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용절벽 청년층 “생계비 발등의 불”… 고금리 대출 늪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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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부채 시달리는 2030]저축은행-대부업체 고금리 대출자 40% 이상이 20, 30대

《 인천에 사는 박모 씨(34·여)는 2015년 말 대부업체에서 약 700만 원을 빌렸다. 식당 일자리를 잃는 바람에 생활비가 급하게 필요했다. 신용등급 7등급이던 그는 당시 대부업법이 허용한 최고 금리인 34.9%를 적용받았다. 지난해 3월 법 개정으로 최고 금리가 27.9%로 내렸지만 박 씨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기존 대출자에겐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연이자 34.9%로 계산한 원리금 약 25만 원을 매달 갚고 있다. 박 씨는 “일자리를 겨우 구했지만 100만 원 정도인 월급으로는 이자조차 못 낼 때가 있다”고 말했다. 》

길어진 경기 침체에 높은 이자 부담까지 짊어진 20, 30대 청년층과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박 씨처럼 법 개정 이전의 높은 금리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받은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4조 원이 넘는다. 이자가 급속도로 불어나는 고금리 대출은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을 부른다.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저축은행·대부업체의 특성상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고금리 폭탄’에 휘청거리는 20, 30대

8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상위 10곳에서 현행 법정 상한선인 연 27.9%를 초과한 금리를 내고 있는 20, 30대의 신용대출은 저축은행이 16만2211건, 대부업체는 29만8270건이었다. 저축은행 최고 금리 초과 대출 전체(36만 건)의 44.8%, 대부업체 대출 전체(74만 건)의 40.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처럼 20, 30대의 고금리 대출이 많은 것은 불황에 최악의 실업난까지 겹치면서 청년층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소득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통계청 등이 내놓은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5년 20대 가구의 평균 소득은 3282만 원으로 전년(3406만 원)보다 3.6% 감소했다. 30대 가구도 5148만 원으로 전년보다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20, 30대 가구가 저축은행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새 3배로 치솟았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20, 30대가 과소비로 대부업 대출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조사를 해보면 생계형 대출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대부업 이용자 4800여 명을 대상으로 ‘대부업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높은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건 한국 경제의 ‘허리’를 책임지는 40, 50대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이모 씨(42)는 2015년 봄 사업 부진으로 생활비가 부족해 대부업체에서 800만 원을 연리 34.9%, 5년 만기 조건으로 빌렸다. 지금도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약 30만 원씩 갚고 있다. 그는 “금리가 높은 줄은 알았지만 외벌이로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화장품 수출 관련 일을 하는 그는 “올해 중국 수출 전망이 어둡다던데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 근본적 대책 필요


문제는 고금리 대출의 이자가 급속도로 불어나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경남 양산에서 컨베이어벨트 제조업체 생산직으로 일하는 김모 씨(43)는 월급이 자주 밀리면서 대출로 생계비를 충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은행, 상호금융에서 돈을 빌리다 나중에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연리 34%로 돈을 빌렸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너무 커지자 김 씨는 5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돌려 막기 시작했다. 결국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을 통해 이자를 감면받았다.

생활고를 겪으며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 미등록 불법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불법 고금리 대출과 관련해 금감원에 접수된 신고사례만 1016건에 이른다. 신고 내용 중에는 선이자를 떼는 등 연 3000%가 넘는 살인적 금리에 시달린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취약계층이 고금리 대출에 내몰리지 않도록 종합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금리 대출을 싼 이자로 갈아탈 수 있는 ‘바꿔드림론’ 등 정책금융 상품도 적극 활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jaj@donga.com·정임수 기자
#고용#고금리#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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