에는 국고와 강원도 지원금으로만 운영했는데, 저희가 맡은 후로 기업 후원도 받을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그 대신 힘들었죠. (예술 하시는 분들은 보통 돈 모으러 다니는 것을 꺼리지 않나요?) 하하하. 안 좋아하죠. 전에는 기업 찾아다니면서 후원 요청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이런 큰 음악제를 맡으면 해야 해요. 기업 쪽에서도 다들 도와주고는 싶어 하는데 여러 군데에서 요청이 오니까 다 해줄 수 없는 걸 가장 안타까워하더라고요.” ―특별히 첼로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누구나 자기한테 맞는 악기가 있는 것 같아요. 첼로 하기 전에 바이올린도 배워 봤는데, 영 내 목소리 같지가 않더라고요. 전 악기는 자기 목소리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동생(정경화)은 오히려 바이올린이 더 인간의 목소리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이올린에 빠진 것 같아요. 우스운 게 우리는 피아노 앞에만 가면 졸렸거든요. 그런데 명훈이는 건반 앞에서 하모니도 만들고 이리저리 쳐보면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더라고요.” ―우리 음악 교육이 아이들에게 ‘음악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데 많이 미흡한 것 같습니다. “에구∼, 음악 분야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든 시험이나 정답 맞히기 식인 게 제일 큰 문제죠. 뭐든지 외우라고…. 음악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한데…. 한번은 대학 실기시험 보러 온 학생인데 현악기 지판에 음 표시하는 줄을 살짝 그어 놓은 게 보이더라고요. 귀로 찾아야 하는데 보고 찾으니….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시험곡 몇 개만 집중적으로 하고…. 안타깝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기계처럼 정교하게 연주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음악을 듣고, 음악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잊고 있는 것이죠. 사람인 이상 연주자도 미스터치를 해요. 물론 프로 연주자가 되면 미스터치가 티 나지 않게 하는 기술이 생기기는 하지만 기술이 더 중요하다면 컴퓨터가 가장 잘하겠죠.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도 음악적 표현이나 느낌, 해석이 탁월하다면 미스터치가 좀 있다고 떨어뜨리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음악이야말로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살아남을 분야가 아닌가 생각하죠.” ―실제로 연주 중에 크게 실수한 적도 있으신지요.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때 졸업연주회를 했는데…, 바흐의 푸가였어요. 똑같은 부분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 하다가 뒷부분을 아예 건너뛰어 버렸죠. 깜빡하고 빼먹은 거죠. 속으로 ‘잉?’ 하고 어쨌든 내려왔는데, 그 곡을 모르는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협주 도중 힘차게 활을 그었다가 무대 뒤까지 활이 날아간 적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건 연주자들은 놀랐겠지만 청중은 그런 걸 너무 좋아해요. 잘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하하.”calmato 피아노(p)-피아니시모(pp)-피아니시시모(ppp)…. 활을 멈춘다. 공간 속에서만 울리는 소리. 음악도, 삶도 모든 것에는 끝나는 때가 있는 법. 나의 음악은 언제가 마지막일까. ―첼로를 그만두려 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마에서 살 때였는데 아무리 해도 더 이상 느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더 깊어지려고 여기저기 파보는데 올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 거죠. 그래서 악기 케이스를 닫고 안 열었는데…, 3일밖에 못 갔어요.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하하하. 첼로 안 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할 것도 없고…. 그런데 그 3일이 그렇게 길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첼로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내 마음을 소리로 표현하며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첼로는 그런 제 목소리죠. 지금 가지고 있는 첼로는 40년째 함께하고 있는데 이젠 아예 몸과 생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특별히 계획하신 일이 있는지요. “이젠 나이도 들고 해서…, 한번은 가족들에게 은퇴 얘기를 했어요. 제 나이대까지 연주하는 사람이, 특히 여자 연주자는 드물죠.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며 은퇴하더라도 그 전에 마지막으로 원산에서 정트리오 공연은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고향이 북한 원산인데 그곳에서 경화, 명훈이와 함께 공연을 하자는 것이죠. 이번 평창겨울음악제도 남북한 화합의 의미가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원산에서 정트리오 공연을 추진해 보고 싶은 마음이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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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Cám ơn ông, Park Hang Seo!!!

