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건대 집단폐렴 사태로 본 ‘감염병 무방비 대학 실험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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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실험실 사료 곰팡이, 배관 타고 폐렴 퍼뜨려
방역당국 “사료 부패 실험이 발단”… 수도권 12개大 운영실태 조사 결과
미생물 다루면서 안전불감증 심각

서울 건국대에서 지난달 19일 처음 발생한 집단 폐렴 사태의 원인을 조사 중인 방역당국이 실험실 안에 있던 썩은 동물사료에서 발생한 곰팡이균을 발병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감염 경로는 곰팡이균이 건물의 공기 배관(공조 시스템)을 통해 건물 전체에 퍼지면서 집단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8일 “최초 발병을 일으킨 곳으로 추정되는 동물생명과학대 실험실에 대해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실험실에서 동물사료 부패 실험을 진행했고, 여기서 곰팡이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실험실 안전수칙에는 동물사료를 격리된 공간에서 부패시켜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 관계자는 또 “동물사료에서 자란 곰팡이균이 일정 농도 이상이 되자 건물의 공기 배관을 타고 건물 전체에 퍼져 집단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건국대 사태로 대학 실험실이 감염병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실 안전 관련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을 다루는 대학 실험실에서는 미생물이 섞인 폐기물의 뚜껑을 열어 놔 공기 중에 퍼질 위험을 높인다거나, 세균 전용 실험 냉장고에 음식물을 보관해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등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어긴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본보가 수도권 12개 대학에서 미생물 관련 실험실에 근무하고 있거나 졸업한 연구원 20명을 취재한 결과 현장에서는 평소에도 ‘안전불감증’이 심각해 이번 건국대 사태가 예견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건국대 대학원생은 “‘괜찮겠지’ 하는 인식이 팽배하고 실험에서 생기는 문제도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실험실 안전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성균관대 대학원생은 “우리 학교의 경우 실험실 안전교육이 온라인 강의로 이뤄져 형식적이 되기 싶다”며 “안전교육 세미나도 열리지만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연구원들은 “이번 건국대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다루는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가 외국처럼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건대 집단폐렴#감염병#대학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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