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여친과 그 친구 강간죄로 법정구속된 남자 결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2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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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와도 성관계를 한 대가는 참혹했다. 두 여인은 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을 못 참고 남자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성범죄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남자가 여자에게 합의를 부탁했지만 “네 장기를 팔아서라도 10억 원을 가져오라”는 모멸 찬 대답만 돌아왔다. 난치병인 강직성 척추염을 앓던 홀어머니는 생계를 포기하고 아들의 구명활동에 전념했다. 남자는 8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2년 7개월 동안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지금부터 1~3심 법원 판결문과 남자 측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기연의 박동현 변호사(35·사법연수원 41기) 설명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사건 1. 옛 여자친구의 친구와…

최모 씨는 군대 휴가를 나온 2012년 12월 1일 오후 11시경 A 씨(여·당시 19세) 등 지인 5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A 양은 최 씨가 입대 전 3개월 정도 사귄 B 씨의 친구였는데, 이전부터 최 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최 씨는 입대 후 B 씨와 자연스레 헤어졌다. 이후 A 씨가 최 씨에게 “외박을 나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당부해 성사된 자리였다. 최 씨는 새벽 5시쯤 A 씨를 소형차에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다가 인근 골목길에 멈춘 뒤 차량 안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성관계 직후 A 씨는 “우리 오빠 군대에서 많이 외로웠쩌여”라며 양 팔로 최 씨를 끌어안았다. 둘은 서로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사건 2. 우연히 만난 옛 여자친구와…

2013년 1월 14일 새벽 2시경 휴가를 나온 최 씨는 집 근처에서 우연히 옛 여자친구 B 씨를 만났다. 입대하면서 자연스레 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상대였다. 둘은 반가운 마음에 인근 호프집으로 가 술을 마셨다. 새벽녘이 되자 B 씨는 “지금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혼난다. 아버지가 출근한 다음에 집에 들어가겠다”며 최 씨에게 인근 모텔로 가자고 했다. 둘은 모텔에 주차한 차 안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입맞춤을 하다가 오전 8시가 돼서야 모텔로 들어갔다.

최 씨는 모텔에서 B 씨와 맥주를 나눠 마시다가 “이제 집에 가겠다”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B 씨가 나가지 말라며 붙잡았다. 다시 돌아온 최 씨는 B 씨에게 키스를 하며 성관계를 시도했다. B 씨가 저항했지만 최 씨는 내숭을 떠는 거라 가볍게 여기고 성행위를 이어갔다. 최 씨는 B 씨가 “오빠! 이건 강간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바로 성행위를 중단하고 사과했다. 이후 B 씨는 한참 동안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최 씨에게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며 약속 장소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둘은 입실 후 네 시간이 지나 낮 12시경 모텔을 나왔고, B 씨는 최 씨 차량을 타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두 여자 강간죄로 법정구속

최 씨는 B 씨를 만난 다음날 강간죄로 고소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B 씨 뿐 아니라 한달쯤 전 성관계를 가졌던 A 씨도 함께 최 씨를 경찰서에 고소했다고 했다. B 씨가 사건 당일 밤 A 씨와 통화하며 “최 씨에게 강간당했다”며 성관계 사실을 털어놓자, 배신감을 느낀 A 씨도 함께 고소한 것이다. 최 씨는 친구 사이인 여성 둘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책감에 뒤늦게 사과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씨는 두 여인을 각각 찾아가 합의를 시도했다. A 씨는 일시금 800만 원에 매달 200만 원씩 달라고 요구했다. 카드론 대출로 급히 마련한 1000만 원이 전부였던 최 씨에겐 무리한 요구였다. B 씨는 10억 원을 달라며, 돈이 없으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마련하라고 소리쳤다. 사실상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사였다.

난치병인 강직성 척추염을 앓으면서 혼자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마트 일을 그만두고 아들 구명활동에 매진했다. 아들을 고소한 두 여인의 부모를 찾아가 합의를 부탁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B 씨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모텔을 직접 찾아가 주인에게 “사건 당시 카운터에 있었는데 고함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자술서를 받아올 만큼 열성적이었다. 당시 최 씨와 B 씨가 묵은 모텔 방은 카운터 인근이라 고성을 질렀다면 소리가 분명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씨는 지난해 1월 1심에서 두 여인을 강간한 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재판

반전은 2심 재판에서 시작됐다. 최 씨는 지난해 7월 2심에서 A 씨를 강간한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 받고 형량이 1년 6개월로 감형됐다. A 씨가 성관계 직후부터 1개월여 동안 최 씨와 371회 문자메지시와 전화통화를 주고받다가, 최 씨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B 씨와의 통화 직후 강간 고소를 한 점을 의심스럽게 판단한 것이다. 사건 당일 친구에게 “오늘 집에 안 들어가도 된다. 오빠와 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 성관계 직후에 최 씨를 양팔로 끌어안고 “우리 오빠 군대에서 많이 외로웠쪄여”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 점 등도 감안됐다. 하지만 B 씨에 대한 강간죄는 그대로 인정돼 최 씨는 옥살이를 이어가야 했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추석에 직권으로 최 씨를 풀어줬다. 1,2심에서 잇따라 유죄를 선고하고 구속한 피의자를 대법원이 풀어준 건 이례적이다. 국선대리인으로 최 씨를 변호했던 박동현 변호사는 “대법원이 최 씨를 구속한 상태에서 심리하기엔 부담이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8개월 만에 아들의 석방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눈물을 쏟아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B 씨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26)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대법원은 최 씨가 성관계를 하다가 B 씨로부터 “오빠! 이건 강간이야!”라는 말을 듣고 즉시 성행위를 멈췄을 정도라면 B 씨의 의사를 오해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협박 등을 통해 강제로 성행위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 씨가 강제로 B 씨를 협박하거나 억압해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황을 설명했다. 둘이 모텔에 함께 있던 시간이 오전 8시~낮 12시로 네 시간이나 됐고, 성행위 후에도 자유롭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는데도 즉각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봐도 B 씨가 최 씨와 함께 있으면서 강한 반감이나 거부감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모텔 방이 카운터와 가까웠는데도 당시 고성을 듣지 못했다는 취지로 최 씨 어머니가 모텔 주인으로부터 받아 제출한 자술서도 대법원이 유리한 정상으로 인정했다. 국선 변호를 맡았던 박동현 변호사는 “1,2심에서 유죄가 났던 사건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아 기쁘다”며 “무죄를 입증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대법원을 움직인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조동주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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