    《 베트남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사실 겸 유머가 하나 있다. 베트남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 진출시킨 박항서 국가대표팀 감독(59)을 한국 언론이 ‘베트남의 히딩크’라고 비유한 데 대한 베트남 축구팬들의 반박이다. ‘히딩크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영웅 박항서 감독님을 함부로 비교하지 마라!’ 하지만 정작 박 감독은 자신이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베트남이 AFC 주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지난해 10월 부임한 박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베트남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베트남 축구 전문지 기사 제목이 ‘고마워요, 박항서!!!’일까. 》  ―아쉽게도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졌습니다. “감기가 걸렸는데 잘 들리나요? 목소리가 안 나와요.(인터뷰는 28일 오전 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으로 진행됐다) 119분은 잘 싸웠는데 마지막 1분 동안 체력이 떨어져서…, 많이 아쉽지요. 그래도 저희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했죠.”(이날 결승전에서 베트남은 승부차기 돌입 직전인 연장 후반 14분에 결승골을 내줘 1―2로 분패했다) ―베트남은 축구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어떤 장점이 있던가요. “아이들이 아주 성실해요. 민첩하고 빠르고, 또 지구력이 뛰어난 점은 장점이죠.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과 비교하게 되는데… 체격이 작다는 게 단점이죠. 하지만 체격이 작은 것이지 체력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식단을 바꿨죠.” ―식단을 바꿨다고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스태미나와 피지컬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생각보다는 좋았지만, 한국 선수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하다고는 느꼈지요. 무엇보다 후반 70분 이후 버티려면 영양이 중요해요. 그래서 피지컬 코치에게 한 달 치 식단을 짜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늘 먹는 쌀국수에 튀긴 돼지고기만 먹는 거죠. 그래서 애피타이저로 연어 샐러드도 제공하고,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외식도 자주 했습니다.”   ―식사와 관련해 요청하신 것이 또 있습니까. “처음에는 적어도 4성급 호텔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지냈으면 했습니다. 외국 전지훈련도 가고요. 그런데 그러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아무래도 예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요청한 것 전부는 안 되더라도 식사만큼은 호텔급으로 해달라고 베트남 축구협회에 요청했습니다. 외식도 원할 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요. 다행히 축구협회에서 받아줬지요.” ―식습관은 문화인데 반발은 없었나요. “합숙을 하면서 식단을 공개했습니다. 이 음식에는 무슨 영양소가 있고, 왜 이것을 먹어야 하는지 선수들에게 설명을 했죠. 반발은 없었고…, 스테이크 이런 거랑, 못 먹어 봤던 것도 먹고 그러니까 좋아서 환장하죠. 대표팀 왔더니 밥 잘 먹는구나 하고…. 하하하. 후원사 중에 우유회사가 있는데 영양에 필요한 요소들을 매번 점검해 주고 우유도 제공해 줬죠.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베트남에서도 인기 폭발인데, 결승전이 끝난 뒤 특별한 행사는 없었습니까. “선수들과 숙소인 호텔에서 맥주를 곁들여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주중 베트남대사와 베트남 교민들이 인사를 오셨고요. 선수들에게는 아직 어리니까 몇 가지 당부를 했죠. (어떤 당부를?) 오늘까지는 준우승에 도취돼서 기분이 좋을 수 있다. 또 이제 앞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등 운동 외적인 변화가 많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금방 지나가는 일이고 잘 관리하지 못하면 더 큰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23세 이하 선수들이라 아직 어릴 텐데 이해하던가요. “저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까지 갔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1년이 지나니 금방 사라지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그런 경험을 내가 해봤으니까…. 그래서 선수들에게 겸손하자, 초심을 잃지 말자고 했습니다.”(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지냈다) ―휴대전화 금지령을 내렸다던데…. “식사할 때 식당에 휴대전화 갖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니 팀원들 간의 일체화가 좀 부족해 보였어요. 우리 같으면 훈련이 끝난 후엔 필드도 정리하고, 주장이 나와서 ‘잘해 보자’ 이러면서 함께 자성의 시간도 갖고 그러는데 여기는 그런 점이 좀 부족하더라고요. 훈련 끝나면 알아서 ‘바이 바이’ 하고 돌아가고…. 선수들에게 ‘우리는 축구뿐만 아니라 삶도 공유해야 해. 그래야 서로 친구가 되고, 동지애가 생겨 경기에서 에너지가 발휘된다’고 말해줬죠. 그러려면 식사할 때 서로 대화를 해야지 전화기만 보고 있으면 되겠느냐고요. 이런 걸 적은 종이를 나눠줬죠. 어기면 벌금도 내게 하고….”(베트남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을 경우 경기도 잘 안 보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쉽게 말해 한 팀이라는 소속감이 약했던 것. 박 감독은 이런 분위기를 ‘벤치에 앉아 있어도 경기에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변화시켰고, 지금은 벤치 선수들도 감독처럼 한 몸이 돼 응원을 한다고 한다) ―잘 지켜지던가요. “생각보다 흔쾌히 따라 주더라고요. 애들이 참 착해요. 정작 제가 깜빡 잊고 식당에 휴대전화를 갖고 갔다가 벌금을 냈죠. 하하하. 그리고 버스로 이동 중에는 전화기는 갖고 있을 수 있지만 통화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기나 훈련을 앞두고는 집중해야 하는데 통화를 하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인기를 실감하시는지요. “하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뭐, 중국 올 때는 일반 비행기를 탔는데 돌아갈 때는 전세기로 바뀌었네요. 하노이 도착하면 총리와의 티타임이 있고, 훈장도 준다고 하더군요.”(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은 박 감독에게 3급 노동훈장을, 대표팀 전체에는 1급 노동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워낙 성과가 좋아 부담도 클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서 축구는 국민의 90%가 사랑하는 스포츠고, 또 유일한 프로 종목입니다. 가끔은 종교 같다고도 하지요. 이번에 잘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베트남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부분도 고민이지요. 어찌 보면 그런 부담감을 갖는 것도 감독의 숙명이겠지요….” ―국내에서는 ‘베트남의 히딩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비교 대상이 아닌데…. 그분의 능력 경력과 비교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일부에서는 박 감독을 히딩크 감독과 비교해 ‘쌀딩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베트남의 주 음식이 쌀국수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박 감독 주변에 따르면 그는 이마저도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는 것처럼 보여 매우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같은 외국인 감독이라는 점에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한 게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100% 맞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외국인이듯이 저도 베트남 선수들에게는 외국인이니까요. 베트남과는 다른 생각과 문화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박 감독은 매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의미 있는 의식을 한다고 한다. 