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끈으로 서로를 붙든 버려진 물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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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작가 크루스비예가스 전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설치작품 ‘자가해체8: 신병(神病)’(부분). 스티로폼 조각, 이 빠진 싸리비, 터진 파이프, 깨진 유리문 등 분명 쓰레기처리장에 있어야 할 물건들을 돌려세워 묘한 이야기를 짜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설치작품 ‘자가해체8: 신병(神病)’(부분). 스티로폼 조각, 이 빠진 싸리비, 터진 파이프, 깨진 유리문 등 분명 쓰레기처리장에 있어야 할 물건들을 돌려세워 묘한 이야기를 짜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꾸준히 굳건하게 어렵다. 굳이 어려운 듯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을 만한 빈약한 건더기를 공연히 그럴싸하게 포장해 내놓는 사례가 간혹 끼어들긴 하지만, 전시운영주체의 뚝심에는 흔들릴 기미가 없다. 7월 26일까지 열리는 멕시코 작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개인전 ‘자가해체8: 신병(神病)’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듯 보인다.

아트선재의 여느 때 전시처럼 공간 구성은 불친절하며 매끄럽지 않다. 3층의 ‘작품’은 리모델링 계획 중인 기존 내부 공간 미장을 뜯어내 뼈대를 드러낸 ‘공간’ 자체다. 한구석에 놓인 모니터에서 작가의 부모 집에 얽힌 기억을 담은 스틸 이미지 편집 영상이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어디선가 한껏 볼륨을 높인 음악 소리가 들린다. 울려오는 곳을 더듬어 찾아가니 다른 전시 때는 존재를 눈치 챌 수 없었던 뒤편 골방이 나타난다. 20년 전 건물이 세워진 뒤 일반 관객의 시선과는 좀처럼 마주칠 일 없었을 커다란 창문과 바깥 풍경이 다가든다. 지구 반대편 고향을 생각하며 공간을 비운 작가는 이곳을 찾는 이가 과거에 경험한 어떤 시선을 찾아내 선사한다.

2층에는 ‘쓰레기’를 쌓았다. 지난해 전시 종료 후 남은 폐기물, 서울 재개발지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폐자재가 ‘작품 재료’다. 녹슨 시계 판, 한 짝만 남은 구닥다리 피겨스케이트, 넝마처럼 해진 농구공, 문고리 떨어진 나무 문짝, 이 빠진 사기그릇, 빈 박카스 병, 폐타이어, 다 태우고 꺼낸 창백한 연탄재 덩어리, 우산살, 부서진 기타, 엉클어진 수세미 뭉치.

물감 냄새가 아니라 먼지 냄새가 난다. 다 쓰고 버려진 그것들을 끈으로 묶어 하나로 연결해 놓았다. 하나로 이어진 덕에 그저 묘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가 아니다. 모든 사물마다 그걸 끌어안고 쥐고 쓰다듬던 누군가의 흔적이 선연하다. 버려진 물건들이 가냘픈 끈으로 서로를 붙든 채 둥그렇게 서로 기대 둘러앉아 있다. 그렇게 앉아 ‘나는 이렇게 지내 왔어’ 하며 하나씩 조용히 털어놓고 있는 듯하다. 아우성치지 않고 하나씩. 나머지는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며 듣고 있다. 적어도 올여름까지는, 그렇게 함께 앉아 조금 더 존재하게 돼 다행이라는 듯. 02-733-8945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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