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김상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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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상훈 기자입니다.

corekim@donga.com

취재분야

2024-03-31~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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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절기 극성 호흡기질환… 면역력 키워 ‘철통 방어’

    한낮 수은주가 섭씨 20도 중반까지 오르며 초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껏 창문을 열어젖힐 수도 없다. 창문을 걸어 잠그게 만드는 미세먼지와 황사, 꽃가루 같은 불청객이 많아서다. 높은 일교차로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도 쉽다. 이 같은 환경에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호흡기 질환자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력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하루 대부분을 머무는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종일 창문을 닫고 환기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리되지 않은 실내 공기는 심각한 미세먼지나 황사로 가득한 외부 공기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호흡기 질환 전문가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사진)에게 환절기에 왜 호흡기 질환이 늘어나며 어떻게 발생하는지, 실내 공기 질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들었다.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인체는 통상 주위 환경에 적응하며 건강을 유지하는데 일교차가 심하면 이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서 면역력이 감소하는 것이다. 더욱이 건조한 날씨에는 기관지 등 호흡기 점막이 마르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침투가 수월해져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 더욱 많아진다.”―바이러스나 유해 물질은 호흡기에 어떻게 유입되나. “인체에서 비말(飛沫) 형태로 배출된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떠돌다가 숨을 들이마시면 코나 입으로 들어와 호흡기를 거친다. 이때 기관지나 폐포(肺胞) 점막이 약해져 있다면 쉽게 침투해 감염을 일으킨다. 직경 1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상의 미세먼지는 상기도 점액이나 섬모 등을 통해 걸러진다. 하지만 그 미만이거나 특히 1㎛ 이하 초미세먼지는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까지 넘어간다. 이 경우 폐포 모세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이동하면 비염, 기관지염, 폐렴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패혈증 같은 심각한 질환에까지 이를 수 있다.”―세균과 바이러스는 실내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나. “바이러스는 실내로 퍼지며 미세먼지와 결합해 세균성 미세먼지 형태로 떠다니곤 한다. 특히 세균성 미세먼지는 집 밖에서 머리카락이나 옷에 묻어 집 안으로 유입될 확률이 높다. 귀가하면 옷을 잘 털고 머리를 감는 등 개인 위생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실내 공기를 왜 쾌적하게 관리해야 하는가. “실내 공기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미세먼지와 음식 할 때 나오는 조리흄(cooking fumes), 세제나 새 가구 냄새에 포함된 유해가스는 물론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알레르기 물질이 혼합돼 있다.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면 이런 물질들이 오랫동안 공기 중에 머물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은 공기 중 유해물질 양에 좌우되기도 한다.”―실내 공기는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창문을 열고 안팎 공기를 순환시켜 불순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세먼지나 황사 때문에 외부 공기 유입이 꺼려질 때가 많다. 이럴 때에는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내부 공기를 정화시키는 제품들을 통해 실내 공기 질 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가족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를 보유한 가족이 있다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기는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접촉을 최소화하고 환기를 자주 시켜 집 안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일상에서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받는 게 좋다. 항체를 만들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충분한 영양 및 수분을 섭취하고 숙면을 취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날 외출할 경우엔 반드시 보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날씨 탓에 실내 환기가 어렵다면 실내 공기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공기청정기 같은 제품 사용도 권장한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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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근길 선글라스 벗어야 밤잠 잘 잔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잠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숙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깊은 잠을 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다.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수면 전문가인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매일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4시 반에 일어난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다. 숙면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바로 생체시계다. 크게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눈다. 취침 시간이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 반까지라면 중간형. 그 이전에 잔다면 아침형, 자정을 훨씬 넘기면 저녁형이다. 중간형이 가장 많지만 최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기 사용 등으로 저녁형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근 저녁형 비중이 40% 정도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저녁형의 경우 취침 시간을 미루다 보니 기상 시간이 늦어진다.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면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저녁형이라면 무엇보다 기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침상으로 가라 중간형에 해당한다면 규칙적인 침상 습관부터 만들어야 한다. 우선 침상에 머무는 시간과 드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가령 매일 오후 11시에 침상에 들어가서 다음 날 오전 7시에 일어나기로 했다면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6시간밖에 못 잤더라도 오전 7시에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몸이 더 피곤하다며 일찍 잠을 청하는 것도 수면의 규칙성을 깰 수 있어 피해야 한다. 똑같은 시간에 침상에 들란 이야기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면 일단 침상을 벗어나 거실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가 더 각성할 수 있기 때문. 잠시 쉬고 잠이 올 것 같으면 침상으로 돌아간다. 이런 행동은 뇌가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 교수는 “이런 훈련을 한 달 이상 하면 침상에 들 시간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주 교수는 대체로 매일 7∼8시간 잠잘 것을 권했다. 만약 주중에 잠이 부족하다면 주말에 좀 더 자서 잠을 보충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평소대로 취침 시간을 지키고, 수면 시간의 중간값 차이를 2시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 사람이라면 수면 시간 중간값은 오전 3시다. 이 사람이 주말에 오전 2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6시. 두 수면의 시차(사회적 시차)는 3시간이다. 이 경우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잤을 뿐인데, 월요병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이 사람이 주말에 평소와 마찬가지로 0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났다면 수면 시간 중간값은 오전 5시가 된다. 평소보다 4시간을 더 잤는데도 사회적 시차는 2시간으로 줄어든다. 주 교수는 “사회적 시차를 2시간 이내로 줄이면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월요병, 우울증, 심장병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 빛 조절은 숙면에 꼭 필요 빛의 강도 조절도 숙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이상은 햇빛에 얼굴을 노출하는 게 좋다. 날씨가 흐릴 경우에는 햇빛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빛 치료(라이트세러피)용 기기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한낮 태양광선이 쨍하게 비칠 때가 3만 럭스 이상이다. 빛 치료용 기기는 맑은 낮에 해당하는 1만 럭스 정도다. 흐린 날은 100럭스. 사무실은 보통 300럭스, 화장실은 50∼80럭스다. 이 기기를 쓸 때는 머리에서 30cm 정도 거리를 둔다. 광원을 보면 안 되지만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간접적으로 빛이 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30분 정도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빛을 쬐면 확실히 잠에서 깨어난다. 이를 통해 낮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수면주기를 만들 수 있다. 자외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출근길이나 아침 운동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 교수는 “밤 숙면을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이라면서 “아침에는 어떤 식이든 빛을 많이 받는 게 저녁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반대로 해가 진 후부터는 빛을 제한해야 한다. 주 교수는 일몰 후 거실과 주방을 150럭스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50럭스 이하 어두운 조명만 허용할 것을 권했다. 주 교수는 “종이에 쓰인 글씨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조명을 제한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도 숙면에 방해가 된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야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제거하는 게 좋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야식은 물론이고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주 교수는 “야식을 하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뇌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등 주간과 다름없이 활동한다. 이 때문에 숙면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주 교수는 “잠을 자야 할 밤에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가짜 허기’”라고 진단했다. 식사 습관이 흐트러지다 보니 뇌가 배고프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이때 야식을 먹다 보면 심장, 간 등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차들이 있다. 캐모마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도 취침 3∼4시간 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주 교수는 “자기 전에 마시는 차는 수면 중 야뇨를 유발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운동은 잘하면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숙면을 방해한다. 주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두면 수면주기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면서도 “다만 잠을 자기 직전에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무렵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교감신경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게 하므로 숙면을 방해한다. 환한 조명에서 운동하는 것도 몸을 더 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불빛을 낮춘다. 어둑어둑한 가로등 정도 조명이 좋다. 운동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까지가 좋다. 근력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수면을 촉발할 수 있다. ● 수면 패턴 무너지면 중병 올 수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만성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의 수면 패턴이 무너진 게 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근 주 교수를 찾아온 58세 남성 A 씨가 그랬다. A 씨는 젊을 때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하지만 워낙 쉽게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어 수면 장애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다가 가슴이 덜커덩거리는 느낌에 깼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더니 심장부정맥을 진단 받았다. 나중에 A 씨는 관상동맥 협착도 발견됐고 중증 수면무호흡증도 진단 받았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질환으로 악화한 사례인 셈. 실제로 이런 경우 심장질환 위험성은 2배 정도 높다. 69세 된 남성 B 씨는 건망증으로 병원에 왔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었다. 기억력 클리닉에서 검사한 결과 B 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B 씨 또한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상태였다.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뇌혈관까지 손상돼 인지장애로까지 이어진 것. A 씨와 B 씨 모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주 교수는 “숙면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다면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 같은 약에만 의존했다가 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면 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다원검사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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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선글라스 벗어야 밤잠 잘 잔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수면 습관 들여야 숙면 가능해져”“모자란 잠 보충하려 주말 몰아잘 때기상 시간 늦춰도 취침 시간은 지켜야”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숙면을 이루지 못하면 각종 만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수명도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숙면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수면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상태가 장기적으로 방치되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수면 전문가인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내 생체시계를 이해하라”주 교수는 매일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든다. 수면 시간은 약 7시간 반 정도.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주 교수는 자신이 ‘아침형 인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밤에는 너무 지쳐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이란다. 이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 모든 업무를 해결한다. 밤에 숙면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바로 이 ‘생체시계’다. 취침 시간을 기준으로 크게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눈다. 취침 시간이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 반까지라면 중간형. 그 이전에 잔다면 아침형, 자정을 훨씬 넘기면 저녁형이다. 주 교수는 “독일의 생체학자가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 수면 의학 분야에서도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중간형이 가장 많다.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기의 사용 등으로 인해 저녁형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근 저녁형의 비중이 40% 정도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저녁형이라면 오후 9시나 10시에 취침하는 게 불가능하다. 자정 이후에 취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녁형의 경우 취침 시간을 미루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에 자정 언저리에 자다가 나중에는 새벽 1시, 2시까지 미루고, 그에 따라 기상 시간도 늦어진다. 이 경우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가 생기기 쉽다. 따라서 저녁형이라면 무엇보다 기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침형이라면 자정까지 버티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가급적 모든 업무를 주간에 끝내는 게 좋다. 잠을 줄이면서 다른 일을 하다가는 주간 졸음증이나 야간 불면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피로감도 심해지고, 업무나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온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침대 가라”주 교수에 따르면 건강한 수면은 △충분한 수면 시간 △좋은 수면 품질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의 주기가 고를 때 얻을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얻으려면 규칙적인 침상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침상에 머무는 시간과 들어가는 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 가령 매일 오후 11시에 침상에 들어가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나기로 했다면, 이 원칙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6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해서 침상에 더 머물면 안 된다. 피곤하더라도 기상 시간인 7시에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몸이 더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잠을 청하는 것도 좋지 않다. 주 교수는 “조금 참더라도 평상시 자던 시간에 자야 수면의 규칙성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아침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제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좀처럼 잠들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누워 있으면 오히려 뇌가 더 각성할 수 있다. 이때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일단 침상을 벗어나 거실로 나간다. 잠시 쉬고 잠이 올 것 같으면 침상으로 돌아 간다. 이런 행동은 뇌가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이 경우에도 기상 시간은 평소와 같아야 한다.주 교수는 이런 수면 훈련을 최소한 한 달은 지속할 것을 강조했다. 꾸준히 훈련했다면 그 이후에는 침상에 들어가는 시간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단다. 물론 자신의 생체시계에 맞춰 침상에 머무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주 교수는 대체로 7~8시간 이내에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주중에 잠이 부족한 사람이 주말에 보충하기 위해 잠을 더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평소대로 취침 시간을 지키고, 수면 시간의 ‘중간값’ 차이를 2시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시차’를 줄여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예를 들어 평소에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 직장인이라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3시다. 이 직장인이 주말에 오전 2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6시. 두 수면의 사회적 시차는 3시간이다.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잤을 뿐인데, 월요병이 생길 확률이 높다. 반면 이 직장인이 주말에 똑같이 자정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났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5시가 된다. 평소보다 4시간을 더 잤는데도 사회적 시차는 2시간으로 줄어든다. 주 교수는 “사회적 시차를 2시간 이내로 줄이면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월요병, 우울증, 심장병 등의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빛 조절, 숙면에 꼭 필요빛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숙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무엇보다 빛을 받을 때는 확실히 빛을 받아야 한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빛에 얼굴을 노출해야 한다. 최소한 30분 이상은 태양 빛을 받는 게 좋다. 하지만 날씨가 흐리면 강렬한 빛을 받을 수 없다. 이때는 태양 빛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빛 치료(라이트테라피)용 기기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한낮 태양광선이 쨍하게 비칠 때가 3만룩스 이상이다. 빛 치료용 기기는 맑은 낮에 해당하는 1만룩스 정도다. 흐린 날은 100룩스 정도다. 사무실은 보통 300룩스 정도, 화장실은 50~80룩스 정도다. 이 기기를 쓸 때는 머리에서 30㎝ 정도 거리를 둔다. 광원을 보면 안 되지만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간접적으로 빛이 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30분 정도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빛을 쬐도록 한다. 주 교수는 수면을 차단하는 블루라이트가 들어간 기기를 추천했다. 블루라이트는 수면을 방해하는 빛이다. 하지만 아침에는 확실히 잠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수면주기를 바꾸는데 도움을 준다. 자외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출근길이나 아침 운동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밤 숙면을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이라고 했다. 주 교수는 “아침에는 어떤 식이든 빛을 많이 받는 게 저녁 숙면에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해가 진 후부터는 빛을 제한해야 한다. 