한 명 한 명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야, 넌 잘할 수 있어’라고 속삭여 주는 것이다. 선수는 물론 스태프까지 모두에게 말이다) ―베트남에서 어떻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안했는지요.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등을 준비하는 베트남이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경험이 많고 성적이 좋은 사람을 찾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아무래도 문화적인 부분이 있으니 아시아권,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출신 감독을 선호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감독이 갑자기 바뀌어서 동양인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 낫겠다고 본 것이겠죠. 평소 베트남이나 태국의 축구 소식에 관심이 있었고 그곳에서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에이전트를 통해 제안이 들어온 게 인연이 된 것이죠.”(박 감독의 계약 기간은 일단 2020년 초까지. 에이전트에 따르면 올해, 내년 성과가 좋을 경우 계약 기간을 연장해 도쿄 올림픽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한다) ―평소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당부가 있는지요. “국가대표팀에서 받은 훈련을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그대로 퍼뜨리라고 하죠. 여기 대표팀에서는 근육량,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등 모든 것을 체크했습니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한 것이죠. 전에는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다고 해요. 당연히 그런 데이터도 없고…. 베트남 축구협회에서도 놀라더군요. 그렇게 한 감독이 없었다고요. 대표팀에서 체크한 수치가 다시 돌아왔을 때 떨어지면 앞으로 선발 명단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했죠.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대표팀 때처럼 한다면 자연스레 자기관리는 물론이고 베트남 축구 클럽들의 훈련 습관도 바꿀 수 있겠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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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영상]베트남축구 신화 쓴 박항서 감독 “일반비행기 타고 왔는데, 갈 땐 전세기로…”

    베트남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사실 겸 유머가 하나 있다. 베트남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 진출시킨 박항서 국가대표팀 감독(59)을 한국 언론이 ‘베트남의 히딩크’라고 비유한데 대한 베트남 축구팬들의 반박이다. ‘히딩크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영웅 박항서 감독님을 함부로 비교하지마라!’ 하지만 정작 박 감독은 자신이 히딩크 감독과 비교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베트남이 AFC 주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것이 이번이 처음. 지난해 10월 부임한 박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베트남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쉽게도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졌습니다. “감기가 걸렸는데 잘 들리나요? 목소리가 안 나와요.(인터뷰는 28일 오전 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으로 진행됐다.) 119분은 잘 싸웠는데 마지막 1분 동안 체력이 떨어져서…, 많이 아쉽지요. 그래도 저희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했죠.”(이날 결승전에서 베트남은 승부차기 돌입 직전인 연장후반 14분에 결승골을 내줘 1대 2로 분패했다.) ―베트남은 축구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어떤 장점이 있던가요. “아이들이 아주 성실해요. 민첩하고 빠르고, 또 지구력이 뛰어난 점은 장점이죠.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과 비교하게 되는데… 체격이 작다는 게 단점이죠. 하지만 체격이 작은 것이지 체력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식단을 바꿨죠.” ―식단을 바꿨다고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스테미너와 피지컬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생각보다는 좋았지만, 한국 선수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하다고는 느꼈지요. 무엇보다 후반 70분 이후 버티려면 영양이 중요해요. 그래서 피지컬 코치에게 한 달 치 식단을 짜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늘 먹는 쌀국수에 튀긴 돼지고기만 먹는 거죠. 그래서 에피타이저로 연어 샐러드도 제공하고, 스테이크는 물론 외식도 자주했습니다.” ―식사와 관련해 요청하신 것이 또 있습니까. “처음에는 적어도 4성급 호텔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지냈으면 했습니다. 외국 전지훈련도 가고요. 그런데 그러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아무래도 예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요청한 것 전부는 안 되더라도 식사만큼은 호텔 급으로 해달라고 베트남 축구협회에 요청했습니다. 외식도 원할 때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요. 다행히 축구협회에서 받아줬지요.” ―식습관은 문화인데 반발은 없었나요? “합숙을 하면서 식단을 공개했습니다. 이 음식에는 무슨 영양소가 있고, 왜 이것을 먹어야하는지 선수들에게 설명을 했죠. 반발은 없었고…, 스테이크 이런 거랑, 못 먹어봤던 것도 먹고 그러니까 좋아서 환장하죠. 대표팀 왔더니 밥 잘 먹는구나하고…. 하하하. 후원사 중에 우유회사가 있는데 영양에 필요한 요소들을 매번 점검해주고 우유도 제공해줬죠.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휴대폰 금지령을 내렸다던데…. “식사할 때 식당에 휴대폰 갖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니 팀원들간의 일체화가 좀 부족해보였어요. 우리 같으면 훈련이 끝나면 필드도 정리하고, 주장이 나와서 ‘잘해보자’ 이러면서 함께 자성의 시간도 갖고 그러는데 여기는 그런 점이 좀 부족하더라고요. 훈련 끝나면 알아서 ‘바이 바이’하고 돌아가고…. 선수들에게 ‘우리는 축구뿐만 아니라 삶도 공유해야해. 그래야 서로 친구가 되고, 동지애가 생겨서 경기에서 에너지가 발휘 된다’고 말해줬죠. 그러려면 식사할 때 서로 대화를 해야지 전화기만 보고 있으면 되겠느냐고요. 이런 걸 적은 종이를 나눠줬죠. 어기면 벌금도 내게 하고….” (베트남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을 경우 경기도 잘 안보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쉽게 말해 한 팀이라는 소속감이 약했던 것. 박 감독은 이런 분위기를 ‘벤치에 앉아있어도 경기에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변화시켰고, 지금은 벤치 선수들도 감독처럼 한 몸이 돼 응원을 한다고 한다.) ―잘 지켜지던가요. “생각보다 흔쾌히 따라 주더라고요. 애들이 참 착해요. 정작 제가 깜빡 잊고 식당에 휴대폰을 갖고 갔다가 벌금을 냈죠. 하하하. 그리고 버스로 이동 중에는 전화기는 갖고 있을 수 있지만 통화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기나 훈련을 앞두고는 집중을 해야 하는데 통화를 하다보면 집중력이 틀어질 수 있으니까요.” ―베트남에서도 인기가 폭발인데, 결승전이 끝난 뒤 특별한 행사는 없었습니까? “선수들과 숙소인 호텔에서 맥주를 곁들여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주중 베트남 대사와 베트남 교민들이 인사를 오셨고요. 선수들에게는 아직 어리니까 몇 가지 당부를 했죠. (어떤 당부를?) 오늘까지는 준우승에 도취돼서 기분이 좋을 수 있다. 또 이제 앞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등 운동 외적인 변화가 많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금방 지나가는 일이고 잘 관리하지 못하면 더 큰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23세 이하 선수들이라 아직 어릴 텐데 이해하던가요? “저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4강까지 갔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1년이 지나니 금방 사라지더군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죠. 