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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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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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 노동자 5명 중 1명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전 세계 노동자 5명 중 1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5일 국제노동기구(ILO)는 121개국의 15세 이상 12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ILO가 전 세계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22.8%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형태는 심리적 괴롭힘(17.9%)이었다. 신체적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한 경우도 8.5%에 달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겪은 응답자는 6.3%였다. 여성(8.2%)이 남성(5%)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실태도 이번 조사로 파악됐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노동자 중 54.4%만 자신의 피해 경험을 주변에 알렸다. 피해 사실을 밝히더라도 이미 여러 번 같은 문제가 반복된 뒤에야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보단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꺼리는 이유로는 ‘시간 낭비’, ‘평판 악화’ 등을 꼽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15~24세의 젊은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계층에서 두드러졌다. 특히 젊은 여성과 여성 이주 노동자들은 성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남성보다 두 배 높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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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참전한 일본계 미국인 5600명 기억할 것”

    6·25전쟁에서 싸운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들이 한국 정부의 표창을 받았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은 3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플라자 콘퍼런스센터에서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 위로연을 열고 후손을 포함한 21명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와 예우의 뜻을 표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기념 메달이다. 이날 메달을 받은 참전용사 중에는 세 형제가 함께 참전해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만 했던 겐조 마에다 씨(90), 6·25전쟁에 공병으로 참전해 다리 건설을 했던 하루미 사카타미 씨(92) 등이 포함됐다. 하루미 씨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일본어를 할 줄 몰라 한국에서 일본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이날 자리에서 전했다. LA 총영사관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일본계 미국인 병사는 약 5600명으로 대부분 최전선에 배치됐다. 이 중 전사자는 255명, 부상자는 1000명을 넘는 것으로 전해져 사상률이 미군 평균보다 3배 높은 수준이다. 생존한 일본계 참전용사들은 1996년 ‘일본계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회(Japanese American Korean War Veterans)’를 결성했다. 이듬해 LA 일본계 미국인 문화센터에 전몰자 기념비를 세웠다. 2001년에는 경기 파주 임진각에 기념비를 세우고 2018년까지 매년 참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의 공로를 인정해 2019년 일본계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회에 국무총리 단체표창을 수여했다. 지난달 30일 작고한 미야무라 히로시 예비역 하사도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다. 홀로 중공군 50명 이상을 사살해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최고무공훈장을 받았다. 1951년 4월 상병 계급으로 경기 연천군 미군 진지를 지키다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중공군을 사살했으며, 포로로 붙잡혔다가 1953년 휴전 이후 풀려났다. 2014년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나선 것일 뿐 나의 행동이 영웅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회고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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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 정부 “히잡 단속 ‘도덕 경찰’ 폐지”

    이란 정부가 ‘히잡 시위’의 촉발 요인 중 하나인 ‘도덕 경찰’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22세 여성인 마사 아미니가 9월 히잡 착용 불량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하면서 이란 전역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강경 진압으로 일관했던 이란 정부가 도덕 경찰을 폐지하고 히잡 착용 의무화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이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이란 검찰총장은 3일 한 종교 행사에서 ‘도덕 경찰이 왜 폐지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도덕 경찰은 사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이 제도가 폐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사법부는 풍속 단속은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관영 매체도 “(이슬람) 풍속 위반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의 도덕 경찰은 히잡 착용을 비롯한 이슬람 풍속 단속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도덕 경찰은 2021년 8월 에브라힘 라이시 현 대통령이 취임 후 히잡 의무화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뒤부터 체포 및 구금 권한을 남용하면서 폭력적인 단속을 이어 왔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아미니의 죽음으로 극에 달했다. 이날 이란 정부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현행법을 완화할지를 검토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이란의 이슬람 기반은 법적으로 견고하다. 다만 그러한 법률 적용 방법은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몬타제리 총장은 “의회와 사법부가 (히잡 착용 의무화) 관련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지난달 30일 사법부 관계자들이 의회 측과 만나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1, 2주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4년 만인 1983년부터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간 이란 당국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2일에는 클라이밍 선수 엘나즈 레카비(33)의 가족이 사는 주택이 철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카비는 10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를 치러 이란 시위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란 개혁파 언론 이란와이어가 이날 공개한 영상에는 완전히 파괴된 주택의 잔해 앞에서 레카비의 오빠 다부드가 울부짖는 모습이 담겼다. 반정부 시위대는 이란 당국이 레카비를 응징하기 위해 집을 철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란 반(半)관영 타스님 통신은 해당 주택이 철거된 것은 맞지만 정식 건축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이란 휴먼라이츠’는 현재까지 이란 시위 참가자 중 최소 448명이 군경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1만400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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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발 물러선 이란 정부, ‘도덕 경찰’ 폐지…히잡 착용 완화도 검토