주 교수는 일몰 후 거실의 주방을 150룩스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빛에 대한 노출을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물론 블루라이트도 이때는 차단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50룩스 이하의 어두운 조명만 허용할 것을 권했다. 주 교수는 “종이에 쓰인 글씨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조명을 제한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 휴대폰도 숙면에 방해가 된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야식이 밤잠 방해한다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제거하는 게 좋다. 일단 저녁 식사 이후에는 야식은 물론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주 교수는 “야식을 하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뇌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등 주간과 다름없이 활동한다. 이 때문에 숙면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면 시간은 점점 뒤로 미뤄지게 된다. 그 경우 야행성으로 바뀌면서 밤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주 교수는 “잠을 자야 할 밤에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가짜 허기’다”라고 진단했다. 식사 습관이 흐트러지다 보니 뇌가 배고프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이때 야식을 먹다 보면 심장, 간 등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차들이 있다. 카모마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들도 취침 3~4시간 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주 교수는 “자기 전에 마시는 차는 수면 중 야뇨를 유발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차가 수면을 돕는다는 의학적 근거나 임상시험은 별로 없는 상황.특히 깊은 잠이 이뤄지는 시간대가 있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다. 생체시계 유형에 따라 시간대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40대 이후에는 대부분 이 시간대에 숙면이 이뤄진다. 이 시간대를 놓치면 아침에 개운하지 못하고 피로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운동은 잘하면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숙면을 방해한다. 조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 두면 수면 주기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면서도 “다만 잠을 자기 직전에는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무렵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교감 신경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게 하므로 숙면을 방해한다. 환한 조명에서 운동하는 것도 몸을 더 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불빛을 낮춘다. 어둑어둑한 가로등 정도의 조명이 좋다. 운동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까지가 좋다. 근력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수면을 촉발할 수 있다. ●수면 패턴 무너지면 중병 올 수도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만성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수면 패턴이 무너진 게 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근 주 교수를 찾아온 58세 남성 A씨가 그랬다. A 씨는 젊었을 때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하지만 워낙 쉽게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어 수면 장애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다가 가슴이 덜커덩거리는 느낌에 깼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더니 심장부정맥을 진단받았다. 나중에 A 씨는 관상동맥 협착도 발견됐고 중증 수면무호흡증도 진단받았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질환으로 악화한 사례인 셈. 실제로 이런 경우 심장질환의 위험성은 2배 정도 높다. 69세 된 남성 B 씨는 건망증으로 병원에 왔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었다. 기억력 클리닉에서 검사한 결과 B 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B 씨 또한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상태였다.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뇌혈관까지 손상돼 인지장애로까지 이어진 것. A 씨와 B 씨 모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주 교수는 “숙면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다면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와 같은 약에만 의존했다가 병을 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불면 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다원검사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숙면을 위한 생활 습관 만들기>규칙적으로 취침하고 기상한다.오전에는 밝은 빛에 노출시키고 저녁 시간에는 제한한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30분 이상 이행한다. 취침 3~4시간 전부터는 가급적 금식한다.취침 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든다.커피는 취침하기 10시간 전까지만 마신다. 술은 숙면의 적. 금주한다. 자료 :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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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만에 귀로 소리를 듣다… 인공 와우로 되찾은 삶[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초등학생이던 28년 전, 전정협 씨(39)는 청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친구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여자아이들과 대화할 때 어려웠다.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웅얼대는 것처럼 들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전 씨의 인공 와우(蝸牛·달팽이관) 수술을 집도한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여자아이 목소리는 전 씨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고음이기 때문에 더 듣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씨의 청각장애는 담임선생님이 발견했다. 교사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이 전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청각장애가 확인됐다.● 10년 넘게 보청기 착용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 씨는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신경을 안 써서 그런지 큰 불편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방심하는 동안 청력은 더 떨어졌다. 중고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뺐다. 친구들에게 보청기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전 씨를 사오정이라고 불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에서다.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무렵부터 친구들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다. 고교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많아지면서 결국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착용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보청기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졌다. 전 씨는 “사회복지사 2년 차부터 업무가 다양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전화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승진은 꿈도 꾸지 못했단다. 30세 때 대장 질환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간 김에 이비인후과 진료도 받았다. 그때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전 씨에게 인공 와우 수술을 권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 씨의 청력은 양쪽 모두 10% 정도만 남았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입 모양을 본다 해도 대화 내용의 50%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 인공 와우 수술 후 이명 사라져 최 교수는 “보청기는 최대 30%의 청력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청력이 50%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80% 수준까지는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력이 70∼80% 이상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교정 후 청력이 최대 50%가 되지 않는다. 웅성대는 느낌만 들 뿐 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 씨에게 남아있는 청력은 10% 정도.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공 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의 청(聽)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다. 몸 안에 이식하는 내부 장치와 바깥에 부착하는 어음(語音)처리기로 나눈다. 귀 뒤쪽 뼈 일부를 절개해 컴퓨터 칩 역할을 하는 내부 장치를 이식한다. 이 장치에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 내부로 삽입돼 청신경을 자극한다. 귀 밖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 내부 장치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은 선천적으로 청신경이 없는 경우만 빼고는 대부분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전 씨는 수술 성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상대방 입 모양을 보며 대화했기에 과연 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와 대화한 후 마음을 굳혔다. 전 씨는 “최 교수님이 수술 성공을 확신했기에 믿음이 갔다.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2015년 12월, 청력이 더 안 좋은 왼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나 사흘 만에 퇴원했다. 수술하고 열흘 만에 이명(耳鳴)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청력이 떨어지면 청각세포들이 ‘더 잘 들으려고’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이명이 생긴다. 그러니 이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청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징조다. ● 수술보다 어려운 재활 과정 인공 와우 수술은 대략 1시간이면 끝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다. 수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술받은 사람 중에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비율이 약 10%다. 왜 그럴까. 청각장애 기간이 길수록 재활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수술하면 바로 소리가 들릴 거라 기대했다가 재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들어하다 포기하는 비율이 10%라는 뜻”이라고 했다. 당연히 20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하던 전 씨도 재활 과정은 어려운 편이었다. 2016년 1월, 수술 2주 후 귀 바깥쪽 머리에 어음처리기를 부착했다. 재활이 본격 시작된 것. 전 씨는 “잡음이 심했고 모든 말소리가 헬륨가스 먹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그동안 뇌가 정상적인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를 뇌가 인지하려면 수천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치매나 인지장애만 아니라면 6개월∼1년 꾸준히 재활하면 대부분 효과를 본다”고 덧붙였다. 이후 1주일 간격으로 총 5회 장치를 조정했다. 당장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청기를 함께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 구별이 어려웠다. 소리가 더 커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맑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꾹 참았다. 수술 5개월째부터 변화가 두드러졌다. 언어 평가 결과 보청기만 착용하면 30%가 들렸는데 인공 와우 장치로는 57%를 들었다. 두 장치를 함께 착용하니 모든 문장을 맞혔다. 수술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는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92%를 알아들었다. 이때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내 덕이 컸다. 전 씨는 매일 4시간씩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줬다. 대화를 반복하면서 점점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됐다. 나중에는 아내의 말실수도 콕 집어냈다. 최 교수는 “수십, 수백 번 듣고 대화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찾아내 뇌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재활 과정을 잘 넘긴 사례”라고 설명했다.● 1년 만에 90% 이상 청력 회복 2017년 2월,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삶은 꽤 풍족해졌다. 전 씨는 “무엇보다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좋았다”고 했다. 업무에도 탄력이 붙었다. 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그전에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 거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정면을 바라봐야 해 상대방 입 모양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면을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소리에 적응하며 청력을 회복하는 지표를 크게 7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난도가 높다. 맨 마지막 7단계를 통과하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 7단계가 바로 전화 통화다. 사람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데다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 기계음을 이해해야 하므로 가장 어렵다. 요컨대 시각 정보 없이 오롯이 낯선 음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 씨는 7단계를 1년여 만에 통과했다.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어느덧 8년여. 전 씨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 씨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귀가 나쁘니 인공 와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전 씨는 왼쪽 귀만 인공 와우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왁자지껄한 곳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오른쪽에서 누군가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른쪽 귀도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한쪽 귀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때문에 추가 수술에는 3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최 교수는 “청각장애자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양쪽 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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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만에 소리를 듣다…“인생이 달라졌어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청각장애 전정협 씨인공와우 수술로 한쪽 귀 청각 되찾아28년 전인 1996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전정협 씨(39)는 그제야 청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언제부터 친구들의 말소리가 잘 안 들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 씨는 “증세가 그 전부터 있었는데, 너무 어려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여자 친구들과 대화할 때가 더 어려웠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나중에 전 씨의 ‘인공와우 수술’을 집도한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여자아이들의 목소리는 전 씨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고음이기 때문에 더 듣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임 선생이 전 씨의 청각장애를 발견했다. 교사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이 전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실제로 전 씨의 청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청각장애 진단을 받게 됐다. ●10년 넘게 보청기 착용했지만…처음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 씨는 “평소에도 혼자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큰 불편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방심하는 동안 청력은 계속 떨어졌다. 중고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뺐다. 친구들에게 보청기를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전 씨를 사오정이라 불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에서다. 크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 무렵부터는 친구들의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다. 고교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많아졌기에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보청기만으로는 사회생활에 한계가 느껴졌다. 전 씨는 “사회복지사 업무를 시작하고 약 2년 흘렀을 때부터 업무가 다양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전화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으니 답답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소통 자체가 점점 불가능해지니 승진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돼 버렸다. 30세 때 대장 질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간 김에 이비인후과 진료도 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최 교수다. 최 교수는 전 씨에게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권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 씨의 청력은 양쪽 모두 10% 정도만 남았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입 모양을 본다 해도 대화 내용의 50%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직장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 후 이명 사라져청력이 심하게 떨어지면 보청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 교수는 “보청기는 소리만 확대하는 스피커와 비슷하다. 최대 30%의 청력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청력이 50%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정상인의 최대 80% 수준까지는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력이 70~80%까지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교정 후의 청력이 최대 50%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웅성대는 느낌만 들뿐 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 전 씨가 최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남아있는 청력은 10% 정도. 최 교수는 인공와우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공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의 청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다. 몸 안에 이식하는 내부장치와 바깥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로 나눈다. 원리는 이렇다. 귀 뒤쪽 뼈 일부를 절개해 컴퓨터 칩 역할을 하는 내부장치를 이식한다. 이 장치에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 내부로 삽입돼 청신경을 자극한다. 귀 밖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 내부장치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은 선천적으로 청신경이 없는 경우만 빼고는 대부분 시행할 수 있다. 다만 오래 방치하면 뇌의 청각영역이 쇠퇴해 수술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전 씨 또한 이런 사례에 해당할 뻔 했다. 다만 보청기를 쭉 사용했기 때문에 청신경이 그나마 자극됐고 따라서 뇌의 청각영역이 남아있어 인공와우 수술이 가능했다고 최 교수는 추정했다. 수술이 결정된 후에도 전 씨는 성공을 크기 기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며 대화했기에, 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와 대화한 후 마음을 굳혔다. 전 씨는 “최 교수님이 수술의 성공을 확신했기에 믿음이 갔다.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청력이 더 안 좋은 왼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나 3일 만에 퇴원했다. 수술하고 10일 만에 이명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청력이 떨어지면 청각 세포들이 ‘더 잘 들으려고’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이명이 생긴다. 그러니 이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청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좋은 징조다. ●수술보다 어려운 재활 과정인공와우 수술은 대략 1시간 정도면 끝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란다. 게다가 수술 성공률도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비율이 10% 정도 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재활 과정에서 포기한 사람들이다. 수술을 버텨냈는데 왜 재활에서 ‘탈락’하는 걸까. 보통 청력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발견해 인공와우 수술을 한다면 재활 기간은 짧아질 수 있다. 반면, 청각장애 기간이 길수록 재활 시간도 길어진다. 최 교수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수술하면 바로 소리가 들릴 거라 기대했다가 재활하는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비율이 10%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20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전 씨는 특히 재활 과정이 어렵고 오래 걸렸다. 그 과정을 들어봤다.2016년 1월, 수술 후 2주가 흘렀다. 귀 바깥에 어음처리기를 처음 부착했다. 재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첫 날은 어땠을까. 