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성열]쪼개기 제한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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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 직원 권모 씨(당시 25세)가 이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8월 계약직 인턴으로 입사한 권 씨는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2년을 일했다. 중앙회 측도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권 씨의 계약기간은 2개월 또는 6개월로 들쑥날쑥했다. 기존 계약이 끝나면 다시 근로계약서를 쓰는 일이 일곱 번이나 이어졌다.

그래도 권 씨는 정규직 전환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입사 2년이 이틀 남은 지난해 8월 25일. 권 씨가 받은 건 정규직 발령 통보가 아니라 계약해지 문서였다.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사실상 해고 통보였던 것.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걸기 위해 성희롱까지 참아냈던 권 씨는 “노력하면 다 될 거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능했다”고 유서에 적었다.

권 씨의 자살로 ‘쪼개기 계약’의 폐단이 널리 알려졌다. 쪼개기 계약이란 비정규직을 고용하면서 몇 달 또는 며칠씩 나눠 여러 차례에 걸쳐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법상 비정규직이 같은 업무를 2년 이상 할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계약기간을 잘게 쪼개 2년을 채우지 못하도록 해서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꼼수’인 셈이다.

쪼개기 계약의 폐해는 특히 권 씨와 같은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다. 근로계약 시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쪼개기 계약도 감수한다. 일부 사용자들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를 던지며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나 쪼개기 계약을 맺어가면서 근무기간 2년을 채워 정규직이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폐단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쪼개기 계약을 최대 3회로 제한하는 조항을 노동개혁 법안에 넣어 국회에 제출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관련 판정도 엄격해졌다. 중노위는 올해 8월 현대자동차에서 13∼60일씩 16차례나 계약을 맺고 촉탁 계약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박점화 씨(25)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개혁 노사정(勞使政) 협상에서도 별다른 논란이 없었을 만큼 쪼개기 계약을 제한하자는 사회적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돼 있다.

문제는 ‘쪼개기 제한법’의 시행 여부다. 현재 야당은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년→4년)에 반대하며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쪼개기 제한과 고용기간 연장 모두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 소관이다. 야당이 고용기간 연장 반대를 이유로 비정규직법 처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쪼개기 제한법도 시행이 불가능하다. 두 사안이 패키지로 같이 묶여 있는 탓이다.

그렇다면 쪼개기 제한법이라도 따로 떼어내 처리하는 것은 어떨까. 청년이 원하고, 노사정이 합의한 법안을 그대로 폐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자리를 갈망하는 청년들의 꿈이 쪼개기 계약으로 쪼개지는 일은 더이상 없도록, 정치권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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