    이란 정부가 ‘히잡 시위’의 촉발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도덕 경찰’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22세 여성인 마사 아미니가 9월 히잡 착용 불량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하면서 이란 전역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강경 진압으로 일관했던 이란 정부가 도덕 경찰을 폐지하고 히잡 착용 의무화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이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이란 법무부 장관은 3일 한 종교 행사에서 “도덕 경찰이 왜 폐지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도덕 경찰은 사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이 제도가 폐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사법부는 풍속 단속은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관영 매체도 “(이슬람) 풍속위반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의 도덕 경찰은 히잡 착용을 비롯한 이슬람 풍속 단속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도덕 경찰은 2021년 8월 에브라힘 라이시 현 대통령이 취임 후 히잡 의무화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뒤부터 체포 및 구금 권한을 남용하면서 폭력적인 단속을 이어왔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아미니의 죽음으로 극에 달했다. 이날 이란 정부는 히랍 착용을 의무화한 현행법을 완화할지를 검토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란의 이슬람 기반은 법적으로 견고하다. 다만 그러한 법률 적용 방법은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몬타제리 장관은 “의회와 사법부가 (히잡 착용 의무화) 관련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지난달 30일 사법부 관계자들이 의회 측과 만나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1~2주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4년 만인 1983년부터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간 이란 당국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2일에는 클라이밍 선수 엘나즈 레카비(33)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이 사는 주택이 철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카비는 10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를 치러 이란 시위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란 개혁파 언론 이란와이어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경찰이 레카비의 주택을 철거했고 오빠 다부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위반 사항’ 때문에 과징금 5000달러를 부과 받았다고 전했다. 이란와이어가 공개한 영상에는 레카비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달이 널브러진 집에서 오빠 다부드가 울부짖는 모습이 담겼다. 레카비가 철거된 집에 살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이란 휴먼라이츠’는 현재까지 이란 시위 참가자 중 최소 448명이 군경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대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1만400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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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美반도체공장 찾은 바이든 “中의 공급망 인질 안될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있는 한국 기업 공장을 방문해 그동안 경제성과를 강조하며 미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구축 의지를 강조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시간주 베이시티 SK실트론CSS 공장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은 “SK실트론CSS 고위 관계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그들은 여기에서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실트론 자회사인 SK실트론CSS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현장 연설에서 “SK가 이곳에서 반도체 소재를 만들고 있다”며 “이제는 반도체 공급망 중심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가 아닌 바로 이곳, 미국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미국 내에 반도체, 전기차를 비롯한 핵심 첨단 산업 투자를 늘려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핵심 정책을 통해 중국을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속내가 드러났다. 특히 그는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시 주석은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 소재 제품 등의)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것에 약간 화가 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드는 공급망은 세계 나머지 국가 모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 이상은 (중국의) 인질이 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태원 SK 회장이 올 7월 백악관을 찾아 50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투자 일부가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베이시티로 온다”며 “(세계) 반도체 회사들이 향후 10년간 수천억 달러를 투자해 다른 공급망도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두 사람의 면담 직후 백악관은 투자 규모를 220억 달러(약 29조 원)라고 발표하면서 SK가 앞서 3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이 백악관에 왔을 때의 일화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내가 (코로나19로) 격리 중이어서 3층 발코니에서 내려갈 수 없어 SK 회장에게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올 거지?’라고 하자 최 회장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 회장과 만나 좋은 친분을 갖게 됐다”며 “반도체는 바로 미국에서 개발한 것임을 최 회장에게도 직접 얘기했다”고 했다. SK실트론CSS에서 생산하는 SiC 웨이퍼는 전기차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쓰인다. 미 NBC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SK실트론CSS 공장을 연설 장소로 선택한 것이 “첨단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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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많은 껍데기를 깨듯 거듭나며 ‘다름’을 조각한 예술가[영감 한 스푼]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도 못 갔지만 그림을 배우겠다며 1930년대에 일본으로 밀항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당시 나이 16세. 고학을 하는 동안 영화 간판 그리기, 구두닦이, 시체 꿰매기, 산부인과 조수 등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그는 아버지에게 500원을 보내며 고향집 뒷산 땅을 사라고 말씀드립니다. 약 50년 뒤 이 예술가는 그 땅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짓고 자신의 작품과 미술관을 국가에 기부합니다. 이 예술가는 바로 문신(1922∼1994)입니다. 무일푼으로 출발해 자신만의 ‘예술의 전당’을 일궈낸 예술가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신 회고전에서 그 답을 찾아봤습니다.기이한 생명체 같은 조각문신의 조각을 처음 보면 ’무슨 모양이지?’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형태가 단순한 브랑쿠시 조각은 추상임을, 자코메티는 인체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반면 문신의 조각은 기이한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작품에서 우리가 대칭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작인 ‘개미’나 이건희컬렉션 작품 ‘무제’를 볼까요. ‘개미’는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여러 원형이 두 발로 선 듯 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건희컬렉션의 ‘무제’ 역시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대칭이 보입니다. 다만 문신의 조각을 제대로 즐기려면 형태를 정의 내리려 하지 말고 그 선과 모양에 집중하길 권합니다. 즉, ‘개미’ 작품을 곤충을 표현했다고 결론짓기 전에 선입견을 걷어내고 그 자체를 깊이 감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개미’ 작품은 뿔처럼 솟은 형상의 좌우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무제’도 왼쪽이 조금 더 솟아있죠. 작가는 생전에 이 ‘다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 등에 파리가 붙으면 꼬리를 치는데 양쪽을 고루 치지 않습니다. 한쪽만 이렇게 턱턱 치면 마찰이 생기고 한쪽만 닳아요. … 생명체는 처음엔 똑같지만 움직이는 방향과 습관에 따라 그 모양을 조금씩 바꿔 나갑니다.” 이 “같은 시작점에서 다른 모양을 만든 습관”은 작가의 삶도 바꿔 나갔습니다.개미처럼 꾸준하게 돌파한 한계들인간 문신의 삶은 소가 꼬리로 등을 치듯, 개미가 조금씩 흙을 갉아내듯 작은 움직임을 끈질기게 이어가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어릴 때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도 작용했습니다. 문신은 1922년 일본 규슈 사가현의 탄광촌에서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27년 가족은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얼마 뒤 일본으로 떠나버립니다. 