그런 경험을 내가 해봤으니까…. 그래서 선수들에게 겸손하자, 초심을 잃지 말자고 했습니다.”(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지냈다.) ―인기를 실감하시는지요. “하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뭐, 중국 올 때는 일반 비행기를 탔는데 돌아갈 때는 전세기로 바뀌었네요. 하노이 도착하면 수상과 티타임이 있고, 훈장도 준다고 하더군요.”(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은 박 감독에게 3급 노동훈장을, 대표팀 전체에는 1급 노동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워낙 성과가 좋아 부담도 클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서 축구는 국민의 90%가 사랑하는 스포츠고, 또 유일한 프로 종목입니다. 가끔은 종교 같다고도 하지요. 이번에 잘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베트남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부분도 고민이지요. 어찌 보면 그런 부담감을 갖는 것도 감독의 숙명이겠지요….” ―국내에서는 ‘베트남의 히딩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비교 대상이 아닌데…. 그분의 능력·경력과 비교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일부에서는 박 감독을 히딩크 감독과 비교해 ‘쌀딩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베트남의 주음식이 쌀국수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박 감독 주변에 따르면 그는 이마저도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는 것처럼 보여 매우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같은 외국인 감독이라는 점에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한 것은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100% 맞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외국인이듯이 저도 베트남 선수들에게는 외국인이니까요. 베트남과는 다른 생각과 문화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박 감독은 매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의미 있는 의식을 한다고 한다. 한 명 한 명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야, 넌 잘할 수 있어’라고 속삭여주는 것이다. 선수는 물론 스텝까지 모두에게 말이다.) ―베트남에서 어떻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안했는지요.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 등을 준비하는 베트남이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경험이 많고 성적이 좋은 사람을 찾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아무래도 문화적인 부분이 있으니 아시아권,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출신 감독을 선호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감독이 갑자기 바뀌어서 동양인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 낫겠다고 본 것이겠죠. 평소 베트남이나 태국의 축구 소식에 관심이 있었고 그곳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에이전트를 통해 제안이 들어온 게 인연이 된 것이죠.”(박 감독의 계약기간은 일단 2020년 초까지. 에이전트에 따르면 올해, 내년 성과가 좋을 경우 계약 기간을 연장해 도쿄 올림픽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한다.) ―평소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당부가 있는지요. “국가대표팀에서 받은 훈련을 소속팀에 돌아서도 그대로 퍼트리라고 하죠. 여기 대표팀에서는 근육량,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등 모든 것을 체크했습니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한 것이죠. 전에는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다고 해요. 당연히 그런 데이터도 없고…. 베트남 축구협회에서도 놀라더군요. 그렇게 한 감독이 없었다고요. 대표팀에서 체크한 수치가 다시 돌아왔을 때 떨어지면 앞으로 선발 명단에서 떨어트릴 수도 있다고 했죠.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대표팀 때처럼 한다면 자연스레 자기관리는 물론 베트남 축구 클럽들의 훈련 습관도 바꿀 수 있겠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주길 바란 것이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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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오늘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누구인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고은, ‘순간의 꽃’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이름만으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회사 이름이나 직책을 붙이지 않으면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 “고은입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그 이름에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안겨 있는 사람. 어쩌면 그에게 시는 이런 질곡 중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올해로 등단 60주년을 맞았다. 그가 올라가면서 보지 못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눈 내린 10일, 자작나무 숲 너머 그의 집을 찾았다.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등단하신 지 올해로 60년이 됐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백일이 되면 빚을 얻어서라도 마을 잔치를 했죠. 살 수 있다는 어떤 확신을 뜻한 것이지요. 거꾸로 60년을 살면 이제 충분히 살았다는 의미로 기념을 한 것이 되지요. 그냥 시인으로서 충분히 해왔다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내 시인 생활 60년을 특별히 되새기는 것은 좀 불편합니다.” ―우리 현대시에서 시인 고은의 위치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 현대시가 1908년 육당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부터 시작해 100여 년이 지났는데, 나는 꼭 그 중간에 시작했기 때문에 앞 세대의 흔적과 유산을 이어서 넘겨 준다는 그런 의미를 스스로 갖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육당, 공초(오상순) 등 앞 세대 시인들과 많은 친분이 있었고 그분들의 아픔도 느끼니까요. 그분들이 다 쓰지 못하고 남기고 간 세계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써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내 세계는 좀 서사적이고 직관적입니다. 괜찮은가요?(첫 질문에만 그의 설명은 춘원 이광수에서 김소월, 이상, 이육사를 망라하며 30여 분간 이어졌다.)” ―60주년 기념으로 시집 대하 서사시 ‘심청’을 출간하신다고 하던데요.(그의 ‘심청’은 우리 고전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서사시로 긴 장편소설 분량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대학에 초청받아 한 학기 동안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단테의 ‘신곡’을 다시 보면서 천국-지상-지옥으로 이뤄진 구성에 흥미를 느꼈지요. 그런데 우리 심청전도 자세히 보면 하늘-지상-용궁이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거든요. 물론 나의 심청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지만요. 작년 여름에 원고를 넘겼는데, 어떻게 하다가 출간이 해를 넘기게 되었어요. 