전 씨는 “잡음이 심했고, 모든 말소리가 헬륨가스 먹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척 피곤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그동안 정상적인 소리를 듣지 못했던 뇌가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를 뇌가 인지하려면 수천 번 이상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끝없는 반복이 재활 환자를 지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다. 최 교수는 “최소한 6개월~1년을 인내하면, 치매와 인지장애가 아니라면 100% 효과를 보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1주일 후 두 번째로 장치를 조정했다. 첫 회에 전기자극을 강하게 줘 청신경을 깨웠다면 2회째부터는 자극의 강도를 조절하며 상태를 살펴본다. 이런 식으로 1주일 간격으로 장치를 조정한다. 5회까지 장치 조정을 한 결과는 어땠을까. 전 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보청기를 함께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 구분이 어려웠다. 소리가 더 커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맑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참았다. 재활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2016년 4월, 6회째 장치 조정을 하면서 언어평가를 했다. 보청기만 착용하면 30%를 들었지만 인공와우는 57%를 들었다. 두 장치를 함께 착용하니 모든 문장을 맞췄다.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마음. 비로소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6개월 후인 2016년 7월. 언어평가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92%를 알아들었다. 이때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내의 덕이 컸다. 정 씨는 매일 4시간씩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줬다. 반복 대화를 하면서 점점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됐다. 나중에는 아내의 말실수도 콕 짚어냈다. 최 교수는 “재활 훈련 과정은 외국어를 공부할 때와 비슷하다. 수십, 수백 번 듣고, 대화하고, 그걸 받아쓰면서 발음이 정확한지 등을 따져야 뇌에 입력이 된다. 듣기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1년 만에 90% 이상 청력 회복2017년 2월, 인공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삶이 풍족해졌다. 전 씨는 “무엇보다 사람의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좋았다”고 말했다. 업무에도 탄력이 붙었다. 덕분에 전 씨는 팀장으로 승진도 했다. 전에는 자동차 운전할 때 거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다. 정면을 바라보려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도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하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소리에 적응하며 청력을 회복하는 지표를 크게 7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난도가 높다. 맨 마지막인 7단계를 통과하면 ‘완치’로 규정하는데, 바로 전화 통화다. 사람의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데다가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 기계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 요컨대 시각정보 없이 오롯이 낯선 음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 씨는 이 7단계를 1년여 만에 통과했다. 인공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어느덧 7년. 전 씨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 씨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착용하는 것처럼 귀가 나쁘니 인공와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전 씨는 왼쪽 귀에만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모든 발음을 들을 수도 없다. 왁자지껄한 곳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오른쪽 방향에서 누군가 말하면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른쪽 귀도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전 씨도 이 점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한쪽 귀에만 건강보험 혜택을 준다. 오른쪽 귀 수술하려면 비급여로 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수술비만 3000만 원이 넘는다. 전 교수는 “청각장애 환자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귀 양쪽 모두 건강보험 적용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정협 씨의 인공와우 수술 및 재활 투병일지>1996년 청각장애 사실 처음 확인(12세)2005년 본격적으로 양쪽 귀에 보청기 착용(21세)2015년 12월 왼쪽 귀에 인공와우 수술 시행(30세)2016년 1월 인공와우 수술 후 재활 본격 시작2016년 1월~4월 매주 1회씩 인공와우 장치 조정 (이후로도 장치는 수시로 조정함)2016년 4월 인공와우와 보청기 함께 착용하면 문장 100% 이해함2016년 7월 인공와우 만으로 입 모양 보지 않고 문장 92% 이해함2017년 2월 수술 1년여 경과 후 가장 난도 높은 7단계 전화 통화 성공 사실상 완치 판정2017년 3월 이후 매년 2월 인공와우 장치 조정 2024년 4월(현재) 오른쪽 귀 인공와우 수술 검토 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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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하면 사라지는 허리 통증… 강직성 척추염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허리 통증의 97% 정도는 근육이나 관절 손상에 따른 것이다. 추간판탈출증(척추디스크), 척추관협착증, 척추골절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런 통증을 ‘기계적 통증(Mechanical Pain)’이라고 한다. 이런 원인이 아닌데도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다.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등을 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어떤 병인가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만성화하면서 발생한다. 허리나 엉덩이, 팔과 다리 관절, 앞가슴, 발꿈치나 발바닥 등에 통증이 주로 나타난다. 다른 장기로도 침범할 수 있다. 눈으로 진행하면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발생한다. 포도막염은 재발이 잘 되며 녹내장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특정 유전자(HLA-B27)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족 중에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있다면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 밖에도 환경적 요인, 물리적 자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지만 확실하게 정립되지는 않았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며 전신 염증 질환이다. 이 때문에 완치가 어렵고,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결국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다.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염증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 경우 평생 약을 먹지 않고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굳어 버린다. 이를 ‘대나무 뼈(Bamboo Spine)’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앞으로 굽힐 수 없다. 그러니 제대로 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재발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방치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국내 환자 수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주로 발병한다. 여성보다는 남성 환자 수가 많다. 50대 이후로는 발병 건수가 줄어든다.●쉴 때 더 아프다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자가 진단법을 알아 두는 게 좋다. 일단 척추디스크나 척추협착증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일 때도 등과 허리, 골반 주변에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통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숙지하자. 강직성 척추염의 허리 통증은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보통은 3개월 이상 지속된다. 통증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통증의 강도도 악화했다가 좋아지기를 되풀이한다. 통증이 지속적이라면 병원에 갈 텐데, 곧 사라지는 점이 조기 발견을 막는 요소다. 일시적인 통증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초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김 교수는 “실제로 환자 대부분이 3∼4년 앓다가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통증의 주기는 환자마다 다르다. 김 교수는 “한 달 아프다가 이후 서너 달은 멀쩡한 환자도 있고, 일단 아프면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다 사라지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통증의 양상은 척추디스크와 완전히 다르다. 척추디스크는 쉬면 통증이 줄어든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운동할 때 통증이 줄어들고, 쉬면 오히려 통증이 악화한다. 척추디스크의 경우 다리가 저리는 등의 신경학적 증세가 나타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이런 증세가 전혀 없다. 또 척추디스크일 때는 한쪽으로만 증세가 나타나는데, 강직성 척추염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곧장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선 척추의 유연성을 검사한다. 다음에는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 염증 수치가 높은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 X레이로 척추가 얼마나 강직됐는지 확인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한다. ●방치하면 뼈가 굳는다 김 교수는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것이 치료 목표”라고 말했다. 이 병 진단을 받으면 1차로 운동을 병행하며 재활치료를 한다. 효과가 미미하면 소염진통제를 쓴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염증 진행을 억제하는 생물학적제제를 쓴다. 이것도 효과가 작으면 또 다른 생물학적제제나 표적치료제를 쓴다. 이미 말한 대로 조기 발견과 대처가 중요하다. A 씨 치료 사례가 대표적이다. 2년 전 2월, 당시 21세의 현역 군인 A 씨는 새벽마다 허리 통증 때문에 깼다. 의무대에서 소염진통제를 받아와 먹으면 통증이 사라졌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아팠다. 군 의료진은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고, 초기 상태인 것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소염진통제를 투입했다. 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염증 조절을 위한 추가 치료가 필요했다. A 씨는 김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추가로 생물학적제제 주사를 투입했다. 그 후 A 씨는 조기 전역했고, 치료에 전념했다. 병은 악화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소염진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태도 좋아졌다. 3개월마다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다. 42세 남성 B 씨는 치료에 소홀해 심각해진 사례다. B 씨는 2018년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병원을 잘 다니며 치료도 잘 받았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3년 정도가 지난 작년 7월 B 씨가 다시 김 교수를 찾았다. 몸 상태는 심각했다. X레이를 찍어 보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척추뼈가 붙어 있었던 것. B 씨는 몸을 앞으로 구부릴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목뼈까지 붙어 버린다. 김 교수는 “굳지 않은 부위만이라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모든 뼈가 붙어 버리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골절이 일어나고, 그 경우 상체가 앞으로 그대로 꺾이게 된다”고 말했다.●병 악화 막는 스트레칭 강직성 척추염의 진행을 막기 위한 운동법이 있다. 김원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팀이 제안한 다섯 동작을 따라 하자. 환자가 아니어도 이 스트레칭을 시행하면 척추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원칙은 이렇다. 첫째, 매일 해야 한다. 20∼30분에 걸쳐 다섯 동작을 모두 따라 한다. 둘째, 각 동작은 10∼20초에 걸쳐 천천히 하고, 3∼5회 반복한다. 다만 여섯 번째 ‘등 근육 강화’ 운동 동작은 더 느리게 10회 반복한다. 더불어 유산소운동을 병행하고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도록 한다.강직성 척추염 진행을 막는 스트레칭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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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하면 허리 통증 사라진다, 혹시 강직성 척추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젊은 사람들이 허리와 등이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 근육이나 관절 손상에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추간판탈출증(척추디스크), 척추관협착증, 척추골절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허리와 등 통증의 97% 정도는 이런 원인으로 발생한다. 이런 통증을 ‘기계적 통증(Mechanical Pain)’이라고 한다. 이런 원인이 아닌데도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다. 이 병이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등을 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강직성 척추염 어떤 병인가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오래 지속되면서 발생한다. 허리나 엉덩이, 팔과 다리 관절, 앞가슴, 발꿈치나 바닥 등에 통증이 주로 나타난다. 다른 장기로도 침범할 수 있다. 눈으로 진행하면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발생한다. 포도막염은 재발이 잘 되며 녹내장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특정 유전자(HLA-B27)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족 중에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있다면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 밖에도 환경적 요인, 물리적 자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지만 확실하게 정립되지는 않았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며 전신 염증 질환이다. 이 때문에 완치가 어렵고,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결국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다.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염증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 경우 평생 약을 먹지 않고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재발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방치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이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굳어버린다. 이를 ‘대나무 뼈(Bamboo Spine)’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앞으로 굽힐 수 없다. 그러니 제대로 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서구에 환자가 많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경우 국민의 5% 정도가 강직성 척추염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덜해서 국민의 0.3% 내외 정도, 10만 명이 조금 넘는 환자가 있다.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주로 발병한다. 여성보다는 남성 환자 수가 많다. 50대를 넘어서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김 교수는 “군 생활하던 중에 발견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강직성 척추염, 쉴 때 더 아프다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자가 진단법을 알아두는 게 좋다. 일단 척추디스크나 척추협착증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일 때도 등과 허리, 골반 주변에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통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숙지하자. 강직성 척추염의 허리 통증은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보통은 3개월 이상 지속된다. 통증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통증의 강도도 악화했다가 좋아지기를 되풀이한다. 통증이 지속적이라면 병원에 갈 텐데, 곧 사라지는 점이 조기 발견을 막는 요소다. 일시적인 통증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초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김 교수는 김 교수는 “실제로 환자 대부분이 3~4년 앓다가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통증의 주기는 환자마다 다르다. 김 교수는 “한 달 아프다가 이후 서너 달은 멀쩡한 환자도 있고, 일단 아프면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다 사라지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통증의 양상은 척추디스크와 완전히 다르다. 척추디스크는 쉬면 통증이 줄어든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운동할 때 통증이 줄어들고, 쉬면 오히려 통증이 악화한다. 척추디스크의 경우 다리가 저리는 등의 신경학적 증세가 나타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이런 증세가 전혀 없다. 또 척추디스크일 때는 한쪽으로만 증세가 나타나는데, 강직성 척추염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곧장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선 척추의 유연성을 검사한다. 다음에는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 염증 수치가 높은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 X레이로 척추가 얼마나 강직됐는지 확인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한다. ●방치하면 뼈가 굳는다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으면 1차로 운동을 병행하며 재활치료를 한다. 이 치료만으로 효과가 미미하면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약물치료에도 단계가 있다. 우선 소염진통제를 쓴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염증의 진행을 억제하는 생물학적제제를 쓴다. 이것으로도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으면 또 다른 생물학적제제나 표적치료제를 쓴다. 김 교수는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것이 치료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 또한 조기 발견과 대처가 중요하다. A 씨 치료 사례가 대표적이다. 2년 전 2월, 당시 21세의 현역 군인 A 씨는 허리가 아파 새벽마다 잠에서 깼다. 의무대에서 소염진통제를 받아와 먹으면 그럭저럭 통증이 사라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통증이 다시 나타났다.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군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다. 군 의료진은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고, 실제로 초기 상태인 것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소염진통제를 투입했다. 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염증 조절을 위한 추가 치료가 필요했다. A 씨는 김 교수를 찾았고, 이때부터 김 교수가 치료를 담당했다. 김 교수는 추가로 생물학적제제 주사를 투입했다. 그 후 A 씨는 조기 전역했고,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병은 악화하지 않았다. 소염진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태도 좋아졌다. 요즘에는 3개월마다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다. A 씨와 달리 42세 남성 B 씨는 치료에 소홀해 심각한 상태가 된 사례다. B 씨는 2018년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병원을 잘 다니며 치료도 잘 받았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3년 정도가 지난, 작년 7월 B 씨가 다시 김 교수를 찾았다. 몸 상태는 심각했다. X레이를 찍어보니 척추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뼈가 붙어 있었던 것. B 씨는 몸을 앞으로 구부릴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목뼈까지 붙어버린다. 김 교수는 “굳지 않은 부위만이라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뼈가 붙어버리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골절이 일어나고, 그 경우 상체가 앞으로 그대로 꺾이게 된다”고 말했다. ●병의 악화 막는 스트레칭강직성 척추염의 진행을 막기 위한 운동법이 있다. 김원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팀이 제안한 다섯 동작을 따라해 보자. 환자가 아니어도 이 스트레칭을 시행하면 척추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원칙은 이렇다. 첫째, 매일 해야 한다. 약 20~30분에 걸쳐 다섯 동작을 모두 따라 한다. 둘째, 각 동작은 10~20초에 걸쳐 천천히 하고, 3~5회 반복한다. 다만 여섯 번째 ‘등 근육 강화’ 동작은 더 느리게 10회 반복한다. 더불어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고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도록 한다. ①앞쪽 몸통 스트레칭=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상체를 뒤로 젖힌다.②가슴 스트레칭=벽 모서리를 보고 서서 양손으로 벽을 짚고 앞쪽으로 가슴을 쭉 민다.③몸통 회전 운동=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회전시킨다.④뒤쪽 허벅지 스트레칭=누운 자세에서 수건이나 끈을 이용하여 다리를 앞으로 당긴다.⑤흉추 스트레칭=수건이나 쿠션을 등에 대고 누운 상태에서 양다리를 구부린다.⑥등 근육 강화 운동=무릎을 대고 엎드린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다. 이때 반대쪽 팔을 들어 쭉 편다. 그 다음에 반대쪽도 번갈아 운동한다. <강직성 척추염 증세 감별하기>1. 허리, 등 통증이 40세 이전에 시작됐다.2. 밤에 자다가 허리, 등 통증으로 깬다.3. 계속 아픈 게 아니고,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한다.4.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 허리가 뻣뻣한 느낌이 든다.5. 특정 운동을 하고 나면 괜찮아진다.6. 엉덩이 관절이나 어깨 관절 등이 붓고 아프다.7. 눈 통증이나 충혈이 발생하는 포도막염이 있었다.자료 :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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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약은 초기 일시적 효과, 끊으면 ‘요요’ 불러”[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글로벌 제약사들이 새로운 비만치료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약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큰 비만치료제가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이어트를 계획 중인 많은 이들이 ‘꿈의 다이어트약’이라 부르는 그 약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비만치료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도 관련 약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궁금한 점이 있다. 