21세 무렵 수소문 끝에 외가를 찾아가지만 일본인 외할머니의 냉대로 끝내 모친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때를 계기로 그는 인간은 혼자임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기댈 곳이 없음을 인식하면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신은 벽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어릴 적 극장 간판을 그리며 돈을 번 다음에는 일본으로 밀항해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죠. 한국 화단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에는 프랑스로 무작정 떠납니다. 1961년 50달러를 들고 간 파리에서 문신은 “프랑스어도 하나 모르고 유학길에 떠났고, 기거할 곳도 없어 무척 고생했다”며 “너무 절망스러워 센 강변에서 자살도 생각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파리 근교의 오래된 성을 수리하는 일을 맡게 되고, 3년 동안 목수와 석공 일을 하며 조각가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죠. 그 후 1970년 13m 대형 조각품 ‘태양의 인간’을 제작하며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릅니다.아브락사스가 깨고 나온 삶의 껍데기이런 그의 삶의 과정은 작품 속에도 여실히 담겨 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이 없어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이 꼭 기이한 생명체 같은 조각 작품을 닮았습니다. 사회가 나를 예술가라고, 엄마가 나를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증명해 갔던 시간. 그 힘든 상황 속에서 깨고 나온 삶의 껍데기들이 꼭 그가 남긴 작품 같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 끊임없이 거듭나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브락사스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고 표현합니다. 문신 작가는 어머니의 세계, 마산의 세계, 한국의 세계를 차례로 깨고 나오면서 거듭났던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매일 주어진 상황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길을 찾는 습관들임을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은 1시간 동안 2368보를 내딛고, 최소 17번을 넘어진다고 합니다. 완벽한 걸음을 몸이 터득할 때까지 무수히 발을 내딛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이야기죠. 이러한 끈질긴 시행착오로 평생 삶을 갈고닦는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문신의 작품에서 이런 인생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국제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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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공안, 시위 취재 BBC기자 체포해 구타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항의 시위를 취재하던 영국 BBC 기자가 27일(현지 시간) 공안에 체포돼 구타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정부가 “중국 공안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랜트 섑스 영국 산업장관은 28일 영국 L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BBC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에드 로런스 기자가 상하이에서 취재 중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됐으며, 수시간 동안 구금됐고 손과 발로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재 중인 기자가 이런 공격을 당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중국 당국은 로런스를 코로나19 감염에서 보호하기 위해 체포했다고 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로런스 기자가 체포되는 과정은 소셜미디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안 4명은 그를 제압한 뒤 등 뒤로 수갑을 채우며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로런스 기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사관에 연락해 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BBC 측 성명을 부인하며 “(로런스가) 자신이 기자임을 밝히지 않았고 관련 증명도 제시하지 않았다. 당국은 현장을 떠나길 거부하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안내한 것일 뿐”이라며 “중국에 있다면 중국 법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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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회 없는 삶은 내 손에서 만들어진다[영감 한 스푼]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도 못 갔지만, 그림을 배우겠다며 1930년대에 일본으로 밀항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당시 나이 16세. 고학을 하는 동안 영화 간판 그리기, 구두닦이, 시체 꿰매기, 산부인과 조수 등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그는 아버지에게 500원을 보내며 고향집 뒷산 땅을 사라고 말씀드립니다.약 50년 뒤 이 예술가는 그 땅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짓고 자신의 작품과 미술관을 국가에 기부합니다. 이 예술가는 바로 문신(1922~1994)입니다. 무일푼으로 출발해 자신만의 ‘예술의 전당’을 일구어 낸 예술가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신 회고전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습니다.기이한 생명체 같은 조각문신의 조각을 처음 보면 ’무슨 모양이지?’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형태가 단순한 브랑쿠시 조각은 추상임을, 자코메티는 인체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반면 문신의 조각은 기이한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작품에서 우리가 대칭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작인 ‘개미’나 이건희컬렉션 작품 ‘무제’를 볼까요. ‘개미’는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여러 원형들이 두 발로 선 듯 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건희컬렉션의 ‘무제’ 역시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대칭이 보입니다. 다만 문신의 조각을 제대로 즐기려면, 형태를 정의 내리려 하지 말고 그 선과 모양에 집중하길 권합니다. 즉 ‘개미’ 작품을 곤충을 표현했다고 결론짓기 전에 선입견을 걷어내고 그 자체를 깊이 감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에 눈에 들어옵니다. ‘개미’ 작품은 뿔처럼 솟은 형상의 좌우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무제’도 왼쪽이 조금 더 솟아있죠. 작가는 생전에 이 ‘다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 등에 파리가 붙으면 꼬리를 치는데 양쪽을 고루 치지 않습니다. 한 쪽만 이렇게 턱턱 치면 마찰이 생기고 한 쪽만 닳아요.(...) 생명체는 처음엔 똑같지만 움직이는 방향과 습관에 따라 그 모양을 조금씩 바꾸어 나갑니다.” 이 “같은 시작점에서 다른 모양을 만든 습관”은 작가의 삶도 바꾸어 나갔습니다.개미처럼 꾸준히 돌파한 한계들인간 문신의 삶은 소가 꼬리로 등을 치듯, 개미가 조금씩 흙을 갉아내듯 작은 움직임을 끈질기게 이어가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어릴 때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도 작용했습니다. 문신은 1922년 일본 규슈 사가현의 탄광촌에서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1927년 가족은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얼마 뒤 일본으로 떠나버립니다. 21살 무렵 수소문 끝에 외가를 찾아가지만, 일본인 외할머니의 냉대로 끝내 모친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 때를 계기로 그는 인간은 혼자임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기댈 곳이 없음을 인식하면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신은 벽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어릴 적 극장 간판을 그리며 돈을 번 다음에는 일본으로 밀항해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죠. 한국 화단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에는 프랑스로 무작정 떠납니다. 1961년 50달러를 들고 간 파리에서 문신은 “프랑스어도 하나 모르고 유학길에 떠났고, 기거할 곳도 없어 무척 고생했다”며 “너무 절망스러워 센 강변에서 자살도 생각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파리 근교의 오래된 성을 수리하는 일을 맡게 되고, 3년 동안 목수와 석공 일을 하며 조각가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죠. 그 후 1970년 13m 대형 조각품 ‘태양의 인간’을 제작하며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릅니다.아프락사스가 깨고 나온 삶의 껍질이런 그의 삶의 과정은 작품 속에도 여실히 담겨 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이 없어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이 꼭 기이한 생명체 같은 조각 작품을 닮았습니다. 사회가 나를 예술가라고, 엄마가 나를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증명해갔던 시간. 