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직원들을 ‘긍정적 중독’에 빠뜨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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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성격심리학: 매슬로의 욕구이론과 구현 사례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기업을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런 견해가 기업을 정의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가 볼 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영리가 아니라 고객에게 있다. 고객의 욕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봉사할 수 있는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드러커는 “경영은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드러커의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영심리학자가 있다. 바로 욕구 이론으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매슬로다. 매슬로의 경영심리학에서 핵심은 ‘욕구의 위계’라는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욕구가 충족되면 곧바로 줄거나 소멸하는 욕구, 즉 결핍욕구가 있다. 이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다. 이러한 ‘결핍욕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성장욕구다. 매슬로는 자기실현의 욕구를 대표적인 성장욕구로 꼽았다. 성장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바로 ‘긍정적 중독’이다. 자기실현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조직과의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 유사이키안 매니지먼트

매슬로는 ‘긍정적 중독’에 빠져 조직과의 시너지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조직을 ‘유사이키아(Eupsychia)’라 불렀다. 유사이키아란 매슬로가 만들어 낸 신조어다. 그리스어에서 ‘좋은’ ‘훌륭한’의 뜻을 가진 단어 ‘유(eu)’와 ‘영혼’ ‘정신’을 의미하는 ‘사이키(psyche·그리스어 발음 ‘프시케’)’를 합쳐 만들었다. 매슬로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즉 자기실현을 한 사람들 1000명이 속세와 단절된 외딴섬에서 고유하게 만들어 낸 문화적 공동체이자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회 혹은 조직’을 상상해 냈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깨어 있는 경영을 하고자 하는 최고경영자(CEO)라면 이런 가상의 정신적 공동체 모습에 대해 떠올려 봐야 한다”며 “그런 뒤에 현재 자신이 속한 조직과 비교해 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매슬로가 상상했던 유사이키아 조직을 실제 현실에서 구현해 낸 기업이 있을까? 랠프 라르센이 CEO로 재직하던 시기(1989∼2002)의 존슨앤드존슨이 매슬로가 제시한 유사이키아 조직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종합제약업체로 의약품 및 의료기기, 건강관리 제품을 생산하는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다우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우량 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는 1999년과 2000년에 연속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하는 ‘미국의 존경받는 기업’ 1위에 올랐다. 사실 라르센이 처음 CEO가 됐을 때, 존슨앤드존슨은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헬스케어 비용의 상승 가능성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고, 존슨앤드존슨은 상당한 수준의 비용 절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쟁사에 비해 내부 집행 비용에 약 30% 수준의 거품이 끼어 있다는 자체 진단 평가도 나왔다. 일반적인 기업이었다면, 직원들에게 비용 절감 목표와 구체적 실행 절차를 제시하며, 흔한 말로 ‘쥐어짰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라르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쥐어짜는 방식은 직원들이 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하도록 이끌기보다 방어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대응하도록 만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라르센은 존슨앤드존슨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헬스케어 비용의 지속적 상승은 존슨앤드존슨 내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헬스케어 체계를 정립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헬스케어 시스템을 창출함으로써 인명을 구하는 데 기여하자는 ‘핵심 가치’를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업의 최하위 단위까지 자치적 경영권을 부여했다. 그 결과 존슨앤드존슨의 직원들은 위기 상황에서 방어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이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조화된 방식으로 활동했다. 결국 라르센의 리더십에 따라 존슨앤드존슨은 5년여에 걸쳐 연간 무려 2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성공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 애그리던트, 그리고 깨어 있는 경영

매슬로는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사람을 ‘애그리던트(aggridant)’고 불렀다. 유사이키아 조직이 조직 구성원과 문화 차원에서의 ‘경영심리학적 이상향’이라면, 애그리던트는 매슬로가 상정한 이상적 리더를 뜻한다.

기업가 중 애그리던트의 전형을 뽑자면 CNN의 창립자인 테드 터너를 들 수 있다. 터너는 해군 출신이자 사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군대식’으로 사업가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물론 그는 저항했고 서양의 고전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와 불화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꿨지만 제대로 공부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경영난을 이유로 권총 자살을 하자, 터너 역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행동파적 성격’은 그를 거침없는 사업가로 변모시켰고, 나중에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뉴스채널 CNN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뉴스 사업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번 그는, 얼마 후 1조 원을 유엔에 기부한다. 유엔 내 한 협회가 수여하는 상을 받으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순식간에 내린 결정이었다. 터너는 ‘오직 돈에만 가치를 뒀던 삶’ 때문에 아버지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라 생각했다. 최고의 부자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불행해지는데, 어차피 세계 최고의 부자는 단 한 명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너는 48억 달러의 재산을 지닌 부자였지만 한국으로 치면 소나타 정도의 평범한 차를 직접 몰고 다녔고,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을 정도로 돈을 아꼈다. 그러나 소중한 1조 원의 돈을 기부하는 형태로 세계 최고의 부자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마음의 부를 이뤄 냈다.

‘뛰어난 행동력’과 ‘이타주의’로 무장한 애그리던트가 유사이키아 조직을 이끌게 된다면 그 기업은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깨어 있는 경영’의 원칙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시너지가 높은 조직을 구성하고 이를 위해 직원의 자아실현 욕구에 초점을 맞추라. 둘째,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심리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검진하라. 셋째,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의 ‘유사이키아’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조직을 진단하라.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lip@korea.ac.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 본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88호(11월 1일 자)에 게재돼 있습니다.
#dbr#ceo#성격심리학#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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