이런 다이어트약들이 실제로 효과가 클까. 정말로 약이나 주사만으로도 체중이 쭉쭉 빠질까. 과체중이거나 비만이 아닌 사람도 이 약을 먹으면 날씬해질까. 고도비만 환자도 이 약을 쓰면 정상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증은 또 생긴다. 다이어트약 말고 비만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식욕을 억제하기 위해 수술을 한다는데, 효과가 있는 걸까. 약물과 수술 치료에 대한 질문을 권영근 고려대 안암병원 비만대사센터 교수에게 던졌다. 권 교수는 다이어트약에 대한 인식부터 정립할 것을 강조했다. ● 약 쓰기 전, 이것만은 명심하자 권 교수는 “다이어트약은 내키면 아무 때나 먹는 약이 아니다. 비만치료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받고 먹어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라는 것. 당연히 비만치료제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겠다며 비만치료제를 먹는다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도 생기기 쉽다. 권 교수는 “비만치료제는 체중 감량을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약만 먹고 체중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효과를 얻으려면 체질량지수(BMI) 25 이상 비만 환자일 때 사용해야 한다. 이 환자가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같은 동반 질환이 있다면 쓰는 게 좋다. 이 경우 동반 질환도 함께 개선할 수 있다. BMI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국내 기준에 따르면 18.5∼22.9가 정상, 23∼24.9가 과체중, 25부터 비만에 해당하며 30을 넘어서면 고도비만으로 본다. 고도비만 환자는 약물만으로는 체중 감량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체중을 줄였다고 해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도비만 환자는 약물 외에도 수술 치료를 병행할 때가 많다. 비만치료제들은 대부분 최근 등장했다. 따라서 5년 혹은 10년 이상 의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 물론 장기간 사용이 인정된 약은 대부분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권 교수는 “어떤 비만치료제는 3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판매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약물별 장단점 알아두자 인터넷을 몇 분만 검색해도 다이어트 광고를 여러 번 접하게 된다. 특히 체중 감량을 보장하는 약물을 홍보하는 광고들이 넘쳐난다. 이런 광고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약물 효과가 뛰어나다고 부각하는 광고일수록 과장 광고일 확률이 높다. 권 교수는 “국내에서 장기간 사용 허가를 받은 비만치료제는 네 종류”라고 말했다. 성분명으로 구분하자면 △올리스타트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날트렉손/부프로피온 △리라글루타이드다. 이 약물들은 지방이 장에서 흡수되지 않도록 억제하거나, 식욕이나 음식만 보면 먹고 싶은 강한 욕구를 억제함으로써 음식 섭취량을 줄여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 혹은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음식을 덜 먹도록 하는 약도 있다. 대부분 먹는 약이지만 주사제도 있다. 약물마다 부작용이 있다. 자신에게 적합한 약을 알아두는 게 좋다. 이 네 가지 비만치료제는 1년 사용할 때 대체로 5∼10%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 체중이 80kg이라면 4∼8kg 정도 감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체중을 더 줄여보겠다며 용량을 늘리거나 기간을 늘려 복용해도 그 이상 효과는 볼 수 없다. 비만치료제를 보조 수단이라고 하는 이유다. 새 비만치료제 2종류가 곧 국내에 출시된다.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와 티르제파티드(제품명 젭바운드)다. 두 약물은 식욕 조절이나 포도당 대사 등에 관여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면서 체중을 뺀다. 임상시험에서 위고비는 15%, 젭바운드는 20%까지 체중을 감량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두 약물은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을 동시에 치료하는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치료법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한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고도비만 치료를 위한 수술법 BMI가 30 이상이고 나이가 18세 이상이면 비만 수술을 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 다만 BMI가 30∼35라면 고혈압, 2형 당뇨병, 고지혈증, 비알코올성 지방간, 수면무호흡증, 관절질환, 천식,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비만에 동반한 질환이 한 가지 이상 있어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술 방법은 여러 종류가 있다. 과거에는 위장에 풍선을 넣어 섭취량을 줄이는 방법을 썼다. 이 방법은 6개월 정도 후 풍선을 빼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단점이 있다. 6개월여 만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셈이 된다. 요즘에는 많이 시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의 상단부를 밴드로 조여 섭취량을 제한하는 위 밴드 시술은 합병증이 많이 생긴다는 보고가 많이 나오면서 최근 시술 건수가 줄었다. 요즘에는 위 소매 절제술이 가장 많이 시도된다. 마치 옷소매를 잘라내듯 위의 80%를 수직으로 잘라내는 방법이다. 공복 호르몬인 그렐린 수치가 감소해 식욕이 줄어들고 포만감이 커진다. 다음으로 자주 하는 수술은 위 우회술이다. 위의 상단 부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잘라낸다. 이렇게 하면 음식물이 위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장으로 가게 돼 음식 섭취량이 줄어든다. 식욕 조절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쳐 포만감을 키워준다. 수술 치료 결과는 어떨까. 권 교수는 “사람마다 체중 감량 정도는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2∼18개월 사이에 25∼30% 체중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100kg이라면 최대 70kg으로 줄어든다는 뜻. 혹시 요요 현상이 심하지는 않을까. 권 교수는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환자와 30% 감량에 못 미치는 환자를 모두 합쳐야 (전체 수술받은 사람의) 10%”라고 말했다. 체중 감량 효과가 확실히 크다는 것이다. 다만 이 다이어트는 과체중이나 비만 환자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권 교수는 “약물과 달리 수술 치료는 위장 일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며 신중하게 고민하고 의사와 상담한 후 결정할 것을 추천했다. ● 다이어트 원칙 준수가 성공 좌우 다이어트 성공 여부는 언제 판단할까. 권 교수는 “목표 체중 달성에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요요 현상 없이 그 체중을 유지할 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약만으로는 결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길게 봐야 하며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생활방식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약물 다이어트는 초기에 효과가 있을 뿐, 약을 끊으면 거의 모두 식욕이 다시 올라오고 체중이 늘어난다는 것. 수술한다고 해도 생활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요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똑같다. 권 교수는 ‘다이어트=비만 치료’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따라서 체중 감량뿐 아니라 동반 질환도 함께 개선해야 비로소 삶의 질이 좋아지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용 목적으로 비만치료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에도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생활방식을 개선해야 다이어트에 최종 성공하는 것이란다. 권 교수는 “이런 원칙들을 지키지 않으면서 약물에만 기댄다면 100%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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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열량 탄수화물 비중 30~50% 바람직… 10% 밑은 위험”[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1972년 미국 의사 로버트 앳킨스가 쓴 책 ‘다이어트 혁명’에 수록된 다이어트 방법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렀다. 탄수화물은 먹지 않고 단백질과 지방을 더 먹으면 체중이 빠진다는 것. 빵이나 밥을 안 먹으면 기름진 육류는 무제한 먹을 수 있어 ‘황제 다이어트’라고 불렀다. 이것이 바로 저(低)탄수화물 다이어트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2010년대 국내에도 전파됐다.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현재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가장 인기 있는 다이어트 중 하나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보통 하루 섭취 열량의 45% 미만으로 탄수화물 비중을 줄인다. 탄수화물 섭취를 10% 미만으로 줄이는 초(超)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위험할 수 있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궁금증이 생긴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지방을 줄이는 저지방 다이어트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권혁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해답을 들었다. ● 탄수화물만 줄이면 되는 걸까? 탄수화물을 줄이면 우리 몸은 저장된 지방을 꺼내 에너지원(源)으로 쓴다. 그러니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면 지방 소모량이 늘어나고 체중도 줄어든다는 것. 최근에는 인슐린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기도 한다. 이 경우 특히 GI(혈당지수)가 높은 단순당 음식을 덜 먹어야 한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가파르게 오른다.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돼 아직 소비하지 않은 에너지원을 곧바로 지방으로 저장한다. 권 교수는 “식사 후 금세 배가 고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써야 할 에너지원이 순식간에 저장돼 버리니까 추가로 에너지가 필요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결과는 비만이다. 권 교수는 “특히 GI가 높은 음식을 피해야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체중 감량 효과는 어떨까. 권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 (다이어트 개시) 24주 이후부터는 효과가 작거나 요요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부작용도 있다. 몸에 나쁜 LDL(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승한다. 권 교수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평균 12주가 지난 시점부터 이 수치가 높아진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고지혈증 환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다이어트다. 제2형 당뇨병 환자도 탄수화물 섭취를 지나치게 줄이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케톤이란 물질이 몸에 쌓여 치명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탄수화물은 두뇌가 돌아가는 연료다. 수험생이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직장인은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구토, 변비, 두통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저탄고지’냐, ‘저탄고단’이냐 탄수화물을 줄인 만큼 지방 섭취량을 늘리면 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고지) 다이어트,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면 저탄수화물 고단백(저탄고단) 다이어트가 된다. 일반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지방 섭취가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는 2018년을 전후로 저탄고지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지방 비중을 높이면 음식의 고소한 맛이 유지될 뿐 아니라 풍미가 더 살 수 있다. 밥과 빵만 줄이면 되니 그보다 쉬운 다이어트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삼겹살을 무한정 먹거나 버터를 발라 먹으면서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초기에는 체중 감량 효과가 있었다. 너도나도 이 다이어트에 도전했다. 의학회가 비판 성명을 내기에 이를 정도였다. 포화지방산과 동물성 지방을 많이 먹는다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커지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방 비중이 40%를 넘어서면 사망률도 높아진다. 여기에다 권 교수는 “장기 데이터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암 발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식물성 지방을 먹는 게 좋다. 대규모 연구 결과 탄수화물 대신 식물성 지방을 섭취하면 사망률이 18% 감소했다. 반면 동물성 지방을 먹으면 사망률이 18% 증가했다. 포화지방산은 하루 섭취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게 좋다. 저탄고지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새로 주목받은 게 저탄고단이다. 원리는 저탄고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작용도 비슷하다. 따라서 단백질도 동물성보다는 식물성 단백질을 늘려야 한다. 만성 신장병 환자는 단백질 과잉 섭취가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 콩팥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저탄고단을 무조건 시행하면 안 된다.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지방을 줄여 체중을 줄이자’ 지방 1g당 열량은 9Cal로 탄수화물과 단백질(각각 4Cal)의 두 배가 넘는다. 똑같은 양이라도 지방 함량이 많은 음식의 열량이 높다. 이런 음식을 먹었다면 열량을 더 소비해야 살이 찌지 않는다. 반대로 지방 함량이 적은 음식을 먹으면 소비해야 할 열량이 적어진다. 저지방 다이어트의 기본 원리가 이것이다. 지방을 줄여 체중을 줄이자는 것.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전적인 다이어트다. 저지방 다이어트는 국내보다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서양에서 특히 유행했다. 일반적으로 서양 식단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웃돈다. 이 비중을 20% 이내로 줄이자는 것이다. 반면 한국 사람은 굳이 이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권 교수는 “우리 전통 식단은 탄수화물 비중이 크고 지방 비중이 작다. 일부러 지방을 덜 먹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식단에서 지방 비중은 15∼20% 정도다. 다만 최근 청소년과 젊은 층이 서구 식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저지방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권 교수는 “학생들이 학원 주변에서 먹는 음식들을 보면 대부분 지방 함량이 높다. 게다가 활동량까지 적어 비만이 되기 쉽다. 그런 학생들은 의도적으로라도 저지방 식단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을 줄이면 단백질과 탄수화물 중 한쪽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때 탄수화물 섭취량을 늘리면 과잉 탄수화물 상태가 돼 체중이 늘어난다. 탄수화물은 중간 정도로 먹고 단백질을 늘리는 게 좋다. 가령 닭고기를 먹는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가슴살 위주로 먹고 밥은 적당히 먹는 식이다.● 최소 12주 시도해 보고 적합한 방식 찾아야 대한비만학회가 권장한 건강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탄수화물 비중은 30∼50%가 적절하다. 지방은 30∼40%, 단백질은 20∼30%다. 비중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음식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 탄수화물은 GI가 낮은 복합당 위주로 먹는다. 지방과 단백질은 동물성에서 식물성으로 바꾼다.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면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권 교수는 “단기 체중 감량에 만족하지 말고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탄수화물이든 저지방이든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찾고 유지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유행하는 다이어트라고 해서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직접 시도해 봐야 한다. 최소한 12주는 해 봐야 다이어트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다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어느 정도 감이 온다고 권 교수는 조언한다. 권 교수는 “2∼3주 동안 다이어트를 했는데 500g도 빠지지 않았다면 다른 다이어트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에게 적합하다 여겼지만 12주 동안 겨우 500g 빠졌다면 의미가 없으므로 이때도 다른 다이어트로 바꿔야 한다. 만성 질병이 있다면 의사와 상의해 다이어트 방법을 결정하는 게 좋다. 권 교수는 “종합적으로 보자면 저탄, 저지, 고단을 추천한다”고 했다. 물론 이때도 복합당 위주 탄수화물, 식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을 먹어야 다이어트 효과를 높이고 질병 위험을 낮춘다. 하지만 원칙대로 실천하는 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권 교수는 “그렇다면 하루 세 끼를 거르지 않고 먹되 양을 줄이는 방법을 시도하라. 그 대신 주의할 식품은 최대한 차단하라”고 조언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바닐라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를 고르고, 케이크를 먹기보다는 통밀빵을 먹는 식이다. 단순당이 많은 음료수나 디저트는 웬만하면 삼간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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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과 전통과 자연이 소용돌이친다… 나루토!

    일본 소도시 도쿠시마(德島)에서 ‘최후의 심판’ 감상이라…. 조잡한 축소판이겠거니 했다. 최후의 심판은 이탈리아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7년 작업 끝에 1541년 완성한 167㎡ 크기 대작이다. 재현이 가능키나 할까. 예측은 빗나갔다. 오쓰카 국제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원작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재현해 놓았다. 시스티나 성당을 통째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도쿠시마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니다. 위치를 잘 모르는 일본인도 많단다. 소도시라기보다는 정겨운 시골에 더 가깝다. 하지만 성큼 발을 디뎌보니 도쿠시마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하이라이트가 오쓰카 국제 미술관이라고나 할까. 짧은 여행의 끝은 무척 아쉬웠다.● 소도시에서 누리는 ‘예술 호사’ 인천공항에서 1시간 20분 남짓. 시코쿠(四國) 다카마쓰(高松)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동쪽으로 차를 달렸다. 봄을 시샘하는 듯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래도 햇살은 따스했다. 1시간 10여 분 후.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은 오쓰카 국제 미술관에 도착했다. 웅장한 건물에 먼저 놀랐다. 가이드북을 보니 일본 최대 규모(연면적 2만9412㎡) 상설 전시 공간이란다. 둘째, 비싼 입장료(3300엔)에 놀랐다. 물론 관람을 끝낸 후에는 값어치를 인정하게 되지만. 오쓰카 국제 미술관은 총 5개 층에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눠 서양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26개국, 190여 미술관이 보유한 작품 중에서 1000여 점을 골라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도자기 타일에 구현됐다.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해서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시리즈,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일반인이라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 대부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성당 벽화 작품의 경우 성당 내부까지 오롯이 재현했다. 모든 작품을 감상하려면 최소한 1시간 20분은 필요하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살짝 작품을 터치하는 것도 괜찮다. 타일이기 때문에 손상될 우려가 없어서 허용한단다. ● 신비로운 바다의 소용돌이 미술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나루토(鳴門) 해협이 있다. 세계에서 유속이 가장 빠른 해류가 흘러드는 곳이라는데, 유입된 해류가 반대편 해류와 섞이며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걸로 유명하다. 소용돌이는 봄과 가을 썰물 때 가장 선명하다. 지름이 최대 20m까지 커진단다. 나루토 해협도 도쿠시마 여행에서 빠뜨려선 안 될 명물이다. 소용돌이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우즈노미치 전망대를 이용한다. 이 전망대는 도쿠시마와 인근 아와지섬을 잇는 다리 오나루토교(橋) 하단에 설치돼 있다. 해수면에서부터 45m 높이에 총길이 450m로 만들어졌다. 유리 바닥을 통해 소용돌이를 관람할 수 있다. 둘째, 유람선을 탄다. 유람선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지점까지 간다. 바로 눈앞에서 소용돌이를 목격할 수 있다. 30∼40명이 타는 소형 페리를 타면 소용돌이를 뚫고 지나가는 체험도 가능하다. 배가 심하게 요동쳐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멀미에 약하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그 경우 대형 유람선을 추천한다. 기자는 두 방법 모두 체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대한 소용돌이를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날따라 강하게 불던 바람 때문이다. 엽서에 실린 소용돌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담 하나.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 주인공 나루토는 이 해협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다. 나루토의 필살기가 소용돌이인 게 이런 이유에서라나. ● 시코쿠 전통문화 체험도 가능 “앗토사!” “앗토앗토!” 배우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영차’나 ‘으라차차’와 비슷한 감탄사다. 덩달아 관객들 어깨도 들썩거렸다. 아와오도리 회관에서는 일본의 대표적 축제인 ‘아와오도리 축제’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아와오도리 축제는 매년 8월 12∼15일 열리는 거리 축제다. 사람들은 아와오도리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한다. ‘아와’는 도쿠시마의 옛 지명, ‘오도리’는 춤을 뜻한다. 아와오도리 춤은 맑은 날을 기원하는 군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농악과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랐다. 흥겨운 2박자 리듬에 특유의 손동작을 반복한다. 40분 공연은 3부로 구성돼 있다. 배우들은 먼저 15분 동안 1부 공연을 펼친다. 이어 15분 동안 관객에게 춤을 가르쳐 준 뒤 모두 무대로 끌고 가서 한판 춤판을 벌인다. 마지막으로 10분 동안 배우들의 3부 공연이 진행된다. 이처럼 도쿠시마에는 일본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일본 전통 인형극 체험도 가능하다. 골목에 있는 작은 극장에 가면 애끊는 모정을 주제로 한 인형극을 볼 수 있다. 무대 상단에 영어 자막이 나와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세 명이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사람 3분의 2 크기 정도인 인형을 움직이는 방식이 이색적이다. 