그 힘든 상황 속에서 깨고 나온 삶의 껍질들이 꼭 그가 남긴 작품 같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 끊임없이 거듭나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프락사스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고 표현합니다. 문신 작가는 어머니의 세계, 마산의 세계, 한국의 세계를 차례차례로 깨고 나오면서 거듭났던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매일 주어진 상황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길을 찾는 습관들임을 그의 작품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은 1시간 동안 2368보를 내딛고, 최소 17번을 넘어진다고 합니다. 완벽한 걸음을 몸이 터득할 때까지 무수히 발을 내딛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이야기죠. 이러한 끈질긴 시행착오로 평생 삶을 갈고 닦는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문신의 작품에서 이런 인생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전시 정보문신: 우주를 향하여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2022.9.1.(목) ~ 2023.1.29.(일)조각, 회화, 판화, 드로잉, 도자 등 230여 점 및 아카이브 100여 점※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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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네바다주 대법관에 첫 한국계 퍼트리샤 리 임명 “노숙-학대 역경이 날 단단하게 만들었다”

    전북 전주에서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 네바다주 대법관에 임명됐다. 스티브 시설랙 네바다 주지사는 21일(현지 시간) “퍼트리샤 리 변호사(47)를 주 대법관에 임명했다”며 “폭넓은 능력과 전문적인 경험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네바다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 대법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신임 대법관은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힘들었던 가정사를 밝히며 “아버지가 흑인이어서 나의 출생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혼혈이란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만 4세 때 가족들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로 이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역 후 알코올의존증에 빠졌고, 그가 7세 때 부모가 이혼했다. 장녀인 리 대법관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어머니 대신 두 남동생을 돌보며 힘겹게 성장했다고 답변서에 썼다. 7세 때부터 직접 기초생활수급 서류를 작성했으며, 1년에 2, 3차례 집을 옮겨야 했다. 가족이 노숙을 하다 가까스로 쉼터에 입소했을 땐 ‘이제야 집이 생겼다’며 안심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어머니와 교제하던 남성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15세에 집을 나왔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전교 학생회장과 응원단장을 맡았고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장학금을 받았다. 이후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진학해 흑인학생회장을 했다.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로펌 변호사로 일하며 복잡한 상업 소송을 주로 담당했다. 특허법과 가족법 소송도 맡았다. 리 대법관은 “어린 시절 힘든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며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경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리 대법관의 임기는 2025년 1월까지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9월 사직한 애비 실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정원이 7명인 네바다주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지만 결원이 생기면 주지사가 임명하는 후임자가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운다. 리 대법관은 2006년 남편과 결혼한 뒤 슬하에 두 자녀를 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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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네바다주 대법관에 첫 한국계 여성…“힘든 경험이 날 단단하게 해”

    전북 전주에서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 네바다주 대법관에 임명됐다. 스티브 시설랙 네바다 주지사는 21일(현지 시간) “패트리샤 리(47) 변호사를 주 대법관에 임명했다”며 “폭넓은 능력과 전문적인 경험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네바다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 대법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신임 대법관은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힘들었던 가정사를 밝히며 “아버지가 흑인이어서 나의 출생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혼혈이란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만 4세 때 가족들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로 이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역 후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그가 7세 때 부모가 이혼했다. 장녀인 리 대법관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어머니 대신 두 남동생을 돌보며 힘겹게 성장했다고 답변서에 썼다. 7살 때부터 직접 기초생활수급 서류를 작성했으며, 1년에 2~3차례 집을 옮겨야 했다. 가족이 노숙을 하다 가까스로 쉼터에 입소했을 땐 ‘이제야 집이 생겼다’며 안심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어머니와 교제했던 남성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15세에 집을 나왔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전교 학생회장과 응원단장을 맡았고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장학금을 받았다. 이후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 진학해 흑인학생회장을 했다.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로펌 변호사로 일하며 복잡한 상업소송을 주로 담당했다. 특허법과 가족법 소송도 맡았다. 리 대법관은 “어린 시절 힘든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며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경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리 대법관의 임기는 2025년 1월까지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9월 사직한 애비 실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정원이 7명인 네바다주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지만 결원이 생기면 주지사가 임명하는 후임자가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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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위’ 美 호건 “22일은 김치의 날” 선포

    ‘한국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66·사진)가 22일을 ‘김치의 날’로 선포했다. 메릴랜드주는 21일(현지 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유명 한국 음식인 김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메릴랜드 내 한국 문화를 기념하기 위해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뉴욕주 등에서도 ‘김치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호건 주지사는 이 자료에서 “김치는 특유의 발효 과정과 맛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한국 음식”이라며 ‘김치의 날’을 통해 한국 문화 및 음식을 장려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계 미국인은 우리 지역 사회의 필수 구성원이며 메릴랜드주를 포함한 미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과학 기업 예술 법률 등 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치하했다. 그의 한국계 부인 유미 여사(63) 또한 남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배추를 손질하고 양념해 김치 샐러드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다. 메릴랜드주는 호건 주지사의 관저가 미국에서 유일하게 김치냉장고가 설치된 곳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김치를 알리기 위해 ‘김치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했다. 