꼭 6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원래 승려이셨는데 등단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수행 중에 시를 좀 썼는데, ‘폐결핵’이란 시를 화가 나병재라는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가 보더니 ‘이것도 시냐?’ 하더라고요. ‘안 좋으면 내버려라’ 하고 잊어버렸는데, 그가 갖고 있다가 그때 막 생긴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현대시’에 공모 광고가 난 걸 보고 거기에 보냈는데 뽑힌 거죠. 나는 산중에 있어 전혀 몰랐어요. 당시 비구승으로 서울에서 불교신문 초대 주필을 하면서 직접 신문을 만들었는데, 잘 만들 줄 모르니까 지면에 자투리 공간이 남을 때가 많았어요. 거기에 내가 쓴 시를 넣어 메우곤 했지요. 하루는 자주 찾아오던 교통부 국장이 그 시를 보고 ‘갈 데가 있소’라고 해 따라가니 미당 서정주의 집이었어요. 미당이 내 시를 보더니 ‘이거 단번에 추천해야겠구먼’ 하더니 세 편을 한꺼번에 현대문학에 추천했어요. 그렇게 해서 1958년 한 해에 두 번이나 등단하게 된 거예요. 내 힘이 아니라 주변의 인도 덕분이었죠.” ―젊을 때 기자생활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69년 내 인생에 직장이라고는 딱 한번, 몇 달 정도 동화통신이란 곳에 문화부장대우로 다닌 적이 있습니다. 문화부는 아니고 일종의 특집부의 성격인데 포천 양공주촌이나 오지 같은 데를 다니면서 기사를 썼죠. 그 회사 안에 외신기자 구락부(클럽)가 있었는데, 방에 온갖 양주가 즐비했어요. 하루는 그 술을 몰래 엄청 마시고는 다 때려 부쉈지요. 취중에 반감이 생겼나 봐요. 그랬더니 사장이 불러서 ‘고은 씨는 시인의 길을 가야겠네. 당분간 쉬게’ 했어요. 잘린 거지요. 그런데 지금도 사우회에서는 이따금 편지가 와요. 하하하.”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사람’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젊을 적에는 6·25전쟁과 학살의 극한 상황을 겪다 보니 인간의 의미를 부정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은 모두 관계로서 이뤄지고 존재한다고 봅니다. 만약 나 혼자 존재한다면 이름도 필요 없죠. 지금 이 자리도 이진구가 있으니 고은이 있는 거죠. 우리 둘이 지금 앉아 있는 것도 관계로서의 존재입니다.” ―다작(多作)으로도 유명하신데, 소재 부족을 느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나보고 다작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거부합니다. 끝없이 솟구쳐 나오는 샘물을 내가 어찌 막겠어요. 세계 각처에는 작품을 산더미처럼 쓴 작가가 많습니다. 중국의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편이라고 두보가 노래했지요. 괴테, 빅토르 위고 등 모두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썼습니다. 중앙아시아에는 아직도 일주일도 넘게 읽어야 하는 구비서사시가 있습니다. 한번은 몽골에서 밤 10시부터 아침까지 구비서사시를 읽는 독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새벽에 해가 뜨니까 그제야 ‘끝났다’며 말젖으로 만든 술을 마시더라고요. 멋진 긴 밤이었지요. 나에게도 그런 피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년부터 ‘운명’이라는 서사시를 쓸 계획이고, 그 뒤에도 써야 할 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요.” ―작품이 스웨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됐는데, 시가 번역이 참 어려운 분야 아닌지요. “지금 우리가 읽는 모든 외국 작품은 다 번역된 것입니다. 불경도, 성경도, 괴테의 작품도 그렇지요. 당장은 불충분할 수 있지만 시는 자기 스스로 어딘가로 나가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어요. 아이들이 크면 아빠 엄마의 품을 떠나 집 밖의 또 다른 세계로 나가고 싶어 하듯 말이지요. 내 시도 집에서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만 있지 않고, 바람 찬 세상 속으로 나가 노래하고 싶어 하겠죠. 그렇게 나가는 거죠.” ―진부한 질문이지만 매년 노벨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대답도 진부합니다. 정말 내가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가 너무 노벨상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보다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도 많이 아픈데 특별히 해주실 말이 있으신지요.(그는 젊을 적에 네 번 자살 시도를 한 바 있다) “그 시대에는 다 힘들게 살았는데 나만 유달리 고생했다고 하면 미안한 일입니다. 다만 전쟁을 겪으면서 내 또래 절반 가까이가 죽었는데 살아 남다 보니 일종의 죄의식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살지 못한 삶을 조금이나마 내가 대행한다는 사명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지금 젊은이들에게 ‘뭐가 힘드냐’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삶은 누가 지도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말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저서 ‘만인보’에 국정 농단 사건의 폭로자 고영태 씨 가족사가 실린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만인보는 1986∼2010년까지 쓴 4000여 편의 시를 30권으로 엮은 그의 연작시로, ‘단상3353-고규석’ ‘단상 3355-이숙자’에 나오는 고 씨와 이 씨가 고영태 씨의 부모다.) “만인보의 후반 편에서는 광주학살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때 취재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때 남편을 잃은 여자가 리어카를 끌며 아이들을 힘들게 키웠는데,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펜싱 금메달을 땄다는 걸 알고 쓴 거지요. 나중에 만인보에 나오는 그 금메달리스트가 고영태라는 건 언론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박근혜 정부에서 소위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이름만 달랐지, 어찌 그때뿐이겠습니까. 늘 감옥이고 이중 삼중 감시를 당했으니까요. 유신시대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내 친구가 운영하던 민음사는 나 때문에 세무조사를 당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문인 주소록에서 나를 뺀 적도 있어요. 얘기하거나 드러나면 안 되는 기피 인물이었던 거죠. 오죽하면 승려 시절의 ‘일초(一超)’란 법명에 ‘표’ 씨를 붙여 ‘표일초’라고 해서 글을 발표하거나, 다른 호를 지어 글을 발표해야 했으니까요. 여권은 김영삼 정부 들어 사면 받으면서 처음 나왔고, 그전에는 초청을 받아도 출국을 못했습니다. 나한테 블랙리스트는 아주 익숙한 일입니다. 하하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요. “앞으로도 나는 이 나라 시의 길을 이제까지 간 것처럼 갈 것입니다.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혀 새롭게 펼칩니다. 아시아의 숙명 이상의 우주적 율동으로서의 운행(運行) 말입니다. 나는 그런 운명 속에서 내 시의 긴 과정을 완성할 것입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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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해야”

    내년 1월 1일부터 역대 최대 인상액인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적용되는 가운데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사진)이 “(실질적인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인) 2020년까지 3년 내 시급 1만 원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어 위원장은 2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최저임금 제도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다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대상자 중에도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더 생계가 힘든 계층을 위한 핀포인트형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시급 1만 원을 달성하기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처럼 계속해서 해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릴 경우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 위원장은 “저소득 계층 중 하루 8시간을 일해도 가계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최저임금을 높여도 생계가 해결이 안 된다”며 “이런 계층에는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해주고, 추가적인 정부 지원을 해주는 선택적 복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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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최저임금 결정에 문 대통령 영향? 안 받으면 바보지”

