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끓지만… 침묵의 재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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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선고 임박, 대중 수출 급감, 미국의 통상압박 등 대내외 악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요 경제단체들은 의견을 담은 성명서조차 내지 않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경영 타격을 우려하고 있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1심 선고가 임박했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이 하나같이 말을 아끼고 있다. 2013년에는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가 통상임금 논란에 대해 유감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지만 올해는 달랐다.

그나마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 등 완성차 5개사로 구성된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인건비 부담이 올라갈 경우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지만 성명을 낸 지 불과 6시간 만에 “생산거점 해외 이전 검토 관련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입장을 바꿨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협회 측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경총은 김영배 부회장이 5월 새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등 일자리 정책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가 역풍을 맞은 뒤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날 곧장 경총을 향해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재계 분위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기업의 의견을 반영한 경제단체 공식 성명은 실종 상태다. 특히 올 7월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국내 1호 상장기업인 경방이 주력 공장시설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중소·중견기업인들이 경영에 큰 부담을 토로했지만 경제단체들의 성명은 거의 없었다. 같은 달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법인세 인상을 발표했을 때도 경제단체들은 침묵했다. 공식 성명 대신 관계자의 코멘트로 갈음했다.

경제단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25일에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2008년 삼성특검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기소한 직후 5개 경제단체가 일제히 논평을 내고 “법적 절차를 마무리 짓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자”고 목소리를 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는 재계가 할 말은 했다”며 “사회의 주요 한 축인 재계가 분위기에 억눌려 의견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한상의가 그나마 기업과 정부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업의 애로사항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지역의 회원사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 정부가 주도하는 투자 활성화의 효과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고, 불편한 사항을 규제 완화로 풀어주려 한 것은 기업에게 많은 자극이 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런 소통마저 없어서 기업인들이 침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기업인의 청와대 만남이 밝은 분위기에서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업들이 사업 현장에서 필요한 요구사항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다. 행사 이후 반도체 인력 문제, 사회적 기업 활성화 외에 이렇다 할 후속 정책이 없다는 게 증거”라며 “기업과의 소통과 대화 자리를 늘리고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은택 기자
#재계#경제#기업#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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