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이 버팀목들을… 결코 잊지 못할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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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돌아본 210일]
실종자 가족들 ‘진도체육관에 두고 올 수 없는 물건’

“어머니, 담요 안 가져가셔도 돼요?”

“남편도 두고 가는데 담요가 대수야. 두고 가야지.”

빈 택배 상자를 가득 쌓아놓고 옷가지를 접어 넣는 유백형 씨(53)의 손이 느릿느릿했다. 유 씨가 필요한 짐을 챙겨 넣으면 자원봉사자들이 상자를 닫았다. 유 씨가 남편인 단원고 양승진 교사를 기다린 지 210일, 유 씨는 결국 남편 없이 경기 안산으로 돌아가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지 26시간 후인 12일 오후 1시경. 전남 진도체육관에는 갖가지 크기의 갈색 택배 상자가 옮겨져 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일단 안산으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을 보내는 것이지, 내일 당장 떠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자원봉사자들과 안산에서 온 단원고 유가족들이 힘을 보탰다. 1시간 만에 10여 개의 택배 상자가 가득 채워졌다. 이 상자 안에는 210일 동안 가족들이 애착을 갖고 간직했던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양승진 교사의 라바인형 유백형 씨는 남편이 큰딸에게 선물한 라바 인형을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양승진 교사의 라바인형 유백형 씨는 남편이 큰딸에게 선물한 라바 인형을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맞다, 저기 라바 인형도 넣어야 되는데….” 유 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빨간색 라바 인형과 노란색 라바 인형이 놓여 있었다. 유 씨의 라바 인형은 지난해에 양 교사가 라바 캐릭터를 좋아하는 큰딸에게 생일선물로 준 것이다. 다른 실종자 가족과 달리 혼자 체육관을 지켜야 하는 유 씨를 안타깝게 여긴 딸이 사고 직후 인형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 이후로 유 씨는 남편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질 때마다 라바 인형을 쓰다듬으며 작은 위로를 얻었다.

허다윤 양을 기다리는 머리끈 허다윤 양의 부모님이 항상 머리맡에 뒀던 해바라기 머리끈.
허다윤 양을 기다리는 머리끈 허다윤 양의 부모님이 항상 머리맡에 뒀던 해바라기 머리끈.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44)는 체육관에 머무는 내내 하늘색 귀마개를 챙겨 다녔다. 박 씨는 신경섬유종이 청신경을 눌러 청력이 약해진 상태다. 체육관에 항상 켜져 있는 TV 소리에 귀가 덜 아프려면 귀마개가 필수다. 사고 직후 못 견디게 시끄러웠던 팽목항과 체육관에서도 귀마개가 꼭 필요했다. 11일 수색 종료 기자회견 직후 박 씨는 귀마개가 빠지는 것도 모르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려 오열했다. 박 씨와 아버지 허흥환 씨(50)가 항상 머리맡에 뒀던 해바라기 장식 머리끈도 이제 택배 상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허 씨 부부는 다윤이가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다윤이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는 사진 위에 머리끈을 걸어두곤 했다.

권재근 씨 가족의 모기장 지난 여름 유난히 모기에 시달린 실종자 가족 권오복 씨가 체육관에 친 모기장.
권재근 씨 가족의 모기장 지난 여름 유난히 모기에 시달린 실종자 가족 권오복 씨가 체육관에 친 모기장.
차갑고도 센 바람이 불어오는 진도지만 아직도 여름에 사용한 모기장을 그대로 둔 실종자 가족도 있다. 실종자 권재근 씨의 형이자 권혁규 군의 삼촌인 권오복 씨(60)다. 권 씨는 초여름부터 유난히 모기나 나방 등에 시달렸다. 항상 전자모기채를 끼고 다닌 권 씨에게 7월 중순경 지급된 텐트형 모기장은 큰 선물이었다. 이불과 책, 옷가지 등을 모기장 안에 쌓아놓기 시작한 지 넉 달. “이제 와서 치울 기운도 없어서 그냥 두고 있었지.” 권 씨의 모기장 뒤쪽에 늘어선 동생과 조카의 초상화들도 긴 시간 권 씨를 지켜온 힘이었다.

박영인 군의 운동화 단원고 2학년 박영인 군의 축구화. 어머니가 ‘사랑한다 내 아들’이라고 써놨다.
박영인 군의 운동화 단원고 2학년 박영인 군의 축구화. 어머니가 ‘사랑한다 내 아들’이라고 써놨다.
실종자인 단원고 2학년 박영인 군의 아버지 박정순 씨(46)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지난 추석 직후 바다에서 나온 영인이 가방이다. 박 씨는 가방에 있던 교복과 운동복을 깨끗하게 빨아 상자 안에 곱게 접어 넣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라고 써서 팽목항에 뒀던 영인이 축구화도 안산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11일 오전 수색 종료 요청 기자회견 직후 이불에 엎드려 펑펑 울었던 영인이 어머니 김선화 씨(44)는 그날 저녁 안산으로 향했다. 13일이 영인이 형(20)의 수능 날이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동생의 사고 직후 한 번도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시험을 일주일 앞둔 지난주 “엄마 언제 와요?”라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진도 떠나기 아쉽지 않으세요?” 박 씨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진도든 안산이든 어디 있어도 다 힘들어요. 이제는 진도보다 안산 집에 좀 가고 싶어.”

실종자 가족들이 아픈 몸을 달래던 안마소도, 쓰린 마음을 달래던 불교 조계종과 천주교 천막도 철거를 준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쓰던 매트와 담요도 포장돼 체육관 2층 한쪽 구석에 놓였다. 체육관 문 앞 화이트보드에 붙여진 ‘다음과 같이 수습된 실종자의 인상착의를 알려드리니 문의가 필요하신 가족 분께서는 신원 확인반으로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 아래에는 이제 아무런 안내문도 없었다.

진도=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세월호#실종자#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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