김치에 최소 11가지 재료가 쓰이고 22가지가 넘는 효능을 지녔다는 의미로 11월 22일을 채택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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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펀드매니저 92% “내년 스태그플레이션 빠질 것”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7.7%로 시장 전망치보다 낮아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경기가 연착륙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미 월가 투자은행은 내년 경기 침체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1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다소 완화됐다고는 해도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고금리가 계속될 것이며 이에 따라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는 불황인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월가 펀드매니저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는 ‘내년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으면서 물가는 안정되는 ‘골딜록스’ 상황이 온다’는 응답은 0%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 발생’ 응답도 77%나 됐다. 또 ‘투자심리가 이례적으로 악화됐다고 보고 투자 대신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응답은 6.2%로 지난달 조사의 6.3%에 이어 또 6%대를 기록했다. 이는 2001년 4월 ‘닷컴 버블’ 붕괴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동안 ‘투자 대신 현금 보유’라는 응답은 평균 4.9%였다. 씨티그룹은 미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더라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파월 푸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미국 유럽에서 (경기) 연착륙에 성공할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연준 관계자들은 공격적 (재정) 긴축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년 최소 5∼5.25%까지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금리 인상 중단은 “협상 테이블 밖에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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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ICBM 과시에 9세 딸까지 동원… ‘代이어 핵 증강’ 메시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과정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까지 처음 공개하면서 핵 무력 보유와 개발의 끈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글에서 “핵무기를 질량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세 차례나 언급하며 그 명분을 “후대들의 밝은 웃음을 위하여”라고 내세웠다. 북한 안보의 시작과 끝은 ‘핵’임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딸 공개 이면엔 “핵 포기 절대 없다” 의지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리설주)와 함께 몸소 나오셨다”고 전하면서 처음으로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 3장을 공개했다. 흰 패딩과 검은 바지 차림에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ICBM 발사장을 바라봤다. 조선중앙TV는 20일 김 위원장이 딸을 뒤에서 꼭 안아 발사 장면을 모니터하는 모습, 딸이 오른손에 회중시계를 쥔 채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딸이 셋이서 나란히 걷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이 딸은 2009년 결혼한 김 위원장과 리설주의 둘째 ‘김주애’로 추정된다. 미국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후 언론에 “그들의 딸 ‘김주애’를 안았다”고 밝혀 알려졌다. 정보당국 분석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리설주는 2010년 득남한 뒤 2013년 이 딸을 낳았고, 2017년 막내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딸이 동원된 배경으로는 후계 구도 시사보다는 ‘핵개발 지속화’에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이 2018년 4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1차 방북 당시 “자녀들이 평생 핵을 지니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뒤집고 비핵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제니 타운 편집장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대를 이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북한이 다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다정한 모습을 통해 이미지 반전을 꾀하면서 핵무기 시험의 일상화 및 정당화를 노린 다목적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10월 연쇄 탄도미사일 도발에 처음 나타났던 리설주가 다시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딸과 부인을 데리고 미사일을 쏘게 되면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고 주민들에게 후대의 안전까지 담보한다는 안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자상한 어버이 역할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일종의 쇼맨십”이라며 “핵 외에는 대안이 없고 미래 세대의 안보도 핵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 北 “핵에는 핵,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호전적인 미사일 발사 현장에 미성년자인 딸을 동행시킨 김 위원장의 의도도 새겨볼 대목이다. 세습 구도나 핵무장 강화의 선전도구로 딸을 일찌감치 등장시켜야 했을 만큼 다급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화성-17형 발사에 ‘사변적인 날’이라며 대대적인 고무와 찬양에 나선 것도 핵 무력 강화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달 초 하루 탄도미사일 발사 비용이 1년 치 쌀값에 달한다’는 미 랜드연구소의 분석이 의미하듯 김 위원장에게는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달래기 위한 핵 무력 정당화의 명분을 찾는 것도 과제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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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CBM 발사장서 딸 공개한 김정은…“핵 포기 없다” 대 이은 핵개발 암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과정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까지 처음 공개하면서 핵무력 보유와 개발의 끈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글에서 “핵무기를 질량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세 차례나 언급하면서 그 명분을 “후대들의 밝은 웃음을 위하여”라고 내세웠다. 북한 안보의 시작과 끝은 ‘핵’임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딸 공개 이면엔 “핵포기 절대 없다” 의지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리설주)와 함께 몸소 나오셨다”고 전하면서 처음으로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 3장을 공개했다. 흰 패딩과 검은 바지 차림에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ICBM 발사장을 바라봤다. 조선중앙TV는 20일 김 위원장이 딸을 뒤에서 꼭 안아 발사장면을 모니터하는 모습, 딸이 오른손에 회중시계를 쥔 채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딸이 셋이서 나란히 걷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이 딸은 2009년 결혼한 김 위원장과 리설주의 둘째 ‘김주애’로 추정된다. 미국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후 언론에 “그들의 딸 ‘김주애’를 안았다”고 밝혀 알려졌다. 정보당국 분석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리설주는 2010년 득남한 뒤 2013년 이 딸을 낳았고, 2017년 막내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딸이 동원된 배경으로는 후계 구도 시사보다는 ‘핵개발 지속화’에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이 2018년 4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1차 방북 당시 “자녀들이 평생 핵을 지니고 살기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뒤집고 비핵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제니 타운 편집장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대를 이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북한이 다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다정한 모습을 통해 이미지 반전을 꾀하면서 핵무기 시험의 일상화 및 정당화를 노린 다목적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10월 연쇄 탄도미사일 도발에 처음 나타났던 리설주가 다시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딸과 부인을 데리고 미사일을 쏘게 되면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고 주민들에게 후대의 안전까지 담보한다는 안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자상한 어버이 역할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일종의 쇼맨십”이라며 “핵 외에는 대안이 없고 미래 세대의 안보도 핵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北 “핵에는 핵,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북한은 화성-17형이 발사된 18일을 ‘사변적인 날’이라며 연일 고무된 분위기를 이어갔다. 