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차별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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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요즘 부쩍 ‘차별’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피부색이나 생김새,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영향인 것 같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는 이런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딸아이는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하루는 “우리 반에 흑인 여자 아이가 하나 있는데, 아이들이 따돌려. 그 아이에게 친구가 생길 때까지 내가 친구 해 주기로 했어”라고 말했다.

또 한번은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남동생이 “누나는 무슨 동물을 좋아해”라고 묻자 딸아이는 주저 없이 “돼지, 거미, 뱀, 박쥐”라고 답했다. 엄마가 그 이유를 묻자 “생긴 것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 같아서 나라도 예뻐해 주기로 했다”고 답했다. 기특했다.

하지만 모든 백인들이 배운 대로 실천하지는 않는 것 같다. 2년 반째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기자도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지난해 가족 4명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인근 식당에 들렀을 때 백인 종업원이 비상구 밖 복도에 임시로 만든 테이블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식당 안에 빈자리가 많았는데도 말이다.

기분이 상해 종업원에게 실내 좌석을 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식당 안 한쪽 구석에 진공청소기와 대걸레가 서 있는 바로 옆 자리를 줬다. 참지 못한 아내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지배인을 불러 큰 소리로 따졌다. 소송이라도 당할까 봐 화들짝 놀란 여성 매니저는 “우리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더니 제대로 된 좌석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흑백갈등 시위를 겪었던 미주리 주 퍼거슨 시를 올해 3월에 찾았을 때 기자는 한 도시가 송두리째 파괴된 현장을 목격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흑인 소요로 곳곳의 건물들이 불에 탄 시가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런 폐허 속에서 희망을 봤다. 이 지역의 정치인과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피부색에 상관없이 서로 모여 도시를 재건하고 인종갈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 내 흑백갈등은 더 커지는 형국이다. 백인 경찰관의 흑인 용의자 살해 사건이 줄을 잇더니 급기야 154년 전 노예 해방을 둘러싸고 남북전쟁이 발발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에서 한 백인 우월주의자가 예배를 보던 흑인 9명을 총살하는 ‘증오범죄’가 일어나 미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 퇴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기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퍼거슨 사태 이후 백인 경찰관의 무리한 흑인 단속을 금지할 개혁 입법들은 주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미국 사회의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못 배우고 가난해 범죄자가 되는 흑인들도 늘고 있다.

퍼거슨 취재를 적극 도와줬던 한국계 미국인 주디 드레이퍼 판사(60·여·한국 명예영사)는 기자에게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6·25전쟁 직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흑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어머니는 흑인과 아시아인이라는 이중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딸에게 “두 겹의 차별을 딛고 일어서려면 남들보다 2배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내가 약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눈앞에 뻔히 보이는 운명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힘을 기르는 것뿐이다. 조만간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은 남부연합기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은 단지 백인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차별#백인#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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