    《 일주일 후(내년 1월 1일)면 역대 최고라는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시행된다. 올해 6470원에서 무려 1060원(16.4%)이 오른 것. 이 때문에 “망하는 중소·영세기업이 속출할 것”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경영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과연 며칠 후면 쓰러지는 영세 자영업자가 속출할까.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에 어떤 청사진을 가져올까.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내년 1년간 대한민국의 수준이 어떤지 민낯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최저임금이 역대 최고라는 것은 인상률이 아닌 인상액(1060원) 기준이다. 인상률로는 1991년 18.8%, 2000년 9월∼2001년 8월 16.6%에 이어 세 번째다.) 》  ―민낯이라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은 결국 국민 전체가 질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더 내더라도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지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왜 국민이 지나? 사업주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전가되는 방식은 4가지다. 첫째는 근로자. 사업주가 임금 상승 부담을 해고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상쇄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사업주 자신이 경영효율화든 자기 몫을 줄이든 스스로 감내하는 것. 세 번째가 가장 많은데 가격에 전가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정부가 세금으로 임금 상승분을 지원하는 것이다. 해고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부담 전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사업주 자신이 감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돕는 세 번째, 네 번째가 가장 바람직하다.” ―둘 다 국민이 부담을 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 임금 상승분이 가격에 전가되면 4000원이던 자장면이 4500원이 된다. 결국 물가가 오른다. 이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조금 더 내고, 오른 자장면 값을 기꺼이 낼 수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해 조세 저항이 심하거나, 인플레이션을 못 견딘다면 그 충격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직접 간다. 어느 길로 우리가 갈지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다’고 한 거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개인적으로는 예상이… “우울하지만 국민이 부담을 지는 형태로는 안 갈 것 같다. 그럼 결국 영세 자영업자와 그곳에 속한 근로자에게 충격이 다 갈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안 그랬는데 갑자기 몇 달 만에 바뀔 수가 있겠는가. 영세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는 곳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영업시간과 종업원 고용 등에서 경영효율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화도 방법이고…. 그래서 정부가 이 부분을 명확히 말해줘야 한다. 최저임금의 대폭 상승은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 국민 모두가 물가 인상을 견뎌야 하고, 세금을 조금 더 내야 한다고…. 그런데 시급 1만 원은 말하지만 함께 수반돼야 하는 ‘견딤’은 말하지 않는다.” ― ‘시급 만 원’의 근거가 뭔가. “2, 3년 전인 박근혜 정부 시절 최저임금이 가장 높게 오르면서 받는 쪽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알바천국이 ‘시급 1만 원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한 게 그때쯤부터다. 왜 만 원인지에 대한 산출 근거는 없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걸 받으면서 정착됐다.” ―잠깐, 박근혜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실제 의미가 있는 것은 보통 근로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과 최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상승률 간의 격차다. 이 격차가 있어야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일반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 결국 하나도 안 오른 것과 마찬가지다. 노태우∼박근혜 대통령까지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가 높았지만 그때는 전체 근로자의 평균임금 상승률도 높았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 때는 일반 근로자 임금 상승률보다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3%포인트가 더 높았다.” ―왜 ‘뜻밖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나도 그 통계를 보고 뜻밖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매년 최저임금을 7∼8% 올렸는데, 시중 임금인상은 4∼5%였다. 그만큼 더 준 것이다. 3, 4년 전부터 이 때문에 기업들이 압박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단지 보수정권이다 보니 경영계가 강하게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그러다가 이번에 왕창 올리니까 이제는 ‘악’ 소리가 나온 것이다.” ―경영계는 그렇게 힘들다지만 믿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기업은 엄살이다. 임금 상승 부담을 물건 값에 전가하거나 하청업체를 쥐어짤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 과정에서 인상 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막연한 찬반 논쟁만 되풀이됐다. 1988년부터 시작했는데 왜 효과를 분석한 자료가 없나. “처음 이 제도를 시작할 때는 필요한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어마어마한 조사를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00원, 200원 정도로 얼마 안 되게 올리니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1000가구 정도 샘플 조사한 게 있기는 한데 표본이 적어 신뢰할 수는 없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최저임금 대상자가 300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에 제도개선연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내년 시급 7530원이 엄청나게 오른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강남에서는 이미 시급 8000원 이상인 곳이 많다. “서울 서초구 교대 인근의 호프집에 갔는데 여기는 올해 법정 시급이 6470원인데 이미 8000원을 주고 있었다. 그 정도 안 주면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하고, 또 다른 데 간다고…. 일도 잘하고 서비스도 잘하는 좋은 사람을 구하려면 그 정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이 부담은 없다고 하던가?) 이미 아는 거다. 그 정도는 줘야 한다는 걸…. 그걸 다 포함해 장사를 하는 것이고·…. 