북한 매체들은 19일과 20일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라는 구호를 거듭 앞세우며 자위적 핵무력 강화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신문은 20일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무기=핵억제’ 공식을 반복하는 것은 내부 결속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하루 탄도미사일 발사 비용이 1년 치 쌀값에 달한다’는 미 랜드연구소의 분석처럼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달래려면 미사일 시험발사가 외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위력을 강화해야 하는 수단임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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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는 정말로 예술가를 위협할까?[영감 한 스푼]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오늘은 제가 약 두 달전 기사로 썼었던, 그러나 구독자 분들과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AI가 만든 예술 작품에 관한 논쟁입니다.올해 9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미술 공모전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그림이 1등상을 수상했는데, 작가가 AI를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논란이 되었습니다.작가는 ‘미드저니를 이용했다’고 작품 설명에서 밝혔지만, 이것이 AI 프로그램임을 알아보지 못한 심사위원들은 직접 그린 그림인 줄 알고 상을 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이다!’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는데요. 정말 그럴까요?오늘은 제 생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시고 의견 보내주세요.단 한 번의 붓터치도 없이 만들어진 그림AI로 어떻게 그림을 그리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을 다루기 전에, AI 프로그램이 그림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분위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생성해 줍니다. 이를테면 ‘사과’를 입력할 경우, AI가 사과라고 인식한 많은 그림들을 종합해 사과 그림을 내놓게 되는거죠. 그래서 작가는 붓터치, 디지털 아트의 경우 ‘화면 터치’ 한 번 없이 그림값을 얻어내게 되는겁니다.터치 한 번 안한다니…날로 먹는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AI에 문장을 입력하고, 그림이 나오는 것은 불과 몇 초면 되지만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이슨 앨런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제작에 약 80시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위 사진에서 보는 아주 복잡하고 화려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단어를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죠.제가 직접 해봤습니다…!직접 미드저니를 이용해보니 실제로 입력하는 단어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더군요. 보여드리겠습니다!아래 그림은 ‘영감 한 스푼’(a spoon of inspiration)이라고 입력한 결과 나온 것입니다. ‘영감을 얻은 스푼’(inspired spoon)이라고 하면 어떨까요?재밌죠? 마치 숟가락이 생각에 잠긴 듯 신비로운 색깔이 머리 부분에 그려진 것이.. AI 이녀석 똑똑한데! 싶었습니다. 숟가락 여러개를 달라고 하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예술적인 스푼들’(artistic spoons) 이라고 입력해보았습니다.정말로 몇십 초 안에 뚝딱뚝딱 이미지가 생성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쯤에서 ‘이 녀석도 패턴이 있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언가 ‘예술’이라거나 ‘영감’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안개가 낀 듯한 뿌연 색깔과 그라데이션 배경을 넣어주는 것 같더라구요.사실 ‘영감 한 스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숟가락’일 수도, 혹은 내가 레터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 모습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레터에서 함께 이야기 한 어떤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고요.그런데 AI는 ‘곧이 곧대로’ 해석한다는 경향을 느꼈습니다. 물론, 사람의 명령을 받는 AI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겠죠. 이런 패턴 속에서 복잡한 이미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80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바가 아니었습니다.다만 아쉬운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감 한 스푼’이라는 단어를 두고 내가 수많은 가능성을 사고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제거해버린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인간이 가진 ‘창의성’이라면, AI가 그린 작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생길 수 있겠죠. 사람들이 이 작품의 수상 소식에 분노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예술적 기교의 죽음’이라는 비판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노한 사람들은 앨런이 직접 그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이다, “단순히 AI에 입력한 것을 두고 본인 작품이라고 한다니 역겹다”, “로봇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람보르기니를 타고 마라톤에 참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분노의 포인트가 보이시죠? 그림을 직접 구성하고 표현을 다듬는 ‘손의 기교’가 없음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예술이 손기술이라는 헷갈리는 사실에 대해: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예술 작품을 ‘작가가 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예술이라면 예술은 이미 카메라가 발명되고, 디지털 아트가 생겼을 때 죽었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면, ‘AI가 예술가를 위협하는가’에 대한 답도 각자가 내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파인 아트(fine art)와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차이여기서 저는 ‘파인 아트’와 ‘예술적 기교’(artistry)를 구분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파인 아트’를 한글로 그대로 옮기자면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우선은 ‘파인 아트’라고 쓰겠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알아볼까요.파인 아트(순수 예술): 미학이나 창의적 표현을 위해 행해지는 예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장식적 예술이나 실용 예술과는 다르다. (In European academic traditions, fine art is developed primarily for aesthetics or creative expression, distinguishing it from decorative art or applied art, which also has to serve some practical function, such as pottery or most metalwork.)예술적 기교(artistry): 예술적 능력과 기술(artistic ability or skill)파인 아트의 가장 쉬운 예를 든다면, 지난 2주간 살펴본 세잔의 작품이 바로 파인 아트에 해당되겠죠. 단순히 벽을 꾸미거나,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한 결과물이며 그것이 시대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술적 기교’는 무언가를 예쁘게 꾸미고 장식하는 기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앨런에게 가해진 비판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예술의 죽음’이 아니라 ‘예술적 기교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미학이나 창의적 표현을 행하는 예술’이 아니라, 무언가를 예쁘게 꾸미는 ‘손기술’이 죽었다고 누리꾼은 보고 있었던 것이죠.비슷한 맥락에서, 앨런의 작품이 수상한 분야가 ‘디지털 예술, 디지털 합성사진’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모 분야가 ‘파인아트’가 아니고, 작품 공모전 역시 상금 300달러인 지역 박람회의 부대 행사였다는 것도요. 즉 공모전 자체가 순수 예술이 아니라 손기술을 주로 평가하는 소규모 행사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앨런의 작품이 뉴욕이나 런던의 공립 미술관에 소장되거나, 개인전을 열게 됐다면 정말 큰 사건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앨런의 작품은 장식적 성격이 강할 뿐 미술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던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공모전의 심사위원 역시 ‘르네상스 예술을 연상케 한다’고 심사평을 내놓았는데요. 500년 전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면 새롭다고 하긴 어렵겠죠?