인형 2개가 무대에 나오니 6명의 ‘검은 배우’가 인형을 조작했다. 엉킬 법도 하건만 깔끔하게 무대를 마쳤다. 인형극이 끝나면 직접 인형을 움직여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공연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일본 전통 천연염색 공방이 있다. 여러 무늬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직접 손수건에 쪽빛 물을 들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88개 사찰 순례의 출발점 도쿠시마에는 료젠지(靈山寺)라는 사찰이 있다. 10분이면 절 내부를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하지만 이 절은 일본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8세기경 일본 불교 종파 진언종을 창시한 구카이(空海)가 이 절에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고보(弘法)대사 시호를 받을 정도로 ‘거물’이 된다. 시코쿠섬 전역에는 88개 사찰이 있다. 료젠지에서 출발해 이 모든 사찰을 도는 순례가 유명하다. 기자가 들렀던 날에도 여러 명의 순례자가 삿갓을 쓰고 순례에 나서고 있었다. 사찰들을 연결한 순례길 총길이는 1400km에 이른다.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잠시 명상하듯 걷는 것도 괜찮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질 수는 없다. 도쿠시마 전통 라멘을 먹어봤다. 다른 지역과 달리 고기를 양념에 조려 면에 얹는다. 또 날달걀도 고명으로 올린다. 국물색이 진한 갈색을 띤다. 한국인 입맛에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도의 한 휴게소에서 ‘식사 플렉스’를 해 봤다. 성게알과 연어알, 참치가 잔뜩 들어 있는 덮밥(3300엔·약 2만9000원). 솔직히 한 끼 식사로는 비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기에 먹어 봤다. 부드러운 성게알과 톡톡 터지는 연어알, 그리고 해산물 향기들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런 식사만으로 여행의 즐거움은 커진다.글·사진 도쿠시마=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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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 받으면 폭식? 간헐적 단식보다 소식하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일정 시간 단식하는 것을 간헐적 단식이라고 한다. 단식 기간을 넘기면 음식은 무제한으로 먹어도 된다. 반면 끼니를 거르지 않되 적은 양의 음식만 섭취하는 소식(小食), 즉 저열량 다이어트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식사량을 얼마나, 어떻게 제한하느냐를 놓고 거론되는 대표적인 다이어트다.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을까. 이지원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성공했을 경우 두 다이어트 모두 의학적 효과가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를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방법을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간헐적 단식, 먹을 때와 굶을 때 꼭 구분해야 간헐적 단식은 일정 시간만 공복을 유지하는 다이어트다. 하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나머지 8시간 동안 음식을 먹는 방법, 14시간 단식하고 10시간 동안 먹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를 1주일 단위로 확장했을 때는 보통 5일 동안 식사하고 2일 동안 굶는다. 식사하는 날에도 아침이나 저녁 식사 중 한 끼는 건너뛰어 공복감을 유지한다. 간헐적 단식의 응용 버전은 또 있다. 하루에 1끼만 먹는 1일 1식은 23시간 굶고 1시간 이내에 한 끼를 먹는 방법이다. 하루는 먹고, 다음 날은 굶는 격일제 다이어트도 있다. 이 교수는 “특정 방식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섭취 열량이 크게 떨어지면 우리 몸은 생존하기 위해 기초대사량을 떨어뜨리고 지방을 더 비축하려고 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단식에는 이런 본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몸 안에 저장된 지방을 꺼내 에너지원으로 쓴다. 이 때문에 건강하게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간헐적 단식이 내세우는 장점이다. 간헐적 단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때와 굶을 때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14시간을 굶고 10시간을 먹겠다고 결심했다면 굶는 시간에는 아주 적은 간식도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오후 8시부터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면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는 철저히 단식을 지켜야 한다. 반면 먹는 시간에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다만 이 경우 폭식해 버린다면 간헐적 다이어트는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간헐적 단식을 처음 시도했을 때 어지러움, 두통, 피로감, 집중력 저하, 기분 변화, 근육량 감소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이 지속되면 단식 시간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게 좋다. ● 섭취 열량을 제한하는 소식 소식, 즉 저열량 다이어트는 섭취 열량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평상시 음식 섭취량의 70% 정도만 먹는다. 이보다 극단적인 형태도 있다. 하루 섭취 열량을 800∼1000Cal로 제한하는 것이다. 성인 기초대사량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섭취량을 줄이는 이 방법을 초(超)저열량 다이어트라고 한다. 저열량 다이어트의 성패는 영양 불균형을 얼마나 막느냐에 달렸다. 이 교수는 “저열량 다이어트는 단순히 섭취 열량을 줄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영양소를 균형감 있게 섭취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음식 섭취량만 맹목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영양 균형을 맞춘 소식이라면 몸의 염증 반응을 줄이고 만성 질환과 암 진행을 늦추며 장수(長壽)에도 도움을 준다. 이 교수는 “음식량만 줄인다면 제대로 된 저열량 다이어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특히 단백질 섭취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음식에 있는 단백질은 체내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제공한다. 체중 1kg당 단백질 0.8∼1.2g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탄수화물도 적절히 먹어야 한다. 케톤증이나 심한 수분 손실을 막으려면 하루에 최소한 100g의 당질(糖質)은 먹어야 한다. 더불어 물도 충분히 마셔야 한다. 식사를 제한하다 보면 변비가 생기기 쉽다. 저열량 다이어트를 하려면 변비 방지책을 세워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식이섬유를 매일 20∼30g 정도 먹는 게 좋다. 식이섬유는 공복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열량 다이어트를 하려면 외식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식당 음식은 한 끼니 열량이 1000Cal 내외인 게 많다. 추가로 음식 영양 성분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 이 교수는 “하루 세끼가 아니라 네 끼로 음식을 나눠 먹어도 좋다. 다만 총 섭취 열량을 계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자기 성향에 맞는 법 골라야 어떤 다이어트가 내게 맞을까. 이 교수는 “최근 해외 저널에는 소식이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 논문 내용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다이어트를 골라야 성공한다는 것. 만약 스트레스를 받을 때 폭식하는 성향이라면 간헐적 단식보다는 저열량 다이어트가 더 적합하다. 간헐적 단식의 경우 단식 기간에 안 먹다가도 먹는 기간이 되면 폭식할 수 있다. 이 경우 간헐적 폭식이 돼 버릴 우려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줄이며 자주 적게 먹는 게 좋다. 간헐적 단식을 피해야 하는 사람은 또 있다. 임산부, 영유아, 18세 미만 청소년, 노인, 만성질환자, 당뇨병 환자, 암 환자, 간·신장·췌장 질환자, 급성 감염병 환자에게는 간헐적 단식이 권장되지 않는다. 저열량 다이어트는 대부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노인, 만성질환자, 암 환자도 강도를 낮춘다면 할 수 있다. 다만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하기에 이 다이어트를 권하지 않는다. 저열량 다이어트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섭취하는 음식 열량을 비롯해 영양학 지식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한다. 또 매일 ‘식사 일기’를 쓰면서 섭취 열량을 파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견디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두 다이어트의 공통점도 있다. 이 교수는 “양쪽 모두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은 피하도록 한다. 취침하기 네댓 시간 전부터는 안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식사할 때는 양질의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 일회성 성공보다는 지속성이 중요 이 교수는 “두 다이어트 모두 꾸준히 이행하면 의학적 효과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반대로 어떤 다이어트든 극단적으로 하는 것은 피하라고 주문했다. 가령 체중을 더 감량하기 위해 단식 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금물이다. 가장 먼저 수분이 빠지기 때문에 탈수 증세로 쓰러질 수도 있다. 이 교수는 “평생 지속할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성 성공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평생 매일 음식을 400Cal만 섭취할 수 있다면 초저열량 다이어트를 해도 되지만 도중에 실패하면 요요 현상은 더 심해진다. 결과적으로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체중 감량 목표를 지나치게 높여 잡는 것에도 이 교수는 반대했다. 간헐적 단식이든 저열량 다이어트든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그는 “몸무게의 5%를 최소 3개월 이상 기간에 빼는 게 좋다. 고도 비만이라 해도 1주일에 0.5∼1kg 정도만 빼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상 뺐다가 요요 현상이 나타나면 더 비만이 되기 쉽고 나중에 대사질환이나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이 교수는 “다이어트에 진심이라면 술부터 끊거나 절주(節酒)야 한다. 술뿐 아니라 함께 먹는 안주들이 대부분 열량이 높다. 소식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며 늦게까지 술을 먹기 때문에 간헐적 단식도 실패하게 된다”고 말했다. 운동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이 교수는 “매주 3∼5회 유산소 운동, 2회 근력 운동은 현재 몸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매일 1시간 정도는 운동해야 한다”고 했다. 숨이 차거나 상의가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하라는 얘기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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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헐적 단식 vs 소식…시도하기 전 장단점부터 따져보길”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일정 시간 단식하는 것을 간헐적 단식이라고 한다. 단식 기간을 넘기면 음식은 무제한으로 먹어도 된다. 반면 끼니를 거르지 않되 적은 양의 음식만 섭취하는 소식(小食), 즉 저열량 다이어트도 있다.이 두 가지는 식사량을 얼마나, 어떻게 제한하느냐를 놓고 거론되는 대표적인 다이어트다.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을까. 이지원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성공했을 경우 두 다이어트 모두 의학적 효과가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를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방법을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간헐적 단식, 유의할 점은간헐적 단식은 일정 시간만 공복을 유지하는 다이어트다. 하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나머지 8시간 동안 음식을 먹는 방법, 14시간 단식하고 10시간 동안 먹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를 1주일 단위로 확장했을 때는 보통 5일 동안 식사하고 2일 동안 굶는다. 식사하는 날에도 아침이나 저녁 식사 중 한 끼는 건너뛰어 공복감을 유지한다. 간헐적 단식의 응용 버전은 또 있다. 하루에 1끼만 먹는 1일 1식은 23시간 굶고 1시간 이내에 한 끼를 먹는 방법이다. 하루는 먹고, 다음 날은 굶는 격일제 다이어트도 있다. 이 교수는 “특정 방식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섭취 열량이 크게 떨어지면 우리 몸은 생존하기 위해 기초대사량을 떨어뜨리고 지방을 더 비축하려고 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단식에는 이런 본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몸 안에 저장된 지방을 꺼내 에너지원으로 쓴다. 이 때문에 건강하게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간헐적 단식이 내세우는 장점이다.간헐적 단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때와 굶을 때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14시간을 굶고 10시간을 먹겠다고 결심했다면 굶는 시간에는 아주 적은 간식도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오후 8시부터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면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는 철저히 단식을 지켜야 한다. 반면 먹는 시간에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다만 이 경우 폭식해 버린다면 간헐적 다이어트는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간헐적 단식을 처음 시도했을 때 어지러움, 두통, 피로감, 집중력 저하, 기분 변화, 근육량 감소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이 지속되면 단식 시간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게 좋다. ●저열량 다이어트, 소식소식, 즉 저열량 다이어트는 섭취 열량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평상시 음식 섭취량의 70% 정도만 먹는다. 이보다 극단적인 형태도 있다. 하루 섭취 열량을 800~1000Cal로 제한하는 것이다. 성인 기초대사량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섭취량을 줄이는 이 방법을 초(超)저열량 다이어트라고 한다. 저열량 다이어트의 성패는 영양 불균형을 얼마나 막느냐에 달렸다. 이 교수는 “저열량 다이어트는 단순히 섭취 열량을 줄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영양소를 균형감 있게 섭취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음식 섭취량만 맹목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영양 균형을 맞춘 소식이라면 몸의 염증 반응을 줄이고 만성 질환과 암 진행을 늦추며 장수(長壽)에도 도움을 준다. 이 교수는 “음식량만 줄인다면 제대로 된 저열량 다이어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특히 단백질 섭취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음식에 있는 단백질은 체내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제공한다. 체중 1kg당 단백질 0.8~1.2g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탄수화물도 적절히 먹어야 한다. 케톤증이나 심한 수분 손실을 막으려면 하루에 최소한 100g의 당질(糖質)은 먹어야 한다. 더불어 물도 충분히 마셔야 한다.식사를 제한하다 보면 변비가 생기기 쉽다. 저열량 다이어트를 하려면 변비 방지책을 세워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식이섬유를 매일 20~30g 정도 먹는 게 좋다. 식이섬유는 공복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열량 다이어트를 하려면 외식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식당 음식은 한 끼니 열량이 1000Cal 내외인 게 많다. 추가로 음식 영양 성분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 이 교수는 “하루 세끼가 아니라 네 끼로 음식을 나눠 먹어도 좋다. 다만 총 섭취 열량을 계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떤 다이어트를 시도할까어떤 다이어트가 내게 맞을까. 이 교수는 “최근 해외 저널에는 소식이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 논문 내용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다이어트를 골라야 성공한다는 것. 만약 스트레스를 받을 때 폭식하는 성향이라면 간헐적 단식보다는 저열량 다이어트가 더 적합하다. 간헐적 단식의 경우 단식 기간에 안 먹다가도 먹는 기간이 되면 폭식할 수 있다. 이 경우 간헐적 폭식이 돼 버릴 우려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줄이며 자주 적게 먹는 게 좋다.간헐적 단식을 피해야 하는 사람은 또 있다. 임산부, 영유아, 18세 미만 청소년, 노인, 만성질환자, 당뇨병 환자, 암 환자, 간‧신장‧췌장 질환자, 급성 감염병 환자에게는 간헐적 단식이 권장되지 않는다.저열량 다이어트는 대부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노인, 만성질환자, 암 환자도 강도를 낮춘다면 할 수 있다. 다만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하기에 이 다이어트를 권하지 않는다. 저열량 다이어트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섭취하는 음식 열량을 비롯해 영양학 지식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한다. 또 매일 ‘식사 일기’를 쓰면서 섭취 열량을 파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견디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두 다이어트의 공통점도 있다. 이 교수는 “양쪽 모두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은 피하도록 한다. 취침하기 네댓 시간 전부터는 안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식사할 때는 양질의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다이어트 성공의 조건이 교수는 “두 다이어트 모두 꾸준히 이행하면 의학적 효과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반대로 어떤 다이어트든 극단적으로 하는 것은 피하라고 주문했다. 가령 체중을 더 감량하기 위해 단식 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금물이다. 가장 먼저 수분이 빠지기 때문에 탈수 증세로 쓰러질 수도 있다.이 교수는 “평생 지속할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성 성공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평생 매일 음식을 400Cal만 섭취할 수 있다면 초저열량 다이어트를 해도 되지만 도중에 실패하면 요요 현상은 더 심해진다. 결과적으로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체중 감량 목표를 지나치게 높여 잡는 것에도 이 교수는 반대했다. 간헐적 단식이든 저열량 다이어트든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그는 “몸무게의 5%를 최소 3개월 이상 기간에 빼는 게 좋다. 고도 비만이라 해도 1주일에 0.5~1kg 정도만 빼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상 뺐다가 요요 현상이 나타나면 더 비만이 되기 쉽고 나중에 대사질환이나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이 교수는 “다이어트에 진심이라면 술부터 끊거나 절주(節酒)야 한다. 술뿐 아니라 함께 먹는 안주들이 대부분 열량이 높다. 소식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며 늦게까지 술을 먹기 때문에 간헐적 단식도 실패하게 된다”고 말했다. 운동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이 교수는 “매주 3~5회 유산소 운동, 2회 근력 운동은 현재 몸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만약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매일 1시간 정도는 운동해야 한다”고 했다. 숨이 차거나 상의가 땀에 젖을 정도의 강도로 운동하라는 얘기다.〈간헐적 단식 vs 저열량 다이어트〉간헐적 단식저열량 다이어트정의하루 일정 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한다.주로 하루 16시간(혹은 14시간) 공복을 유지한 뒤 8시간(혹은 10시간) 식사.일주일 단위로는 5일 식사하고 2일 단식.1일 1식 혹은 격일제 단식도 있음.일반적으로 적게 먹는 소식과 비슷.평소 음식 섭취량의 3분의 2만 섭취하되 영양소 불균형이 생기지 않도록 골고루 먹음.초저열량 다이어트는 하루 섭취 총칼로리를 800~1000Cal로 제한하기도 함.장단점음식 먹는 시간에는 식사량을 제한하지 않음. 먹을 때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음식 섭취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음.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는 경우 성공 가능성 낮음. 급성 치료기 환자는 피해야 함.의학적으로 가장 많은 장점이 증명됨.열량,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에 대한 영양학 개념이 있다면 성공률 높음.스트레스 많을 때 폭식한다면 적은 양을 일정하게 먹어야 함.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가 없으면 영양 불균형 생길 수 있음. 성공 가능성 높이려면 외식과 금주 필수.적합섭식장애가 없거나 공복을 잘 견디며 폭식 경향이 없는 사람. 음식 스트레스 덜 받는 사람. 만성 질환이 없는 사람. 노인, 만성질환자, 암 환자도 낮은 강도로 할 수 있음.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을 제외하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음. 부적합임산부, 영유아, 18세 미만 청소년, 만성질환자, 당뇨병 환자, 암 환자, 간‧신장질환자, 급성 감염 환자, 췌장 질환자. 적게 먹는 데 강박증 있는 사람,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 질환 치료를 위해 충분한 열량 섭취가 필요한 사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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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푸드 다이어트? 반짝 효과 뒤 요요 확률 매우 높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10여 년 전만 해도 비만 의학 교과서에는 ‘지방과 섭취 열량을 줄이는 게 모범적 다이어트’라고 돼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생활방식에 맞고 건강에 지장 없으며 영양학적으로 문제 없다면 좋은 다이어트’라고 규정돼 있다. 여러 다이어트의 장단점을 4회에 걸쳐 분석한다.》30대 후반 여성 A 씨 체중은 72kg이었다. 다소 비만 체형. A 씨는 2주 후 예정된 중요한 가족 행사를 대비해 체중을 줄이기로 했다. 이후 바나나 위주로 먹었다. 처음에는 하루 세 번, 끼니마다 바나나를 4개씩 먹었다. 나중에는 바나나를 두 끼로 줄이고 나머지 한 끼는 일반식으로 아주 조금만 먹었다. 목표를 이룬 것 같았다. 2주 새 7kg이 빠진 것.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다. 몸이 축축 늘어졌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여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요요현상이 나타났다. 옷이 꽉 끼었다. 두 달 만에 체중은 80kg을 넘어섰다. A 씨는 국내 비만 의학 1세대 의사로 꼽히는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의 실제 환자였다. 강 교수는 “단기 효과가 큰 다이어트일수록 부작용도 크다. 무턱대고 감량하겠다고 달려들기보다는 각 다이어트의 장단점을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원푸드-디톡스 다이어트, 권장 안 해”A 씨가 시도한 다이어트는 원푸드 다이어트다. 한 가지 음식으로만 하루 섭취량의 70% 이상을 채운다. 먹는 음식에 따라 고구마 다이어트, 닭가슴살 다이어트, 바나나 다이어트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강 교수는 “아주 짧은 시간, 체중감량 효과는 있다. 하지만 100% 요요현상이 생긴다.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면 수분과 근육만 빠진다. 하지만 요요현상으로 살이 다시 찔 때는 지방부터 늘어난다. 이 때문에 종전과 같은 체중이라도 더 살쪄 보이고 체중 증가 속도는 빨라진다. 요요현상이 발생한 후에는 다이어트 효과도 떨어진다. 강 교수는 “근육량이 줄어들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다이어트를 해도 종전처럼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정 채소나 과일 주스, 건강기능식품 등만 먹으면서 체중을 빼는 디톡스(해독) 다이어트가 있다. 