강남에서 한정식집 같은 고급 음식점은 이미 시간당 1만 원이었다.” ―그들도 이번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을 것 아닌가. “이번 인상액인 1060원 다는 아니더라도 600∼700원 정도 더 오르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주인은 치킨 값을 올리든지, 영업시간을 줄이든지 방법을 찾을 것이다. 경영계와 언론에서는 영세 자영업자를 다 하늘만 쳐다보는 바보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들은 수입·지출은 물론이고 어디가 낭비 요인인지 다 안다. 힘든 곳도 있겠지만 일단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다. 호프집이 낮에 문을 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배달만 하는 음식점, 배달은 안 하는 음식점으로 구분될 수도 있고…. 이게 구조조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이런 대폭 인상이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지. 당연하다. (잉?)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정권의 정책방향에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고…. 안 받는 게 이상하고 바보인 것이다. 결정할 때 고려 사항들이 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물가, 생계비 등등. 이와 함께 중요한 게 정부 정책이다. 정부 정책이 내년에 어디로 가는지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만큼 올리고 싶었나. “개인적으로는 10% 이상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650∼700원 이상. 그런데 경영계가 7300원(12.8%)을 제시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물었다, ‘너희들 왜 그러느냐’고. 경영계는 늘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으니까…. 역시 정부 정책이 영향을 준 것이지…. 그래서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자유투표를 한 거다. 경영계 안이 통과돼도 문제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들이 써낸 7300원에서 불과 230원 더 올랐는데 왜 지금까지 국회를 찾아가서 부담이라고 반발할까. “그러니까 신의가 없는 거지. 스스로 써내놓고…. 이미 12.8%를 제시해 놓고 그 차이만큼만 부담이 된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16.4%를 부담이라고 하니까….” ―최저임금 제도는 딜레마적 성격이 있다. 실제로 장사가 안 돼 최저임금도 못 준다면 낮은 임금이라도 받는 게 나은가, 아니면 폐업을 시키더라도 최저임금을 강제해야 하나. “공권력이 깊숙하게 들어갔을 때의 부작용을 말하는 건데…. 부작용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망한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것을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고 하는 것은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최저임금은 얼마든지 노사 자율로 합의하지만 이 이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최저임금은 싼값에 사람을 쓰는 레이버 덤핑(labor dumping)을 막는 제도다. 일자리의 절대수가 부족할 경우에는 이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말 그런지는 따져 봐야 한다.” ―통계 수치가 없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 수가 지금 전체 근로자의 12% 내외라고 나오는데…. 통계가 너무 부풀려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약 2∼4%라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12%라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잘 모르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고, 일하는 시간을 집 나갈 때부터 들어올 때까지로 대답하기도 하고…. 일단 나는 12%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년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있다. 이걸 사회통합 차원에서 줄여야 하는데 여기에 최저임금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논쟁이 있다. 유럽에서는 최저임금이 높은 것을 당연시한다. 기술이 없어서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일을 하는 한은 빈곤층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회철학이 있다. 이게 모든 정부 정책의 기본 철학이고, 그래서 국민 각자가 돈을 더 내더라도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력 논리에 매몰된 부분이 많다. 어디로 갈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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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朴 대통령이 직접 받는 전화라더니, 받기는…”

    《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7월 8일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축출부터일 것이다. ‘말 안 듣는 원내대표’를 제거한 청와대와 친박 실세들은 이후 야당과 합의가 안 되는 각종 법안의 직권상정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69)에게 요구했다. 정 전 의장은 “그때 막지 못했다면 나라가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10일 출간된 그의 회고록(‘정의화의 아름다운 복수’)에는 20년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한 정치인의 소회와 곪아가던 당시 청와대와 친박, 그들의 몰락하는 모습이 낙조(落照)처럼 담겼다. 》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는 것이 의외로 작고 재미있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가 화제가 됐던 일 중 하나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핫라인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받았는데 연결이 안 됐다던데…. “국회의장 되고 청와대에 처음 인사차 갔을 때 박 대통령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대통령이 ‘좋다’고 했다. 얼마 후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연락해 번호를 알려줬다. 박 대통령이 직접 받는 전화라고…. 그래서 했는데 안 되더라고.”―신호는 가는데 안 받은 건가.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았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두 번 했는데…, 그래서 좀 의아스러웠다. (추후에라도 전화가 안 오던가?) 그 부분도 의아스러운데, 보통 수행비서가 그 전화기를 갖고 있을 것 아닌가. 명색이 국회의장이 전화했는데 대통령에게 왔다고 말을 했을 테고…. 수행비서가 자기 마음대로 자를 수는 없을 테니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나한테 분명히 ‘대통령이 쓰는 직통전화’라고 했거든. 오죽하면 내가 잘못 적었나 싶어 당시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이 번호 맞느냐고까지 물었다. 그랬더니 ‘맞습니다. 저도 그 번호 써요’라고 하더라. (잉? 속된 말로 그냥 씹은 건가?) 몰라. I don‘t know. 나중에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그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는 ‘핸드백 속에 있어서 못 받았겠죠’ 하며 넘어갔다. 미주알고주알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후 박 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은 어떻게 했나. “2015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유승민 의원 문제와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를 야기한 국가보훈처장 해임 요구, 남북 국회의장 회담 등을 건의하기 위해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 뒤에 이 실장을 만났는데 ‘대통령이 왜 (정 의장의 전화를)받았느냐고 역정을 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가?) 