다만 AI로 만든 모든 작품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여러 단어를 조합해 그림을 탄생시키는 방식이라면 곤란하겠지만, AI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거나, 예술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면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겠죠. 100년 전 피카소가 그림 속에 신문지를 오려 붙이며 ‘콜라주’ 작품을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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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SML, 대만에 장비제조 1.2조원 추가 투자”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대만에 300억 대만달러(약 1조2000억 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고 중앙통신 등 대만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이번 투자는 ASML의 대만 투자액 중 최대 규모이며 내년 7월부터 북부 신베이에 공장을 짓고 약 2000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데 쓰인다. 프레데리크 슈나이더마우노우리 ASML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은 15일 타이베이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만나 이 같은 투자 계획을 밝혔다. ASML은 반도체 생산의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 현재 대만에서 5개의 공장을 운영하면서 약 4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ASML의 투자 소식은 선룽진(沈榮津) 대만 부행정원장(부총리)의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차이 총통과 슈나이더마우노우리 부사장의 회담 직후 선 부행정원장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 ASML이 대만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하기로 했다”며 이 같은 결정은 매우 바람직하며 대만 정부 또한 ASML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차이 총통은 성명에서 “세계가 대만을 걱정하는 시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려준 ASML에 감사하다. 대만 투자가 위험하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대만을 향한 중국의 군사 위협이 고조되면서 대만 반도체 산업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대만의 경제정책 책임자인 왕메이화(王美花) 경제부장도 16일 기자들에게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최근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지분 41억 달러(약 5조4000억 원)어치를 매입한 것을 언급하며 “대만을 향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줄어들고, 자신감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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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조스 “165조원 재산 대부분 기부할 것”

    세계 4위 부호인 제프 베이조스 미국 아마존 창업자(58·사진)가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자선 및 우주 사업 등에 전념하겠다며 최고경영자(CEO) 직에서 사퇴한 그가 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큰 관심을 모은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14일(현지 시간) CNN 인터뷰에서 “내가 가진 돈을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다. 사는 동안 대부분을 기후 변화 대응, 사회 및 정치 갈등을 해결하는 데 기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가 추산한 그의 재산은 1240억 달러(약 165조 원)다. 자산 규모로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인도 아다니그룹의 고탐 아다니 회장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는 다만 “언제,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기부할지는 답하기 어렵다”면서 “효과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했다. 비효율적인 기부 방식이 많기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영리한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억만장자 모임 ‘더기빙플레지’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이 모임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공동 설립했다. 베이조스의 전 부인 매켄지 스콧을 포함해 세계 28개국, 230여 명의 억만장자가 속해 있다. 2019년 베이조스와 이혼한 스콧은 당시 베이조스가 보유한 아마존 주식의 25%를 위자료로 받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스콧은 현재까지 1500개 단체에 총 144억 달러(약 19조540억 원)를 내놨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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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산 165조’ 베이조스 “재산 대부분 기부”

    1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자산 대부분을 기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14일(현지 시간) 베이조스는 미국 워싱턴DC 자택에서 CNN과 인터뷰하며 “내가 가진 돈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라며 “사는 동안 자산 대부분을 기후 변화 대응과 사회·정치 갈등 앞에서 사람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데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베이조스의 자산은 블룸버그 추산 1240억 달러(약 165조 원)다. 베이조스가 재산 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기후 변화에 대비하는 ‘베이조스 지구 펀드’에 100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그간 가진 자산에 비해 기부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기부 클럽인 ‘더 기빙 플레지’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더 기빙 플레지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공동 설립해, 28개국 억만장자 230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 베이조스의 전처 매켄지 스콧도 참여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비효율적인 기부 방식도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영리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부 의사는 밝혔지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아직 대답하기 어렵다면서 “효과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마존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듯 기부와 자선사업도 비슷하다고 느낀다”라고 했다. 또 베이조스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베이조스는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업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큰 지출을 줄이게 될 수 있는 대로 리스크를 줄이라고 충고하고 싶다”라며 “소규모 사업체는 리스크를 조금만 줄여도 위기가 닥쳤을 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베이조스는 2019년부터 연인이 된 로런 샌체즈와 처음으로 공개 인터뷰에 나섰다. CNN은 베이조스가 올해 가수 돌리 파튼에게 수여된 ‘용기와 존중상’을 알리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용기와 존중상’은 베이조스가 지난해 시작한 상으로, 많은 사람의 힘을 모아 큰 문제를 해결한 인물에게 주어진다. 수상자는 1억 달러를 자신이 선택한 곳에 기부할 수 있다. 파튼은 전 세계 어린이에게 책을 기부하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백신 연구를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에 식료품을 제공한 스타 셰프 호세 안드레스와 미국 형사사법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시민 단체를 이끈 밴 존스가 이 상을 받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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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는 법-세잔의 산② [영감 한 스푼]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지난주에는 세잔이 어떤 방식으로 ‘마음의 산’을 표현했는지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이런 세잔의 예술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살면서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졌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때. 사람은 엄청난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다음은 좌절, 분노, 허탈함, 고통과 같은 감정이 밀려오죠. 