시중에서 디톡스 다이어트 패키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3일, 5일, 7일 단위로 주스 형태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이 많이 나와 있다. 이 다이어트는 어떨까. 강 교수는 “원푸드 다이어트에 단식을 접목한 다이어트인데, 영양 결핍이 더 빨리, 더 심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이 또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대 후반 여성 B 씨도 3일 패키지 제품을 먹어봤다. 사흘 만에 2kg이 빠졌다. 하지만 급격하게 배고픔이 밀려왔다. B 씨는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다이어트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원푸드 다이어트나 디톡스 다이어트의 경우 B 씨처럼 아주 짧은 기간, 부득이한 상황일 때만 시도하기를 권했다. 지속적인 다이어트로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뜻이다. ●“비건 다이어트, 잘만 응용하면 좋아”비건 다이어트는 채식(비건식)을 다이어트에 도입한 것이다. 채식 단계에 맞춰 먹는 음식은 다르다. 가장 엄격한 비건 다이어트는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음식 일체를 먹지 않는다. 조금 덜 엄격한 비건 다이어트의 경우엔 우유, 달걀까지는 허용한다. 이보다 더 낮은 단계에서는 해산물까지 먹어도 된다. 이 다이어트는 효과가 있을까. 강 교수는 “영양 지식이 있다면 엄격한 채식 다이어트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해산물까지 먹는 채식 다이어트를 권한다”고 말했다. 엄격한 채식을 했을 때 단백질 결핍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물론 콩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도 있다. 하지만 콩을 과다 섭취했을 때 살이 더 찔 수도 있다. 콩 100g의 양은 종이컵 3분의 2 정도다. 열량은 390∼450Cal다. 밥 한 공기를 넘는 열량이다. 영양성분으로 구분하면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30g 조금 넘고, 지방이 20g 내외다. 지방 함량이 가장 낮지만, 열량은 전체의 40%로 가장 높다. 양이 적은데도 밥 한 공기보다 열량이 높고, 지방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음식인 셈. 강 교수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채식만 고집하기보다는 다른 음식을 통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한 원료는 채소지만 밀가루로 반죽해 기름을 둘러 볶거나 튀기면 열량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채소 자체 열량이 아니라 맛을 내기 위한 당과 기름이 체중을 늘리는 셈이다. 그보다는 식초를 음식 조리에 활용할 것을 강 교수는 권했다. 식초는 열량 자체가 없는 데다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걸 막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것. ● 좋지만 실천이 어려운 다이어트원시인들은 음식을 가공하지 않은 채로 먹었다. 곡물은 도정(搗精)하지 않았고, 향신료도 거의 뿌리지 않았다. 물 이외의 음료수는 사실상 없었다. 우유도 소나 양에서 짜자마자 먹었다. 이 원시인 식생활에서 따온 다이어트가 원시인 다이어트(팔레오 다이어트)다. 이 다이어트 추종자들은 인류가 수렵에서 농업으로 전환하면서 비만이 생겼다고 여긴다. 음식을 가공하고 더 넉넉히 먹기 시작한 게 비만의 근본 원인이란 것. 따라서 가공 과정이 추가될 때마다 비만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원시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비만의 해결법이라 주장한다. 도정된 곡식은 먹지 않는다. 당연히 쌀밥은 안 먹는다. 고기와 과일, 채소, 견과류를 주로 먹는다. 향신료는 아주 기초적인 것만 쓴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 자체로만 보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천”이라고 했다. 이 다이어트를 따르려면 하루 세 끼를 직접 해 먹어야 한다. 식재료 비용도 만만찮다. 따라서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느냐가 이 다이어트 성패의 관건이다. 최근에는 덴마크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주로 치즈,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계란, 토마토 등을 먹는다. 쌀과 같은 곡류는 덜 먹고, 설탕이나 소금도 잘 쓰지 않는다. 강 교수는 “덴마크가 낙농국인 점에 착안해 이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일종의 저탄수화물·고단백질 다이어트로 제대로만 하면 괜찮다”고 말했다. 이 또한 실천이 어려운 다이어트란 이야기다. ●활동량은 반드시 늘려야강 교수는 그 어떤 다이어트를 시도하든 운동을 하거나 활동량을 늘리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운동하자. 10분씩 6회로 나눠 운동하는 것과, 1시간 몰아서 운동하는 것 중 어느 쪽이 효과적일까. 강 교수는 “다이어트 목적이라면 양쪽의 효과는 같다. 다만 심폐기능을 개선하려면 운동 강도를 높이고 지속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시간 열심히 운동하고 나머지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따로 운동하지는 않지만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중 어느 쪽이 다이어트 효과가 클까. 강 교수는 “자투리 시간 활동량이 많은 쪽이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강 교수가 제시한 표를 참고해 하루 활동량을 계산해 보자. 이 표에는 활동 등급별로 체중 1kg당 1분에 소비되는 열량이 제시돼 있다. 여기에 체중과 활동시간을 곱하면 실제 소비되는 열량이 나온다. 가령 80kg 성인이 1시간 동안 ‘힘들여’ 청소(5등급)했다면 1시간 소비 열량은 336Cal(0.07×80×60)가 된다. 밥 한 공기 열량을 뚝딱 소비하는 것. 강 교수는 “눕기보다는 앉고, 앉기보다는 서 있고, 가만히 서 있기보다는 활동을 더 많이 할수록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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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간 편두통인 줄만 알았는데… 삼차신경통이었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13년 전이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민태 씨(61)는 어느 날 치과에서 치아 스케일링을 받았다.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병원 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이마 주변에 갑자기 ‘찌릿’ 통증이 나타났다. 평소 다니던 의원에 갔더니 별거 아니라며 약을 줬다. 그 약은 솔직히 효과가 없었다. 전기처럼 흐르는 통증을 없애주지 못했다. 치과 의사가 치료를 잘못해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치아 손상이나 출혈, 치통 등의 다른 치과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정 씨의 나이 40대 후반이었다. 아직 건강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을 때였다. 게다가 그 통증은 이후로도 간간이 나타나긴 했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정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했다. 정 씨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것은 ‘편두통’이었다. 편두통은 때로는 찌릿했고, 때로는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불쾌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다. 그사이에 통증은 더 심해졌고, 나타나는 주기도 짧아졌다. 또 한 가지. 없던 증세가 생겼다. 턱을 움직이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가령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찌릿 전기가 흐르는 두통이 시작됐다. 이러다 보니 항상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그 좋아하던 건조 오징어는 아예 입에 댈 수도 없게 됐다. 정 씨의 ‘삼차신경통’ 투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죽고 싶을 정도의 두통정 씨는 심한 편두통일 거라고만 생각했단다. 그러니 의사들을 만났을 때도 편두통을 주로 호소했다. 나름대로 통증을 다스리려는 요량으로 항상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편두통은 말하거나 음식을 씹을 때 특히 심했다. 턱이나 광대뼈 주변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턱만 움직이면 편두통이 시작됐다. 그러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의사를 만나 증세를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간신히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이마 통증으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러니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영업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전에만 근무하고 오후에는 주말농장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편두통을 고치기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다. 한의원, 동네 의원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약만 줬다.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조금 가뿐한 느낌이 들 뿐 증세는 그대로였다. 큰 대학병원에도 가 봤다. 대학병원에서 몇 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병원 의사는 “두통을 평생 친구처럼 여기면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 씨는 그 대학병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다시 한의원과 동네 의원으로 갔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풀이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울감도 커졌다. 가족들 또한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오죽하면 굿까지 벌였을까.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두통이 극심해져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일단 응급 처치를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다. 정 씨는 당일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다. 당시 외래 진료를 맡았던 의료진은 정 씨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입원 검사를 진행했다. ● 구분 어려운 질병, 삼차신경통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삼차신경통(三叉神經痛) 진단이 떨어졌다. 정 씨는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정 씨는 “편두통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다른 병이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로 13년 동안 통증을 달고 산 셈이다. 삼차신경통 환자를 많이 다루는 김명지 신경외과 교수가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했다. 삼차신경은 뇌에서 나와 이마, 광대, 턱으로 나뭇가지처럼 세 갈래로 갈라진(三叉) 신경조직의 이름이다. 삼차신경통은 혈관이 이 신경을 눌렀을 때 혹은 신경조직이 손상돼 과흥분을 유발했을 때 발생한다. 때로는 뇌종양이 삼차신경통을 유발하거나 외상으로 인해 삼차신경통이 생기기도 한다. 매년 인구 10만 명당 4, 5명이 이 병에 걸린다. 병 이름은 삼차신경조직이 아픈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1차신경통’이나 ‘2차신경통’이란 병은 따로 없다. 편두통과 달리 삼차신경통은 주로 신경이 갈라진 세 줄기를 따라 발생한다. 대체로 광대뼈와 턱 쪽에서 통증이 많이 발생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이마에 집중적으로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편두통과 혼동하기 쉽다. 정 씨가 딱 그런 사례다. 다만 통증의 패턴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정 씨처럼 턱을 움직일 때 두통이 나타났다면 편두통보다는 삼차신경통일 확률이 높다. 삼차신경통일 때 통증은 짧으면 1초, 길면 2분 정도까지 이어진다. 이때 통증은 발작적인 게 특징이다. 대체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거나, 예리한 것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다. 또한 양치질처럼 별로 자극이 강하지 않은 행동만으로도 과흥분이 일어나 통증이 유발되는 것도 특징이다. 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의 주기가 짧아진다. 이 또한 정 씨도 겪은 일이다. 방치한 기간이 너무 길면 수술로도 고치지 못할 수도 있다. 정 씨는 13년 전 처음 머리 통증을 느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어쩌면 그때 삼차신경통이 시작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2년 후 씹거나 말할 때 이마로 통증이 뻗었다고 했는데, 그때는 삼차신경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병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후 11년 동안의 고통은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뇌 수술 후 완치처음에는 약물치료부터 했다. 하지만 삼차신경통을 너무 오래 앓은 뒤라 증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김 교수는 정 씨와 상의한 후 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은 2∼3개월 동안 약물치료를 한 뒤 수술을 결정한다. 하지만 정 씨는 곧바로 수술하기로 한 사례”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초,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머리를 여는 수술이었다. 수술 도중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모니터링 센서를 얼굴에 부착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등 사전 준비에만 1시간 반이 걸렸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됐다. 귀 뒤쪽 피부를 4∼5cm 절개했다. 뼈가 드러나자 500원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이어 뇌막을 걷어내니 소뇌가 보였다. 이때부터는 극도로 예민한 작업이다. 삼차신경은 소뇌 안쪽에 있다. 따라서 소뇌를 한쪽으로 밀어내야 수술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소뇌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뇌신경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미세현미경을 통해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맨 마지막에 삼차신경을 누르고 있는 혈관을 떼어낸다. 혈관과 신경 사이에 특수 스펀지를 삽입한다. 이 스펀지는 혈관이 가하는 충격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신경이 과흥분하지 않도록 한다. 수술은 2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 “새 인생을 얻었다”수술을 받은 후 정 씨는 7일 동안 입원하며 치료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동안 먹어 왔던 항경련제와 통증약을 줄이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가 아팠지만 종전의 통증에 비하면 통증이라 부를 정도도 아니었다. 찌릿찌릿한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김 교수는 “어떤 환자들은 통증이 사라졌는데도 통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약을 끊지 못한다. 다행히 정 씨는 수술 후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다만 수술 주변 부위에 감각이 덜 느껴지는 후유증이 나타났다. 한 달 동안 두 차례 외래 진료를 받았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김 교수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완치를 선언한 것. 물론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사이에 수술 부위의 감각도 많이 돌아와서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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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용종, 암이 될지 안 될지 꼭 확인하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대장암은 50대 이후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50세 이후부터 대장 내시경 검사를 권한다.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4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의 대장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계는 대장 내시경 검사 권고 연령대를 45세까지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45세부터 대장 내시경 검사를 권장한다. 최창환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도 45세로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조만간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대장암 조기 발견을 돕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대장암으로 악화할 수 있는 대장용종을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암 발생률 자체를 낮출 수도 있다. 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대장암 발생률이 소폭 감소하는 추세다. 최 교수는 “대장용종을 일찍 발견해 제거한 덕분”이라고 했다. ● 대장용종, 모두 암이 된다?대장 점막이 안쪽으로 혹처럼 튀어나온 게 대장용종이다. 왜 생기는지,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유전적 요인, 술과 담배, 환경오염, 비만, 고지방 식품 섭취 등을 원인으로 추정할 뿐이다. 용종을 그냥 둔다고 해서 모두 암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발견된 용종은 떼어내는 게 원칙이다. 보통 용종을 선종, 과형성 용종, 염증성 용종으로 나누는데, 대장암으로 악화하는 것은 선종뿐이다. 이 용종만 따로 대장선종이라고도 부른다. 최 교수는 “검사 결과를 반드시 챙겨 용종 종류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시경 검사에서 선종이 발견됐다면 10년 후에 100명 중 5명꼴로 대장암이 생긴다. 선종이 크거나 개수가 많을수록, 혹은 가족력이 있을수록 대장암 발병률은 높아진다. 이 때문에 대장선종이 있다면 일반적 검사 권고안(50세 이상, 5년마다)과 다른 검사 주기를 따른다. 선종이 1, 2개만 발견됐고 크기도 1cm 미만이라면 평소와 다름없이 5년 후에 검사를 받으면 된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이라면 용종이 없는 사람과 위험도가 똑같다.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종이 3개 이상이라면 검사 주기는 3년으로 줄어든다. 선종이 10개를 넘는다면 매년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진행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선종은 대체로 천천히 자란다. 1cm까지 커지는 데 보통 2∼3년이 소요된다. 이후 선종이 대장암으로 악화하기까지 2∼5년이 걸린다. 만약 선종의 크기가 3cm를 넘어섰다면 이미 암이 진행되고 있을 확률이 높아 암 치료에 돌입한다. 최 교수는 “아직 국내에는 선종의 크기에 따른 검사 주기 지침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1㎝ 이상 커졌다면 최소한 3년마다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만성염증도 대장암 유발궤양성대장염, 크론병은 대표적인 대장 만성염증 질환이다. 최근 서양식 식습관이 일반화하고 비만 인구가 늘면서 국내 20대와 30대의 젊은 환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일단 발병하면 완치가 어렵다. 원인 또한 명확하지 않다. 유전적 문제, 장내 세균 문제, 면역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염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만성적 염증이 암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 염증은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기 위해 우리 몸이 반응하는 정상적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회성을 넘어 만성화할 때는 다르다. 조직의 파괴와 복구가 반복되면서 유전자(DNA) 염기가 손상될 수 있다. 암 발생의 첫 단계가 바로 DNA 염기 손상이다. 결국 만성염증이 암으로 이어지는 셈. 최 교수는 “만성적 염증 질환이 난치성이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좋은 약제가 많이 나와 염증 조절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이 병을 치료하면 대장암 발병률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만성 궤양성 대장염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때 대장암 발생률은 평균 2배 높아진다. 물론 당장 대장암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병을 진단받은 후 8년 이후부터 대장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았다면 8년째부터는 1∼3년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 대장용종-암 막는 음식 있다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이 2010년대 중반, 36종의 영양소와 9종의 식품을 기반으로 ‘식사염증지수(DII)’를 개발했다. 이 수치가 높은 식품일수록 만성적 염증을 더 유발한다. 2022년 발표된 또 다른 해외 연구에서는 식사염증지수가 높은 식품을 자주 먹을수록 대장암 외에도 전립샘암, 난소암, 폐암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식사염증지수가 낮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만성적 염증뿐 아니라 대장용종 발생 빈도와 대장암 발병률을 낮출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 좋을까. 일각에서 콩을 비롯해 특정 음식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콩이 나쁘지 않지만, 그런 특정 음식보다는 항염증 식품으로 알려진 것을 두루두루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녹색 채소, 과일, 전곡류, 올리브유, 생선 등 5가지를 대표적인 항염증 식품으로 꼽았다. 전곡류는 보리, 메밀, 통밀, 현미 등 겉을 적게 벗겨낸 곡물을 말한다. 반대로 염증을 유발하는 음식도 있다. 식사염증지수가 높은 식품들이다. 밀가루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 탄산과 가당 음료, 튀긴 음식, 적색육, 가공육 등 5종류가 대표적이다. 이런 음식들이 염증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염증성 물질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키는 방식 등으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이 밖에 비만도 암 발생에 큰 영향이 있다. 과체중 및 비만, 적은 신체 활동량과 더불어 적색육 및 가공육은 많이 섭취하고 식이섬유소 및 통곡물은 적게 섭취하는 식습관이 대장암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적절한 체중 조절 및 운동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장내 좋은 세균을 늘리자대장은 인체 여러 장기 중에서 미생물 종류나 수가 가장 많은 장기다. 장내 미생물은 음식의 소화, 영양 흡수, 면역 조절 등 여러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 상황이 대장암은 물론이고 다른 암의 발병과도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장암일 경우 발병 초기에 장내 미생물 변화가 감지된다. 좋은 미생물은 줄어들고 DNA를 손상시키는 등 암과 직결된 미생물이 늘어난다. 따라서 식사염증지수가 낮은 식품을 먹는 것 외에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대장암 발병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는 식단은 염증을 낮추고 대장 용종을 줄이는 식단과 대체로 비슷하다. 다만 식이섬유가 많이 든 식품을 추가로 많이 먹어 주는 게 좋다. 식이섬유를 섭취하면 장내 미생물이 이를 발효시켜 단쇄지방산이란 것을 만든다. 이 물질은 대장 점막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조절한다. 비만 위험도 줄여 준다. 반대로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대장암 발병률은 높아진다. 물론 암을 유발하는 세균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에 좋은 미생물을 많이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양질의 균인 프리바이오틱스를 먹는 게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프리바이오틱스는 채소와 과일 외에도 콩이나 통곡물류, 해조류 등에 풍부하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어 주면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고, 대장 점막도 보호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이런 프리바이오틱스의 변비나 설사 개선 외에 대장암 예방 효과는 동물실험 단계에서만 입증된 상태다. 