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원짜리 한국사문제집 훔친 30대 공시생 경찰에 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11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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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사문제집으로 풀어 보면 시험을 더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21일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A씨(32·무직)는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머리를 숙였다. 호남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다 공무원시험(공시·公試)을 치기로 마음먹고 회사를 나온 지 3년째. 그러나 진전은 별로 없었다.

5일 오전 A 씨는 평소 주말에 공시 공부를 하던 광주 북구 모 대학 단과대 독서실 겸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인근 책상에 9급 한국사문제집이 놓여 있는 것을 봤다. 역시 공시생인 이 대학 졸업생 B씨(27)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였다. A 씨는 문제집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B 씨는 이날 도서관 문에 ‘책을 돌려달라’는 호소문을 붙였다. 일주일 뒤인 12일 A 씨는그 도서관 앞에서 자신이 훔친 문제집을 들고 무작정 B 씨를 기다렸다. 이 문제집이 누구 것인지는 몰랐지만 표지에 적힌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보면 주인이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시간여 동안 서 있던 A 씨에게 B 씨가 다가갔다. “제 책인데요.” “미안합니다. 돌려주려 왔습니다.”

A 씨의 붉어진 얼굴을 본 B 씨는 “책을 도난당했다고 112에 신고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A 씨는 바로 “그럼 제가 자수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A 씨를 21일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3년 째 공시 준비로 심신이 지친 A 씨가 우발적으로 책을 훔쳤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주인에게 반환하고 자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는 평소 밥값을 줄이려고 집에서 공부하다 주말 오전에는 이 대학 근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뒤 오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B 씨도 경찰에 “처음에는 얄미운 마음에 신고를 했지만 지금은 A 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씨가 초범이고 자수한 것을 참작해 즉결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즉결심판은 공무원을 꿈꾸는 A 씨에게 전과를 남기지 않는 처벌 방식이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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