왜 전화를 받아서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뜻이겠지. 이 실장이 되레 대통령에게 ‘아니 내가 비서실장인데 국회의장 전화를 어떻게 안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박 대통령을 만났나. “날짜를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한 2주 정도 지나 공항 귀빈실에 앉아 있는데 전화가 하나 와서 받았더니 ‘정호성입니다(정호성 비서관)’라고 하더라. 대통령 전화라면서…. 오후 4시 15분경이었다. 10분 후에 비행기 타야 하는데. 전화로 다 얘기를 하기는 어렵고 해서 유승민 의원 얘기는 빼고, 보훈처 이야기만 했다. 남북 국회의장 회담 얘기도 했더니 ‘북이 악용할까 봐 걱정된다’고만 하더라. 그건 국정원이 늘 하는 소리지. (핫라인으로 받은 번호였나?) 그건 잘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번호를 다 지워서….” ※현재 그의 휴대전화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핫라인이라고 했던 번호는 지워진 상태다. 그는 “‘박 대통령 직통’이라고 저장한 것 같은데 왜 없어졌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 만나는 날을 달라고 안 했나. “상대가 대통령이고 여성인데,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이 왜 안 만나주느냐고 하기는 어렵다. 상식적으로 국회의장이 독대신청을 했으면 당연히 날짜를 잡아주는 거지. 그러면 차분하게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고. 이병기 실장 말을 들으면 그게 싫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동선을 다 알 테니 거기에 맞춰 딱 10분 정도 얘기하려고 전화를 한 거지. 만나자고 한 데 대한 답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지난 2, 3년간 정치는 말 그대로 ‘○판’을 방불케 했다. 특히 청와대와 새누리당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비상식적인 일들은 자신들의 몰락은 물론이고 국격의 추락까지 불렀다. 그 무리수의 시작점이 국회의장에 대한 직권상정 압박이었다. ―직권상정 때문에 청와대와 참 많은 갈등을 빚었다. “2015년 12월 15일, 당시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이 나를 찾아왔다. 대통령이 보냈다면서…. 경제활성화법, 노동법 등을 직권상정해 주지 않으면 선거법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시간상 총선을 늦추거나 입법 공백 사태가 벌어질 상황이었다. 그대로 2016년 1월 1일이 되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결정에 따라 선거구가 사라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선거법이 통과돼야 구획정리도 하고 선거준비를 하는데…. 총선을 못 하는 한이 있어도 이건 통과시켜야 한다고 거의 협박성 발언을 했다. 태도까지… 내가 대선배인데도 강압적인 태도로…. 몸도 삐딱하게 틀면서…. 내가 기가 차서 ‘권력이 며칠 간다고…’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걸로 끝나던가. “직권상정 요건은 천재지변, 국가 비상상황, 여야 합의된 것 등 셋밖에는 없다. 그랬더니 직권상정 요건에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 요청’을 추가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한 친박 좌장 의원은 전화를 걸어 ‘직권상정 요건이 없어서 안 된다길래 요건을 만들어줬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하니 우리가 의장을 잘못 뽑았구먼’ 하며 전화를 탕하고 끊기도 했다. 소리를 들어보면 집어 던진 것 같았다. 기절초풍할 일이지….” ―퇴임 후 복당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회의장이 아닌가 싶다. 정이 떨어져서인가. “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도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는 새누리당이 그래서는 안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된 후 새누리당 안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이것은 그동안 내가 사랑했던 신한국당, 한나라당이 아니라 개인 박근혜 사당이었다. 박근혜 개인 정당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특정인의 사당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복당을 안 했다.” ―임기 말 ‘제3지대’를 만들어 정치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했는데…. “대한민국이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개헌이나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등 중차대한 일들이 이뤄져야 한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 일들을 해보자는 취지였는데 잘 안 됐다.” ―잘 안 된 이유가 무엇인가. “추진할 때는 정상적으로 2017년 12월에 대선이 치러진다는 계산으로 했다. 당시 김종인 의원, 정운찬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전 대표 등과 함께 추진했는데 중간에 대통령 탄핵이 벌어지고, 바른정당이 창당되고, 대선이 벌어지면서 정치판이 요동을 쳤다. 그러다 보니 자연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동력도 잃었다. 그래서 올해 대선을 한 달 정도 남기고 미국으로 갔다. 뭐,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셈이다.” ―5선 의원, 20년 동안 정치하면서 겪은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었나. “공천 탈락이지. 하하하.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쥔 친박들이 부산의 3선 이상 중진의원을 공천에서 배제시킬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한창 공천심사 기간인데, 공천위원 중 한 분이 내 지역구가 전략지역으로 결정됐다고 알려줬다. 공천에서 탈락됐다는 뜻이다. 무소속이라도 출마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는데 어머니가 ‘야야, 고만하면 됐다’고 하시더라. 4선에, 국회의장 직무대행까지 했으니 더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일이 풀렸다.” ―엉뚱한 데서 풀렸다니…. “그때 내가 국회부의장이었는데,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사직 상태였다. 내가 만약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나오면 당시 야당 부의장인 홍재형 의원에게 국회 의사봉이 넘어가게 된다. 이걸 국회사무처가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알려줬더니 4일 만에 번복돼 공천을 받았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나. “나는 적폐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시스템, 규제, 관습 등이 문제지. 적폐청산은 좋은데 그로 인해 또 다른 적폐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여당일 때 대통령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집권했을 때 스스로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면 한 가지 적폐가 청산되는 것 아니겠나. 지금 와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안 나왔다고 하면서 안 나오면 되레 적폐를 만드는 것 아닌가.” ―JP(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정치는 ‘허업(虛業·실속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끝내고 난 지금 소회가 어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국회가 청와대의 거수기, 통법부 노릇을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각종 법안들을 직권상정하라고 압박이 오는데 만약 못 버텨서 통과시켰다면 지금 나라가 어찌 됐을까. 대의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 압력을 막으라고 정치인이 되고 국회의장까지 된 것 아닌가 하는 확신까지 들 정도였다.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장 탄핵하자’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그 소명을 다했으니 퇴장하는 거지…. 허업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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