대장암을 예방한다는 제품은 아직 출시된 게 없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다행히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만 아니라면 이런 프리바이오틱스가 부작용은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국내외에서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는 미생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머잖아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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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세 차례 전이… 모두 극복하고 ‘완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한 것은 2012년경이었다. 변비는 심해졌다. 얼굴도 살짝 부었다. 항상 피곤했다. 체중은 7kg이 빠졌다. 피부미용 스파숍을 운영하는 홍은희 씨(45)의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기적인 배앓이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2∼3주 과로하면 ‘픽’ 쓰러졌다. 결국 2013년 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이후로 여러 병원에 다녔다. 어느 병원에서는 맹장염인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게실염이라고 했다. 대장의 벽에 주머니(게실)가 생기고, 그 주머니에 변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 게실염이다. 게실염의 대표 증세가 변비다. 게실염 증세는 대장암 초기 증세와 비슷하지만, 대장암으로 악화하지는 않는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일시적으로 호전됐다. 하지만 곧 증세가 도지는 바람에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민간요법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괜히 따라했다가 큰 부작용에 맞닥뜨렸다. 구토와 설사를 거듭하다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 대장암 3기 발견, 치료 잘 끝나곧바로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컴퓨터단층(CT) 검사 결과 이번에도 게실염 진단이 나왔다. 안병규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대장암 의심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나이가 젊고, 가족력도 없었다. 게다가 복막염까지 생겨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일단 관찰하기로 했다. 약 7개월이 지났다. 2015년 11월 홍 씨는 같은 증세로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안 교수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그 순간 이 씨도 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이 맞았다. 안 교수는 대장암 판정을 내렸다. 대장은 결장, 맹장, 직장으로 크게 나뉜다. 결장은 세 부위 중에서 가장 긴데, 수분을 흡수하고 변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결장은 크게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 S자결장으로 돼 있다. 홍 씨는 상행결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이를 따로 ‘상행결장암’이라고도 부른다. 암은 림프절로 전이된 3기로 판명됐다. 안 교수가 곧바로 수술에 돌입했다. 대장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홍 씨에게 복막염이 있고 염증까지 심한 터라 수술의 난도가 높아졌다. 그래도 3시간 만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몸을 추스르고 한 달이 지났다.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항암 치료는 2016년 6월까지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진행됐다. 홍 씨는 “항암 치료까지 끝났으니 이제 암에서 해방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얼마 후 안 교수에게 암이 십이지장으로 전이됐다는 말을 들었다. ● 십이지장으로 1차 전이, 대수술사실 안 교수는 암의 전이를 어느 정도는 예측했다. 안 교수는 “수술 당시 홍 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복막염이 심했고, 염증이 확산하면서 암세포가 대장 밖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암은 십이지장으로 전이됐다. 다급하게 2차 암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 분야에서 이름이 높은 이경근 간담췌외과 교수가 투입됐다. 이 교수는 먼저 십이지장을 통째로 제거했다. 쓸개(담낭)와 담도를 잘라냈다. 췌장의 머리 부분도 절제했다. 이어 소장을 췌장 및 담도와 연결했다. 무려 10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었다. 안 교수는 “홍 씨의 암 투병 전 과정에서 이때가 최대 고비였다”고 회상했다. 안 교수는 “십이지장으로 암이 전이되면 수술도 크고 합병증도 클 수 있어 포기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홍 씨는 의사를 믿고 끝까지 따라와줬다”고 말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이어지는 2차 항암 치료만 잘 견디면 암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됐다. 문제가 생겼다. 항암 치료 부작용이 심해졌다. 항암 주사를 맞으면 토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홍 씨는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항암주사를 맞으면 몸이 널브러졌다”고 말했다. 결국 2차 항암 치료는 4회 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당시 고민이 꽤 컸다. 항암 치료를 하면 재발률을 낮출 수 있는데, 부작용이 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4회 만에 항암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는 암 환자의 5%도 되지 않을 만큼 드물다”고 말했다. ● 복벽 이어 간에까지 전이2차 항암 치료를 중단했지만, 다행히 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 완치를 기대하며 3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다.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짧았다. 9개월 후 배에서 뭔가 잡히는 것만 같았다. 홍 씨가 이 교수를 만났다. 복벽에 암이 전이됐다고 했다. 암은 약 3cm 정도의 크기였다. 그나마 암세포가 작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했다. 복강경을 통해 암세포와 인접한 부위를 떼어냈다. 수술 부위는 탁구공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수술 시간도 3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 치료가 그렇듯이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한다. 3차 항암 치료를 진행했다. 2차 항암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해 걱정이었지만, 이번에는 먹는 항암제였던 데다 거부 반응이 적어 12회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3차 항암 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11월, 절망적인 소식이 홍 씨에게 들려왔다. 암이 간으로 3차 전이됐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면, 암의 크기가 2∼3cm 정도로 작은 편이라는 점이었다. 12월, 이 교수가 간 부분절제술을 시행했다. 간의 오른쪽 부위에서 달걀 하나 크기만큼의 간을 잘라냈다. 수술에는 2시간이 소요됐다. 이어 4차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다시 항암제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 3회 시행한 끝에 항암 치료를 중단했다.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항암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지만 이후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5년이 지났다. 2023년 12월, 홍 씨에게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이제 비로소 암에서 해방됐다. ●“의사에 대한 절대적 신뢰 필요”홍 씨는 3년 사이에 세 번 암이 전이됐다. 이 교수는 “젊은 나이에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홍 씨가 적극적으로 투병했기에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재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전이된 터라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재발률이 높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래는 1년마다 추적 검사를 하지만 홍 씨는 이를 6개월 간격으로 줄였다. 안 교수와 이 교수 모두 “설령 재발한다 해도 조기에 발견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완치 비결을 물었다. 홍 씨는 주저하지 않고 ‘의사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꼽았다. 두 교수를 만나기 전에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확신을 준 의사는 없었다고 했다. 두 교수에게는 목숨을 맡겨도 든든했다는 것. 이 때문에 암이 십이지장으로 1차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담담했단다. 홍 씨는 “교수님이 고쳐주겠지,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수술은 당연히 잘될 거고 난 살 거라 믿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복벽으로 2차 전이됐다고 했을 때도 확신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으로 3차 전이됐을 때는 힘들었다. 홍 씨는 “투병을 계속하는 내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래도 교수님들을 믿고 따라갔다. 덕분에 완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요즘 안 교수와 이 교수에게 새로운 ‘미션’을 받고 수행 중이다. 바로 체중을 줄이는 것. 이를 위해 식사량을 줄이고 이틀에 한 번꼴로 1시간 정도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빨리 걷다가 뛰는 식으로 운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식사량을 줄이고 있다. 홍 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온몸이 아팠는데, 서서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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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 안 온다고 수면제? 잠 못 자는 원인부터 찾아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30대 후반 남성 A 씨는 뒤통수가 뻐근하고 두통이 심해 새벽에 눈을 떴다. 상당히 어지러웠다. 말도 어눌해졌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돼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급히 응급실로 갔다. 의료진은 급성 뇌경색 진단을 내렸다. 젊은 나이인 데다 술 담배도 안 하는지라 A 씨는 의아했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뇌전증·수면센터 센터장)는 원인을 찾기 위해 수면다원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수면장애가 뇌경색의 원인으로 판명됐다. 수면장애 하면 가장 먼저 불면증을 떠올린다. 불면증의 경우 수면제(수면유도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하지만 이 처방이 전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이 교수는 “불면증이 아닌, 다른 수면장애일 때는 수면제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 원인을 찾아, 그에 맞춰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하면 여러 수면장애를 살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중증질환 유발하는 수면무호흡증A 씨의 체중은 90kg에 육박했다. 체질량지수(BMI)는 30.1이었다. 고도비만에 가깝다. 코골이도 심하다고 했다. 의료진은 수면무호흡증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면다원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A 씨는 1시간에 평균 87회 호흡을 하지 않았다. 혈중산소포화도는 59%까지 떨어졌다. 각각 35회 이상이거나 75% 미만이라면 중증 수면무호흡증으로 규정한다. 젊은 뇌경색은 바로 이 수면무호흡증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교수는 “매일 새벽마다 산소가 부족해지니 저산소증이 생겼고, 그때마다 혈압이 불안정하게 상승했으며, 그 결과 뇌경색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0대 후반 여성 B 씨는 폐경 이후로 코를 심하게 곯았다. 남편이 불평을 늘어놨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중 목과 가슴 부위가 답답해지면서 속이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났다.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후 왼쪽 어깨와 팔이 뻐근하게 아파 동네 의원에 갔다. 의사는 협심증일 수 있으니 심장혈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 결과 관상동맥 2곳이 심하게 좁아져 있었다. B 씨 또한 수면다원검사에서 수면무호흡증이 확인됐다. 그는 1시간에 평균 78회 무호흡이 나타났고, 혈중산소포화도는 73%까지 떨어졌다. A 씨가 그랬듯 수면무호흡증이 B 씨의 협심증을 유발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양압기 치료를 받았다. 양압기는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의료 기기로, 잠을 잘 때 부착한다. 이 교수는 “두 사람 모두 양압기 치료와 함께 식이요법, 체중 조절 등을 병행한 덕분에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잠자다가 배우자를 때린다?60대 초반의 남성 C 씨는 평소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꿈을 많이 꾼다고도 했다.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편이었다. 손발을 허우적댈 때도 많았다. 심지어 가끔은 함께 자는 아내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단순한 불면증은 아닌 것 같았다. 검사 후 렘수면행동장애 진단이 떨어졌다. 렘수면은 하루에 3∼5회 반복된다. 이때 안구가 급속히 움직여서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부른다. 렘수면일 때의 뇌파는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렘수면일 때 꿈을 더 자주 꾸는 건 아니다. 자꾸 깨기 때문에 꿈을 더 많이 기억할 뿐이다. 대체로 새벽으로 갈수록 렘수면 횟수가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잠을 자면 대뇌는 꿈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뇌를 제어한다. 뇌가 아무런 기능을 못 하니 격렬한 꿈을 꾸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렘수면에 문제가 생기면 뇌가 제어받지 않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C 씨처럼 잠을 자면서 꿈꾸는 행동을 실제로 옮긴다. 이것이 렘수면행동장애다. 렘수면행동장애를 방치하면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악화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교수는 “고령이 되면서 뇌의 퇴행성 변화가 진행된 거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C 씨도 실제로 몇 년 후 파킨슨병에 걸렸다. 간혹 10대 후반에도 렘수면행동장애가 생긴다. 뇌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이 교수가 치료한 10대 후반 환자 중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렘수면행동장애의 원인을 찾다가 뇌간에서 종양을 발견한 것. 이 경우 종양을 치료해야 렘수면행동장애가 사라진다. 심한 잠꼬대도 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치료법은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너무 늦지 않게 병원을 찾는 게 좋다. ● 수면 리듬 깨지면 약도 안 들어10대 여학생 D 양은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일찍 자려고 잠을 청해도 정신만 또렷해질 뿐이었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어려워졌다. 학교 가는 게 큰 고역이 돼 버렸다. 이 때문에 수면제도 먹어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D 양의 어머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딸을 깨우느라 진이 다 빠졌다. 학교에 보내는 게 전쟁통이었다. 게다가 D 양은 주말이 되면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학교에서도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것 같은데 확인하기 어려워 속만 끓여야 했다. D 양이나 어머니 모두 불면증으로 여겼다. 이 교수를 만나고 난 후에야 수면일주기장애라는 사실을 알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수면 리듬이 깨지면서 수면 주기가 뒤로 밀린 것이다. 이 경우 수면제로는 해결할 수 없다. 수면 주기를 정상화하는 치료를 해야 한다. 집에서는 쉽지 않기에 5일 동안 입원해 치료했다. 이 교수는 D 양의 취침과 기상 시간을 모두 당겼다. 수면이 부족해지지 않고 일찍 잠들 수 있도록 멜라토닌 약물을 취침 2∼5시간 전에 투입했다. 원래 멜라토닌 호르몬은 잠이 들면 2∼3시간 만에 최고치에 이르고, 잠이 깰 때는 최저치로 떨어진다. 이 주기에 맞춰 인위적으로 멜라토닌을 공급한 것이다. 덕분에 D 양의 수면 주기는 어느 정도 정상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전 8시에 일어나고 새벽 한두 시에 자는 수면 리듬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학생들에서 이런 사례가 많다. 이를 피하려면 주중과 주말의 기상 시간 격차를 1시간 이내로 줄여야 한다. 잠을 보충한다며 주말에 몰아서 자면 수면 리듬은 더 망가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부터 안대나 선글라스를 착용해 빛을 차단하는 게 멜라토닌의 분비와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바람이나 물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약하게 틀어놓는 것도 좋다. ● 다리 떨림이 불면증 유발40대 후반 여성 E 씨도 꽤 오랫동안 밤잠을 설쳤다. E 씨 또한 불면증이라 생각하고는 수면제를 먹었다. 처음에는 효과를 봤다. 약을 먹을 때는 잠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항우울제까지 처방받았다.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후 E 씨는 밤잠을 자기 위해 약의 용량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불면증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하지불안증후군. 잠들 무렵, 다리를 심하게 떨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가렵거나 찌릿찌릿한 증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자주 깨는 병이다. 하지불안증후군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대체로 도파민 호르몬의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철분 결핍 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또는 다른 병이 원인이 돼 하지불안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원인을 해결해야 하지불안증후군은 개선된다. E 씨의 경우 혈액검사에서 철분 부족과 만성 빈혈이 확인됐다. 빈혈의 원인 질환을 파악하다 보니 자궁의 막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자궁내막증도 발견됐다. 이 교수는 “E 씨에게는 주사를 통해 철분을 보충했더니 하지불안증후군도 저절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하지불안증후군은 생각보다 빨리 치료할 수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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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식 식단에 스트레칭… 지방간-목디스크 모두 잡았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정상 간이라면 지방의 비율은 5%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나 폭식, 비만 등으로 지방이 과도하게 낄 수 있다. 지방간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간경화, 간암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가 조금 더 많다. 다만 그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술보다는 비만이 지방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또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성질환이 있으면 간에서 지방이 더 만들어지거나 덜 배출돼 지방간이 되기도 한다. 지방간은 50대 이후에 발병률이 특히 높지만 30, 40대에도 증가 곡선은 꽤 가파르다. 중년 언저리에 가장 주의해야 할 질병 중 하나란 뜻이다. 이처럼 중년을 위협하는 흔한 병은 또 있다. 바로 목디스크(경추추간판탈출증)다. 목디스크 환자도 증가 추세다. 의사라고 해서 이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다. 간경화, 간암 등 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성필수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42)도 지방간에 목디스크까지 경험했다. 그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 잦은 야식과 간식, 17kg 불어성 교수의 현재 체중은 76kg이다. 체질량지수(BMI)는 정상 수준이다. 하지만 몇 년 전에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심한 비만이었다. 그는 2016년 전공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연구에 몰입하느라 운동할 여유가 없었다. 쌓인 스트레스는 음식으로 풀었다. 간식에 야식까지 먹기 시작했다. 살이 찌기 시작했다. 전공의 때까지 76kg을 유지했던 체중이 85kg을 웃돌았다. 짧은 기간에 무려 9kg이 불어난 것. 서울성모병원으로 돌아와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새 일터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체중부터 줄이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체중은 93kg까지 불어났다. 바지의 허리둘레는 33인치에서 38인치로 늘었다. 고도 비만에 가까운 몸이 돼 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살찐 이유는 분명했다. 우선, 운동을 하지 못했다.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심적 여유도 없었다. 당시 그는 병원 근처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업무가 끝나면 극도로 피곤해 집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잤다. 잠을 늦게 잘 때는 편의점에 들러 야식거리를 사 갔다. 치킨, 순댓국과 같은 고열량 야식을 즐겨 먹었다. 낮에도 간식을 즐겼다. 오전 회진을 마치면 컵라면을 먹었다. 그러고도 입이 심심하면 빵과 같은 간식을 먹었다. 회식도 많아졌다. 술을 많이 마셨고, 안주도 그만큼 많이 먹었다.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성 교수는 간 전문가다. 간 건강이 걱정됐다. 스스로 검사해 봤다. 간 수치는 정상이었지만 지방간이 발견됐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아니었다.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운동 부족과 잦은 야식, 회식, 비만이 원인이었다. ● 식이요법으로 지방간 탈출그 무렵 피로감도 극심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마침 은평성모병원 개원 멤버로 2019년부터 1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하게 됐다. 근무 환경이 바뀌는 시점.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성 교수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지방간을 없애려면 비만부터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간식이나 야식 등 과도한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 대신 단백질이 많은 식품과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 운동도 충분히 해야 한다. 성 교수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식이요법에 돌입했다. 우선 식습관부터 바꿨다. 그전에는 주로 편의점 음식을 먹었다. 먹는 시간도 불규칙했다. 이를 바꿔 밥과 국, 여러 반찬을 조금씩 담은 한식을 먹기 시작했다. 가급적 하루 세 끼, 규칙적 식사를 유지했다. 식욕을 조절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참았다. 밥은 밥공기의 3분의 2만 먹었다. 반찬은 덜 먹었다. 야식은 완전히 끊었다. 회식 자리도 줄였다. 회식에 가더라도 덜 먹었다. 간식의 유혹은 컸다. 