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당국간 위안부 합의해도…피해자들 수용이 관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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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개선 어떻게]한일 정상회담 성사까지 과제는

피해자들 “日 법적책임-국가배상을”
日은 “법적책임 없다” 주장 고수
1995년-2012년 해법 모색때도
같은 문제 시민단체 반발로 무산
실무라인 “최종타결 시간 걸릴것”


22일 한일 정상의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 교차 참석으로 최소한의 우호적 분위기는 형성됐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 성사까지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다. 당국 간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지만 그 합의안을 피해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일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고 한다. 배석한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23일 “(박 대통령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위해 두 회장 원로들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 최고위원은 “덕담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했지만 한일 정상회담은 당면 과제로 부상한 셈이다.

하지만 실무 라인은 여전히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위안부 협의는 갈수록 어려운 부분이 남기 때문에 최종 타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도 “한일관계는 하루아침에 풀리지 않는다”고 신중론을 폈다. 그만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및 국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요구와,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팽팽히 맞서 있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한국에 제안한 일명 ‘사사에 안(案)’은 사실 내용 면에서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사사에 안’의 핵심은 △총리의 사과 △주한 일본대사가 피해자에게 사과 편지 전달 △국가 예산이 들어간 위로금 전달 3가지다. 1995년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해법을 모색했을 때와, 위로금과 기금이라는 명칭만 빼고는 같은 내용에 해당한다. 20년 전에도 법적 책임 인정 없는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민단체의 반발로 사과 편지 전달은 무산됐고 일부 피해자만 비밀리에 기금을 수령했다.

지한파인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군대 위안부는 설치·운영되던 당시 기준으로도 국제법과 일본 국내법에 위반되는 제도였지만 오늘날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법적 부분이 모두 해소됐다는 논리가 오랜 기간을 거치며 굳어졌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사법부도 이 같은 법적 해석으로 판결을 해왔다. 2012년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고위 당국자는 “한국은 당시 합의문에 ‘정부 책임(state responsibility)’이라는 표현을 넣고자 했지만 일본은 ‘법적 책임(legal responsibility)’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텨 ‘사사에 안’ 합의가 불발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사사에 안’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오간 이야기여서 현재의 자민당은 “우리는 모른다”는 식이다.

다만 한일 정상이 어떻게든 과거사를 해결하자는 정치적 의지를 싣고 있어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때마침 유엔 차원의 압박도 강화된다. 방한 중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난다. 유엔의 인권 수장이 위안부 피해자를 한국에서 직접 만나는 것 자체로도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숭호 shcho@donga.com·고성호 기자
#위안부#합의#피해자#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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