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너로 내장 태우는 것 같아… 김정남 모습, 내 증상과 일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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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옴진리교 VX테러 생존자 인터뷰]
피부 아닌 옷에 묻어 목숨 건져… 땀 닦은 수건 접촉한 아내도 통증
오른손 마비돼 10년간 글씨 못써

“마치 배 속에 버너가 있어서 내장을 태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뜨거워, 뜨거워’라고 소리치며 온몸을 쥐어뜯었다.”

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만난 나가오카 히로유키(永岡弘行·79·사진) 씨는 22년 전 옴진리교 교단으로부터 맹독성 신경작용제 VX 테러를 당했을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VX로 사람을 살상한 경우는 김정남 암살과 1990년대 중반 옴진리교의 연쇄테러 외에는 거의 없다.

나가오카 씨는 옴진리교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가족모임을 만들고 탈퇴 운동을 펼치다 1995년 1월 테러를 당했다. 범인은 그가 연하장을 부치기 위해 우체통에서 고개를 숙일 때 주사기로 VX를 목 부근에 뿌렸다.

그는 “공격을 당한 줄도 몰랐다. 우체통에서 150m가량 떨어진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30분∼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동공이 축소되며 앞이 컴컴해졌고 불이 난 것처럼 온몸이 달아오르며 전신에 땀이 흘렀다. 그러고는 쓰러져 온몸을 긁다 의식을 잃었다.

며칠 후 의식을 찾았는데 난동을 부려서인지 의료진에 의해 온몸이 묶여 있었다. 몸이 성치 않았지만 옴진리교의 추가 습격을 우려해 급하게 퇴원했고, 통원 치료를 받으며 6개월가량 호텔을 전전했다. 이후에도 미행을 당해 이사를 거듭했다.

그는 “내 땀을 닦은 수건을 목에 걸었던 아내까지도 한동안 통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강한 독극물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의사나 경찰, 누구도 (독극물의) 정체를 몰랐고 재판 과정에서야 VX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진 것은 VX가 피부를 덮고 있던 옷에 묻은 뒤 기화하면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이송된 병원에서 6개월 전 옴진리교의 마쓰모토(松本) 시 사린 테러 때 대처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의사는 독극물의 정확한 종류를 모르는 상태에서 전력을 기울여 그를 살렸다. 그리고 3개월 후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가 터졌다.

후유증은 오래갔다. 오른손이 마비돼 글씨를 쓰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시력이 저하됐고 기억력도 감퇴했다. 지금도 반신에 저릿한 마비 증세가 있다. 그는 “습격당한 기억 때문에 지금도 누가 밀까 봐 지하철 플랫폼 앞줄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뉴스에서 김정남 테러 영상을 보면서 ‘이건 VX’라고 직감했다. 그는 “김정남이 공격을 당한 후 정상적으로 걸어가다 다리가 휘청하는 게 내 증상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옴진리교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VX 같은 것에 의지하는 김정은은 자멸할 것”이라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지금도 옴진리교 가족모임 회장을 맡아 부인, 아들과 함께 신자들을 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옴진리교가 이름만 바꿔 일본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들을 구할 때 도움을 준 사카모토 쓰쓰미(坂本堤) 변호사는 일가족이 옴진리교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생전에 ‘세상에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힘이 닿는 한 그 말을 지키고 싶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옴진리교#vx테러#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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