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하고 30억 원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검찰에 구속된 사무장 이모 씨(53) 사건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개인회생 신청자를 둘러싸고 ‘브로커-대부알선업체-변호사’의 검은 3각 공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개인회생 브로커’였다.
4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 조재빈) 등에 따르면 이 씨 등 회생 브로커들은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등을 끌어모으기 위해 “돈 없이도 회생 절차가 가능하다”고 인터넷이나 전단에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수입의 10%가량을 광고비로 지출할 정도로 광고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개인회생은 건당 평균 수입이 100만∼150만 원의 소액 사건이지만, 개인회생 신청자가 늘면서 쏠쏠한 정도를 뛰어넘는 핵심 수입원이 된 것이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곧 ‘돈’이었고, 사업이 커지면서 이 씨가 데리고 있는 부하 사무장만 10명이 넘었다.
현행법상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는 변호인이나 당사자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씨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명의를 빌려 회생 업무를 직접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법무법인에 자신의 사무실을 뒀고, 고객도 이곳에서 맞았다. 그 대신 변호사에게는 수수료 명목으로 매달 300만 원 안팎을 월급처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씨는 변호사 명의를 1년 정도 만에 바꾸는 등 변호사 이름을 여러 개 사용했다. 이름을 빌릴 수 있는 변호사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매달 수백만 원의 고정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에 명의 대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무실 운영비로 사용할 만큼 수입이 쏠쏠해 위법인 줄 알면서도 명의를 빌려주겠다는 변호사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부분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대출이 어려운 개인회생 신청자들에게 특정한 대부알선업체를 소개했다. 업체는 먹잇감을 기다렸다는 듯 신청자들에게 10%가 넘는 선이자를 떼고 회생 절차에 필요한 비용을 대출해 줬다. 대부분 120만∼200만 원 선의 소액대출이라 큰 부담이 없었고, 이 씨 등 사무장들이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에 대출은 쉽게 이뤄졌다. 회생 신청자들이 돈을 갚지 않으면 이 씨도 법원의 회생 절차를 중단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회생 신청자가 지급한 비용의 30%가량이 브로커에게 고스란히 넘어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히 대부알선업체 F사 등이 30∼40건의 회생 신청 일감을 소개해주고 이 씨에게 수수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씨는 “추가 수수료를 받지 않고 대출해 줄 곳이 널려 있다”며 업체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대부업체와의 관계에서도 ‘갑’ 행세를 한 셈이다.
검찰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브로커들이 진행한 개인회생의 성공률이 정상적인 회생 사건보다 많게는 30% 가까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씨를 기소한 뒤 이 씨에게 변호사 명의를 대여해 준 변호사들을 전원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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