이를 없애기 위해 성 교수는 채소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간식이 생각나면 연구실 냉장고에 있는 샐러드를 꺼내 먹었다. 이때도 열량이 높은 마요네즈 드레싱 대신 열량이 낮은 오리엔털 드레싱을 뿌려 먹었다. 식단을 조절한 결과, 체중이 쑥 줄었다. 그러더니 2020년 서울성모병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80kg 미만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76kg까지 줄었다. ● 효과 유지하려면 운동 필수성 교수는 “음식 섭취를 줄인 덕분에 체중이 줄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체중을 줄였어도 지속적인 운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체중이 다시 증가한다는 것. 성 교수는 체중을 줄인 후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주 2, 3회 퇴근 후 아파트 주변을 30분씩 달렸다. 병원에서 작은 산을 넘으면 그의 집이 나온다. 그는 매일 등산하는 마음으로 이 산을 넘어 출퇴근했다. 하루 30분씩 등산하는 효과를 본 것. 그는 아파트 7층에 산다. 집에 갈 때는 계단을 이용한다. 병원에서도 외래 진료실까지 항상 계단으로 오른다. 성 교수는 “계단 오르기는 유산소 운동이면서, 동시에 하체 근육을 강화해 주는 근력 운동”이라며 적극 추천했다. 성 교수는 2년째 이 운동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1년 전부터 체력이 달리는 걸 느꼈다. 체력 보강을 위해 성 교수는 추가로 집 근처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 운동량을 늘렸다. 가급적 주 4회는 헬스클럽을 찾는다. 일단 헬스클럽에 가면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20분씩 배분해 한다. 성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에 신경 쓸 것을 강조했다. 성 교수는 “다이어트를 할 때 근육도 같이 빠진다. 만약 근육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근육까지 같이 빠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꾸준히 한 결과, 성 교수는 지방간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물론 혈압이나 혈당 모두 지극히 정상이다. ● 지방간 사라지니 목디스크 와약 4개월 전, 왼쪽 팔이 찌릿찌릿해졌다. 엄지손가락에서 시작해 팔 전체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성 교수는 그 순간 목디스크임을 짐작했다. 사실 선배 의사에게서 거북목을 한 채로 진료를 본다는 지적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진료실에서 환자는 늘 왼편에 있었다. 정면의 모니터를 응시하다 환자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아직 젊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더 찌릿찌릿해졌다. 살을 에는 것처럼 통증의 강도도 커졌다. 성 교수는 “너무 아파서 환자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성 교수는 외래 환자를 보던 중에 짬을 내 검사를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목디스크였다. 다행스럽게도, 수술하지 않아도 자세 교정만 하면 증세가 좋아질 것이란 소견이 나왔다. 성 교수는 목디스크 치료를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스트레칭을 했다. 요즘도 하루에 5회 이상, 10∼15분씩은 스트레칭을 한다. 4개월 동안 스트레칭을 했더니 통증과 찌릿찌릿함이 거의 사라졌다. 성 교수는 “지금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아주 가끔 약하게 증세가 나타날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완치되지는 않았다. 성 교수는 “스트레칭을 하면 그 다음 날에는 확실히 증세가 약해진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하지 않았거나 회식에서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증세가 심해진다”고 말했다. 결국 꾸준히 운동해야 목디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성 교수는 자주 하는 스트레칭 동작 3개를 추천했다. 틈날 때마다 자주 해 줄 것을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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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부 지옥’ 26년 만에 싹!… “이제야 사는 것 같아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6년 8월, 초등학교 체육 교사 손정원 씨(40)가 김정은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를 찾았다. 손 씨의 병명은 ‘중증 건선’. 10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치료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악화했다. 건선은 각질이 은백색 비늘 혹은 붉은색 발진 형태로 전신을 덮는 염증성 피부 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1∼2% 정도에서 나타난다. 구체적 원인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동성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각질세포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선은 단순히 피부 질환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고혈압과 같은 대사 질환이나 류머티즘을 동반할 수도 있다. 외모로 인해 대인 관계에도 큰 지장을 초래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건선=건성 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김 교수는 “요즘도 환자의 90%는 건성 피부가 심하면 건선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대체로 피부병이 빨갛고 각질이 돋아나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워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다른 질병”이라고 했다. ● 삶의 질 크게 떨어뜨리는 건선26년 전, 손 씨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손 씨는 풍진에 걸렸다. 얼굴과 몸에 발진이 나타났다. 치료를 받자, 발진은 곧 사라졌다. 하지만 얼마 후 좁쌀처럼 작은 발진들이 다시 올록볼록 튀어나왔다. 동네 의원에 갔더니 태열(胎熱)이라고 했다. 태열은 아토피피부염으로, 생후 6개월 미만의 영아들에게 주로 쓰는 병명이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 줬다.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얼굴에서 시작한 발진은 팔과 몸통 쪽으로 번져 나갔다. 그제야 이상하다 싶어서 다른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가 건선이라고 했다. 어린 손 씨는 물론 손 씨의 부모도 그때 건선이란 병을 처음 알았다. 사춘기 시절, 건선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손 씨의 경우 각질이 두꺼웠고, 각질이 하얀 딱지처럼 몸 여기저기를 덮었다. 친구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앞에서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이렇게 수군댔다. “같이 있기 찜찜하다” “옮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들의 대화 내용이 손 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픈 마음은 운동으로 달랬다. 다행히 운동하는 선배들은 손 씨의 피부를 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에도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막 체육 교사가 됐을 무렵이었다. 피부에 좋다는 한 온천에 갔다. 정말로 그 온천이 건선 치료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며칠은 해 봐야지’ 하는 생각에 며칠 후 다시 온천에 갔다. 업소 사장이 손 씨를 기억해 냈다. 그는 다른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며 문 닫기 30분 전에 오면 따로 받아주겠다고 했다. 정중한 말투였지만 씁쓸하게 느껴졌다. 손 씨는 그날 이후로 온천에 가지 않았다.● 여러 병원 다녔지만 개선 안 돼처음 건선 진단을 받았을 때 손 씨는 연고를 받았다. 그 연고를 바르고 나니 각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선 부위가 더 커졌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보인다. 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비타민D를 섞어 쓰는데, 당시에는 스테로이드제만 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두 성분을 하나로 합친 연고를 주로 쓴다. 손 씨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했다. 하지만 수월하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상경한 뒤 치료를 받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광선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로 받을 수 없었다. 광선치료는 자외선 중에서 특수 파장만 쏘아 건선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다 보니 3년 동안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 다녔으면서도,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결국 손 씨는 대학병원 치료를 중단했다. 이어 알로에나 목초액을 바르는 식의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알로에는 보습에는 도움이 되지만 병의 악화를 막을 순 없다. 목초액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손 씨의 피부 상태는 더 나빠졌다. 손 씨는 다시 고향에 있는 개인 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광선치료도 받았다. 연고도 발랐고, 처방해준 약도 먹었다. 하지만 건선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다. 서울에 있는 동네 의원을 다니다가 한양대병원으로 옮겼다. 이때 김 교수를 만났다. 이 무렵 건선은 얼굴은 물론 전신에 퍼져 있었다. 측정해 보니 체표면적의 35%를 건선이 덮고 있었다. 김 교수는 “중증도를 측정하는 평가에서 10점 이상이면 중증으로 보는데, 손 씨는 24점이 나왔다.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 신약 사용 후 증세 급격하게 호전김 교수는 먹는 약, 바르는 약, 광선치료를 병행했다. 치료 후에는 증세가 호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약효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약효가 떨어졌고, 건선 부위는 다시 넓어졌다. 객관적 수치도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중증도 점수가 40점을 넘어섰다. 건선은 체표면적의 45%까지 넓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인 셈. 이제 기존의 약물로는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대체할 약이 없는 건 아니었다. 중증 건선 환자에게 잘 듣는 신약이 있기는 했다. 생물학적 제제인데, 주사제 형태의 약물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1회 주사를 맞는 데 2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그러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7월, 중증 건선 환자에게도 ‘산정특례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산정특례제도는 암, 중증질환, 희귀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고가의 진료비를 줄여주는 제도다. 보통은 본인부담금의 10%만 낸다. 손 씨도 대상자로 선정됐다. 덕분에 20만 원으로 주사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눈에 띄게 건선 부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약도 얼마 후 효과가 좀 지체됐다. 2019년 4월, 생물학적 제제를 다른 걸로 바꿔 치료를 이어갔다. 2020년 12월에도 다시 약물을 바꿨다. 이런 식으로 신약 치료를 이어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건선이 다시 악화하지 않은 것이다. 꾸준히 증세가 개선됐고, 피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결과 중증도는 0.8점으로 줄었다. 건선이 체표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로 줄었다. 기적에 가까운 호전이었다. 김 교수는 “3개월마다 주사를 맞고, 바르는 약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상 완치에 가깝다”고 말했다. ● “환자 성실함이 완치 비결”건선에서 해방된 요즘, 손 씨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일단, 버스나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눈치 보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단다. 건선이 심할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아무리 더워도 소매가 짧은 옷은 입지 못했다. 팔을 모두 가리려면 땀에 찌들지언정 긴소매 옷만 입어야 했다. 이불도 깨끗해졌다. 손 씨는 “예전에는 잘 때 가려워서 나도 모르게 긁다 보니까 이불에 피가 묻곤 했는데, 그런 게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고통을 겪다가 완치에 이른 비결이 무엇일까. 김 교수는 “환자인 손 씨가 성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긴 시간을 꾸준히 치료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 게다가 산정특례 제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2주 이상 치료를 중단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치료를 한 번이라도 거르면 안 된다. 손 씨는 주변의 악조건을 이겨내고 이 조건을 충족시켰다. 손 씨는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모범이 될 만한 치료 사례로 꼽힌다. 김 교수는 다른 환자를 진료할 때 손 씨를 참석시켜 경험담을 들려주도록 했다. 대한건선학회 수기 공모전에서 그의 투병 수기는 대상으로 선정됐다. 학회는 그의 치료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홍보용으로 보급했다. 손 씨는 “조금이라도 나와 같은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손정원 씨 건선 투병일지1997년 건선 발병 사실 확인1997∼2001년 지방 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약 처방(초기 반짝 효과, 이후 악화하는 경향 반복)2001∼2003년 서울 A대학병원에서 건선 치료(큰 효과 보지 못하고 치료 중단) 2004∼2016년 지방 병원과 의원에서 간헐적 치료민간요법 치료도 시도했지만 효과 못 거둠2016년 8월 한양대병원 피부과 첫 치료건선 중증도 20점, 체표면의 35% 차지(먹는 약, 바르는 약, 광선치료 시작)2017년 1∼12월 기존 치료 반복, 효과 정체 보임(건선 중증도 40점 이상 체표면적 45% 이상)2017년 12월 생물학적 제제 신약 주사 치료 시작2019년 4월 생물학적 제제 1차 교체2020년 12월 생물학적 제제 2차 교체 2023년 12월(현재) 사실상 완치, 3개월마다 주사, 바르는 약 사용(건선 중증도 0.8점, 체표면적 1.0%로 급감)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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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황장애 미룰수록 치료 어려워져… “두려워 말고 맞서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여성 A 씨는 5층에 산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오른다. 언젠가부터 4층까지 오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점차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마비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아무도 내 시신을 찾지 못해 백골이 되어서야 발견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이후 A 씨는 웬만하면 외출을 삼갔다. 50대 남성 B 씨는 얼마 전에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바닥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사물의 경계가 뭉개졌다. 멀미와 구역질이 느껴졌다. 말도 어눌해진 것 같았다. B 씨는 뇌졸중(뇌중풍)이나 심장질환을 의심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후 증세가 천천히 사라지면서 B 씨는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A 씨와 B 씨가 보인 증세는 비슷하지만 병명은 다르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 씨는 공황장애다. B 씨는 불안증일 수도 있고, 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발작이 공황장애로 이어지진 않아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거나 어지럼증이 나타나며, 두통이 생기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모두 ‘발작’ 증세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반응 자체가 병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 몸이 취하는 정상적인 ‘전투태세’이기도 하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면 잘 관찰해야 한다. 모든 발작이 공황장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보자. 13개의 발작 증세 가운데 4개 이상이 나타나고, 10분 이내에 최고조에 이르며, 30분 이내에 사라지면 공황과 관련된 ‘공황발작’이다. 공황발작은 증세가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 응급실에 도착하면 사라질 때가 종종 있다. ‘공황발작 자가진단표’를 참고하면 된다. 다른 병이 원인이 되어 공황발작과 유사한 형태의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 최 교수는 “천식, 갑상샘(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경우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활성화해서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의 발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우울증도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겼을 때도 공황발작과 유사한 발작이 일어난다. 다만 이 경우에는 감염, 눈물이나 땀 마름, 기립성 저혈압 등이 동반한다. 따라서 공황발작인지, 다른 질병에 의한 발작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 ● 공황장애 핵심은 ‘가짜에 대한 두려움’공황발작이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건 아니다. 공황발작이 한 달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공황장애로 진단한다. 최 교수는 “발작도 문제지만, 발작이 생길까 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다가 결국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병”이라고 정의했다. 최 교수는 곰을 만난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 경우 심장이 뛰는 건 당연하다. 그것은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뇌의 정상적인 경고음이다. 하지만 곰을 만나지 않았고, 만날 가능성이 없는데도, 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 박동이 치솟는다면? 그것이 바로 공황발작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가짜’ 현실에 대해 경고음이 울린 것. 최 교수는 “이처럼 경고음 장치가 고장 나 두려움을 느끼는 게 공황장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두려움과 공포는 행동을 위축시키고 변화시킨다. 그 결과 일상생활을 어렵게 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공황발작을 여러 번 했다면 지하철 탑승을 꺼리게 되고, 나중에는 ‘지하철을 타면 죽어’라고 생각하며 공포에 빠진다. A 씨가 외출을 삼가고 자신을 방 안에 스스로 가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B 씨는 점차 증세가 개선됐고, 발작이 반복되지 않았기에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지 않은 것이다. 최 교수는 “공황장애 환자의 상당수가 광장공포증에 빠진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섣불리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발작이 일어나는 상황이 창피해서 그럴 수도 있고, 쓰러진 자신을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해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이들은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에 가도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맨 바깥 자리에만 앉는다. 이런 상태인지라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무척 어려워진다. ●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요소들한때 연예인들이 이 병에 많이 걸렸기에 ‘연예인 병’이라 여겨졌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병에 걸릴 수 있다. 다만 20대와 30대의 젊은층, 40대의 중년 초반에 많이 발병하는 편이다. 또 남성보다는 여성 환자가 많다. 왜 공황장애에 걸리는지, 공황발작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다만 공황발작이 일어나기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를 경험한 비율이 7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스트레스와 피로에 대한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 술은 공황장애 위험을 높인다. 알코올이 뇌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술 먹으면 목소리가 커지니까 뇌가 활발히 활동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경고음 장치가 고장 나기 쉬운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환경에서 잠을 못 자거나 초조한 순간, 스트레스가 커지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공황발작이 일어난다. 1회 발생하면 반복될 가능성은 커져서 공황장애로 악화할 확률이 높다. 다이어트약을 먹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이런 약물이 교감신경계를 지나치게 활성화하면서 발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약물을 끊었을 때 발작 증세가 사라진다면 불안증에 더 가깝다. 그래도 증세가 계속된다면 이미 공황장애로 악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신경안정제를 먹다가 끊을 때도 금단 증세와 함께 비슷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이럴 경우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음료를 자주, 많이 마실 때도 똑같은 이유로 공황발작이 생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집중력을 높이거나 살을 빼겠다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를 남용할 때도 뇌에 영향을 미쳐 공황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최 교수는 “불필요한 음식이나 약물은 무조건 피해야 공황장애의 발생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약물 치료가 일반적이다. 대체로 한두 달 이내에 효과가 나타난다. 다만 이후로도 6개월 정도는 용량을 낮춰서 약을 먹어야 한다. 최 교수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주는 약을 계속 먹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 증세가 심했다면 약 복용 기간은 1년 내외로 길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약물치료 외에 인지행동치료도 함께 한다. ‘가짜’에 대한 두려움이 병의 원인이란 점을 환자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A 씨에게도 이 치료가 꽤 도움이 됐다. A 씨는 계단 오를 때 발작이 일어나자, 그 후로 ‘계단 오르기=심장마비’라는 식으로 왜곡되게 인지했다. 급기야 외출을 포기했다. 최 교수는 A 씨에게 △평소에도 활동하면 심장 박동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 △계단 오를 때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 또 의료진이 함께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면서 A 씨가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치도록 했다. 이런 훈련을 통해 A 씨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황장애 탈출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 최 교수는 “공황장애 환자의 30%가 치료 후에 확실히 좋아진다. 나빠지는 확률은 10%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공황장애의 경우 경증이냐 중증이냐를 구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방치한 기간이 길면 치료 기간도 그만큼 길어진다는 점이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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