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배달 보증제’에 시달리는 알바생에 따뜻한 인사말이라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1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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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기자의 을(乙)과 함께 사는 법]

저는 미혼입니다. 국가적 재난인 저출산에 이바지 하고 있다는 것에 심히 자괴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만, 결혼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미혼이라서 휴일에 혼자 밥을 먹으려다 배운 교훈 하나를 독자들께 소개드리고 싶어 노트북을 켰습니다.

얼마 전 폭설이 내린 휴일. 배달음식을 시켰습니다. 눈이 워낙 많이 와서 밖에 나가서 먹기도 귀찮고, 요즘은 1인 배달음식도 많이 있어서 편리하기도 합니다. 메뉴를 고른 뒤 전화로 주문하고 TV를 보면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배달이 오지 않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알바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가던 중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났습니다. 최대한 빨리 갖다 드리겠습니다.”

“아 정말요? 많이 다친 건 아니고요?”

“예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고, 사고 수습을 하느라 배달이 늦어졌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렇다면 그냥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아닙니다. 다른 사원이 있으니 꼭 배달해드리겠습니다.”

눈길에도 빨리 배달하려다 사고가 난 것 같아 너무 미안했습니다. 배달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배달을 꼭 해주겠다는 것을 거절하기도 어렵더라고요. 배가 많이 고팠지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30분이 더 지나도 배달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아직 출발을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사고 수습이 더 늦어졌다는 이유였습니다. 순간 짜증이 좀 났지만, 그래도 화를 내면 안 된단 생각에 차분히 얘기했습니다.

“혹시 배달이 불가능하면 말씀해 주셔요. 괜찮아요.”

“아닙니다. 바로 출발 가능합니다. 10분만 기다려주세요.”

다행히 정말로 10분 뒤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한 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청년이 헬멧도 벗지 않은 채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저를 보자마자 고개를 연방 숙였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 청년의 사과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많이 다치셨나요?”

“얘 제가 다친 건 아니고, 같이 일하는 친구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렇군요. 얼마죠?”

결제를 하고 음식을 받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저는 평소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배달사원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은 아닙니다. 아마 많은 분이 저와 비슷하실 겁니다. 음식을 받고, 현금이 있으면 현금을, 현금이 없으면 카드를 주고, 거스름돈이나 영수증을 받은 뒤 대충 인사하고 문을 닫을 때가 많지요. 그런데 그날은 왠지 그 업체의 사원들이 저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많이 미끄럽다던데, 눈길 조심하세요.”

그런데 이 배달사원이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는 표정인지, 아니면 쓸 데 없는 참견을 한다는 것인지, 귀찮다는 것인지 표정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놀란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예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맛있게 드세요.”

그 친구가 제 말을 고마워했는지, 아니면 불편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지랖이 넓은 행동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말을 건넨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뿌듯했다거나 제가 무척 착한 일을 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을 시켜먹을 때 아주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정겹게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는 겁니다.

배달업계에는 ‘30분 배달제’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패스트푸드나 프랜차이즈가 30분 안에 음식을 배달해주겠다는 서비스로 경쟁하면서 많은 알바생이 다쳐야 했습니다. 한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이런 관행이 여전히 많다는 제보가 많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한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알바를 하던 20대 청년이 배달을 하다가 택시에 부딪혀 숨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2㎞가 넘는 거리를 30분 안에 배달하려고 어쩔 수 없이 과속을 했다고 합니다.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30분 배달 강요 등을 근절하기 위한 ‘알바존중법’을 발의 했습니다. 물론 법도 중요합니다. 30분 배달제처럼 알바생을 옥죄는 제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사업주 역시 이를 강요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 못지않게 소비자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배려와 마음도 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배달이 늦어져서 미안해하는 배달사원을 만난다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짜증보다는, 괜찮다는 인사나 늦어도 과속은 하지 말라는 격려를 한 번씩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특히 요즘처럼 춥고 눈이 종종 올 때는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런 마음과 행동 하나하가 을(乙)과 함께 사는 첫 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성열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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