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정구대회-여자웅변대회… ‘시대의 빗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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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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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1923년 댕기머리 소녀 정구대회… 서울인구 10분의 1, 3만 관중 몰려

‘여자 운동 대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1923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1회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 장면. 동아일보DB
‘여자 운동 대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1923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1회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 장면. 동아일보DB
“여자의 활동을 요구하는 이때에, 특히 운동열이 왕성한 이때에 일차의 대회가 없었음은 우리의 수치다. 이런 때에 본사 주최의 이번 대회는 실로 절처(絶處)의 봉생(逢生).”

동아일보는 1923년 7월 5일자로 제1회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면서 대회 관중이 3만 명에 가까웠다고 소개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0만 명이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비상한 관심 속에 열기는 뜨거웠다.

당시는 국내에 여자 운동 대회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해괴한 짓을 벌인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가족을 제외한 남성 관객은 입장 불가’라는 조건을 내건 뒤에야 겨우 대회를 열 수 있었다.

이 대회 개최 목적은 흥행이 아니었다.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사회적 캠페인이었다. 동아일보는 대회 개막에 앞서 1923년 6월 14일자로 ‘운동의 권장은 여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방 안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 허약한 조선 여자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대회 개막일인 1923년 6월 30일자 사설을 통해선 ‘남자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과 직업의 기회 균등을 주장(한다)’이라고 밝혔다.

이 대회는 올해까지 9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단일 종목 대회가 바로 동아일보기 전국 정구(소프트테니스) 대회다. 동아일보기는 2006년에야 남자 선수 참가를 허용했다.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동아일보의 노력은 다방면으로 이어졌다.

“남녀는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습니다. 우리 조선의 여성이 남자의 지위와 대등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살림살이다운 살림살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1925년 3월 20일 서울 천도교 기념회관에서 열린 ‘전조선여자웅변대회’의 첫 연설 ‘남녀평등을 부르짖노라’의 한 대목이다. 연사는 평양에서 온 김화진 여사.

동아일보가 주최한 최초의 전조선여자웅변대회에는 전국에서 6개 단체와 6개 학교의 대표가 참가했다. 개막 1시간 전에 만원을 이뤘고 회관에 들어오지 못한 이만 3000명이 넘었다. 전례 없이 청중 투표로 결정된 우승자는 평양의 여자엡윗청년회(단체부), 평양의 정미유치사범과 대표(학생부)였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3월 19일자)은 “세계적 영향을 수(受)하야 여자의 언행을 일종 호기심으로 관망하던 보수적 사상은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대회 개최 취지를 밝혔다.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여성들의 운동도 자세히 보도하며 힘을 실었다. 1931년 5월에는 평양의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을밀대 위에 올라 파업을 벌였다는 내용을 이틀에 걸쳐 게재했고, 해녀들의 시위도 지면에 여러 차례 다뤘다.

황규인 kini@donga.com·조종엽 기자
#여자정구대회#여자웅변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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