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혼란은 덫처럼 나를 옭아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럴 때 현명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어떤 사람은 행운이 찾아와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거나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면 해결이 이뤄진다고 믿기도 합니다. 과거 사람들은 신에게 무언가를 바쳐서 노여움을 달래면 혼란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도 했죠.그러나 가장 정확한 길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에는 심리 상담이나 명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오늘 세잔의 산이 탄생한 이유를 살펴보기로 했는데, 왜 혼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세잔이 ‘마음의 산’을 그린 이유도 그가 살던 19세기 말 프랑스와 유럽이 그러한 혼란기였기 때문입니다.신(神)도 왕(王)도 무너진 세계폴 세잔은 1839년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1906년까지 살았습니다. 자수성가한 은행가의 아들이었던 세잔은 성인이 되고 난 뒤 파리에 잠시 머물다 말년엔 줄곧 액상프로방스에 머물렀죠. 두문불출하며 그림만 그린 괴짜 캐릭터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유럽은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격동기였습니다.이 격동기를 설명하는 사건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1️⃣ 고대 문명의 발견, 2️⃣ ‘종의 기원’ 출간, 3️⃣ ‘1848년 혁명’입니다.먼저 고대 문명의 발견은 유럽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며 가능해졌죠. 이. 때 많은 문화재들이 유럽으로 약탈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 밖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의 아주 오래 전 화려한 문화는 유럽인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습니다.프랑스 화가 제롬의 그림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를 보면 그 의미를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상 앞에 말을 탄 나폴레옹이 서있습니다. 그런데 스핑크스의 코가 뭉개져있죠. 이렇게 코를 뭉개서라도 나폴레옹을 돋보이게 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을 느꼈음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리 제국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 대륙에 이런 훌륭한 문화가 있었네…’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는 느꼈던 것이죠.고대 문명의 발견이 제국 문화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면, 둘째 ‘종의 기원’ 출간은 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최초로 설명한 이 책은 인류가 영장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예전까지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내용입니다.이런 가운데 1848년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제국에 반기를 드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신과 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나의 방식으로 세계를 살겠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진 것이죠.지금은 2-3년 만에도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이 때 유럽은 종교와 제국이 몇 백년의 체제를 유지해왔던 상황입니다. 혼란의 정도가 지금의 시각으로 감안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겠죠. 이런 가운데 세잔은 파리를 벗어나 고향의 산으로 향합니다.산에 비친 것은 나 자신이었다세잔은 후배 화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공식 살롱이 열등한 이유는 그들이 널리 인정받은 방법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감정, 관찰, 특징을 더 드러내야 한다. 루브르는 배우기 위해 읽는 책이지, 과거의 일러스트적인 작가들이 따랐던 방법을 흉내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공부하고, 과거로부터 마음을 해방시키며, 각자의 성격에 맞는 표현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시간과 생각을 들이고, 점차 시각을 다져 나가면 마지막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여기서 인상깊은 대목은 ‘과거로부터 해방’된다는 것과, ‘개인적인 특징’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발언입니다. 여기서 해방되어야 할 과거란 어떤 것이었을까요?과거의 인간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영지에 소속돼 평생 주어진 노동만을 하거나, 신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도 왕도 없어진 세계에서는 ‘자아’와 ‘주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그림에서도 마찬가지죠. 과거 화가들은 종교나 역사만을 그려야 했는데, 이 때 비로소 중산층의 일상을 그리거나 나의 눈으로 본 풍경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즉 세잔이 매일 산을 마주하며 그리려고 했던 것은, 과거로부터 해방된 온전한 자신, ‘세잔만의 산’이었던 것이죠.그리고 이 시점에서 미술은 철학보다 더 앞서서 시대를 증언하며, ‘현대미술’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세잔이 과거로부터 벗어나 ‘나의 눈’으로 직관하려고 했던 것은 곧 20세기 등장한 철학 ‘현상학’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현상학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를 통해 사람의 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즉 ‘사과’라는 개념이 있을 때 과거에는 이것을 ‘사과나무의 열매’라고 일괄적으로 규정했다면, 현상학에서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느끼는 바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고자 했습니다.그러면서 유명한 ‘판단중지’ 개념이 나옵니다. 철학자 에드문드 후설은 사물을 볼 때 우리가 그간 주입 받았던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우선 모든 판단을 중지하라고 말합니다. 즉 과거에 규정했던 사과의 의미를 덜어내고, 내 눈 앞에 사과가 어떻게 보이는지 집중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이죠. 세잔이 과거에서 해방되어 ‘개인의 산’을 보라고 후배 화가에게 조언한 것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모든 것이 무너지는 혼란한 시대, 세잔이 산을 찾은 이유는 결국 모든 관념을 벗겨낸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산을 보다 죽겠다는 결심까지 하면서 평생 산에 비친 자신을 갈고 닦은 세잔의 예술은 현대 미술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세잔을 모르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 이제는 공감이 되시겠죠?※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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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일 정상, ‘北 코인 해킹’ 공동 대응 논의

    한미일 정상은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특히 최근 북한이 공격적으로 가상화폐 탈취 등에 나서고 있는 만큼 사이버 안보를 강화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이후 5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는 3국 정상은 안보 협력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1일 “5개월 전보다 (북한) 도발 수위가 크게 높아진 만큼 거기에 맞춰 우리 대응 방안도 터프해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의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이 이번 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0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사이버 분야에서 북한이 제기하는 광범위한 위협이 한미 정상 간 대화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6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3국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금융제재 확대로 공동 대응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바 있다. 프놈펜 회담에선 북한의 가상화폐 탈취 등을 저지하기 위해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제재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지에 대해선 11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다만 내부적으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할 시간이 부족한 만큼 정상이 어떻게든 만나 협의의 물꼬를 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 정상이 첫 대면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도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현재 발표할 소식이 없다”면서도 “계속 지켜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일정을 조율 중일 때 이런 표현을 쓴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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